올바른 행위(내부고발)와 제보자가 얻게 되는 이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언뜻 보면 윤리와 비윤리가 중첩돼 보인다. 다시 말해, “올바른 행위라도 이익을 얻지 못하면 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현실론적인 견해도,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올바르기 때문이지 다른 어떤 이유도 없다”는 당위론도 나온다. 정답은 개인의 양심에 달려 있다
⊙ 인사청문회는 한국 사회 내부의 ‘존경 철회’ 현상?
⊙ “인사청문회 투서자는 ‘깜짝 놀랄 정도로 가까운 사람’”
⊙ “공직자의 친구는 물론 형·아우마저도 불미한 점이 있다면 들춰야”
⊙ 투서 내용이 완벽하게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 “정치목적으로 내부고발자를 이용해선 안 돼”(부실혈액관리 제보자 김용환)
⊙ 인사청문회는 한국 사회 내부의 ‘존경 철회’ 현상?
⊙ “인사청문회 투서자는 ‘깜짝 놀랄 정도로 가까운 사람’”
⊙ “공직자의 친구는 물론 형·아우마저도 불미한 점이 있다면 들춰야”
⊙ 투서 내용이 완벽하게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 “정치목적으로 내부고발자를 이용해선 안 돼”(부실혈액관리 제보자 김용환)
- 국회 인사청문회장의 모습.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의 인사청문회를 주도하는 국회의 검증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고위공직자를 발가벗기고 하루아침에 부도덕의 멍에를 지우는 청문위원(국회의원)들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들여다보았다.
한 달 가까이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 어떻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어떤 자료를 요청하며 어떤 확인절차를 거치는지 지켜본 결과, 기자가 내린 결론은 검증실력보다 무차별적 자료 요구로 걸려들지 않을 공직자가 없을 것이란 점이다.
공직후보자와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최근 20년간 경범죄처벌법, 도로교통법 위반 범칙금 및 과태료 납부내역은 기본이고, 부동산 투기 여부(거주 목적 이외의 주택 또는 분양권 보유, 용도불명 비연고지 토지 보유, 분양권 불법전매 등), 재산신고에 있어서의 축소·불성실한 신고 및 주식백지신탁 의무 이행 여부 등을 검증하기 위한 수많은 자료 제출 요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한방’은 공직후보자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주변 사람의 내부고발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이었다. 주변 사람이란 동료나 친척, 공직경쟁자·경쟁부서, 직속부하를 말한다. 오죽하면 “가장 큰 적은 내 주변에 있다”는 말이 나왔을까.
가까운 주변에 의한 ‘존경 철회(withdraw of respect)’ 현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쏟아지는 투서와 의혹제기, 진정을 모두 ‘공익(公益)제보’로 봐야 할까. 혹시 그중에는 시기와 질투, 사심(私心)이 개입된 의혹제기는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에 달려 있다. 불신사회에선 정도(正道)를 걷는 이들의 성공 확률이 줄어드는 경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도를 벗어나 비정상적인 우회로를 택했던 이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우회로를 택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가 ‘주변 사람’이다.
한국은 좁은 국토와 극심한 도시인구 밀도를 지닌 나라다. 좁은 고위공직자의 문턱을 넘기 위해선 ‘남을 짓밟는’ 경쟁을 거쳐야 한다. 경쟁이 격해질수록 ‘너와 내가 다를 게 없다’는 평등주의가 생기고, 존경 철회가 생긴다. 높은 경쟁밀도는 경쟁관계의 개인 간, 내부조직 간 접촉빈도를 높이고 성공과 실패의 대가(代價)가 얼마나 냉혹한지 각인시킨다. 이 과정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式) 매터도(흑색선전)가 생기고 폭로의 적개심이 표출된다.
고위공직자의 잇단 낙마는 그들 자신의 결점이 원인이지만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무겁다. 청문회와 공직인사철에 쏟아지는 투서와 제보, 매터도를 넓은 의미의 ‘공익제보’로 인식할 만큼 한국 사회가 성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의 낙마가 던지는 무거운 메시지
새누리당 박인숙(朴仁淑) 의원의 보좌관인 황동연씨는 김병준(金秉準)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국회 보좌관 경력 17년차다.
“야당 시절이었는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그와 깜짝 놀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악의적 관계라고 할 만한 분이 아니었어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고 봐야 할지, 공사(公私)를 떠나 정의감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지금도 누군지 공개할 순 없어요.
지난 6월 김명수(金明洙) 교육부 장관 청문회 때도 제자가 언론사에 스승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칼럼·특강원고 대필과 수업도 제자에게 맡겼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어요. 한 주간지에 ‘교육부 장관 후보자께 제자가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공개편지가 실리기도 했고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지만 제자의 행동이 용기 있는 행위라는 시각도 나옵니다.”
교육학 박사이기도 한 황 보좌관은 국회의 검증실력에 대해 “국회 보좌관들의 전문성이 과거보다 크게 향상됐다. 과거엔 보스 정치인을 위해 돈을 만들고, 기자와 술 마시는 보좌관이 많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퇴출됐다”고 귀띔했다.
국회의원 보좌관 12년차인 새누리당 주영순(朱永順) 의원실 이종우 보좌관은 “다운계약서, 주소지 이전과 같은 산업화 시대의 관행들이 청문회에서 모두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장관이 되려면 숨만 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투서의 내용대로라면 대개의 고위공직자들은 가톨릭 사제(司祭) 같은 도덕성이 아니면 청문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 국회의원실마다 최소 2명의 보좌진이 검증에 참여한다고 볼 때, 여야 청문위원이 15명이라면 30명이 달라붙어요. 청와대 인사팀이 몇 명이나 됩니까. 국회에서 마음먹고 달려들면 못 할 것이 없어요.”
투서는 내용이 엄밀해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투서자의 신분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투서자를 불러 물어볼 수도 없고 오로지 투서 내용에 기초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선임 행정관으로 3년간 근무했던 새누리당 최경환(崔炅煥) 의원(現 경제부총리)의 박재홍(朴在鴻) 보좌관은 “예를 들어 특정업체를 봐줬다는 투서가 계좌에서 드러나면 모를까 드러나지 않으면 갑갑해진다. 그래서 투서로 시작하는 수사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정의감에서 제보를 하는 비율이 몇 %나 될까요? 인사검증을 하면서 느끼는데, 자기 이익하고 연관되니 폭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처럼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선 음해성 투서도 많아요. 한 사람이 잘나가면 주변의 시기나 질투가 많으니까 작은 잘못도 부풀려 퍼지고 말이죠.
특히 본인에 대한 소문과 평가는 실상 본인을 가장 잘 아는 주변 사람에게서 대부분 나옵니다. 그러므로 평소 주변인을 잘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박 보좌관은 “청와대 시절, 공직후보자를 검증할 당시 조직 내 동료나 부하직원, 상사 등을 대상으로 여론을 청취하면서 뜻밖의 수확을 거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 후보자가 불도저마냥 밀어붙이는 업무스타일이라면 주변의 평가는 양쪽으로 나뉜다.
“한쪽은 책임감이 강하고 추진력이 탁월하다고 하겠지만 다른 한쪽은 자신의 승진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특히 경쟁자나 경쟁부서에 있는 이들로부터 인색한 평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청하는 리더십이 있는 후보자도 마찬가지죠. 보기에 따라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역으로 ‘귀가 얇다’ ‘추진력이 없다’는 얘기가 나와요.”
“투서자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
공직후보자가 됐을 때, 고시(考試) 동기와 같은 경쟁자도 투서나 제보를 많이 하지만 같은 부서의 부하직원이 팔을 걷어붙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쩌면 사감(私感)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재홍 보좌관은 “제보나 투서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해당 공직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일 못하는 부하직원의 결점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는 안목도 리더의 자질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한 공직자는 부하직원이 결재를 받으러 오면 내용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더라도 결재 후에 반드시 부하직원의 부인이나 가족의 안부를 꼭 물었어요. 그리고 부하직원의 가정에 애로사항이 있으면 자신의 일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또 부하직원이 부부싸움이 잦아 이혼 얘기가 떠돌자 직접 해변 콘도를 잡아주면서 부하직원 부부 둘만이 2박3일 동안 여행을 가게 주선해 두고두고 공직사회에 회자했어요.”
보통 소문의 진원지는 술자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모 장관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당시 “술 먹고 늦게 출근한다” “술집 마담과 정분이 났다”는 제보가 국회에 집중적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제보나 투서는 확인하기 곤란하지만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어서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그래서 단골술집이 소문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말이 있다. 총무처 장관과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지낸 이상배(李相培)씨의 말이다.
“나와 상관없는 소문이라고 외면할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여러 평판(評判)을 적극 관리해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평판 관리의 핵심은 개개인의 일관성과 곧은 가치관입니다. 이런 덕목을 갖춘 공직자는 조직 내에 일어나는 소문과 견제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겁니다.”
박지원, “청와대 내 ‘딥 스로트’가 있다”?
새민련 박지원(朴智元) 의원은 공직 전반에 ‘딥 스로트(deep throat)’가 많다는 설이 있다. 막강한 정보력으로 검찰총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두 명의 장관후보자까지 5명을 낙마시켜 자칭(自稱) ‘청문회 5관왕’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9년 7월 낙마한 천성관(千成寬) 검찰총장 후보자였다. 당시 천 후보자는 자신의 아들 결혼식을 조그만 교외에서 치렀다고 말했다가 박 의원이 “6성급 W호텔이 조그만 교외냐”는 추궁에 망신을 당했다.
‘15억5000만원의 채권자’ 박경재씨와 천 후보자의 관계, 후보 부인의 해외여행 때마다 고급 명품을 사들였다는 폭로도 그의 입을 통해서다. 당시 검찰은 천 후보자의 명품쇼핑 관련 정보를 제공한 관세청 직원을 조사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마당발로 알려진 그의 정보력은 정치권에서 여러 번 화제가 됐다. “개인 모임에 나갈 때는 수행비서나 운전기사도 미리 장소를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뭉스럽다. 김대중(金大中)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거치며 정부부처에 널리 퍼진 호남 인맥을 각별히 챙겼고 이들을 통해 정보를 획득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나왔다. 그러나 박 의원은 “호남 출신 공직자들은 생존에 바쁜 인물들로 우리랑 잘 만나지도 않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국정원 창설 이후 최악의 사건 댓글사건은 국정원 전직 간부 김상욱씨(1990년 1월 국정원에 입사해 2009년 퇴직한 후 민주당에 입당했다)가 야당에 제보하면서 불거졌다. 박 의원과 김씨는 인연이 두텁다. 박 의원은 “김씨가 DJ 정부 출범에 공헌했는데 그 뒤에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말해 이전 정권부터 딥 스로트였음을 암시했다.
김씨의 저서 《김상욱의 희망만들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안기부를 방문해서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친구 잘 있느냐’고 물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박 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인 2011년 1월에는 “청와대 내 ‘딥 스로트’가 있다”고 말해 MB정부를 자극하기도 했다.
새민련 강동원(姜東遠) 국회의원의 보좌관인 김현목씨는 경력 25년차다. 그는 “공직후보자에 대한 투서나 제보도 공익제보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국무위원과 같은 고위공직자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어요. 청문회에 쏟아지는 제보를 경쟁자에 의한 내부 밥그릇 싸움이나 조직 이기주의로 봐선 곤란합니다. 후보자에게 공식경로를 통해 자료를 요구하면 숨기거나 거짓 가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결정적인 제보 하나가 공직사회에 만연된 비리를 차단하는 긍정적 효과를 지닙니다. 청와대가 제대로 사전에 검증을 안 하니까 우리가 대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공익제보자의 신상을 철저하게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야당에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투서가 신빙성이 있는지 검증절차를 거치되 그저 말만이 아니라, 자료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하려 합니다. 허위사실이라면 나쁘지만 ‘사감’이라는 동기가 있다고 해도 투서내용이 ‘팩트’라면 넓은 의미에서 공익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김 보좌관은 “인사청문회를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으로 2원화하되 사생활 부분은 별도로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걸러낼 사안도 한국은 다 건너뛰고 국회로 넘어오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제보나 투서 내용이 완벽하게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보복감정이나 사적 이익추구를 위한 제보도 원칙적으로 보호받아야 할까. 최근 한국부패학회 논문집에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의의와 개선방안에 관한 소고>를 기고한 청주대 법학과 조한상(趙漢相) 부교수는 “사회적 의의가 있는 공익침해에 관한 신고는 그 행위 자체로만 판단해야지 그 목적은 불문(不問)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제보자의 사적 의도나 진실성을 가리는 과정에서 인권침해의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공익을 위한 고발자 보호제도의 취지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에 ‘윤리성’이란 항목은 ‘부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조한상 교수는 “공익신고를 한 사람이 윤리적이 아니라고 해서 제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입법 목적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범죄인도 자신의 범죄사실을 시인하고 수사에 협조하면 그 죄를 감면하자는 의견이 많은데(플리바게닝), 공익신고를 한 사람이 윤리적이 아니라고 보호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아닐까요?”
—내부고발의 윤리성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공익신고를 통해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공익신고를 한 사람이 불순한 의도를 가졌다고 비난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조사 또는 수사기관은 공익신고자 내면의 의도를 캐묻고 심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익신고자의 양심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도 높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익신고의 경우 일정 정도의 진실성은 요구해야 하겠지만 윤리성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부고발의 진실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투서내용이 진실하지 않을 때도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야 할까. 또 일부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일 때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공익신고자보호법(제2조)에는 ‘신고내용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익신고를 한 경우’에는 공익신고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투서자가 진실로 믿고 오로지 정의감에서 고발할 수도 있다. 조 교수는 “내부고발자가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무조건 보호하지 않는 것도 (내부고발자에게) 가혹하며 공익신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세법·농지법 등 50여 개 개별법 알아야 검증 가능”
그러나 진실이 결여된 투서는 후보자에게 참혹한 멍에를 안긴다. 청문위원들의 추궁에 속 시원히 해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정운찬(鄭雲燦) 전 총리는 지난 2009년 9월 총리후보자로 인사청문회장에 섰다. 당시 그는 1977년 고령(31세)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의혹, ‘모자 제조업체’ 회장으로부터 외국 출장비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은 의혹을 추궁받고 진땀을 흘렸다.
정 전 총리는 지난 8월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세미나에 참석, 인사청문회 당시를 떠올리며 “마치 피고석에서 전과 유무를 추궁당하는 느낌이었다. 구석구석 털어서 죄인을 만들자는 자리였다”고 회고했다.
당시 정 전 총리가 “나는 부선망(父先亡) 독자여서 군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야당 청문위원들은 줄곧 의혹만 외쳤다. 어떤 비전으로 국정을 이끌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逆說的)인 사실은 당시 병역의혹을 제기한 야당 청문위원 5명 중 3명이 병역 미필자(면제자)라는 사실이었다. 정 전 총리는 “내 병역 기피 의혹을 질타하며 법을 지키라고 외친 청문위원은 바로 다음날 의원 자격이 박탈됐다”며 허탈해했다. 당시 청문위원이던 민주당 김종률(金鍾律) 의원이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 확정판결을 받은 것을 일컫는 것이다. ‘제 눈에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티끌을 탓’한 셈이다.
정 전 총리는 언론에 대해서도 “병역 기피나 부동산 다운계약서와 관련해 근거가 없거나 논리가 박약한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며 사퇴를 종용한 언론도 있었다. 이제 받아쓰기 기능에서 벗어나 언론이 ‘진짜 검증’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실상 투서는 확인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떨어진다. 야당 청문위원 역시 이 사실을 알지만 검증이 어렵고 짧은 청문회기를 감안, 헛발질 폭로라도 밀어붙이는 사례가 많다.
‘낙마 5관왕’이라 으스대던 박지원 의원도 헛발질 폭로로 송사(訟事)를 당한 적이 있다. 2011년 1월 이석연 의원(당시 민주당)과 함께 박 의원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아들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특혜입학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당 의원총회에서 특례입학 의혹을 제기했고 박 의원은 “이 의원의 제보는 정확하다”고 거들었다.
“사실과 다르다”는 서울대의 반박이 이어지자 박 의원은 “제보라는 게 거짓말이나 역정보도 많아 헛발질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사과했다. 진보학자인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마저 “완전 오보”라고 확인하는 바람에 박 의원은 체면을 구겼다. 한나라당은 박·이 의원의 사과와 상관없이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인사검증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후보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를 고의 누락하거나 유리한 자료를 거짓제출 한다 해도 짧은 청문기간 내 찾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검증에 참여했던 박재홍 보좌관의 말이다.
“주요 8대 검증항목(농지법 위반·투기 등 재산형성과정, 병역, 세금탈루, 범죄경력, 논문표절, 이중국적, 위장전입, 사회적 지탄)을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선 법률에 대한 기본지식과 검증잣대가 될 소득세법·농지법·국토계획법·주택관련법 등 50여 개의 개별법에 정통해야 합니다. 청와대나 관련 부처도 못 밝혀낸 불법을 청문위원과 보좌관이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엽적인 사안만 물고 늘어지죠.
또 검증항목의 시간적 소급문제도 주먹구구식이에요. 검증기간을 5년 전으로 할지, 10년 전으로 할지, 평생기간으로 할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청문회장에서 기억도 안 나는 후보자의 20~30년 전 다운계약서나 탈세·논문표절을 추궁하니, 질문을 하는 청문위원이나 받는 후보자나 갑갑하긴 마찬가지죠.”
그나마 총리나 장관의 검증은 당 공천후보자 검증보다 수월하다. 당에서 총선 시 각 선거구별로 3배수씩 검증한다고 가정하면 약 900명의 후보자를 시간 내 검증해야 한다. 박 보좌관은 “검증직원 10명이 하루 3명씩 한 달(10×3×30)을 꼬박 밥도 안 먹고 매달려야 900명을 다 조사할 수 있다”며 “검증만 하다 공천을 못 할 수 있다. 당 공천 과정의 검증소요 인력과 시간확보 문제에 대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전직 청와대 인사 “인사철 검찰은 매터도 경연장”
내부고발의 윤리성 문제를 좀 더 들여다보자. 정권 말기 권력누수 현상의 대표적 예가 국정원과 검찰의 ‘정보 상납’이다. 특정 정당 대선후보에게 건네지는 ‘보험용’ 내부고발을 어떻게 봐야 할까.
또 권력자의 인사를 앞두고 나오는 비방성 ‘평판’을 어느 선까지 진실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명박(李明博) 정부 당시 검찰총장 인선 과정에서 흑색선전이 난무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검찰총장 후보자 검증이 시작되자 청와대에 각종 음해성 제보와 진정서가 잇따랐어요. 후보자들은 물론, 후보자 라인의 검찰인사들까지 가세해 상호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 막판 인사검증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때 청와대 내부에서 ‘대한민국은 투서, 매터도 공화국’ ‘만인 대(對) 만인의 투쟁’ ‘매터도 경연장’이라는 탄식이 나왔겠습니까.”
—당시 제보나 진정서가 검찰 내부에서 터져나왔던 건가요?
“외부에서 알 수 없는 내용이니까요. 심지어 인사가 임박하자, 막판 뒤집기를 하려는 듯 아주 구체적인 시간과 날짜, 장소가 적힌 장문의 투서가 들어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검증에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런 매터도 기류를 감지하고 대책을 논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투서는 보통 어떤 유형인가요?
“대개가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것은 오히려 확인하기가 쉬워요. 향응 접대를 받았다, 여자관계가 복잡하다, 그림이나 보석 같은 뇌물을 받았다, 실세에게 줄을 댔다는 것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펄쩍 뛸 뿐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해명이 석연치 않으면 존안자료에 ‘~설(說)’이 있다고 기록으로 남기지요.”
올바른 행위(내부고발)와 제보자가 얻게 되는 이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언뜻 보면 윤리와 비윤리가 중첩돼 보인다.
다시 말해, “올바른 행위라도 이익을 얻지 못하면 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현실론적인 견해도,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올바르기 때문이지 다른 어떤 이유는 없다”는 당위론도 나온다. 정답은 개인의 양심에 달려 있다. 그 양심은 사법당국의 조사에 의해서도 찾아내기 불가능하다. 오직 자신만이 떳떳하게 답할 수 있다.
지난 7·30 재보선에 새정치연합 후보 중 권은희 의원(前 서울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과 백혜련 변호사가 있다. 두 사람은 ‘내부고발자’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권 의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사건 수사 때 은폐 의혹이 있다며 폭로했고, 백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글을 남기고 검사직을 떠났었다.
두 사람은 야당으로부터 양심과 용기를 가진 ‘의인(義人)’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정계 입문설을 부인하다가 결국 야당의 전략공천을 받고 출마했다. 권 의원은 ‘안전빵’인 광주광역시 광산을에 출마, 당선됐으나 수도권(경기 수원을)에 나선 백 변호사는 고배를 마셨다.
이를 두고 여당은 연일 “거짓 폭로의 대가에 따른 보은(報恩) 공천”이라며 공격했다. 새누리당 윤상현(尹相現) 사무총장은 “권은희 의원은 경찰의 명예를 팔아서 국회의원 자리를 얻으려고 했느냐. 공직자의 거짓 폭로 대가로 의원 자리를 만들어주는 새정치연합은 대체 뭐냐”고 따졌다.
반면 권 의원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실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야당 내부에서도 “권 의원의 양심선언들이 이번 공천을 통해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趙慶泰 최고위원)는 말들이 돌았다.
그런데 권 의원의 경우 내부고발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법원의 판결이 다르다. 이 때문에 권 의원은 위증 혐의로 고발을 당해 조사를 받을 처지에 있다.
내부고발 침묵하면 범죄은닉죄?
청주대 법학과 조한상 교수는 “공익신고자의 선거출마 문제는 공직선거법에서 피선거권 요건으로 제한하지 않는 이상 유권자가 판단할 몫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선거야말로 공직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완비된 과정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그릇된 공익신고를 한 사람도 출마하지만, 그보다 더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출마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이상 그에 대해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자유위임의 원칙) 중 하나가 아닐까요? 물론 법원을 통해 범죄가 확정되고 그것이 공직선거법상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기자는 《윤리란 무엇인가 묻고 생각하다》의 저자인 전북대 윤리교육과 최용철(崔容哲)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최 교수는 “‘공직 윤리’는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엄정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가령 부적절한 남녀 관계를 맺었던 한 사람이 공직(예를 들어 대통령)을 수행할 기회를 가졌다고 해봅시다. 그 사람은 공직 기회가 찾아왔다고 해도 스스로 반성하고 그만둬야 합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 반성하고 공직에 취임하지 않아야 함에도 취임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내부고발을 (합리화가 아니라) 정당화하는 빌미가 될 겁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래서 나온 개념이 아닐까요?”
최 교수는 “‘가까운 사람’은 개인관계를 일컫는 용어이지, 공공생활에서 쓸 말은 아니니, 공직자의 친구는 물론 형과 아우마저도 불미한 점이 있다면 들춰내야 한다. 들춰내지 않는 것은 ‘범인은닉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한국처럼 오랜 가부장제와 군사문화에 찌들어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내부고발은 더욱 절실합니다. 공공생활에서 일상화된 무분별한 명령복종 관계와 폭력 사용은 이제라도 물리쳐야 할 ‘악(惡)’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물리쳐야 할 악이 무엇인가 분명하지 못해 내부고발을 악으로 여기는 풍토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최 교수는 “내부고발은 본디 ‘고발’ 중 하나인 만큼, 부정의(不正義) 한 짓에 대한 응징”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상하 명령복종과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이고, 그래서 부정의 한 짓을 부정의 한 짓이라고 입에도 못 올렸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한국이 부정의 한 짓을 그냥 넘기거나 아니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고발정신마저 사라진 탓이라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 폭력에 맞닥뜨릴지 모르니 그냥 잠자코 모른 체 넘어가자는 식으로 우리는 지금 악이 일상화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는 “세상 온갖 곳에서 악이 일상화되고 보니, ‘어디 부정의 한 일이 여기뿐이냐’하고 그냥 쉬쉬 넘어가는 거 아니겠느냐”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공익제보자 김용환씨와의 만남
기자는 참여연대를 통해 대한적십자의 부실한 혈액관리를 세상에 알린 김용환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적십자사 서울서부혈액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김씨는 2003년 9월 적십자의 혈액사업본부가 에이즈와 B·C형 간염, 말라리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 등을 아무런 확인 없이 무분별하게 채혈하고 있으며, 이러한 혈액이 의약품 제조용이나 환자 수혈용으로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는 이 사실을 먼저 조직 내부에 알렸으나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언론에 알렸지만 적십자사는 내부고발자를 색출했고 노조 역시 회사 손을 들어줬다.
그해 12월 에이즈 관련 업무상 기밀유출로 김씨는 적십자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게 된다. 하지만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해고는 철회됐다. 이후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하게 되고 김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 당시 서영훈(徐英勳) 총재와 혈액사업본부장, 수혈연구원장 등 관련인사가 사직 및 해임됐다.
내부고발로 조직이 크게 흔들렸지만 혈액에 대한 정부의 관리대책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게 됐다는 점은 긍정적인 효과다. 보건복지부가 혈액사업 선진화 방안으로 적십자사에 5년간 4300억원을 지원하게 됐다. 내부고발로 돈벼락을 맞은 셈이다.
김씨는 UN 산하 국제투명성기구가 수여하는 ‘투명사회기여상’을,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가 수여하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김씨가 복직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된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복직 과정에서 지리한 진실공방을 회사와 벌여야 했는데 뒤돌아보면 참 피곤한 충돌의 시간이었습니다. 언론에서 공익신고자를 다룰 때 별 생각 없이 ‘내부고발했더니 노숙자가 됐다’는 식으로 써요. 그러면 잠재적 제보자가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표현을 신중하게 해야 해요. 돌이켜보면 그래도 용기 낼 가치가 있는 고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내부고발자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다. 타 직장에서 내부고발이 벌어지면 조직이 나쁘다고 욕하지만, 내 직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고발자를 ‘죽일 놈’하고 욕한다”고 했다.
“고발을 했다가 해고를 당하면 복직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경제적 어려움이 상당합니다. 거액의 소송비도 직접 부담해야 하고요. 공익제보자를 위한 기금(基金)을 마련해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를 정부에서 고민해 줬으면 합니다. 기금을 운영하면 최저생활비라도 보장되지 않겠습니까.”
김씨는 이후 ‘공직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의 대표로 활동하며 내부고발자를 뒤에서 조용히 후원하는 역을 맡아왔다.
“몇 번 정치권에서 제의가 왔었고 인수위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고사했습니다. 다수의 공익제보자에게 혹시나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공익제보를 이용해 출세를 한다거나 출세에 활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제보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해선 안 된다고 봐요. 그래야 양심이 떳떳해집니다. 추석 전, 권은희 의원실에서 점심 먹자는 연락이 왔으나 거절했어요. 괜한 정치적 오해를 받기 싫었어요.
역으로 정치권에도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정치인들이 정치 목적으로 (내부고발자를) 이용해선 안 된다고요. 만약 제가 정치권에 갔다면 ‘저놈 고발하더니 어딜 가더라’는 말을 들을 게 뻔해요. 내부고발로 유명해진 분 가운데는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이도 더러 있었습니다.”
—앞으로 꿈이 뭔가요.
“적십자사에서 정년을 마치고 싶습니다. 공직자를 상대로 외부강연도 하지만 제가 몸담은 조직의 간부 중에는 여전히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있어 그게 안타까워요. 정년 후에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시각과 문화를 바꾸는 일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한 달 가까이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 어떻게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어떤 자료를 요청하며 어떤 확인절차를 거치는지 지켜본 결과, 기자가 내린 결론은 검증실력보다 무차별적 자료 요구로 걸려들지 않을 공직자가 없을 것이란 점이다.
공직후보자와 배우자, 직계 존비속의 최근 20년간 경범죄처벌법, 도로교통법 위반 범칙금 및 과태료 납부내역은 기본이고, 부동산 투기 여부(거주 목적 이외의 주택 또는 분양권 보유, 용도불명 비연고지 토지 보유, 분양권 불법전매 등), 재산신고에 있어서의 축소·불성실한 신고 및 주식백지신탁 의무 이행 여부 등을 검증하기 위한 수많은 자료 제출 요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한방’은 공직후보자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주변 사람의 내부고발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이었다. 주변 사람이란 동료나 친척, 공직경쟁자·경쟁부서, 직속부하를 말한다. 오죽하면 “가장 큰 적은 내 주변에 있다”는 말이 나왔을까.
가까운 주변에 의한 ‘존경 철회(withdraw of respect)’ 현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쏟아지는 투서와 의혹제기, 진정을 모두 ‘공익(公益)제보’로 봐야 할까. 혹시 그중에는 시기와 질투, 사심(私心)이 개입된 의혹제기는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에 달려 있다. 불신사회에선 정도(正道)를 걷는 이들의 성공 확률이 줄어드는 경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도를 벗어나 비정상적인 우회로를 택했던 이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우회로를 택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가 ‘주변 사람’이다.
한국은 좁은 국토와 극심한 도시인구 밀도를 지닌 나라다. 좁은 고위공직자의 문턱을 넘기 위해선 ‘남을 짓밟는’ 경쟁을 거쳐야 한다. 경쟁이 격해질수록 ‘너와 내가 다를 게 없다’는 평등주의가 생기고, 존경 철회가 생긴다. 높은 경쟁밀도는 경쟁관계의 개인 간, 내부조직 간 접촉빈도를 높이고 성공과 실패의 대가(代價)가 얼마나 냉혹한지 각인시킨다. 이 과정에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式) 매터도(흑색선전)가 생기고 폭로의 적개심이 표출된다.
고위공직자의 잇단 낙마는 그들 자신의 결점이 원인이지만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무겁다. 청문회와 공직인사철에 쏟아지는 투서와 제보, 매터도를 넓은 의미의 ‘공익제보’로 인식할 만큼 한국 사회가 성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의 낙마가 던지는 무거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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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9일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선서를 하고 있다. 각종 의혹제기로 낙마했다. |
“야당 시절이었는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그와 깜짝 놀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악의적 관계라고 할 만한 분이 아니었어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고 봐야 할지, 공사(公私)를 떠나 정의감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지금도 누군지 공개할 순 없어요.
지난 6월 김명수(金明洙) 교육부 장관 청문회 때도 제자가 언론사에 스승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칼럼·특강원고 대필과 수업도 제자에게 맡겼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어요. 한 주간지에 ‘교육부 장관 후보자께 제자가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공개편지가 실리기도 했고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지만 제자의 행동이 용기 있는 행위라는 시각도 나옵니다.”
교육학 박사이기도 한 황 보좌관은 국회의 검증실력에 대해 “국회 보좌관들의 전문성이 과거보다 크게 향상됐다. 과거엔 보스 정치인을 위해 돈을 만들고, 기자와 술 마시는 보좌관이 많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퇴출됐다”고 귀띔했다.
국회의원 보좌관 12년차인 새누리당 주영순(朱永順) 의원실 이종우 보좌관은 “다운계약서, 주소지 이전과 같은 산업화 시대의 관행들이 청문회에서 모두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장관이 되려면 숨만 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투서의 내용대로라면 대개의 고위공직자들은 가톨릭 사제(司祭) 같은 도덕성이 아니면 청문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 국회의원실마다 최소 2명의 보좌진이 검증에 참여한다고 볼 때, 여야 청문위원이 15명이라면 30명이 달라붙어요. 청와대 인사팀이 몇 명이나 됩니까. 국회에서 마음먹고 달려들면 못 할 것이 없어요.”
투서는 내용이 엄밀해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투서자의 신분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투서자를 불러 물어볼 수도 없고 오로지 투서 내용에 기초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선임 행정관으로 3년간 근무했던 새누리당 최경환(崔炅煥) 의원(現 경제부총리)의 박재홍(朴在鴻) 보좌관은 “예를 들어 특정업체를 봐줬다는 투서가 계좌에서 드러나면 모를까 드러나지 않으면 갑갑해진다. 그래서 투서로 시작하는 수사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정의감에서 제보를 하는 비율이 몇 %나 될까요? 인사검증을 하면서 느끼는데, 자기 이익하고 연관되니 폭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처럼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선 음해성 투서도 많아요. 한 사람이 잘나가면 주변의 시기나 질투가 많으니까 작은 잘못도 부풀려 퍼지고 말이죠.
특히 본인에 대한 소문과 평가는 실상 본인을 가장 잘 아는 주변 사람에게서 대부분 나옵니다. 그러므로 평소 주변인을 잘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박 보좌관은 “청와대 시절, 공직후보자를 검증할 당시 조직 내 동료나 부하직원, 상사 등을 대상으로 여론을 청취하면서 뜻밖의 수확을 거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 후보자가 불도저마냥 밀어붙이는 업무스타일이라면 주변의 평가는 양쪽으로 나뉜다.
“한쪽은 책임감이 강하고 추진력이 탁월하다고 하겠지만 다른 한쪽은 자신의 승진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특히 경쟁자나 경쟁부서에 있는 이들로부터 인색한 평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청하는 리더십이 있는 후보자도 마찬가지죠. 보기에 따라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역으로 ‘귀가 얇다’ ‘추진력이 없다’는 얘기가 나와요.”
“투서자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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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공직후보자에 대한 투서나 제보가 야당 국회의원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고 한다. 8월 25일 권순일 대법관후보자 청문회에서 새민련 김관영 의원이 부동산 투기 등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
박재홍 보좌관은 “제보나 투서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해당 공직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일 못하는 부하직원의 결점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는 안목도 리더의 자질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한 공직자는 부하직원이 결재를 받으러 오면 내용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더라도 결재 후에 반드시 부하직원의 부인이나 가족의 안부를 꼭 물었어요. 그리고 부하직원의 가정에 애로사항이 있으면 자신의 일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또 부하직원이 부부싸움이 잦아 이혼 얘기가 떠돌자 직접 해변 콘도를 잡아주면서 부하직원 부부 둘만이 2박3일 동안 여행을 가게 주선해 두고두고 공직사회에 회자했어요.”
보통 소문의 진원지는 술자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모 장관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당시 “술 먹고 늦게 출근한다” “술집 마담과 정분이 났다”는 제보가 국회에 집중적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제보나 투서는 확인하기 곤란하지만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어서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그래서 단골술집이 소문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말이 있다. 총무처 장관과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지낸 이상배(李相培)씨의 말이다.
“나와 상관없는 소문이라고 외면할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여러 평판(評判)을 적극 관리해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평판 관리의 핵심은 개개인의 일관성과 곧은 가치관입니다. 이런 덕목을 갖춘 공직자는 조직 내에 일어나는 소문과 견제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겁니다.”
박지원, “청와대 내 ‘딥 스로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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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8월 19일 ‘국정원 댓글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청문회’에 출석한 민병주 전 심리정보국장(왼쪽부터),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 등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이 가림막 뒤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 |
‘15억5000만원의 채권자’ 박경재씨와 천 후보자의 관계, 후보 부인의 해외여행 때마다 고급 명품을 사들였다는 폭로도 그의 입을 통해서다. 당시 검찰은 천 후보자의 명품쇼핑 관련 정보를 제공한 관세청 직원을 조사하기도 했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마당발로 알려진 그의 정보력은 정치권에서 여러 번 화제가 됐다. “개인 모임에 나갈 때는 수행비서나 운전기사도 미리 장소를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뭉스럽다. 김대중(金大中)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거치며 정부부처에 널리 퍼진 호남 인맥을 각별히 챙겼고 이들을 통해 정보를 획득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나왔다. 그러나 박 의원은 “호남 출신 공직자들은 생존에 바쁜 인물들로 우리랑 잘 만나지도 않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국정원 창설 이후 최악의 사건 댓글사건은 국정원 전직 간부 김상욱씨(1990년 1월 국정원에 입사해 2009년 퇴직한 후 민주당에 입당했다)가 야당에 제보하면서 불거졌다. 박 의원과 김씨는 인연이 두텁다. 박 의원은 “김씨가 DJ 정부 출범에 공헌했는데 그 뒤에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말해 이전 정권부터 딥 스로트였음을 암시했다.
김씨의 저서 《김상욱의 희망만들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안기부를 방문해서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친구 잘 있느냐’고 물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박 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 시절인 2011년 1월에는 “청와대 내 ‘딥 스로트’가 있다”고 말해 MB정부를 자극하기도 했다.
새민련 강동원(姜東遠) 국회의원의 보좌관인 김현목씨는 경력 25년차다. 그는 “공직후보자에 대한 투서나 제보도 공익제보의 일종”이라고 주장한다.
“국무위원과 같은 고위공직자는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어요. 청문회에 쏟아지는 제보를 경쟁자에 의한 내부 밥그릇 싸움이나 조직 이기주의로 봐선 곤란합니다. 후보자에게 공식경로를 통해 자료를 요구하면 숨기거나 거짓 가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결정적인 제보 하나가 공직사회에 만연된 비리를 차단하는 긍정적 효과를 지닙니다. 청와대가 제대로 사전에 검증을 안 하니까 우리가 대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는 “공익제보자의 신상을 철저하게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야당에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투서가 신빙성이 있는지 검증절차를 거치되 그저 말만이 아니라, 자료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하려 합니다. 허위사실이라면 나쁘지만 ‘사감’이라는 동기가 있다고 해도 투서내용이 ‘팩트’라면 넓은 의미에서 공익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김 보좌관은 “인사청문회를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으로 2원화하되 사생활 부분은 별도로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걸러낼 사안도 한국은 다 건너뛰고 국회로 넘어오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제보나 투서 내용이 완벽하게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보복감정이나 사적 이익추구를 위한 제보도 원칙적으로 보호받아야 할까. 최근 한국부패학회 논문집에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의의와 개선방안에 관한 소고>를 기고한 청주대 법학과 조한상(趙漢相) 부교수는 “사회적 의의가 있는 공익침해에 관한 신고는 그 행위 자체로만 판단해야지 그 목적은 불문(不問)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제보자의 사적 의도나 진실성을 가리는 과정에서 인권침해의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공익을 위한 고발자 보호제도의 취지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에 ‘윤리성’이란 항목은 ‘부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조한상 교수는 “공익신고를 한 사람이 윤리적이 아니라고 해서 제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입법 목적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범죄인도 자신의 범죄사실을 시인하고 수사에 협조하면 그 죄를 감면하자는 의견이 많은데(플리바게닝), 공익신고를 한 사람이 윤리적이 아니라고 보호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 아닐까요?”
—내부고발의 윤리성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공익신고를 통해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공익신고를 한 사람이 불순한 의도를 가졌다고 비난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조사 또는 수사기관은 공익신고자 내면의 의도를 캐묻고 심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익신고자의 양심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도 높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익신고의 경우 일정 정도의 진실성은 요구해야 하겠지만 윤리성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부고발의 진실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투서내용이 진실하지 않을 때도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야 할까. 또 일부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일 때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공익신고자보호법(제2조)에는 ‘신고내용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익신고를 한 경우’에는 공익신고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투서자가 진실로 믿고 오로지 정의감에서 고발할 수도 있다. 조 교수는 “내부고발자가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여 무조건 보호하지 않는 것도 (내부고발자에게) 가혹하며 공익신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 인사청문회와 자료요구 百態 청문회 때 국회 청문위원들은 공직후보자들에게 어떤 자료를 요구할까. 기자가 입수한 정종섭(鄭宗燮) 안행부 장관 청문자료를 분석해 보니,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짧은 청문기간 동안 후보자가 어떻게 자료를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니 부처 공무원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장관에게 요구한 자료 가운데는 후보자의 인생관 및 철학관, 국가관, 사회관, 직업관, 좌우명, 존경하는 인물(국내외 각각 선정 및 그 이유), 후보자 및 배우자의 종교·소속 종교단체명·직위, 후보자가 법인카드를 사용한 기간이 있다면 그 사용내역(해당 카드의 소유 법인명·지급액·지급처·날짜·시간 포함), 후보자 자녀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좌의 입출금 거래내역과 그 재산 형성 경위를 밝히라는 말도 있었다. 심지어 후보자와 배우자의 최근 10년간 연도별 재산신고 내역 및 그 재산증가액이 5000만원 이상일 경우와 그 사유에서 후보자·배우자 및 자녀의 대학교 학적부, 성적증명서 사본은 물론 초·중·고교 생활기록부 사본까지 다양했다. 또 최근 10년간 언론사, 교육계, 학계, 국회 등에서 주최한 공개토론회에 발제 또는 패널 토론자로 참석한 내역 및 각 참석 토론회별 발제문 또는 토론문 사본까지, 시시콜콜한 것에서 사생활의 일부까지 각종 자료가 수백에서 수천 페이지가 넘었다. 이런 엄청난 자료요구에 설령 제때 답변자료를 국회에 보낸다 해도, 짧은 청문기간을 감안하면 제대로 분석할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다. 취재 중 만난 한 국회 보좌관의 솔직한 고백이다. “청문회 준비는 부처 공무원이 나서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모셔야 할 상관인데다 청문회를 통과하면 측근 라인이 되니까요. 청문회 기간, 모든 부처 공무원이 매달려 다른 업무를 볼 수가 없어요. 후보자가 일일이 모든 자료를 챙길 수 없으니 정무감각이 떨어진 교수나 외부에서 온 후보자는 부처 공무원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할 수밖에요.” 이 보좌관은 이런 말도 했다. “후보자의 주민번호, 계좌번호, 은행잔고, 가족관계 증명서, 학위기록, 인사기록카드 등 수천~수만 페이지의 일평생 기록이 국회에 전달되는데,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이 자료더미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눈여겨봐야 해요. 의원실에 대형 파쇄기가 있다지만 대개는 귀찮아서 그냥 버리거든요. 청소하는 분들이 대신 파쇄한다지만 얼마나 꼼꼼하게 파쇄하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소득세법·농지법 등 50여 개 개별법 알아야 검증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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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한 공직후보자가 답변참고 자료를 싼 보자기를 풀어놓고 있다. |
정 전 총리는 지난 8월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세미나에 참석, 인사청문회 당시를 떠올리며 “마치 피고석에서 전과 유무를 추궁당하는 느낌이었다. 구석구석 털어서 죄인을 만들자는 자리였다”고 회고했다.
당시 정 전 총리가 “나는 부선망(父先亡) 독자여서 군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야당 청문위원들은 줄곧 의혹만 외쳤다. 어떤 비전으로 국정을 이끌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逆說的)인 사실은 당시 병역의혹을 제기한 야당 청문위원 5명 중 3명이 병역 미필자(면제자)라는 사실이었다. 정 전 총리는 “내 병역 기피 의혹을 질타하며 법을 지키라고 외친 청문위원은 바로 다음날 의원 자격이 박탈됐다”며 허탈해했다. 당시 청문위원이던 민주당 김종률(金鍾律) 의원이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 확정판결을 받은 것을 일컫는 것이다. ‘제 눈에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티끌을 탓’한 셈이다.
정 전 총리는 언론에 대해서도 “병역 기피나 부동산 다운계약서와 관련해 근거가 없거나 논리가 박약한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며 사퇴를 종용한 언론도 있었다. 이제 받아쓰기 기능에서 벗어나 언론이 ‘진짜 검증’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실상 투서는 확인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떨어진다. 야당 청문위원 역시 이 사실을 알지만 검증이 어렵고 짧은 청문회기를 감안, 헛발질 폭로라도 밀어붙이는 사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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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쌓여 있는, 의원들에게 배포할 청문회 자료들. |
“사실과 다르다”는 서울대의 반박이 이어지자 박 의원은 “제보라는 게 거짓말이나 역정보도 많아 헛발질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사과했다. 진보학자인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마저 “완전 오보”라고 확인하는 바람에 박 의원은 체면을 구겼다. 한나라당은 박·이 의원의 사과와 상관없이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인사검증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후보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를 고의 누락하거나 유리한 자료를 거짓제출 한다 해도 짧은 청문기간 내 찾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인사검증에 참여했던 박재홍 보좌관의 말이다.
“주요 8대 검증항목(농지법 위반·투기 등 재산형성과정, 병역, 세금탈루, 범죄경력, 논문표절, 이중국적, 위장전입, 사회적 지탄)을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선 법률에 대한 기본지식과 검증잣대가 될 소득세법·농지법·국토계획법·주택관련법 등 50여 개의 개별법에 정통해야 합니다. 청와대나 관련 부처도 못 밝혀낸 불법을 청문위원과 보좌관이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엽적인 사안만 물고 늘어지죠.
또 검증항목의 시간적 소급문제도 주먹구구식이에요. 검증기간을 5년 전으로 할지, 10년 전으로 할지, 평생기간으로 할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청문회장에서 기억도 안 나는 후보자의 20~30년 전 다운계약서나 탈세·논문표절을 추궁하니, 질문을 하는 청문위원이나 받는 후보자나 갑갑하긴 마찬가지죠.”
그나마 총리나 장관의 검증은 당 공천후보자 검증보다 수월하다. 당에서 총선 시 각 선거구별로 3배수씩 검증한다고 가정하면 약 900명의 후보자를 시간 내 검증해야 한다. 박 보좌관은 “검증직원 10명이 하루 3명씩 한 달(10×3×30)을 꼬박 밥도 안 먹고 매달려야 900명을 다 조사할 수 있다”며 “검증만 하다 공천을 못 할 수 있다. 당 공천 과정의 검증소요 인력과 시간확보 문제에 대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전직 청와대 인사 “인사철 검찰은 매터도 경연장”
내부고발의 윤리성 문제를 좀 더 들여다보자. 정권 말기 권력누수 현상의 대표적 예가 국정원과 검찰의 ‘정보 상납’이다. 특정 정당 대선후보에게 건네지는 ‘보험용’ 내부고발을 어떻게 봐야 할까.
또 권력자의 인사를 앞두고 나오는 비방성 ‘평판’을 어느 선까지 진실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명박(李明博) 정부 당시 검찰총장 인선 과정에서 흑색선전이 난무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검찰총장 후보자 검증이 시작되자 청와대에 각종 음해성 제보와 진정서가 잇따랐어요. 후보자들은 물론, 후보자 라인의 검찰인사들까지 가세해 상호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 막판 인사검증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때 청와대 내부에서 ‘대한민국은 투서, 매터도 공화국’ ‘만인 대(對) 만인의 투쟁’ ‘매터도 경연장’이라는 탄식이 나왔겠습니까.”
—당시 제보나 진정서가 검찰 내부에서 터져나왔던 건가요?
“외부에서 알 수 없는 내용이니까요. 심지어 인사가 임박하자, 막판 뒤집기를 하려는 듯 아주 구체적인 시간과 날짜, 장소가 적힌 장문의 투서가 들어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검증에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런 매터도 기류를 감지하고 대책을 논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투서는 보통 어떤 유형인가요?
“대개가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것은 오히려 확인하기가 쉬워요. 향응 접대를 받았다, 여자관계가 복잡하다, 그림이나 보석 같은 뇌물을 받았다, 실세에게 줄을 댔다는 것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펄쩍 뛸 뿐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해명이 석연치 않으면 존안자료에 ‘~설(說)’이 있다고 기록으로 남기지요.”
올바른 행위(내부고발)와 제보자가 얻게 되는 이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언뜻 보면 윤리와 비윤리가 중첩돼 보인다.
다시 말해, “올바른 행위라도 이익을 얻지 못하면 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현실론적인 견해도,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올바르기 때문이지 다른 어떤 이유는 없다”는 당위론도 나온다. 정답은 개인의 양심에 달려 있다. 그 양심은 사법당국의 조사에 의해서도 찾아내기 불가능하다. 오직 자신만이 떳떳하게 답할 수 있다.
지난 7·30 재보선에 새정치연합 후보 중 권은희 의원(前 서울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과 백혜련 변호사가 있다. 두 사람은 ‘내부고발자’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권 의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사건 수사 때 은폐 의혹이 있다며 폭로했고, 백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글을 남기고 검사직을 떠났었다.
두 사람은 야당으로부터 양심과 용기를 가진 ‘의인(義人)’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정계 입문설을 부인하다가 결국 야당의 전략공천을 받고 출마했다. 권 의원은 ‘안전빵’인 광주광역시 광산을에 출마, 당선됐으나 수도권(경기 수원을)에 나선 백 변호사는 고배를 마셨다.
이를 두고 여당은 연일 “거짓 폭로의 대가에 따른 보은(報恩) 공천”이라며 공격했다. 새누리당 윤상현(尹相現) 사무총장은 “권은희 의원은 경찰의 명예를 팔아서 국회의원 자리를 얻으려고 했느냐. 공직자의 거짓 폭로 대가로 의원 자리를 만들어주는 새정치연합은 대체 뭐냐”고 따졌다.
반면 권 의원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실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야당 내부에서도 “권 의원의 양심선언들이 이번 공천을 통해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다”(趙慶泰 최고위원)는 말들이 돌았다.
그런데 권 의원의 경우 내부고발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법원의 판결이 다르다. 이 때문에 권 의원은 위증 혐의로 고발을 당해 조사를 받을 처지에 있다.
내부고발 침묵하면 범죄은닉죄?
청주대 법학과 조한상 교수는 “공익신고자의 선거출마 문제는 공직선거법에서 피선거권 요건으로 제한하지 않는 이상 유권자가 판단할 몫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선거야말로 공직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완비된 과정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그릇된 공익신고를 한 사람도 출마하지만, 그보다 더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출마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이상 그에 대해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자유위임의 원칙) 중 하나가 아닐까요? 물론 법원을 통해 범죄가 확정되고 그것이 공직선거법상의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기자는 《윤리란 무엇인가 묻고 생각하다》의 저자인 전북대 윤리교육과 최용철(崔容哲)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최 교수는 “‘공직 윤리’는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엄정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가령 부적절한 남녀 관계를 맺었던 한 사람이 공직(예를 들어 대통령)을 수행할 기회를 가졌다고 해봅시다. 그 사람은 공직 기회가 찾아왔다고 해도 스스로 반성하고 그만둬야 합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 반성하고 공직에 취임하지 않아야 함에도 취임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내부고발을 (합리화가 아니라) 정당화하는 빌미가 될 겁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래서 나온 개념이 아닐까요?”
최 교수는 “‘가까운 사람’은 개인관계를 일컫는 용어이지, 공공생활에서 쓸 말은 아니니, 공직자의 친구는 물론 형과 아우마저도 불미한 점이 있다면 들춰내야 한다. 들춰내지 않는 것은 ‘범인은닉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한국처럼 오랜 가부장제와 군사문화에 찌들어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내부고발은 더욱 절실합니다. 공공생활에서 일상화된 무분별한 명령복종 관계와 폭력 사용은 이제라도 물리쳐야 할 ‘악(惡)’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물리쳐야 할 악이 무엇인가 분명하지 못해 내부고발을 악으로 여기는 풍토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최 교수는 “내부고발은 본디 ‘고발’ 중 하나인 만큼, 부정의(不正義) 한 짓에 대한 응징”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상하 명령복종과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이고, 그래서 부정의 한 짓을 부정의 한 짓이라고 입에도 못 올렸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한국이 부정의 한 짓을 그냥 넘기거나 아니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고발정신마저 사라진 탓이라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 폭력에 맞닥뜨릴지 모르니 그냥 잠자코 모른 체 넘어가자는 식으로 우리는 지금 악이 일상화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는 “세상 온갖 곳에서 악이 일상화되고 보니, ‘어디 부정의 한 일이 여기뿐이냐’하고 그냥 쉬쉬 넘어가는 거 아니겠느냐”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 내부고발과 공익신고 ‘내부고발’이라는 말은 배신자(背信者), 밀고자(密告者)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용어가 갖는 부정적인 정서는 고발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많았다. 2001년 부패방지법 제정 이후부터 ‘조직을 배신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는 취지에서 ‘공익신고자’라는 표현을 쓰게 됐다. 2011년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제정되면서 공익신고라는 말이 공식적인 법률용어로 채택됐다. 이것은 영국의 공익제보법(Public Interests Disclosure Act, 1998), 일본의 공익통보자보호법(2004) 등 국제적 선례와도 부합한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시행 후 2013년 7월 말까지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공익침해사건은 총 2720건이었다. 이 중 건강 분야가 868건(32%)으로 가장 많고 환경 분야 318건(15%), 소비자 이익 분야 271건(10%), 공정경쟁 분야(3%) 순이었다. 월 평균 공익신고 접수는 2011년 월 평균 89건, 2012년 96건, 2013년 162건(행동강령을 포함한 부패신고 건수는 265건)으로 증가추세를 보였다. 법 시행 이후 내부고발에 편견이 무뎌지고 있다는 의미다. |
공익제보자 김용환씨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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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십자사의 부실한 혈액관리 실태를 고발한 김용환씨. |
김씨는 2003년 9월 적십자의 혈액사업본부가 에이즈와 B·C형 간염, 말라리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 등을 아무런 확인 없이 무분별하게 채혈하고 있으며, 이러한 혈액이 의약품 제조용이나 환자 수혈용으로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는 이 사실을 먼저 조직 내부에 알렸으나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언론에 알렸지만 적십자사는 내부고발자를 색출했고 노조 역시 회사 손을 들어줬다.
그해 12월 에이즈 관련 업무상 기밀유출로 김씨는 적십자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게 된다. 하지만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해고는 철회됐다. 이후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하게 되고 김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 당시 서영훈(徐英勳) 총재와 혈액사업본부장, 수혈연구원장 등 관련인사가 사직 및 해임됐다.
내부고발로 조직이 크게 흔들렸지만 혈액에 대한 정부의 관리대책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게 됐다는 점은 긍정적인 효과다. 보건복지부가 혈액사업 선진화 방안으로 적십자사에 5년간 4300억원을 지원하게 됐다. 내부고발로 돈벼락을 맞은 셈이다.
김씨는 UN 산하 국제투명성기구가 수여하는 ‘투명사회기여상’을,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가 수여하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김씨가 복직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된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복직 과정에서 지리한 진실공방을 회사와 벌여야 했는데 뒤돌아보면 참 피곤한 충돌의 시간이었습니다. 언론에서 공익신고자를 다룰 때 별 생각 없이 ‘내부고발했더니 노숙자가 됐다’는 식으로 써요. 그러면 잠재적 제보자가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표현을 신중하게 해야 해요. 돌이켜보면 그래도 용기 낼 가치가 있는 고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내부고발자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다. 타 직장에서 내부고발이 벌어지면 조직이 나쁘다고 욕하지만, 내 직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고발자를 ‘죽일 놈’하고 욕한다”고 했다.
“고발을 했다가 해고를 당하면 복직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경제적 어려움이 상당합니다. 거액의 소송비도 직접 부담해야 하고요. 공익제보자를 위한 기금(基金)을 마련해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를 정부에서 고민해 줬으면 합니다. 기금을 운영하면 최저생활비라도 보장되지 않겠습니까.”
김씨는 이후 ‘공직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의 대표로 활동하며 내부고발자를 뒤에서 조용히 후원하는 역을 맡아왔다.
“몇 번 정치권에서 제의가 왔었고 인수위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고사했습니다. 다수의 공익제보자에게 혹시나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공익제보를 이용해 출세를 한다거나 출세에 활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제보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해선 안 된다고 봐요. 그래야 양심이 떳떳해집니다. 추석 전, 권은희 의원실에서 점심 먹자는 연락이 왔으나 거절했어요. 괜한 정치적 오해를 받기 싫었어요.
역으로 정치권에도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정치인들이 정치 목적으로 (내부고발자를) 이용해선 안 된다고요. 만약 제가 정치권에 갔다면 ‘저놈 고발하더니 어딜 가더라’는 말을 들을 게 뻔해요. 내부고발로 유명해진 분 가운데는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이도 더러 있었습니다.”
—앞으로 꿈이 뭔가요.
“적십자사에서 정년을 마치고 싶습니다. 공직자를 상대로 외부강연도 하지만 제가 몸담은 조직의 간부 중에는 여전히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있어 그게 안타까워요. 정년 후에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시각과 문화를 바꾸는 일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