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진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서울시장 선거비용 자료 분석 : 월간조선

지난 8월 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앞서 6월 4일 치른 지방선거의 후보자들에게 선거비용 보전액 지급을 마쳤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광역단체장 후보 중 선거비용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김진표(金振杓)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 총 41억원을 썼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남경필(南景弼) 경기도지사(새누리당)=35억2800만원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새정치민주연합)=33억7400만원 ▲정몽준(鄭夢準) 전 의원(새누리당)=30억500만원 등이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박원순 시장의 선거비용이다. 박 시장은 경쟁자였던 정몽준 전 의원보다 3억7000만원을 더 썼다.

당초 두 사람은 광역단체장 후보 재산 순위에서 각각 1등과 꼴등을 차지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정 전 의원은 2조원대의 재산을 가진 ‘갑부’다. 최근 5년간 낸 소득세·재산세만 해도 463억원에 달한다. 정 전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선거비용으로 쓴 30억원을 자비로 충당했다.

박원순 시장은 순채무가 ‘6억8600만원’이다. 선거비용 전액을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같이 ‘박원순 펀드’를 출시할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이에 박 시장은 5월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에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긴 지금 애도 분위기에 맞게 작고 조용하고 돈 안 드는 선거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朴元淳, 유세차·勢동원·네거티브 없는 ‘3무(無) 선거’ 제안

지난 6ㆍ4 서울시장 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정몽준 전 의원은 국내 수위의 대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이면서 2조원대의 주식을 가진 ‘갑부’다.

박 시장은 “유세차와 사람들을 억지로 동원하는 선거는 시름에 잠긴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한다”며 “유세차 없는 선거를 제안한다. 요란하게 세(勢) 과시하지 않는 선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조용하고 반성하는 선거를 제안한다. 돈 안 드는 선거를 제안한다”며 “유세차와 세 과시만 없어도 선거비용을 확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부터 시작하겠다. 이번 선거부터 과거와 결별한 새로운 선거를 하겠다”며 “유세차량 없애고, 사람 동원해 ‘세’를 과시하는 선거운동을 하지 않겠다. 선거비용은 확 줄이고 시민들의 참여와 봉사로 이뤄진 가장 작은 선거조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박원순 선거대책본부(캠프)는 사무실을 종로5가역 광장시장 옆에 있는 철거예정 건물로 정했다. 사무실 안에 비치한 책상은 문짝을, 평상은 폐목재를 재활용한 것이다.

또 박원순 캠프는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하루 앞둔 5월 21일에는 ‘조용한 선거’를 실현하기 위해 ▲유세차·마이크·어깨띠 ▲세 동원 ▲네거티브 등 세 가지가 없는 ‘3무(無) 선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원순씨의 현장캠프 ▲원순씨의 배낭 ▲원순씨의 스케치북 등을 통해 시민 곁에 다가가는 선거운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장캠프는 박 시장이 하루에 3~ 4개 자치구를 돌며 시민과 대화하고 권역별 정책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선거운동이다. ‘원순씨의 배낭’과 ‘스케치북’은 배낭을 멘 박 시장이 수행원 1~2명을 데리고 재래시장 등을 찾아 시민과 ‘소통’하고, 시민들은 그가 가지고 다니는 스케치북에 희망사항을 그린다는 것이다.

배낭을 메고 시내 곳곳을 걷는 유세는 박 시장이 직접 제안했다. 박 시장은 선거운동 첫날인 5월 22일 “선거운동이 앞으로는 이렇게 가야 한다. 이런 게 새 정치, 새로운 선거운동”이라고 했다.

박 시장은 선거운동 마지막 날까지 ‘조용한 선거’ 기조를 강조했다. 그는 6월 3일 “작고 조용하고 네거티브 없는 선거, 이번 선거에서 그 원칙을 나름대로 지키려 했다”고 언급했다. 유세 마무리 연설도 ‘조용한 선거’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이크 없이 했다.

이처럼 박 시장은 ‘작고, 조용한 선거’를 치렀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그의 캠프는 정몽준 캠프보다 선거비용으로 3억7000만원을 더 썼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에 《월간조선》은 박원순과 정몽준, 두 사람이 선관위에 신고한 373쪽 분량의 ‘선거비용 지출 내역’을 분석했다.

朴, ‘勢 동원 없는 선거’ 외쳤지만 실상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5월 12일 국회를 방문해 새누리당 측에 “작고, 조용하고, 돈 안 드는 선거를 하자”고 제안하면서 “나부터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인건비부터 살폈다. 여기서 인건비란, 선거사무 관계자들에게 지급하는 수당이나 실비를 말한다.

정몽준 캠프의 경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와 서울 시내 48개 지역구 소재 선거연락소에서 선거운동원들에게 수당과 실비를 지급했다. 선관위 신고 내역에 따르면 이들에게 인건비로 지출한 금액은 총 5억4800만원이다. ‘세’를 불리는 데 하루에 3900만원을 쓴 셈이다. 선거운동원 일당이 7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정몽준 캠프의 1일 평균 선거운동원 수는 557명이다. 이는 서울 시내 지역구 선거연락소(48개)별로 12명 정도를 배치할 수 있는 인원이다.

박원순 캠프 인건비도 정몽준 캠프와 거의 비슷한 총 5억6100만원이다.

앞서 본 것처럼 박 시장은 지난 5월 “나부터 시작하겠다. 선거비용은 확 줄이고 시민들의 참여와 봉사로 이뤄진 가장 작은 선거조직을 만들겠다”면서 ‘작고, 조용하고, 돈 안 드는 선거’를 제안했었다.

하지만 막상 ‘조직관리’에 쓴 돈은 박원순 캠프가 정몽준 캠프보다 조금 더 많다. 정확한 조직규모는 파악할 수 없으나, 인건비만 보면 박원순 캠프가 사람도 더 많이 동원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도 박 시장은 선거운동 기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 동원’ 문화를 비판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선거문화’에 대해 강조했다.

통신사 《뉴시스》에 따르면 박 시장은 지난 6월 2일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을 찾아 출근길 유세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하철역 입구에 도열해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방식에 대해 “여기서 외치면 약장수밖에 더 되느냐? 우리가 세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조용히 혼자 가면 뭐라도 하려 하고, 나도 뭔가 말할 수 있는데, 이렇게 서 있으면 누가 오겠느냐”고 비판했다.

朴 캠프, 2400만원 들여 버스 운행… 사실상 유세차량 이용

다음은 ▲차량 임차료 ▲장식비 ▲발전기 ▲유류비 등 ‘유세차량 비용’이다. 정몽준 캠프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버스와 트럭, 경차를 유세차량으로 이용했다. 선거연락소에서도 차량을 운행했다. 관련 비용으로는 2억5900만원을 지출했다. 박원순 캠프는 2400만원을 썼다.

박원순 캠프는 박 후보가 서울 시내 각지를 돌며 시민과 대화하고, 건의를 들을 수 있도록 임차료 1298만원을 들여 ‘45인승 버스’를 마련했다. ‘경청 버스’란 이름도 지었다.

박원순 시장이 자신의 블로그에 해당 차량을 소개한 글에 따르면 이 버스의 뒷면에는 박 시장 사진이 있다. 측면에는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 ‘오로지 시민! 오로지 서울!’ 등의 구호와 함께 박 시장의 이름, 기호 2번 등이 있다. ‘경청 버스’가 사실상 돌아다니며 박원순 시장을 선전하는 ‘유세차량’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 박원순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았던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6월 18일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박 시장이 유세차 없는 선거를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유세차를 포기하는 결정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중략)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경청 버스’라는 것을 도입하자고 했습니다. (중략) 유세차가 없는 것에 대한 홍보상의 약점을 보완해 보자는 계획이었지만 박 시장이 직접 탄 적은 없어요. (중략) 그것마저도 포기하고, ‘작고 조용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박 시장의 원칙을 관철한 것이 매우 인상 깊었어요.”

진 의원에 따르면 ‘유세 차량’을 운행하긴 했으나, 박 시장이 탑승한 적은 없기 때문에 ‘작고 조용한 선거’를 치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鄭은 잡비로 1억5100만원, 朴은 현수막에 2억2300만원

5월 3일,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을 찾아 ‘조용한 유세’를 하던, 박원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앞서 확인한 대로 인건비는 박원순 캠프가 1300만원, 차량비용의 경우엔 정몽준 캠프가 2억3500만원을 더 썼다. 두 가지 항목만 비교하면 정몽준 캠프가 2억2200만원을 더 쓴 셈이다. 그렇다면 박원순 캠프는 돈을 어디에 얼마나 썼기에, 정몽준 캠프보다 선거비용으로 3억7000만원을 더 썼던 것일까.

선관위 신고 내역에 따르면 정몽준 캠프는 방송·라디오 연설과 광고 등에 4억5400만원을 지출했다. 박원순 캠프는 이보다 1200만원 많은, 4억6600만원을 썼다.

두 캠프는 신문·인터넷 광고에도 거액을 들였다. 정몽준 캠프와 박원순 캠프는 각각 4억9500만원, 4억1000만원가량을 지출했다. 박원순 캠프가 8500만원 덜 쓴 것이다.

선거기간에는 홍보를 위해 휴대전화 문자나 전자우편을 대량으로 발송한다. 전화홍보도 필수다. 각 캠프는 이런 업무를 전문 업체에 위탁한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 당시 정몽준 측은 관련 비용으로 2억3300만원, 박원순 측은 이보다 1억3200만원 적은, 1억100만원을 지출했다. 현수막 비용의 경우엔, 박원순 캠프가 7700만원을 쓴 정몽준 캠프보다 1억4600만원 많은 2억2300만원을 썼다.

온라인·모바일 부문 홍보와 관련해선 정몽준 캠프가 1억800만원, 박원순 캠프가 5000만원을 들였다. 이 밖에 정몽준, 박원순 캠프가 선거 소품, 다과류를 사는 데 쓴 ‘잡비’가 각각 1억5100만원, 2600만원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항목을 종합하면 정몽준 캠프가 총 18억6100만원을 쓴 박원순 캠프보다 5억3300만원 많은 23억9400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썼다. 그런데 여기에 ‘벽보·공보’ 관련 지출을 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박원순 캠프, 특정 광고대행업체와 홍보물 집중 거래 눈길

박원순 시장의 사이트 ‘원순닷컴’에 올라온 ‘지도에서 보는 원순씨의 13일’. 박 시장이 선거운동원 없이 ‘조용한 유세’를 펼친 곳이라고 한다. (출처: 원순닷컴)

정몽준 캠프는 벽보를 만들고, 선거공보물을 제작하는 데 6억7100만원을 지출했다. 박원순 캠프는 이 금액의 2.3배에 달하는 15억2300만원을 썼다. 이 중 홍보물 발송비를 제외하면 총 14억6000만원이 ‘광고대행업체’ P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한 비용이다.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박원순 시장은 지방선거 당시 정몽준 전 의원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 특히 벽보와 공보물 제작·배포에 심혈을 기울였다. 벽보를 붙일 수 있는 장소는 법에 따라야 하고, 공보물을 받을 서울시 유권자 수도 정 전 의원과 같았지만, 관련 비용으로 15억여 원을 썼다.

박원순 캠프가 거액을 들여 제작한 벽보와 공보물엔 박 시장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과 함께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후보의 얼굴이 아닌 뒤통수를 보인 홍보물은 파격적이라 할 만한 것인 만큼 그 효과에 대한 논란도 컸다.

공직선거법상 후보자가 사망하거나, 당선 혹은 유효투표 수의 15% 이상을 득표했을 경우에는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을 수 있다. 득표 수가 유효투표 수의 10% 이상 15% 미만일 경우엔 선거비용의 50%를 받는다. 10% 미만은 전액 자비로 부담한다. 이에 따라 선거에 나선 유력 후보들의 선거비용은 국고로 충당해 줘야 한다.

당초 박원순 시장은 ‘작은 선거’를 제안했지만, 선거비용으로 상대방보다 3억7000만원을 더 썼다. 그가 쓴 선거비용 33억8000만원 중 27억6000만원은 ▲당 보조금 9억2754만원 ▲사채 7억4175만원 ▲후원회 후원금 10억9005만원 등 외부에서 조달한 돈이다. 이 밖에 6억여 원은 ‘미지급금’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박 시장은 이미 선관위로부터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았기 때문에 상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박원순 시장은 선거비용으로 정몽준 전 의원보다 국민 세금 3억7000만원을 더 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