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초선의원 전당대회 경험記 : 월간조선

길고 험한 여정으로 느껴졌던 제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정치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난 몇 달간 느껴 온 초조함과 안타까움이 적지 않았다. ‘당이 결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전당대회가 이토록 피말리는 행사인 줄은 미처 몰랐다. 새누리당의 19대 초선의원들이 처음으로 전당대회에 참석한 것은 임기 시작 전인 2012년 5월 15일이었다. 의원들은 각자의 지역구에서 치열한 선거전을 막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한편으론 얼떨떨하고 다른 한편으론 편안한 마음으로 전당대회에 참석했으며, 다들 당 지도부가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는 지경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대표 유력 후보는 한 사람(황우여 의원)이었고 대부분 초선의원들은 대세에 따라 투표했다. 그때는 대표를 잘 뽑아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결정된 2차 전당대회는 당원 전체가 한마음 한뜻이 돼서 치러 냈고, 이번 3차 전당대회 역시 당을 위한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당이 결딴나는 줄 알았다”

지난 7월 14일 전당대회에서 9명의 최고위원 후보가 손을 들어올리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초 들어 유력한 당권 주자 두 명이 떠오르면서 평온한 전당대회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5월 14일 이완구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해 지도부 역할을 하게 됐고 초선의원 두 명이 비대위에 포함됐는데, 그중 한 명이 비례대표 류지영 의원, 다른 한 명이 나였다. 여의도 정치 경력도 길지 않은 초선의원이 비대위에 들어가게 돼 고맙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6월에는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쇄신전당대회추진모임’이 결성됐는데 초선이다 보니 여기에도 적을 올리게 됐다. 전당대회를 지근거리에서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초반부터 과열 양상을 보였다. 기존 전당대회의 투표율은 보통 10~20%였고 최고 23%선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는 애초부터 투표율이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이유는 물론 김무성, 서청원이라는 유력 당대표 후보로 애초부터 윤곽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전당대회는 7월인데 올해 초부터 이른바 ‘줄세우기’ 현상이 심각했다. 한때 당이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대립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친이’라는 개념도 없고 ‘반(反)박’도 없는 상태다. 기껏해야 친박-비(非)박으로 나뉘는 정도다. 그나마 김무성 의원이나 서청원 의원 양쪽 다 ‘원조 친박’임을 자처하고 있다. 한쪽은 대통령에게 강하게 힘을 실어 주자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대통령을 위하지만 때론 쓴소리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치 신인으로서는 굳이 대립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초선의원들은 정치 신인이라 색깔이 없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정치를 해 온 정치인들은 양쪽 모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당원들이 양쪽 모두에 연고가 있고 어느 쪽과 반목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례없는 치열한 경쟁과 네거티브 논란이 일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누군가 옆에서 “원래 전쟁 중에서도 동족상잔이 더 잔인하고 치열한 것”이라고 얘기해 줬다. 서로 대통령 편이라고, 대통령을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이라고 경쟁하는 형국이었다.

새누리 전당대회

새누리당은 2012년 2월 13일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꿔 출범한 후 2012년 5월 15일 제1차 전당대회를 열어 황우여 대표를 당대표로 선출했다. 2012년 8월 20일에는 제2차 전당대회를 열어 박근혜 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새 당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제3차 전당대회는 지난 7월 14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새누리당은 전당대회 하루 전인 13일 오전 9시부터 전국 투표소 251곳에서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대상은 대의원을 뺀 나머지 선거인단. 당비를 납부해 온 책임당원 14만4000여 명 전원과 추첨을 통해 선발된 일반당원 4만1000여 명, 그리고 인터넷 공모로 뽑힌 40세 이하 비당원 청년선거인 9800여 명이다. 투표는 한 사람당 후보 2명에 투표하는 1인 2표제로 진행됐다. 12~13일 실시한 1·2차 여론조사와 13일 전국투표, 14일 대의원투표 결과를 모아 투표 결과 70%, 여론조사 결과 30%를 합산해 후보 9명 중 당대표 1명과 최고위원 4명을 선출했다. 득표율은 1위 김무성(5만2706표, 29.6%), 2위 서청원(3만8293표, 21.5%), 3위 김태호(2만5330표, 14.2%), 4위는 이인제(2만782표, 11.7%)로 김무성 의원이 당대표, 서청원·김태호·이인제 의원이 최고위원에 선출됐고, 당헌에 따라 여성 몫으로 김을동 의원이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누가 밥 먹자고 하면 가슴이 덜컹

당대표 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

지난 두세 달 동안은 식사약속이 두려웠다. 원래 정치인들은 공식모임 외에도 이런저런 사적인 모임이나 소모임을 많이 하는데,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 횟수가 부쩍 늘었다. 평소 같으면 부담없이 가는 모임일 수도 있지만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는 꺼려졌다.

또 모임이 있다는 얘기만 들어도 그 속내가 궁금해졌고, 누가 자리를 만들었는지, 함께 초대받은 사람은 누구인지 신경이 쓰였다. 초대를 받았다고 무작정 가면 그쪽 라인이라는 소문이 날 것이고, 안 가면 반대쪽 라인이라는 소문이 날 것이 뻔했다.

특정 캠프에 속하지 않은, 이른바 ‘색깔이 없는’ 모든 초선의원은 지난 두세 달 동안 하나같이 식사약속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한 동료 초선의원은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자리를 같이한 적이 없던 유력 대표 후보와 최근 한 달간 네 번이나 밥을 먹었다는 얘기도 했다.

어느 조직에나 있는 ‘줄세우기’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에서 줄서기는 기본이라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줄세우기는 내가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강압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강요당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그런 자리가 불편했다. 누군가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일까 봐 불안하기도 해 전당대회 한 달 전부터는 여의도에서 저녁을 먹지 않았다. 많은 초선의원들이 그랬다. 심지어 ‘줄서지 말자’고 주장하는 쇄신전대모임이나 초심회(초선의원들의 모임)도 또 다른 오해를 불러들일 수 있어 자주 모임을 갖거나 큰 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현재와 미래의 대립?

지난 7월 14일 전당대회에 정몽준 전 의원과 함께 입장하고 있는 심윤조 의원.

김무성 대표가 시종일관 대세를 유지하지 않았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초반에는 서청원 후보의 당내 조직력과 인맥이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였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이고 훌륭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당원들로부터 인기도 많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지나치게 과거와 현재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무성 대표가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시대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당원의 욕구, 미래지향적인 욕구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김무성 대표가 가장 강조한 것은 새누리당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통령에게 할 얘기는 하는 당이 되겠다는 것은 여당의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당원의 선택은 ‘변화’,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이었다는 것이 이번 전당대회의 교훈이다. 당원들은 누가 당의 얼굴이냐, 누가 당을 이끌어 나가느냐가 당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보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투표를 통해 압승을 했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다.

서청원 의원이 전당대회 전날과 전당대회 날 화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준 점 역시 당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서 의원은 새누리당의 최다선 의원, 즉 맏형 또는 어른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많다. 당의 목표는 정권재창출이고, 이를 위해서는 현 정권이 성공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현장은 팽팽한 분위기

새누리당 소속 초·재선 의원들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쇄신전당대회추진모임’을 결성해 지난 6월 23일 의원회관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한편 아쉬운 점은 네거티브였다. 이번 전당대회를 치르며 가장 많이 들은 지적은 “왜 그리 네거티브가 심하냐”는 것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의 상호비난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저 사람은 이래서 절대 안 된다”는 얘기가 난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진심으로 당이 결딴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됐다. 양쪽 다 워낙 오래 정치를 해 온 분들이다 보니 어느 정도 과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작은 실수까지 헤집어 내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상대 당과 맞붙는 선거도 아니고 당내 경선에서 네거티브는 결국 제 살 깎아먹기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심한 네거티브에 나선 것은 양쪽 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선거에 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4일 전당대회 현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결정되면서 시종일관 긴장된 분위기였다. 대통령의 참석을 특정 대표 지지 표명으로 몰아가는 언론도 있었지만 적어도 당내의 분위기는 달랐다. 대통령이 전당대회를 찾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당원들을 향한 애정의 표시이자 ‘서비스’다. 박 대통령은 대표·최고위원 선거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느 후보에게도 특별히 눈길을 주지 않았다.

체육관의 열기는 뜨거웠다. 김무성 후보와 서청원 후보가 연설에 나서자 지지자들의 환호와 박수가 체육관을 떠나보낼 듯했다. 놀라운 장면은 이때 벌어졌다. 서청원 의원은 연설 도중 연단 밑으로 내려와 김무성 후보의 손을 잡고 들어올리며 “당을 화합으로 이끌겠다”고 말했고, “내가 대표가 되든 되지 않든 당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김 후보와 함께 화해해서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환호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만 더 일찍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

지난 7월 9일 경북 경산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서청원 의원이 김무성 의원을 향해 “대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달라”고 말하고 있다.

전당대회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점은 많은 당원이 ‘줄서기’보다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선배 의원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예전에는 당원들의 전당대회 투표행태는 당협위원장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꽤 높은 편이었지만 투표행태가 달라지다 보니 당원 여론조사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번에는 여의도연구소도 당대표 관련 여론조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번 전당대회를 치러 보니 내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당협의 당원들도 내 의견을 따르지만은 않았다. 투표권을 가진 당원들은 사실 나보다 훨씬 오래 정치권에 몸담아 왔고, 오랫동안 새누리당을 사랑하고 지지해 온 사람들이며, 줄서기보다는 당의 미래를 걱정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표를 행사했다. TK(대구·경북) 지역을 차지해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후보도 있었지만 사실 TK의 당원들은 오랫동안 정치권에 머물러 온 사람들이 대다수다. 어떤 선동이나 호소에 의해서 투표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인제 의원이 4위로 최고위원 직에 오른 것도 의미있는 결과다. 이인제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늘 2~3위를 차지했다. 1인1표라면 더 높은 지지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늘 당의 변화를 주장해 왔고, 당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김영우·김상민 후보가 선전하기는 했지만 지도부에 입성하지 못해 청년층이 취약하다는 당의 약점을 드러낸 부분이다. 임명직 최고위원이나 향후 당 인사에서 청년층이 약진하고 부각되길 기대해 본다. 또 미국 전당대회처럼 전당대회가 전 당원의 축제의 장이 되는 한편 정치 신인이 전국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