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SOC 사업이 지금도 있습니다. 당장 폐기처분해야 하는 사업도, 작게 해도 되는 사업도 (관료들이) 모두 늘리려 합니다. 왜냐? 자기 자리가 사라지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필요 없는 사업이라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무리한 국책사업 추진이 공공기관의 천문학적 부채 낳아… 결국 국민 혈세로 메우는 구조
⊙ “세종시·혁신도시 최대한 빨리 진척시키라는 지시, 수없이 내려와”
⊙ “공기업 부채가 국책사업 때문인지, 방만경영 때문인지 가려야”
⊙ 무리한 국책사업 추진이 공공기관의 천문학적 부채 낳아… 결국 국민 혈세로 메우는 구조
⊙ “세종시·혁신도시 최대한 빨리 진척시키라는 지시, 수없이 내려와”
⊙ “공기업 부채가 국책사업 때문인지, 방만경영 때문인지 가려야”
- 2014년 5월 2일 골조공사를 마치고 마감공사가 한창인 세종시(市)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새누리당이 수도권 급행광역철도(GTX), 서울~세종 간 제2경부고속도로 건설, 동서(춘천~속초 90.7km)·호남(무안공항·나주역 경유 64.9km) 고속철도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을 6·4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놓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새누리당 시도(市道) 공약 중 GTX 건설이 가장 눈에 띈다. 올해 65억원의 예산을 들여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을 실시하고 A노선인 경기 일산~서울 삼성역 노선을 먼저 추진한다는 것이다. 또 B노선(송도~청량리)과 C노선(의정부~금정)은 A노선의 기본계획 용역 시, 사업을 재기획한 후 추진키로 방침을 세웠다. GTX의 총사업비는 11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새누리당은 이와 함께 서울과 세종시를 잇는 제2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왕복 6차로로 건설할 제2경부고속도로는 지난 2009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지만 6조7000억원에 달하는 예산 탓에 추진이 미뤄졌었다. 총 길이는 경기도 구리와 세종시 장군면을 잇는 129.1km다.
새누리당 6·4 공약집에는 강원도와 전라도 숙원사업인 ‘동서·호남 고속철’ 유치도 들어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새누리당 강원도 국회의원들은 동서고속철도 조기착공을 강원도 제1 숙원사업으로 약속했지만, 지난 연말 국회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또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 예산으로 올해 400억원이 배정됐지만 착공 시기는 불투명한 상태다. 노선 선정을 두고 지방자치단체 간 이견으로 기본계획 수립조차 못하고 있다.
사실, 수십조원이 드는 초대형 국책(國策)사업은 정치적 이유로 추진된 경우가 많았다. 대선(大選)과 총선 등 선거공약으로 채택돼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인 토건(土建)사업들이 대표적인 예다. 전북 지역 표를 의식해 추진된 새만금 간척사업, 지역균형 발전의 대전제에서 시작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와 혁신도시·기업도시 등 3대 테마 도시건설, 영호남 4대강 유역의 표를 의식한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을 말한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행정부와 국회를 총동원, 어마어마한 국고(國庫)를 들이고 특별법까지 만들어 국책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환경영향 평가나 수요예측 조사, 예비타당성 조사가 짧은 기간에 이뤄지다 보니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밀어붙이기식 추진은 환경·시민단체 등에 의한 법정소송으로 번진 경우가 허다했지만, 그렇다고 판결에 의해 논란사업이 폐기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사업지연에 따른 국가재정의 낭비가 발생했고, 국론분열과 사회갈등 비용을 국민이 짊어져야 했다.
“실패 사업 파헤친 白書 없어”
정권이 바뀌면 정부 부처의 관료들은 새 대통령이 내건 국책사업을 추진하느라, 기존 국책사업을 뒷수습하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그러나 ‘날림’ 국책사업에 대한 사후검증은 미흡하고,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책임을 묻지 않으니 실패의 반복이 거듭됐다. 동국대 법학과 방희선(方熙宣) 교수의 말이다.
“대형 국책사업의 대표적인 분야가 공항·도로·항만 사업입니다. 지방공항들이 승객 없는 ‘유령공항’으로 변하고, 엉터리 수요예측과 부실한 타당성 조사로 신설 고속도로는 오가는 차량을 볼 수 없으며(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이후 개통한 15개 고속도로 중 14개가 수요예측을 잘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항만 역시 ‘동북아 허브항만’의 기치로 개발됐으나 과잉투자로 국내 항만끼리 경쟁을 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어요. 그러나 관료들이 책임을 졌거나 실패한 국책사업을 파헤친 백서(白書)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대형 국책사업의 실패가 바로 정권의 실패이며 그 결과, 공공기관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대국민 담화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공공부문은 비정상적인 관행과 낮은 생산성이 오랫동안 고착화됐다”며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처럼 정부 재정 부담을 공기업에 떠넘겨 부실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2월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공공기관의 부채 발생 원인이 단지 기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무리하게 4대강 사업 등 정부의 정책사업과 전시행정을 추진하면서 부채를 떠안게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었다. 박 대통령은 실패한 초대형 국책사업의 대표적인 예로 4대강 사업을 꼽았다.
《월간조선》은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위원장 이한구) 산하 ‘공기업개혁분과위’에서 논의된 정부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부채의 핵심원인은 ‘공공기관의 기능과잉’이었다.
<…□현상으로의 문제점 : 공공기관 부채
○공공기관 부채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에 대한 대외신인도까지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 상존
-현재 공공기관은 심각한 부채에도 불구, 상대적으로 건전한 정부 재정의 지원을 전제로 모두 최고의 신용등급
○저출산·고령화, 복지확대에 공공기관 부채까지 후대에게 물려줄 경우 20~30년 후 유럽과 같은 재정위기 가능성
□공공기관 부채의 핵심원인은 공공기관의 기능과잉
○공공기관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으며, 할 일도 잘못된 방식(독점적으로, 과도한 수준, 고비용)으로 수행…>
당정협의를 통해 논의된 이 보고서는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완화를 위한 개선과제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공기업개혁분과위’에 박근혜 정부의 싱크탱크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 손양훈 에너지경제연구원장, 김경환 국토연구원장,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철도정책기술본부장,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옥 원장과 손 원장은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에도 참여했다.
LH공사·도로공사 등 5곳 부채 10년간 5.13배 늘어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는 매년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다. 최근 당·정·청(黨政靑)이 부실 공공기관에다 부채감축 계획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세우라는 압력을 넣고 있으나 쉬운 일이 아니다. 토지주택(LH)공사와 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 철도공사, 수자원공사 등 주요 5개 기관의 부채는 2012년 현재 208조9097억원. 10년 전인 2002년 40조7190억원에 비해 5.13배나 늘어났다.
여기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공항공사, 대한주택보증, 제주개발센터, 한국감정원, 교통안전공단, 시설안전공단, 국토교통진흥원, 대한지적공사 등 9개 기관을 더하면 214조1469억원(2012년)에 이른다.
앞서 언급한 14개 기관의 부채는 2002년 46조8713억원이었으나, 5년 뒤인 2007년 128% 늘어난 107조795억원이었고, 다시 5년 뒤인 2012년에는 100% 상승한 214조1469원으로 치솟았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공기업인 LH공사는 2012년 현재 부채비율이 466%이며, 같은 기간 도로공사는 97.1%, 수자원공사는 122.6%, 철도공사는 244.2%, 철도시설공단은 87.9%, 인천공항은 53.7%, 대한주택보증은 20.8%, 한국공항공사는 11.1%이다. 이들 8개 기관의 평균 부채비율은 240.4%. 지금의 재무 상태를 토대로 2017년 부채비율을 예측하면 2012년보다 다소 줄어든 236.9%(부채 25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공공기관의 부채는 임대주택, 세종시·혁신도시 건설, 4대강 사업 등 정부의 국책사업 추진과 각종 기반시설 확충으로 비롯됐다. 이런 사업을 떠맡은 SOC 공기업이 LH공사,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등이다. LH공사는 세종시·혁신도시 공사가 본격화된 2008년 이후 4년 동안 부채가 52.4조원, 수공 역시 4대강 사업으로 같은 기간 11.8조원, ‘적자 투성이’ 인천공항철도를 인수(2009년 9월)한 철도공사는 7.5조원이 증가했다.
감사원 사무총장과 공기업인 철도공사 사장을 역임한 정창영(鄭昌永)씨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정권이든 집권기간 중의 업적의 가시적 상징물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정치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책결정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을 경우 국가재원 배분의 왜곡에 따른 낭비가 수반됨은 물론이죠.
대표적인 SOC 지역 공약사업은 반드시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재검토돼야 합니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타협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지방공항이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형 국책사업과 관련한 부처 공무원의 책임을 어느 선까지 물어야 합니까.
“국가공무원법에서 공무원의 신분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소신을 갖고 일하라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공무원법상 명령복종의 의무는 차치하고라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일신상 편하다는 무사안일 인식이 팽배해 있어요. 법적 책임성은 온데간데없고, 신분보장 규정만 남아 있는 꼴이죠. 징계위원회가 소속기관 내에 있으나 온정주의가 판을 칩니다. 표창을 받은 적이 있으면 징계벌칙도 감경할 수 있어요. 징계벌칙제도를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징계벌칙 내지는 관리감독 책임을 승진·임용에 철저히 적용해야 합니다.”
공공기관 부실의 핵심원인은 ‘기능과잉’
공공기관 부실의 핵심원인인 ‘기능과잉’에 대한 정부 책임은 어디서 어디까지일까. 여기서 정부 책임은 ‘공기업이 원하지 않은 일을, 정부 요청에 의해 불가피하게 수행한 경우’를 말한다. 정권의 공약사업으로 추진된 대형 국책사업을 일컫는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새누리당 공기업개혁분과위 보고서에는 정부 책임을 4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경기진작을 위해 불요불급한 투자사업을 공공기관이 수행 : 도로공사의 적자노선 건설, 4대강 사업
○추진되지 않았어야 할 수익성 낮은 부실사업을 공공기관이 떠안은 사례 : 코레일의 인천공항철도 인수가 대표적
○낮은 공공요금을 보편적 복지로 활용하고 있어 자원낭비와 부채를 유발 : 원가보상률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선행될 필요
○정책사업을 예산이 아닌 공공기관 부채로 추진하면서 정부의 비용의식이 약화되어 사업을 과도하게 추진하는 경향 발생 : 4대강 사업, 아라뱃길, 임대주택, 고속도로 건설 등 다수…>
역대 정권마다 SOC 개발공약을 경기진작, 경제회생과 연관시켜 대형 국책사업을 시행해 왔다. 임대주택·도로·항만·공항 건설이 대표적인 SOC 사업이다. 국토교통부 차관을 역임한 새누리당 김희국(金熙國) 의원의 말이다.
“정부의 정책적 목적을 이유로 사업이 결정되면 비록 경제성이 떨어지더라도 공기업에다 국책사업을 강제로 할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재원은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공공기관의 차입(借入)으로 하게 했어요. 또 공기업이 수익을 내려면 요금인상이 불가피한데 물가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막았어요. 그런데도 공기업 부채 원인이 방만경영 결과로 호도되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물론 직원들이 누렸던 복지혜택이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고요.”
김 의원은 또 “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사업추진과 과도한 편익추정, 사전타당성 검토 및 사후 평가의 미흡,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는 대규모 공공투자 사업이 공기업 부채의 원인”이라고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가 펴낸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2012)>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10년간 모두 392개의 대형 국책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는데, 이 가운데 58.7%인 230개 사업이 예산을 편성받아 시행됐다. 230개 사업 중 도로 부문이 96건(42%)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230개 사업 중 125개(53.9%)만이 편익비용분석(B/C)값이 1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업은 1과 0 사이에 분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BC 값이 1 이상이면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보고 추진하지만, 1 미만이면 기각한다. 대형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230개 사업의 절반에 가까운 46%가 경제적 타당성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대규모 SOC 등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경제성만을 고려할 수 없다. 지역경제 파급효과나 지역균형개발의 당위성도 따져야 한다. 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을 정치적인 이유로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공공기관 부채를 과도하게 부추겼다.
SOC 투자, 국내경제 영향력 매년 감소
학자들 사이에 대형 건설투자가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력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부 주도 대형 국책사업과 GDP(국내총생산) 성장에 대한 영향력을 분석한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유정석(柳政錫) 교수는 “1975년부터 2010년까지 건설투자가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전체적으로 그 영향력이 꾸준히 감소해 왔고, 1997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국민경제에 대한 건설투자의 영향력이 위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의 주장이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시행된 대형 국책사업 가운데 약 46%가 경제적 타당성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역대정부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투자를 늘렸지만 이제는 재고(再考)할 필요가 있습니다. GDP 성장에 기여하는 건설투자의 영향력이 타 부문과 비교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또한 단기적으로 감소 추세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유 교수는 경부고속철도 건설이 시행된 1992년 이후 몇 년간은 GDP 성장에 대한 영향력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2003년), 행정중심 복합도시 사업(2007년), 혁신도시 사업(2007년), 4대강 사업(2008년) 등이 시행된 직후에는 영향력이 줄었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말이다.
“국책사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면 고용유발과 연관 산업을 발전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문제는 재원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하면 모를까, 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하다 보니 결국 부채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어요.
부채는 양날의 칼입니다. 경기가 좋고 사업이 원활하면 부채를 어느 정도 안고 추진해도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처럼 경기회복 여건이 불확실하고 대외조건이 어려우면 부채가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유 교수는 “국책사업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KDI, 국토연구원 같은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하다 보니, 갑을(甲乙)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소위 용기 있게 ‘NO’라고 말할 수도 없다”며 “그렇다 보니 사업추진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부채가 가장 심각한 곳이 LH공사다. 부채가 138조원(2012년)을 넘어선 이유 중 하나는 임대주택 건설 때문이다. 역대 정권마다 서민의 표를 끌어오기 위해 임대주택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그 건설비용이 점점 불어나 부채 덩어리가 됐다. 임대주택 한 채를 짓는 데 18평 아파트 기준으로 평균 87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임대주택을 10만 호 지으면 8조7000억원이, 100만 호를 지으면 87조원이 드는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20만 호,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100만 호, 이명박(李明博)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150만 호(임대 80만 호, 분양 70만 호) 건설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LH공사로 하여금 임대주택을 짓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행복주택 20만 호(국민임대 11만 호, 민간임대 6만 호) 건설이다.
임대주택은 집 한 채 지을 때마다 고스란히 정부 빚이 된다. 지으면 지을수록 빚이 되지만 정치적인 이유에서 사업을 중단할 수 없다. 그러나 엄청난 비용부담 탓에 공약이 100% 이행된 경우는 드물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는 1998년부터 5년간 국민임대주택 20만 호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고 8조4000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공급된 임대주택은 11만9000호에 그쳤고 예산도 3조3311억원이 소요됐다.
노무현 정부 역시 5년간 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을 공약(비용 60조원)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46만4000호 건설에 그쳤다. 임대주택 건설에 집행된 예산은 17조3311억원이었다.
보금자리주택 150만 호(임대 80만 호, 분양 70만 호) 건설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 역시 5년간 28만9000호를 지었다. 집행예산은 32조5099억원이었다.
임대사업, 민간의 자립의지 꺾어
속을 들여다보면, 역대 정권마다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을 정치적으로 활용했지만 막상 엄청난 부채 탓에 당초 공약의 절반에도 실적이 못 미쳤다. LH공사는 강제로 떠맡은 임대주택 빚 탓에 지금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새누리당 공기업개혁분과위 한 관계자의 말이다.
“경쟁 없는 공공기관의 독점체제에다 심지어 민간의 영역까지 침해해 경쟁을 약화시켜 왔어요. LH의 분양주택 사업이 대표적인 예죠. 이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창조경제’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상실케 만들었고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마저 저하시켰어요. 낮은 공공요금, 과잉투자, 중복사업, 담합구조로 인한 자원낭비를 가속화시켰고, 민간의 자립의지를 꺾고 대정부 의존도만 높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매년 수십조원의 돈이 풀려나갔지만 이 돈은 수도권으로 다시 흘러들었고, 수도권 재건축 규제완화나 판교 신도시 개발 등 개발이익을 부추길 만한 요인들이 생겨났었다.
지난 2월 26일 민주당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공기업 정상화를 위한 민주당의 정책방향 토론회’에서 한국방송통신대 윤태범 교수(행정학)는 노무현 정부에서 공기업 부채의 원인이 된 곳으로 LH공사로 통합되기 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 등을 꼽았다.
윤 교수는 “주택공사의 경우 임대주택 건설로 부채 29조7000억원이 증가했고, 토지공사 역시 행복도시, 신도시 보상비 지급으로 부채 16조8000억원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정부개혁연구소 소장인 이창원(李昌遠)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야 하는 국책사업을 정부예산보다 공공기관이 대신 수행토록 했지만 정작 공기업은 사업비용 대부분을 부채로 충당했다”며 “정부는 대외신용도 하락에 대한 우려로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를 국가채무 집계에서 그동안 제외해 와 부채 규모를 더욱 가파르게 상승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계속된 말이다.
“예를 들어 부채문제가 가장 심각한 LH공사의 경우 김대중 정부 이후 국민임대주택(64.6조원), 신도시개발(92.2조원), 보금자리주택(105조원) 등 대통령 공약 관련 국책사업을 시행하면서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어요. 다른 주요 공공기관들도 국책사업으로 인해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공공기관의 부채 성격을 정확히 따져봐야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구분 회계제도 도입’이 필요합니다. 공기업 부채의 책임소재가 ‘국책사업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기관 자체의 방만경영에 의한 것인지’ 명확히 가려야 합니다. 그럴 경우, 공공기관의 관리 및 감독을 담당하는 정부 주무부처도 부채문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돼요. 주무부처와 공공기관 간의 책임공유는 정부가 국책사업 책임을 부당하게 떠넘기는 행위를 방지할 수 있고, 단순한 공공기관의 ‘감독자’가 아닌 ‘국책사업의 동반자’로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노무현 정부, 혁신도시 건설 중단 못 하게 대못 박아”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에 참여했다는 전직 관료를 만났다. 그는 “행정수도 건립과 충청권을 제외한 여타 비수도권에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지역별로 나눠주겠다는 정책을 마련하면서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과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법이 제정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행정수도가 충청권에 들어서면 다른 지방이 반발, 지역균형발전 공약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혁신도시 건설. 혁신도시에는 LH공사, 도로공사 등 수도권 공기업과 공공기관 125곳이 강제로 이전토록 명시했다. 이 전직 관료의 얘기다.
“노무현 정부로서는 세종시·혁신도시 건설은 중요한 정치적 과제였어요. 노 대통령은 정권이 넘어가서 사업이 유야무야될까를 굉장히 염려했고, 그전에 상당부분 진척시키기를 희망했지요. ‘최대한 빨리 착공하라’는 지시가 수없이 (건설교통부에) 내려왔고, 당시 정부에 참여했던 저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지보상도 안 끝났는데 착공을 독려했다고 하더군요.
“대단히 빠른 속도였어요. ‘대못을 박았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죠.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이 사업을 중단시키려 계획을 세웠어요.”
2008년 초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6곳에서 이미 공사가 시작됐고 토지보상도 74%나 진행됐다고 한다. 토지보상비로 지급한 돈만 2조4269억원. 취임 초기, 이명박 대통령이 계획 자체를 백지화시키기에는 너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게다가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제주·김천·진주·나주·울산 등 대부분의 도시가 노무현 정권이 끝나기 직전 건설공사를 시작했다.
―보통의 국책사업은 어떻게 추진하나요.
“통상 토지보상이 80~90% 이상 진행되고 첫 삽을 들지만 혁신도시는 착공을 서둘렀어요. 울산은 토지 보상률이 절반을 겨우 넘는 상태에서 시작했고 서귀포는 보상률이 70%인 상태에서 착공식을 가졌습니다.”
그는 “혁신도시 입지가 결정된 것이 2006년 2월임을 감안하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국책사업을 추진한 셈”이라고 했다.
“거듭 말하지만 대단히 빠른 속도였어요. 정치라는 것이 공약을 내걸고 정권을 획득하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있어요. 어찌 보면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일지도 모르죠. 장기간 소요되는 사업을 5년 만에 끝내야 하니까요.
도로는 계획을 수립해 토지를 보상하고 건설, 시험운영까지 보통 5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철도는 여기다 2년이 더 플러스 되고, (계획)도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SOC 같은 대형 국책사업은 장기적 관점에서 10~20년을 생각하면서 정책을 결정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官피아’를 해결하는 길은 조직축소밖에 없다”
국토교통부 차관을 지낸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은 1980년 공직사회에 입문해 32년 동안 고속철도·도로·세종시·혁신도시·공공기관 이전·4대강 사업 등 굵직한 국책사업에 모두 관여했다.
김 의원은 “국책사업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추진됐고, 그 추진방식이 공기업을 통해 진행하다 보니 공기업 부채가 급증했지만 사업 자체를 절대선(絶對善) 절대악(絶對惡)의 개념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간접자본(SOC)은 그 자체로 돈을 벌자고 하는 자본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2000년 전 로마는 지금의 잣대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도로와 수로를 만들었어요. 이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로마시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군사작전을 신속하게 할 목적이었어요.
한국의 SOC개발은 1960년대 조국근대화와 같이 출발합니다. 수출입국을 위해 포항·울산·창원·거제·인천에다 항만을 건설했어요. 당연히 경제성이 없었죠. 균형발전과 경제성은 이처럼 양립할 수가 없어요. 경제성보다는 지역 특성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경제성만 따지면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빚어지니까요.
박정희 정권에서 계획경제를 세울 때는 불균형 성장이었어요. 농어촌의 희생 위에 공업을 발전시켜 파이를 전 국민이 나눈다는 논리였는데, 그 파이가 안 나눠지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거의 외과수술과 다름없는 세종시·혁신도시·기업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정책은 그 시대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문제이지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고 할 수 없어요.”
―대통령의 토건 공약은 어떻게 해서 나옵니까.
“관료와 정치인이 서로 주고받습니다. 정치인은 아이템을 내라고 하고, 행정부는 하고 싶은 사업을 정치인에게 주죠. 서로 유착이 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경제성 측면보다는 조직의 이익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일단 자기 조직이 커지면 일거리를 찾게 마련입니다. ‘관(官)피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줄일 수밖에 없어요.”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 유독 토건 공약이 많았고 그 결과 공기업 부채로 이어졌습니다.
“외환부족 사태를 거치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고, 이명박 정부 때는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어요. 위기가 오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과제가 지상목표가 돼요. 두 정권 모두 경제성장을 위해 투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국책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봐요.”
―하지만 국책사업의 경기유발 효과가 미미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경제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제 기억으로 2004년 건설교통부 도로정책과장 시절, 한 해 도로예산이 13조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6조~7조원밖에 안 됩니다. 4~5년 전만 해도 SOC 예산이 23조~24조원이었으나 지금은 20조원 정도입니다.”
―SOC의 비중이 낮아졌는데 담당 공무원들의 의식은 어떤가요?
“공직사회의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도로 담당 공무원은 도로예산만 생각하고 철도 담당은 철도만 생각합니다. 국가 전체를 생각 안 하고 자기 분야만 생각하고 서로 욕을 합니다. 국가 공무원은 특정 분야에 헌신하는 자여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SOC 사업이 지금도 있습니다. 당장 폐기처분해야 하는 사업도, 작게 해도 되는 사업도 모두 늘리려 합니다. 왜냐? 자기 자리가 사라지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필요 없는 사업이라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로예산이 그만큼 줄었는데 인력도 줄었나요?
그는 “인력은 그대로다. ‘관피아’를 해결하는 길은 조직축소와 규제철폐밖에 없다. 그게 ‘철밥통’을 사정없이 부숴버린다”고 했다.
“1960년대 국민소득 100달러 국가에서, 자본도 기술도 없는 한국이 2만 달러가 넘는 국가로 발전하는 데 있어 공무원의 기여와 헌신이 지대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30년 전부터 비대화된 관료조직은 드디어 로마의 공화정처럼 비능률과 부패와 암적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슬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로마가 도시국가일 때는 공화정이 적합했지만 식민지 팽창으로 늘어난 영토를 다스리며 제국(帝國)으로 바뀌었듯이 100달러 시대에 필요했던 유능한 관료, 그러니까 계획경제와 지시 일변도, 상명하복, 숫자와 보고 위주, 독점구조에 익숙한 관료조직으로는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근본적 관료조직의 개편과 대수술이 불가피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새누리당 시도(市道) 공약 중 GTX 건설이 가장 눈에 띈다. 올해 65억원의 예산을 들여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을 실시하고 A노선인 경기 일산~서울 삼성역 노선을 먼저 추진한다는 것이다. 또 B노선(송도~청량리)과 C노선(의정부~금정)은 A노선의 기본계획 용역 시, 사업을 재기획한 후 추진키로 방침을 세웠다. GTX의 총사업비는 11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새누리당은 이와 함께 서울과 세종시를 잇는 제2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왕복 6차로로 건설할 제2경부고속도로는 지난 2009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지만 6조7000억원에 달하는 예산 탓에 추진이 미뤄졌었다. 총 길이는 경기도 구리와 세종시 장군면을 잇는 129.1km다.
새누리당 6·4 공약집에는 강원도와 전라도 숙원사업인 ‘동서·호남 고속철’ 유치도 들어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새누리당 강원도 국회의원들은 동서고속철도 조기착공을 강원도 제1 숙원사업으로 약속했지만, 지난 연말 국회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또 ‘호남고속철도’ 2단계 사업 예산으로 올해 400억원이 배정됐지만 착공 시기는 불투명한 상태다. 노선 선정을 두고 지방자치단체 간 이견으로 기본계획 수립조차 못하고 있다.
사실, 수십조원이 드는 초대형 국책(國策)사업은 정치적 이유로 추진된 경우가 많았다. 대선(大選)과 총선 등 선거공약으로 채택돼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밀어붙인 토건(土建)사업들이 대표적인 예다. 전북 지역 표를 의식해 추진된 새만금 간척사업, 지역균형 발전의 대전제에서 시작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와 혁신도시·기업도시 등 3대 테마 도시건설, 영호남 4대강 유역의 표를 의식한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을 말한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행정부와 국회를 총동원, 어마어마한 국고(國庫)를 들이고 특별법까지 만들어 국책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환경영향 평가나 수요예측 조사, 예비타당성 조사가 짧은 기간에 이뤄지다 보니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밀어붙이기식 추진은 환경·시민단체 등에 의한 법정소송으로 번진 경우가 허다했지만, 그렇다고 판결에 의해 논란사업이 폐기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사업지연에 따른 국가재정의 낭비가 발생했고, 국론분열과 사회갈등 비용을 국민이 짊어져야 했다.
“실패 사업 파헤친 白書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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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4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4대강 살리기’ 합동보고대회 모습. |
“대형 국책사업의 대표적인 분야가 공항·도로·항만 사업입니다. 지방공항들이 승객 없는 ‘유령공항’으로 변하고, 엉터리 수요예측과 부실한 타당성 조사로 신설 고속도로는 오가는 차량을 볼 수 없으며(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이후 개통한 15개 고속도로 중 14개가 수요예측을 잘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항만 역시 ‘동북아 허브항만’의 기치로 개발됐으나 과잉투자로 국내 항만끼리 경쟁을 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어요. 그러나 관료들이 책임을 졌거나 실패한 국책사업을 파헤친 백서(白書)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대형 국책사업의 실패가 바로 정권의 실패이며 그 결과, 공공기관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대국민 담화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하면서 “그동안 공공부문은 비정상적인 관행과 낮은 생산성이 오랫동안 고착화됐다”며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처럼 정부 재정 부담을 공기업에 떠넘겨 부실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2월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공공기관의 부채 발생 원인이 단지 기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 무리하게 4대강 사업 등 정부의 정책사업과 전시행정을 추진하면서 부채를 떠안게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었다. 박 대통령은 실패한 초대형 국책사업의 대표적인 예로 4대강 사업을 꼽았다.
《월간조선》은 새누리당 경제혁신특위(위원장 이한구) 산하 ‘공기업개혁분과위’에서 논의된 정부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부채의 핵심원인은 ‘공공기관의 기능과잉’이었다.
<…□현상으로의 문제점 : 공공기관 부채
○공공기관 부채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에 대한 대외신인도까지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 상존
-현재 공공기관은 심각한 부채에도 불구, 상대적으로 건전한 정부 재정의 지원을 전제로 모두 최고의 신용등급
○저출산·고령화, 복지확대에 공공기관 부채까지 후대에게 물려줄 경우 20~30년 후 유럽과 같은 재정위기 가능성
□공공기관 부채의 핵심원인은 공공기관의 기능과잉
○공공기관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으며, 할 일도 잘못된 방식(독점적으로, 과도한 수준, 고비용)으로 수행…>
당정협의를 통해 논의된 이 보고서는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완화를 위한 개선과제를 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공기업개혁분과위’에 박근혜 정부의 싱크탱크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 손양훈 에너지경제연구원장, 김경환 국토연구원장,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철도정책기술본부장,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옥 원장과 손 원장은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에도 참여했다.
LH공사·도로공사 등 5곳 부채 10년간 5.13배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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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2002년 12월 8일 기자회견에서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세부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
여기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공항공사, 대한주택보증, 제주개발센터, 한국감정원, 교통안전공단, 시설안전공단, 국토교통진흥원, 대한지적공사 등 9개 기관을 더하면 214조1469억원(2012년)에 이른다.
앞서 언급한 14개 기관의 부채는 2002년 46조8713억원이었으나, 5년 뒤인 2007년 128% 늘어난 107조795억원이었고, 다시 5년 뒤인 2012년에는 100% 상승한 214조1469원으로 치솟았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공기업인 LH공사는 2012년 현재 부채비율이 466%이며, 같은 기간 도로공사는 97.1%, 수자원공사는 122.6%, 철도공사는 244.2%, 철도시설공단은 87.9%, 인천공항은 53.7%, 대한주택보증은 20.8%, 한국공항공사는 11.1%이다. 이들 8개 기관의 평균 부채비율은 240.4%. 지금의 재무 상태를 토대로 2017년 부채비율을 예측하면 2012년보다 다소 줄어든 236.9%(부채 25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공공기관의 부채는 임대주택, 세종시·혁신도시 건설, 4대강 사업 등 정부의 국책사업 추진과 각종 기반시설 확충으로 비롯됐다. 이런 사업을 떠맡은 SOC 공기업이 LH공사,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등이다. LH공사는 세종시·혁신도시 공사가 본격화된 2008년 이후 4년 동안 부채가 52.4조원, 수공 역시 4대강 사업으로 같은 기간 11.8조원, ‘적자 투성이’ 인천공항철도를 인수(2009년 9월)한 철도공사는 7.5조원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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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영 전 코레일 사장. |
“어느 정권이든 집권기간 중의 업적의 가시적 상징물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정치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책결정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을 경우 국가재원 배분의 왜곡에 따른 낭비가 수반됨은 물론이죠.
대표적인 SOC 지역 공약사업은 반드시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재검토돼야 합니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타협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지방공항이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형 국책사업과 관련한 부처 공무원의 책임을 어느 선까지 물어야 합니까.
“국가공무원법에서 공무원의 신분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소신을 갖고 일하라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공무원법상 명령복종의 의무는 차치하고라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일신상 편하다는 무사안일 인식이 팽배해 있어요. 법적 책임성은 온데간데없고, 신분보장 규정만 남아 있는 꼴이죠. 징계위원회가 소속기관 내에 있으나 온정주의가 판을 칩니다. 표창을 받은 적이 있으면 징계벌칙도 감경할 수 있어요. 징계벌칙제도를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징계벌칙 내지는 관리감독 책임을 승진·임용에 철저히 적용해야 합니다.”
공공기관 부실의 핵심원인은 ‘기능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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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H공사는 정부를 대신해 임대사업을 벌여 엄청난 부채를 떠안게 됐다. 사진은 경기도 판교신도시에 들어선 공공 임대 아파트. |
《월간조선》이 입수한 새누리당 공기업개혁분과위 보고서에는 정부 책임을 4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경기진작을 위해 불요불급한 투자사업을 공공기관이 수행 : 도로공사의 적자노선 건설, 4대강 사업
○추진되지 않았어야 할 수익성 낮은 부실사업을 공공기관이 떠안은 사례 : 코레일의 인천공항철도 인수가 대표적
○낮은 공공요금을 보편적 복지로 활용하고 있어 자원낭비와 부채를 유발 : 원가보상률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선행될 필요
○정책사업을 예산이 아닌 공공기관 부채로 추진하면서 정부의 비용의식이 약화되어 사업을 과도하게 추진하는 경향 발생 : 4대강 사업, 아라뱃길, 임대주택, 고속도로 건설 등 다수…>
역대 정권마다 SOC 개발공약을 경기진작, 경제회생과 연관시켜 대형 국책사업을 시행해 왔다. 임대주택·도로·항만·공항 건설이 대표적인 SOC 사업이다. 국토교통부 차관을 역임한 새누리당 김희국(金熙國) 의원의 말이다.
“정부의 정책적 목적을 이유로 사업이 결정되면 비록 경제성이 떨어지더라도 공기업에다 국책사업을 강제로 할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재원은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공공기관의 차입(借入)으로 하게 했어요. 또 공기업이 수익을 내려면 요금인상이 불가피한데 물가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막았어요. 그런데도 공기업 부채 원인이 방만경영 결과로 호도되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물론 직원들이 누렸던 복지혜택이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고요.”
김 의원은 또 “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사업추진과 과도한 편익추정, 사전타당성 검토 및 사후 평가의 미흡,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는 대규모 공공투자 사업이 공기업 부채의 원인”이라고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가 펴낸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2012)>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10년간 모두 392개의 대형 국책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는데, 이 가운데 58.7%인 230개 사업이 예산을 편성받아 시행됐다. 230개 사업 중 도로 부문이 96건(42%)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230개 사업 중 125개(53.9%)만이 편익비용분석(B/C)값이 1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업은 1과 0 사이에 분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BC 값이 1 이상이면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보고 추진하지만, 1 미만이면 기각한다. 대형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230개 사업의 절반에 가까운 46%가 경제적 타당성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대규모 SOC 등에 대한 투자는 반드시 경제성만을 고려할 수 없다. 지역경제 파급효과나 지역균형개발의 당위성도 따져야 한다. 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을 정치적인 이유로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공공기관 부채를 과도하게 부추겼다.
SOC 투자, 국내경제 영향력 매년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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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석 단국대 교수. |
정부 주도 대형 국책사업과 GDP(국내총생산) 성장에 대한 영향력을 분석한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유정석(柳政錫) 교수는 “1975년부터 2010년까지 건설투자가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전체적으로 그 영향력이 꾸준히 감소해 왔고, 1997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국민경제에 대한 건설투자의 영향력이 위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의 주장이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시행된 대형 국책사업 가운데 약 46%가 경제적 타당성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역대정부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투자를 늘렸지만 이제는 재고(再考)할 필요가 있습니다. GDP 성장에 기여하는 건설투자의 영향력이 타 부문과 비교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또한 단기적으로 감소 추세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유 교수는 경부고속철도 건설이 시행된 1992년 이후 몇 년간은 GDP 성장에 대한 영향력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2003년), 행정중심 복합도시 사업(2007년), 혁신도시 사업(2007년), 4대강 사업(2008년) 등이 시행된 직후에는 영향력이 줄었다고 결론지었다. 그의 말이다.
“국책사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면 고용유발과 연관 산업을 발전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문제는 재원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하면 모를까, 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하다 보니 결국 부채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어요.
부채는 양날의 칼입니다. 경기가 좋고 사업이 원활하면 부채를 어느 정도 안고 추진해도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처럼 경기회복 여건이 불확실하고 대외조건이 어려우면 부채가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유 교수는 “국책사업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KDI, 국토연구원 같은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하다 보니, 갑을(甲乙)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소위 용기 있게 ‘NO’라고 말할 수도 없다”며 “그렇다 보니 사업추진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부채가 가장 심각한 곳이 LH공사다. 부채가 138조원(2012년)을 넘어선 이유 중 하나는 임대주택 건설 때문이다. 역대 정권마다 서민의 표를 끌어오기 위해 임대주택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그 건설비용이 점점 불어나 부채 덩어리가 됐다. 임대주택 한 채를 짓는 데 18평 아파트 기준으로 평균 8700만원이 든다고 한다. 임대주택을 10만 호 지으면 8조7000억원이, 100만 호를 지으면 87조원이 드는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20만 호,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100만 호, 이명박(李明博)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150만 호(임대 80만 호, 분양 70만 호) 건설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LH공사로 하여금 임대주택을 짓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행복주택 20만 호(국민임대 11만 호, 민간임대 6만 호) 건설이다.
임대주택은 집 한 채 지을 때마다 고스란히 정부 빚이 된다. 지으면 지을수록 빚이 되지만 정치적인 이유에서 사업을 중단할 수 없다. 그러나 엄청난 비용부담 탓에 공약이 100% 이행된 경우는 드물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는 1998년부터 5년간 국민임대주택 20만 호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고 8조4000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실제로 공급된 임대주택은 11만9000호에 그쳤고 예산도 3조3311억원이 소요됐다.
노무현 정부 역시 5년간 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을 공약(비용 60조원)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46만4000호 건설에 그쳤다. 임대주택 건설에 집행된 예산은 17조3311억원이었다.
보금자리주택 150만 호(임대 80만 호, 분양 70만 호) 건설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 역시 5년간 28만9000호를 지었다. 집행예산은 32조5099억원이었다.
임대사업, 민간의 자립의지 꺾어
속을 들여다보면, 역대 정권마다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을 정치적으로 활용했지만 막상 엄청난 부채 탓에 당초 공약의 절반에도 실적이 못 미쳤다. LH공사는 강제로 떠맡은 임대주택 빚 탓에 지금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새누리당 공기업개혁분과위 한 관계자의 말이다.“경쟁 없는 공공기관의 독점체제에다 심지어 민간의 영역까지 침해해 경쟁을 약화시켜 왔어요. LH의 분양주택 사업이 대표적인 예죠. 이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창조경제’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상실케 만들었고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마저 저하시켰어요. 낮은 공공요금, 과잉투자, 중복사업, 담합구조로 인한 자원낭비를 가속화시켰고, 민간의 자립의지를 꺾고 대정부 의존도만 높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매년 수십조원의 돈이 풀려나갔지만 이 돈은 수도권으로 다시 흘러들었고, 수도권 재건축 규제완화나 판교 신도시 개발 등 개발이익을 부추길 만한 요인들이 생겨났었다.
지난 2월 26일 민주당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공기업 정상화를 위한 민주당의 정책방향 토론회’에서 한국방송통신대 윤태범 교수(행정학)는 노무현 정부에서 공기업 부채의 원인이 된 곳으로 LH공사로 통합되기 전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 등을 꼽았다.
윤 교수는 “주택공사의 경우 임대주택 건설로 부채 29조7000억원이 증가했고, 토지공사 역시 행복도시, 신도시 보상비 지급으로 부채 16조8000억원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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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원 한성대 교수. |
“예를 들어 부채문제가 가장 심각한 LH공사의 경우 김대중 정부 이후 국민임대주택(64.6조원), 신도시개발(92.2조원), 보금자리주택(105조원) 등 대통령 공약 관련 국책사업을 시행하면서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어요. 다른 주요 공공기관들도 국책사업으로 인해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공공기관의 부채 성격을 정확히 따져봐야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구분 회계제도 도입’이 필요합니다. 공기업 부채의 책임소재가 ‘국책사업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기관 자체의 방만경영에 의한 것인지’ 명확히 가려야 합니다. 그럴 경우, 공공기관의 관리 및 감독을 담당하는 정부 주무부처도 부채문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돼요. 주무부처와 공공기관 간의 책임공유는 정부가 국책사업 책임을 부당하게 떠넘기는 행위를 방지할 수 있고, 단순한 공공기관의 ‘감독자’가 아닌 ‘국책사업의 동반자’로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인터뷰]
권혁세 전 원장은 “박근혜 정부는 성장과 복지, 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힘든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며 “과거 공기업 부채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안정적이었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고 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이후 10년간 정부 재정으로 해야 할 국책사업을 공기업을 통해 추진하면서 부채가 급증했어요. 세종시·혁신도시 건설 등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죠. 이명박 정부 역시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임대주택 사업 등 주택건설 사업을 공기업을 통해 했고요. 지금의 공공부문 빚은 사실은 국가 빚이에요. 최근 UN통계도 국가부채에 공기업 빚을 포함하고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지난 10년간 한국의 GDP는 1.8배 늘었지만 가계빚은 2.2배, 기업빚은 1.9배, 그러나 공공부문 빚은 3.3배나 늘었어요.” 권 전 원장은 “정부 부채에 공기업(비금융) 부채를 합산한 한국의 공공부문 부채가 820조원을 넘는다”며 “이 수치는 GDP의 64.5%에 이르는데 아직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다고 볼 수 없지만, 늘어나는 속도로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정부 재정이 아닌 공기업 통해 국책사업을 벌였기 때문에 통제가 안 된 측면이 많다는 겁니다. 결국 공기업 부채가 한국경제의 대외 평가를 옥죌 수도 있습니다. 가계부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고, 거기다가 공공부문 빚이 빠른 속도로 늘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부채 과도국’으로 인식돼 심각한 위기요인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죠.” ―공공부문 부채를 어떻게 줄여야 합니까. “궁극적으로는 민간의 경영원리 기법을 도입해야 합니다. LH공사를 시켜 임대주택이나 보금자리주택 같은 반값아파트를 짓게 하는 방식은 엄청난 비효율과 비용개념 없이 접근한 사업이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시장경제와 민간 건설시장을 죽이고 부동산 경기를 죽이는 역할을 했어요. 앞으로 공기업 개혁의 초점을, 민간과 경쟁을 통해 부채를 감축하는 방법으로 가야지, 정부를 대행해 비효율적인 사업을 고수해선 곤란합니다.” 권 전 원장은 또 “이제는 공기업 경영에도 가격원리가 도입돼야 한다. 민간과의 경쟁이나 부채절감도 가격원리 도입을 전제하고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공공요금 현실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오히려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있는 상황이 아닙니까. 저소득층 지원은 바우처(정부가 쿠폰을 지급하는 복지서비스)로 해야지, 가격통제로 물가만 낮추면 부자에게까지 혜택을 주자는 것이고, 결국 전 국민이 부채를 떠안는 것밖에 안 됩니다. 이제는 결단의 시점이 왔습니다.” |
“노무현 정부, 혁신도시 건설 중단 못 하게 대못 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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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4월 경북 김천시 남면, 농소면 혁신도시 건설현장. 진입로에 농사를 금지시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당시 행정수도가 충청권에 들어서면 다른 지방이 반발, 지역균형발전 공약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혁신도시 건설. 혁신도시에는 LH공사, 도로공사 등 수도권 공기업과 공공기관 125곳이 강제로 이전토록 명시했다. 이 전직 관료의 얘기다.
“노무현 정부로서는 세종시·혁신도시 건설은 중요한 정치적 과제였어요. 노 대통령은 정권이 넘어가서 사업이 유야무야될까를 굉장히 염려했고, 그전에 상당부분 진척시키기를 희망했지요. ‘최대한 빨리 착공하라’는 지시가 수없이 (건설교통부에) 내려왔고, 당시 정부에 참여했던 저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지보상도 안 끝났는데 착공을 독려했다고 하더군요.
“대단히 빠른 속도였어요. ‘대못을 박았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죠.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이 사업을 중단시키려 계획을 세웠어요.”
2008년 초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6곳에서 이미 공사가 시작됐고 토지보상도 74%나 진행됐다고 한다. 토지보상비로 지급한 돈만 2조4269억원. 취임 초기, 이명박 대통령이 계획 자체를 백지화시키기에는 너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게다가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제주·김천·진주·나주·울산 등 대부분의 도시가 노무현 정권이 끝나기 직전 건설공사를 시작했다.
―보통의 국책사업은 어떻게 추진하나요.
“통상 토지보상이 80~90% 이상 진행되고 첫 삽을 들지만 혁신도시는 착공을 서둘렀어요. 울산은 토지 보상률이 절반을 겨우 넘는 상태에서 시작했고 서귀포는 보상률이 70%인 상태에서 착공식을 가졌습니다.”
그는 “혁신도시 입지가 결정된 것이 2006년 2월임을 감안하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국책사업을 추진한 셈”이라고 했다.
“거듭 말하지만 대단히 빠른 속도였어요. 정치라는 것이 공약을 내걸고 정권을 획득하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있어요. 어찌 보면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일지도 모르죠. 장기간 소요되는 사업을 5년 만에 끝내야 하니까요.
도로는 계획을 수립해 토지를 보상하고 건설, 시험운영까지 보통 5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철도는 여기다 2년이 더 플러스 되고, (계획)도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SOC 같은 대형 국책사업은 장기적 관점에서 10~20년을 생각하면서 정책을 결정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官피아’를 해결하는 길은 조직축소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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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 |
김 의원은 “국책사업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추진됐고, 그 추진방식이 공기업을 통해 진행하다 보니 공기업 부채가 급증했지만 사업 자체를 절대선(絶對善) 절대악(絶對惡)의 개념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간접자본(SOC)은 그 자체로 돈을 벌자고 하는 자본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2000년 전 로마는 지금의 잣대로 볼 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도로와 수로를 만들었어요. 이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로마시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군사작전을 신속하게 할 목적이었어요.
한국의 SOC개발은 1960년대 조국근대화와 같이 출발합니다. 수출입국을 위해 포항·울산·창원·거제·인천에다 항만을 건설했어요. 당연히 경제성이 없었죠. 균형발전과 경제성은 이처럼 양립할 수가 없어요. 경제성보다는 지역 특성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경제성만 따지면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빚어지니까요.
박정희 정권에서 계획경제를 세울 때는 불균형 성장이었어요. 농어촌의 희생 위에 공업을 발전시켜 파이를 전 국민이 나눈다는 논리였는데, 그 파이가 안 나눠지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거의 외과수술과 다름없는 세종시·혁신도시·기업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정책은 그 시대상황에 따라 선택하는 문제이지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고 할 수 없어요.”
―대통령의 토건 공약은 어떻게 해서 나옵니까.
“관료와 정치인이 서로 주고받습니다. 정치인은 아이템을 내라고 하고, 행정부는 하고 싶은 사업을 정치인에게 주죠. 서로 유착이 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경제성 측면보다는 조직의 이익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일단 자기 조직이 커지면 일거리를 찾게 마련입니다. ‘관(官)피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줄일 수밖에 없어요.”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 유독 토건 공약이 많았고 그 결과 공기업 부채로 이어졌습니다.
“외환부족 사태를 거치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고, 이명박 정부 때는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어요. 위기가 오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과제가 지상목표가 돼요. 두 정권 모두 경제성장을 위해 투자가 필요했고, 그래서 국책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봐요.”
―하지만 국책사업의 경기유발 효과가 미미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경제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제 기억으로 2004년 건설교통부 도로정책과장 시절, 한 해 도로예산이 13조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6조~7조원밖에 안 됩니다. 4~5년 전만 해도 SOC 예산이 23조~24조원이었으나 지금은 20조원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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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0월 충남 연기군 남면 세종시 내 중심행정타운 부지조성 공사 현장. 당시 공정률은 54%였다. |
“공직사회의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도로 담당 공무원은 도로예산만 생각하고 철도 담당은 철도만 생각합니다. 국가 전체를 생각 안 하고 자기 분야만 생각하고 서로 욕을 합니다. 국가 공무원은 특정 분야에 헌신하는 자여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SOC 사업이 지금도 있습니다. 당장 폐기처분해야 하는 사업도, 작게 해도 되는 사업도 모두 늘리려 합니다. 왜냐? 자기 자리가 사라지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필요 없는 사업이라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로예산이 그만큼 줄었는데 인력도 줄었나요?
그는 “인력은 그대로다. ‘관피아’를 해결하는 길은 조직축소와 규제철폐밖에 없다. 그게 ‘철밥통’을 사정없이 부숴버린다”고 했다.
“1960년대 국민소득 100달러 국가에서, 자본도 기술도 없는 한국이 2만 달러가 넘는 국가로 발전하는 데 있어 공무원의 기여와 헌신이 지대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30년 전부터 비대화된 관료조직은 드디어 로마의 공화정처럼 비능률과 부패와 암적 존재로 바뀌었습니다. 슬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로마가 도시국가일 때는 공화정이 적합했지만 식민지 팽창으로 늘어난 영토를 다스리며 제국(帝國)으로 바뀌었듯이 100달러 시대에 필요했던 유능한 관료, 그러니까 계획경제와 지시 일변도, 상명하복, 숫자와 보고 위주, 독점구조에 익숙한 관료조직으로는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근본적 관료조직의 개편과 대수술이 불가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