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하던 새정치민주연합, 3월 14일 기점으로 총 22명 無공천 맹폭
⊙ 공천해야 한다는 全 당원, 국민여론조사 결과 나오자 安 측 “또 당했다”
⊙ 소설가 출신 김한길 대표의 완벽시나리오?
⊙ 安, 향후 당내 힘 싸움에서 親盧에 밀릴 듯
⊙ 공천해야 한다는 全 당원, 국민여론조사 결과 나오자 安 측 “또 당했다”
⊙ 소설가 출신 김한길 대표의 완벽시나리오?
⊙ 安, 향후 당내 힘 싸움에서 親盧에 밀릴 듯
- 2014년 4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와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려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무(無)공천 철회 과정은 한 편의 잘 짜진 시나리오를 연상케 한다. 적어도 드러난 과정을 놓고 보면 그런 가정이 제법 설득력을 갖는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安哲秀) 대표가 통합을 발표한 지난 3월 2일부터 기초선거 정당 공천에 대한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린 4월 8일 사이 당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상당히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한길 대표가 안 대표에게 합당 제의를 했던 시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 대표가 안 대표에게 “(민주당도)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정했으니 통합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 시기는 2월 28일이다. 당시 안 대표의 새정치연합(안 대표가 창당하려 했던 신당)은 지방조직이 약해 공천 후보감을 확보하지 못한 진퇴양난의 상태였다. 김 대표의 제의를 안 대표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이야기다. 실제 김 대표의 제의는 안 대표 입장에서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다. 안 대표는 김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無공천 철회 목소리 사라져
합당 전 민주당 내부에서는 기초선거 정당 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었다. 2013년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선거인단 14만7128명을 대상으로 전(全) 당원 투표를 시행한 결과(폐지 67.7%-5만1729명, 유지 32.3%-2만4641명)에 따라 정당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추인했지만, 다수의 의원은 결과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 지도부가 정당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한 직후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가 폐지되면 우리처럼 신인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성의원들의 정치 등용 기회도 줄어든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다른 민주당 한 중진의원도 “민주당만 공천하지 않으면 기호 1번을 받는 새누리당에 완패할 수밖에 없다”며 “또 선거법상 기초선거 후보자들이 집단으로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이후에도 불만의 목소리는 계속 나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논란이 큰 ‘무공천’을 전제로 안 대표와 합당을 선언한 3월 2일 이후 당에서 무공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자취를 감췄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했다. 검색 포털 사이트를 통해 중앙일간지는 물론, 지방일간지, 인터넷 신문을 검색해 본 결과 대학교수 및 정치평론가, 여론조사 전문가가 무공천의 폐단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있었지만,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무공천 폐지를 지적하는 내용의 기사는 없었다.
이 사이 양측의 창당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양측의 창당추진단은 3월 16일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 대회를 열고, 26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합당에 대한 생각이 바뀌더라도 양측 모두 번복하지 못하는 ‘결정적 순간’에 다다른 것이다. 그게 3월 11일이었다.
마치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3월 14일을 기점으로 당내에서 정당 공천 폐지 반대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친노계로 꼽히는 김창호(金蒼浩) 전 국정홍보처장(새정치민주연합 당원)이 신호탄이었다. 그는 한 여론조사기관(리서치뷰)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무공천을 하면 단 1명의 ‘1번 새누리당’ 후보와 경쟁을 해도 ‘전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安哲秀, 뛰쳐나가지 못하게 되자…
앞서(13일) ‘리서치뷰’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이해식(李海植) 구청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또 다른 무소속 후보가 나서는 3자 대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누가 나서더라도 새누리당 후보에게 승산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날인 15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이재명(李在明) 성남시장도 트위터를 통해 “여당이, 공약 지키느라 공천 안 하는 틈을 이용해 정당 공천 폐지 약속을 어기고 지역구 시의원 전원 공천으로 전원 당선을 노리고 있습니다. 야당 측이 공천 안 하고 후보 난립하자 두 명 지역구에 두 명 다 공천해서 시의회 100% 장악을 시도하는 겁니다”라고 무공천 폐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사흘 뒤인 18일 김영환(金榮煥)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기초단체장을 무공천하는데 상당히 선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선거 결과가 참패로, 완패로 나타나게 될 경우 창당에 대한 비판이 일게 될 것이고 당내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김기식(金起式) 의원도 진보 인터넷 매체 《뷰스엔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의 정당 투표 관행으로 보면 정당 공천을 야당만 안 했을 때 엄청난 불이익이 있다”며 “대선에서의 약속을 지켰다는 명분은 살겠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어떻게 보면 손발이 없는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광역선거에서도 뒷심이 딸리는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동영(鄭東泳)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역시 같은 날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이 과연 안철수 의원이 얘기했던 새 정치인지 회의적”이라며 “무공천 결정으로 서울시 현역 구청장 20명이 대부분 낙선하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까지 놓치게 되면, 안철수 의원 역시 그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부영(李富榮) 상임고문도 “전국의 지방선거판은 아수라장”이라며 “대선 공약을 파기한 새누리당은 유리하게 전개되는 선거 판세에 회심의 미소를 짓지만 2번 기호가 사라지게 된 우리 측은 난립하는 무소속 후보들 속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무공천 백지화를 촉구했다.
노무현 재단 기획의원을 역임하고 있는 이원욱(李元旭) 의원은 3월 19일 “새정치민주연합 기초선거 무공천을 철회해야 한다”며 “당이 내각제를 공약으로 하고 선거를 했는데, 헌법 개정을 못 해서 대통령제가 계속 유지된다면 대선 후보 내지 말아야 하나. 풍찬노숙하며 당을 지켜온 당원들에 ‘출마하려면 탈당’하라는 것이 새 정치인가”라고 반문했다.
박지원(朴智元) 의원은 20일 “기초단체 정당 공천을 저는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며 “타당은 공천, 우리만 폐지하면 후보 난립 등 혼란으로 패배하고 조직도 와해한다. 당내, 새정치비전위, 언론에서도 부활론을 제안하고 있다. 통합은 승리를 위해, 승리해야 새 정치가 가능하다. 기초단체 정당 공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자 안 대표는 21일 “지금은 손해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궁극에 이르러서는 역사와 국민의 선택은 정의를 선택해 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안 대표가 무공천 고수 방침을 밝힌 날 박영선(朴映宣)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새누리당만 공천을 한다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 게임을 한다는 거하고 똑같은 현실”이라며 “(무공천은) 저도 지금 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文在寅 의원도 무공천 철회에 가세
무공천 폐지와 관련한 릴레이 비판에 친노 그룹을 대표하는 문재인(文在寅) 의원도 가세했다. 문 의원은 야권 통합 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앙당 창당대회를 이틀 앞둔 3월 24일 부산 지역 언론사 정치부장단 오찬 간담회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은 정치개혁을 위한 공약이었지만 상대방인 새누리당에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만 무공천을 할 경우 일방적인 선거 결과가 우려된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기초선거 무공천이 곧 탈당을 의미하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당 창당과 함께 무공천 방침이 정해지는 바람에 현재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를 계기로 무공천 폐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수많은 의원이 인터뷰, 페이스북을 통해 정당 공천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했다.
“기초선거에서 야당의 궤멸적 패배가 불을 보듯 환해진 지금, 집권당에 의한 완전한 ‘풀뿌리의 장악’이라는 민주주의의 파괴가 예측되는 지금, 무공천은 약속과 진정성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문제가 돼 버렸다.”(3월 25일-박범계 의원)
“공천을 하지 않으면 공멸의 위기가 초래된다. 당 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서울 구청장 선거 전망이 매우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다. 무공천 방침은 전체 당원의 의사를 물어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3월 25일-이해식 강동구청장)
“야당인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음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도리어 어부지리 상황을 즐기고 있다. 이대로 가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총알 앞에 맨주먹으로 싸우는 양상이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3월 26일-원혜영 의원)
“(무공천은) 선거의 유불리(有不利)를 떠나 정당정치 원칙에 맞지 않다. 선거에서 개인에게 떠넘기게 된다면 정당의 책임정치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이 무엇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겠느냐. 지역 선거를 치르는 대다수의 당사자는 지금 거의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힘든 상황이다.”(3월 26일-김현미 의원)
바보 노무현 발언 역풍
안 대표는 3월 31일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후 첫 의원총회에서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바보 같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자기희생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은 그걸 잊지 않고 대통령까지 만들어주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무공천 방침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바보 노무현’을 거론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정청래(鄭淸來) 의원은 “노무현과 안철수의 다른 점은 노무현은 자신을 희생해 가치를 살렸고 안철수는 동지를 죽이고 자신이 살려는 점, 나의 희생과 남의 희생의 차이”라고 비난했다.
안 대표의 ‘바보 노무현’ 발언 이후, 기초 공천제 폐지 반대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3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나온 무공천 반대 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월 31일-입법을 통한 정당 공천제 폐지와 무공천이 본질적으로 같지는 않다. 피해 최소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노영민 의원)>
<4월 1일-대선 당시 약속은 무공천이 아니라 기초 공천제 폐지이므로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당론을 결정해야 한다.(정청래 의원)>
<4월 3일-무공천 하려면 차라리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맞다. 안 대표가 무공천을 대표 브랜드로 하고 있지만, (무공천이) 새 정치의 대표 브랜드가 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허접스러운 결단이 될 수 있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에서 모두 지는 ‘트리플 크라운’ ‘해트트릭’을 (당)하는 것은 명예롭지 않다.(신경민 의원)>
<4월 3일-기초 공천제도의 폐지가 여야 합의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응에 대한 당내 이견이 존재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전 당원 투표로 다시 의견을 묻는 것이 바람직하다.(우상호 의원)>
<4월 5일-나는 처음부터 공천을 주장했다. 룰이라는 것은 서로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하는 것으로 지금으로서는 공천을 하는 것이 맞다.(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최문순 강원도지사)>
<4월 7일-저쪽(여당)이 어른을 링에서 내리지 않고, 이쪽(새정치연합)이 그걸 이길 능력이 없다면 이쪽도 어른을 올려야 공정한 게임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여야 정치권이 지방선거에서 각자 다른 룰로 싸우면 여야 모두 역사에 큰 죄를 짓게 될 것이다.(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시종 충북지사)>
<4월 7일-정당이 자기 길을 결정하지 못하면 당원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목희 의원)>
<4월 8일-지난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의 공약으로 제기된 공천 폐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정치개혁의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정당정치를 확립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정당의 임무는 국민을 위해 좋은 후보를 민주적으로 공천하는 것이다.(정세균 의원)>
<4월 9일-선거는 선의의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공천제 폐지 약속을 깨고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공정한 선거를 위한 공천이 필요하다.(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한범덕 충북 청주시장)>
종합해 보면 3월 2일부터 13일까지 거의 나오지 않았던 비판의 목소리가 합당 절차를 사실상 완료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시점인 14일을 기점으로 다음달(4월) 9일까지 총 22명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15명) 및 기초자치단체장(4명), 기초단체장 예비후보(1명), 상임고문(2명)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절묘한 결과다.
목포 출신의 민주당 한 보좌진은 “2일부터 13일까지는 무공천 폐지의 폐단을 몰라서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반문한 뒤 “소속 의원들이 마치 무공천 방침을 철회해도 안 대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을 노린 것 같다”고 했다.
잠잠하던 진보 언론도 가세
무공천을 고리로 신당 창당에 합의했을 때와 합의한 직후 줄곧 무공천 문제에 침묵을 지키던 진보 언론도 ‘뒤늦게’ 무공천 방침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겨레》는 3월 20일 ‘기호 2번의 자해적 포기’라는 기자 칼럼을 통해 기초 무공천이 몰고 올 각 지역의 대혼돈을 전한 뒤, “선거에서 공정하게 겨뤄서 이기고 지는 것은 후보자 및 정치세력의 실력이자 국민의 뜻이다. 하지만 게임의 룰이 애초부터 다르게 적용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며 “여당 대표선수는 공천이라는 선발 과정을 거친 뒤 중무장(기호 1번)을 갖춰 링 위에 오르지만, 야당 후보는 무장은커녕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그것도 자기편끼리 서로 발이 뒤엉킨 채 출전하게 된다. 그 결과는 보나 마나다”라고 지적했다.
22일 자 사설(‘한 경기 두 규칙’ 이대로 좋은가)을 통해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약속을 어긴 여당과 달리 완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난 대선 때의 공약을 지킴으로써 신뢰를 얻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대통령부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시대에 자기 말을 지키려는 이런 모습은 가상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매우 무책임하다. 자칫 정부 여당의 독주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가 꼭 새 정치의 필요조건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도 ‘기초단체장 전멸? 무공천 다시 판단하라’ 등의 기사를 통해 무공천 폐지 비판여론이 커졌다며 정당 공천제도의 장점(여성 등 소수자 보호)을 소개했다.
충격에 두문불출
당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에서까지 무공천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안 대표는 굽히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성사시켜 대통령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건 것일까.
안 대표는 3월 30일과 4월 4일 박 대통령에게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 공약 이행 등 정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영수(領袖)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청와대의 답변은 ‘노(NO)’였다. 각 당이 지방선거체제로 전환하는 마당에 정치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박준우(朴晙雨) 대통령정무수석은 안 대표가 영수회담에 대한 가부(可否) 답변을 달라고 했던 4월 7일 안 대표를 찾아 박 대통령과의 회담 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안 대표는 더는 견디지 못했다. 그는 4월 8일 오전 김 대표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와 지도부의 (무공천) 소신과 원칙에도 국민과 당원들 간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약속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현장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오늘 당 최고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기초선거 공천 폐지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당원들의 뜻을 묻기로 했다”고 했다. 안 대표는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이번 결정에 대해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전 당원 투표 및 국민여론조사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5선의 이석현(李錫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9일 ‘여론조사 50% + 당원투표 50%’ 방식으로 조사를 실시한 뒤 10일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안 대표가 기초선거 공천 폐지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당원들의 뜻을 묻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을 때 무공천 원칙에서 ‘회군(回軍)’하기 위한 명분 쌓기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무공천 폐지 의견이 더 많을 것이란 예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 대표는 달랐다. 조사 전 안 대표 측 관계자는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에 대한 지지 비율이 높았던 만큼 불(不)공천 방침이 유지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안 대표가 9일 “(여론조사 실시는) 제 소신을 접고 후퇴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다시 한 번 당원 동지들과 국민 여러분의 확인을 받아 더 굳세게 나가자고 하는 게 제 생각”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10일 오전 9시30분 공개된 결과는 53.44% 대 46.55%, ‘공천’이었다. 안 대표의 충격은 컸다. 결정이 나면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던 안 대표는 그로부터 7시간이 지난 오후 4시에야 TV화면에 얼굴을 보였다. 회견이 지연된 것은 안 대표의 ‘두문불출’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10일 오후 한때 안 대표 ‘사퇴설’이 나돌기도 했다.
김한길의 전략?
이날 전 당원 투표 및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지켜본 비주류 성향의 민주당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안 대표가 친노와 김 대표에게 또 당한 것 같네요. 저는 솔직히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소위 ‘민심’으로 해석되는 국민여론조사를 하면서 ‘잘 모름’ 항목을 넣었을 때 감이 왔습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표본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때문에 ‘잘 모름’을 선택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뉠 것입니다. 하나는 정말 잘 몰라서 ‘잘 모름’을 택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공천을 해서 이겼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무공천을 해서 안 대표가 새 정치를 이어나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소극적 안 대표 지지’ 성향으로 볼 수 있지요. ‘잘 모름’ 항목이 없었다면 ‘소극적 안 대표 지지’ 성향의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제 생각이지만 아마 안 대표의 무공천을 지지한다는 대답을 더 많이 했을 것입니다.”
국민여론조사 결과는 ‘잘 모름’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빼고 ‘공천해야 한다’와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한 비율만을 합쳐 다시 백분율로 환산해 도출했다.
이 위원장은 ‘잘 모름’ 문항을 넣었던 것에 대해 “여론조사 항목에 ‘잘 모름’이 안 들어가면 정확한 결과가 안 나온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해서 ‘잘 모름’ 항목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대표와 함께했던 한 관계자는 “또 당한 것”이라며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의원과 친노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사퇴한 데 이어 안 대표가 친노와의 싸움에서 또 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김 대표가 합당을 제안했을 때 몇몇 참모는 ‘역공작’을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나타냈었습니다. 김 대표가 지방선거를 위해 안 대표를 끌어들이려 사전에 치밀한 전략을 세웠고, 무공천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미끼’라고 판단했던 것이죠. 김 대표가 누구입니까. 대통령을 두 번이나 만든 백전노장 아닙니까. 사실 저희는 무공천 여론조사도 받지 말자고 했습니다. 여론조사가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대두했다는 소문 때문이지요.”
참모들이 이런 조언을 했음에도 안 대표가 여론조사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담은 한 관계자는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공천 유지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분석을 안 대표는 아무 의심 없이 믿었다는 것이다. 실제 민병두 의원은 정당 공천 폐지 여부를 다시 결정하기 위한 전 당원 투표 및 국민여론조사 실시와 관련해 “여러 복수의 여론조사기관과 전문가들에게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 자문을 해본 결과 대체로 무공천 유지라는 원안 고수 쪽으로 반응이 나왔다”고 했다. 우원식(禹元植) 의원도 “여론조사와 당원 투표를 섞으면 무조건 무공천 유지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게 얼마나 진정성 있는 얘기인지는 추후 검증할 일이지만 말이다.
앞의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 당원 투표율이 25%였다. 네 명 중 한 명만 투표한 것이다. 당의 진로를 정하는 중요한 투표인데 말이 되느냐. 김 대표가 조금만 조직을 가동했더라면 투표율은 올라갔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반면 친노는 조직적으로 투표 독려가 있었다고 한다. 당원 투표에서 친노가 원하는 무공천 파기가 높게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親盧 조직적 투표 독려 의혹
사실일까. 취재 도중 충북을 지역구로 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당 공천 폐지 여부를 다시 결정하기 위한 전 당원 투표 및 국민여론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원들에게 ‘무공천 철회’를 권유했다는 주장을 듣게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당원들에게 다량 발송했다는 문자메시지에는 “기초선거 무공천은 대선 당시 여야 후보의 공통 공약인데 박근혜 대통령만 약속을 어겼고 새정치연합만 기초공천을 포기하면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당의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충북도당은 “비록 메시지 원문에 ‘무공천 폐지에 찬성해 달라’는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이는 우회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안 대표는 정치적 위상에 또 한 번 타격을 입었다. 향후 안 대표의 당내 입지는 줄어드는 반면 친노·강경파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당내 힘 싸움에서 안 대표가 친노에 밀릴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유력 일간지들은 “기호 2번 얻고 새 정치 잃다” “민주당 출신 후보와 안철수 대표 측 후보 간 ‘싸움’시작?” 《조선일보》, “리더십 상처 입은 안철수 … 친노세력이 사실상 승자” “병원 가봐야 할 정도 충격… 안철수 6시간 반 두문불출”《중앙일보》, “‘공천 우세’에 얼굴 일그러진 안철수… ‘대표 사퇴설’까지?” “안철수 대표, 더 이상 ‘새 정치’ 말하지 말라”《동아일보》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신율(申律)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안철수 대표입니다. 본인 스스로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뒤 나중에 말을 바꾼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번 사안은 과거보다 더욱 깊은 상처를 안 공동대표에게 안겨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이번 사안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새 정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안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새 정치를 할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 그가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한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를 제안하고, 그 결과 10일 공천하기로 함으로써 본인은 새 정치를 더는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지요.”
안 대표는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지난 대선 당시 공약을 지키면서 ‘새 정치’의 성과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국민으로부터 공약을 뒤엎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비(對比)되는 인물로 각인, 차기로 가는 길이 수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을 확보해야 하고, 무엇보다 정치판의 생리(生理)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정치 경력이 미미한 안 대표에게 그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 대표가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지는 예상을 하기 쉽지 않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또는 창당이 정말 ‘김한길 대표의 기획’에 의한 것이냐는 앞으로도 본인의 고백이 없는 한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김한길 대표가 친노들과 손을 잡고 ‘야권 단일화 작전’을 벌였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다만 정치를 잘 아는 친노들이 김 대표의 속마음을 읽고 일정기간 무공천 철회 공세를 자제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상만을 놓고 볼 때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은 의심은 상당한 합리성을 갖고 있다. 구 민주당은 목표를 다 이뤘고, 안 대표의 새정치연합은 실리만 일부 챙기고 있을 뿐 그보다 훨씬 중요한 명분을 다 잃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한길 대표가 안 대표에게 합당 제의를 했던 시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 대표가 안 대표에게 “(민주당도)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정했으니 통합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 시기는 2월 28일이다. 당시 안 대표의 새정치연합(안 대표가 창당하려 했던 신당)은 지방조직이 약해 공천 후보감을 확보하지 못한 진퇴양난의 상태였다. 김 대표의 제의를 안 대표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이야기다. 실제 김 대표의 제의는 안 대표 입장에서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었다. 안 대표는 김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無공천 철회 목소리 사라져
합당 전 민주당 내부에서는 기초선거 정당 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었다. 2013년 7월 20일부터 24일까지 선거인단 14만7128명을 대상으로 전(全) 당원 투표를 시행한 결과(폐지 67.7%-5만1729명, 유지 32.3%-2만4641명)에 따라 정당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추인했지만, 다수의 의원은 결과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 지도부가 정당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한 직후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가 폐지되면 우리처럼 신인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성의원들의 정치 등용 기회도 줄어든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다른 민주당 한 중진의원도 “민주당만 공천하지 않으면 기호 1번을 받는 새누리당에 완패할 수밖에 없다”며 “또 선거법상 기초선거 후보자들이 집단으로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이후에도 불만의 목소리는 계속 나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논란이 큰 ‘무공천’을 전제로 안 대표와 합당을 선언한 3월 2일 이후 당에서 무공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자취를 감췄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했다. 검색 포털 사이트를 통해 중앙일간지는 물론, 지방일간지, 인터넷 신문을 검색해 본 결과 대학교수 및 정치평론가, 여론조사 전문가가 무공천의 폐단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있었지만,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무공천 폐지를 지적하는 내용의 기사는 없었다.
이 사이 양측의 창당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양측의 창당추진단은 3월 16일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 대회를 열고, 26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합당에 대한 생각이 바뀌더라도 양측 모두 번복하지 못하는 ‘결정적 순간’에 다다른 것이다. 그게 3월 11일이었다.
마치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3월 14일을 기점으로 당내에서 정당 공천 폐지 반대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친노계로 꼽히는 김창호(金蒼浩) 전 국정홍보처장(새정치민주연합 당원)이 신호탄이었다. 그는 한 여론조사기관(리서치뷰)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무공천을 하면 단 1명의 ‘1번 새누리당’ 후보와 경쟁을 해도 ‘전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安哲秀, 뛰쳐나가지 못하게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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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3월 2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양측의 힘을 합쳐, 신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며 제3지대에서의 신당 창당을 선언하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다음날인 15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이재명(李在明) 성남시장도 트위터를 통해 “여당이, 공약 지키느라 공천 안 하는 틈을 이용해 정당 공천 폐지 약속을 어기고 지역구 시의원 전원 공천으로 전원 당선을 노리고 있습니다. 야당 측이 공천 안 하고 후보 난립하자 두 명 지역구에 두 명 다 공천해서 시의회 100% 장악을 시도하는 겁니다”라고 무공천 폐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사흘 뒤인 18일 김영환(金榮煥)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기초단체장을 무공천하는데 상당히 선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선거 결과가 참패로, 완패로 나타나게 될 경우 창당에 대한 비판이 일게 될 것이고 당내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김기식(金起式) 의원도 진보 인터넷 매체 《뷰스엔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의 정당 투표 관행으로 보면 정당 공천을 야당만 안 했을 때 엄청난 불이익이 있다”며 “대선에서의 약속을 지켰다는 명분은 살겠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어떻게 보면 손발이 없는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광역선거에서도 뒷심이 딸리는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동영(鄭東泳)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역시 같은 날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이 과연 안철수 의원이 얘기했던 새 정치인지 회의적”이라며 “무공천 결정으로 서울시 현역 구청장 20명이 대부분 낙선하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까지 놓치게 되면, 안철수 의원 역시 그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부영(李富榮) 상임고문도 “전국의 지방선거판은 아수라장”이라며 “대선 공약을 파기한 새누리당은 유리하게 전개되는 선거 판세에 회심의 미소를 짓지만 2번 기호가 사라지게 된 우리 측은 난립하는 무소속 후보들 속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무공천 백지화를 촉구했다.
노무현 재단 기획의원을 역임하고 있는 이원욱(李元旭) 의원은 3월 19일 “새정치민주연합 기초선거 무공천을 철회해야 한다”며 “당이 내각제를 공약으로 하고 선거를 했는데, 헌법 개정을 못 해서 대통령제가 계속 유지된다면 대선 후보 내지 말아야 하나. 풍찬노숙하며 당을 지켜온 당원들에 ‘출마하려면 탈당’하라는 것이 새 정치인가”라고 반문했다.
박지원(朴智元) 의원은 20일 “기초단체 정당 공천을 저는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며 “타당은 공천, 우리만 폐지하면 후보 난립 등 혼란으로 패배하고 조직도 와해한다. 당내, 새정치비전위, 언론에서도 부활론을 제안하고 있다. 통합은 승리를 위해, 승리해야 새 정치가 가능하다. 기초단체 정당 공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자 안 대표는 21일 “지금은 손해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궁극에 이르러서는 역사와 국민의 선택은 정의를 선택해 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안 대표가 무공천 고수 방침을 밝힌 날 박영선(朴映宣)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새누리당만 공천을 한다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 게임을 한다는 거하고 똑같은 현실”이라며 “(무공천은) 저도 지금 좀 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文在寅 의원도 무공천 철회에 가세
무공천 폐지와 관련한 릴레이 비판에 친노 그룹을 대표하는 문재인(文在寅) 의원도 가세했다. 문 의원은 야권 통합 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앙당 창당대회를 이틀 앞둔 3월 24일 부산 지역 언론사 정치부장단 오찬 간담회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은 정치개혁을 위한 공약이었지만 상대방인 새누리당에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만 무공천을 할 경우 일방적인 선거 결과가 우려된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기초선거 무공천이 곧 탈당을 의미하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당 창당과 함께 무공천 방침이 정해지는 바람에 현재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를 계기로 무공천 폐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수많은 의원이 인터뷰, 페이스북을 통해 정당 공천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했다.
“기초선거에서 야당의 궤멸적 패배가 불을 보듯 환해진 지금, 집권당에 의한 완전한 ‘풀뿌리의 장악’이라는 민주주의의 파괴가 예측되는 지금, 무공천은 약속과 진정성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문제가 돼 버렸다.”(3월 25일-박범계 의원)
“공천을 하지 않으면 공멸의 위기가 초래된다. 당 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서울 구청장 선거 전망이 매우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다. 무공천 방침은 전체 당원의 의사를 물어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3월 25일-이해식 강동구청장)
“야당인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음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도리어 어부지리 상황을 즐기고 있다. 이대로 가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총알 앞에 맨주먹으로 싸우는 양상이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3월 26일-원혜영 의원)
“(무공천은) 선거의 유불리(有不利)를 떠나 정당정치 원칙에 맞지 않다. 선거에서 개인에게 떠넘기게 된다면 정당의 책임정치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이 무엇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겠느냐. 지역 선거를 치르는 대다수의 당사자는 지금 거의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힘든 상황이다.”(3월 26일-김현미 의원)
바보 노무현 발언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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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유승희 의원과 민주당 여성지방의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는 위헌이며, 정치발전 후퇴라고 주장했다. |
정청래(鄭淸來) 의원은 “노무현과 안철수의 다른 점은 노무현은 자신을 희생해 가치를 살렸고 안철수는 동지를 죽이고 자신이 살려는 점, 나의 희생과 남의 희생의 차이”라고 비난했다.
안 대표의 ‘바보 노무현’ 발언 이후, 기초 공천제 폐지 반대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3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나온 무공천 반대 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월 31일-입법을 통한 정당 공천제 폐지와 무공천이 본질적으로 같지는 않다. 피해 최소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노영민 의원)>
<4월 1일-대선 당시 약속은 무공천이 아니라 기초 공천제 폐지이므로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당론을 결정해야 한다.(정청래 의원)>
<4월 3일-무공천 하려면 차라리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맞다. 안 대표가 무공천을 대표 브랜드로 하고 있지만, (무공천이) 새 정치의 대표 브랜드가 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허접스러운 결단이 될 수 있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에서 모두 지는 ‘트리플 크라운’ ‘해트트릭’을 (당)하는 것은 명예롭지 않다.(신경민 의원)>
<4월 3일-기초 공천제도의 폐지가 여야 합의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응에 대한 당내 이견이 존재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전 당원 투표로 다시 의견을 묻는 것이 바람직하다.(우상호 의원)>
<4월 5일-나는 처음부터 공천을 주장했다. 룰이라는 것은 서로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하는 것으로 지금으로서는 공천을 하는 것이 맞다.(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최문순 강원도지사)>
<4월 7일-저쪽(여당)이 어른을 링에서 내리지 않고, 이쪽(새정치연합)이 그걸 이길 능력이 없다면 이쪽도 어른을 올려야 공정한 게임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여야 정치권이 지방선거에서 각자 다른 룰로 싸우면 여야 모두 역사에 큰 죄를 짓게 될 것이다.(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시종 충북지사)>
<4월 7일-정당이 자기 길을 결정하지 못하면 당원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목희 의원)>
<4월 8일-지난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의 공약으로 제기된 공천 폐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정치개혁의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정당정치를 확립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다. 정당의 임무는 국민을 위해 좋은 후보를 민주적으로 공천하는 것이다.(정세균 의원)>
<4월 9일-선거는 선의의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공천제 폐지 약속을 깨고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공정한 선거를 위한 공천이 필요하다.(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한범덕 충북 청주시장)>
종합해 보면 3월 2일부터 13일까지 거의 나오지 않았던 비판의 목소리가 합당 절차를 사실상 완료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시점인 14일을 기점으로 다음달(4월) 9일까지 총 22명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15명) 및 기초자치단체장(4명), 기초단체장 예비후보(1명), 상임고문(2명)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절묘한 결과다.
목포 출신의 민주당 한 보좌진은 “2일부터 13일까지는 무공천 폐지의 폐단을 몰라서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반문한 뒤 “소속 의원들이 마치 무공천 방침을 철회해도 안 대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을 노린 것 같다”고 했다.
잠잠하던 진보 언론도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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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6·4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장단 회의가 열린 서울 여의도 당 대표실에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와 선대위원장들이 자리를 함께한 가운데 문재인 선대위원장과 안 대표가 논의를 하고 있다. |
22일 자 사설(‘한 경기 두 규칙’ 이대로 좋은가)을 통해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약속을 어긴 여당과 달리 완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난 대선 때의 공약을 지킴으로써 신뢰를 얻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대통령부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시대에 자기 말을 지키려는 이런 모습은 가상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매우 무책임하다. 자칫 정부 여당의 독주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가 꼭 새 정치의 필요조건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도 ‘기초단체장 전멸? 무공천 다시 판단하라’ 등의 기사를 통해 무공천 폐지 비판여론이 커졌다며 정당 공천제도의 장점(여성 등 소수자 보호)을 소개했다.
충격에 두문불출
당과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에서까지 무공천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안 대표는 굽히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성사시켜 대통령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건 것일까.
안 대표는 3월 30일과 4월 4일 박 대통령에게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 공약 이행 등 정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영수(領袖)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청와대의 답변은 ‘노(NO)’였다. 각 당이 지방선거체제로 전환하는 마당에 정치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박준우(朴晙雨) 대통령정무수석은 안 대표가 영수회담에 대한 가부(可否) 답변을 달라고 했던 4월 7일 안 대표를 찾아 박 대통령과의 회담 불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안 대표는 더는 견디지 못했다. 그는 4월 8일 오전 김 대표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저와 지도부의 (무공천) 소신과 원칙에도 국민과 당원들 간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약속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현장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오늘 당 최고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기초선거 공천 폐지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당원들의 뜻을 묻기로 했다”고 했다. 안 대표는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이번 결정에 대해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전 당원 투표 및 국민여론조사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5선의 이석현(李錫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9일 ‘여론조사 50% + 당원투표 50%’ 방식으로 조사를 실시한 뒤 10일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안 대표가 기초선거 공천 폐지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당원들의 뜻을 묻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을 때 무공천 원칙에서 ‘회군(回軍)’하기 위한 명분 쌓기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무공천 폐지 의견이 더 많을 것이란 예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 대표는 달랐다. 조사 전 안 대표 측 관계자는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에 대한 지지 비율이 높았던 만큼 불(不)공천 방침이 유지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안 대표가 9일 “(여론조사 실시는) 제 소신을 접고 후퇴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다시 한 번 당원 동지들과 국민 여러분의 확인을 받아 더 굳세게 나가자고 하는 게 제 생각”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10일 오전 9시30분 공개된 결과는 53.44% 대 46.55%, ‘공천’이었다. 안 대표의 충격은 컸다. 결정이 나면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던 안 대표는 그로부터 7시간이 지난 오후 4시에야 TV화면에 얼굴을 보였다. 회견이 지연된 것은 안 대표의 ‘두문불출’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10일 오후 한때 안 대표 ‘사퇴설’이 나돌기도 했다.
김한길의 전략?
이날 전 당원 투표 및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지켜본 비주류 성향의 민주당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안 대표가 친노와 김 대표에게 또 당한 것 같네요. 저는 솔직히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소위 ‘민심’으로 해석되는 국민여론조사를 하면서 ‘잘 모름’ 항목을 넣었을 때 감이 왔습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표본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때문에 ‘잘 모름’을 선택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뉠 것입니다. 하나는 정말 잘 몰라서 ‘잘 모름’을 택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공천을 해서 이겼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무공천을 해서 안 대표가 새 정치를 이어나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소극적 안 대표 지지’ 성향으로 볼 수 있지요. ‘잘 모름’ 항목이 없었다면 ‘소극적 안 대표 지지’ 성향의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제 생각이지만 아마 안 대표의 무공천을 지지한다는 대답을 더 많이 했을 것입니다.”
국민여론조사 결과는 ‘잘 모름’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빼고 ‘공천해야 한다’와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한 비율만을 합쳐 다시 백분율로 환산해 도출했다.
이 위원장은 ‘잘 모름’ 문항을 넣었던 것에 대해 “여론조사 항목에 ‘잘 모름’이 안 들어가면 정확한 결과가 안 나온다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해서 ‘잘 모름’ 항목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대표와 함께했던 한 관계자는 “또 당한 것”이라며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의원과 친노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사퇴한 데 이어 안 대표가 친노와의 싸움에서 또 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김 대표가 합당을 제안했을 때 몇몇 참모는 ‘역공작’을 우려하며 반대 의사를 나타냈었습니다. 김 대표가 지방선거를 위해 안 대표를 끌어들이려 사전에 치밀한 전략을 세웠고, 무공천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미끼’라고 판단했던 것이죠. 김 대표가 누구입니까. 대통령을 두 번이나 만든 백전노장 아닙니까. 사실 저희는 무공천 여론조사도 받지 말자고 했습니다. 여론조사가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대두했다는 소문 때문이지요.”
참모들이 이런 조언을 했음에도 안 대표가 여론조사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담은 한 관계자는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공천 유지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분석을 안 대표는 아무 의심 없이 믿었다는 것이다. 실제 민병두 의원은 정당 공천 폐지 여부를 다시 결정하기 위한 전 당원 투표 및 국민여론조사 실시와 관련해 “여러 복수의 여론조사기관과 전문가들에게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 자문을 해본 결과 대체로 무공천 유지라는 원안 고수 쪽으로 반응이 나왔다”고 했다. 우원식(禹元植) 의원도 “여론조사와 당원 투표를 섞으면 무조건 무공천 유지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게 얼마나 진정성 있는 얘기인지는 추후 검증할 일이지만 말이다.
앞의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 당원 투표율이 25%였다. 네 명 중 한 명만 투표한 것이다. 당의 진로를 정하는 중요한 투표인데 말이 되느냐. 김 대표가 조금만 조직을 가동했더라면 투표율은 올라갔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반면 친노는 조직적으로 투표 독려가 있었다고 한다. 당원 투표에서 친노가 원하는 무공천 파기가 높게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親盧 조직적 투표 독려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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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4월 10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비공개 사전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후 자신의 대표실로 들어가고 있다. |
이번 사태로 인해 안 대표는 정치적 위상에 또 한 번 타격을 입었다. 향후 안 대표의 당내 입지는 줄어드는 반면 친노·강경파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당내 힘 싸움에서 안 대표가 친노에 밀릴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유력 일간지들은 “기호 2번 얻고 새 정치 잃다” “민주당 출신 후보와 안철수 대표 측 후보 간 ‘싸움’시작?” 《조선일보》, “리더십 상처 입은 안철수 … 친노세력이 사실상 승자” “병원 가봐야 할 정도 충격… 안철수 6시간 반 두문불출”《중앙일보》, “‘공천 우세’에 얼굴 일그러진 안철수… ‘대표 사퇴설’까지?” “안철수 대표, 더 이상 ‘새 정치’ 말하지 말라”《동아일보》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신율(申律)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안철수 대표입니다. 본인 스스로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뒤 나중에 말을 바꾼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번 사안은 과거보다 더욱 깊은 상처를 안 공동대표에게 안겨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이번 사안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새 정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안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새 정치를 할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 그가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한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를 제안하고, 그 결과 10일 공천하기로 함으로써 본인은 새 정치를 더는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지요.”
안 대표는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지난 대선 당시 공약을 지키면서 ‘새 정치’의 성과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국민으로부터 공약을 뒤엎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비(對比)되는 인물로 각인, 차기로 가는 길이 수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을 확보해야 하고, 무엇보다 정치판의 생리(生理)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정치 경력이 미미한 안 대표에게 그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 대표가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개척할지는 예상을 하기 쉽지 않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또는 창당이 정말 ‘김한길 대표의 기획’에 의한 것이냐는 앞으로도 본인의 고백이 없는 한 뚜렷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김한길 대표가 친노들과 손을 잡고 ‘야권 단일화 작전’을 벌였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다만 정치를 잘 아는 친노들이 김 대표의 속마음을 읽고 일정기간 무공천 철회 공세를 자제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상만을 놓고 볼 때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은 의심은 상당한 합리성을 갖고 있다. 구 민주당은 목표를 다 이뤘고, 안 대표의 새정치연합은 실리만 일부 챙기고 있을 뿐 그보다 훨씬 중요한 명분을 다 잃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