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權魯甲, 韓相震 서울대 명예교수 통해 안철수에게 합당 당위성 전해
⊙ 비슷한 시기 동교동 특무상사 李訓平, 安측 金成植 전 의원 설득
⊙ 동교동계가 영입에 앞장섰던 孫鶴圭, 야권 대선 후보 되는 데는 실패
⊙ 비슷한 시기 동교동 특무상사 李訓平, 安측 金成植 전 의원 설득
⊙ 동교동계가 영입에 앞장섰던 孫鶴圭, 야권 대선 후보 되는 데는 실패
- 2013년 8월 6일 서울광장 민주당 천막 당사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김한길 대표가 권노갑 상임고문(가운데)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13년 말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전까지 민주당의 지지율은 10%를 겨우 넘는 데 머물렀다. 안철수 신당 때문이었다. 이 기간(2013년 12월~2014년 1, 2월)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안철수(安哲秀)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는 가정하에 대략 새누리당이 40%, 안철수 신당이 25%, 민주당이 14% 정도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접할 때마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權魯甲)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의 걱정은 컸다. 126석의 제1야당이 안철수라는 단기필마(單騎匹馬)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과 함께 일궈 온 60년 전통의 ‘민주당이 사라지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느꼈다. 똘똘 뭉쳐도 어려운 상황에서 ‘안철수 신당’이 창당하면 야권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권 고문은 예전부터 가깝게 지낸 한상진(韓相震)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한 교수는 DJ가 신뢰한 교수 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은 2013년 말 마주앉았다. 이날 권 고문은 한 교수에게 민주당과 안 의원은 함께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의 이야기다.
“권 고문이 ‘정당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안 의원이 새정치의 뜻을 이루려면 민주당과 통합을 해야 한다. 저렇게 혼자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많지 않았느냐. 만약 안 의원이 혼자 창당을 해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안철수 신당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한 교수에게 설명했습니다. 한 교수도 권 고문 이야기에 동의한 것으로 압니다.”
권 고문은 유력 정치인들이 제3당을 만들었지만 실패한 사례로 박찬종(신정당), 이인제(국민신당), 문국현(창조한국당)의 경우를 들었다고 한다.
권 고문, 한 교수와 두 번 만나 한 말이…
2014년 1월 중순쯤 권 고문과 한 교수는 다시 한 번 만났다. 권 고문은 이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동교동계 특무상사라 불리는 이훈평(李訓平) 전 의원을 통해 들어봤다. ‘특무상사’란 ▲밑바닥 당료에서 출발해 20, 30년간 당 생활을 했고 ▲야당 한 길만을 걸었으며 ▲과거 대여투쟁의 선봉에 서서 몸으로 부딪쳤던 인사들을 일컫는 별칭이다. 이 전 의원은 지난 1962년 권 고문을 처음 만난 이래 줄곧 ‘권노갑의 그림자’로 공인받아 온 인물이다.
그는 “선거를 치르려면 소위 당을 이끄는 깃대잡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에는 깃대잡이가 없다. 반대로 안철수 의원 측은 깃대잡이는 있는데 그를 지원할 세력이 없다. 정권교체를 하려면 힘을 합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이야기를 안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권 고문이 한 교수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한 교수는 2012년 대선 당시 진심 캠프 국정자문단에서 활동했고, 이후 정책네트워크 ‘내일’ 자문위원을 지내 안 대표와 인연이 있다. 한 교수와의 회동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권 고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 의원이었다. 그렇게 해서 권 고문과 안 의원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것이 화제가 된 2월 13일 회동이었다. 권 고문이 개인적으로 안 의원을 만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권 고문 측 관계자는 “2월 13일 회동 전까지 권 고문은 안 의원을 만나면 간단한 인사만 했을 뿐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했다.
3월 18일 자 《중앙일보》를 보면 이날 권 고문은 한 교수를 만났을 때 했던 말과 똑같은 이야기를 안 의원에게 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신당으로) 나뉘어 가면 여당만 유리해진다. 안 의원이 (민주당에) 들어와야 (대권의) 기회가 있다. 아이크(아이젠하워)도 레이건도 (기존 정당인 공화당에) 들어왔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아이젠하워는 미국 공화당에 들어가 대선 후보가 됐고, 민주당원이던 레이건 역시 공화당에 들어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승부를 보며 대통령이 됐다. 미국도 인물을 끌어들여 정권을 잡지 않는가. 민주당과 합쳐야 안 의원에게 길이 있다.”
권 고문의 이야기에 안 의원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동교동계 인사들이 말한 바로는 이외에도 두 사람은 DJ의 햇볕정책, 정강정책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안철수, DJ와 추구하는 방향 비슷하더라”
여기서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첫 번째는 안 의원에 대한 권 고문의 평가다. 권 고문과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전직 언론인이 말한 바로는 권 고문이 안 의원을 ‘아마추어 정치인’으로 봤다. 이와 관련, 이 전 의원은 “전에는 권 고문이 안철수라는 사람에 대해 경험과 특별함이 없는 영양가 없는 인물로 평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만나 보고 나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권 고문의 정확한 표현이 이렇더라고요. ‘만나 보니까 녹록지 않은 사람이더라’.”
—어떤 점에서 녹록지 않다는 평가를 한 겁니까.
“정치 공부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남북문제나,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 우리 김대중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른 게 없었다. 그래서 감동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안 의원을 DJ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는 것입니까.
“(DJ와) 추구하는 방향도 비슷하고, 햇볕정책도 잘 이해하고 있고, 이런 데서 상당히 점수를 준 것 같더군요.”
두 번째로 궁금한 점은 회동 당시 과연 친노(親盧)세력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었느냐였다. 동교동계와 안 의원이 친노 세력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18대 대선 때 한광옥(韓光玉), 한화갑(韓和甲), 김경재(金景梓) 전 의원 등 대표적인 동교동계 인사들이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지지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과거 권 고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6·15 정상회담을 특검하고 민주당을 분당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근본원인도 여기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경향신문》 7월 9일 자)고 말한 바 있다.
권 고문과 가까운 인사는 “권 고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노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이 떠질 정도’라는 이야기를 가끔 했었다”고 전했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 측과 얼굴을 붉혔다.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에서 상황실장을 맡았던 홍영표 의원은 저서 《비망록》(2013년 11월 발간)에서, 2012년 11월 23일 문 후보 측과 안 후보 측의 특사 회담에서 안 후보 측이 자신들의 여론조사 방안(‘박근혜 후보와의 경쟁력 조사 50%+단순 지지도 조사 50%’)을 최후통첩으로 제안하며 수용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 측이 이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이 방식대로 조사했더니 문 후보가 이긴다는 결과가 안 후보 쪽에 흘러들어 가면서 안 후보가 갑자기 사퇴했다는 요지다. 지난해 12월 2일엔 안 후보 측이 선거를 돕는 조건으로 ‘문재인, 안철수가 완전히 새로운 정당 설립을 추진하고자 한다. 안 전 후보가 전권을 갖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요구했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 안 의원 측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전 의원은 “그런 부분은 민감하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안 의원도 친노에 대해 잘 알지 않겠느냐. 만약 김한길 대표가 아니었다면 안 의원이 손잡았을까.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권 고문은 민주당 김한길 대표에게도 안 의원과의 합당이 민주당의 살길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가끔 김 대표를 볼 때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누군가의 힘이 필요할 때에는 그 세력이 약할지라도 내 것을 다 주고라도 합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합당 추진의 당위성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DJ는 1991년 이기택 전 총재의 ‘꼬마민주당’과 합쳐 민주당을 창당할 때 이 전 총재를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했었다. 김 대표는 안 대표와 합당을 하면서 창당 지분을 5대5로 나누기로 했다.
李訓平, 金成植 회동
권 고문이 한 교수, 안 의원에게 합당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을 시기, 이 전 의원은 김성식(金成植) 전 의원을 만나 민주당과 손을 잡으라고 충고했다. 이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은 16대 총선(관악갑)에서 맞붙은 인연이 있다. 당시 승리자는 이 전 의원이었다. 이 전 의원의 얘기다.
“제가 김성식 전 의원이랑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 친구가 안 의원 쪽에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지금 안 의원 쪽에는 당을 창당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과 힘을 합쳐라. 사람만 바꾼다고 새정치는 아니지 않으냐. 합당할 경우 당신은 지도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합당하면 절대 새정치를 못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이후에 만났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개인적으로, 그 친구(김성식 전 의원) 능력이 아까워서 충고한 것인데 전혀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아, 이게 너의 한계구나고 생각해서 그다음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김 전 의원은 안 의원과 함께했을 때 초지일관 ‘신당 창당을 통한 독자노선’을 견지했었다. 김 전 의원은 깜짝 합당 선언 전날인 3월 1일 다음 날에 일어날 일은 예상도 못한 채 한 방송에 출연, 제3신당 창당의 당위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두 가게 독점 상태로 인해 국민에게 맛있는 것을 못 내고 있어서 저희가 새로운 가게를 내려고 하는 거다. 우리는 우리 메뉴를 팔아야 한다. 기존 가게들도 거기에 자극 받아서 선택의 폭을 넓혀 드리기 위해 메뉴도 개발하고, 주방도 깨끗이 해야지 서로 메뉴를 섞어서 팔자고 하면 국민에게 좋은 정치를 선물할 수 없다. 국민이 새정치에 바라는 것은 양당 중심의 낡은 정치 틀을 깨고, 힘들지만 험한 길을 정도로 걸어가라는 것이고, 우리는 그 주문을 따르겠다.”
그런 그에게 합당선언이 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안 의원과 김 대표가 합당선언을 발표한 날(3월 2일) 그는 트위터에 <새정치의 뜻을 잃지 않는다면 통합도 나름 길이 될 수 있겠지요. 잘되길 기원합니다. 어느 길이 절대 선인지 가늠할 능력조차 제겐 없습니다. 다만,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어 우리 정치구조 자체를 바꿔 보려는 저의 꿈이 간절했기에, 그 꿈을 나누는 과정에서 쌓은 업보는 제가 안고 가야 하기에, 저는 고개부터 숙이고 오랜 기간 홀로 근신하고자 합니다. 고민은 없습니다. 꿈을 가슴에 묻는 아픔이 있을 뿐. 그 또한 저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안 의원 곁을 떠났다.
취재 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 의원은 김 전 의원이 떠난 이후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3월 중순 김 전 의원을 직접 만난 측근이 전해 준 이야기다.
이후 연락이 오진 않았을까. 김 전 의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측근에게 “18대 국회의원 하면서 하고 싶은 일 다 해 봤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끝까지 남아 너를(측근) 챙겨 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아직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정치는 꼭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안철수, 그리고 이인제·김중권·손학규
권 고문의 설득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3신당 창당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안 의원은 권 고문과 만난 지 20일 만에 민주당과의 합당에 전격 합의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민주당과 통합을 선언한 직후, 권 고문에게 전화를 걸어 “고문님만 믿고 갑니다”라고 했다.
‘당신 이야기대로 합당했으니, 자신이 아이크(아이젠하워)나 레이건이 될 수 있도록 동교동이 지원해 달라’는 뜻이 담긴 인사였을 것이다. 실제 호남 쪽에서는 차기 대선에 마땅한 ‘호남 후보’가 없는 동교동계가 안 의원을 호남 대표주자로 민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대표의 부인인 김미경 교수는 전남 순천 출신이라 안 대표가 ‘호남의 사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안철수 대표는 정말 2017년 정권교체의 ‘대표주자’로 나설수 있을 것인가. 그거야 의심의 여지 없이 안 대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만, 이인제 의원이 정치적 유랑 끝에 민주당에 합류, 유력한 대권주자가 됐지만 권력핵심의 지원을 받지 못해 실패했다는 점,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를 받고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김중권(金重權) 전 대표가 참담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던 점, 동교동계의 지원 약속을 믿고 민주당에 합류했던 손학규 전 대표가 결정적 순간에 승천(昇天)하지 못했던 사례 등은 안 대표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접할 때마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權魯甲)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의 걱정은 컸다. 126석의 제1야당이 안철수라는 단기필마(單騎匹馬)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과 함께 일궈 온 60년 전통의 ‘민주당이 사라지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느꼈다. 똘똘 뭉쳐도 어려운 상황에서 ‘안철수 신당’이 창당하면 야권은 지리멸렬(支離滅裂)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권 고문은 예전부터 가깝게 지낸 한상진(韓相震)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한 교수는 DJ가 신뢰한 교수 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은 2013년 말 마주앉았다. 이날 권 고문은 한 교수에게 민주당과 안 의원은 함께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의 이야기다.
“권 고문이 ‘정당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안 의원이 새정치의 뜻을 이루려면 민주당과 통합을 해야 한다. 저렇게 혼자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많지 않았느냐. 만약 안 의원이 혼자 창당을 해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안철수 신당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한 교수에게 설명했습니다. 한 교수도 권 고문 이야기에 동의한 것으로 압니다.”
권 고문은 유력 정치인들이 제3당을 만들었지만 실패한 사례로 박찬종(신정당), 이인제(국민신당), 문국현(창조한국당)의 경우를 들었다고 한다.
권 고문, 한 교수와 두 번 만나 한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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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그는 “선거를 치르려면 소위 당을 이끄는 깃대잡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에는 깃대잡이가 없다. 반대로 안철수 의원 측은 깃대잡이는 있는데 그를 지원할 세력이 없다. 정권교체를 하려면 힘을 합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이야기를 안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권 고문이 한 교수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한 교수는 2012년 대선 당시 진심 캠프 국정자문단에서 활동했고, 이후 정책네트워크 ‘내일’ 자문위원을 지내 안 대표와 인연이 있다. 한 교수와의 회동을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권 고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 의원이었다. 그렇게 해서 권 고문과 안 의원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것이 화제가 된 2월 13일 회동이었다. 권 고문이 개인적으로 안 의원을 만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권 고문 측 관계자는 “2월 13일 회동 전까지 권 고문은 안 의원을 만나면 간단한 인사만 했을 뿐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했다.
3월 18일 자 《중앙일보》를 보면 이날 권 고문은 한 교수를 만났을 때 했던 말과 똑같은 이야기를 안 의원에게 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신당으로) 나뉘어 가면 여당만 유리해진다. 안 의원이 (민주당에) 들어와야 (대권의) 기회가 있다. 아이크(아이젠하워)도 레이건도 (기존 정당인 공화당에) 들어왔다.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아이젠하워는 미국 공화당에 들어가 대선 후보가 됐고, 민주당원이던 레이건 역시 공화당에 들어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승부를 보며 대통령이 됐다. 미국도 인물을 끌어들여 정권을 잡지 않는가. 민주당과 합쳐야 안 의원에게 길이 있다.”
권 고문의 이야기에 안 의원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동교동계 인사들이 말한 바로는 이외에도 두 사람은 DJ의 햇볕정책, 정강정책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안철수, DJ와 추구하는 방향 비슷하더라”
여기서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첫 번째는 안 의원에 대한 권 고문의 평가다. 권 고문과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전직 언론인이 말한 바로는 권 고문이 안 의원을 ‘아마추어 정치인’으로 봤다. 이와 관련, 이 전 의원은 “전에는 권 고문이 안철수라는 사람에 대해 경험과 특별함이 없는 영양가 없는 인물로 평가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만나 보고 나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권 고문의 정확한 표현이 이렇더라고요. ‘만나 보니까 녹록지 않은 사람이더라’.”
—어떤 점에서 녹록지 않다는 평가를 한 겁니까.
“정치 공부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남북문제나,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 우리 김대중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른 게 없었다. 그래서 감동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안 의원을 DJ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는 것입니까.
“(DJ와) 추구하는 방향도 비슷하고, 햇볕정책도 잘 이해하고 있고, 이런 데서 상당히 점수를 준 것 같더군요.”
두 번째로 궁금한 점은 회동 당시 과연 친노(親盧)세력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었느냐였다. 동교동계와 안 의원이 친노 세력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18대 대선 때 한광옥(韓光玉), 한화갑(韓和甲), 김경재(金景梓) 전 의원 등 대표적인 동교동계 인사들이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지지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과거 권 고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6·15 정상회담을 특검하고 민주당을 분당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근본원인도 여기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경향신문》 7월 9일 자)고 말한 바 있다.
권 고문과 가까운 인사는 “권 고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노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이 떠질 정도’라는 이야기를 가끔 했었다”고 전했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 측과 얼굴을 붉혔다.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에서 상황실장을 맡았던 홍영표 의원은 저서 《비망록》(2013년 11월 발간)에서, 2012년 11월 23일 문 후보 측과 안 후보 측의 특사 회담에서 안 후보 측이 자신들의 여론조사 방안(‘박근혜 후보와의 경쟁력 조사 50%+단순 지지도 조사 50%’)을 최후통첩으로 제안하며 수용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 측이 이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이 방식대로 조사했더니 문 후보가 이긴다는 결과가 안 후보 쪽에 흘러들어 가면서 안 후보가 갑자기 사퇴했다는 요지다. 지난해 12월 2일엔 안 후보 측이 선거를 돕는 조건으로 ‘문재인, 안철수가 완전히 새로운 정당 설립을 추진하고자 한다. 안 전 후보가 전권을 갖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요구했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 안 의원 측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전 의원은 “그런 부분은 민감하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안 의원도 친노에 대해 잘 알지 않겠느냐. 만약 김한길 대표가 아니었다면 안 의원이 손잡았을까.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권 고문은 민주당 김한길 대표에게도 안 의원과의 합당이 민주당의 살길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가끔 김 대표를 볼 때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누군가의 힘이 필요할 때에는 그 세력이 약할지라도 내 것을 다 주고라도 합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합당 추진의 당위성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DJ는 1991년 이기택 전 총재의 ‘꼬마민주당’과 합쳐 민주당을 창당할 때 이 전 총재를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했었다. 김 대표는 안 대표와 합당을 하면서 창당 지분을 5대5로 나누기로 했다.
李訓平, 金成植 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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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훈평 전 민주당 의원. |
“제가 김성식 전 의원이랑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 친구가 안 의원 쪽에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지금 안 의원 쪽에는 당을 창당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과 힘을 합쳐라. 사람만 바꾼다고 새정치는 아니지 않으냐. 합당할 경우 당신은 지도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합당하면 절대 새정치를 못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이후에 만났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개인적으로, 그 친구(김성식 전 의원) 능력이 아까워서 충고한 것인데 전혀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아, 이게 너의 한계구나고 생각해서 그다음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김 전 의원은 안 의원과 함께했을 때 초지일관 ‘신당 창당을 통한 독자노선’을 견지했었다. 김 전 의원은 깜짝 합당 선언 전날인 3월 1일 다음 날에 일어날 일은 예상도 못한 채 한 방송에 출연, 제3신당 창당의 당위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두 가게 독점 상태로 인해 국민에게 맛있는 것을 못 내고 있어서 저희가 새로운 가게를 내려고 하는 거다. 우리는 우리 메뉴를 팔아야 한다. 기존 가게들도 거기에 자극 받아서 선택의 폭을 넓혀 드리기 위해 메뉴도 개발하고, 주방도 깨끗이 해야지 서로 메뉴를 섞어서 팔자고 하면 국민에게 좋은 정치를 선물할 수 없다. 국민이 새정치에 바라는 것은 양당 중심의 낡은 정치 틀을 깨고, 힘들지만 험한 길을 정도로 걸어가라는 것이고, 우리는 그 주문을 따르겠다.”
그런 그에게 합당선언이 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안 의원과 김 대표가 합당선언을 발표한 날(3월 2일) 그는 트위터에 <새정치의 뜻을 잃지 않는다면 통합도 나름 길이 될 수 있겠지요. 잘되길 기원합니다. 어느 길이 절대 선인지 가늠할 능력조차 제겐 없습니다. 다만,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어 우리 정치구조 자체를 바꿔 보려는 저의 꿈이 간절했기에, 그 꿈을 나누는 과정에서 쌓은 업보는 제가 안고 가야 하기에, 저는 고개부터 숙이고 오랜 기간 홀로 근신하고자 합니다. 고민은 없습니다. 꿈을 가슴에 묻는 아픔이 있을 뿐. 그 또한 저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안 의원 곁을 떠났다.
취재 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 의원은 김 전 의원이 떠난 이후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3월 중순 김 전 의원을 직접 만난 측근이 전해 준 이야기다.
이후 연락이 오진 않았을까. 김 전 의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측근에게 “18대 국회의원 하면서 하고 싶은 일 다 해 봤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끝까지 남아 너를(측근) 챙겨 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아직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정치는 꼭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안철수, 그리고 이인제·김중권·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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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4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와 관련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당신 이야기대로 합당했으니, 자신이 아이크(아이젠하워)나 레이건이 될 수 있도록 동교동이 지원해 달라’는 뜻이 담긴 인사였을 것이다. 실제 호남 쪽에서는 차기 대선에 마땅한 ‘호남 후보’가 없는 동교동계가 안 의원을 호남 대표주자로 민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대표의 부인인 김미경 교수는 전남 순천 출신이라 안 대표가 ‘호남의 사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안철수 대표는 정말 2017년 정권교체의 ‘대표주자’로 나설수 있을 것인가. 그거야 의심의 여지 없이 안 대표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만, 이인제 의원이 정치적 유랑 끝에 민주당에 합류, 유력한 대권주자가 됐지만 권력핵심의 지원을 받지 못해 실패했다는 점,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를 받고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김중권(金重權) 전 대표가 참담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던 점, 동교동계의 지원 약속을 믿고 민주당에 합류했던 손학규 전 대표가 결정적 순간에 승천(昇天)하지 못했던 사례 등은 안 대표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