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民心의 바로미터인 자영업자·화이트칼라층의 민주당 긍정 평가는 각각 9%, 10%에 그쳐
⊙ 안철수의 3大 딜레마 - 신당 창당 시점, 지역주의, 야권연대
⊙ 서청원 복귀로 김무성 퇴조하는 가운데 이완구도 ‘플랜B’로 대두
⊙ 안철수의 3大 딜레마 - 신당 창당 시점, 지역주의, 야권연대
⊙ 서청원 복귀로 김무성 퇴조하는 가운데 이완구도 ‘플랜B’로 대두
- 지난 11월 12일 열린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나란히 앉아 있다.
민주당이 지난 10월 30일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再·補選)에서 모두 완패(完敗)했다. 새누리당 텃밭인 포항남-울릉 재선거에서 새누리당 박명재 후보(78.6%)가 민주당 허대만 후보(18.5%)에게 큰 표 차로 이겼다. 경기 화성 갑(甲) 보궐선거에서는 62.7%를 얻은 새누리당 서청원 후보가 민주당 오일용(29.2%) 후보에게 압승(壓勝)했다. 여야(與野)의 텃밭인 영호남이 아닌 수도권 선거에서 이 정도로 득표율 차이가 벌어진 것은 상당히 이례적(異例的)인 현상이다.
재·보선은 흔히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해 야당에 유리하다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 후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검찰 항명(抗命) 사건, 동양그룹 사태 등 호재(好材)를 가지고도 민주당은 왜 이렇게 큰 차이로 패배했을까?
인물 경쟁력, 선거 이슈, 지역 특성, 보수 결집 등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원조(元祖) 친박(親朴)의 좌장(座長)이자 6선(選) 의원으로서 30여 년간 정치활동을 하면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서 후보와 민주당 당료(黨僚) 출신인 오 후보는 인지도(認知度)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더구나 서 후보가 내건 ‘신(新)분당선 화성 연장’과 같은 지역 밀착형 선거이슈는 지역 주민들의 큰 관심을 끈 반면, 오 후보가 제기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같은 정치적 이슈는 별로 먹히지 않았다. 화성 갑이 농촌 인구가 60%가 넘는 도농(都農) 복합 지역이라는 것도 서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야당이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는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지자 보수층이 불안해지면서 더욱 결집한 면도 있다.
재·보선 참패는 場外정치에 대한 중간평가
그러나 화성 갑에서 득표율 격차가 예상 밖으로 크게 벌어진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국민들이 민주당의 장외(場外)투쟁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민주당이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갤럽이 10월 3주(14~1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표1>에서 보듯이 민주당의 야당 역할 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12%에 불과했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77%나 됐다. 새누리당이 여당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31%인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53%인 것과 비교해 볼 때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민주당의 야당 역할에 대한 긍정 평가가 5개월째 20%를 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부정 평가는 6월 61% →7월 69%→ 8·9월 72% → 10월 77%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조차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20%, 민주당 핵심 지역 기반인 호남에서도 그 비율이 13%에 불과한 것으로 나온 것은 더욱 충격적이다. 민심(民心)의 바로미터인 자영업자와 화이트칼라층에서 긍정 평가는 각각 9%와 10%에 그쳤다. 따라서 지난 10월 재·보선은 엄밀하게 평가하면 현(現) 정부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민주당이 지난 10월 재·보선은 새누리당 강세(强勢) 지역에서 치러졌고, 선거구가 2곳인 초(超)미니 선거였기 때문에 선거 결과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민주당은 지난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 3곳을 포함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실시된 재·보선 5곳에서 전패(全敗)했다. 민주당의 연이은 패배가 주는 정치적 함의(含意)는 야권이 그동안 제기한 대선 부정선거 문제, 정권심판론 등이 국민들에게 전혀 먹혀들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야당의 강경투쟁 이유
그러나 민주당은 10·30 재·보선 참패(慘敗)에도 불구하고 위기 탈출구로 강경노선을 채택했다. 지난 11월 8일에는 “검찰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 수사를 편파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했다. 동시에 대선 관련 의혹 전반에 대한 ‘원샷 특검(特檢)’을 제안했다.
야당이 예상을 깨고 강경노선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은 다목적(多目的) 포석(布石)이다.
첫째, 더 강력한 투쟁을 요구하는 당내(黨內) 강경파의 요구를 수용해 흔들리고 있는 김한길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특검을 매개로 안철수 의원 및 정의당 등과 신(新)야권연대(連帶)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안 의원은 8월 4일에 국가기관의 불법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 임명과 수사를 여야에 공식 제안했다. 민주당은 안철수 의원과의 특검연대를 토대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거연대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예산안(豫算案)을 특검과 연계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의 동의 없이 여당이 단독으로 예산안과 경제활성화·민생 관련 법안(法案)을 처리할 수 없다. 민주당은 이런 여당의 아킬레스건을 활용해 특검을 도입하면 국정원 이슈를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런 판단은 민주당에 재앙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이 천지개벽 하지 않으면 내년 6·4 지방선거에서도 쓰라림을 맛보게 될지 모른다. 현 정부의 중간평가가 아니라 야당에 대한 심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진정 변화하려면 실효성 없는 ‘신관권(新官權) 선거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노(親盧) 측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문재인 의원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이 대선 불공정을 매개로 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과의 싸움에서는 백전백패(百戰百敗)하게 되어 있다. 규범적인 차원을 넘어 현실적인 측면에서 야권의 ‘신관권 선거 프레임’은 여당의 ‘대선 불복 프레임’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反射이익은 안철수가 챙겨
《문화일보》 여론조사(10월 28~29일)도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민주당이 대선 결과에 불복(不服)하고 있다’는 새누리당 주장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42.1%로, ‘새누리당이 헌법에 불복하고 있다’는 민주당 주장에 공감한다는 응답(36.8%)보다 5%포인트가량 많았다.
민주당이 어떤 형태든 대선 불복으로 비치는 행동을 하면 할수록 보수(保守)는 무섭게 결집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지난 대선과 비교할 때 박 대통령의 힘은 더욱 세졌고, 문재인 의원의 힘은 빠져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의 강경투쟁으로 인한 혜택은 새누리당과 안철수 의원이 보고 있다.
《동아일보》와 R&R 여론조사(11월 6일)에 따르면, 현재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이 47.4%인 반면 민주당은 그 절반 정도인 23.0%다. 통진당 2.2%, 정의당 0.6%, 무응답 26.0%였다.
그런데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41.9%, 안철수 신당 22.6%, 민주 13.2%, 통진당 1.4%, 정의당 0.5%, 무응답 19.3%로 나타났다. 현재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가량이 신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현재 시점에서 지지 정당이 없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무당파(無黨派) 가운데 4분의 1가량이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현상은 국민들이 정국 파행의 책임이 민주당에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문화일보》 여론조사(10월 28~29일)에 따르면 정쟁(政爭)과 대립의 심화 책임이 ‘제1야당인 민주당에 있다’는 응답은 40.0%인 반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다’는 응답은 22.0%에 불과했다.
안철수는 여전히 ‘새 정치’의 아이콘
민주당의 10·30 재·보선 참패 이후 안철수 신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전망하려면 안철수 의원에 대한 스왓(SWOT)분석이 필요하다.
안 의원의 최대 강점(Strength)은 여전히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2011년 10월 안풍(安風)이 처음 불었던 시점에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라는 응답이 40.8%로 가장 높게 나왔다. 그다음으로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기 때문에’(24.7%), ‘세대교체를 할 수 있기 때문에’(13.1%), ‘사회에 공익적인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9.6%),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립적이기 때문에’(9.5%) 순으로 나타났다.
안 의원에 대한 이런 긍정적 이미지는 작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미숙함과 무기력함으로 크게 훼손되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 종합상황 실장을 지냈던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펴낸 《비망록》도 안 후보의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있다. 홍 의원은 “당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공동신당 창당 추진과 함께 그에 관한 전권(全權)을 요구했고, ‘미래 대통령’으로 부를 제안이 담긴 문건을 전달했다”면서 “안 후보가 후보직 사퇴를 한 후에 사실상 문 후보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에 대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안 의원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여하튼 정치 경륜이 짧고 리더십이 취약한 것이 안 의원의 최대 약점(weakness)이다. 여기에 확고한 지역 기반이 없고 이념성이 약한 중도(中道) 이미지도 또 다른 약점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1954년 정치에 입문(入門)해 40년 이상 정치 경륜을 쌓고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제13대 국회에 입성(入城)한 후 14년이 지난 2002년에 대통령이 됐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1992년 14대 국회에 첫 입성한 후 15년 만인 2007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1998년 4월 재·보선에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한 후 14년 만에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YS와 DJ를 제외하고 평균 14.3년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쳐 대통령이 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최소한 이 정도의 정치적 숙련을 거친 사람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안철수 의원은 대권의 꿈을 이룩하려면 길게 호흡하면서 더 많이 학습하고 더 치열하게 정치를 해야 한다.
분명 안 의원에게 여전히 기회(opportunity)는 존재한다. 민주당 내 유력한 대권(大權)후보들이 부상(浮上)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 의원은 좋든 싫든 야권연대의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NLL 대화록 공개 요구와 사초 미이관 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다. 차기 주자로서 이미 탈락한 것이 아니냐는 비관론마저 대두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고문은 10·30 화성 갑 보궐선거 출마 포기로 당내에서 역풍(逆風)을 맞고 있으면서 정치 복귀의 계기를 잡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 2주년(10월 27일)을 앞둔 언론 인터뷰에서는 독자세력화를 추진 중인 안철수 의원에 대해 “정치의 길에서 어떻게 만나고 함께할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은 함께 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의 차기 대선 불출마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안 의원에게 결코 나쁜 상황은 아니다.
안철수의 弱點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을 위협(threat)하는 요인도 많다. 무엇보다 안 의원이 처한 ‘3중 딜레마’가 문제이다.
첫째, 신당 창당의 시점이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안철수 신당이 출범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다. 안 의원이 신당 휘슬을 불지 않았을 뿐 안 의원의 결심만 서면 바로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다. 조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방선거 전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 민주당과 적대적 경쟁관계가 되기 쉽고 결국 야권의 패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야권 표가 분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예상을 깨고 수도권에서 승리했다. 신한국당은 서울 27석(57.4%), 인천 9석(81.8%), 경기 18석(47.4%) 등 총 54석(56.3%)을 얻었다. 반면, 김대중 총재가 정계 복귀 후 1995년에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는 수도권에서 서울 18석(38.3%), 인천 2석(18.2%), 경기 10석(26.3%) 등 총 30석(31.3%)을 얻는 데 그쳤다. 이종찬·정대철·조세형·한광옥·박지원 등 중진 의원들도 줄줄이 낙선했다. DJ 신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당도 수도권에서 총 4석(서울 1석+경기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YS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했던 1996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은 YS와 여당이 잘했기보다는 야권이 분열됐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이 내년 지방선거에 참여해 민주당과 치열하게 격돌하면 1996년 총선 때처럼 여당인 새누리당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안철수 의원 측은 “1996년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했지만 DJ 신당은 결국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反問)할지 모른다.
하지만 DJ와 안철수는 급(級)이 다르다. DJ는 총선에서 패배했어도 오랜 정치 경륜과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지역(호남)과 이념(진보)에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지역과 이념 기반이 지극히 취약하고 정치 경륜이 짧기 때문에 1996~97년 DJ에 상응하는 힘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의 딜레마, 박원순
작년 총선 직후 드러난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와 최근 불거진 통진당의 종북(從北) 행태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은 진보 25%-중도 35%-보수 40%로 재편되었다. 그런데 중도층과 무당파의 상당부분은 안철수의 잠재적 지지층이다. 따라서 안철수 신당은 중도층과 무당파층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와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지난 화성 갑 보선에서 민주당 오일용 후보(29.2%)와 통진당 홍성규 후보의 득표(8.2%)를 합치면 37.4%였다. 이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통진당의 야권연대로 오 후보가 얻은 36.8%와 거의 비슷했다. 이 정도가 화성 갑에서 범(汎)야권 고정 지지층의 규모라 할 수 있다.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이 지역에서 44.0%까지 얻은 것은 야권 후보 단일화의 효과로 안철수 후보를 밀던 무당파층 상당수가 문 후보를 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안철수 신당에 따른 야권분열은 필연적으로 내년 수도권 지방선거에서 야권 패배로 직결될 것이다.
안철수 의원 측근인 송호창 의원은 지난 10월 18일 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민주당을 탈당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 측 후보로 서울시장에 나서달라고 제안했다. 박 시장은 이에 대해 “안 의원과 저의 관계를 저는 좋은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서로 끝까지 협력해야 되는 그런 관계”라고 했다.
안철수 신당이 박원순 시장을 ‘협력 관계’로 의식해 수도권 단체장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면 존재감을 상실할 것이다. 그렇다고 후보를 내면 야권 분열 책임론에 휩싸일 것이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했다. 아무리 명분이 있어도 타이밍을 못 맞추면 실패하기 쉽다.
안철수, 호남에서 통할까?
둘째, 지역주의 딜레마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 청산은 새 정치의 요체(要諦)이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은 현실적으로 수도권보다 호남 지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는 민주당 출신 박원순 서울시장과 송영길 인천 시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 출신 호남 후보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안철수=호남의 사위’라는 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문제는 호남 민심이 안철수 의원과 안철수 신당에 유동적(流動的)이라는 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 민주당 지지자의 상당수가 신당으로 옮겨갈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동아일보》·R&R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기반 지역인 광주·전라에서는 민주당(33.9%)이 안철수 신당(24.1%)보다 10%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한편 《문화일보》가 10월(28~29일)에 실시한 2017년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의 호감도 조사에서는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감도는 감소하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문재인 의원에 대한 호감도는 상승했다.
10월 조사에서 반기문 총장은 26.8%로 1위를 고수했다. 반 총장은 《문화일보》 9월(12~13일) 여론조사에서도 24.9%로 1위였다. 호감도가 약 2%포인트 상승했다. 9월 조사에서 19.9%로 반 총장에 근접했던 안 의원은 3%포인트 하락한 16.9%의 호감도를 얻는 데 그쳤다. 3위인 문 의원은 호감도가 8.7%에서 11.3%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 안 의원과 문 의원에 대한 호감도에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표2>에서 보듯이, 이 계층에서 안 의원은 한 달 반 사이에 8.2%포인트 호감도를 잃어 25.8%로 내려앉았다. 반면에 문 의원에 대한 호감도는 20.8%에서 29.3%로 8.5%포인트 증가했다. 그 결과 문 의원은 안 의원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이회창 총재와 갈등을 빚던 끝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미래연합’이라는 ‘박근혜 신당’을 창당, 그해 6월 지방선거에 참여했었다. 당시 박근혜 대표에 대한 전국적 지명도가 높고 ‘영남’이라는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영남 지역에서는 선전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결국 그해 11월에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으로 돌아갔다. 안철수 신당이 호남 지역에만 의존하는 전략을 펼칠 경우 이런 전철(前轍)을 밟을 수도 있다.
민주당과 안철수의 同床異夢
셋째, 야권연대 딜레마이다. 지난 11월 12일 민주당, 정의당, 안철수 의원, 재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국가정보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범(汎)야권 연석회의(범야권 연석회의)’가 출범했다.
언론은 이를 신야권연대의 출범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연석회의를 안철수 신당을 막아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표의 분산을 막을 수 있는 고육책(苦肉策)으로 보고 있다. 특검을 고리로 안철수 의원과 연대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에서는 연합 공천과 같은 느슨한 형태의 선거연대를 구축하는 전략인 것 같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의원은 연석회의에 참석한 이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연대는 한번 결성되면 어느 일방이 비난을 감수하고 손을 떼지 않는 한, 상당한 지속력을 유지하면서 선거나 특정 현안을 고리로 강한 응집력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석회의가 신당을 창당하려는 안철수 의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향후 신당 창당을 위해 연석회의에서 빠지면 이 회의에 참여한 모두로부터 ‘공공(公共)의 적(敵)’으로 몰려 정치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은 연석회의에 대해 “사안별 협력일 뿐 연대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로써 안 의원은 다시 한 번 정치적 미숙함을 보여주었다. 안 의원은 민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특검 도입 문제와 예산·법안 처리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홍영표 의원의 《비망록》 이후 친노와 서먹해진 안 의원이 연석회의와도 등을 돌리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질 수도 있다.
국민동행과 6인회
이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안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인 김덕룡 전 의원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인 권노갑 전 의원 및 재야인사 등 원로 그룹 60여 명이 참여하는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이하 국민동행)’과 연대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도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제대로 가고 언젠가는 함께 더불어 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김부겸, 정장선, 김영춘 전 의원들과 새누리당의 김성식, 정태근, 홍정욱 전 의원들이 중심이 된 6인회가 안철수 신당 작업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동행과 6인회가 안철수 신당 창당에 어느 정도 개입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과연 어떤 중량급 인사들이 신당에 얼마나 참여하느냐 여부에 안철수 신당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안철수 의원 측이 두 차례에 걸쳐 지역조직을 담당할 실행위원 534명을 발표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중량감 있는 인사는 없고, 이념적 스펙트럼이나 지향성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철수 의원 개개인이 처한 정치 상황과 딜레마를 고려해 보면, 지방선거 전에 신당을 창당할 경우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히려 지방선거 후에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야권분열 원죄론(原罪論)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선거 결과에 따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 모든 시선은 안철수 의원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김한길 대표 체제는 붕괴할 것이고, 안 의원과 우호적 관계를 갖고 있는 손학규 고문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다. 이 경우 안 의원은 손 고문과 손을 잡고 보다 큰 폭으로 정당 개편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겪고 있는 인물난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16년 총선을 위한 확고한 정치 세력화의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화성 갑 보궐선거에서 서청원 전 대표가 압승해 원내에 재입성하게 된 것은 새누리당 당권(黨權) 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序曲)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청와대가 차기 당권 경쟁에서 김무성 의원과 대항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를 감수하고 서청원 카드를 강행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는 김무성 의원이 당권을 장악할 경우, 당내 무게중심이 박 대통령에서 김 의원에게 급속하게 쏠릴 것을 우려해 고육책을 쓴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청와대는 “김무성은 안 된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보궐선거가 끝난 지난 11월 4일 김무성 의원이 주관하는 ‘재정 준칙 마련과 국가 재정 건전성 제고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그런데 새누리당 의원들의 모습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서청원 전 대표가 부상하기 전에 김 의원이 주관한 ‘근현대 역사 교실 모임’에 100여 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참석했던 것과는 큰 대조를 이뤘다.
서 의원은 “저는 처음부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몸을 한껏 낮추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違憲정당 해산의 정치학
박근혜 정부는 10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과 서청원 전 대표가 압승하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치 현안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 다음 날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개인적으로 (지난 대선 때) 의혹을 살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선거에 국가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들이 제기되는데 반드시 국민에게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으면 묻겠다”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번 의혹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겠다”고 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던 야당을 향해 직구를 던진 것이다.
이어 정부는 대통령 유럽 순방 중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했다.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는 여당에 불리한 모든 이슈를 덮기에 충분했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법무부가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를 발표한 다음 날인 11월 6일 《동아일보》·R&R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0.1%는 정부의 해산심판 청구를 ‘적절한 조치’로 평가했다. ‘부적절한 조치였다’는 답변은 28.5% 불과했다. ‘통진당이 북한을 따르는 종북 세력이라는 정부의 설명에 공감하느냐’란 질문에서도 56.2%가 ‘공감한다’고 답변한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7.3%에 그쳤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전례가 없는 정당 해산에 대해 쉽게 결정 내리기 힘들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직전에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헌재(憲裁)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리면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통진당과 선거연대를 한 것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유리한 선거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반면 헌재가 청구를 기각(棄却)하면 이에 반발하는 보수 세력의 결집을 유도할 수 있다.
물론 정반대의 논리도 존재한다. 헌재가 통진당 해산 명령을 내리면 오히려 야권 단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통진당이 선거에 참여하면 야권 표가 분산되는데 정부가 오히려 이를 막아준다는 논리이다. 더구나 해산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정부 여당이 공안 정국을 통해 진보 세력을 탄압하려고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법에 걸린 사람들’
새누리당 당권 경쟁과 관련 현재 서청원 의원이 김무성 의원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7선의 정치 경륜과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원로 그룹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차기 당권의 키를 쥐고 있는 110명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은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이 공천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박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김무성 의원은 스스로 세력화를 도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한국 정치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새누리당이 친박과 비박(非朴)으로 분열되고, 야권이 범야권연대를 안착시켜 지방선거에서 선전해 새누리당에 일격을 가하면 새누리당 당권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청원 의원이 당권에 도전해 성공하려면 단순히 대통령의 낙점(落點)만 살피는 수동적인 자세로는 곤란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과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청산해 의원들의 자율성을 강화시키고, 야당과의 관계 복원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새 정치를 담보할 인재들을 대거 영입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서 의원 자신도 살고, 대통령이 살고, 새누리당도 살 수 있다.
최근 원희룡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새누리당은 당 역사상 당내 토론이 가장 없는 시기”라고 진단하면서 “요새 다른 이들은 대통령 앞에 가면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말도 못 한다는 데 서 전 대표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서 전 대표가 대통령 마법에 걸려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정치력을 발휘해 마법에서 풀어주지 않으면 상황 변화에 따라 대통령과 함께 무너질 수도 있다.
이완구는 플랜B?
물론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도 나름의 약점이 있다. 서 의원은 불법 정치 자금 수수 전력의 주홍글씨가 남아 있고, 김무성 의원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했다는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 당권 경쟁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사람이 충청권의 새로운 맹주(盟主)를 노리는 이완구 의원이다. 이 의원은 조만간 친박계 인사 30명이 참여하는 ‘국가경쟁력강화모임’을 발족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예기치 않은 돌발 사태로 서청원 당 대표 카드가 물 건너갈 경우에 대비한 ‘플랜B’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재·보선은 흔히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해 야당에 유리하다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 후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검찰 항명(抗命) 사건, 동양그룹 사태 등 호재(好材)를 가지고도 민주당은 왜 이렇게 큰 차이로 패배했을까?
인물 경쟁력, 선거 이슈, 지역 특성, 보수 결집 등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원조(元祖) 친박(親朴)의 좌장(座長)이자 6선(選) 의원으로서 30여 년간 정치활동을 하면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서 후보와 민주당 당료(黨僚) 출신인 오 후보는 인지도(認知度)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더구나 서 후보가 내건 ‘신(新)분당선 화성 연장’과 같은 지역 밀착형 선거이슈는 지역 주민들의 큰 관심을 끈 반면, 오 후보가 제기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같은 정치적 이슈는 별로 먹히지 않았다. 화성 갑이 농촌 인구가 60%가 넘는 도농(都農) 복합 지역이라는 것도 서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 야당이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는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지자 보수층이 불안해지면서 더욱 결집한 면도 있다.
재·보선 참패는 場外정치에 대한 중간평가
그러나 화성 갑에서 득표율 격차가 예상 밖으로 크게 벌어진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국민들이 민주당의 장외(場外)투쟁에 대해 공감하지 않고 민주당이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갤럽이 10월 3주(14~1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표1>에서 보듯이 민주당의 야당 역할 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12%에 불과했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77%나 됐다. 새누리당이 여당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31%인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53%인 것과 비교해 볼 때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민주당의 야당 역할에 대한 긍정 평가가 5개월째 20%를 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부정 평가는 6월 61% →7월 69%→ 8·9월 72% → 10월 77%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조차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가 20%, 민주당 핵심 지역 기반인 호남에서도 그 비율이 13%에 불과한 것으로 나온 것은 더욱 충격적이다. 민심(民心)의 바로미터인 자영업자와 화이트칼라층에서 긍정 평가는 각각 9%와 10%에 그쳤다. 따라서 지난 10월 재·보선은 엄밀하게 평가하면 현(現) 정부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민주당이 지난 10월 재·보선은 새누리당 강세(强勢) 지역에서 치러졌고, 선거구가 2곳인 초(超)미니 선거였기 때문에 선거 결과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민주당은 지난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 3곳을 포함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실시된 재·보선 5곳에서 전패(全敗)했다. 민주당의 연이은 패배가 주는 정치적 함의(含意)는 야권이 그동안 제기한 대선 부정선거 문제, 정권심판론 등이 국민들에게 전혀 먹혀들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야당의 강경투쟁 이유
그러나 민주당은 10·30 재·보선 참패(慘敗)에도 불구하고 위기 탈출구로 강경노선을 채택했다. 지난 11월 8일에는 “검찰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 수사를 편파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했다. 동시에 대선 관련 의혹 전반에 대한 ‘원샷 특검(特檢)’을 제안했다.
야당이 예상을 깨고 강경노선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은 다목적(多目的) 포석(布石)이다.
첫째, 더 강력한 투쟁을 요구하는 당내(黨內) 강경파의 요구를 수용해 흔들리고 있는 김한길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특검을 매개로 안철수 의원 및 정의당 등과 신(新)야권연대(連帶)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안 의원은 8월 4일에 국가기관의 불법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 임명과 수사를 여야에 공식 제안했다. 민주당은 안철수 의원과의 특검연대를 토대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거연대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예산안(豫算案)을 특검과 연계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의 동의 없이 여당이 단독으로 예산안과 경제활성화·민생 관련 법안(法案)을 처리할 수 없다. 민주당은 이런 여당의 아킬레스건을 활용해 특검을 도입하면 국정원 이슈를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런 판단은 민주당에 재앙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이 천지개벽 하지 않으면 내년 6·4 지방선거에서도 쓰라림을 맛보게 될지 모른다. 현 정부의 중간평가가 아니라 야당에 대한 심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진정 변화하려면 실효성 없는 ‘신관권(新官權) 선거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친노(親盧) 측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문재인 의원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이 대선 불공정을 매개로 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과의 싸움에서는 백전백패(百戰百敗)하게 되어 있다. 규범적인 차원을 넘어 현실적인 측면에서 야권의 ‘신관권 선거 프레임’은 여당의 ‘대선 불복 프레임’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反射이익은 안철수가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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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0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설치됐던 민주당의 천막 당사가 해체됐다. 10·30선거는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
민주당이 어떤 형태든 대선 불복으로 비치는 행동을 하면 할수록 보수(保守)는 무섭게 결집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지난 대선과 비교할 때 박 대통령의 힘은 더욱 세졌고, 문재인 의원의 힘은 빠져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의 강경투쟁으로 인한 혜택은 새누리당과 안철수 의원이 보고 있다.
《동아일보》와 R&R 여론조사(11월 6일)에 따르면, 현재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이 47.4%인 반면 민주당은 그 절반 정도인 23.0%다. 통진당 2.2%, 정의당 0.6%, 무응답 26.0%였다.
그런데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41.9%, 안철수 신당 22.6%, 민주 13.2%, 통진당 1.4%, 정의당 0.5%, 무응답 19.3%로 나타났다. 현재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가량이 신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현재 시점에서 지지 정당이 없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무당파(無黨派) 가운데 4분의 1가량이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현상은 국민들이 정국 파행의 책임이 민주당에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문화일보》 여론조사(10월 28~29일)에 따르면 정쟁(政爭)과 대립의 심화 책임이 ‘제1야당인 민주당에 있다’는 응답은 40.0%인 반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다’는 응답은 22.0%에 불과했다.
안철수는 여전히 ‘새 정치’의 아이콘
민주당의 10·30 재·보선 참패 이후 안철수 신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전망하려면 안철수 의원에 대한 스왓(SWOT)분석이 필요하다.
안 의원의 최대 강점(Strength)은 여전히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2011년 10월 안풍(安風)이 처음 불었던 시점에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 같은 기대감 때문에”라는 응답이 40.8%로 가장 높게 나왔다. 그다음으로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기 때문에’(24.7%), ‘세대교체를 할 수 있기 때문에’(13.1%), ‘사회에 공익적인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9.6%),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립적이기 때문에’(9.5%) 순으로 나타났다.
안 의원에 대한 이런 긍정적 이미지는 작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미숙함과 무기력함으로 크게 훼손되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 종합상황 실장을 지냈던 민주당 홍영표 의원이 펴낸 《비망록》도 안 후보의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있다. 홍 의원은 “당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공동신당 창당 추진과 함께 그에 관한 전권(全權)을 요구했고, ‘미래 대통령’으로 부를 제안이 담긴 문건을 전달했다”면서 “안 후보가 후보직 사퇴를 한 후에 사실상 문 후보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에 대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안 의원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여하튼 정치 경륜이 짧고 리더십이 취약한 것이 안 의원의 최대 약점(weakness)이다. 여기에 확고한 지역 기반이 없고 이념성이 약한 중도(中道) 이미지도 또 다른 약점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1954년 정치에 입문(入門)해 40년 이상 정치 경륜을 쌓고 대통령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제13대 국회에 입성(入城)한 후 14년이 지난 2002년에 대통령이 됐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1992년 14대 국회에 첫 입성한 후 15년 만인 2007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1998년 4월 재·보선에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한 후 14년 만에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YS와 DJ를 제외하고 평균 14.3년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쳐 대통령이 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최소한 이 정도의 정치적 숙련을 거친 사람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안철수 의원은 대권의 꿈을 이룩하려면 길게 호흡하면서 더 많이 학습하고 더 치열하게 정치를 해야 한다.
분명 안 의원에게 여전히 기회(opportunity)는 존재한다. 민주당 내 유력한 대권(大權)후보들이 부상(浮上)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 의원은 좋든 싫든 야권연대의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NLL 대화록 공개 요구와 사초 미이관 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다. 차기 주자로서 이미 탈락한 것이 아니냐는 비관론마저 대두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고문은 10·30 화성 갑 보궐선거 출마 포기로 당내에서 역풍(逆風)을 맞고 있으면서 정치 복귀의 계기를 잡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 2주년(10월 27일)을 앞둔 언론 인터뷰에서는 독자세력화를 추진 중인 안철수 의원에 대해 “정치의 길에서 어떻게 만나고 함께할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은 함께 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의 차기 대선 불출마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안 의원에게 결코 나쁜 상황은 아니다.
안철수의 弱點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을 위협(threat)하는 요인도 많다. 무엇보다 안 의원이 처한 ‘3중 딜레마’가 문제이다.
첫째, 신당 창당의 시점이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안철수 신당이 출범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이다. 안 의원이 신당 휘슬을 불지 않았을 뿐 안 의원의 결심만 서면 바로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다. 조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방선거 전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 민주당과 적대적 경쟁관계가 되기 쉽고 결국 야권의 패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야권 표가 분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예상을 깨고 수도권에서 승리했다. 신한국당은 서울 27석(57.4%), 인천 9석(81.8%), 경기 18석(47.4%) 등 총 54석(56.3%)을 얻었다. 반면, 김대중 총재가 정계 복귀 후 1995년에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는 수도권에서 서울 18석(38.3%), 인천 2석(18.2%), 경기 10석(26.3%) 등 총 30석(31.3%)을 얻는 데 그쳤다. 이종찬·정대철·조세형·한광옥·박지원 등 중진 의원들도 줄줄이 낙선했다. DJ 신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당도 수도권에서 총 4석(서울 1석+경기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YS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했던 1996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은 YS와 여당이 잘했기보다는 야권이 분열됐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이 내년 지방선거에 참여해 민주당과 치열하게 격돌하면 1996년 총선 때처럼 여당인 새누리당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안철수 의원 측은 “1996년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했지만 DJ 신당은 결국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反問)할지 모른다.
하지만 DJ와 안철수는 급(級)이 다르다. DJ는 총선에서 패배했어도 오랜 정치 경륜과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지역(호남)과 이념(진보)에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지역과 이념 기반이 지극히 취약하고 정치 경륜이 짧기 때문에 1996~97년 DJ에 상응하는 힘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의 딜레마, 박원순
작년 총선 직후 드러난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와 최근 불거진 통진당의 종북(從北) 행태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은 진보 25%-중도 35%-보수 40%로 재편되었다. 그런데 중도층과 무당파의 상당부분은 안철수의 잠재적 지지층이다. 따라서 안철수 신당은 중도층과 무당파층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을 가져와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지난 화성 갑 보선에서 민주당 오일용 후보(29.2%)와 통진당 홍성규 후보의 득표(8.2%)를 합치면 37.4%였다. 이는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통진당의 야권연대로 오 후보가 얻은 36.8%와 거의 비슷했다. 이 정도가 화성 갑에서 범(汎)야권 고정 지지층의 규모라 할 수 있다.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이 지역에서 44.0%까지 얻은 것은 야권 후보 단일화의 효과로 안철수 후보를 밀던 무당파층 상당수가 문 후보를 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안철수 신당에 따른 야권분열은 필연적으로 내년 수도권 지방선거에서 야권 패배로 직결될 것이다.
안철수 의원 측근인 송호창 의원은 지난 10월 18일 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민주당을 탈당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 측 후보로 서울시장에 나서달라고 제안했다. 박 시장은 이에 대해 “안 의원과 저의 관계를 저는 좋은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서로 끝까지 협력해야 되는 그런 관계”라고 했다.
안철수 신당이 박원순 시장을 ‘협력 관계’로 의식해 수도권 단체장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면 존재감을 상실할 것이다. 그렇다고 후보를 내면 야권 분열 책임론에 휩싸일 것이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했다. 아무리 명분이 있어도 타이밍을 못 맞추면 실패하기 쉽다.
안철수, 호남에서 통할까?
둘째, 지역주의 딜레마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 청산은 새 정치의 요체(要諦)이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은 현실적으로 수도권보다 호남 지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는 민주당 출신 박원순 서울시장과 송영길 인천 시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 출신 호남 후보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안철수=호남의 사위’라는 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문제는 호남 민심이 안철수 의원과 안철수 신당에 유동적(流動的)이라는 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질 경우 민주당 지지자의 상당수가 신당으로 옮겨갈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동아일보》·R&R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기반 지역인 광주·전라에서는 민주당(33.9%)이 안철수 신당(24.1%)보다 10%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한편 《문화일보》가 10월(28~29일)에 실시한 2017년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의 호감도 조사에서는 안철수 의원에 대한 호감도는 감소하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문재인 의원에 대한 호감도는 상승했다.
10월 조사에서 반기문 총장은 26.8%로 1위를 고수했다. 반 총장은 《문화일보》 9월(12~13일) 여론조사에서도 24.9%로 1위였다. 호감도가 약 2%포인트 상승했다. 9월 조사에서 19.9%로 반 총장에 근접했던 안 의원은 3%포인트 하락한 16.9%의 호감도를 얻는 데 그쳤다. 3위인 문 의원은 호감도가 8.7%에서 11.3%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 안 의원과 문 의원에 대한 호감도에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표2>에서 보듯이, 이 계층에서 안 의원은 한 달 반 사이에 8.2%포인트 호감도를 잃어 25.8%로 내려앉았다. 반면에 문 의원에 대한 호감도는 20.8%에서 29.3%로 8.5%포인트 증가했다. 그 결과 문 의원은 안 의원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이회창 총재와 갈등을 빚던 끝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미래연합’이라는 ‘박근혜 신당’을 창당, 그해 6월 지방선거에 참여했었다. 당시 박근혜 대표에 대한 전국적 지명도가 높고 ‘영남’이라는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영남 지역에서는 선전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결국 그해 11월에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으로 돌아갔다. 안철수 신당이 호남 지역에만 의존하는 전략을 펼칠 경우 이런 전철(前轍)을 밟을 수도 있다.
민주당과 안철수의 同床異夢
셋째, 야권연대 딜레마이다. 지난 11월 12일 민주당, 정의당, 안철수 의원, 재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국가정보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범(汎)야권 연석회의(범야권 연석회의)’가 출범했다.
언론은 이를 신야권연대의 출범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연석회의를 안철수 신당을 막아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표의 분산을 막을 수 있는 고육책(苦肉策)으로 보고 있다. 특검을 고리로 안철수 의원과 연대하고 내년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에서는 연합 공천과 같은 느슨한 형태의 선거연대를 구축하는 전략인 것 같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의원은 연석회의에 참석한 이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연대는 한번 결성되면 어느 일방이 비난을 감수하고 손을 떼지 않는 한, 상당한 지속력을 유지하면서 선거나 특정 현안을 고리로 강한 응집력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석회의가 신당을 창당하려는 안철수 의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향후 신당 창당을 위해 연석회의에서 빠지면 이 회의에 참여한 모두로부터 ‘공공(公共)의 적(敵)’으로 몰려 정치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은 연석회의에 대해 “사안별 협력일 뿐 연대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로써 안 의원은 다시 한 번 정치적 미숙함을 보여주었다. 안 의원은 민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특검 도입 문제와 예산·법안 처리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홍영표 의원의 《비망록》 이후 친노와 서먹해진 안 의원이 연석회의와도 등을 돌리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질 수도 있다.
국민동행과 6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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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4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서청원(오른쪽) 의원과 김무성 의원. 두 사람은 새누리당 당권을 놓고 경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최근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김부겸, 정장선, 김영춘 전 의원들과 새누리당의 김성식, 정태근, 홍정욱 전 의원들이 중심이 된 6인회가 안철수 신당 작업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동행과 6인회가 안철수 신당 창당에 어느 정도 개입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과연 어떤 중량급 인사들이 신당에 얼마나 참여하느냐 여부에 안철수 신당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다. 안철수 의원 측이 두 차례에 걸쳐 지역조직을 담당할 실행위원 534명을 발표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중량감 있는 인사는 없고, 이념적 스펙트럼이나 지향성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철수 의원 개개인이 처한 정치 상황과 딜레마를 고려해 보면, 지방선거 전에 신당을 창당할 경우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히려 지방선거 후에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야권분열 원죄론(原罪論)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선거 결과에 따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 모든 시선은 안철수 의원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김한길 대표 체제는 붕괴할 것이고, 안 의원과 우호적 관계를 갖고 있는 손학규 고문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다. 이 경우 안 의원은 손 고문과 손을 잡고 보다 큰 폭으로 정당 개편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겪고 있는 인물난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16년 총선을 위한 확고한 정치 세력화의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화성 갑 보궐선거에서 서청원 전 대표가 압승해 원내에 재입성하게 된 것은 새누리당 당권(黨權) 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序曲)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청와대가 차기 당권 경쟁에서 김무성 의원과 대항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를 감수하고 서청원 카드를 강행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는 김무성 의원이 당권을 장악할 경우, 당내 무게중심이 박 대통령에서 김 의원에게 급속하게 쏠릴 것을 우려해 고육책을 쓴 것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청와대는 “김무성은 안 된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보궐선거가 끝난 지난 11월 4일 김무성 의원이 주관하는 ‘재정 준칙 마련과 국가 재정 건전성 제고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그런데 새누리당 의원들의 모습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서청원 전 대표가 부상하기 전에 김 의원이 주관한 ‘근현대 역사 교실 모임’에 100여 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참석했던 것과는 큰 대조를 이뤘다.
서 의원은 “저는 처음부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몸을 한껏 낮추고 있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違憲정당 해산의 정치학
박근혜 정부는 10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과 서청원 전 대표가 압승하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치 현안에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 다음 날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개인적으로 (지난 대선 때) 의혹을 살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선거에 국가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들이 제기되는데 반드시 국민에게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으면 묻겠다”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번 의혹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겠다”고 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던 야당을 향해 직구를 던진 것이다.
이어 정부는 대통령 유럽 순방 중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했다.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는 여당에 불리한 모든 이슈를 덮기에 충분했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법무부가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를 발표한 다음 날인 11월 6일 《동아일보》·R&R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0.1%는 정부의 해산심판 청구를 ‘적절한 조치’로 평가했다. ‘부적절한 조치였다’는 답변은 28.5% 불과했다. ‘통진당이 북한을 따르는 종북 세력이라는 정부의 설명에 공감하느냐’란 질문에서도 56.2%가 ‘공감한다’고 답변한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7.3%에 그쳤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전례가 없는 정당 해산에 대해 쉽게 결정 내리기 힘들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직전에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헌재(憲裁)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리면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통진당과 선거연대를 한 것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유리한 선거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반면 헌재가 청구를 기각(棄却)하면 이에 반발하는 보수 세력의 결집을 유도할 수 있다.
물론 정반대의 논리도 존재한다. 헌재가 통진당 해산 명령을 내리면 오히려 야권 단일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통진당이 선거에 참여하면 야권 표가 분산되는데 정부가 오히려 이를 막아준다는 논리이다. 더구나 해산 결정이 내려지지 않으면 정부 여당이 공안 정국을 통해 진보 세력을 탄압하려고 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법에 걸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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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청원 의원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완구 의원. |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한국 정치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새누리당이 친박과 비박(非朴)으로 분열되고, 야권이 범야권연대를 안착시켜 지방선거에서 선전해 새누리당에 일격을 가하면 새누리당 당권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청원 의원이 당권에 도전해 성공하려면 단순히 대통령의 낙점(落點)만 살피는 수동적인 자세로는 곤란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과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청산해 의원들의 자율성을 강화시키고, 야당과의 관계 복원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새 정치를 담보할 인재들을 대거 영입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서 의원 자신도 살고, 대통령이 살고, 새누리당도 살 수 있다.
최근 원희룡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새누리당은 당 역사상 당내 토론이 가장 없는 시기”라고 진단하면서 “요새 다른 이들은 대통령 앞에 가면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말도 못 한다는 데 서 전 대표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서 전 대표가 대통령 마법에 걸려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정치력을 발휘해 마법에서 풀어주지 않으면 상황 변화에 따라 대통령과 함께 무너질 수도 있다.
이완구는 플랜B?
물론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도 나름의 약점이 있다. 서 의원은 불법 정치 자금 수수 전력의 주홍글씨가 남아 있고, 김무성 의원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했다는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 당권 경쟁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사람이 충청권의 새로운 맹주(盟主)를 노리는 이완구 의원이다. 이 의원은 조만간 친박계 인사 30명이 참여하는 ‘국가경쟁력강화모임’을 발족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예기치 않은 돌발 사태로 서청원 당 대표 카드가 물 건너갈 경우에 대비한 ‘플랜B’로 보는 시각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