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反양건 그룹, 원장이 임명한 사무총장 밀어내
⊙ 70~80년대 대통령 측근 감사원장 기용
⊙ 최근에는 감사위원 자리를 論功行賞 전리품으로 삼아
⊙ 정책감사 명분 삼아 정권 입맛에 맞는 監査
⊙ 전직 고위 감사원 간부 “감사원은 정권 눈치 보는 곳이 아니다” 주장
⊙ 70~80년대 대통령 측근 감사원장 기용
⊙ 최근에는 감사위원 자리를 論功行賞 전리품으로 삼아
⊙ 정책감사 명분 삼아 정권 입맛에 맞는 監査
⊙ 전직 고위 감사원 간부 “감사원은 정권 눈치 보는 곳이 아니다” 주장
“괜찮은 사람입니다. 한번 믿어 보시지요.”
양건(梁建) 감사원장 교체설이 한창 나돌던 지난 2013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핵심 관계자는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 인사의 의견이 반영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양 원장은 유임됐다.
친박 3선 의원은 “당초 정부 출범 초기 임기 4년 가운데 2년 정도 남은 양건 감사원장의 거취를 놓고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국정철학 공유’ 원칙에 따라 교체를 검토했다. 그러나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낙마 등 인사사고가 잇따르고 야당도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정치적 부담을 느껴 (임기를) 보장해 줬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원장이 유임되자 청와대와 감사원 내 반(反) 양건 세력은 펄쩍 뛰었다. 이들은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스타일인 양 원장에 대한 불만이 컸다.
불똥은 양 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정하(金貞河) 감사원 사무총장에게 튀었다. 감사원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의 이야기다.
“양 원장의 유임이 결정되자 청와대와 감사원 내 일부 대구·경북(TK) 인사들은 사무총장이라도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사로 바꿔야 한다고 (양 원장을) 압박한 것으로 압니다. 유임 결정이 이뤄진 직후라 양 원장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충청도 출신(충남 예산)인 김 총장만 피해를 본 것이지요.”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청와대에서 김 총장이 제2사무차장 시절 주도했던 K2 전차 해외 파워팩 장착 결정과정 등에 대한 감사를 문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 감사 결과에 따르면 K2 전차의 핵심 부품인 파워팩 사업자로 독일 군수업체 MTU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김병관(金秉寬)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고문으로 있던 무기중개상 유비엠텍이 43억원의 중개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 4월 17일 사의를 표했다. 사무총장이 된 지 5개월 만이었다.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음에도 취임 후 5개월 만에 총장이 교체되기는 감사원 개원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작년(2002년) 11월 7일 사무총장으로 임명됐었다.
청와대와 불편했던 梁建
김 사무총장 후임으로는 경남 진주 출신의 김영호(金英豪) 감사원 2차장이 낙점됐다. 감사원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코드를 맞춘 인사”라고 했다. 사무총장 인사가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행 감사원법 제18조에 따르면 사무총장(고위감사공무원단, 4급 이상 간부 포함) 인선은 감사원장의 임명 제청을 통해 청와대가 임명하게 돼 있다.
법사위 소속 관계자는 “김영호씨가 감사원 사무총장에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감사원이 아닌 정부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왔다”며 “이는 과거 사무총장 인선과 비교했을 때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물론 감사원 측은 “원장이 숙고한 후 청와대에 (후임 사무총장) 임명 제청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황상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관련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감사원 사무총장은 감사원 조직을 실질적으로 총괄한다. 감사원법 19조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원장의 명을 받아 사무처의 사무를 관장하며 소속 직원을 지휘하고 감독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임명된 양 원장과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고위직으로 승진한 김영호 사무총장 등 감사원 고위간부들은 그야말로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였다고 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양 원장이 4대강 감사 문제 때문에 감사위원, 고위 간부들과 사이가 다 틀어져 ‘왕따설’도 나왔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승진한 사람들과 사이가 나쁘다는 건 청와대와도 사이가 안 좋았다는 얘기”라고 했다.
8월 24일 자 《조선일보》 기사는 양 원장이 청와대와 얼마나 불편한 관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기사의 일부분이다.
<감사원 핵심 관계자는 “양 원장은 국회가 요구한 대로 입찰·담합 부분에 초점을 둔 감사를 원했지만, 청와대는 4대강의 다른 문제점도 감사원이 지적해 주길 원하면서 양측 사이에 적지 않은 마찰이 생겼다”고 했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감사원이 4대강 3차 감사에서 담합 외에 다른 잘못을 지적하게 되면 또다시 ‘정권 눈치 보기’ 감사라는 비판을 받게 되고, 그 부담은 양 원장이 모두 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실제로 양 원장은 3차 감사 도중 감사원 사무처로부터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염두에 둔 사업이었다는 보고를 받고 ‘담합 감사인데 왜 대운하 얘기가 나오느냐’고 언짢아했다”고 했다.>
이 와중에 양 원장은 감사위원 임명을 놓고 청와대와 대립했다. 청와대는 공석 중인 감사위원 직에 장훈(張勳) 중앙대 교수를 임명하려 했지만 양 원장은 장 교수가 작년에 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일한 점을 들어 반대했다. 양 원장이 장 교수에 대한 제청을 거부한 것이다. 이 사건 직후인 8월 23일 양 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양 원장이 장훈 중앙대 교수의 감사위원 임용 문제를 자신의 ‘탈출구’로 활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4대강 감사 결과 번복과 원전 비리 부실 감사 등에 대해 여론이 악화하면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던 양 원장이 자신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장 교수의 감사위원 임용 문제를 사퇴 빌미로 삼았다는 것이다.
정권 입맛에 맞는 정책감사
양 원장의 사퇴 과정을 보면 감사원장을 포함한 감사원 고위 간부들은 사실상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정책감사로 포장된 한탕식 코드·표적 감사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조성한(趙成漢)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영삼 정부 이후 강화된 감사원의 정책감사 기능이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실제 정책감사는 정권 입맛에 맞는 결과로 흘러가기 쉽다. 정책감사는 기준이 애매하다.
감사원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직무감찰규칙 4조를 보면 국가기밀, 국가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 고도의 통치행위와 함께 ‘정부의 중요 정책 결정’은 감사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는 감사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직무감찰규칙의 단서조항에는 ‘정책결정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사실이나 자료 및 정보 등의 오류는 감찰 대상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감사원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정책감사라는 ‘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얘기다.
《월간조선》은 과거 김영삼 정부 때부터 현 박근혜 정부까지 ‘정치 색깔을 띤 정책감사’라는 의심을 살 만한 감사 사례를 살펴봤다. 과거 언론보도와 전직 감사원 핵심 간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선정했다. 김영삼 정부를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과거 독재·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대부분 감사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뤄져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정책감사라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YS 정권이 감사한 율곡사업, 평화의 댐
1993년 진행한 ‘율곡사업(전력증강사업) 특별감사’는 순수성을 의심받는 대표적인 정책감사로 볼 수 있다.
김영삼 정부의 초대 감사원장(15대)으로 임명된 이회창(李會昌) 대법관은 발탁되자마자(1993년 4월 27일) 율곡사업 비리를 파고들었다. 율곡사업은 박정희 정권인 74년부터 시작된 군 무기·장비 현대화사업을 통칭하는 암호명이었다. 모두 32조원을 쏟아부어 미사일, 장갑차, 함정, 전투기 등을 개발하거나 도입했다.
그해 7월 9일 감사원은 “모두 118건의 잘못을 적발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 무기중개상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군 고위관계자 6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현역 장성 8명을 포함한 53명에 대해 징계 또는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이 일로 노태우 정권의 국방장관 두 명(이종구, 이상훈)과 한주석(韓周奭) 전 공군참모총장, 김철우(金鐵宇) 전 해군참모총장이 구속기소됐다. 무기 뇌물로 전직 군 수뇌부가 대규모로 감옥에 간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율곡사업 감사는 군 수뇌부의 대형 비리를 과감하고 분명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감사원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감사 배경에는 의문이 남는다. 하나회 해체작업 등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집권 후 취한 ‘정치군인 소탕’의 연장선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사실 율곡사업은 김영삼 정부 전에는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국가안보 사업이라는 이유로 감사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율곡사업 감사를 진행하던 시기 이 전 원장은 88년 감사 결과 별문제 없다는 식으로 나온 ‘평화의 댐’ 사업도 다시 들여다봤다. 88년 평화의 댐 감사 때 감사원은 정책결정 경위와 판단 근거자료, 관련 핵심인물 등에 대해서는 아예 손도 못 댄 채 댐이 설계대로 건설됐는지, 공사비는 제대로 책정했는지 여부 등 극히 기술적이고 단편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조사를 했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93년도의 감사는 달랐다. 감사원은 교도소에 있던 장세동(張世東) 전 안기부장까지 조사한 끝에 안기부가 북한의 수공 위력을 과대 포장했다는 점을 입증해 냈다. 다만 깔끔하진 않았다. 전직 감사원 간부의 말이다.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사업 감사는 군 내부의 비리와 과거 정권의 흑막을 파헤치는 데 크게 한몫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사는 기획사정론 사전조율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율곡사업 감사 중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인 권영해 국방부장관의 동생 영호씨가 무기중개업체에서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 내고도 발표하지 않은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1998년 11월 2일 자 《경향신문》은 이 전 원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93년 3월부터 9개월간 재직했던 이 전 원장은 다소 ‘정치적’이었다.(중략) 이 전 원장은 감사 결과를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데 신경을 썼던 것으로 ‘삼청동 식구’들에게 인식돼 있다.>
DJ, 현철씨 관련된 PCS 사업자선정 감사 지시
1998년 2월 3일 당선인 신분이었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개인휴대통신(PCS) 문제는 명확히 밝혔으면 좋겠다”며 감사원에 정보통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김 전 대통령이 1997년 한차례 감사한 사안을 다시 감사해 달라고 한 것은 당시 감사에서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차장 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金賢哲)씨가 PCS 사업자 선정에 개입했다는 구체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당시 공동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 의원들은 현철씨와 김 전 차장 등이 이석채(李錫采) 전 정통부 장관을 통해 PCS 선정 사업에 개입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으로 김대중 인수위에서 활약한 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정통부는 원래 선정 과정에 투명성을 기하기 위해 출연금과 기술심사를 거쳐 선발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추첨방식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애당초 잡음을 없애 운이 좋은 사업자가 사업권을 따는 정책을 편 것이지요. 하지만 현철씨의 고교 선배인 이석채 장관 임명 이후 정통부는 한국통신의 자회사에 1장의 티켓을 주고, 통신장비 제조업체와 비제조업체에 각각 사업권을 주기로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한솔그룹은 LG나 삼성-현대 등 힘겨운 상대를 피해 금호-효성 컨소시엄과 중소기업연합 등 비교적 쉬운 상대와 경쟁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사업권은 한국통신과 LG와 한솔그룹으로 돌아갔지요.”
조동만(趙東晩) 한솔아이글로브 회장과 가까운 김 전 차장은 현철씨의 최측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감사원장에 3·1 명동사건(1967년 명동성당 기념미사에서 유신반대 선언문을 발표한 사건)’ 때 자신의 변론을 맡으며 인연을 쌓은 한승헌(韓勝憲) 변호사(17대)를 임명하며 PCS 사업자 선정 의혹 감사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감사원은 강도 높은 감사를 벌였지만 당초 제기됐던 특혜설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한 전 원장은 1998년 3월 14일 미국 하와이에 체류 중인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보내 온 서면답변 내용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PCS 문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의혹이 밝혀질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대어(大魚)를 낚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실제 당시 감사원 결과 보고서는 97년 4월 일반감사 때 밝혀진 내용을 재탕한 수준이었다.
“IMF 주범을 찾아라”
1998년 1월 외환위기 주범을 찾아내라는 여론은 극에 달했다. 감사원의 외환특감은 당연했다. 감사원은 그해 4월 외환위기의 최고책임자로 강경식(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목, 형사 고발했다.
죄목은 ‘직무유기’였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감사원 내부에선 외환위기 당시 강 전 부총리가 한국은행 등의 위기 보고를 묵살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직무유기죄를 적용하기는 무리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고의적으로’ 직무를 방임 또는 포기하는 등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강 전 부총리의 경우 이를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한승헌 전 원장은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에 관여한 경찰간부들에게 직무유기죄가 인정된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면서 직무유기죄 적용을 밀어붙였다.
감사원의 결정에 대해 감사원 전직 간부는 “외환위기 주범을 찾아내라는 여론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웠다”며 “기업·금융기관·정부 모두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밝혀내고 그 과정에서 책임의 중요도를 따지는 게 순리임에도 불구, 직무유기를 이유로 곧바로 형사 사안으로 처리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다고 본다”고 했다.
실제 감사원으로부터 고발, 검찰로부터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은 2004년 5월 27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부는 “97년 11월 10일 대통령에게 보고할 당시까지 재정경제원, 한국은행 등 모든 정부부처가 국제통화기금(IMF)행을 선택 가능한 유력한 방안으로 고려하고 있었을 뿐 구제금융 지원 요청이 결론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외환위기 실상을 은폐, 축소해 보고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對北송금 감사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은 2002년 《월간조선》 5월호를 통해 처음 알려졌고, 4개월 뒤인 9월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 전 의원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쟁점화됐다.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가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현대 대출은 청와대 한광옥 비서실장 지시’라고 말했다”고 주장(10월 4일)하는 등 사태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감사원은 10월 14일 대북 4000억원 지원설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당시 원장은 한승헌 전 원장의 후임인 이종남(李種南) 전 검찰총장이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문희상(文喜相)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를 통해 “대북지원 의혹은 현 정부에서 털고 가야 한다”며 감사원을 은근히 압박했다.
이에 이 원장은 2003년 1월 30일 감사위원회를 열어 현대상선의 대북 4000억원 지원설에 대한 감사를 종결하고 감사 내용을 발표했다. 다음은 감사원이 현대상선과 관련해 발표한 내용 전문이다.
<2003년 1월 28일 현대상선이 감사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5월 18일 대출받은 일시당좌대월 천억원은 전액 운항경비로 지급하거나 단기차입금을 상환하는 등으로 사용하였고, 2000년 6월 7일 대출받은 일시당좌대월 4000억원의 경우 1000억원은 현대건설 주식회사의 기업어음(CP) 매입자금으로, 765억원은 현대상선의 기업어음 등 상환자금으로, 나머지 2235억원은 대북관계 사업자금으로 각각 사용한 것으로 돼 있음.> 그간 김대중 정부는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과 관련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2235억원을 대북관계 사업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을 밝혀내긴 했지만, 곳곳에 ‘덮어 주기 감사’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선 감사원은 현대상선으로부터 산업은행 대출금 2235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자료를 받았음에도 관계자 소환조사나 추가 질의 등 자료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당시 감사원은 “계좌추적권이 없어 자료의 신빙성을 단시간 내 확인하기가 어렵고 어차피 검찰에서 조사할 것으로 판단, 자료 검토만으로 감사를 종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뿐 아니라 2235억원의 수표 26장에 배서(背書)된 6명의 필체가 신원확인이 되지 않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필체로 판단됐는데도 감사원은 경찰에 배서자의 신원확인을 의뢰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감사원은 현대상선 수표에 배서한 6명 중 1명은 외환은행 직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003년 5~6월 특검팀은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됐던 박지원(朴智元) 의원과 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근영(李瑾榮)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李光宰 봐주기 논란
2004년 11월 중순 감사원은 철도공사 산하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이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회사를 인수하려다 계약금 620만 달러(60여억원)를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첩보를 입수, 그해 12월 1일부터 내사를 시작했다. 이는 2005년 3월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조선일보》는 이날 보도를 통해 철도공사의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에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린 이광재(李光宰) 전 의원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자인 하이앤드 대표 전대월(全大月)씨와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인 허문석(許文錫)씨가 이 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허씨는 이기명(李基明) 전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과 고교 동기 동창이다. 이 전 의원을 허씨에게 연결해 준 사람이 바로 이 전 후원회장이다.
2005년 4월 10일 한나라당이, 이 전 의원이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참여를 철도청에 제의했다는 철도청 회의록 문건을 공개하면서 이 전 의원의 개입 의혹은 더욱 커졌다.
회의록만 놓고 보면, 이 사건에서 이 의원의 역할은 ‘단순 개입’을 넘어선 ‘적극적 주도’라 할 수 있었다.
회의록에 따르면, 2004년 8월 12일 철도청 신규사업 설명 회의에서 왕영용(王煐龍) 사업개발 본부장은 신광순(申光淳) 당시 철도공사 차장 등 철도청 간부들을 상대로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의 사업참여 제의가 유전개발 사업의 참여 동기”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날 회의는 철도청이 사업 참여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신광순 당시 차장은 엄청난 수익, 북한 건자재 사업을 이유로 철도교통진흥재단을 통해 사업에 참여키로 결정한다. 이광재 의원의 말이 사업 참여의 결정적 계기였음이 회의록 곳곳에서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4월 12일 감사원은 “이 의원의 연루 의혹은 없다”고 발표했다. 전 사장이 찾아와 유전 사업 지원을 요청하자 평소 알고 지내던 허 대표의 전화 연락처를 주고 만나 보라고 한 게 전부라는 것이다. 수사의뢰도 하지 않았다.
감사원 발표가 신뢰성을 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투자의혹 핵심인물 중 한 명인 허 대표가 외국으로 출국하는 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허 대표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 사장이 출국 금지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허 대표는 국내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감사원의 사전 양해를 얻고 출국했다”고 주장했다.
또 감사원은 민간 유전사업자인 ‘쿡 에너지’ 대표 권광진씨로부터 열린우리당 이광재 전 의원이 사업에 관련돼 있다는 진술을 받고서도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전윤철(田允喆) 전 감사원장은 2005년 4월 15일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사업 의혹과 관련, “관련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미흡한 점이 있지만, 이는 감사원의 한계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당시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의혹 사건을 수사한 정대훈(鄭大勳) 특별검사팀은 2005년 11월 15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유전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관여한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 의원을 의심할 만한 정황은 인정되나 형사책임을 묻기에는 부족하다.”
특검팀은 이 의원에 대해 검찰이 내린 ‘내사 중지’ 상태를 유지했다. 이 의원의 결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셈이다.
행담도 감사도 마찬가지
철도공사의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감사에 한창이었던 2005년 3월 31일 감사원은 한국도로공사(도공) 재무감사에서 도공이 행담도 개발사업과 관련 (주)행담도개발과 특혜에 가까운 ‘풋백옵션 계약’을 맺은 것에 주목하고 5월 11일부터 6월 9일까지 정밀감사를 했다. 행담도 개발 의혹은 이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행담도 개발 의혹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6년 8월 29일 도공은 충남 당진군 행담도 일대에 17만여 평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행담도 사업개발을 건설교통부로부터 승인받는다. 3년 뒤인 1999년 8월 도공은 민간 사업자로 ‘현대건설-에콘 컨소시엄’을 선정하고 자본금 100억원의 (주)행담도개발을 설립한다. 지분은 도공이 10%, 컨소시엄이 90%(에콘 63.9%, 현대 26.1%)였다.
그러던 와중 현대건설(2001년 8월)이 자금난으로 컨소시엄에서 탈퇴하고, 에콘사 역시 자금난으로 김재복씨에게 사업을 맡기고 자신들은 손을 뗐다. 이후 김씨는 지분을 인수해 사실상 이 사업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한국도로공사에 사업이 지지부진한 책임을 물어 ‘자본을 유치하면 도공이 상환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자본투자협약을 2004년 1월 체결했다.
이 협약은 도공에 크게 불리한 것인 만큼 손학래(孫鶴來)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자 김씨는 정부의 서남해안개발사업인 S 프로젝트에 자문을 하며 안면을 익힌 정찬용(鄭燦龍)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 문정인(文正仁) 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정태인(鄭太仁)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의 요청을 받은 문 전 위원장과 정 전 비서관은 김씨의 채권발행을 돕기 위해 정부지원의향서를 써 주거나 채권발행에 동의해 주라고 도공 직원을 질책하는 등 권한 밖의 일들을 저질렀다. 김씨를 동북아시대위에 소개해 준 정 전 수석도 2005년 도공과 김씨 간의 분쟁을 조정하려고 나서기도 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지만 노 전 대통령이 행담도 개발사업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또 청와대 인사들의 부적절한 개입이 월권이긴 해도 ‘범죄’ 수준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당장 봐주기 논란이 거셌다. 하지만 전 전 감사원장은 “법적 검토를 한 결과 형사처벌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후 검찰은 문 전 위원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정 전 비서관은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정 전 수석은 무혐의 처리했다. 도공과 (주)행담도개발 간의 사업상 갈등을 중재할 당시, 신분이 사인(私人)이어서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앞서 문 전 위원장과 정 전 비서관, 정 전 수석은 자신들이 행담도 개발사업에 부적절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을 언론이 사기극으로 몰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었다.
이외에도…
감사원은 노 전 대통령 집권 말기인 2007년 고위 공직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된 쌀 직불금 부당수령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도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지시로 불법 수령자 명단이 사라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감사원은 감사보고서 비공개 지시에 따라 감사 자료를 파기한 사실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드러나 파장을 낳았다. 진실 공방은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로까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CNK 관련 주가조작 감사 때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감사원이 2012년 1월 26일 발표한 CNK 관련 주가조작 감사 결과는 이렇다.
<▲김은석 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에 대한 해임요구 및 검찰수사 요청 ▲김 대사의 동생 등 측근들이 CNK 주식을 거래한 점을 적발하고 관련자들의 징계 요구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과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 오덕균 CNK 대표 등 3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 참고자료 제공.>
CNK 주가조작은 김은석(金殷石) 전 대사가 CNK의 자체 탐사결과(매장량 4억2000캐럿)를 마치 공식적인 사실인 것처럼 보도자료를 작성하도록 주도, CNK 주가를 급등하게 한 사건이다. 김 전 대사의 동생과 측근은 CNK 개발 사업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 주식을 싼값에 산 뒤 보도자료 배포 뒤 주가가 급등하면서 상당한 이득을 봤다. 박 전 차장은 일행을 대동해 카메룬 현지를 찾은 사실이 밝혀져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정태근(鄭泰根) 전 의원은 “오덕균 대표는 자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은 박영준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박 전 차관은 이 사건 때문은 아니지만,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파이시티 인허가 알선 부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형(刑)을 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최근 오락가락 감사로 논란을 일으킨 4대강 사업, 한식세계화 사업, 서민금융 사업 감사 등이 정권의 눈치를 본 감사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대통령 측근 임명이 문제
대통령이 측근을 감사원장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는 것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감사원 설립(1963년) 이후 ‘수장’인 감사원장으로 임명된 인사는 총 16명(초대 이원엽, 2대 한신, 3·4대 이주일, 5·6대 이석제, 7대 신두영, 8·9대 이한기, 10대 정희택, 11·12대 황영시, 13·14대 김영준, 15대 이회창, 16대 이시윤, 17대 한승헌, 18대 이종남, 19·20대 전윤철, 21대 김황식, 22대 양건)이다.
우선 박정희 정권(63~79년) 때 감사원장에 임명된 인사(이원엽, 한신, 이주일, 이석제, 신두영)는 모두 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볼 수 있다. 초대 이원엽(李元燁), 2대 한신(韓信), 3대 이주일(李周一), 4대 이석제(李錫濟) 전 원장 등은 모두 육군대장 또는 최고회의를 거친 군(軍) 출신이다. 또 신두영(申斗泳) 전 원장은 대통령비서실 사정담당 특별보좌관을 역임했었다.
전두환 정권(80~88년) 때 임명된 정희택(鄭喜澤), 황영시(黃永時) 전 원장도 마찬가지다. 정 전 원장은 11대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었고, 황 전 원장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노태우 정부(88년~92년)의 김영준(金永駿) 전 원장은 대통령사정담당 특별보좌관 출신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대통령이 과거와 같이 측근을 대놓고 감사원장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뽑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한 한승헌 전 원장 정도다. 앞서 언급했듯 한 전 원장은 3·1 사건 때 김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으며 인연을 쌓았다. 그는 감사원장 재직시절인 1998년 10월 9일 방일(訪日) 중인 김 전 대통령이 일본의 지인들에게 베푸는 다과회에 참석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신 김영삼 정부부터는 감사위원 자리에 측근을 앉혔다. 감사원은 감사 실무를 맡은 사무처와 사무처의 감사 내용을 심의·의결하는 감사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감사원장과 6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는 사무처의 감사 결과를 기초로 공무원들의 문책 여부를 가리고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사무처가 검찰 역할을 한다면 감사위원회는 법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관행적으로 감사원 출신 인사 3인과 외부 추천 3인을 임명하는데, 대부분 정권은 외부 추천 3명의 자리를 선거 후 자기네 진영 사람들에게 돌리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전리품으로 삼은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경우 1995년에 1월 1일 감사위원으로 임명된 전세봉(全世鳳) 전 조달청장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현철씨의 경복고 선배인 전 전 위원은 93년 3월 현철씨로부터 활동비를 지원해 줄 동문 기업인들을 물색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김덕영(金德永) 전 두산그룹 회장, 신영환(申永煥) 신성그룹 회장, 최승진(崔勝軫) 전 우성타이어 대표이사 등을 소개해 준 것이 드러나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이석형(李錫炯), 김용민(金容珉) 전 위원이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2006년 3월 감사위원에 임명된 이 전 위원은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언론개혁시민연대 법률구조본부 변호사를 지냈다. 그는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에서 법무행정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12월 29일 임명된 김 전 위원은 조달청장을 거쳐 노 전 대통령 임기 말에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냈다. 김 위원을 임명할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권 행사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있던 감사원 출신 오정희(吳正熺)·김조원(金照源)씨를 원대 복귀시키면서 연이어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결정에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던 이정현(李貞鉉) 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2005년 2월 11일 “오정희 청와대 비서관의 감사원 사무총장 내정은 전형적인 정실인사이자 동문인사”라는 논평을 내놨었다. 오 전 사무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측근인 은진수(殷辰洙), 진영곤(陳泳坤), 김인철(金仁喆) 전 위원이 임명돼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 대선캠프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은 전 위원은 논란에도 불구, 감사위원에 임명됐으나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1년 6월 구속 기소되어 1년6월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2012년 7월 모범수로 풀려났다. 진 전 위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고용복지수석을 지냈으며 김 전 위원은 2008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위원회 상근 자문 교수로 참여했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새누리당 비대위와 대선(大選) 선대위의 정치쇄신특위 위원, 대통령직인수위 정무분과 위원으로 활동한 장훈 중앙대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양건 전 원장이 반대해 성사되지 않았다.
“감사원, 대통령 비위 맞춘 적 없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최근 감사 논란과 관련,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끝난 다음 전 정부에 대해 감사를 했다고 해서 그것을 새 정권의 코드 맞추기 식 감사라고 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그는 이어 “감사의 독립성을 해칠 만한 청와대의 압박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정창영(鄭昌永) 전 감사원 사무총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4대강 사업은 물론, 감사원에서 성공한 감사로 평가받는 율곡사업도 현 정권에 대한 감사는 아니었습니다. 죽은 권력에는 강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는 약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원 성격상 1~2년 전의 정부 정책을 감사하게 됩니다. 따라서 정권 출범 초기에는 직전 정부의 정책을 감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 감사는 결과가 항상 미흡한 것 같습니다. 행담도 감사와 철도공사의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사업 감사가 대표적인 것 같은데요.
“감사원은 정권 눈치를 보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감사위원들은 감사 담당관들에게 ‘정책적 판단’을 주문하며 압력을 넣는 일이 잦았다고 하던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기억상 감사원에 있는 동안 청와대나 대통령이 ‘이 사건은 보지 마라’ ‘이 사건은 보라’고 지시한 적은 없습니다.”
—청와대의 압력이 정말 전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감사위원 직에 정권 측근이 기용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문제가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감사원장이 제청하지 않으면 됩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래서 누가 감사원장이 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원이 원장 임명을 제외하곤 정치적 입김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과연 그럴까.⊙
양건(梁建) 감사원장 교체설이 한창 나돌던 지난 2013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핵심 관계자는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 인사의 의견이 반영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양 원장은 유임됐다.
친박 3선 의원은 “당초 정부 출범 초기 임기 4년 가운데 2년 정도 남은 양건 감사원장의 거취를 놓고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국정철학 공유’ 원칙에 따라 교체를 검토했다. 그러나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낙마 등 인사사고가 잇따르고 야당도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정치적 부담을 느껴 (임기를) 보장해 줬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원장이 유임되자 청와대와 감사원 내 반(反) 양건 세력은 펄쩍 뛰었다. 이들은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스타일인 양 원장에 대한 불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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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격 사의를 표명한 양건 감사원장이 이임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기 전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
“양 원장의 유임이 결정되자 청와대와 감사원 내 일부 대구·경북(TK) 인사들은 사무총장이라도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사로 바꿔야 한다고 (양 원장을) 압박한 것으로 압니다. 유임 결정이 이뤄진 직후라 양 원장도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충청도 출신(충남 예산)인 김 총장만 피해를 본 것이지요.”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청와대에서 김 총장이 제2사무차장 시절 주도했던 K2 전차 해외 파워팩 장착 결정과정 등에 대한 감사를 문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 감사 결과에 따르면 K2 전차의 핵심 부품인 파워팩 사업자로 독일 군수업체 MTU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김병관(金秉寬)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고문으로 있던 무기중개상 유비엠텍이 43억원의 중개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 4월 17일 사의를 표했다. 사무총장이 된 지 5개월 만이었다.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음에도 취임 후 5개월 만에 총장이 교체되기는 감사원 개원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작년(2002년) 11월 7일 사무총장으로 임명됐었다.
청와대와 불편했던 梁建
김 사무총장 후임으로는 경남 진주 출신의 김영호(金英豪) 감사원 2차장이 낙점됐다. 감사원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코드를 맞춘 인사”라고 했다. 사무총장 인사가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행 감사원법 제18조에 따르면 사무총장(고위감사공무원단, 4급 이상 간부 포함) 인선은 감사원장의 임명 제청을 통해 청와대가 임명하게 돼 있다.
법사위 소속 관계자는 “김영호씨가 감사원 사무총장에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감사원이 아닌 정부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왔다”며 “이는 과거 사무총장 인선과 비교했을 때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물론 감사원 측은 “원장이 숙고한 후 청와대에 (후임 사무총장) 임명 제청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황상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관련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감사원 사무총장은 감사원 조직을 실질적으로 총괄한다. 감사원법 19조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원장의 명을 받아 사무처의 사무를 관장하며 소속 직원을 지휘하고 감독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임명된 양 원장과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고위직으로 승진한 김영호 사무총장 등 감사원 고위간부들은 그야말로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였다고 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양 원장이 4대강 감사 문제 때문에 감사위원, 고위 간부들과 사이가 다 틀어져 ‘왕따설’도 나왔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승진한 사람들과 사이가 나쁘다는 건 청와대와도 사이가 안 좋았다는 얘기”라고 했다.
8월 24일 자 《조선일보》 기사는 양 원장이 청와대와 얼마나 불편한 관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기사의 일부분이다.
<감사원 핵심 관계자는 “양 원장은 국회가 요구한 대로 입찰·담합 부분에 초점을 둔 감사를 원했지만, 청와대는 4대강의 다른 문제점도 감사원이 지적해 주길 원하면서 양측 사이에 적지 않은 마찰이 생겼다”고 했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감사원이 4대강 3차 감사에서 담합 외에 다른 잘못을 지적하게 되면 또다시 ‘정권 눈치 보기’ 감사라는 비판을 받게 되고, 그 부담은 양 원장이 모두 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실제로 양 원장은 3차 감사 도중 감사원 사무처로부터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염두에 둔 사업이었다는 보고를 받고 ‘담합 감사인데 왜 대운하 얘기가 나오느냐’고 언짢아했다”고 했다.>
이 와중에 양 원장은 감사위원 임명을 놓고 청와대와 대립했다. 청와대는 공석 중인 감사위원 직에 장훈(張勳) 중앙대 교수를 임명하려 했지만 양 원장은 장 교수가 작년에 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일한 점을 들어 반대했다. 양 원장이 장 교수에 대한 제청을 거부한 것이다. 이 사건 직후인 8월 23일 양 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양 원장이 장훈 중앙대 교수의 감사위원 임용 문제를 자신의 ‘탈출구’로 활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4대강 감사 결과 번복과 원전 비리 부실 감사 등에 대해 여론이 악화하면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던 양 원장이 자신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장 교수의 감사위원 임용 문제를 사퇴 빌미로 삼았다는 것이다.
정권 입맛에 맞는 정책감사
양 원장의 사퇴 과정을 보면 감사원장을 포함한 감사원 고위 간부들은 사실상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정책감사로 포장된 한탕식 코드·표적 감사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조성한(趙成漢)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영삼 정부 이후 강화된 감사원의 정책감사 기능이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실제 정책감사는 정권 입맛에 맞는 결과로 흘러가기 쉽다. 정책감사는 기준이 애매하다.
감사원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직무감찰규칙 4조를 보면 국가기밀, 국가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 고도의 통치행위와 함께 ‘정부의 중요 정책 결정’은 감사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는 감사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직무감찰규칙의 단서조항에는 ‘정책결정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사실이나 자료 및 정보 등의 오류는 감찰 대상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감사원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정책감사라는 ‘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얘기다.
《월간조선》은 과거 김영삼 정부 때부터 현 박근혜 정부까지 ‘정치 색깔을 띤 정책감사’라는 의심을 살 만한 감사 사례를 살펴봤다. 과거 언론보도와 전직 감사원 핵심 간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선정했다. 김영삼 정부를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과거 독재·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대부분 감사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뤄져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정책감사라는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YS 정권이 감사한 율곡사업, 평화의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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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정부 첫 감사원장인 이회창 전 대법관은 율곡사업 감사로 큰 업적을 남겼지만 감사 배경을 두고는 논란이 일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 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주는 모습. |
김영삼 정부의 초대 감사원장(15대)으로 임명된 이회창(李會昌) 대법관은 발탁되자마자(1993년 4월 27일) 율곡사업 비리를 파고들었다. 율곡사업은 박정희 정권인 74년부터 시작된 군 무기·장비 현대화사업을 통칭하는 암호명이었다. 모두 32조원을 쏟아부어 미사일, 장갑차, 함정, 전투기 등을 개발하거나 도입했다.
그해 7월 9일 감사원은 “모두 118건의 잘못을 적발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 무기중개상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군 고위관계자 6명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현역 장성 8명을 포함한 53명에 대해 징계 또는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이 일로 노태우 정권의 국방장관 두 명(이종구, 이상훈)과 한주석(韓周奭) 전 공군참모총장, 김철우(金鐵宇) 전 해군참모총장이 구속기소됐다. 무기 뇌물로 전직 군 수뇌부가 대규모로 감옥에 간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율곡사업 감사는 군 수뇌부의 대형 비리를 과감하고 분명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감사원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감사 배경에는 의문이 남는다. 하나회 해체작업 등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집권 후 취한 ‘정치군인 소탕’의 연장선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사실 율곡사업은 김영삼 정부 전에는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국가안보 사업이라는 이유로 감사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율곡사업 감사를 진행하던 시기 이 전 원장은 88년 감사 결과 별문제 없다는 식으로 나온 ‘평화의 댐’ 사업도 다시 들여다봤다. 88년 평화의 댐 감사 때 감사원은 정책결정 경위와 판단 근거자료, 관련 핵심인물 등에 대해서는 아예 손도 못 댄 채 댐이 설계대로 건설됐는지, 공사비는 제대로 책정했는지 여부 등 극히 기술적이고 단편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조사를 했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93년도의 감사는 달랐다. 감사원은 교도소에 있던 장세동(張世東) 전 안기부장까지 조사한 끝에 안기부가 북한의 수공 위력을 과대 포장했다는 점을 입증해 냈다. 다만 깔끔하진 않았다. 전직 감사원 간부의 말이다.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사업 감사는 군 내부의 비리와 과거 정권의 흑막을 파헤치는 데 크게 한몫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사는 기획사정론 사전조율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율곡사업 감사 중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인 권영해 국방부장관의 동생 영호씨가 무기중개업체에서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밝혀 내고도 발표하지 않은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1998년 11월 2일 자 《경향신문》은 이 전 원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93년 3월부터 9개월간 재직했던 이 전 원장은 다소 ‘정치적’이었다.(중략) 이 전 원장은 감사 결과를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데 신경을 썼던 것으로 ‘삼청동 식구’들에게 인식돼 있다.>
DJ, 현철씨 관련된 PCS 사업자선정 감사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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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정부의 한승헌 감사원장은 김영삼 정부를 겨냥한 외환특감, PCS 사업자선정 감사를 진두지휘했다. |
김 전 대통령이 1997년 한차례 감사한 사안을 다시 감사해 달라고 한 것은 당시 감사에서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차장 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金賢哲)씨가 PCS 사업자 선정에 개입했다는 구체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당시 공동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 의원들은 현철씨와 김 전 차장 등이 이석채(李錫采) 전 정통부 장관을 통해 PCS 선정 사업에 개입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으로 김대중 인수위에서 활약한 인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정통부는 원래 선정 과정에 투명성을 기하기 위해 출연금과 기술심사를 거쳐 선발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추첨방식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애당초 잡음을 없애 운이 좋은 사업자가 사업권을 따는 정책을 편 것이지요. 하지만 현철씨의 고교 선배인 이석채 장관 임명 이후 정통부는 한국통신의 자회사에 1장의 티켓을 주고, 통신장비 제조업체와 비제조업체에 각각 사업권을 주기로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한솔그룹은 LG나 삼성-현대 등 힘겨운 상대를 피해 금호-효성 컨소시엄과 중소기업연합 등 비교적 쉬운 상대와 경쟁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사업권은 한국통신과 LG와 한솔그룹으로 돌아갔지요.”
조동만(趙東晩) 한솔아이글로브 회장과 가까운 김 전 차장은 현철씨의 최측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감사원장에 3·1 명동사건(1967년 명동성당 기념미사에서 유신반대 선언문을 발표한 사건)’ 때 자신의 변론을 맡으며 인연을 쌓은 한승헌(韓勝憲) 변호사(17대)를 임명하며 PCS 사업자 선정 의혹 감사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감사원은 강도 높은 감사를 벌였지만 당초 제기됐던 특혜설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한 전 원장은 1998년 3월 14일 미국 하와이에 체류 중인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보내 온 서면답변 내용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PCS 문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의혹이 밝혀질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대어(大魚)를 낚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실제 당시 감사원 결과 보고서는 97년 4월 일반감사 때 밝혀진 내용을 재탕한 수준이었다.
“IMF 주범을 찾아라”
1998년 1월 외환위기 주범을 찾아내라는 여론은 극에 달했다. 감사원의 외환특감은 당연했다. 감사원은 그해 4월 외환위기의 최고책임자로 강경식(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목, 형사 고발했다.
죄목은 ‘직무유기’였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감사원 내부에선 외환위기 당시 강 전 부총리가 한국은행 등의 위기 보고를 묵살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직무유기죄를 적용하기는 무리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직무유기죄는 공무원이 ‘고의적으로’ 직무를 방임 또는 포기하는 등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강 전 부총리의 경우 이를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한승헌 전 원장은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에 관여한 경찰간부들에게 직무유기죄가 인정된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면서 직무유기죄 적용을 밀어붙였다.
감사원의 결정에 대해 감사원 전직 간부는 “외환위기 주범을 찾아내라는 여론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웠다”며 “기업·금융기관·정부 모두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밝혀내고 그 과정에서 책임의 중요도를 따지는 게 순리임에도 불구, 직무유기를 이유로 곧바로 형사 사안으로 처리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다고 본다”고 했다.
실제 감사원으로부터 고발, 검찰로부터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은 2004년 5월 27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부는 “97년 11월 10일 대통령에게 보고할 당시까지 재정경제원, 한국은행 등 모든 정부부처가 국제통화기금(IMF)행을 선택 가능한 유력한 방안으로 고려하고 있었을 뿐 구제금융 지원 요청이 결론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외환위기 실상을 은폐, 축소해 보고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對北송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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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승태 감사원 1차장이 2003년 1월 30일 오후 현대상선의 2억 달러 대북 송금 사안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문희상(文喜相)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를 통해 “대북지원 의혹은 현 정부에서 털고 가야 한다”며 감사원을 은근히 압박했다.
이에 이 원장은 2003년 1월 30일 감사위원회를 열어 현대상선의 대북 4000억원 지원설에 대한 감사를 종결하고 감사 내용을 발표했다. 다음은 감사원이 현대상선과 관련해 발표한 내용 전문이다.
<2003년 1월 28일 현대상선이 감사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5월 18일 대출받은 일시당좌대월 천억원은 전액 운항경비로 지급하거나 단기차입금을 상환하는 등으로 사용하였고, 2000년 6월 7일 대출받은 일시당좌대월 4000억원의 경우 1000억원은 현대건설 주식회사의 기업어음(CP) 매입자금으로, 765억원은 현대상선의 기업어음 등 상환자금으로, 나머지 2235억원은 대북관계 사업자금으로 각각 사용한 것으로 돼 있음.> 그간 김대중 정부는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과 관련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2235억원을 대북관계 사업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을 밝혀내긴 했지만, 곳곳에 ‘덮어 주기 감사’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선 감사원은 현대상선으로부터 산업은행 대출금 2235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자료를 받았음에도 관계자 소환조사나 추가 질의 등 자료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당시 감사원은 “계좌추적권이 없어 자료의 신빙성을 단시간 내 확인하기가 어렵고 어차피 검찰에서 조사할 것으로 판단, 자료 검토만으로 감사를 종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뿐 아니라 2235억원의 수표 26장에 배서(背書)된 6명의 필체가 신원확인이 되지 않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필체로 판단됐는데도 감사원은 경찰에 배서자의 신원확인을 의뢰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감사원은 현대상선 수표에 배서한 6명 중 1명은 외환은행 직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003년 5~6월 특검팀은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됐던 박지원(朴智元) 의원과 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근영(李瑾榮)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李光宰 봐주기 논란
2004년 11월 중순 감사원은 철도공사 산하 ‘한국철도교통진흥재단’이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회사를 인수하려다 계약금 620만 달러(60여억원)를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첩보를 입수, 그해 12월 1일부터 내사를 시작했다. 이는 2005년 3월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조선일보》는 이날 보도를 통해 철도공사의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에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린 이광재(李光宰) 전 의원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자인 하이앤드 대표 전대월(全大月)씨와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인 허문석(許文錫)씨가 이 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허씨는 이기명(李基明) 전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과 고교 동기 동창이다. 이 전 의원을 허씨에게 연결해 준 사람이 바로 이 전 후원회장이다.
2005년 4월 10일 한나라당이, 이 전 의원이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참여를 철도청에 제의했다는 철도청 회의록 문건을 공개하면서 이 전 의원의 개입 의혹은 더욱 커졌다.
회의록만 놓고 보면, 이 사건에서 이 의원의 역할은 ‘단순 개입’을 넘어선 ‘적극적 주도’라 할 수 있었다.
회의록에 따르면, 2004년 8월 12일 철도청 신규사업 설명 회의에서 왕영용(王煐龍) 사업개발 본부장은 신광순(申光淳) 당시 철도공사 차장 등 철도청 간부들을 상대로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의 사업참여 제의가 유전개발 사업의 참여 동기”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날 회의는 철도청이 사업 참여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신광순 당시 차장은 엄청난 수익, 북한 건자재 사업을 이유로 철도교통진흥재단을 통해 사업에 참여키로 결정한다. 이광재 의원의 말이 사업 참여의 결정적 계기였음이 회의록 곳곳에서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4월 12일 감사원은 “이 의원의 연루 의혹은 없다”고 발표했다. 전 사장이 찾아와 유전 사업 지원을 요청하자 평소 알고 지내던 허 대표의 전화 연락처를 주고 만나 보라고 한 게 전부라는 것이다. 수사의뢰도 하지 않았다.
감사원 발표가 신뢰성을 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투자의혹 핵심인물 중 한 명인 허 대표가 외국으로 출국하는 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허 대표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 사장이 출국 금지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허 대표는 국내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감사원의 사전 양해를 얻고 출국했다”고 주장했다.
또 감사원은 민간 유전사업자인 ‘쿡 에너지’ 대표 권광진씨로부터 열린우리당 이광재 전 의원이 사업에 관련돼 있다는 진술을 받고서도 추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전윤철(田允喆) 전 감사원장은 2005년 4월 15일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사업 의혹과 관련, “관련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도 미흡한 점이 있지만, 이는 감사원의 한계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당시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의혹 사건을 수사한 정대훈(鄭大勳) 특별검사팀은 2005년 11월 15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유전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관여한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 의원을 의심할 만한 정황은 인정되나 형사책임을 묻기에는 부족하다.”
특검팀은 이 의원에 대해 검찰이 내린 ‘내사 중지’ 상태를 유지했다. 이 의원의 결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셈이다.
행담도 감사도 마찬가지
철도공사의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감사에 한창이었던 2005년 3월 31일 감사원은 한국도로공사(도공) 재무감사에서 도공이 행담도 개발사업과 관련 (주)행담도개발과 특혜에 가까운 ‘풋백옵션 계약’을 맺은 것에 주목하고 5월 11일부터 6월 9일까지 정밀감사를 했다. 행담도 개발 의혹은 이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행담도 개발 의혹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6년 8월 29일 도공은 충남 당진군 행담도 일대에 17만여 평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행담도 사업개발을 건설교통부로부터 승인받는다. 3년 뒤인 1999년 8월 도공은 민간 사업자로 ‘현대건설-에콘 컨소시엄’을 선정하고 자본금 100억원의 (주)행담도개발을 설립한다. 지분은 도공이 10%, 컨소시엄이 90%(에콘 63.9%, 현대 26.1%)였다.
그러던 와중 현대건설(2001년 8월)이 자금난으로 컨소시엄에서 탈퇴하고, 에콘사 역시 자금난으로 김재복씨에게 사업을 맡기고 자신들은 손을 뗐다. 이후 김씨는 지분을 인수해 사실상 이 사업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한국도로공사에 사업이 지지부진한 책임을 물어 ‘자본을 유치하면 도공이 상환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자본투자협약을 2004년 1월 체결했다.
이 협약은 도공에 크게 불리한 것인 만큼 손학래(孫鶴來)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자 김씨는 정부의 서남해안개발사업인 S 프로젝트에 자문을 하며 안면을 익힌 정찬용(鄭燦龍)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 문정인(文正仁) 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정태인(鄭太仁)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의 요청을 받은 문 전 위원장과 정 전 비서관은 김씨의 채권발행을 돕기 위해 정부지원의향서를 써 주거나 채권발행에 동의해 주라고 도공 직원을 질책하는 등 권한 밖의 일들을 저질렀다. 김씨를 동북아시대위에 소개해 준 정 전 수석도 2005년 도공과 김씨 간의 분쟁을 조정하려고 나서기도 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지만 노 전 대통령이 행담도 개발사업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또 청와대 인사들의 부적절한 개입이 월권이긴 해도 ‘범죄’ 수준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당장 봐주기 논란이 거셌다. 하지만 전 전 감사원장은 “법적 검토를 한 결과 형사처벌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후 검찰은 문 전 위원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정 전 비서관은 직권남용과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정 전 수석은 무혐의 처리했다. 도공과 (주)행담도개발 간의 사업상 갈등을 중재할 당시, 신분이 사인(私人)이어서 직권남용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앞서 문 전 위원장과 정 전 비서관, 정 전 수석은 자신들이 행담도 개발사업에 부적절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을 언론이 사기극으로 몰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었다.
이외에도…
감사원은 노 전 대통령 집권 말기인 2007년 고위 공직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된 쌀 직불금 부당수령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도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지시로 불법 수령자 명단이 사라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감사원은 감사보고서 비공개 지시에 따라 감사 자료를 파기한 사실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8년 드러나 파장을 낳았다. 진실 공방은 검찰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로까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CNK 관련 주가조작 감사 때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감사원이 2012년 1월 26일 발표한 CNK 관련 주가조작 감사 결과는 이렇다.
<▲김은석 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에 대한 해임요구 및 검찰수사 요청 ▲김 대사의 동생 등 측근들이 CNK 주식을 거래한 점을 적발하고 관련자들의 징계 요구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과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 오덕균 CNK 대표 등 3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 참고자료 제공.>
CNK 주가조작은 김은석(金殷石) 전 대사가 CNK의 자체 탐사결과(매장량 4억2000캐럿)를 마치 공식적인 사실인 것처럼 보도자료를 작성하도록 주도, CNK 주가를 급등하게 한 사건이다. 김 전 대사의 동생과 측근은 CNK 개발 사업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 주식을 싼값에 산 뒤 보도자료 배포 뒤 주가가 급등하면서 상당한 이득을 봤다. 박 전 차장은 일행을 대동해 카메룬 현지를 찾은 사실이 밝혀져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정태근(鄭泰根) 전 의원은 “오덕균 대표는 자신에게 힘이 되는 사람은 박영준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박 전 차관은 이 사건 때문은 아니지만,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하고 파이시티 인허가 알선 부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형(刑)을 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최근 오락가락 감사로 논란을 일으킨 4대강 사업, 한식세계화 사업, 서민금융 사업 감사 등이 정권의 눈치를 본 감사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대통령 측근 임명이 문제
대통령이 측근을 감사원장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는 것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감사원 설립(1963년) 이후 ‘수장’인 감사원장으로 임명된 인사는 총 16명(초대 이원엽, 2대 한신, 3·4대 이주일, 5·6대 이석제, 7대 신두영, 8·9대 이한기, 10대 정희택, 11·12대 황영시, 13·14대 김영준, 15대 이회창, 16대 이시윤, 17대 한승헌, 18대 이종남, 19·20대 전윤철, 21대 김황식, 22대 양건)이다.
우선 박정희 정권(63~79년) 때 감사원장에 임명된 인사(이원엽, 한신, 이주일, 이석제, 신두영)는 모두 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볼 수 있다. 초대 이원엽(李元燁), 2대 한신(韓信), 3대 이주일(李周一), 4대 이석제(李錫濟) 전 원장 등은 모두 육군대장 또는 최고회의를 거친 군(軍) 출신이다. 또 신두영(申斗泳) 전 원장은 대통령비서실 사정담당 특별보좌관을 역임했었다.
전두환 정권(80~88년) 때 임명된 정희택(鄭喜澤), 황영시(黃永時) 전 원장도 마찬가지다. 정 전 원장은 11대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었고, 황 전 원장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노태우 정부(88년~92년)의 김영준(金永駿) 전 원장은 대통령사정담당 특별보좌관 출신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대통령이 과거와 같이 측근을 대놓고 감사원장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뽑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한 한승헌 전 원장 정도다. 앞서 언급했듯 한 전 원장은 3·1 사건 때 김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으며 인연을 쌓았다. 그는 감사원장 재직시절인 1998년 10월 9일 방일(訪日) 중인 김 전 대통령이 일본의 지인들에게 베푸는 다과회에 참석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신 김영삼 정부부터는 감사위원 자리에 측근을 앉혔다. 감사원은 감사 실무를 맡은 사무처와 사무처의 감사 내용을 심의·의결하는 감사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감사원장과 6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는 사무처의 감사 결과를 기초로 공무원들의 문책 여부를 가리고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사무처가 검찰 역할을 한다면 감사위원회는 법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관행적으로 감사원 출신 인사 3인과 외부 추천 3인을 임명하는데, 대부분 정권은 외부 추천 3명의 자리를 선거 후 자기네 진영 사람들에게 돌리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전리품으로 삼은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경우 1995년에 1월 1일 감사위원으로 임명된 전세봉(全世鳳) 전 조달청장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현철씨의 경복고 선배인 전 전 위원은 93년 3월 현철씨로부터 활동비를 지원해 줄 동문 기업인들을 물색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김덕영(金德永) 전 두산그룹 회장, 신영환(申永煥) 신성그룹 회장, 최승진(崔勝軫) 전 우성타이어 대표이사 등을 소개해 준 것이 드러나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이석형(李錫炯), 김용민(金容珉) 전 위원이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2006년 3월 감사위원에 임명된 이 전 위원은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언론개혁시민연대 법률구조본부 변호사를 지냈다. 그는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에서 법무행정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12월 29일 임명된 김 전 위원은 조달청장을 거쳐 노 전 대통령 임기 말에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냈다. 김 위원을 임명할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권 행사를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있던 감사원 출신 오정희(吳正熺)·김조원(金照源)씨를 원대 복귀시키면서 연이어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결정에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던 이정현(李貞鉉) 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2005년 2월 11일 “오정희 청와대 비서관의 감사원 사무총장 내정은 전형적인 정실인사이자 동문인사”라는 논평을 내놨었다. 오 전 사무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다. 그는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측근인 은진수(殷辰洙), 진영곤(陳泳坤), 김인철(金仁喆) 전 위원이 임명돼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때 대선캠프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은 전 위원은 논란에도 불구, 감사위원에 임명됐으나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1년 6월 구속 기소되어 1년6월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2012년 7월 모범수로 풀려났다. 진 전 위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고용복지수석을 지냈으며 김 전 위원은 2008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법무행정분과위원회 상근 자문 교수로 참여했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새누리당 비대위와 대선(大選) 선대위의 정치쇄신특위 위원, 대통령직인수위 정무분과 위원으로 활동한 장훈 중앙대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려 했지만 양건 전 원장이 반대해 성사되지 않았다.
“감사원, 대통령 비위 맞춘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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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영 전 감사원 사무총장. |
정창영(鄭昌永) 전 감사원 사무총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4대강 사업은 물론, 감사원에서 성공한 감사로 평가받는 율곡사업도 현 정권에 대한 감사는 아니었습니다. 죽은 권력에는 강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는 약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원 성격상 1~2년 전의 정부 정책을 감사하게 됩니다. 따라서 정권 출범 초기에는 직전 정부의 정책을 감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 감사는 결과가 항상 미흡한 것 같습니다. 행담도 감사와 철도공사의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사업 감사가 대표적인 것 같은데요.
“감사원은 정권 눈치를 보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감사위원들은 감사 담당관들에게 ‘정책적 판단’을 주문하며 압력을 넣는 일이 잦았다고 하던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기억상 감사원에 있는 동안 청와대나 대통령이 ‘이 사건은 보지 마라’ ‘이 사건은 보라’고 지시한 적은 없습니다.”
—청와대의 압력이 정말 전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감사위원 직에 정권 측근이 기용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문제가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감사원장이 제청하지 않으면 됩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래서 누가 감사원장이 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원이 원장 임명을 제외하곤 정치적 입김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과연 그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