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AE 원전 강력 후보였던 프랑스 아레바(Areva)의 로비스트였던 강귀희(姜貴姬)씨 주장
⊙ 美 외교 전문을 통해 본 UAE 원전 수주전 막후 경쟁
⊙ GE-히타치(Hitachi), 한국보다 82% 높은 입찰가 제시
⊙ ‘탈락 통보 받았다’는 청와대 설명은 사실 아닌 듯
⊙ 美 외교 전문을 통해 본 UAE 원전 수주전 막후 경쟁
⊙ GE-히타치(Hitachi), 한국보다 82% 높은 입찰가 제시
⊙ ‘탈락 통보 받았다’는 청와대 설명은 사실 아닌 듯
- 울산에 위치한 신고리원전 3호기와 4호기의 전경. UAE에 수출한 모델은 신고리원전과 같은 노형의 원전이다.
60여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의 원자력 발전 역사에서 가장 큰 숙원은 무엇일까. 바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의 보유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처리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와 접촉했다. 계약 단계까지 갔지만, 미국의 압력으로 계약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의 하나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약속했다. 취임 이후에도 강력한 개정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 4월, 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한미 간 회의가 열렸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전 당시 프랑스 국영원자력기업이 한국에 핵연료재처리 기술 전수를 제안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재처리 권한을 얻도록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돕는 목소리를 내겠다고도 제안했다 한다. 해외 원전 수출시장에서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가 손을 잡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증언의 주인공은 로비스트 강귀희씨.
佛 아레바 로비스트로 활동한 강귀희씨
강귀희씨는 프랑스 고속전철인 테제베(TSV)의 한국 진출을 중개한 로비스트로 유명하다. 초대 미스코리아 진이기도 하다. 프랑스 알스톰사의 에이전트이자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일본의 신칸센과 독일의 이체(ICE)를 제치고 테제베가 선정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커미션으로 100억원을 받은 일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UAE 원전 입찰 당시 최종 후보로 선정된 곳은 프랑스의 국영원자력기업 아레바(AREVA)와 한국의 한국전력 컨소시엄, 미국과 일본이 함께한 GE-히타치 컨소시엄이었다. 강씨는 당시 아레바의 로비스트였다.
강씨를 만나러 경기도 모처에 있는 강씨의 자택으로 향했다. 2008년과 2009년 UAE 원전 수주전 당시의 회의록과 편지, 메모 등이 책상 위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각 문서는 매우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문서만 살펴봐도 언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강씨는 아레바와의 인연이 테제베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알스톰사의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안 로베르종(Anne Lauvergeon)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친분을 쌓게 됐습니다. 2001년 로베르종이 아레바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어요. 자연스럽게 저도 원자력 관련 일을 하게 됐습니다. UAE 원전 프로젝트를 제 생애 마지막으로 조국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뛰어들었어요.”
사실 강씨는 지난 2010년 12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UAE 원전 입찰에 관여했었다고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밝히지 않았다. 최근 한국 원자력계 비리와 UAE 원전 하청과 관련한 비리 파문이 커지는 것을 보며, 내막을 밝히기로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기자를 만난 강씨는 ‘원전을 수주했다는 성과만을 올리기 위해 국가의 실익은 외면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이다.
“UAE 원전 프로젝트를 위해 2008년 상반기부터 꼬박 1년 9개월여를 뛰었습니다. 저의 생각은 UAE에 아레바와 한국이 함께 들어가자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프랑스에 있는 제 인맥과 재산을 총동원해 아레바를 상대로 협상을 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제 생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뛰어들었습니다.”
안 로베르종은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며 42세에 아레바의 CEO로 취임한 프랑스의 유력 정치인이었다. 2006년에 《포천》지는 그녀를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이 높은 여성으로 꼽기도 했다.
강씨는 로베르종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1990년 에디트 크레송(Edith Cresson) 전 프랑스 총리가 한국을 방문할 당시 유로장관이었던 로베르종도 함께 내한했다고 한다. 로베르종은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된 상태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여자 2명이 한꺼번에 대통령을 만날 수는 없다’며 로베르종의 참석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로베르종 대신 주한 프랑스대사가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배석했다. 강씨는 청와대에 못 들어간 로베르종을 데리고 인사동을 쏘다녔다고 한다.
“일본은 했는데 한국은 왜 재처리 권한 획득 못하나”
테제베 수출을 통해 얻은 프랑스에서의 입지와 로베르종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강씨는 해외 원전시장에서의 한국과 프랑스의 공조 방안을 도출했다고 한다.
핵심은 재처리 기술 전수와 해외 원전시장에서의 전략적 공조였다.
2008년 6월 13일 프랑스 아레바 본사에서 열린 회의를 기록한 회의록에 재처리 기술 이슈가 등장한다. 회의에는 로베르종과 국제 마케팅 담당 부사장인 장 자크 거트롯, 강귀희씨가 참석했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아레바 측이 한미원자력협정을 언급한 부분이 등장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은) 미국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지만, 일본은 이미 재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았는데 한국은 예외가 되는 게 타당한가’라고 아레바 측은 지적했다. 강씨에 따르면 이때 로베르종이 “미국이 한국의 재처리 권한 획득에 동의하도록 한국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해서는, 먼저 한국이 의지를 가지고 재처리 권한 문제를 제기하면 아레바의 최고경영자로서 한국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본이나 인도도 재처리 권한을 획득했는데 세계 6위의 원자력 대국인 한국이 재처리를 금지당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강씨는 당시 한전의 임원이었던 A씨에게 로베르종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원자력계에 입김이 센 로베르종이라면 어떻게든 도움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레바 측은 2016년경이면 수용 초과에 이르는 한국의 핵폐기물 재처리를 아레바가 담당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2024년경에는 한국의 모든 핵폐기물 저장소(Canister)가 꽉 찰 전망이다. 폐기물을 처리하기는커녕 임시 보관을 하는 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는 셈이다. 강씨는 로베르종이 폐기물 재처리 기술을 언급하며 미쓰비시의 예를 들었다고 말했다.
“로베르종은 미쓰비시에 어떤 식으로 재처리 기술을 전수해 줬는지 설명해 줬습니다. 일본 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을 배에 실어 프랑스로 들여왔다고 하더군요. 그걸 재처리하며 미쓰비시 측 기술자들에게 과정을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재처리한 후에 다시 일본에 싣고 갔다고 합디다. 그러면서 한국도 같은 식으로 진행하면 된다고 했어요. 회의가 있던 날 마침 엘리제궁에서 부시 미(美) 대통령 환영 만찬이 있었어요. 로베르종이 거기에 참석하기 위해 바삐 가면서 저에게 말하더군요. ‘폐기물 재처리는 너희 나라의 숙원 아니냐. 그 기술을 우리가 전수해 줄 수 있다’고요.”
로베르종은 한국 원자력 발전의 시급한 과제를 정확히 지적했다. 바로 핵폐기물 ‘재처리’다.
우라늄을 채광해 정련한 후, 변환·농축해 가공한 다음 원자로에 장착하는 과정을 ‘선행주기’라고 한다. 사용후핵연료를 화학적으로 처리해 우라늄·플루토늄을 추출한 다음 이를 원자로 연료로 다시 활용하는 과정을 ‘후행주기’라고 한다.
한미원자력협정은 한국이 선행주기의 핵심인 농축과, 후행주기의 핵심인 재처리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핵무기 개발 가능성 때문이다.
“함께 해외 원전 수주하자”
아레바는 UAE 원전과 관련해서 어떤 제안을 했을까. 강씨는 “아레바가 UAE 원전 프로젝트 중 70% 이상을 한국 기업에 맡기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2008년 초부터 UAE 원전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입찰 발표 직전 3개월은 몸도 마음도 극한에 다다를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한국기업의 참여율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로 아레바와 구두 합의를 했습니다.”
구두합의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강씨에게 물었다. 그는 “원청이 확정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누가 그런 합의를 문서화하겠나”라고 답했다.
“아레바 내부에서도 이런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려면 거쳐야 할 절차가 정말 많습니다. 하나하나 절차를 통과하길 기다리는데 정말 피가 마르더군요. 로비스트 업무라는 게 막후에서 움직여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센 강변의 노보텔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문서를 검토하는데 막판에는 너무 지쳐 나도 모르게 강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레바는 해외 원전 수주전에서 프랑스와 한국이 손을 잡고 입찰하자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강씨의 설명이다.
“프랑스와 한국은 각각 서로가 갖지 못한 점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자체 노형과 그것에 들어가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업계에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터줏대감이라는 점도 분명한 강점이죠. 한국은 짧은 기간 안에 원전을 짓는 훌륭한 건설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원전을 지어본 경험이 있다는 강점도 있고요. 양국이 손을 잡고 시너지효과를 내자는 것이 아레바 측의 의견이었어요.
구체적인 사항까지 논의됐습니다.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은 1400MW급입니다. 프랑스가 개발한 3세대 원전인 EPR-1600은 1600MW급이고요. 1400MW를 초과하는 원전은 아레바가 수주하고 그 이하는 한국이 수주하는 게 어떤가 하는 아이디어까지 회의에서 논의됐습니다. 중동 국가 중에는 프랑스형보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형을 선호하는 나라가 많을 것이라고 아레바는 보고 있었어요. 물론 최종 결정은 한국 측이 내리는 것이지요. 저는 아레바 측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 내 한국 측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 겁니다.”
아레바 의견, 청와대에 두 차례 전달
강씨는 아레바 측의 의사를 청와대 경제수석실을 통해 전달했다고 한다. 2008년 10월 날짜로 작성된 <원자력기술 다변화 및 해외 수출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담아 전달했다. 그 일부다.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 협력까지도 (프랑스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한국의 핵주기 전반의 기술 확보 추진.
▲성공적인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면 프랑스와 긴밀한 협력으로 미국에 한국의 입장을 적절히 이해시켜서 미국으로부터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의 승인을 받아내야 함.〉
2009년 6월에는 장우주(張禹疇)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통해 청와대 경제수석실로 아레바의 제안을 담은 서한에 아레바와의 회의록을 첨부해 전달했다고 한다.
강씨의 서한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을까.
장우주 전 총재에게 강씨의 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했는지 물었다. 장 전 총재는 “문서의 내용이 기억난다”며 전달 여부에 대해서는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다면 상보되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신중을 기했을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장우주 전 총재의 아들인 장순흥(張舜興)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프랑스가 30년 전에도 그런 제의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허락하지 않는 한 힘들다고 본다”고 했다.
기자는 UAE 원전 수주 당시 관련자들에게 직접 확인해 보려 시도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윤진식(尹鎭植) 새누리당 의원과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이었던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다. UAE 원전 수주 관련 취재라며, 취재 목적을 밝히고 여러 번 연락했다. 윤진식 의원과 최경환(崔炅煥) 원내대표 모두 연락에 응하지 않았다.
강씨는 “지금에 와서는 MB가 보고서와 서한을 봤었어도 제안을 고려하지 않았겠다 싶어요. 당시 MB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벼랑 끝에 몰려 있었습니까. 원전 수주 하나로 숨통이 트였잖아요. 일단 원청으로 따고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겠지요.”
강귀희씨와 아레바의 논의는 UAE 원전 수주전에서 아레바가 승리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진행됐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하고 대중동 원전외교를 펴고 있었다. UAE 원전 프로젝트는 첫 시험대였다.
UAE 원전 수주 확신했던 프랑스
여기에 UAE와 프랑스의 정치적·군사적 관계도 중요한 요소였다. UAE는 프랑스로부터 1990년대부터 전차와 전투기 등 무기를 사들였다. 1995년에는 양국이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하고 합동군사훈련도 해 오고 있다.
특히 UAE 원전 수주전이 한창이던 2009년 5월부터 프랑스는 아부다비에 500명 규모의 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이에 더해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전세계 프랑스 대사관을 UAE가 이용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하는 등 양국의 정치·외교적 협력을 강화하려 했다.
프랑스와 UAE의 관계는 동맹을 넘은 혈맹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 ‘안전 이슈’도 있었다. 사르코지는 직접 UAE 측에 한국 원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UAE 수주 과정을 잘 알고 있는 B 교수의 말이다.
“사르코지는 UAE 측에 한국의 원전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원전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체제가 빈약하고, 원전을 운영하는 측, 즉 한전·한수원과 하청업자 사이에 유착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 문제가 제기될 거라는 이야기죠.”
UAE 원전 수주 과정을 잘 알고 있는 C씨도 같은 얘기를 했다.
“아랍에미리트 원자력공사(ENEC) 측 인사가 2009년 11월에 한국전력을 방문해 안전성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프랑스 측에서 들은 얘기를 확인해보려고 한 거죠.”
3년여가 지난 지금 한국 원전의 문제점에 대한 사르코지의 지적은 현실로 나타났다. 프랑스는 어떻게 한국 원전의 문제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걸까. 강씨는 “아레바가 한전과 한수원의 내부 사정에 정통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미팅을 시작하면서 로베르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전과 한수원이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어서 우려가 된다고요. 한전과 한수원의 임원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레바는 한전, 한수원과 우라늄농축공장 사업이나 우라늄 공급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장기간 진행해 왔습니다. 접촉이 잦았다는 말이지요. 거기에 국제 원자력계가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어떤 소문이라도 금방 퍼지죠.”
C씨는 해외 원자력계의 ‘브로커’들이 각 나라의 상황을 주시하며 발빠르게 움직인다고 했다.
“JS전선이 한수원에 납품한 케이블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해외의 브로커에게서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한국 원전의 전선 공급처를 바꿔야 되지 않냐고요. 자신이 잘 아는 곳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청와대 발표와 電文 내용 달라
2009년 12월 27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특별담화가 생중계됐다. UAE가 한국형 원전 4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낭보를 대통령이 직접 전했다. 외교 채널을 통해 11월에 UAE로부터 ‘이번엔 안 되겠다’는 탈락 소식을 들었지만 대통령의 ‘전화 외교’를 통해 전세를 뒤집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프랑스 언론은 연일 패인을 분석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아레바와 강귀희씨의 논의는 없던 일이 됐다.
“정말 할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참았지요. 누가 UAE 원전에 대해 물어도 ‘원청으로 수주한 거니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하고 말았습니다. MB가 당시 정치적으로 얼마나 몰려 있었습니까.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으랴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원전을 짓고 운영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막에 고속도로 내는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일이에요. 싼 값으로 무턱대고 수주하고 나면 끝날 일이 아닌 겁니다. 짓는 동안에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요.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짓는 원전인데 싼 값으로 수주해서 되겠습니까? 후손들에게 짐을 전가하는 것 아닙니까?”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대사관 외교전문을 뒤져 봤다. 거기엔 정부의 설명과 좀 다른 얘기가 있었다. 아부다비의 미 대사관은 2009년 한 해간 거의 매달 UAE 원전 입찰 상황을 분석한 전문을 국무부로 보냈다. 전문을 읽어 보면 미국, 프랑스, 한국 세 나라가 수주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에는 데이비드 스콧(David Scott) 아부다비행정청 경제차관보의 발언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입찰 결정 전인 2009년 한국을 방문해 원전의 안전성 문제 등을 한전과 협의하기도 한 인사다.
전문을 시간 순으로 훑어보면 입찰 결정이 발표되기 약 반년 전부터 한국이 이미 다른 후보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된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었다. UAE 측은 이 사실을 다른 후보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면서 협상을 이끌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11월 초 입찰 탈락 통보의 진실은?
2009년 5월 14일 〈UAE 원전 입찰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라는 제목으로 전송된 기밀 전문을 보면 스콧 차관보가 미 대사관 경제 담당관에게 “ENEC는 세계 경제 불황에 따른 건설 비용 하락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비용 절감에 대한 강조는 그 후로도 이어진다.
8월 19일 전송된 기밀 전문 〈UAE 원전 입찰상황 업데이트〉에는 스콧 차관보가 경제 담당관에게 “한국이 (초기 입찰 후보였던) 7개의 후보 중 가장 앞서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원자력 프로그램 고문인 토리움 원전 대표 데니스 헤이스(Dennis Hays)는 “한국은 다른 후보자들보다 여전히 한참 앞서 있다. 가격적인 면에서 그렇고, 공사 스케줄이 고정적이다”라고 말했다.
11월 10일자 〈UAE 원전 입찰, 한국과 프랑스의 대결〉이라는 제목의 기밀 전문은 입찰 결정 직전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UAE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왕세자를 만나 원전 입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해당 부분이다.
〈셰이크 왕세자는 GE-히타치의 입찰가가 한국팀보다 50% 이상 비싸다고 말했다. (중략) 11월 9일 주UAE 미대사는 셰이크 왕세자의 핵심 고문에게 GE를 지지하는 말을 했다. 고문은 이렇게 답했다. ‘막대한 금액 차이는 정치적인 요소로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전 계약을 발표하며 한국 정부는 ‘UAE 측이 11월에 이미 외교 채널을 통해 입찰에 탈락했다고 통보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전화 외교’로 상황을 역전시켰다는 설명이었다. 미 대사관 전문을 보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11월 10일 자 전문이다.
〈셰이크 왕세자는 한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사르코지 대통령이 아레바의 입찰을 지원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왕세자는 프랑스가 이번 입찰에 군사 협력이나 안보 협력 같은 다른 양자 협력을 연계하고 있다며, 자신이 그런 요소를 분명히 고려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고 한다. 한국 측은 정치적인 요소에 의해 입찰이 좌우될까 봐 매우 우려하고 있다.〉
외교 채널을 통해 UAE로부터 탈락 통보를 받았다는 청와대의 설명과는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청와대에 있었던 인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박 전 대변인은 이 전 대통령의 대외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박 전 대변인은 “외교 전문 속 이야기는 미국 대사관을 통해 나온 얘기가 아니냐”며 “미국 대사관이 전체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유명환 전(前) 장관에게 물었다. 유 전 장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1월 초에 알제리를 방문했다가 UAE에 들렀습니다. 셰이크 왕세자를 예방했지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한국의 모든 입찰 내용이 다른 후보보다 앞선다. 그런데 UAE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당시 프랑스는 정치적인 접근을 한 거죠. 여러가지 군사적 협력이라든가 안보 등을 연관시킨 겁니다. 프랑스 구축함이 UAE 근해에 여러 번 정박해 있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왕세자가 ‘본인은 그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명확히 ‘탈락 통보’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결정 미루며 가격 경쟁 붙인 UAE
외교 전문 곳곳에는 UAE가 결정을 계속 미루며 각 후보들에게 다른 나라의 입찰의 강점을 피력한 정황이 나와 있다. 미국과 프랑스 측에는 계속 한국의 입찰가가 싸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격 경쟁을 붙인 셈이다. 입찰 결과 발표 직후 전송된 12월 28일 자 전문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해당 부분이다.
〈스콧 차관보는 UAE가 아레바와 GE-히타치에 그들 입찰안의 약점에 대해 분명히 코치해 줬지만, 한국의 입찰안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GE-히타치는 최종가를 몇 백억 달러 수준까지 낮췄지만 여전히 사업비(price per kilowatt hour)는 한국전력보다 82% 높았다고 지적했다. 또 한전과 달리 GE-히타치 컨소시엄은 공사의 모든 위험 부담을 ENEC에 전가했다.〉
한전 컨소시엄은 공사의 위험부담을 떠안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스콧 차관보는 “한전의 입찰 중 92%가 고정가액이고 (지불 화폐가) 달러로 고정되어 있다”고도 했다. UAE 측이 한국에 지불해야 할 공사 대금이 상승할 확률이 낮다는 말이다.
UAE 원전 입찰가에 대한 논란은 국내에서도 계약 직후부터 제기된 문제다. 정부는 원전 4기를 짓는 데 대한 총계약금액이 186억 달러라고 밝혔다. 아레바는 300억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덤핑 논란’이 불거졌다.
공사 대금 중 많은 부분이 고정가격으로 계약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2010년 대정부질문에서 “계약과 관련해 구체적인 숫자는 대외비라 공개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이 고정가액으로 되어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공사 기간이 긴 공사를 고정가액으로 계약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에 물었다. 원전수출진흥과의 채규남 과장은 “고정가액으로 설정된 부분이 있지만, 물가상승률은 별도로 반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채 과장의 설명이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 원자재 가격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상승하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을 반영하기 위해 물가상승률을 별도로 반영하기로 한 겁니다.”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는지 묻자, “그에 대해서는 계약서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현재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채 과장의 답변이다.
“현재 1호기 격납고의 절반 정도까지 공사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UAE가 지금까지 지불한 대금은 4조원가량 됩니다.”
입찰에 참여한 당사자였던 한국전력은 “기본적으로 계약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계약서 안에 삽입된 비밀유지 조항을 그 이유로 들었다. 미국 외교 전문에 기술된 계약 과정에 대한 내용도 진위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ENEC는 한국인 직원을 고용해 UAE 원전과 관련해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UAE 원전과 아크부대 파견
원전 수주에는 군사 교류 약속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1월과 12월, 두 차례 김태영(金泰榮) 당시 국방부장관은 비공식적으로 UAE를 방문했다. 군사교류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UAE 측의 요청으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몇몇 국회의원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이었다. 후에라도 이 때문에 한국이 군사적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겠나 하는 우려였다.
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MOU 체결을 직접 이끈 김태영(金泰榮) 전 장관일 터이다. 김 전 장관에게 직접 이에 대해 물었다. 그는 “협정만으로 유사시에 UAE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하겠는가”라고 답했다. 김 전 장관의 말이다.
“단 1명의 병사라도 파견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협정을 맺었다고 자동으로 개입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서로 돕겠다는 개념적 의미로 삽입한 거죠. 아크부대 등 군사협력이 그 결과입니다.”
UAE와 한국 사이의 군사협력은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11년 1월에 첫발을 디딘 UAE 군사훈련협력단 아크부대는 현재 6진까지 파견된 상태다. 아크(Akh)는 아랍어로 형제라는 의미다.
15일의 영광 위한 15년의 상실인가
《르몽드(Le Monde)》지는 2010년 1월 19일 자에 로베르종 아레바 회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로베르종은 UAE 원전을 수주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며, 프랑스와 한국 간의 입찰 단가의 차이를 들었다. 그는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15일의 영광을 위해 15년을 잃어버릴 수 없었다.”
강귀희씨는 “낮은 가격으로 수주한 게 향후 수주에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
“UAE 원전 발표가 나고 유럽의 원자력계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국제 원전시장의 물을 흐려 놨다는 거예요. 앞으로 한국의 추가적인 수주는 힘들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만약 아레바와 협력하는 안이 추진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공사의 최종 책임은 원청이 지지, 하청이 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원전 수주는 기본적으로 턴키 방식입니다. 건설부터 핵폐기물 처리까지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말이죠. 게다가 기술 전수까지 해 줘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폐기물 처리 기술이 있나요? UAE 프로젝트에서 한국이 아무 위험부담 없이 해외에서의 원전 건설 경험을 착실히 쌓고, 아직 갖추지 못한 재처리 기술까지 전수받은 다음 그를 바탕으로 원전 시장에 뛰어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결국에는 아레바를 넘어설 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UAE 원전 수주에 대해 여러 원전 관계자들은 ‘MB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수주를 위한 MB의 강한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다. 장순흥 교수는 “UAE가 원했던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이 전 대통령이 잘 지원해 주었다. 그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UAE 원전 수주는 단군 이래 최대 쾌거일까, 아니면 15일 만의 영광일까.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터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의 하나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약속했다. 취임 이후에도 강력한 개정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 4월, 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한미 간 회의가 열렸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전 당시 프랑스 국영원자력기업이 한국에 핵연료재처리 기술 전수를 제안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재처리 권한을 얻도록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돕는 목소리를 내겠다고도 제안했다 한다. 해외 원전 수출시장에서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가 손을 잡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증언의 주인공은 로비스트 강귀희씨.
佛 아레바 로비스트로 활동한 강귀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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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제베 도입 당시 佛 알스톰사의 로비스트였던 강귀희씨는 UAE 원전 수주전 당시 佛 아레바사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
UAE 원전 입찰 당시 최종 후보로 선정된 곳은 프랑스의 국영원자력기업 아레바(AREVA)와 한국의 한국전력 컨소시엄, 미국과 일본이 함께한 GE-히타치 컨소시엄이었다. 강씨는 당시 아레바의 로비스트였다.
강씨를 만나러 경기도 모처에 있는 강씨의 자택으로 향했다. 2008년과 2009년 UAE 원전 수주전 당시의 회의록과 편지, 메모 등이 책상 위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각 문서는 매우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문서만 살펴봐도 언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강씨는 아레바와의 인연이 테제베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알스톰사의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안 로베르종(Anne Lauvergeon)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친분을 쌓게 됐습니다. 2001년 로베르종이 아레바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어요. 자연스럽게 저도 원자력 관련 일을 하게 됐습니다. UAE 원전 프로젝트를 제 생애 마지막으로 조국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뛰어들었어요.”
사실 강씨는 지난 2010년 12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UAE 원전 입찰에 관여했었다고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밝히지 않았다. 최근 한국 원자력계 비리와 UAE 원전 하청과 관련한 비리 파문이 커지는 것을 보며, 내막을 밝히기로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기자를 만난 강씨는 ‘원전을 수주했다는 성과만을 올리기 위해 국가의 실익은 외면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이다.
“UAE 원전 프로젝트를 위해 2008년 상반기부터 꼬박 1년 9개월여를 뛰었습니다. 저의 생각은 UAE에 아레바와 한국이 함께 들어가자는 것이었어요. 이를 위해 프랑스에 있는 제 인맥과 재산을 총동원해 아레바를 상대로 협상을 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제 생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뛰어들었습니다.”
안 로베르종은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며 42세에 아레바의 CEO로 취임한 프랑스의 유력 정치인이었다. 2006년에 《포천》지는 그녀를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이 높은 여성으로 꼽기도 했다.
강씨는 로베르종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1990년 에디트 크레송(Edith Cresson) 전 프랑스 총리가 한국을 방문할 당시 유로장관이었던 로베르종도 함께 내한했다고 한다. 로베르종은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된 상태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여자 2명이 한꺼번에 대통령을 만날 수는 없다’며 로베르종의 참석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로베르종 대신 주한 프랑스대사가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배석했다. 강씨는 청와대에 못 들어간 로베르종을 데리고 인사동을 쏘다녔다고 한다.
“일본은 했는데 한국은 왜 재처리 권한 획득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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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귀희씨는 아레바의 CEO였던 안 로베르종과의 인연으로 UAE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
핵심은 재처리 기술 전수와 해외 원전시장에서의 전략적 공조였다.
2008년 6월 13일 프랑스 아레바 본사에서 열린 회의를 기록한 회의록에 재처리 기술 이슈가 등장한다. 회의에는 로베르종과 국제 마케팅 담당 부사장인 장 자크 거트롯, 강귀희씨가 참석했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아레바 측이 한미원자력협정을 언급한 부분이 등장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것은) 미국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지만, 일본은 이미 재처리에 관한 동의를 받았는데 한국은 예외가 되는 게 타당한가’라고 아레바 측은 지적했다. 강씨에 따르면 이때 로베르종이 “미국이 한국의 재처리 권한 획득에 동의하도록 한국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해서는, 먼저 한국이 의지를 가지고 재처리 권한 문제를 제기하면 아레바의 최고경영자로서 한국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일본이나 인도도 재처리 권한을 획득했는데 세계 6위의 원자력 대국인 한국이 재처리를 금지당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강씨는 당시 한전의 임원이었던 A씨에게 로베르종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원자력계에 입김이 센 로베르종이라면 어떻게든 도움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레바 측은 2016년경이면 수용 초과에 이르는 한국의 핵폐기물 재처리를 아레바가 담당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2024년경에는 한국의 모든 핵폐기물 저장소(Canister)가 꽉 찰 전망이다. 폐기물을 처리하기는커녕 임시 보관을 하는 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는 셈이다. 강씨는 로베르종이 폐기물 재처리 기술을 언급하며 미쓰비시의 예를 들었다고 말했다.
“로베르종은 미쓰비시에 어떤 식으로 재처리 기술을 전수해 줬는지 설명해 줬습니다. 일본 원전에서 나온 핵폐기물을 배에 실어 프랑스로 들여왔다고 하더군요. 그걸 재처리하며 미쓰비시 측 기술자들에게 과정을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재처리한 후에 다시 일본에 싣고 갔다고 합디다. 그러면서 한국도 같은 식으로 진행하면 된다고 했어요. 회의가 있던 날 마침 엘리제궁에서 부시 미(美) 대통령 환영 만찬이 있었어요. 로베르종이 거기에 참석하기 위해 바삐 가면서 저에게 말하더군요. ‘폐기물 재처리는 너희 나라의 숙원 아니냐. 그 기술을 우리가 전수해 줄 수 있다’고요.”
로베르종은 한국 원자력 발전의 시급한 과제를 정확히 지적했다. 바로 핵폐기물 ‘재처리’다.
우라늄을 채광해 정련한 후, 변환·농축해 가공한 다음 원자로에 장착하는 과정을 ‘선행주기’라고 한다. 사용후핵연료를 화학적으로 처리해 우라늄·플루토늄을 추출한 다음 이를 원자로 연료로 다시 활용하는 과정을 ‘후행주기’라고 한다.
한미원자력협정은 한국이 선행주기의 핵심인 농축과, 후행주기의 핵심인 재처리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핵무기 개발 가능성 때문이다.
“함께 해외 원전 수주하자”
아레바는 UAE 원전과 관련해서 어떤 제안을 했을까. 강씨는 “아레바가 UAE 원전 프로젝트 중 70% 이상을 한국 기업에 맡기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2008년 초부터 UAE 원전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입찰 발표 직전 3개월은 몸도 마음도 극한에 다다를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한국기업의 참여율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로 아레바와 구두 합의를 했습니다.”
구두합의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강씨에게 물었다. 그는 “원청이 확정되지도 않은 단계에서 누가 그런 합의를 문서화하겠나”라고 답했다.
“아레바 내부에서도 이런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려면 거쳐야 할 절차가 정말 많습니다. 하나하나 절차를 통과하길 기다리는데 정말 피가 마르더군요. 로비스트 업무라는 게 막후에서 움직여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센 강변의 노보텔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문서를 검토하는데 막판에는 너무 지쳐 나도 모르게 강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레바는 해외 원전 수주전에서 프랑스와 한국이 손을 잡고 입찰하자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강씨의 설명이다.
“프랑스와 한국은 각각 서로가 갖지 못한 점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자체 노형과 그것에 들어가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사용후핵연료 처리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업계에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터줏대감이라는 점도 분명한 강점이죠. 한국은 짧은 기간 안에 원전을 짓는 훌륭한 건설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원전을 지어본 경험이 있다는 강점도 있고요. 양국이 손을 잡고 시너지효과를 내자는 것이 아레바 측의 의견이었어요.
구체적인 사항까지 논의됐습니다.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은 1400MW급입니다. 프랑스가 개발한 3세대 원전인 EPR-1600은 1600MW급이고요. 1400MW를 초과하는 원전은 아레바가 수주하고 그 이하는 한국이 수주하는 게 어떤가 하는 아이디어까지 회의에서 논의됐습니다. 중동 국가 중에는 프랑스형보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형을 선호하는 나라가 많을 것이라고 아레바는 보고 있었어요. 물론 최종 결정은 한국 측이 내리는 것이지요. 저는 아레바 측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 내 한국 측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 겁니다.”
아레바 의견, 청와대에 두 차례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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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2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부다비 현지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수주에 성공한 사실을 직접 밝혔다. |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처리 기술 협력까지도 (프랑스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한국의 핵주기 전반의 기술 확보 추진.
▲성공적인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면 프랑스와 긴밀한 협력으로 미국에 한국의 입장을 적절히 이해시켜서 미국으로부터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의 승인을 받아내야 함.〉
2009년 6월에는 장우주(張禹疇)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통해 청와대 경제수석실로 아레바의 제안을 담은 서한에 아레바와의 회의록을 첨부해 전달했다고 한다.
강씨의 서한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을까.
장우주 전 총재에게 강씨의 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했는지 물었다. 장 전 총재는 “문서의 내용이 기억난다”며 전달 여부에 대해서는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다면 상보되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신중을 기했을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장우주 전 총재의 아들인 장순흥(張舜興)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프랑스가 30년 전에도 그런 제의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허락하지 않는 한 힘들다고 본다”고 했다.
기자는 UAE 원전 수주 당시 관련자들에게 직접 확인해 보려 시도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윤진식(尹鎭植) 새누리당 의원과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이었던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다. UAE 원전 수주 관련 취재라며, 취재 목적을 밝히고 여러 번 연락했다. 윤진식 의원과 최경환(崔炅煥) 원내대표 모두 연락에 응하지 않았다.
강씨는 “지금에 와서는 MB가 보고서와 서한을 봤었어도 제안을 고려하지 않았겠다 싶어요. 당시 MB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벼랑 끝에 몰려 있었습니까. 원전 수주 하나로 숨통이 트였잖아요. 일단 원청으로 따고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겠지요.”
강귀희씨와 아레바의 논의는 UAE 원전 수주전에서 아레바가 승리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진행됐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하고 대중동 원전외교를 펴고 있었다. UAE 원전 프로젝트는 첫 시험대였다.
UAE 원전 수주 확신했던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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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귀희씨는 청와대에 아레바의 의사를 알리기 위해 아레바와의 회의록과 관련 보고서를 2차례에 걸쳐 제출했다. |
특히 UAE 원전 수주전이 한창이던 2009년 5월부터 프랑스는 아부다비에 500명 규모의 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이에 더해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전세계 프랑스 대사관을 UAE가 이용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하는 등 양국의 정치·외교적 협력을 강화하려 했다.
프랑스와 UAE의 관계는 동맹을 넘은 혈맹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 ‘안전 이슈’도 있었다. 사르코지는 직접 UAE 측에 한국 원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UAE 수주 과정을 잘 알고 있는 B 교수의 말이다.
“사르코지는 UAE 측에 한국의 원전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원전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체제가 빈약하고, 원전을 운영하는 측, 즉 한전·한수원과 하청업자 사이에 유착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 문제가 제기될 거라는 이야기죠.”
UAE 원전 수주 과정을 잘 알고 있는 C씨도 같은 얘기를 했다.
“아랍에미리트 원자력공사(ENEC) 측 인사가 2009년 11월에 한국전력을 방문해 안전성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프랑스 측에서 들은 얘기를 확인해보려고 한 거죠.”
3년여가 지난 지금 한국 원전의 문제점에 대한 사르코지의 지적은 현실로 나타났다. 프랑스는 어떻게 한국 원전의 문제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걸까. 강씨는 “아레바가 한전과 한수원의 내부 사정에 정통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미팅을 시작하면서 로베르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전과 한수원이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어서 우려가 된다고요. 한전과 한수원의 임원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레바는 한전, 한수원과 우라늄농축공장 사업이나 우라늄 공급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장기간 진행해 왔습니다. 접촉이 잦았다는 말이지요. 거기에 국제 원자력계가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어떤 소문이라도 금방 퍼지죠.”
C씨는 해외 원자력계의 ‘브로커’들이 각 나라의 상황을 주시하며 발빠르게 움직인다고 했다.
“JS전선이 한수원에 납품한 케이블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해외의 브로커에게서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한국 원전의 전선 공급처를 바꿔야 되지 않냐고요. 자신이 잘 아는 곳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청와대 발표와 電文 내용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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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귀희씨가 아레바와 최종합의안을 도출한 뒤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이때 UAE 프로젝트에 한국기업이 70% 이상 참여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씨는 말했다. 왼쪽부터 당시 강씨와 함께 일했던 이기원 박사, 노베르트 본 부드(Boode) 씨, 강씨, 아레바의 도미니크 모클리(Mockly) 부사장이다. |
“정말 할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참았지요. 누가 UAE 원전에 대해 물어도 ‘원청으로 수주한 거니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하고 말았습니다. MB가 당시 정치적으로 얼마나 몰려 있었습니까.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으랴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원전을 짓고 운영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막에 고속도로 내는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일이에요. 싼 값으로 무턱대고 수주하고 나면 끝날 일이 아닌 겁니다. 짓는 동안에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요.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짓는 원전인데 싼 값으로 수주해서 되겠습니까? 후손들에게 짐을 전가하는 것 아닙니까?”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대사관 외교전문을 뒤져 봤다. 거기엔 정부의 설명과 좀 다른 얘기가 있었다. 아부다비의 미 대사관은 2009년 한 해간 거의 매달 UAE 원전 입찰 상황을 분석한 전문을 국무부로 보냈다. 전문을 읽어 보면 미국, 프랑스, 한국 세 나라가 수주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에는 데이비드 스콧(David Scott) 아부다비행정청 경제차관보의 발언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입찰 결정 전인 2009년 한국을 방문해 원전의 안전성 문제 등을 한전과 협의하기도 한 인사다.
전문을 시간 순으로 훑어보면 입찰 결정이 발표되기 약 반년 전부터 한국이 이미 다른 후보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된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었다. UAE 측은 이 사실을 다른 후보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면서 협상을 이끌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11월 초 입찰 탈락 통보의 진실은?
2009년 5월 14일 〈UAE 원전 입찰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라는 제목으로 전송된 기밀 전문을 보면 스콧 차관보가 미 대사관 경제 담당관에게 “ENEC는 세계 경제 불황에 따른 건설 비용 하락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비용 절감에 대한 강조는 그 후로도 이어진다.
8월 19일 전송된 기밀 전문 〈UAE 원전 입찰상황 업데이트〉에는 스콧 차관보가 경제 담당관에게 “한국이 (초기 입찰 후보였던) 7개의 후보 중 가장 앞서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원자력 프로그램 고문인 토리움 원전 대표 데니스 헤이스(Dennis Hays)는 “한국은 다른 후보자들보다 여전히 한참 앞서 있다. 가격적인 면에서 그렇고, 공사 스케줄이 고정적이다”라고 말했다.
11월 10일자 〈UAE 원전 입찰, 한국과 프랑스의 대결〉이라는 제목의 기밀 전문은 입찰 결정 직전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UAE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왕세자를 만나 원전 입찰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해당 부분이다.
〈셰이크 왕세자는 GE-히타치의 입찰가가 한국팀보다 50% 이상 비싸다고 말했다. (중략) 11월 9일 주UAE 미대사는 셰이크 왕세자의 핵심 고문에게 GE를 지지하는 말을 했다. 고문은 이렇게 답했다. ‘막대한 금액 차이는 정치적인 요소로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전 계약을 발표하며 한국 정부는 ‘UAE 측이 11월에 이미 외교 채널을 통해 입찰에 탈락했다고 통보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전화 외교’로 상황을 역전시켰다는 설명이었다. 미 대사관 전문을 보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11월 10일 자 전문이다.
〈셰이크 왕세자는 한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사르코지 대통령이 아레바의 입찰을 지원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왕세자는 프랑스가 이번 입찰에 군사 협력이나 안보 협력 같은 다른 양자 협력을 연계하고 있다며, 자신이 그런 요소를 분명히 고려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고 한다. 한국 측은 정치적인 요소에 의해 입찰이 좌우될까 봐 매우 우려하고 있다.〉
외교 채널을 통해 UAE로부터 탈락 통보를 받았다는 청와대의 설명과는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청와대에 있었던 인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박 전 대변인은 이 전 대통령의 대외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박 전 대변인은 “외교 전문 속 이야기는 미국 대사관을 통해 나온 얘기가 아니냐”며 “미국 대사관이 전체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유명환 전(前) 장관에게 물었다. 유 전 장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1월 초에 알제리를 방문했다가 UAE에 들렀습니다. 셰이크 왕세자를 예방했지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한국의 모든 입찰 내용이 다른 후보보다 앞선다. 그런데 UAE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당시 프랑스는 정치적인 접근을 한 거죠. 여러가지 군사적 협력이라든가 안보 등을 연관시킨 겁니다. 프랑스 구축함이 UAE 근해에 여러 번 정박해 있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왕세자가 ‘본인은 그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명확히 ‘탈락 통보’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결정 미루며 가격 경쟁 붙인 UAE
외교 전문 곳곳에는 UAE가 결정을 계속 미루며 각 후보들에게 다른 나라의 입찰의 강점을 피력한 정황이 나와 있다. 미국과 프랑스 측에는 계속 한국의 입찰가가 싸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격 경쟁을 붙인 셈이다. 입찰 결과 발표 직후 전송된 12월 28일 자 전문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해당 부분이다.
〈스콧 차관보는 UAE가 아레바와 GE-히타치에 그들 입찰안의 약점에 대해 분명히 코치해 줬지만, 한국의 입찰안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GE-히타치는 최종가를 몇 백억 달러 수준까지 낮췄지만 여전히 사업비(price per kilowatt hour)는 한국전력보다 82% 높았다고 지적했다. 또 한전과 달리 GE-히타치 컨소시엄은 공사의 모든 위험 부담을 ENEC에 전가했다.〉
한전 컨소시엄은 공사의 위험부담을 떠안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스콧 차관보는 “한전의 입찰 중 92%가 고정가액이고 (지불 화폐가) 달러로 고정되어 있다”고도 했다. UAE 측이 한국에 지불해야 할 공사 대금이 상승할 확률이 낮다는 말이다.
UAE 원전 입찰가에 대한 논란은 국내에서도 계약 직후부터 제기된 문제다. 정부는 원전 4기를 짓는 데 대한 총계약금액이 186억 달러라고 밝혔다. 아레바는 300억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덤핑 논란’이 불거졌다.
공사 대금 중 많은 부분이 고정가격으로 계약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2010년 대정부질문에서 “계약과 관련해 구체적인 숫자는 대외비라 공개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이 고정가액으로 되어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공사 기간이 긴 공사를 고정가액으로 계약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에 물었다. 원전수출진흥과의 채규남 과장은 “고정가액으로 설정된 부분이 있지만, 물가상승률은 별도로 반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채 과장의 설명이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 원자재 가격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상승하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을 반영하기 위해 물가상승률을 별도로 반영하기로 한 겁니다.”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삼는지 묻자, “그에 대해서는 계약서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현재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물었다. 채 과장의 답변이다.
“현재 1호기 격납고의 절반 정도까지 공사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UAE가 지금까지 지불한 대금은 4조원가량 됩니다.”
입찰에 참여한 당사자였던 한국전력은 “기본적으로 계약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계약서 안에 삽입된 비밀유지 조항을 그 이유로 들었다. 미국 외교 전문에 기술된 계약 과정에 대한 내용도 진위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ENEC는 한국인 직원을 고용해 UAE 원전과 관련해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UAE 원전과 아크부대 파견
원전 수주에는 군사 교류 약속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1월과 12월, 두 차례 김태영(金泰榮) 당시 국방부장관은 비공식적으로 UAE를 방문했다. 군사교류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UAE 측의 요청으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몇몇 국회의원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유사시 군사적 지원’ 조항이었다. 후에라도 이 때문에 한국이 군사적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겠나 하는 우려였다.
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MOU 체결을 직접 이끈 김태영(金泰榮) 전 장관일 터이다. 김 전 장관에게 직접 이에 대해 물었다. 그는 “협정만으로 유사시에 UAE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하겠는가”라고 답했다. 김 전 장관의 말이다.
“단 1명의 병사라도 파견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협정을 맺었다고 자동으로 개입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서로 돕겠다는 개념적 의미로 삽입한 거죠. 아크부대 등 군사협력이 그 결과입니다.”
UAE와 한국 사이의 군사협력은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11년 1월에 첫발을 디딘 UAE 군사훈련협력단 아크부대는 현재 6진까지 파견된 상태다. 아크(Akh)는 아랍어로 형제라는 의미다.
15일의 영광 위한 15년의 상실인가
《르몽드(Le Monde)》지는 2010년 1월 19일 자에 로베르종 아레바 회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로베르종은 UAE 원전을 수주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며, 프랑스와 한국 간의 입찰 단가의 차이를 들었다. 그는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15일의 영광을 위해 15년을 잃어버릴 수 없었다.”
강귀희씨는 “낮은 가격으로 수주한 게 향후 수주에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
“UAE 원전 발표가 나고 유럽의 원자력계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국제 원전시장의 물을 흐려 놨다는 거예요. 앞으로 한국의 추가적인 수주는 힘들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만약 아레바와 협력하는 안이 추진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공사의 최종 책임은 원청이 지지, 하청이 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원전 수주는 기본적으로 턴키 방식입니다. 건설부터 핵폐기물 처리까지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말이죠. 게다가 기술 전수까지 해 줘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폐기물 처리 기술이 있나요? UAE 프로젝트에서 한국이 아무 위험부담 없이 해외에서의 원전 건설 경험을 착실히 쌓고, 아직 갖추지 못한 재처리 기술까지 전수받은 다음 그를 바탕으로 원전 시장에 뛰어들었다면 어땠을까요? 결국에는 아레바를 넘어설 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UAE 원전 수주에 대해 여러 원전 관계자들은 ‘MB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수주를 위한 MB의 강한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다. 장순흥 교수는 “UAE가 원했던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이 전 대통령이 잘 지원해 주었다. 그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UAE 원전 수주는 단군 이래 최대 쾌거일까, 아니면 15일 만의 영광일까.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터다.⊙
송희영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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