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진단] ‘2013 대한민국 정치 실종 사건’의 원인 : 월간조선

대한민국 정치가 궤도를 이탈해 추락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여야(與野) 정치권은 극도의 혼란과 대립을 거쳐 상쟁(相爭)의 정치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에 상식과 대화는 사라지고 투쟁과 정쟁(政爭)만이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에 불거진 국정원의 선거 및 정치 개입 의혹 사건과 노무현(盧武鉉) 전(前)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 발언이 포함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방이 이런 ‘극한 대립의 정치’를 촉발한 면이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나 홀로 관망정치’, 민주당의 ‘비(非)상식적 자해(自害)정치’, 새누리당의 ‘무기력한 눈치 보기 정치’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교체’로 생각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6개월 동안 보여준 말과 행동을 토대로 대통령의 ‘인식 구조(cognitive structure)’를 분석해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大選)에서 승리한 것은 새누리당이 정권을 재(再)창출한 것이 아니라 정권을 교체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박 대통령은 이명박(MB) 정부 내내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면서 MB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따라서 새누리당이 집권 여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B 정부의 실책과 과오에 대해 현 정부는 책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과 직결된 원전 비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철저한 개혁을 주문했다. 현직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임 정부의 동일한 비리를 4번씩이나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다. 지난 7월에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감사원 결과가 나오자 이정현 대통령 홍보수석이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일이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정치에서 정부의 과오는 집권당의 책임과 직결된다. 따라서 현 정부가 과거 정부와 뿌리가 같다면 제3자적 시각에서 과거 정부의 잘못을 질타하고 비판하기 전에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반대로 MB 정부와의 선 긋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현 정부의 이런 편의주의적인 행동은 결국 국민과 야당의 비난 표적이 되었다.

“빚진 게 없다”는 대통령 때문에 곧 친박도 분화할 것

둘째,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빚진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새누리당의 도움이 없었고 친박과 보수 언론의 도움도 전혀 없이 혼자 힘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여기는 것 같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의 도움은 털끝만치도 보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야당이 제기하자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기저에 “난 국정원에 빚진 게 없다”는 강한 자부심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렇다 보니 야당의 ‘철저한 국정원 개혁’ 요구를 외면한 채 “국정원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초기 정부 및 청와대 인사에서 소위 친박(親朴) 인사들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 자리를 정통 관료 출신으로 채웠다. 친박 내 소모적인 권력 투쟁을 막기 위한 포석(布石)으로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나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고 오히려 친박이 나에게 빚졌다”는 생각이 강한 듯하다.

이 때문에 친박 내부에서 점점 박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과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집권 초기 대통령의 힘이 막강하니 친박들이 침묵하고 있지만 이런 홀대가 계속되면 친박은 필연적으로 친대통령파와 반(反)대통령파로 분화(分化)될 가능성이 크다. 차기 새누리당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이런 분화가 표출될 수 있다.

대통령은 제3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NLL대담록 실종 등 국정현안에 대해 언급했다.

셋째, 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후진적(後進的)으로 평가하며 거리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역대 대통령들 모두 집권하자마자 정치를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청(黨靑) 분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탈(脫) 여의도 정치’를 앞세우며 정치를 경시했다. 박 대통령도 소모적 정치 논쟁은 여야 정치권의 문제이지 행정부의 영역이 아니라는 선입관이 강한 것 같다. 이로 인해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지 못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실례로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인 국정원 댓글과 NLL 관련 의혹에 대해 “여전히 혼란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어 유감”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해 당사자일 수 있는 대통령이 제3자의 입장에서 던지는 이런 정치 메시지는 야당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분명 박 대통령은 정치와 정무에 별로 비중을 두는 것 같지 않다. 박 대통령이 ‘전략과 기획’이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이정현 홍보수석이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공석(空席)이 된 정무수석을 2개월여간 그대로 두었겠는가.

충격만 있고 감동은 없는 청와대 인사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만에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정무·민정·미래전략·고용복지 수석비서관을 전격 경질했다. 야당은 김기춘(金淇春) 전 법무부 장관을 신임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에 대해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신임 비서실장이 유신(維新)헌법을 초안하고 유신의 잔재 위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고, 92년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에는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며 국민 분열을 선도했던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지 않은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인사는 정치이다. 인사를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청와대 비서실 인사는 타이밍은 절묘했지만, 충격만 있었지 감동은 없고,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신임 정무수석에 ‘정치 문외한(門外漢)’인 직업 외교관 출신을 임명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국회나 정치 일이나 다른 분야 일이나 사람 일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다른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유독 정치 분야에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은 셈이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정치 홀대’ 심리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국정 운영 최고 책임자가 정치를 홀대하고 무시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대선 개입,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전 유출 의혹과 무단공개 등 이른바 ‘국기(國基)문란 사건’ 해결을 요구하며 장외(場外)투쟁에 나섰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7월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에 나서겠다”며 시청 앞 서울광장에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하고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이 국회의 국정원 국정조사를 파행시키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주요 증인 채택을 거부해 더 이상 국정조사의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장외투쟁 이유를 밝혔다. 그는 여기에 더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의 성역 없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회의 국정원 개혁 방안 직접 마련 등을 약속해야 장외투쟁을 접을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 맥락에서 김한길 대표는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1대 1 담판’을 제안했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자신들을 광장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하지만 정국이 이렇게 꼬인 것은 민주당 지도부의 취약한 ‘온탕 냉탕 리더십’이 한몫했다. 국가기록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실종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 발생하자 김한길 대표는 7월 25일 “결과적으로 소모적 정쟁을 연장시킨 한쪽에 민주당이 서 있게 된 점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 “모든 책임은 당 대표인 제가 안고 가겠다”고 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여부를 둘러싼 정쟁 중단을 선언하고, 여당 측의 양당 대표 회담 제안을 받아들였다. 누가 봐도 여야 대치 국면을 끝내고 정국을 대화 기조로 전환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 민주당은 돌연 ‘천막 장외투쟁’을 결정했다. 민주당이 이렇게 ‘온건’과 ‘강경’ 사이를 오간 것은 당내 친노(親盧)와 비노(非盧) 계파 간의 선명성 경쟁 탓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친노 세력과 국정원국정조사특위 내 강경파들은 ‘민주주의 훼손’과 ‘대선 불공정’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때와 같이 집권 초기 새 정부를 압박하면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지지자들도 등 돌린 민주당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8월 7일 서울광장 앞 천막당사를 찾은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 및 간부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장외투쟁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민주당이 왜 갑작스레 서울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지, 농성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궁금해한다. 국민들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결국 대선에 불복해 한풀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갖게 된다.

한국갤럽이 8월 둘째 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국민의 30%는 ‘야당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봤으나, 54%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응답했다.

민주당 지지도는 20%로 새누리당(40%)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48% 득표한 것과 비교하면 수치상으로 민주당 지지자의 약 58.3%가 이탈한 것이다. 이유는 민주당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갤럽 조사 결과, 국민의 13%는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는 무려 72%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70%, 호남 지역 거주자의 69%가 민주당이 ‘잘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당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반대를 위한 반대’만 있었지 국민들이 공감하는 정책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더구나 정부에 대한 전면 투쟁이라는 명분하에 스스로 공당(公黨)임을 포기하고 걸핏하면 거리의 정치에 함몰된 채 시민단체에 끌려다니고 있다. 이런 잘못된 행동들이 대선 패배의 핵심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뜨거운 여름날 장외투쟁을 하고 대선 원천무효 투쟁 운운하는 것은 ‘자해정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인 최장집(崔章集) 고려대 명예교수는 의원연구모임 ‘혁신과 정의의 나라 포럼’에서 “민주당은 당에 구심점(求心點)이 없고, 의원 각자가 민주당 간판만 달고 다니는 ‘프랜차이즈 정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NLL 대화록’을 둘러싼 여야 공방과 관련해서는 “갈등의 결과가 파괴적일 것을 예상하면서도 양 정당이 정치를 험악한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치의 기술과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라며 ‘정치의 퇴행’, ‘정치인의 자기 부정행위’라고 비판했다.

강경파에 포위당한 황우여 대표

지난 8월 8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가 이야기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대선 불복 투쟁과 동일하게 보고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를 누그러뜨림으로써 내부 갈등을 외부로 돌리려는 노림수가 있다”는 의구심을 피력했다. 최경환(崔炅煥) 원내대표는 “민주당 지도부는 일부 강경파의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오직 민심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 정치로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력(自力)의 정치를 펼치고 있는가? 여야가 강 대 강(强對强) 대립의 정치로 치닫는 근저에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유약한 ‘청와대 눈치 보기’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황우여(黃祐呂) 대표는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洪文鍾) 사무총장, 윤상현(尹相現) 원내 수석부대표 등 로열 원박(元朴) 세력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채 전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NLL 대화록 공개 정국에서 보듯이 황우여 대표는 대결 지향적인 당내 강경파에 의해 휘둘렸다.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문과 전문 공개 등의 핵심적인 정국변수가 발생한 것에 당 지도부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당내 강경파들이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피(被)조사기관인 국 정원을 일방적으로 편들어도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 반대로 청와대와 국정원이 입장을 내세우면 그것을 여당의 가이드라인으로 쉽게 받아들였다.

새누리당에 대해서도 싸늘한 민심

황우여 대표는 경색된 여야 관계를 풀기 위해 박 대통령,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3자 회동을 제시했다. 그런데 황 대표는 그것이 “독자적 판단에 의한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끌려다니는 황우여 대표의 취약한 리더십은 결국 야당을 설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야당으로부터 협상의 대상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 담판을 통해 정국을 푸는 해법을 찾는 것이 여야의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계속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새누리당 지도부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새누리당도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민심을 못 읽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국정원 국정조사 파행의 책임이 새누리당과 민주당 중 어느 쪽에 더 크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새누리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 33%, ‘민주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 20%, ‘둘 다 책임’ 27%라는 응답이 나왔다. 새누리당이 여당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7%인 반면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54%로 2배 많았다.

이런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우리 국민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바람직한 문제 해결 방식으로 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을 장외투쟁에 나서게 한 가장 큰 원인이 된 국정조사 파행의 책임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좀 더 무겁게 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新행정독주시대는 곤란

대통령의 성공 여부는 집권 1년 내에 결정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6개월의 골든 타임을 허송세월했다. 정부 조직법 개편과 인사 파동,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性)추행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방, 민주당의 장외투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리더십이 크게 흔들렸다.

한번 쓴 사람은 잘 바꾸지 않는 박 대통령이 평소 인사 스타일을 바꾸며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것도 결국 국정 운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의 말처럼 “하반기에 보다 적극적인 정책 추진과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대통령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대통령이 정치를 무시하면서 신(新)행정독주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약 “정치가 망가져도 정부만 잘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믿음이 강하면 정치가 결코 복원될 수 없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NLL 대화록 공개에 대한 시국선언과 ‘촛불’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 지지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림 1〉에서 보듯이 박 대통령의 1년차 1분기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41%였다. 대선 때 득표율(51.6%)에도 못 미쳤다. 40% 안팎을 헤매던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취임 100일 53%, 7월 첫째 주에는 63%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여야 간에 극한적인 대립 국면이 조성된 7월부터 대통령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를 끌어올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외치(外治) 효과’였다. 방미(訪美)·방중(訪中)이라는 첫 외교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았고,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는 원칙 있는 대북(對北)정책으로 점수를 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內治 문제 대두하면 지지도 하락할 수도

실제로 한국갤럽의 8월 첫째 주 여론조사를 보면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에 대해 ‘대북정책’(17%), ‘열심히 한다’(14%)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주관·소신, 여론에 끌려가지 않음’(13%), ‘외교·국제 관계’(8%) 순이었다. 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 등의 요인은 긍정적 평가의 이유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상당히 유동적(流動的)일 수 있다. 외치 효과가 사라지고 내치(內治)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냉정해지면 언제든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작년에 앞장서서 제안해 입법화(立法化)한 국회선진화법이 과거식의 일방통행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고 야당의 장외투쟁 장기화로 9월 정기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으면 민생법안의 대량 표류가 불가피하다. 이럴 경우, 100% 대한민국,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등 박 대통령이 최우선으로 내세운 공약들이 휘청거리면서 여론이 악화될 수도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현재 국정 운영 지지도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지도에 대한 착시(錯視)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청와대는 국정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NLL 정쟁, 국정조사 파행, 야당의 장외투쟁 등 이 모든 파국 과정에서 정략적 방관과 침묵의 형태를 보였다. 이제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앞으로 국정에서 당과 국회를 중요한 국정의 축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4월에는 “국정이 성공적이려면 야당과 동반자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이런 약속들을 진정성 있게 지켜나가야 비로소 정치가 살아 숨 쉬는 ‘문제 해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保守化 경계해야

둘째, 보수 이미지에서 탈피해 통합의 이미지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과거에 집착하고 관치(官治)를 중시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대통령이 줄곧 강조한 ‘새로운 변화와 도전 이미지’에 걸맞은 행보를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는 경제민주화, 맞춤형 복지 등 진보 어젠다를 선점해서 보수 이미지를 희석시켰고 이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박 대통령을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표1>에서 보듯이 2012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평가하는 박 대통령의 이념 성향은 10점 만점(아주 진보 0점, 중도 5점, 아주 보수 10점)에 7.44점으로 나타났고, 12월 대선에서는 7.66점으로 오히려 다소 높아졌다.

문제는 대통령이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현 상황은 여야 간에 이념적 양극화(兩極化)가 심화되면서 ‘50% 대한민국’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피력하면서 북한 김정은 체제와 대립했고,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불거진 NLL 정국에서 강경한 보수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집권 초기 인사에서 주요 요직에 육사(陸士) 출신 및 과거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깊은 인연이 있는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면서 대통령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보수화(保守化)되었다. 오죽하면 시중에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회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표2>에서 보듯이 작년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보수 편향 사회로 전환되었다.

지난 대선에선 보수 성향의 유권자(40.2%)가 진보 성향 유권자(21.3%)보다 두 배 정도 많았다. 이념적 힘의 균형이 보수로 쏠렸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는 진보, 중도층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크게 패배했지만, 보수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한국선거학회가 2012년 대선 직후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분석 결과, 문재인 후보는 진보와 중도층에서 각각 85.3%와 54.9%를 얻어 13.4%와 43.9%를 얻는 데 그친 박근혜 후보를 압도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보수층에서 75.0%를 얻어 24.3%를 획득한 문재인 후보를 제압했다.

박근혜, 50.1%만 얻으면 되는 선거 치르듯 통치해선 안 돼

그러나 이러한 보수 우위 체제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속적인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인구 구조의 변화로 보수 성향이 강한 50대 이상의 고(高)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보수 우위 체제가 고착화될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현재 보수층에서는 시종일관 보수를 자처하는 ‘절대 보수층’도 있지만 과거에는 진보 성향이었으나 진보에 실망해 보수로 전향한 사람들도 다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대선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安哲秀) 후보가 사퇴하자 문재인 후보를 거부하며 보수로 돌아선 안 후보 지지자들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선거학회 조사 결과,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자신이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鄭東泳) 후보,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었던 사람이 약 9% 정도로 나타났다.

한국선거학회 조사 결과, 지난 대선에서 후보를 변경한 적이 있는 사람은 8.7%로 나타났다. 이들 중 자신이 보수라고 응답한 사람들의 61.8%가 처음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그런데 이들은 후보 지지 변경 이유로 가장 많은 52.4%가 ‘지지하는 후보의 노선이나 이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아마도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중도, 진보층이 보수층으로 전환한 것으로 추론된다. 그런데 이들은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보수를 이탈해 중도 또는 진보로 옮겨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은 선거 치르듯 통치를 해서는 안 된다. 선거에서는 50.1%를 얻으면 당선된다. 그래서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통치는 다르다. 대통령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자신의 지지층만을 상대로 통치를 하면 통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훼손되고 있는 중도 이미지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와 정책에서 야당과 진보 언론으로부터 ‘유신 부활’, ‘보수 회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정치적 행보를 피해야 한다.

노무현 부관참시 말아야

셋째,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48%를 감싸 안고 갈 수 있는 ‘통 큰 정치’를 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실상 NLL을 포기했다”는 새누리당의 발언으로 문재인 의원과 친노 세력들이 격렬하게 저항할 때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우리의 NLL 북방한계선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 개편 이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사초(史草)가 증발한 것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규정했다.

민주당 장외투쟁에 동참하지 않고 칩거했던 문재인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그는 “NLL 논란의 본질은 안보를 대선공작과 정치공작의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라고 맞받아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풀어야 할 것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과 함께 바로 그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경쟁자였던 문재인 의원과 직간접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최소한 언론으로부터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자신의 정적인 문재인 후보를 죽이려 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남북국방장관회담 대책보고회의에서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으로부터, NLL과 북측이 주장하는 경계선 사이의 중간수역을 요구해 올 것으로 예상되는 북측의 공동어로구역안을 거부하고, NLL을 기선으로 해서 남북 간의 등면적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우리 측의 기존 제안을 고수하겠다는 회담 방침을 보고받고, 그렇게 할 것을 지시한 바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여권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 NLL 포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장수(金章洙) 현 안보실장과 외교안보수석이었던 윤병세(尹炳世) 현 외교부 장관이 진솔한 증언을 하도록 해야 한다. 분명 박 대통령의 안보 핵심 측근들의 증언은 여야 모두가 원하는 ‘소모적 NLL 정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대선 승자(勝者)가 패자(敗者)에게 보여줄 수 있는 통 큰 정치이다. 대통령은 쉬운 길이 아니라 어려운 길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아무리 친노 세력이 대선 불복종 운동을 펼치고 새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시키려고 하더라도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승자의 관용이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대선 직후 승자와 패자가 만나 화해하고 국가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제라도 박 대통령이 문재인 의원과 단독으로 만나 대선에서 드러난 앙금을 풀고 정국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성숙한 정치의 표본을 보일 필요가 있다.

민주당, 大選 패배 참회록 써야

장외투쟁 일주일째를 맞이한 김한길 대표는 “앞으로도 계속 ‘강한 민주당’, ‘이기는 민주당’을 모토로 선명성을 유지해 무소의 뿔처럼 나가겠다”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이 무너지고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성숙한 정당정치가 존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살아야 정당정치가 산다는 뜻이다. 유능하고 건전한 야당이 없으면 행정 독재가 만연하고 정부 여당도 건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이 원내 127석(42%)을 갖고 있는 제1야당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공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뼛속까지 바꾸고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지키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은 첫째, 대선 패배에 대해 철저히 성찰하고, 더 나아가 진보 참회록을 써야 한다.

<표3>에서 보듯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좋아한다’는 선호비율(29.9%)보다 ‘싫어한다’는 혐오비율(36.3%)이 훨씬 높았다. 반대로 민주당의 경우, ‘좋아한다’는 선호비율(30.6%)이 ‘싫어한다’는 혐오비율(10.9%)보다 3배 정도 높았다.

이런 유권자의 태도로 인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선호비율(38.9%)은 2010년과 비교해 9%포인트 상승하면서 혐오비율(30.3%)보다 높게 나왔다. 심지어 민주당(33.7%)보다 선호비율이 5.2%포인트 앞섰다. 한편 민주당에 대한 선호비율(33.7%)은 혐오비율(9.1%)보다 훨씬 높았다. 이런 추세는 한국 선거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40대, 중도, 화이트칼라, 수도권 거주자층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표4>에서 보듯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선호도는 5점대로 크게 변함이 없었다. 반면 문재인 의원의 경우는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박 대통령보다 오히려 선호 점수가 높았다. 더욱이 2012년 총선 때보다 선호 점수가 약 1%포인트 상승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혐오도가 급격히 늘어난 2012 대선

민주당이 풀어야 할 최대 난제는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에게 우호적인 조건이 형성되었는데도 대선에서 왜 연이어 패배했느냐이다.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유권자들의 진보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크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표3>에서 보듯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에 대한 혐오비율은 10.1%에 불과했는데, 2012년 대선에서 통진당에 대한 혐오도는 3배 정도(30.8%) 급상승했다. 더구나 2012년 대선에서는 이정희 후보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71.5%)이 ‘싫어한다’고 응답했다.

이것은 2012년 총선 직후 통합진보당이 보여준 퇴행적(退行的) 행태와 2012년 대선에서 이정희 통진당 대선 후보가 보여준 반민주적이며 비이성적인 언행(言行)들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동안 ‘진보’라고 하면 개혁, 발전, 변화와 같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진보는 ‘종북 좌파’, ‘무능과 부패’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친노가 중심이 된 민주당이 선거 연대만을 의식해 통진당의 노선에 동조하면서 맹목적으로 좌클릭했던 것이 대선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추론된다.

실제로 한국선거학회 조사 결과, 지난 대선에서 후보를 변경한 적이 있는 사람들 중 처음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지 변경 이유를 묻자, (보수, 진보 구분 없이) 가장 많은 46.2%가 ‘지지하는 후보의 노선이나 이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민주당이 진정 국민들과 소통하고 대안(代案) 정당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민심과 동떨어진 장외투쟁을 중지하고 민생에 최우선을 두는 ‘실용적 진보’의 길을 걸어야 한다. 왜곡과 비상식의 언행으로 잃어버렸던 당의 품격도 되찾아야 한다.

NLL여론, 민주당에 유리

더불어 민주당은 허황된 한탕주의에서 벗어나야 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발목 잡는 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도 탈출해야 한다. 김한길 대표가 제안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도 큰 틀에서 보면 한탕주의이다. 대통령과 담판해서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것은 실상 의회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인식 속에 ‘진보=과격하고 무능한 세력’이라고 각인되는 순간 민주당의 미래는 밝지 않다. 따라서 2017년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장외투쟁이 아니라 진보 참회록을 쓰는 것이다.

둘째, NLL 문제에 대해서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NLL(북방한계선) 대화록’을 둘러싼 여야 공방과 관련, “무엇 때문에 여야가 중심 이슈로 NLL 문제를 이렇게 오랫동안 끌어오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방향이 잘못돼도 굉장히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한국갤럽이 7월 셋째 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다’라는 응답은 21%인 반면, ‘NLL 포기는 아니다’는 응답은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55%였다.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 고연령층에서조차 그 비율이 35%대 32%로 비슷했다.

“노 전 대통령 NLL 발언이 남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48%가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이라고 응답했고, 24%만이 “일반적으로 북한 편을 든 것”이라고 응답했다.

NLL에 대한 민심이 이렇게 유리한데 민주당은 무엇이 두려워 국정원에 보관 중인 정상회담 대화록 녹음 파일을 공개하자는 새누리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오히려 당당하게 이를 수용하고 정상회담 사전(事前), 사후(事後) 회의록도 함께 공개할 것을 새누리당에 요구했어야 했다. 그런 다음에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증인 채택 문제를 새누리당이 수용하도록 압박했어야 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핵심적으로 요구하는 사항들은 받아주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요구 사항만 관철시키려 장외투쟁을 벌이면 어떻게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민주당, 당내 內戰 종식해야

작년 대선 당시 함께 유세하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 안철수 지지자의 이탈은 문 후보 패배의 한 원인이었다.

셋째, 친노-비노 계파 간의 내전( 內戰)을 종식시키고 하나가 되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 대선에서 실시했던 패널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의 대선 후보 선택에 영향을 많이 미친 선거 이슈로 ‘안철수 후보의 문재인 후보 지지’가 37.7%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여성 대통령론’(20.5%), ‘NLL 관련 발언’(14.5%), ‘이정희 후보 사태’(13.4%), ‘북한 로켓 발사’(7.3%), ‘국정원 여직원 사건’(6.5%) 순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대선 투표자들 가운데 안철수를 지지했던 79.0%만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20.2%는 박근혜 후보 지지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친노를 대표했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어떤 방식이든 안철수 후보만 주저앉히면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대선에서 바람은 안철수 후보가 일으켰는데 그 바람을 문재인 후보가 올라타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위의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대선 후보가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단순한 반사이익만으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대선 패배 세력이 또다시 당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대여 강경 투쟁에 조직적으로 몰입한다면 민주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친노 세력은 기존의 민주당 지도 체제를 더 이상 흔들지 말고 백의종군하면서 민주당이 자생력을 갖춘 대안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共生의 정치

국민 상당수는 지금 여야 정치권이 왜 이 난리법석을 떨면서 싸우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정치권은 이제 공멸(共滅)의 정치에서 벗어나 공생(共生)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 국민들의 8%만이 ‘국회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심이 이러한데도 여야가 자신은 선(善)이고 상대는 악(惡)이라는 지극히 편협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대통령마저 정치는 여의도에서 하는 것이라고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참담한 현실을 타파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어두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정치를 존중하고 새누리당에 대한 ‘리모컨 정치’를 포기해야 한다. 국회 문제에 관한 한 새누리당이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보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민주당도 장외투쟁과 자해정치를 접고 정책 능력을 키워 민생을 챙기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