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단체 국회의원 평가 이후 법안 발의 폭발적 증가
⊙ 의원들 법안 발의 치중하면서 政務보다는 정책 중심 보좌관 선호
⊙ “보좌관 20년 채워 공무원 연금 받겠다”는 보좌관도
⊙ 의원들 법안 발의 치중하면서 政務보다는 정책 중심 보좌관 선호
⊙ “보좌관 20년 채워 공무원 연금 받겠다”는 보좌관도
국회는 입법(立法)기관이다. 입법을 위해서는 여야 간 협상을 통한 설득과 이해, 타협과 양보를 통한 소통이라는 고도의 정치행위가 필요하다. 국회가 정하는 법은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다. 눈물이 되고 한숨이 되기도 하지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기도 한다. 국회가 정치의 꽃을 피워야 하는 장(場)이 돼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현실은 어떤가. “동물국회가 되기보다 식물국회가 되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국회는 갈등의 생산과 증폭의 장이 되고 있다. 갈등의 조정이라는 정치 기능을 상실한 탓이다.
그 이유는 많을 것이다. 깊은 골을 메우지 못하는 지역주의와 진정한 정당 정치의 부재(不在)로 인해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정치세력 간의 첨예한 대결 등. 이런 문제들은 어쩌면 오랜 시간 우리 사회 전체가 공동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회 스스로 ‘정치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월적 지위에서 행정부에 대해 자료 요구권을 갖고 있음으로써 관료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 자체가 관료 집단화하는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정무 기능을 담당하던 보좌진들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대신 정책 중심 보좌진들을 국회의원들이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정책 중심 보좌관들의 증가로 국회가 정책 중심 국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데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정무 기능의 소멸이 정책을 현실화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 때문이다. 현실에 가장 밀접할 수밖에 없는 정치를 배제한 정책은 그야말로 정책만을 위한 정책이 되기 십상이다.
국회 정무 기능의 쇠퇴를 수치로 계량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곳을 전문적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통해서 흐름을 짚어 볼 수 있을 뿐이다. 다음은 국회의 그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최근 사례다.
대기업서 政務 능력 탁월한 보좌진 추천 의뢰 왔지만…
지난 5월 3일 새누리당보좌진협의회(새보협) 회장인 권형석 보좌관(정희수 의원실)은 대기업 인사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對)국회 업무를 강화하려 하는데 정무 능력이 탁월한 보좌진 몇 명을 추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새 정부 들어 재계는 경제민주화 법안 관련 추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를 상대로 한 대관(對官)업무(기업이 정부 등 공공 기관을 상대로 하는 업무를 통칭) 담당자를 증원하고 있다. 연봉도 높고 안정적인 직장인만큼 여러 후배를 소개하려 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의 이야기다.
“일 잘하는 후배들은 정말 많습니다. 경제학, 법학 등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친구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고요. 그런데 대관업무란 것이 정무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런 후배들은 많지 않습니다. 요즘 보좌진들은 국정감사를 비롯한 정책 보좌 업무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사실 보좌진의 역할은 그것만이 아닌데 …. 어쨌든 대기업 인사팀에는 한 명밖에 추천하지 못했습니다.”
권 보좌관은 “여러 명을 추천할 수 있었는데 한 명밖에 추천하지 못한 점이 지금도 아쉽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대로 국회 보좌진의 정무 기능이 쇠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정치의 중심이어야 할 국회에 몸담은 국회의원 보좌진들의 정무 기능이 퇴색한 계기와 이유는 뭘까. 15년 이상 국회에 근무한 보좌관들에게 물었다. 일부에서는 ‘구태’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여야간 ‘낭만’의 흔적이 있었던 국회의 언저리와 ‘살벌한’ 현재의 국회를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대중(金大中) 정권 때의 상황을 주목하라고 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누리당 김태호(金台鎬) 의원실의 이창진 보좌관이 기억을 더듬었다.
“1999년도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려면 국회의 생산성을 높일 때라고 주문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의 물갈이론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부터 국회의원들이 법안 발의 같은 정책적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13대부터 국회 보좌진으로 근무한 K 보좌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자당(自黨) 의원들에 대한 정책적 역량을 체크했습니다. 제 기억에는 법안 발의, 국정감사 성과 등이 언론에 많이 노출된 의원을 칭찬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원들 사이에 경쟁이 붙었습니다. 그때부터 정무 담당 보좌진보다는 정책 담당 보좌진을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늘기 시작한 議員立法 발의
실제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8·15 경축사를 통해 “정치가 나라 발전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목만 잡고 있다”며 국회의 생산성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경축사 작성에 참여한 참모들은 이 경축사를 “김 전 대통령의 제2의 취임사이자 ‘21세기 한국의 모습’을 담은 비전 제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의 생산성이 낮아지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등 선진국처럼 국회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법안실명제를 통한 의원발의 촉진, 입법공청회 활성화, 예결위원회 상설화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1999년 김 전 대통령의 독려(督勵)로 의원입법(議員立法) 발의는 서서히 늘어났다. 국회가 입법부로서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초기 때인 14대 국회(1992~1994) 때 의원발의 건수는 321건에 머물렀지만, 김영삼 정부 후반과 김대중 정부 초기 때인 15대(1996~2000) 국회 때는 의원입법이 1144건이었다.
의원입법 가결률 형편없어
14, 15대 국회에서 의원입법 발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 의정사의 긍정적인 변화로 인식됐고 적극 권장됐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가 본격화한 16대 국회 때부터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의원입법 건수가 대폭 증가한 차원을 넘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법제처가 간행한 <의원발의 법률안에 대한 입법부와 행정부의 협의방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6대(2000~2004)에 1912건이던 의원입법이 17대(2004~2008년)에는 6387건으로 증가했고 18대(2008~2012)에는 1만2220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번 19대 국회는 5월 11일 현재 4383건으로 이 추세라면 1만5000건을 넘어 2만 건까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쏟아져 나온 법안들의 가결률은 형편없다. 16대 국회가 27%, 17대 국회가 21.2%, 18대 국회가 13.6%의 가결률을 보였다. 가결률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법안 발의 건수를 내밀며 국회와 법제실이 대단히 열심히 일하는 듯한 눈속임을 쓸 뿐 알맹이는 없는 셈이다.
홍완식(洪完植)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2012년) ‘국회 입법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법안 발의 건수를 늘리려는 의원들이 ‘부실 법안’ ‘졸속 법안’ ‘표절 법안’ ‘묻지 마 법안’ ‘중복 법안’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또 “법안 발의 건수를 늘리려고 몇 개 조문만을 고쳐서 개정 법안을 제출하거나 다른 법안을 베낀 듯한 법안을 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법안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중복해서 제출하는 의원들도 다수”라고 꼬집었다.
당장 지난 4월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새누리당 김종훈(金宗壎) 의원이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발의한 동일한 이름의 법률안들이 너무 많아 의원들조차 예전에 심의를 마쳤던 법률안인지, 해당 법률안 내용이 어땠는지 선뜻 확인할 수 없어 난감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당시 회의록의 내용이다.
<김종훈 위원-“예를 들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이것만 해도 같은 법률 이름 밑에 네 분의 의원이 각각 다른 내용을 제출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의원께서 같은 법률의 여러 개 개정안을 냈을 때는 (법안 제출) 날짜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위원장님께 좀 건의하고자 하는데 우리 위원회에 제출된 법안들에 대해서는 고유번호를 줘서 번호만으로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김정훈 위원장-“좋은 제안입니다. 적극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들이 얼마나 경쟁적으로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법안을 내놓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부천대 고인석 교수는 <의원입법의 효율성 강화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입법상황을 보면 그동안의 ‘통법부’라는 비난에서 벗어나 엄청난 의원입법의 증가를 초래하였지만, 오히려 내용적 측면에서는 정치적 고려에 수반된 인기영합적 입법, 졸속 입법, 쏠림 입법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소수 조문의 개정을 통하여 의원의 의정평가 결과를 높이기 위한 내용 없는 부실 입법 또는 입법 관여자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부실 입법의 문제를 새롭게 등장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여야 의원들이 최근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졸속 입법과 부실 입법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수의원 선정이 當選 보장하나?
‘묻지 마 입법’이라는 비판에도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열을 올리는 것은 시민단체들로부터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다. 다수의 의원들은 시민단체 평가가 좋아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 다음 선거에서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공천 때만 되면 “우수의원들에 대해서는 공천에 꼭 반영하겠다”며 부추긴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보좌진 업무의 무게 추를 정무에서 정책으로 쏠리게 했다.
국정감사 NGO(비정부기구)모니터단은 270여개 시민단체 100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국회 감시단’이다. 지난 1999년부터 매년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의원들의 상임위와 본회의 출석, 대표 발의안 건수 등 의정 활동을 중심으로 성적을 매겨 발표하고 있다.
국감 NGO모니터단 관계자는 “우수의원으로 뽑힌 의원 다수가 공천을 받고 당선됐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평가 결과와 공천 및 당선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서울 지역의 한 재선 의원 보좌관은 “17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 횟수도 많고 전문성과 정치력을 갖춰 NGO모니터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던 박희태(朴熺太) 권오을(權五乙) 맹형규(孟亨奎) 엄호성(嚴虎聲) 전 의원 등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누구나 다 알 것”이라고 했다.
이 보좌관의 이야기를 검증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NGO모니터단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선정한 우수국감 국회의원 중 19대 때 낙천(落薦)하거나, 낙선(落選)한 인물이 여야 통틀어 얼마나 되나 찾아봤다. 공천 심사 전 불출마 선언한 의원들을 제외하고도 꽤 많은 인원이 우수의원으로 선정됐음에도 불구, 낙천하거나 낙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상찬(具相燦) 강기갑(姜基甲) 김성식(金成植) 김진애(金鎭愛) 김충조(金忠兆) 김학송(金鶴松) 권경석(權炅錫) 조승수(趙承洙) 최규식(崔奎植) 최인기(崔仁基) 백원우(白元宇) 전재희(全在姬) 우제창(禹濟昌) 김효석(金孝錫) 성윤환(成允煥) 정옥임(鄭玉任) 이종혁(李鍾赫) 박대해(朴大海) 허천(許천) 배은희(裵恩姬) 유정현(柳政鉉) 정태근鄭泰根) 김유정(金裕貞) 권영진(權泳臻) 박보환(朴普煥) 박영아(朴英娥) 이혜훈(李惠焄) 정해걸(丁海杰) 손범규(孫範奎) 문학진(文學振) 전(前)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컨설팅 e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질적인 측면을 따지지 않고 양적인 평가를 척도로 삼는 시민단체의 평가는 너무 표피적”이라며 “시민단체 평가가 좋다고 공천을 받거나 당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정무 요구하는 의원 全無”
시민단체 평가가 당선과 그리 밀접하지 않다고 해도 의원들은 정무보좌관보다는 정책보좌관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경북 지역의 한 초선 의원 보좌관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이렇게 설명했다.
“저도 예전에 정무 업무를 자주 봤습니다. 의원 본인이 원했습니다. 그래서 낮술도 마셔 가며 사정 당국 관계자, 기자를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여론 추이도 듣고 해서 보고를 했습니다. 제 보고에 의원도 귀 기울여 줬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정책만 합니다. 새로 모시게 된 의원이 정무보다는 저에게 정책 활동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요즘은 정무를 요구하는 의원들이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중진들도 별로 없고요. 의원이 원하지 않는 활동을 하는 보좌진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정무 업무를 보지 않다 보니 보좌진들의 정무 기능이 쇠퇴하는 것입니다.”
의원들이 정무가 아닌 정책으로 승부를 보려는 이유도 궁금했다. 경력 10년 이상의 보좌진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원들이 국회의원을 단순히 하나의 ‘직업’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200여 개의 특권이 존재하는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당장 눈에 띄는 활동만을 하려 하다 보니 정무를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과거 보좌진으로 있다가 새누리당 원내 대표실로 자리를 옮긴 황규환 차장은 “정무는 물밑에서 은밀하게 이뤄진다. 당장 성과가 나기 어렵다. 하지만 법안 발의, 국정감사 성과 등 정책적인 부분은 다르다”고 했다.
10년 넘게 국회에 출입하는 사정 당국 관계자는 정치인이 아닌 외부에서 수혈된 인사들이 대권 주자가 되면서 의원들이 정무보다는 정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견해를 내놨다.
“9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국회의원만 하려고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정치인 중에 대통령이 나온 만큼 큰 꿈을 꾸며 의정활동을 해 왔지요. 그러다 보니 보좌진의 정무 기능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당시 활동하던 보좌진 중에는 정무 기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많았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외부에서 수혈된 인사가 대권 주자가 됩니다. 안철수, 문재인 의원이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의원들 사이에 ‘어차피 대권에 도전도 못할 거 법안이나 많이 내고 본회의나 상임위 출석률 높여서 국회의원이나 계속하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보좌진에게 정무를 맡기겠습니까, 정책을 맡기겠지요.”
권형석 보좌관은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 선배들은 의원이나 보좌관이나 정책 전문은 4년, 정무 전문은 40년을 간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의원을 감시, 평가하는 시민단체가 우후죽순(雨後竹筍) 늘면서 의원이나 보좌진이나 정책 분야에만 매몰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경기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사석에서 지역 기자들에게 “지역 현안은 잘 아는데 여의도 정치는 잘 모른다”며 “중앙 이슈는 잘해 봤자 한때 반짝일 뿐이고 나중에 재선되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좌진의 官僚化
정책보다 정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면서 보좌진 채용 트렌드(trend)도 변했다. 과거에는 자신과 가까운 후배나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한 인사를 채용했다. 영남 지역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의원과 보좌진은 딱 까놓고 돈 문제부터 사생활까지 다 공유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 신뢰가 중요하다. 그래서 보증된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최근에는 의원 활동에 보탬이 되는 정책적 전문성을 지닌 인물을 뽑고 있다. 과거 논공행상식의 채용에서 식견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물을 공채로 임명하는 것 자체는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보좌진 사이에서조차 ‘요즘 보좌진은 정무 업무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문제다. 이들의 주된 비판은 보좌진들의 관료화(官僚化)다. 행정부 관료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국회의원과 보좌진 본연의 역할이다. 관료적 사고로는 관료를 감시, 견제할 수 없는데도 스스로 관료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경기도 재선의원의 비서관은 “최근 민주당에는 시민단체, 학자(석·박사) 출신이 보좌진으로 대거 등용됐는데 시민단체 출신들은 무조건 감정만 내세우고, 관료색이 강한 학자 출신은 당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논문 같은 질의만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던져 유명해졌지만 고함만 지른 것이 아닙니다. 노 전 대통령은 보좌관·비서관을 풀 체제로 운영했습니다. 이들은 국정감사가 있는 곳은 지방 작은 도시의 노동사무소라도 모두 미리 내려가 며칠씩 조사했습니다. 노동자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서류를 뒤지고 ….
몇 년씩 그 업무를 맡고 있던 공무원도 모르는 일을 들춰내 따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정책만 도맡아 하는 보좌진들이었습니까?”
새누리당 심학봉(沈學鳳) 의원실 이주엽 보좌관도 “요즘 보좌진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만 하려는 태도”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다.
“요즘 보좌진을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전문성을 먼저 키우라’고 조언합니다. 전문성이 있어야 오래 살아남습니다. 의원이 국정감사나, 시민단체에서 주목을 받으면 자신의 몸값이 오르기 때문에 그런 일만 하는 것이지요. 일 잘한다고 소문나면 국회를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지요. 국회 보좌진도 20년을 하면 연금 수혜 대상이 됩니다. 요즘에는 국회에서 20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 후배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이 ‘정책’ 하나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무 업무 등한시 말아야
1988년부터 20년 동안 김형오 전 국회의장 한 사람과만 함께해 온 고성학 전 보좌관(한국정보인증 대표)은 “좋은 보좌진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보좌관은 제2 바이올린과 같습니다. 제1 바이올린이 최선의 기량을 보일 수 있도록 보조하면서도 그 악단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보좌진의 역할입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6~9일 만 19세 이상 남녀 1210명을 상대로 ‘요즘 국회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느냐’고 물은 결과 71%(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8%포인트)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이유로 ‘싸우기만 하고 소통은 안 한다’(19%)를 가장 많이 꼽았다.
국회 역할 부정 평가자들에게 여당과 야당 중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크냐고 묻자 ‘여당 잘못이 더 크다’가 13%, ‘야당 잘못이 더 크다’가 18%, ‘둘 다 잘 못한다’가 65%였다. 의견 유보는 5%였다.
여전히 국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과의 소통이었다. 국민은 19대 때 대거 입성한 초선의원들에게 소통을 기대했다. 기존 정치인과는 달리 새롭고 개혁적인 마인드로 정치를 바꿔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초선 의원들은 16〜18대 국회에서 활약한 개혁 성향의 초선의원 그룹과 비교할 때 당 쇄신과 정치 개혁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결집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원이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가 약하고 정치 감각이 크게 떨어진다면 보좌진이라도 여론을 듣고 전해야 한다.
20년을 채워 연금을 받겠다는 국회 보좌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과거 보좌관들 가운데는 정치의 꿈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보좌진들 가운데는 기라성 같은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들이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보좌관·비서관 출신 의원은 김덕룡(金德龍) 박종웅(朴鍾雄) 김무성(金武星) 이성헌(李性憲) 정병국(鄭柄國) 전·현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보좌관·비서관 출신은 권노갑(權魯甲) 한화갑(韓和甲) 김옥두(金玉斗) 최재승(崔在昇) 설훈(薛勳) 정동채(鄭東采) 윤철상(尹鐵相) 배기운(裵奇雲) 조재환(趙在煥) 전 의원이 있다.
국회의 수장(首長)도 나왔다. 박관용(朴寬用) 전 국회의장은 이기택(李基澤)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이번 국회 직전인 18대 국회에서는 구상찬(具相燦) 전 의원, 조해진(曺海珍) 의원, 이광재(李光宰) 전 강원지사 등 22명이 보좌관 경력을 가진 국회의원이었다. 그들이 20년 보좌관 생활을 채워 연금을 받을 생각을 했다면 그 자리에 갈 수 있었겠는가.⊙
현실은 어떤가. “동물국회가 되기보다 식물국회가 되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국회는 갈등의 생산과 증폭의 장이 되고 있다. 갈등의 조정이라는 정치 기능을 상실한 탓이다.
그 이유는 많을 것이다. 깊은 골을 메우지 못하는 지역주의와 진정한 정당 정치의 부재(不在)로 인해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정치세력 간의 첨예한 대결 등. 이런 문제들은 어쩌면 오랜 시간 우리 사회 전체가 공동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회 스스로 ‘정치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월적 지위에서 행정부에 대해 자료 요구권을 갖고 있음으로써 관료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 자체가 관료 집단화하는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정무 기능을 담당하던 보좌진들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대신 정책 중심 보좌진들을 국회의원들이 선호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정책 중심 보좌관들의 증가로 국회가 정책 중심 국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데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정무 기능의 소멸이 정책을 현실화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 때문이다. 현실에 가장 밀접할 수밖에 없는 정치를 배제한 정책은 그야말로 정책만을 위한 정책이 되기 십상이다.
국회 정무 기능의 쇠퇴를 수치로 계량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곳을 전문적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통해서 흐름을 짚어 볼 수 있을 뿐이다. 다음은 국회의 그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최근 사례다.
대기업서 政務 능력 탁월한 보좌진 추천 의뢰 왔지만…
지난 5월 3일 새누리당보좌진협의회(새보협) 회장인 권형석 보좌관(정희수 의원실)은 대기업 인사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對)국회 업무를 강화하려 하는데 정무 능력이 탁월한 보좌진 몇 명을 추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새 정부 들어 재계는 경제민주화 법안 관련 추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를 상대로 한 대관(對官)업무(기업이 정부 등 공공 기관을 상대로 하는 업무를 통칭) 담당자를 증원하고 있다. 연봉도 높고 안정적인 직장인만큼 여러 후배를 소개하려 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의 이야기다.
“일 잘하는 후배들은 정말 많습니다. 경제학, 법학 등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친구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고요. 그런데 대관업무란 것이 정무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런 후배들은 많지 않습니다. 요즘 보좌진들은 국정감사를 비롯한 정책 보좌 업무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사실 보좌진의 역할은 그것만이 아닌데 …. 어쨌든 대기업 인사팀에는 한 명밖에 추천하지 못했습니다.”
권 보좌관은 “여러 명을 추천할 수 있었는데 한 명밖에 추천하지 못한 점이 지금도 아쉽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대로 국회 보좌진의 정무 기능이 쇠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정치의 중심이어야 할 국회에 몸담은 국회의원 보좌진들의 정무 기능이 퇴색한 계기와 이유는 뭘까. 15년 이상 국회에 근무한 보좌관들에게 물었다. 일부에서는 ‘구태’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여야간 ‘낭만’의 흔적이 있었던 국회의 언저리와 ‘살벌한’ 현재의 국회를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대중(金大中) 정권 때의 상황을 주목하라고 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누리당 김태호(金台鎬) 의원실의 이창진 보좌관이 기억을 더듬었다.
“1999년도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려면 국회의 생산성을 높일 때라고 주문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의 물갈이론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부터 국회의원들이 법안 발의 같은 정책적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13대부터 국회 보좌진으로 근무한 K 보좌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이후 자당(自黨) 의원들에 대한 정책적 역량을 체크했습니다. 제 기억에는 법안 발의, 국정감사 성과 등이 언론에 많이 노출된 의원을 칭찬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원들 사이에 경쟁이 붙었습니다. 그때부터 정무 담당 보좌진보다는 정책 담당 보좌진을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늘기 시작한 議員立法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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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8·15 경축사를 통해 국회의 생산성 문제를 거론했다. |
김대중 정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의 생산성이 낮아지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등 선진국처럼 국회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법안실명제를 통한 의원발의 촉진, 입법공청회 활성화, 예결위원회 상설화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1999년 김 전 대통령의 독려(督勵)로 의원입법(議員立法) 발의는 서서히 늘어났다. 국회가 입법부로서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초기 때인 14대 국회(1992~1994) 때 의원발의 건수는 321건에 머물렀지만, 김영삼 정부 후반과 김대중 정부 초기 때인 15대(1996~2000) 국회 때는 의원입법이 1144건이었다.
의원입법 가결률 형편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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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의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가 본격화한 후 ‘묻지 마 법안’이 양산됐다. |
안타깝게도 이렇게 쏟아져 나온 법안들의 가결률은 형편없다. 16대 국회가 27%, 17대 국회가 21.2%, 18대 국회가 13.6%의 가결률을 보였다. 가결률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법안 발의 건수를 내밀며 국회와 법제실이 대단히 열심히 일하는 듯한 눈속임을 쓸 뿐 알맹이는 없는 셈이다.
홍완식(洪完植)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2012년) ‘국회 입법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법안 발의 건수를 늘리려는 의원들이 ‘부실 법안’ ‘졸속 법안’ ‘표절 법안’ ‘묻지 마 법안’ ‘중복 법안’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또 “법안 발의 건수를 늘리려고 몇 개 조문만을 고쳐서 개정 법안을 제출하거나 다른 법안을 베낀 듯한 법안을 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른 법안과 거의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중복해서 제출하는 의원들도 다수”라고 꼬집었다.
당장 지난 4월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새누리당 김종훈(金宗壎) 의원이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발의한 동일한 이름의 법률안들이 너무 많아 의원들조차 예전에 심의를 마쳤던 법률안인지, 해당 법률안 내용이 어땠는지 선뜻 확인할 수 없어 난감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당시 회의록의 내용이다.
<김종훈 위원-“예를 들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이것만 해도 같은 법률 이름 밑에 네 분의 의원이 각각 다른 내용을 제출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의원께서 같은 법률의 여러 개 개정안을 냈을 때는 (법안 제출) 날짜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위원장님께 좀 건의하고자 하는데 우리 위원회에 제출된 법안들에 대해서는 고유번호를 줘서 번호만으로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김정훈 위원장-“좋은 제안입니다. 적극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들이 얼마나 경쟁적으로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법안을 내놓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부천대 고인석 교수는 <의원입법의 효율성 강화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입법상황을 보면 그동안의 ‘통법부’라는 비난에서 벗어나 엄청난 의원입법의 증가를 초래하였지만, 오히려 내용적 측면에서는 정치적 고려에 수반된 인기영합적 입법, 졸속 입법, 쏠림 입법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소수 조문의 개정을 통하여 의원의 의정평가 결과를 높이기 위한 내용 없는 부실 입법 또는 입법 관여자의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부실 입법의 문제를 새롭게 등장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여야 의원들이 최근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졸속 입법과 부실 입법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수의원 선정이 當選 보장하나?
‘묻지 마 입법’이라는 비판에도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열을 올리는 것은 시민단체들로부터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다. 다수의 의원들은 시민단체 평가가 좋아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 다음 선거에서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공천 때만 되면 “우수의원들에 대해서는 공천에 꼭 반영하겠다”며 부추긴다.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보좌진 업무의 무게 추를 정무에서 정책으로 쏠리게 했다.
국정감사 NGO(비정부기구)모니터단은 270여개 시민단체 100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국회 감시단’이다. 지난 1999년부터 매년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의원들의 상임위와 본회의 출석, 대표 발의안 건수 등 의정 활동을 중심으로 성적을 매겨 발표하고 있다.
국감 NGO모니터단 관계자는 “우수의원으로 뽑힌 의원 다수가 공천을 받고 당선됐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평가 결과와 공천 및 당선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서울 지역의 한 재선 의원 보좌관은 “17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 횟수도 많고 전문성과 정치력을 갖춰 NGO모니터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던 박희태(朴熺太) 권오을(權五乙) 맹형규(孟亨奎) 엄호성(嚴虎聲) 전 의원 등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누구나 다 알 것”이라고 했다.
이 보좌관의 이야기를 검증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NGO모니터단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선정한 우수국감 국회의원 중 19대 때 낙천(落薦)하거나, 낙선(落選)한 인물이 여야 통틀어 얼마나 되나 찾아봤다. 공천 심사 전 불출마 선언한 의원들을 제외하고도 꽤 많은 인원이 우수의원으로 선정됐음에도 불구, 낙천하거나 낙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상찬(具相燦) 강기갑(姜基甲) 김성식(金成植) 김진애(金鎭愛) 김충조(金忠兆) 김학송(金鶴松) 권경석(權炅錫) 조승수(趙承洙) 최규식(崔奎植) 최인기(崔仁基) 백원우(白元宇) 전재희(全在姬) 우제창(禹濟昌) 김효석(金孝錫) 성윤환(成允煥) 정옥임(鄭玉任) 이종혁(李鍾赫) 박대해(朴大海) 허천(許천) 배은희(裵恩姬) 유정현(柳政鉉) 정태근鄭泰根) 김유정(金裕貞) 권영진(權泳臻) 박보환(朴普煥) 박영아(朴英娥) 이혜훈(李惠焄) 정해걸(丁海杰) 손범규(孫範奎) 문학진(文學振) 전(前)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컨설팅 e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질적인 측면을 따지지 않고 양적인 평가를 척도로 삼는 시민단체의 평가는 너무 표피적”이라며 “시민단체 평가가 좋다고 공천을 받거나 당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정무 요구하는 의원 全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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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의원들은 정무보좌관보다는 정책보좌관을 선호한다. |
“저도 예전에 정무 업무를 자주 봤습니다. 의원 본인이 원했습니다. 그래서 낮술도 마셔 가며 사정 당국 관계자, 기자를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여론 추이도 듣고 해서 보고를 했습니다. 제 보고에 의원도 귀 기울여 줬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정책만 합니다. 새로 모시게 된 의원이 정무보다는 저에게 정책 활동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요즘은 정무를 요구하는 의원들이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중진들도 별로 없고요. 의원이 원하지 않는 활동을 하는 보좌진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정무 업무를 보지 않다 보니 보좌진들의 정무 기능이 쇠퇴하는 것입니다.”
의원들이 정무가 아닌 정책으로 승부를 보려는 이유도 궁금했다. 경력 10년 이상의 보좌진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원들이 국회의원을 단순히 하나의 ‘직업’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200여 개의 특권이 존재하는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 당장 눈에 띄는 활동만을 하려 하다 보니 정무를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과거 보좌진으로 있다가 새누리당 원내 대표실로 자리를 옮긴 황규환 차장은 “정무는 물밑에서 은밀하게 이뤄진다. 당장 성과가 나기 어렵다. 하지만 법안 발의, 국정감사 성과 등 정책적인 부분은 다르다”고 했다.
10년 넘게 국회에 출입하는 사정 당국 관계자는 정치인이 아닌 외부에서 수혈된 인사들이 대권 주자가 되면서 의원들이 정무보다는 정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견해를 내놨다.
“9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국회의원만 하려고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정치인 중에 대통령이 나온 만큼 큰 꿈을 꾸며 의정활동을 해 왔지요. 그러다 보니 보좌진의 정무 기능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당시 활동하던 보좌진 중에는 정무 기능이 뛰어난 사람들도 많았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외부에서 수혈된 인사가 대권 주자가 됩니다. 안철수, 문재인 의원이 대표적이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의원들 사이에 ‘어차피 대권에 도전도 못할 거 법안이나 많이 내고 본회의나 상임위 출석률 높여서 국회의원이나 계속하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보좌진에게 정무를 맡기겠습니까, 정책을 맡기겠지요.”
권형석 보좌관은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 선배들은 의원이나 보좌관이나 정책 전문은 4년, 정무 전문은 40년을 간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의원을 감시, 평가하는 시민단체가 우후죽순(雨後竹筍) 늘면서 의원이나 보좌진이나 정책 분야에만 매몰돼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경기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사석에서 지역 기자들에게 “지역 현안은 잘 아는데 여의도 정치는 잘 모른다”며 “중앙 이슈는 잘해 봤자 한때 반짝일 뿐이고 나중에 재선되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좌진의 官僚化
정책보다 정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면서 보좌진 채용 트렌드(trend)도 변했다. 과거에는 자신과 가까운 후배나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한 인사를 채용했다. 영남 지역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의원과 보좌진은 딱 까놓고 돈 문제부터 사생활까지 다 공유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 신뢰가 중요하다. 그래서 보증된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최근에는 의원 활동에 보탬이 되는 정책적 전문성을 지닌 인물을 뽑고 있다. 과거 논공행상식의 채용에서 식견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물을 공채로 임명하는 것 자체는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보좌진 사이에서조차 ‘요즘 보좌진은 정무 업무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문제다. 이들의 주된 비판은 보좌진들의 관료화(官僚化)다. 행정부 관료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국회의원과 보좌진 본연의 역할이다. 관료적 사고로는 관료를 감시, 견제할 수 없는데도 스스로 관료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경기도 재선의원의 비서관은 “최근 민주당에는 시민단체, 학자(석·박사) 출신이 보좌진으로 대거 등용됐는데 시민단체 출신들은 무조건 감정만 내세우고, 관료색이 강한 학자 출신은 당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논문 같은 질의만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던져 유명해졌지만 고함만 지른 것이 아닙니다. 노 전 대통령은 보좌관·비서관을 풀 체제로 운영했습니다. 이들은 국정감사가 있는 곳은 지방 작은 도시의 노동사무소라도 모두 미리 내려가 며칠씩 조사했습니다. 노동자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서류를 뒤지고 ….
몇 년씩 그 업무를 맡고 있던 공무원도 모르는 일을 들춰내 따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정책만 도맡아 하는 보좌진들이었습니까?”
새누리당 심학봉(沈學鳳) 의원실 이주엽 보좌관도 “요즘 보좌진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만 하려는 태도”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다.
“요즘 보좌진을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전문성을 먼저 키우라’고 조언합니다. 전문성이 있어야 오래 살아남습니다. 의원이 국정감사나, 시민단체에서 주목을 받으면 자신의 몸값이 오르기 때문에 그런 일만 하는 것이지요. 일 잘한다고 소문나면 국회를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지요. 국회 보좌진도 20년을 하면 연금 수혜 대상이 됩니다. 요즘에는 국회에서 20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 후배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이 ‘정책’ 하나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무 업무 등한시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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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 국회의원회관. |
“보좌관은 제2 바이올린과 같습니다. 제1 바이올린이 최선의 기량을 보일 수 있도록 보조하면서도 그 악단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 보좌진의 역할입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5월 6~9일 만 19세 이상 남녀 1210명을 상대로 ‘요즘 국회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느냐’고 물은 결과 71%(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8%포인트)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이유로 ‘싸우기만 하고 소통은 안 한다’(19%)를 가장 많이 꼽았다.
국회 역할 부정 평가자들에게 여당과 야당 중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크냐고 묻자 ‘여당 잘못이 더 크다’가 13%, ‘야당 잘못이 더 크다’가 18%, ‘둘 다 잘 못한다’가 65%였다. 의견 유보는 5%였다.
여전히 국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과의 소통이었다. 국민은 19대 때 대거 입성한 초선의원들에게 소통을 기대했다. 기존 정치인과는 달리 새롭고 개혁적인 마인드로 정치를 바꿔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초선 의원들은 16〜18대 국회에서 활약한 개혁 성향의 초선의원 그룹과 비교할 때 당 쇄신과 정치 개혁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결집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원이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가 약하고 정치 감각이 크게 떨어진다면 보좌진이라도 여론을 듣고 전해야 한다.
20년을 채워 연금을 받겠다는 국회 보좌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과거 보좌관들 가운데는 정치의 꿈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보좌진들 가운데는 기라성 같은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들이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보좌관·비서관 출신 의원은 김덕룡(金德龍) 박종웅(朴鍾雄) 김무성(金武星) 이성헌(李性憲) 정병국(鄭柄國) 전·현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보좌관·비서관 출신은 권노갑(權魯甲) 한화갑(韓和甲) 김옥두(金玉斗) 최재승(崔在昇) 설훈(薛勳) 정동채(鄭東采) 윤철상(尹鐵相) 배기운(裵奇雲) 조재환(趙在煥) 전 의원이 있다.
국회의 수장(首長)도 나왔다. 박관용(朴寬用) 전 국회의장은 이기택(李基澤)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이번 국회 직전인 18대 국회에서는 구상찬(具相燦) 전 의원, 조해진(曺海珍) 의원, 이광재(李光宰) 전 강원지사 등 22명이 보좌관 경력을 가진 국회의원이었다. 그들이 20년 보좌관 생활을 채워 연금을 받을 생각을 했다면 그 자리에 갈 수 있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