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윤창중 사건으로 본 고위공직자의 性윤리 : 월간조선

‘윤창중 성(性)스캔들’은 고위공직자의 그릇된 성 윤리의식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대개의 고위공직자 연령은 인생의 허리와 같은 중년. ‘수상쩍은 중년의 대머리(혹은 半白)’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기자와 만난 전·현직 정부 사정(司正)·윤리 업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성공한 중년의 공직자일수록 비윤리적 성문제로 인사검증에서 탈락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권력기관에 속하는 법원·검찰·국회에 몸담았던 인사일수록 더욱 그렇다는 얘기였다.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좀체 이들의 행적이 수면 위로 부상한 적은 별로 없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남의 허물을 ‘귤껍질’처럼 까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허물은 ‘화투패’ 감추듯 숨기는 이들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법이나 권력에 가까이 있고 익숙한 이들일수록 부패혐의가 자신을 겨냥하지 않을 것이라 착각하는 이가 많아요. 이런 사람일수록 아랫도리 문제는 염치를 모릅니다. 작년 서울동부지검의 초임 검사가 40대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일이 있지 않나요? 놀라운 사실은 검찰청사 내 사무실 복도에서 그 여성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육모방망이를 든 (검사의) 우월의식 내지 특권의식이 죄의식을 무디게 했을 것입니다.”

이 관료는 자신이 명문대 법대 출신이지만 “한국의 고위공직자 대부분이 특정대학 법대를 나와 서로 권력의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사법부에서 입법부로 자리를 옮기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들여다보면 법을 안다는 사람이 더 법을 우습게 여긴다”고 했다.

“관료나 법관·검사 출신 고위공직자 중에 비리로 구속된 사람이 있습니까. 정치적 사안을 제외하고 이들이 구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설사 1심에서 형을 받아도, 2심에서 대부분이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윤리의식이 다른 집단보다 뛰어나서일까요? 제 식구인 사법부가 눈감아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감춰진 성모럴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요.”

작년 12월 한 변호사가 여검사를 사모해 ‘선의(善意)’로 벤츠승용차(다이아몬드 반지, 모피, 고가 핸드백, 명품 시계 등)를 제공한 사실이 불거져 세칭 ‘벤츠 여검사’ 사건으로 명명된 추문이 있다. 1심에서 재판부는 ‘벤츠 여검사’에게 3년의 실형과 함께 추징금 4462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에서는 황당하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고소 사건 청탁을 받은 시점(2010년 초)과 벤츠 승용차를 받은 시점(2008년 2월)에 차이가 있어 대가성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자관계가 복잡한 변호사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정표를 요구해 사랑의 정표(情表)로 벤츠 승용차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선고는 누가 뭐래도 국민의 법 감정과 크게 다른 것이다. 과연 그 변호사는 상대가 검사가 아니었더라도 그런 ‘사랑’을 나누고 고가의 벤츠 승용차를 정표로 주었을까.

중년이라는 나이와 권력이란 최음제

고위공직자는 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할 필요가 없다. 인사하겠다고, 술·밥을 사겠다는 이들이 줄 서 있다. 사진은 신임 총리와 인사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중년은 견고했던 도덕감(道德感)과 공직자 고유의 덕성(德性)인 체면(體面)이 무뎌지는 시기다. 정신분석학자 융(Carl G. Jung)의 말처럼 중년기는 ‘영적(靈的) 위기’가 도래하는 시기다.

게다가 이 중년의 고위공직자들은 남에게 사정하고 부탁할 일이 별로 없다. 시쳇말로 가만히 있어도 술·밥을 사겠다는 이들이 줄 서 있다. 굳이 자기 돈 쓰지 않아도 직책을 매개로 떳떳하게 인사를 받거나 할 수 있다.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으나 ‘강원도 원주 별장 성접대 사건’에서 보듯, 고위공직자를 포함한 이들은 성접대도 큰 범주의 접대 중 하나라고 가볍게 여기지 않았을까. 자신이 ‘잘났기에’ 성접대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종의 우월의식, 선민의식이다.

이들에게 술집 접대부나 계약직 직원(인턴) 같은 약자(弱者)는 도덕, 비도덕의 문제를 벗어난 ‘무도덕(non-moral)’의 대상일지 모른다. 이들을 함부로 다루는 것도 무도덕의 대상이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있어 성추행은 ‘대한민국의 입’(청와대 대변인)과 일개 인턴직원 사이에 일어난 ‘무도덕적 행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란 점이다. 진실을 감추려고 논리적으로 모순된 거짓말을 하는 까닭도 무도덕의 대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무도덕 감각은 외국의 정치가나 고위공직자에게서도 확인된다. 2년 전 사르코지 뒤를 이을 프랑스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스트로스 칸 전(前)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호텔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정치적 생명을 잃었지만, 당시 그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었다.

지난 2006년 미국에서 아동 성희롱 근절을 부르짖었던 공화당 마크 폴리 하원의원은 의회의 고등학생 인턴들에게 성적인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들통 나 사임했다. 동성애자 반대 운동과 가족 지키기 운동을 펼치던 공화당 래리 크레이그 상원의원이 2007년 6월 남자 화장실에서 음란한 행위로 체포된 일이 있다. 한때 빌 클린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꾸짖기도 했던 그는 “다리를 벌렸을 뿐”이라고 변명했다.(《뉴스위크》인터넷판 2010년 5월 25일자 ‘권력과 위선’ 기사 참조)

여성폭력에 대한 가해자의 심리를 연구하는 상담심리 전문가 정은미(鄭殷美)씨의 지적이다.

“윤창중 사건에서 보듯 권력 가까이 있는 이들은 피해의 관점에서 상황을 보고 해석하는 데 곤란을 느낍니다. 피해자의 수동성, 약자의 위치가 성행위를 받아들이게 한다고 해석하는 식이죠. 이런 이들일수록 높은 충동성과 지배성 등이 강합니다. 여성을 함부로 다뤄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한 심리학자(Crull)의 연구에서, 성희롱 피해자 여성 28명을 조사했더니 가해 남성들은 ‘권력’과 ‘남성의 성 역할’ 등에서 특징적이었다고 합니다. 가해자의 권력은 피해자보다 높았으며 권력을 지닌 가해자의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이죠. 성희롱을 할 가능성이 큰 남성은 강간의 신화(神話), 예를 들어 여성은 강간당하는 것을 좋아하고, 강간당할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추구한다는 왜곡된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그들에게 최음제입니다.”

왜곡된 신념의 대표적인 상징어가 ‘영웅호색(英雄好色)’이다. 젊고 매력적인 여자들과 성관계를 갖거나 탐닉하는 것이 영웅의 한 특징인 양 치부하는 것이다.

사회의 기대치가 높아지면 내면은 오히려 취약해져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李那美)박사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더 많은 암컷에게 씨를 발산하려는 힘센 수컷의 욕구가 유력한 정자를 받으려는 암컷의 요구와 맞아떨어질 때 성 스캔들이 일어난다”며 권력자들의 호색 경향을 인정한 바 있다.

이나미 박사는 최근 펴낸 《한국 사회와 그 적들》에서 “성공한 사람은 자아가 고양되어 죄의식이나 남에 대한 배려도 줄어들 수 있다”며 “선민의식으로 사람을 가려 사귄다면서도 정작 속내는 허접한 이들과 폐쇄적으로 어울려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이 박사는 “사회의 기대치는 높아지는데 내면은 오히려 취약해져 병든 이들도 많다. 유명인이나 지도자들의 공허한 실상이 드러나면 본인뿐 아니라 주변까지 충격으로 혼란스러워진다”고 했다. 또 “여자나 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이들 중에는 의외의 인물들이 꽤 있다”고 경험담을 꺼냈다. 다음은 책의 일부다.

<사실, 리더로 성장할수록 주변에서 쓴소리를 해 주는 사람이 점점 사라진다. 나의 생사를 좌우하는 강자에게 바른말을 하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 실제로 자리가 높고 돈이 많아질수록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여유도 없다. 스케줄이 바빠지고 책임져야 할 이들도 늘어난 탓이다. 그러면 겉은 부산하나 내부는 점점 더 공허해진다. 그 간극으로 인한 자기 소외를 못 견디고 이상한 방법으로 긴장을 풀려는 경향도 생긴다. 술, 도박, 엉뚱한 투자, 성적 탐닉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276쪽)

‘지시적 사고’에 익숙한 고위공직자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데 익숙하다. 이들은 자신의 사고나 행동이 지시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술자리에서 여성 접대부를 만지고 섹스를 하는 것과 관련한 윤리적 고민이 끼어들 수 없다. 지시적 사고에 익숙하면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논거나 증거를 무시하고 거부한다. 문제는 이런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이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와대 출입 일간지 기자의 말이다.

“기자출신인 윤창중씨는 자신이 최고라는 마초기질이 다분했어요. 브리핑할 때 멘트의 시작은 항상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입니다’였어요. 자신이 기자 출신이어서 후배 기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위치였으나 술 한 번 사지 않았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조차 ‘질문을 하고 싶으면 손들고 소속사부터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내가 대한민국 대변인인데, 내가 하라고 하면 하고, 앉으라면 앉아야지’ 하는 의식이 가득했어요. 권력을 쥐면, 하루아침에 권력자의 모드로 사고가 전환되는 것인가요?”

“여자문제는 대개 조직 내에서 소문이 나”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성접대 의혹으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조사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 3월 21일 법무부 청사 앞에서 경찰이 기자의 출입을 막고 있다.

암살당한 케네디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36대 미국 존슨 대통령(1963~1969년 재임)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존슨이 대통령 재임 중에 자신의 고향인 텍사스의 집안 농장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물론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많은 수행원이 따라와 같이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 젊은 여성 보좌관이 겪은 일이다.

하루 일을 마친 그녀는 따로 마련된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떠보니 침대 발치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회중전등을 들고 서 있던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옆에 좀 눕자. 나 대통령이야.”

바로 존슨이었다. 그 목소리엔 일말의 주저함과 대통령으로서의 체면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누가 묻기도 전에 이와 같은 자신의 엽색행각들을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상담심리 전문가 정씨의 계속된 말이다.

“지시적 사고는 자기 기만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모순성을 누그러뜨려 대상을 바라봅니다. 자신이 상대를 곡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귀를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권력자가 측근들에 둘러싸여 시중 여론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 윤리도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뻔하게 감춥니다.”

왜곡된 신념에도 임계치가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지금 자신의 권력과 권위만 생각하지만 세상 이치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지만, 조만간 공직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남이 부추기는 화려한 가면이 가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썩은 사고와 몸이 원래의 자기(self)로 되돌아갈 ‘회복탄력성’이 생길지는 의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고위공직자의 사정 업무를 담당했던 한 인사는 “고위공직자 중에서 여자 문제, 술 문제가 불거진 경우가 많았다. 일단 소문이 나면 조직 주변부터 탐문해 세평(世評)을 듣고 사실부터 확인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 문제가 있는 이들은 대개 자신이 몸담은 조직 내에서 소문이 나 있어요. 그 소문을 자신만 모르는 것이죠. 따지고 보면, 자신의 승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주변 사람입니다. 회식자리에는 술을 마시는 경우가 다반사고, 과음으로 인해 과도한 신체접촉이나 음담패설을 하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합니다.”

이 사정 담당자의 계속된 말이다.

“회식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는 도중에 가볍게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하러 갔다가 남자직원이 여직원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바람에 성희롱 혐의를 받았는가 하면, 고위공직자가 여직원과 폭탄주 러브샷을 하면서 너무 오랫동안 껴안고 있다가 여직원의 항의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어요. 이처럼 술자리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지나친 행동을 하기가 쉽고 이로 인해 본인이 성희롱 혐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찰문건에 등장한 고위공직자의 불륜

“가볍게 입을 맞추고 헤어지는 듯하더니 함께 아파트로 걸어 들어갔다”

작년 3월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팀이 공직자의 비위를 파악한 내용의 문건이 공개됐다. ‘리셋 KBS 뉴스9’가 공개한 문건에는 한 고위 간부의 불륜 행적이 분 단위로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 간부는 2009년 5월 19일 오후 10시30분쯤 차 밖에서 내연녀와 대화하다 가볍게 입을 맞추고 헤어지는 듯하더니 함께 아파트로 걸어 들어갔다.

문건에는 ‘(내연녀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5m 앞에 정차한 차로 걸어가 승차했다’거나 “병맥주 2병과 과자 3봉지를 샀으며 계산을 하려다 내연녀가 맥주 1병을 떨어뜨려 깨졌다. 이 간부가 ‘당신 딸에게는 뭘 사 주지’라고 묻자 내연녀는 ‘○○○ 초콜릿이면 된다’고 말했다”고 적혀 있었다.

KBS 새노조 측은 이 문건에 대해 “국무총리실 사찰팀이 간부와 내연녀를 밀착 감시하며 미행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 간부는 이후 건강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사표를 썼으나 퇴직 이후 민간 기업에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 과정에 이 사찰 문건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공직자는 단골술집이 없어야 한다

검사들에게 술접대와 성상납을 했다고 주장하는 ‘스폰서 정씨’의 자필 진정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박재홍 전 선임행정관이 쓴 《공직의 길-정상의 공직자로 안내하는 자기관리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수천 명의 공직후보자를 검증했다고 한다.

<… 회식자리에서 여직원 옆에 앉지 않는 것도 성희롱 논란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회식장소에서 발생한 사소한 일이 외부에 부풀려져 알려지는 일도 많이 있다. 가볍게 포옹만 했는데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난리더라’는 식이다. 술자리에서 성희롱은 고위공직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156~157쪽)

박재홍씨는 “술자리에서는 남녀평등이 아니라 남녀유별이 최고다. 술에는 장사가 없고 이성을 잃게 한다”며 “회식장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에 방지하는 길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충고했다.

단골술집은 소문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박씨는 “단골술집이 있으면 주인이나 종업원과 친하게 되고 서비스도 잘 나오며 본인이 술자리를 주도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며 “가끔은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봐주기 때문에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술자리에서 완벽할 수 없다. 술을 먹게 되면 간혹 실수를 하게 되고 필름이 끊겨 의도하지 않았던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 국회 인사청문회나 인사검증을 하는 과정에 술집 여주인이나 종업원과 관련된 부도덕한 내용의 제보나 소문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 내용도 아주 구체적이다. 그렇지만 사실 확인을 해 보면 대부분 증거가 명확하지 않아 무혐의 처리를 하지만 그래도 찜찜하다. 고위 공직자가 되고 싶으면 가능한 한 단골술집을 만들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159쪽)

기자와 만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고위공직자는 모름지기 ‘발가벗겨 무대 위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특히 공직자는 단골집이 없어야 한다. 단골집이 있을 때 뒤탈이 난다. 약속장소를 고를 때도 상대방이 정하도록 하는 것이 구설을 줄이는 길”이라고 했다.

“섹스는 필수코스였다”

지난 3월 29일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공직자들의 ‘2012년도 재산변동사항 신고내역’을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지난 2010년 5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검사 스폰서 정씨’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스폰서 정씨’는 지난 1984년부터 2009년까지 진주지청 검사와 부산지검·부산고검·창원지검 간부들에게 술접대와 성상납을 하면서 10억원의 비용(당시 시세로 환산한다면 100억원 추정)이 들었다고 주장했었다. 한 주간지에 공개된 그의 자필 진정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 갱생보호위원을 맡으면 검찰에서 전화가 온다. 휴가나 행사, 자기 손님이 찾아올 때, 회식하고 싶을 때 수시로 한잔하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온다. 그러면 내가 회식시키고 당연히 2차까지 책임졌다. 섹스는 필수코스였다. 7년 동안 만난 수많은 검사 중 성접대를 거절한 분은 연수원 16기로 안산지청장을 지내고 얼마 전 옷 벗은 문 모 검사 한 분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개인은 윤리적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비리를 저지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개인이 비리를 저지르려고 해도 조직이 윤리적이면 비리가 불가능하다.

반대로 개인이 아무리 깨끗해지려고 용을 써도 조직이 비리에 젖어 있으면 비리에 감염되기 마련이다. 특히 한국의 공직부패는 그 발생요인 측면에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조직문화가 윤리적일수록 공직비리가 줄어든다’는 명제를 감안하면, 검찰조직은 윤리적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권력기관의 내사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스폰서 정씨의 주장이 전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어요. 어느 법조인과 술을 먹고 있는데 동료인 다른 법조인이 합석을 했어요. 잠시 후에 이 인사가 여성 접대부에게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2차를 가자는 것이죠. 황당했어요. 자기들끼리라면 모를까, 저는 감시자인데 ….”

상사가 부패행위와 관련해 불법 부당한 지시를 내려도 아랫사람이 따를 수밖에 없는 조직이 대개 권력기관이다. 지난 3월 14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1국에 소속된 직원 9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2009년부터 1년4개월간 세무조사를 봐주는 대가로 모 업체로부터 3억1600만원을 받아 한 사람당 적게는 400만원에서 많게는 6700만원까지 나눠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부패한 조직문화의 전형적인 예다. 하나의 조직 안에 많은 공직자와 함께 불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란 합리화가 만든 사건이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 언론인 등 민간인 사찰 내용을 담은 문건.

남들이 하면 안 되지만 나는 가능하다?

《뉴스위크》 인터넷판 2010년 5월 25일자에 실린 ‘권력과 위선’ 기사.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현직 사정담당자들은 고위공직자들에게 성윤리 문제가 주요한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규제 위주의 행정에 익숙한 고위공직자들이 가진 우월감과 한국의 음주문화, 예컨대 여자를 더듬어야 술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위선도 한몫한다”고 했다. 한 사정 담당자의 말이다.

“과거 청와대 행정관 중에 ‘업자하고 술 먹으면 꼭 양주만 마신다’는 이가 있었어요. 소주는 아예 입에도 안 댄다는 겁니다. 검증과정에서 사실 확인을 거쳤는데 결국 윗선의 지시로 청와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얼마 후 업자들에게 성접대를 받는 것이 적발돼 결국 옷을 벗었습니다. 검증 과정에서 사고 칠 우려가 있는 이는 대부분 사고를 친다는 게 정설입니다.”

2010년 5월 미국의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지에 네덜란드 틸버그대(Tilburg Univ)·노스웨스턴대 켈로그(Kellogg) 경영대학원 연구진이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뉴스위크》 한국판 2010년 9월 1일자 ‘권력은 위선을 낳는다’ 기사 참조)

피험자 잡단에게 총리와 일반 하위직 공무원의 역할을 각각 준 뒤 ‘권력을 가졌거나 반대로 권력이 없다’고 느끼도록 유도했다.

연구진은 피험자들에게 ‘약속에 늦었다면 과속을 해도 되는지’, ‘여가 시간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세금 신고를 안 해도 되는지’, ‘도난 자전거를 습득한 사람은 이를 경찰에 신고를 않고 가져도 되는지’ 등의 윤리적 문제를 질문하고 답을 유도했다.

그 결과, 과속이나 세금 회피, 도난 자전거 미신고 등에서 가장 위선된 사고방식을 보인 사람은 ‘총리 역할’을 맡은 피험자들이었다.

이들은 놀랍게도 ‘자신이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건 상관없지만, 남들은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다른 이들의 비양심적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틸버그대·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은 ‘권력의 어떤 속성이 이런 위선적 사고방식을 조장하며, 권력자들은 무슨 이유로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행동을 남들이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라고 반문하며 4가지 원인을 추론했다.

<… ①권력자는 다른 사람의 행동방식에 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②권력자는 같은 규정을 자신에게는 그리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다.

권력자의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스스로 규정을 만들고 다른 이들이 그 규정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권한 또한 얻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재판관, 교사, 정치지도자 같은 사람이 자신의 권력 영역 내에서 얻게 되는 권한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규정은 모든 사람이 어길 경우(쓰레기 무단투기, 수업 중 잡담, 무단횡단, 탈세, 노숙행위), 거리를 어지럽히거나 혼란을 야기하고 심하게는 사회질서가 붕괴한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 보면 단 한 사람만 어길 경우 그 결과(쓰레기 한 조각, 잡담 한 번)는 그렇게 혼란스럽지 않다. 그럼, 권력자는 ‘규칙을 어기는 그 한 사람이 나라면 괜찮지 않은가’라고 정당화한다.

③권력은 특권의식을 수반한다.

권력자는 남이 지켜야 하는 규칙을 자신만은 한두 번쯤 어겨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④권력을 쥐었다고 느끼게 되면 주변의 질책을 덜 두려워하게 된다. …>

이 기사를 쓴 새론 베글리(Sharon Begley) 기자는 “사람들은 남들이 하면 안 되는 행동을 자신이 했을 때 그 핑계를 대려고 논리적 이성을 사용한다”며 “도덕적 판단과 달리 위선은 감정보다 고차원적인 인지작용의 결과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위선은 논리적 사고를 통해 탄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위선을 합리적인 결정인 양 사고를 왜곡시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윤창중 성추행 사건은 고위공직자의 왜곡된 성윤리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다. 실제로 권력자들은 일반인보다 훨씬 탈선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지닌 권력이 위선적 행동을 조장하고, 위선적 사고가 이를 합리화시킨다. “남들은 하면 안 되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은 연 1회, 1시간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아야 한다. 시간상 대면교육보다 사이버교육 등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년 말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법률’의 개정으로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교육은 모든 공공기관의 의무가 됐다. 문제는 일반공무원이 아닌 고위공직자와 ‘육모방망이’를 든 권력기관의 공직자들이다. 이들의 위선과 왜곡된 조직윤리가 형식적 예방교육으로 사라질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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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사건으로 본 고위공직자의 性윤리

“고위공직자의 우월의식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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