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포커스] 민주당의 과제와 진로 : 월간조선

민주당이 대선(大選) 패배의 충격과 좌절에서 벗어나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려야 질 수 없었다”던 대선을 진 데 대한 사죄와 참회의 뜻으로 전국을 돌며 회초리 민생투어를 실시했고, 비상대책위도 구성했다. 최근에는 워크숍을 통해 7개 항으로 된 <민주당의 신조>를 채택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국회의원 세비(歲費) 30% 삭감, 국회의원 겸직금지, 의원연금의 조건 없는 폐지, 계파 청산, 민주적 리더십 강화, 당직은 당원에게 공직은 국민에게, 뇌물수수·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인사에 대한 공천제한 등 기득권 내려놓기 정치쇄신안들이 포함되었다.

최근에는 북핵(北核)위협에 초당적(超黨的)으로 대처하기 위해 문희상(文喜相) 비대위원장이 박근혜(朴槿惠) 당선인,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긴급 3자 회동을 갖기도 했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맞서 야당 대표가 대통령 또는 대통령 당선인, 여당 대표와 한목소리로 대북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종북(從北)논란과 서해 북방한계선(NNL)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안보불안 정당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를 불식시키는 기회를 잡았다는 점에서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이런 일련의 행보는 박기춘(朴起春) 원내대표의 말처럼 “처절하게 성찰하고 뼛속까지 바꿔 더 나은 비전과 대안(代案)으로 경쟁하는 강하면서도 유연한 야당”이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이 박근혜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대선 패배의 무기력을 씻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강력한 수권(受權)정당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민주당의 가장 큰 한계인 지역성을 탈피, 명실상부한 국민정당, 전국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大選 패배 야당의 공통점

현 시점에서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당내에 박근혜 새 대통령과 경쟁할 수 있는 정치적 경륜과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대선에 패배했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4·11 총선과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친노(親盧) 주류(主流) 세력이 여전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친노와 비노 간 계파 갈등으로 내홍(內訌)이 깊어지고 있다. 더구나 당 밖에는 민주당이 대적하기 힘든 안철수(安哲秀) 전(前) 서울대교수가 버티고 있다. 여차하면 민주당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대안정당으로서의 신당(新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살려면 냉정하게 정치 현실을 직시하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패배한 야당들이 겪었던 수난과 실패의 역사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 표 <역대정부 집권초기 여야정당들의 행보에 대한 비교·고찰>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집권 초기 야당이 처한 정국상황, 여야 정당 행보, 새 정부 평가 등을 비교·고찰한 것이다. 몇 가지 의미 있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여대야소(與大野小) 또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국상황에 상관없이 야당은 대선 패배 후 지도체제 공백과 함께 당권파(黨權派)와 비당권파가 계파 싸움에만 빠져 당 쇄신엔 손도 대지 못했다.

둘째, 새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에 의미 있는 반대를 이끌어 내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끌려가면서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졌다.

셋째, 수권능력을 보여주기보다는 생존 차원에서 정부 여당을 향해 강경투쟁 노선을 견지하면서 건전 야당, 견제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3金은 與小野大로 政局 주도

물론 예외적 상황은 있었다. 1노(盧) 3김(金)이 이끈 1987년 대선에서 신승(辛勝)한 후 출범한 노태우(盧泰愚) 정부는 집권 두 달 만에 13대 총선을 치렀다. 야권은 김대중(金大中) 총재의 평화민주당, 김영삼(金泳三)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공화당이 각기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상당한 의석을 확보, 최초의 여소야대 상황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야 3당은 경쟁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서 노태우 정권 초기부터 정국을 주도했다.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3김은 총선을 거치면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당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YS에게 밀린 李基澤 민주당

하지만 1993년 김영삼(YS) 정부 출범 이후에는 판이하게 달랐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김대중(DJ) 총재가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야당인 민주당은 리더십 공백상태에 빠졌다. 민주당은 1993년 3월 11일 전당대회에서 2차 결선투표까지 실시하는 접전 끝에 이기택(李基澤)씨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하지만 그는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존립해 왔던 당의 기본 틀을 탈바꿈시켜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당시 최고위원 경선결과도 이변이었다. 당초 당선 안정권으로 분석됐던 주류의 김정길, 김영배 후보가 탈락하고 개혁그룹 중 선두주자로 보였던 홍일점의 박영숙 후보도 탈락했다. 이는 주류의 편짜기가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지도부는 주류인 김원기 권노갑 노무현 한광옥 최고위원과 비주류의 유준상 조세형 신순범 이부영 최고위원 등 4대 4로 구성됐다.

따라서 이기택 대표체제는 매우 취약하고 과도적 성격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더구나 이기택 대표는 한때 자신이 보스로 모셨던 김영삼 대통령과 맞서기에는 지나치게 취약했다. 결과적으로 YS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 만에 실시된 4·23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하나회 척결, 공직자 재산 공개 등 문민 개혁 드라이브를 건 김영삼 대통령은 “보선(補選)에서 나타난 민의는 변화와 개혁이라는 이 시대의 움직일 수 없는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를 지지하고 선택해 준 것”이라며 “쉬지 않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꾸준히 변화와 개혁을 실천해 갈 것”이라고 선거 승리를 자축했다. 여하튼 민주당은 YS가 주도하는 ‘개혁’에 대한 적절한 견제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맥없이 휩쓸려 갔다.

1997년 대선에서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김대중 정부 집권 초기 야당인 한나라당이 처한 상황도 비슷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 출범 두 달 후에 4·10 전당대회에서 조순(趙淳) 총재를 재추대했다. 하지만 당권파(조순 총재-이한동 부총재-서청원 사무총장)와 비당권파(이회창 명예총재, 김윤환 부총재-하순봉 원내대표) 간에 주도권 싸움이 치열했다. 한나라당은 영남권 네 곳에서 치러진 1998년 4·2 재·보선에서 완승(完勝)함으로써 거야(巨野)의 위상을 확보했지만 조순 대표의 리더십은 여전히 취약했다.

당시 여당의 야당의원 빼내가기, 국민회의·자민련 공동 여당의 6·4 지방선거 연합공천에 대한 반발, 종금사 인·허가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정치권 수사 시비, 선거법 개정을 위한 여야 협상의 결렬 등으로 국회가 마비되어 정국이 경색되었다.

더구나 여야가 힘을 합쳐 국제통화기금(IMF) 시대의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할 때 조순 총재는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 과반수의 세(勢)로 새 정부 흔들기에 나섰다. 1998년 3월 2일에는 DJ 정부 첫 국무총리 인준투표를 실력으로 무산시키고, 3월 10일엔 ‘총리서리(署理)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 및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심지어 ‘야당파괴저지 비상대책위’를 설치하고 소속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서리를 대선 연대(連帶)에 따른 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4월 17일에는 당을 비상체제로 전환해 대여(對與) 전면전을 선언했다.

한나라당, 盧武鉉 정권 때도 잘못 되풀이

한나라당으로서는 여당의 의원 빼내가기와 불순한 정계개편 의도 등 외환(外患)으로부터 복잡한 내부를 보호해 보자는 생존전략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DJ 정권 출범 초기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이 힘에만 의존하는 대여 강경노선을 편 것은 당내에서도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다.

그 여파로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을 갖고 있으면서도 15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여당에 패배했다. 3차 투표까지 갔지만 최소 10여 명의 이탈표가 생기면서 한나라당 오세응 의원(139표)이 여당인 자민련의 박준규 의원(149표)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국회의장 경선에서 패배한 뒤 조순 총재를 비롯한 총재단과 당 3역 등 지도부가 전원 사퇴했다. 의장 선거 패배는 당권경쟁을 본격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당 지도체제 붕괴와 함께 167일을 끌었던 김종필 국무총리 임명동의안도 최소 25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져 통과됐다.

정권교체에 실패한 한나라당이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보여 주었던 행태는 5년 전과 비슷했다. 당의 ‘희망’이었던 이회창 총재가 정계 은퇴한 후 한나라당은 침체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강력한 리더십이 빠져나가면서 한나라당은 뒤를 이을 적임자를 찾지 못했고, 대안으로 박희태 대행체제를 출범시켰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첫 선거인 4·24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양천을(오경훈)과 경기도 의정부(홍문종), 개혁당은 경기 고양 덕양갑(유시민)에서 승리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채 전패(全敗)했다.

여기에 힘입어 한나라당은 초강경 대여 투쟁을 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정보위의 ‘부적절’ 판정에도 불구하고, ‘친북(親北)성향 인사’로 명명한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 후보자를 임명키로 하자, 한나라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하순봉 최고위원은 “친북적 편향인사 강행은 이 나라 정체성과 대한민국 존립을 위협한다”고 했다.

이런 이념논쟁과 반(反)노무현 강경노선은 결국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역풍(逆風)이 불면서 한나라당은 그해 4월 총선에서 참패했다.

孫鶴圭의 ‘주홍글씨’

2008년 6월 1일 손학규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서울 명동 입구에서 미국 소고기수입 재협상과 장관 고시철회를 요구하는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10년 만에 정권을 빼앗긴 야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 보여준 행태는 과거 야당들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리더십 공백만이 아니라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며 질질 끌려다니는 허약성을 보였다.

대통합민주신당은 2008년 1월 중앙위원회를 열어 손학규(孫鶴圭) 대표를 선출했지만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친노 핵심인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는 손 대표 선출 직후 탈당(脫黨)을 선언했다. 그는 탈당 성명에서 “손 대표가 이끄는 신당은 자신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어떠한 정체성(正體性)도 없이 좌표를 잃은 정당으로 변질되게 됐다”고 밝혔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제 대통합민주신당은 한나라당 2중대, 짝퉁 한나라당이 됐다. 한나라당에서 3등 한 인사를 당의 얼굴로 내세운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민주세력 50년 역사에서 이런 치욕스러운 역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국민의 목소리는 반성과 쇄신과 변화”라며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을 보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손 대표는 정통 야당을 이끌어 가기에는 정통성이 부족했다. 손 대표는 2008년 2월에 민주당과 당대당(黨對黨) 통합을 성시시켜 통합민주당을 출범시켰지만 4월 총선에서 참패했다. 통합민주당이 얻은 의석수(81석)는 여당을 독자적으로 견제할 개헌 저지선(100석)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선 패배 후 지리멸렬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연거푸 고배(苦杯)를 들었다.

참패한 통합민주당이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높이고 생존을 위해 채택한 전략은 시민단체와의 연대였다. 이런 연대가 전면적 대여 투쟁을 위해 극대화한 것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였다.

이후 민주당은 중요한 정치현안에 대해 원내(院內)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는 걸핏하면 국회를 박차고 나가 시민단체와 함께 ‘거리의 정치’에 함몰되었다. 공당(公黨)으로서의 존재감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당은 2012년 4·11 총선 패배에 이어 대선에서도 연패했다.

민주당의 끝없는 추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호남 고립 정당’으로의 전락이다. 작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1032만6275표: 40.3%)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1201만4277표: 48.9%)가 얻은 득표수보다 훨씬 많은 1469만표(48.0%)를 얻었다.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서울과 호남에서만 승리했다. 이것은 20년 전인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했을 때와 똑같았다.

민주당, 자체 動力을 상실

첫째, 민주당엔 한탕주의만 있었지 자체 동력(動力)이 없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는 진보통합당과의 야권연대,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만 올인(all in)하면서 다른 정치세력에 질질 끌려 다녔다. 야권이 정권을 교체하려면 야권 후보가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바람의 주체가 아니라 안철수가 일으킨 바람에 편승해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자체 동력이 약했다.

둘째, 시민단체의 눈치 보기만 있었지 공당으로서의 존재감이 없었다. 민주당은 이명박(MB) 정부에 대한 전면투쟁이라는 명분하에 스스로 공당임을 포기하고 걸핏하면 거리의 정치에 함몰된 채 시민단체에 끌려 다녔다. 무슨 일만 있으면 공지영·조국·이외수에게 달려가는 ‘콩국수 정치’에 함몰되었다.

셋째,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구호만 있었지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개방형 통상정책을 지향하면서 다수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시동을 걸었다. 두 정부를 계승한다는 사람들이 반세계화를 외치며 한미 FTA 전면 재검토를 운운하는 모순적 행동을 거침없이 보였다. 또한 당의 주류세력으로 재등장한 친노 세력은 ‘특권(特權)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과는 달리 자신들의 특권은 철저하게 챙기면서 비노와 반노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는 ‘친노 패권주의’에 매몰되었다.

넷째, ‘반대를 위한 반대’만 있었지 국민들이 공감하는 정책 대안은 없었다.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강도 높은 대여 투쟁을 벌였지만 비판만 있었지 진정 국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책 사안에 대한 대안 제시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정당에서 대표되지 않았고 제기되지 않았던 이슈를 안철수 전 후보가 선점(先占)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진보 진영은 ‘운동’의 방식과 논리, 언어로 민주주의를 이해했기 때문에 정당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실현 가능한 이념과 정책 프로그램을 가지고 통치하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념·陣營논리에 묶여

다섯째, 오만과 착각, 어설픈 통합만 있었지 철저한 자기 성찰과 진정한 혁신이 없었다. 민주당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통합에는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계파 담합주의와 친노 패권주의에 매몰되어 국민들이 요구하는 혁신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새누리당이 살겠다고 당명과 당 색깔을 바꾸고, 진보 세력이 주도했던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강화·확대하겠다고 몸부림칠 때 민주당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

2012년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민주당은 대선을 “지려야 질 수가 없는 선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 “민주당이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함, “정권교체 욕구가 크기 때문에 야권 단일화만 이뤄지면 무조건 이긴다”는 착각,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새누리당 후보가 되면 ‘민주 대 반민주’, ‘과거 대 미래’ 구도가 만들어져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는 ‘허황된 한방주의’에 매몰되어 시대정신과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여섯째, 이념에 묶인 진영(陣營)의 논리만 있었지 정작 민생은 없었다. 민주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부터 당대표 경선, 대선 경선을 거치면서 줄기차게 이념에 묶인 진영논리와 계파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을 받아 왔다. 진영논리로 인한 치명적 실패 사례는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지도부가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미디어법에 기초한 것”이라며 소속 의원들의 종편(綜編) 출연을 금지했다. 대선을 치르는 정당이 공중전을 포기하겠다는 발상이었다.

민주당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혁신과 통합’ 세력과의 통합과 통합진보당과의 연대 과정에서 ‘좌클릭 행보’를 펼치면서 스스로 중도층에서 멀어지는 길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최장집 교수의 지적대로 민주당은 ‘신념화된 진보’만 있었지 민생에 최우선을 두는 ‘실용적 진보’의 길을 걷지 못했다.

일곱째, 올드(짝퉁)만 있었지 뉴(명품)는 없었다. 2012년 총선패배 이후 ‘박지원(원내대표)-이해찬(당 대표)-문재인(대선 후보)’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삼각동맹’을 만들었고 국민에게 전혀 새로움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총선패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대선을 진두지휘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특히, 문재인 후보는 ‘의미있는 정치적 경력이 없는 후보’였고, ‘노무현 짝퉁’으로 인식되었다. 문재인 후보의 대선승리는 ‘노무현 정부 2기 출범’으로 인식될 만큼 새로움이 없었고,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할 수 있는 ‘문재인 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창조적 제3의 길’ 모색해야

작년 말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민주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한마디로 지리멸렬함 자체다. 선거 패배에 대한 냉철한 평가나 성찰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나 세력도, 낡은 체제를 걷어내고 전면적 쇄신을 하려는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책임보다는 자기합리화, 쇄신보다는 기득권 안주, 당 진로의 창조적 모색보다는 구태의연한 계파갈등에 빠져 있다. 무엇보다 지지자들을 깊은 좌절과 절망 속에 몰아넣고도 진정으로 미안해하는 모습마저 보이지 않는다>고 민주당을 향해 폐부를 찌르는 글을 실었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2월 4~7일)에 따르면, 민주당의 지지도는 23%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얻은 득표(48%)의 반 토막 수준이다. 이런 조사 결과는 민주당이 아직까지 국민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사는 길은 명확하다. 민주당이 죽어야 민주당이 산다. 구체적으로, 국민들로부터 불신받고 대선에서 패배한 요인들을 불식시키는 것이다. 그림 <정당 지지에 영향을 주는 요인 분석>은 정당 지지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분석해 민주당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 준다.

첫째, 내부를 조속히 정비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민주당이 다양한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지리멸렬한 것처럼 비치는 것은 바로 당의 존재이유와 나아갈 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구성원들에게 공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혁신과 통합’ 세력과의 통합과 통합진보당과의 연대 과정에서 ‘좌클릭 행보’를 펼치면서 스스로 중도층에서 멀어지는 길을 걸었다. 원래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임을 자처했는데 최근 개정된 강령에서 ‘중도 개혁’이라는 용어가 삭제되었다.

이제 민주당은 ‘창조적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당의 노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1982년 영국 노동당이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주도하는 집권 보수당을 이기기 위해 추진했던 ‘블레어 혁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중도층 외연 확대를 위한 ‘민생 진보’의 길을 찾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과 단절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親盧, 白衣從軍해야

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오른쪽)은 지난 2월 7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가운데),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만나 북핵문제와 정치개혁에 대해 논의했다.

둘째, 신뢰성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발목 잡는 야당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박근혜 새 정부와 ‘긴장적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고 야당다운 야당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협력할 때는 통 크게 하고 비판할 때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매섭게 하라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민주당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정당’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셋째,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시민단체와의 차별화를 통한 공당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거리의 정치’ 종식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대선 때 약속했던 공약의 입법화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임시 전당대회(3월말~4월초)에서 대선 패배 책임이 있는 친노 인사들은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선언하고 출마해서는 안 된다. 이것만이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는 유일한 길이다. 당의 책임정치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신임 당대표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주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고민해 볼 만하다.

넷째, 새로운 대안·수권정당의 능력을 제고(提高)해야 한다. 과거 야당과 같이 당 내부결속을 위해 새 정부 집권 초기 강경 대여투쟁에 몰입해 파멸을 가져오는 나쁜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을 전면 개편해서 정책연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다섯째, 당의 미래성을 강화해야 한다. 차세대 지도자 부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를 과감히 도입해서 국민의 관심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차세대 정치지도자가 자연스럽게 부상되도록 해야 한다. 외부 인사에게 문호를 적극 개방해 지도자 인력 풀을 강화시킬 필요도 있다.

강한 야당이 필요하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야당이 강하고 건강해야 정부 여당도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이 제1야당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공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뼛속까지 바꾸고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민주당은 이제 당을 원점에서부터 해체해 총체적인 변화와 재건을 이끌어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허황된 이념논쟁에 빠지지 말고 민생을 책임지는 정치에 앞장서야 한다.

만약 민주당이 임시전당대회를 무리 없이 잘 치르고, 박근혜 정부가 초반부터 흔들리면 시간이 흐르면서 당의 지지가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민주당의 무난한 행보는 무난한 죽음만을 가져다줄 것이다.

민주당이 이런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민주당의 미래는 결코 없다. 오히려 민주당은 향후 불어닥칠 정당 재편성 과정에서 몰락할 수도 있다. 안철수 전 후보가 추진할지도 모르는 신당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흡수·통합되어 민주당 간판을 내릴 수도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내일 살기 위해 오늘 죽을 수도 있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발전적 해체를 포함한 새로운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국민들이 민주당에 마지막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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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과제와 진로

“지금은 국민이 민주당에 준 변화의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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