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박근혜 정부의 原電정책 어디로 : 월간조선

지난해 한국 원자력 산업계는 각종 품질서류 위조사건, 납품비리, 잦은 고장정지 등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뉴스로 홍역을 앓았다. 그에 따라 원전에 대한 국민 불안과 불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진행형이지만, 올 2월 출범할 박근혜(朴槿惠) 정부의 원전정책은 큰 틀에서 현 이명박(MB) 정부의 기조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올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발주도 예정대로 진행되고, 에너지믹스(전체 전력생산에서 화석연료, 원자력 등 비재생가능 에너지와 재생가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장기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대선과정과 공약에서 나타난 박근혜 정부의 원전정책은 ‘제한적 유지’ 쪽에 가깝다. 박근혜 당선자는 지난해 12월 16일 마지막 TV토론에서 “우리나라 전력에서 원전이 3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데 지금 어떤 대책도 없이 폐기해야 한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며 “무조건 중지하는 것보다 테스트를 거쳐 투명하게 하고 안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중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문재인(文在寅)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은 원전을 위험시설로 규정했지만, 박 후보와 여권은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이용을 내걸었다. 다시 말하면 원전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되, 전력수급의 문제로 정전(停電)의 위험성이 커진 상황에서 원전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뜻이다.

MB 정부와 다른 점

박근혜 당선자는 대선후보 공약집에서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이용’을 약속함과 동시에 원전확대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원전관리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돼 원전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국민여론을 수렴, 향후 20년간의 에너지믹스를 원점에서 재설정하고, 추가로 계획한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태도는 ‘노후원전 폐쇄-신규원전 건설금지’를 주장했던 야당과는 확연히 대비됐으나, ‘원전 르네상스’ 기조 아래 원전우선정책을 폈던 MB정부와는 약간의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MB정부는 국가 에너지믹스를 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정하고 해당 발전원 비중을 늘리는 것으로 정책을 펼쳐 왔다. 오랜 진통 끝에 지난해 8월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을 신규 원전부지로 확정한 것도 이런 정책 연장선상에 있다.

박 당선자의 환경·에너지 정책 밑그림을 짠 윤성규(尹成奎) 당시 환경정책담당특보(現 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 전문위원)는 “향후 20년간 전원 구성을 원점에서 재설정하고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하에 재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장순흥(張舜興) 카이스트 교수가 대통령직 인수위 교육과학분과 인수위원으로 등장한 것에 대해 박 당선자가 ‘원전 확대’로 입장을 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서울대 핵공학과(현 원자핵공학과) 출신인 장 교수는 원자력안전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 소속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원전 찬성론자’다.

이 때문에 원전 반대론자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인 강창순(姜昌淳) 서울대 명예교수가 핵마피아의 거두(巨頭)라면 장순흥 교수는 현재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 교수는 언론 인터뷰나 여러 토론회에서 원전 찬성론을 꾸준히 말해 왔다. 지난해 8월 24일 언론 인터뷰에선 “한국의 전기요금이 선진국에 비해 저렴한 것은 원전이 잘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원전을 많이 지어 전력 돌리는 데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새 정부 원전정책 때문에 전력수급계획 발표 늦어져

대대적인 전력낭비 단속이 실시된 지난 1월 7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중구청 직원들이 문을 열어 놓고 온풍기를 틀어 놓은 매장을 단속하고 있다.

정부는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5차 기본계획과는 달리 원전 의존도는 낮추되 신규원전 건설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90%대 원전가동률을 80%대로 낮추고 신재생에너지와 석탄, 액화천연가스(LNG)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즉 전력공급을 늘리기 위해 현실적으로 원전유지 기조를 가져가면서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부품 납품비리 등에 대한 개선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딜레마는 정부의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3 ~2027년)’ 발표를 더욱 늦어지게 만들고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년마다 향후 15년간의 전력수급계획을 설계하는 기본 자료로 ‘대한민국호(號)’의 동력원을 결정하는 중장기 설계도다.

당장 올해 전력수급계획이 포함되는 만큼 이미 대선전에 결정됐어야 마땅하지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발전원별(發電源別) 계획을 세우려면 기저발전인 원자력의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가 우선적으로 확정되어야 하는데, 대선의 향방이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는 시점에서 원자력의 비중을 설정하기는 막막했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전력수요를 상향 조정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신규원전 확대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지난 연말까지 확정하기로 했던 전력수급기본계획을 1월 말까지는 확정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다”며 “인수위에 보고하고 박 당선자가 재가하면 최종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6차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당장 발전업계는 올해 사업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발전소 건립 부지로 거론되는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영덕 등은 지역사회가 분열하는 어려움에 당면해 있다.

지경부는 이번 6차 계획에서 전력예비율은 높이되, 전력설비를 늘리기보다는 수요를 관리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방침으로 알려졌다. 2024년 기준 최대 피크 때의 전력 수요와 공급(수요관리 후 최대전력치) 목표를 종전 5차 계획의 9503만kW에서 1억500만kW로, 전력설비예비율을 20%에서 25%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산업용 전기 사용이 증가하고 저렴한 전기요금에 따른 전환 수요가 확대되며 온난화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이 고려됐다.

지경부, ‘원전 폐기’보다 ‘관리 안전성’ 높이는 쪽

이러한 가운데 원전정책을 관장하는 주무부처인 지경부는 지난 1월 12일 전력공급 및 에너지산업 효율화 방안 등을 인수위에 보고했다. 지경부는 보고에서 전력의 안정적 수급방안과 원자력발전의 안전성 강화방안도 보고했다. 지경부는 앞으로 20년간 전력공급원 구성을 원점에서 재점검한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을 중심으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자료에는 전력수요 증가율이 5차 계획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오르고 있는 점 등을 바탕으로 원전을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새 정부 에너지정책에서 원전 폐기보다 관리 안전성을 높이는 방안이 개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폐기와 계속운전의 갈림길에 있는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폐기 여부를 유럽연합(EU) 방식의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를 거쳐 결정하는 등 원전정책 전반에 대한 방침도 전달했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원전이 극한상황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지 살펴보는 총체적 내구성 검사로,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과 유럽의 원전들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은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리1호기의 경우 2007년 6월 설계수명이 끝났으나 2008년 1월 정부가 10년 동안 재가동을 승인해 현재 운영 중이고, 월성1호기 역시 작년 11월 말로 30년 설계수명을 다해 가동이 중지된 상태에서 계속운전 여부에 대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두 원전은 모두 이미 재가동 판단을 위한 별도의 검사를 마쳤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개월여 동안 전국 21개 원전을 대상으로 진행된 일제 안전점검도 받았다. 그럼에도 원자력안전위가 다시 스트레스 테스트를 추진하는 것은 “잇단 크고 작은 원전사고 등으로 국민불안이 커져 다시 한 번 조사가 필요하다”는 인수위 측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韓水原 “국민불안 해소와 신뢰 회복에 최선”

지난해 10월 8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국정감사에서 김균섭 한수원 사장(왼쪽)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정부는 투명한 원전시스템 정착을 위해 고강도 경영혁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경부는 그간 각종 품질서류 위조사건, 납품비리, 잦은 고장정지 등의 근본적 재발방지 대책으로 원전산업 종합 혁신방안을 지난 1월 9일 발표했다.

이번 혁신방안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지속적으로 쇄신하고, 원전의 투명성을 강화하며, 원전의 전반적 품질관리와 정비·운영을 대폭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대책의 주요 내용은 ▲한수원의 인적·조직적 쇄신 및 안전문화 확산 ▲원전 품질관리 시스템 강화 ▲안전 최우선의 원전 정비·운영 ▲주민참여 및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 등 4개 분야다.

한수원의 인적쇄신 및 조직혁신과 안전문화 확산을 통해 원전산업의 근본적 체질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인적 쇄신을 위해 원전 본부장과 처장급 간부에 대한 공개모집을 전격적으로 실시한다.

아울러 원전의 전반적인 품질관리 기능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한수원 조직의 기능조정 및 개편을 요구하고, 품질서류 위조사건 등의 재발방지를 위해 원전 품질관리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비위사건은 ▲발전소 구매(5억원미만)의 소액부품 구매 ▲원제작사→대리점(1~2개)→한수원으로 다단계 납품 ▲수의계약 구매에서 주로 발생함에 따라 현행 발전소별 구매 기능을 원칙적으로 폐지해 모든 구매 관련 업무를 본사 내 전담조직에서 종합적으로 관리하도록 할 예정이다.

향후 품질서류는 원칙적으로 한수원이 국내외 시험·인증기관으로부터 직접 받고, 예외적으로 납품사가 제출한 서류는 전수 위조 확인하도록 해 품질서류 위조를 원천적으로 근절할 계획이다. 또 현재 해외기관에 의존하는 일반규격품 품질검증(Dedi cation)을 국내 시험·인증기관으로 확대함으로써 품질서류 위조 여부에 대해 철저히 관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수원도 기자재 관리상 총체적 부실이 확인됨에 따라 중장기 기자재 수급계획을 수립·운영함으로써 긴급 구매제도와 같은 인적 개입요소를 최소화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자재 구매를 표준화하는 ‘이력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김균섭(金均燮) 한수원 사장은 “최근 원전과 관련해 국민들의 불안과 불신이 높아진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번 대책발표에 따른 한수원의 뼈를 깎는 이행 노력을 통해 국민들이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월성1호기가 박근혜 정부 원전정책의 바로미터

새 정부의 원전정책과 관련, 월성1호기가 주목을 받게 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20일로 수명을 다한 월성1호기를 두고, 지역주민과 일부 시민단체 등이 재사용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반해 월성원전 측은 “원자력안전위의 결정을 따르겠다”면서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재사용을 준비해 왔으며, 어느 나라 원전보다도 안전한 시설과 보완책을 마련했다”고 재사용 의지를 확실히 하고 있다. 이청구 본부장은 당시 엔지니어로서 월성1호기의 안전에 책임을 진다고까지 했다.

이러한 가운데 월성원전과 가까운 울산시의회가 지난해 12월 21일 열린 4차 본회의에서 월성1호기 재사용 및 연장 반대를 위한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요청하는 등 파장이 일고 있다. 이날 민주노동당 김진영(金鎭泳) 의원은 “11월 수명이 다한 월성원전 1호기의 10년 연장 기도를 막고, 울산이 핵발전소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전에 울산시의회는 김 의원 등이 제출한 연장반대 결의안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심의를 보류시킨 바 있다.

월성1호기에 대한 해법은 박근혜 정부가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월성1호기의 계속운전 여부는 새 정부의 전체적인 원전정책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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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原電정책 어디로

‘원전 르네상스’에서 ‘원전 안전 우선주의’로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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