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노 대선 패배 책임론’ 제기, 다시 廢族의 길 걸을 듯
⊙ 야권發 정계개편 가능성, 反盧·非盧 갈라설 가능성
⊙ 안철수,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 출마 예상 많아… 정치적 미래는 미지수
⊙ 야권發 정계개편 가능성, 反盧·非盧 갈라설 가능성
⊙ 안철수,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 출마 예상 많아… 정치적 미래는 미지수
-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함에 따라 친노는 다시 폐족의 길을 걸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표적 친노 인사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모 전시회에 참석한 모습.
문재인(文在寅) 민주통합당 후보가 박근혜(朴槿惠)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문 후보는 안철수(安哲秀) 전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의 지원유세, 이정희(李正姬) 전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의 후보 사퇴를 발판으로 무서운 추격전을 벌였지만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최대 결집을 이룬 보수우파의 지지를 받은 박 후보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막판 역전은 없다’는 대선 징크스를 문 후보도 깨지 못했다. 역대 대선을 보면 공식 선거일 직전 여론조사의 판세대로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됐다.
문 후보가 패배함에 따라 야권의 정치지형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선 후 정치권의 지각 변동은 과거 사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이회창(李會昌)계가 몰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 후보 공보팀 관계자는 선거 결과 발표 직후 “더는 친노 그룹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과연 대선 후 야권(野圈)에는 어떤 후폭풍이 불어 닥칠까. 《월간조선》은 대선 직후 전직 정치인과 정치·여론 전문가들의 예측을 들어봤다.
노 前 대통령 자살로 부활한 親盧
2007년 17대 대선 직후 친노(親盧·친 노무현계)의 위상은 핵심 중의 핵심인 안희정(安熙正) 충남지사가 ‘폐족(廢族)’이라고 자인(自認)할 만큼 떨어져 있었다. 역대 최대 표차 대선 참패에 이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지, 집사와 측근, 후원자 등이 거액의 금품수수와 청탁에 연루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5월 친노는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自殺)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친노는 ‘노무현’의 자살에 대한 동정적 여론과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를 자양분 삼아 정치권의 신 세력인 양 급격히 세력을 얻어갔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이광재(李光宰) 전 강원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金斗官) 경남지사 등 30여 명의 단체장을 배출하고 지방의원도 다수 당선시키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친노는 이를 발판 삼아 민주당과 재결합, 민주통합당을 탄생시켰다. 2011년의 일이었다. 주역은 친노 핵심인 한명숙(韓明淑)·이해찬(李海瓚) 전 대표와 문재인(文在寅) 후보였다.
당의 중심에 선 친노는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대했다. 2012년 1·15 전당대회에 친노인 한명숙·문성근(文盛瑾) 후보가 대표와 최고위원(2위)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것을 시작으로, 이해찬(대표)-문재인(대선 후보) 조합으로 대선을 치렀다. 이 전 대표는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안 전 후보 측의 압박에 밀려 사퇴하긴 했지만 안 후보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자마자 적극적으로 유세 현장을 누볐다.
하지만 끝내 친노는 정권 탈환에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 단추만 잘 끼우면 ‘어게인(again) 2002’가 재현될 수 있었지만, 마지막 승부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김형준(金亨俊) 명지대 교수는 “참여정부 실패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아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유권자들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인사도 “분명하고 일관되게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다르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던졌어야 했는데 메시지가 오락가락한 면이 있다”고 수긍했다. 문 후보가 한편으로는 양극화 확대와 부동산 정책 실패 등 노무현 정부의 잘못을 시인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친노가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을 내놓으면서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됐다는 이야기다. 결국 대선 패배의 책임은 패권주의적 성향을 보인 친노에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 더는 친노에 기회를 주지 않을 것”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친노의 미래에 대해 김영삼 정부 때 남다른 정치력을 발휘했던 이원종(李源宗)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걸러질 것”이라고 했다. 다시 폐족의 길을 걸을 것이란 이야기다. 이 전 수석의 말이다.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화 기반을 닦지 않았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야권세력들은 ‘공(功)’은 보지 않고 ‘과(過)’만 봅니다. 문민정부 이야기할 때 IMF 사태만 부각시키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부도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하고요. 이게 10년 동안 정권 잡았던 사람들이 할 짓입니까. 덩샤오핑은 모택동에게 당한 것이 많았지만, 모택동에 대해 7공(功) 3과(過)로 정의 내렸습니다. 원망할 법도 한데 왜 그랬겠습니까. 국민통합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김영삼, 이명박 정부가 다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비판만 하니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만큼 이들(친노)은 국민으로 인해 해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더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선 기간 문 후보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주대환(周大煥)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주 대표는 “친노 세력이 헤게모니(Hegemony)를 지키기 위해 정치경험이 거의 없는 문재인 후보를 대선 후보로 만든 것이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친노는 실패했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이다.
—문 후보가 아닌 손학규(孫鶴圭), 정동영(鄭東泳) 상임고문 등 정치경험이 풍부한 인물이 후보가 됐다면 승리했을까요.
“그건 모르죠. 하지만 그분들은 능력이 검증된 사람들 아닙니까.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비교하면 정치경험이 너무 짧았습니다. 이런 점이 유권자들을 망설이게 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분을 후보로 만든 친노세력이 실패한 것이지요.”
—친노 때문에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합니까.
“자기들이 억지로 내세운 후보가 패배했으니, 책임 자체가 명백하지 않습니까. 헤게모니를 관철한 만큼 책임은 따르는 법입니다. 쉽게 말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죠.”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가 쉽게 물러나겠습니까.
“존재감 있는 야당이 되려면 친노가 빠져나가야 합니다. 친노라는 게 묘하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와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과 겹치는데 이들은 권력이나 정치에는 능하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한 비전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요. 이들이 뒤로 물러나야 야권도 진화가 가능합니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인 동교동계의 김경재(金景梓) 새누리당 대통합위원회 기획조정특보 또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친노 좌파는 국민 통합의 능력도 없고 권력의 독과점 때문에 반대파나 비주류를 거의 숙청한 집단”이라며 “친노는 사라져야 할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한광옥(韓光玉) 새누리당 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새누리당에 입당한 나보고 배신자라고 하는데 당을 패권적으로 이끈 (친노) 그룹이 저를 배신한 것”이라며 “친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기쁨은 같이 나눴는지 모르지만, 고통을 같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대선 후 야권發 정계개편 예상 많아
《월간조선》 취재에 응한 전문가 중 다수는 통합진보당 내에서 ‘친노’에 대한 반감이 크고,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전면에 부상한 만큼 야권발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전 후보와 손 고문을 비롯한 당내 반노·비노 세력이 손을 잡고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안철수 캠프의 국민소통자문단 조용경(趙庸耿) 전 단장의 견해다.
“대선을 앞두고 반노·비노 세력이 친노세력과 손을 잡았지만, 그것은 대선 승리를 위한 임시방편 성격이 강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아직도 경선 때 생긴 갈등의 골은 메워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친노가 특권과 반칙을 일삼았다는 인식이 반노·비노 사이에는 내재해 있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2012년 9월 16일 문 후보가 대선 후보로 결정되기까지 민주통합당의 경선 과정은 불화와 갈등만 가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반노·비노 세력들이 친노와 함께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 전 단장은 “분당을 하면 했지 친노와는 같이 가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 전 안 전 후보와 손 고문이 비밀회동을 가진 것도 대선 이후 이뤄질 야권발 정계개편의 방향을 예상해 볼 수 있는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2년 11월 26일 안 전 후보와 손 고문은 배석자 없이 비공개로 만났다. 당시 언론의 대체적인 기류는 “손 고문과 안 전 후보는 각각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세력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이 반노 그룹을 매개로 손 고문은 민주당 안에서, 안 전 후보는 밖에서 정치쇄신을 위해 노력하자는 대화를 나눴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는 것이었다.
민주통합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두 사람이 비노 연대를 구상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두 사람 입장에서 다음을 노리려면 패배한 친노와는 같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정치평론가인 신율(申律) 교수도 “공감한다”며 “‘친노’와 ‘반노·비노’가 책임공방을 벌이다가 반노·비노 쪽이 ‘도저히 너희와는 같이 할 수 없다’며 당을 뛰쳐나올 것”이라고 했다.
—예상대로라면 민주통합당에는 친노만 남겠네요.
“과거 꼬마민주당처럼 되겠지요.”
—당을 뛰쳐나간 반노·비노들은 ‘안철수 깃발’ 아래로 모이는 겁니까.
“안 전 후보가 야권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신당 창당 시기는 언제쯤 될까요.
“아마 무더기 재보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는 2013년 4월 재보선 전에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시기상 ‘안철수 신당’이 선전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한화갑(韓和甲) 전 민주당 대표도 “친노는 청산 대상”이라며 야권의 정계개편 가능성을 제기했다. ‘리틀 DJ’로 불린 한 전 대표는 “민주통합당은 ‘친노 연합체’일 뿐, 기존 민주당의 정통성을 잇지 못하고 있다”며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친노는 겉으로는 국가의 장래, 화합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집단입니다. 2000년도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공천받고 국회의원이 됐지만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니, 김 전 대통령을 버리고 그곳으로 몰려간 사람들이 친노 아닙니까. 야당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청산돼야 할 존재이죠. 안철수와 같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사람을 수혈해야만 정치개혁을 실천하는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야권발 정계개편이 일어난다면 통합진보당은 어떻게 될까.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대선 후보 사퇴까지 한 터라 친노세력과 힘을 합치진 않을지 궁금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전문가는 이런 전망을 내놨다.
“이정희 후보가 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사퇴했지만, 국고보조금 27억원을 반납하지 않아 부동층 표심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친노와 통합진보당이 함께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지금 구성원 그대로 남아, 북한 체제를 찬양하면서 박근혜 정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친노는 消滅할까?
야권발 정계개편을 통해 친노 위상이 약화되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도 있었다. 친노 내부의 새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릴 것이란 이야기다. 정보기관의 국회 연락관들은 “너무 이른 이야기지만 벌써 당 안팎에서는 안희정 지사가 친노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중앙일간지 정치부 기자는 “소설 같지만 19대 대선은 ‘three 안’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three 안’은 안대희(安大熙)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안철수 전 후보, 안희정 지사를 말한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전문위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라며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의 60~70%가 친노인데 어떻게 단번에 몰락할 수 있겠느냐. 1월 열리는 전당대회부터 아마 바로 당권을 잡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했다.
친노가 몰락하지 않을 것이란 의견에는 이동욱(李東昱) 전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전문위원도 동의한다.
“선거 패배 직후인 지금은 빈사상태겠지요.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인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시대상황에 적합하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좋은 이미지가 지속할 수밖에 없지요. 김구 선생의 이미지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랑 같다고 보면 됩니다. 아마 구심점이 생기면 다시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그 구심점에 투영시킬 것입니다.”
—NLL 발언록이 공개돼도 노 전 대통령의 좋은 이미지가 이어질 수 있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 발언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포장해 써먹을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했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군요.
“살아 있는 사람의 이미지는 변해서 없어질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그렇지 않거든요. 시장 논리로 보자면 노무현이란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는 계속 지속할 것이란 이야기죠.”
이와 관련 친노의 핵심들은 ‘친노’가 이미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멸하고말고 할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유시민(柳時敏) 진보정의당 전 선대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문 후보 말고는 친노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이 아무도 없습니다. 민주당은 그냥 민주당입니다. 그런데 왜 존재하지도 않는 친노 패권주의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없는데 무슨 패권주의가 있나요. 요즘 언론에 친노라고 분류되어 보도되는 의원 명단을 보면 열린우리당 시절에 말도 못하게 노무현 대통령하고 각 세웠던 분들이 거기 다 들어 있습니다. 과거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진 적이 있다고 다 친노는 아닙니다.”
야권 내 친노 代案세력 없다는 주장도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金秉準) 국민대 교수도 “당에 친노가 얼마나 되는지 잘 세어보라”며 유사한 입장을 내놨다. 김 교수는 친노 ‘책임론’과 관련해서도 “왜 대선 패배의 책임을 친노만 져야 하는가. 모든 책임을 친노한테 덮어씌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은 반노·비노를 떠나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전면에서 선거 대책본부를 끌고 갔는데 왜 친노에만 책임을 묻나. 대세론의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선전했으면 매우 잘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좌파 논객인 김대호(金大鎬)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친노가 노 전 대통령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로 몰아붙이던 세력들의 대안과 진단을 처리한 것이 최대의 패착”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정말 안타깝게도 친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야권에 그만큼 대안세력이 없습니까.
“1997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제3의 길’을 주창하며 영국 보수당의 18년 집권을 종식한 토니 블레어 같은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없습니다. 그런 세력들이 나와야 민주통합당이 거듭날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지금 친노 핵심들을 보면 정무 파트에 있었던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쟁취할까’만 생각했지 국가비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유권자들의 가려운 곳을 못 긁어줬기 때문입니다. 정책 쪽이 너무 약했습니다.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공공 부문이 가진 특권 특혜 등 해결할 부분이 많았는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우상호(禹相虎)·이인영(李仁榮) 의원 등 당내 386을 대표하는 이들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대선기간에 실력 다 보여줬지 않습니까.”
—친노는 계속 당내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할 것으로 봅니까.
“그건 아니고, 아마 춘추전국시대 비슷해지지 않겠습니까.”
김 소장의 예상대로라면 민주통합당은 2013년 1월에 열릴 것으로 추정되는 전당대회부터 당권을 놓고 친노와 반노·비노의 극한 대립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2007년도 대선 패배 후 한 달 만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한 바 있다.
文의 운명은?
문재인 후보는 대선에 출마하면서도 지역구 의원직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2012년 11월 25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회의원직 사퇴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총선 출마 당시 유권자들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사퇴가 불가피하겠지만 단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만으로는 의원직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반노·비노 진영에서는 “대선에서 패하더라도 계파를 보존하기 위한 안전장치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과연 국회의원 문재인은 당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김병준 교수는 “(문재인 후보가) 큰 방향 정도만 제시하지, 내부싸움 깊숙이 휘말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내 PK(부산·경남)의 대주주로 조용한 행보를 이어나갈 것이란 이야기다. 신율 교수는 “정치인 문재인으로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 후보는 친노의 ‘구심점’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인 한계론’이다. 그는 “친노의 구심점은 이해찬”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대호 소장은 “친노는 문 후보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김 소장의 이야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문재인 후보를 불러낸 것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은 (패배를) 굉장히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면 일정 정도 지지율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또 ‘문재인 가지고 뭘 해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역대 대선 후보 중 재수(再修)하지 않은 후보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재수를 용납해 주는 풍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김 소장은 그럼에도 상황은 문 후보의 대선 재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문 후보의 선전에는 정치 신인이라는 점이 많이 작용했는데 그때 가면 새 정치 이미지가 퇴색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정치인 안철수’ 평가 엇갈려
18대 대선판을 뒤흔들었던 안 전 서울대 교수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기존 정치권의 쇄신을 원하는 ‘안철수 현상’의 해결사로 등장했던 안 전 교수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다양했다. 실망과 기대가 엇갈렸다.
한화갑 전 대표는 “안철수가 끝까지 완주했다면 패배했더라도 야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었는데, 그걸 못해서 동력이 끊겼다”고 했다. 김병준 교수도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의 기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 안 전 후보는 정권교체만을 향한 길을 선택했다”며 “안 전 후보가 다시 정치권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권형기(權熒基) 서울대 교수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국민은 사회의 답답함을 안 후보가 풀어주길 기대했는데 안 후보는 그에 대한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안 후보가 정치쇄신이라는 화두를 던지기는 했지만, 정치쇄신은 곧 의원 정족수 축소 등 정도이지, 구체적으로 정치쇄신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안 후보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한 전직 중견 언론인은 “안철수가 국민 기대치와 동떨어진 철부지에 불과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전했다.
“승부에서 도망칠망정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엘리트 의식과 결벽증, 이공계 학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전문성 함정과 군맹무상(群盲撫象)식 소견, 온실 속 화초로 자라온 엄친아 이미지가 뚜렷했습니다. 안철수는 본인이 언제까지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부터 깨야 할 겁니다.”
새 정권이 출범한 만큼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수면 아래 가라앉을 것이고 이는 안 전 후보에 대한 정치권의 수요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안 전 후보 캠프 내 국민소통자문단에서 활동했던 관계자의 이야기다.
“안철수 현상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아직 안 전 후보에게 동정심을 가진 그룹은 감정이입에 익숙한 대학생이나 일부 서민 정도일 것입니다. 안 전 후보가 진정으로 새 정치를 계속하고 싶다면 지금의 열 배쯤 되는 고난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론 안 전 후보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다는 전망도 존재했다. 이동욱 전문위원은 “안 전 후보는 주식을 통해 많은 이득을 얻은 분”이라면서 “민심을 잘 관찰하면서 타이밍을 절묘하게 찾아서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이밍 정치로 기존 지지율을 유지할 것이란 분석이다.
문 후보 캠프에서 공보 업무를 봐왔던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이번 대선의 승자는 누가 뭐래도 안철수”라며 “‘지원을 더 열심히 해야 했었다’는 질책이 나올 수 있겠지만 ‘안철수 때문에 졌다’는 말까지 듣지는 않을 것인 만큼 야권의 유력주자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는 재보선 통한 원내 진입 시도할 듯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정치인 안철수로 살겠다”고 선언한 안 전 후보가 2013년 4월 재보선에 출마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재보선 출마 가능성은 매우 크다”며 “안 전 후보가 이번에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헌 소장도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됐을 것”이라며 “재보선에는 출마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신율 교수는 구체적으로 새누리당의 텃밭인 강남, 혹은 부산 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조용경 단장도 재보선 출마에 대해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국회의원은 정치적으로 성과를 이루기 위한 일차적 징검다리”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안철수 전 후보 본인도 사실상 재보선 출마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2월 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 전 의원은 대선 후보 사퇴 선언 직전 참모들에게 “나는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대선이 끝이 아니라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도 있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가 2013년 4월 재보선을 통해 신당 등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문 후보가 패배함에 따라 야권의 정치지형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선 후 정치권의 지각 변동은 과거 사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이회창(李會昌)계가 몰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문 후보 공보팀 관계자는 선거 결과 발표 직후 “더는 친노 그룹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과연 대선 후 야권(野圈)에는 어떤 후폭풍이 불어 닥칠까. 《월간조선》은 대선 직후 전직 정치인과 정치·여론 전문가들의 예측을 들어봤다.
노 前 대통령 자살로 부활한 親盧
2007년 17대 대선 직후 친노(親盧·친 노무현계)의 위상은 핵심 중의 핵심인 안희정(安熙正) 충남지사가 ‘폐족(廢族)’이라고 자인(自認)할 만큼 떨어져 있었다. 역대 최대 표차 대선 참패에 이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지, 집사와 측근, 후원자 등이 거액의 금품수수와 청탁에 연루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5월 친노는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自殺)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친노는 ‘노무현’의 자살에 대한 동정적 여론과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를 자양분 삼아 정치권의 신 세력인 양 급격히 세력을 얻어갔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이광재(李光宰) 전 강원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金斗官) 경남지사 등 30여 명의 단체장을 배출하고 지방의원도 다수 당선시키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친노는 이를 발판 삼아 민주당과 재결합, 민주통합당을 탄생시켰다. 2011년의 일이었다. 주역은 친노 핵심인 한명숙(韓明淑)·이해찬(李海瓚) 전 대표와 문재인(文在寅) 후보였다.
당의 중심에 선 친노는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대했다. 2012년 1·15 전당대회에 친노인 한명숙·문성근(文盛瑾) 후보가 대표와 최고위원(2위)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것을 시작으로, 이해찬(대표)-문재인(대선 후보) 조합으로 대선을 치렀다. 이 전 대표는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안 전 후보 측의 압박에 밀려 사퇴하긴 했지만 안 후보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자마자 적극적으로 유세 현장을 누볐다.
하지만 끝내 친노는 정권 탈환에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 단추만 잘 끼우면 ‘어게인(again) 2002’가 재현될 수 있었지만, 마지막 승부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김형준(金亨俊) 명지대 교수는 “참여정부 실패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아 새 시대의 첫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유권자들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문 후보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인사도 “분명하고 일관되게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 다르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던졌어야 했는데 메시지가 오락가락한 면이 있다”고 수긍했다. 문 후보가 한편으로는 양극화 확대와 부동산 정책 실패 등 노무현 정부의 잘못을 시인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친노가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을 내놓으면서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됐다는 이야기다. 결국 대선 패배의 책임은 패권주의적 성향을 보인 친노에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 더는 친노에 기회를 주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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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종(李源宗) 전 청와대 정무수석. |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화 기반을 닦지 않았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야권세력들은 ‘공(功)’은 보지 않고 ‘과(過)’만 봅니다. 문민정부 이야기할 때 IMF 사태만 부각시키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부도 무조건 잘못했다고만 하고요. 이게 10년 동안 정권 잡았던 사람들이 할 짓입니까. 덩샤오핑은 모택동에게 당한 것이 많았지만, 모택동에 대해 7공(功) 3과(過)로 정의 내렸습니다. 원망할 법도 한데 왜 그랬겠습니까. 국민통합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김영삼, 이명박 정부가 다 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비판만 하니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만큼 이들(친노)은 국민으로 인해 해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더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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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환(周大煥)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문 후보가 아닌 손학규(孫鶴圭), 정동영(鄭東泳) 상임고문 등 정치경험이 풍부한 인물이 후보가 됐다면 승리했을까요.
“그건 모르죠. 하지만 그분들은 능력이 검증된 사람들 아닙니까. 문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비교하면 정치경험이 너무 짧았습니다. 이런 점이 유권자들을 망설이게 한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분을 후보로 만든 친노세력이 실패한 것이지요.”
—친노 때문에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들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합니까.
“자기들이 억지로 내세운 후보가 패배했으니, 책임 자체가 명백하지 않습니까. 헤게모니를 관철한 만큼 책임은 따르는 법입니다. 쉽게 말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죠.”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가 쉽게 물러나겠습니까.
“존재감 있는 야당이 되려면 친노가 빠져나가야 합니다. 친노라는 게 묘하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와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과 겹치는데 이들은 권력이나 정치에는 능하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한 비전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요. 이들이 뒤로 물러나야 야권도 진화가 가능합니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인 동교동계의 김경재(金景梓) 새누리당 대통합위원회 기획조정특보 또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친노 좌파는 국민 통합의 능력도 없고 권력의 독과점 때문에 반대파나 비주류를 거의 숙청한 집단”이라며 “친노는 사라져야 할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한광옥(韓光玉) 새누리당 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새누리당에 입당한 나보고 배신자라고 하는데 당을 패권적으로 이끈 (친노) 그룹이 저를 배신한 것”이라며 “친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기쁨은 같이 나눴는지 모르지만, 고통을 같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대선 후 야권發 정계개편 예상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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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경(趙庸耿) 안 전 후보 캠프 국민소통자문단장. |
안철수 캠프의 국민소통자문단 조용경(趙庸耿) 전 단장의 견해다.
“대선을 앞두고 반노·비노 세력이 친노세력과 손을 잡았지만, 그것은 대선 승리를 위한 임시방편 성격이 강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아직도 경선 때 생긴 갈등의 골은 메워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친노가 특권과 반칙을 일삼았다는 인식이 반노·비노 사이에는 내재해 있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2012년 9월 16일 문 후보가 대선 후보로 결정되기까지 민주통합당의 경선 과정은 불화와 갈등만 가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반노·비노 세력들이 친노와 함께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 전 단장은 “분당을 하면 했지 친노와는 같이 가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 전 안 전 후보와 손 고문이 비밀회동을 가진 것도 대선 이후 이뤄질 야권발 정계개편의 방향을 예상해 볼 수 있는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2년 11월 26일 안 전 후보와 손 고문은 배석자 없이 비공개로 만났다. 당시 언론의 대체적인 기류는 “손 고문과 안 전 후보는 각각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세력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이 반노 그룹을 매개로 손 고문은 민주당 안에서, 안 전 후보는 밖에서 정치쇄신을 위해 노력하자는 대화를 나눴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는 것이었다.
민주통합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두 사람이 비노 연대를 구상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두 사람 입장에서 다음을 노리려면 패배한 친노와는 같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정치평론가인 신율(申律) 교수도 “공감한다”며 “‘친노’와 ‘반노·비노’가 책임공방을 벌이다가 반노·비노 쪽이 ‘도저히 너희와는 같이 할 수 없다’며 당을 뛰쳐나올 것”이라고 했다.
—예상대로라면 민주통합당에는 친노만 남겠네요.
“과거 꼬마민주당처럼 되겠지요.”
—당을 뛰쳐나간 반노·비노들은 ‘안철수 깃발’ 아래로 모이는 겁니까.
“안 전 후보가 야권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신당 창당 시기는 언제쯤 될까요.
“아마 무더기 재보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는 2013년 4월 재보선 전에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시기상 ‘안철수 신당’이 선전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한화갑(韓和甲) 전 민주당 대표도 “친노는 청산 대상”이라며 야권의 정계개편 가능성을 제기했다. ‘리틀 DJ’로 불린 한 전 대표는 “민주통합당은 ‘친노 연합체’일 뿐, 기존 민주당의 정통성을 잇지 못하고 있다”며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친노는 겉으로는 국가의 장래, 화합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집단입니다. 2000년도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공천받고 국회의원이 됐지만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니, 김 전 대통령을 버리고 그곳으로 몰려간 사람들이 친노 아닙니까. 야당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청산돼야 할 존재이죠. 안철수와 같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사람을 수혈해야만 정치개혁을 실천하는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야권발 정계개편이 일어난다면 통합진보당은 어떻게 될까.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대선 후보 사퇴까지 한 터라 친노세력과 힘을 합치진 않을지 궁금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전문가는 이런 전망을 내놨다.
“이정희 후보가 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사퇴했지만, 국고보조금 27억원을 반납하지 않아 부동층 표심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친노와 통합진보당이 함께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지금 구성원 그대로 남아, 북한 체제를 찬양하면서 박근혜 정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친노는 消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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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부활했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문재인(왼쪽) 후보가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옮기고 있다. |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중앙일간지 정치부 기자는 “소설 같지만 19대 대선은 ‘three 안’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three 안’은 안대희(安大熙)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안철수 전 후보, 안희정 지사를 말한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전문위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라며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의 60~70%가 친노인데 어떻게 단번에 몰락할 수 있겠느냐. 1월 열리는 전당대회부터 아마 바로 당권을 잡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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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욱(李東昱) 전 한국갤럽조사연구소 전문위원. |
“선거 패배 직후인 지금은 빈사상태겠지요.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인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시대상황에 적합하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좋은 이미지가 지속할 수밖에 없지요. 김구 선생의 이미지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랑 같다고 보면 됩니다. 아마 구심점이 생기면 다시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그 구심점에 투영시킬 것입니다.”
—NLL 발언록이 공개돼도 노 전 대통령의 좋은 이미지가 이어질 수 있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 발언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포장해 써먹을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했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군요.
“살아 있는 사람의 이미지는 변해서 없어질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그렇지 않거든요. 시장 논리로 보자면 노무현이란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는 계속 지속할 것이란 이야기죠.”
이와 관련 친노의 핵심들은 ‘친노’가 이미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멸하고말고 할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유시민(柳時敏) 진보정의당 전 선대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문 후보 말고는 친노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이 아무도 없습니다. 민주당은 그냥 민주당입니다. 그런데 왜 존재하지도 않는 친노 패권주의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없는데 무슨 패권주의가 있나요. 요즘 언론에 친노라고 분류되어 보도되는 의원 명단을 보면 열린우리당 시절에 말도 못하게 노무현 대통령하고 각 세웠던 분들이 거기 다 들어 있습니다. 과거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진 적이 있다고 다 친노는 아닙니다.”
야권 내 친노 代案세력 없다는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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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호(金大鎬) 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좌파 논객인 김대호(金大鎬)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친노가 노 전 대통령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로 몰아붙이던 세력들의 대안과 진단을 처리한 것이 최대의 패착”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정말 안타깝게도 친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야권에 그만큼 대안세력이 없습니까.
“1997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제3의 길’을 주창하며 영국 보수당의 18년 집권을 종식한 토니 블레어 같은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없습니다. 그런 세력들이 나와야 민주통합당이 거듭날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지금 친노 핵심들을 보면 정무 파트에 있었던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쟁취할까’만 생각했지 국가비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유권자들의 가려운 곳을 못 긁어줬기 때문입니다. 정책 쪽이 너무 약했습니다.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공공 부문이 가진 특권 특혜 등 해결할 부분이 많았는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우상호(禹相虎)·이인영(李仁榮) 의원 등 당내 386을 대표하는 이들에게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대선기간에 실력 다 보여줬지 않습니까.”
—친노는 계속 당내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할 것으로 봅니까.
“그건 아니고, 아마 춘추전국시대 비슷해지지 않겠습니까.”
김 소장의 예상대로라면 민주통합당은 2013년 1월에 열릴 것으로 추정되는 전당대회부터 당권을 놓고 친노와 반노·비노의 극한 대립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2007년도 대선 패배 후 한 달 만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한 바 있다.
文의 운명은?
문재인 후보는 대선에 출마하면서도 지역구 의원직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2012년 11월 25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회의원직 사퇴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총선 출마 당시 유권자들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사퇴가 불가피하겠지만 단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만으로는 의원직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반노·비노 진영에서는 “대선에서 패하더라도 계파를 보존하기 위한 안전장치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과연 국회의원 문재인은 당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김병준 교수는 “(문재인 후보가) 큰 방향 정도만 제시하지, 내부싸움 깊숙이 휘말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내 PK(부산·경남)의 대주주로 조용한 행보를 이어나갈 것이란 이야기다. 신율 교수는 “정치인 문재인으로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 후보는 친노의 ‘구심점’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인 한계론’이다. 그는 “친노의 구심점은 이해찬”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대호 소장은 “친노는 문 후보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김 소장의 이야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문재인 후보를 불러낸 것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은 (패배를) 굉장히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면 일정 정도 지지율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또 ‘문재인 가지고 뭘 해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역대 대선 후보 중 재수(再修)하지 않은 후보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재수를 용납해 주는 풍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김 소장은 그럼에도 상황은 문 후보의 대선 재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문 후보의 선전에는 정치 신인이라는 점이 많이 작용했는데 그때 가면 새 정치 이미지가 퇴색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정치인 안철수’ 평가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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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전 대선 후보는 대선 직전인 17일 오후 노원구 롯데백화점 앞에서 시민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
한화갑 전 대표는 “안철수가 끝까지 완주했다면 패배했더라도 야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었는데, 그걸 못해서 동력이 끊겼다”고 했다. 김병준 교수도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의 기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 안 전 후보는 정권교체만을 향한 길을 선택했다”며 “안 전 후보가 다시 정치권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권형기(權熒基) 서울대 교수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국민은 사회의 답답함을 안 후보가 풀어주길 기대했는데 안 후보는 그에 대한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안 후보가 정치쇄신이라는 화두를 던지기는 했지만, 정치쇄신은 곧 의원 정족수 축소 등 정도이지, 구체적으로 정치쇄신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안 후보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한 전직 중견 언론인은 “안철수가 국민 기대치와 동떨어진 철부지에 불과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전했다.
“승부에서 도망칠망정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엘리트 의식과 결벽증, 이공계 학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전문성 함정과 군맹무상(群盲撫象)식 소견, 온실 속 화초로 자라온 엄친아 이미지가 뚜렷했습니다. 안철수는 본인이 언제까지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부터 깨야 할 겁니다.”
새 정권이 출범한 만큼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수면 아래 가라앉을 것이고 이는 안 전 후보에 대한 정치권의 수요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안 전 후보 캠프 내 국민소통자문단에서 활동했던 관계자의 이야기다.
“안철수 현상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 아직 안 전 후보에게 동정심을 가진 그룹은 감정이입에 익숙한 대학생이나 일부 서민 정도일 것입니다. 안 전 후보가 진정으로 새 정치를 계속하고 싶다면 지금의 열 배쯤 되는 고난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론 안 전 후보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다는 전망도 존재했다. 이동욱 전문위원은 “안 전 후보는 주식을 통해 많은 이득을 얻은 분”이라면서 “민심을 잘 관찰하면서 타이밍을 절묘하게 찾아서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이밍 정치로 기존 지지율을 유지할 것이란 분석이다.
문 후보 캠프에서 공보 업무를 봐왔던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이번 대선의 승자는 누가 뭐래도 안철수”라며 “‘지원을 더 열심히 해야 했었다’는 질책이 나올 수 있겠지만 ‘안철수 때문에 졌다’는 말까지 듣지는 않을 것인 만큼 야권의 유력주자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는 재보선 통한 원내 진입 시도할 듯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정치인 안철수로 살겠다”고 선언한 안 전 후보가 2013년 4월 재보선에 출마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재보선 출마 가능성은 매우 크다”며 “안 전 후보가 이번에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헌 소장도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잘 알게 됐을 것”이라며 “재보선에는 출마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신율 교수는 구체적으로 새누리당의 텃밭인 강남, 혹은 부산 지역에 출마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조용경 단장도 재보선 출마에 대해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국회의원은 정치적으로 성과를 이루기 위한 일차적 징검다리”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안철수 전 후보 본인도 사실상 재보선 출마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2월 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 전 의원은 대선 후보 사퇴 선언 직전 참모들에게 “나는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대선이 끝이 아니라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도 있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가 2013년 4월 재보선을 통해 신당 등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