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숙 본부장, 안 후보의 완주 여부를 묻는 질문에 화도 안 내고 “모르겠다”고만 해
⊙ 11월10일 이후 단일화 얘기 꺼낸다는 타임스케줄 노출, 문재인측과의 협상 주도권 상실
⊙ 민주당, 11월6일 이후 합의문 왜곡 발표하고 항의하면 ‘실수’‘오해’ 라며 얼버무려, 2002년과 유사
⊙ 안철수는 親盧 黨權派의 언론플레이에 당했다
홍경환
⊙ 38세. 아시아투데이 기자.
⊙ 안철수 캠프 메시지팀 근무. 국민소통자문단 간사 겸임.
⊙ 안철수 캠프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安內의 일기’ 집필 중.
⊙ 11월10일 이후 단일화 얘기 꺼낸다는 타임스케줄 노출, 문재인측과의 협상 주도권 상실
⊙ 민주당, 11월6일 이후 합의문 왜곡 발표하고 항의하면 ‘실수’‘오해’ 라며 얼버무려, 2002년과 유사
⊙ 안철수는 親盧 黨權派의 언론플레이에 당했다
홍경환
⊙ 38세. 아시아투데이 기자.
⊙ 안철수 캠프 메시지팀 근무. 국민소통자문단 간사 겸임.
⊙ 안철수 캠프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安內의 일기’ 집필 중.
- 안철수 전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012년 9월 19일,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2년 9월 19일. 그날 나는 친구와 함께 석모도로 낚시를 갔다. 2012년 초 낚시를 배우기 시작한 나는 “낚싯대를 던지기만 하면 망둑어가 문다”는 친구의 꾐에 넘어가 강화도로 차를 몰았다. 강화도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물이 빠져 갯벌만 보일 뿐 낚싯대를 드리울 만한 장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 생활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하릴없이 기다리는 것이 영 죽을 맛이었다. 방파제 등을 찾아나서면 낚시를 할 만한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해안도로를 타고 강화도를 거의 한 바퀴 돌 때쯤이었다.
“석모도로 갈까?”
강화도보다는 더 먼바다에 위치하고 있으니, 그곳에 가면 어딘가 낚시할 곳이 있겠다 싶었다.
“그래 석모도로 가자.”
석모도에 도착해 보니 상황은 강화도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끼니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칼국수를 먹으며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망둑어 낚시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물이 들어와야 가능합니다.” “물이 몇 시쯤 들어오죠?” “오후 3시는 돼야 해요.”
이런 젠장. 하필이면 3시다. 오늘 안철수 교수가 출마 선언 하는 날인데. 망둑어를 좀 잡아놓고, 숯불에 구워 먹으며 여유 있게 출마 선언을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싶었다. 친구와 나는 먼길을 왔으니 출마 선언은 저녁 뉴스를 통해 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막상 3시가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서 DMB를 켰다.
“그동안 저는 재미있는 별명도 얻었고, 또 최근에는 저를 소재로 한 유머도 유행하더군요.”
역시 기성 정치인과 화법이 달랐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대목은 나오지 않았다. 초조하게 지켜봤다.
“그분들이 제게 한결같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하셨습니다.”
“그래 속 시원하다.” 나도 모르게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그 순간 결정적인 멘트가 나왔다.
“저는 이제 저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답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 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제3의 길이 열리는구나 싶었다. 내가 지인의 소개로 안캠프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공평빌딩으로 첫 출근
출마 선언 이후 캠프 구성이 완료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서 내심 많이 초조했다. 벌써 일주일이 다 돼 가는데.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던 당시에 이미 야권의 단일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었다. 민주당 경선이 한참 진행될 때에도 문재인 캠프에서는 단일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원하는 단일화 방식으로는 절대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초조했다. 지금이야 출마 선언으로 인한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품은 가라앉게 돼 있다.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단일화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캠프 구성조차 완료 안 됐다니 조금 초조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당분간 신경을 끄고 있으라고 충고했다. 캠프 구성을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래서 또 낚시를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9월 23일 일요일. 낚시에 처음 입문하는 후배 녀석을 차에 태우고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선배와 친구를 만나 아침을 먹고 하남시로 시동을 걸었다. 한참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어디냐.” “낚시터 가고 있는데요.” “어디쯤 갔어?” “지금 강동구 상일동입니다.” “지금 바로 노트북 들고 종로구 공평빌딩으로 와라.”
그 말 한마디에 일행을 하남에 있는 낚시터에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행은 “첫날이니까 인사만 하고 와라”고 말했다. “알았다”고 답하기는 했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밤 12시를 넘겨 퇴근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종로로 향했다. 캠프가 꾸려진 공평빌딩에 도착해 보니, 공평빌딩 6층은 아직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박선숙 본부장과 유민영 대변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메시지팀으로 합류를 했다.
내게 업무가 주어진 시각은 저녁식사 후였다. 다음 날 후보가 국민대학교 무인자동차 연구소를 방문한다며 일정 메시지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무인자동차는 로봇”이라는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무인자동차가 로봇이라는 메시지를 만든 이유는 후보가 융합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연관성이 있다는 것. 융합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을 모으는 것이었기에, 무인자동차를 자동차가 아닌 로봇으로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로봇은 기계공학 또는 전자공학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뒷받침돼야 한다. 구글이 인문학의 시대를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융합을 강조하는 대통령 후보가 무인자동차가 로봇이라고 선언할 때 희망을 잃은 많은 인문학도들이 새로운 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메시지를 후보에게 넘기고 난 뒤 시계를 보니 이미 하루가 지나 있었다.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이틀을 보낸 공평빌딩을 나와 퇴근했다. 공평빌딩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박선숙 본부장, ‘후보 사퇴’ 질문에 화도 안 내고 “모르겠다”만
9월 24일. 나도 국민대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현장 속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과거사 관련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는 뉴스 속보가 스마트폰 어플에 떴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지겠구나 싶었다. 후보가 어떻게 말을 할까 나도 궁금했다.
현장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는데, 박선숙 본부장이 왔다. 기자들이 박 본부장을 둘러쌌다. 이해하기 힘든 질문들이 나왔다. 후보의 완주 의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출마 선언을 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저런 질문을 하나 싶었다. 박 본부장은 화를 낼 법도 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취지의 답변만 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질문도 이해하기 힘들고 답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금방 잊혔다. 안철수 후보가 국민대에 도착하자마자 몰려든 인파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취재 기자들의 경쟁도 학생들 못지않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후보의 말을 가까이에서 듣기 위해 서로의 몸을 밀치는 기자들을 보며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조마조마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 발로 걸어갔다기보다 기자들과 학생들에 떠밀려서 갔다는 표현이 맞을 게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다 과연 이 많은 기자들이 간담회 장소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정연순 대변인에게 “기자가 너무 많아서 풀을 짜지 않으면 안 될 듯하다”고 말했다. 나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인자동차 연구소 연구원들과의 간담회는 풀 기자단만 들어와 취재했다.
후보 바로 뒤 맨바닥에 앉아서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는데 쪽지가 나에게 전해졌다. YTN이 생중계를 하고 있으니 되도록 말씀을 많이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후보에게 말을 건넬 엄두는 내지 못하고, 조용히 그의 팔을 당겨 쪽지를 말없이 전해줬다.
“다리를 불살랐다”
9월 25일. 후보의 ‘PD 수첩 정상화를 위한 호프 콘서트’ 참석으로 인해 캠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콘서트’라는 형식 때문에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미리 준비한 메시지는 “나는 당신과 의견이 다르다. 그렇지만 만약 의견을 표명할 때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 편에 서서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후보는 언론자유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었기 때문에,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메시지를 준비한 선배가 경험이 풍부했기에 그래도 준비를 잘한 편이었다.
일정을 시작하고 난 뒤 초조하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속보 기사를 보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준비한 메시지에 바탕을 둔 기사들이 속속 올라왔다. 언론의 기본 기능이 비판이라는 점, 비판을 한다는 이유로 탄압받으면 안 된다는 점, 이 두 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점을 그 선배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명확히 전달한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사 주제가 확 바뀌어 있었다.
“다리를 불살랐다.”
역시나 또 후보의 완주 의지를 묻는 질문이 나온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미 출마 선언문에서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이라며 기성 정당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기성 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를 펴야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음을 강조했고, 이것이야말로 강력한 권력 의지의 표명이었다.
다운계약서로 지지율 再상승 기회 놓쳐
9월 26일. 후보의 지방 일정이 시작되면서 캠프는 조금 여유를 찾은 듯했다. 김해 봉하마을 방문,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와의 만남, 모교인 부산고 방문, 그리고 처가인 전남 여수 방문. 긴 여정이었다.
친노의 심장부인 봉하마을에 가서 무슨 말을 할까? 후보가 영화광이라는데, 부산국제영화제 관련해서 어떤 말로 문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유권자인 학부모의 마음까지 낚아챌 수 있을까? 머릿속은 복잡했다.
지지율 재상승을 위한 모멘텀이 필요한 시기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인터넷 속보를 지켜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회장을 맡을 뻔했던 이야기, 모교 후배들에게 독도와 검찰 개혁에 관련해 한 이야기, 지역균형발전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 등 각종 이야기들을 인터넷 속보를 통해 접했다.
“내일 아침 조간은 어떻게 나올까?” 초조한 마음으로 다음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9월 27일. 안철수 캠프는 언론에 의해 제기된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으로 뒤숭숭했다. 2001년 서울 문정동 아파트를 살 때 후보 부인 명의로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이때 시세보다 낮은 액수를 계약서에 적어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제기였다.
후보가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곧바로 장하성 교수 캠프 합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산 인생을 불살랐다.” “안철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안철수 현상이라는 시대정신을 택한 것이다.”
방송사들은 후보의 사과 기자회견과 장 교수의 캠프 합류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했다. 언론사의 큰 관심에 캠프도 이내 진정되는 모습이었다. 모두들 이것으로 일단락됐다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후보가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자 캠프는 ‘앞서 사과로 갈음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다음 날 한 언론은 ‘갈음한다’는 입장 표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추가로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확인된 뒤, 안 후보 측이 ‘갈음한다’는 의사를 한 것은 ‘부인의 다운계약서 작성을 사과했으니 본인의 다운계약서 작성을 따로 사과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란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선거는 마라톤이다.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후보의 체력이 금방 고갈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추석 민심 잡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추석도 쉴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후보의 메시지보다 정연순 대변인의 무용담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 대변인이 국군수도통합병원에 다녀온 뒤 무용담을 털어놨는데, 정 대변인도 사진을 같이 찍자는 요청을 받았단다.
“아니 후보와 사진을 찍으면 되지 뭘 나한테까지 요청하느냐”고 사양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곧 영부인 될 분인데요.” 아마 통합병원 관계자들이 정 대변인을 안 후보 부인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기자단과의 갈등
지지율 상승을 위한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을 즈음, 후보의 호남 일정이 시작됐다. 기대가 많이 됐다. 캠프에 합류하기 전 호남 출신의 후배와 술을 한 잔 마신 적이 있는데, 그 후배도 민주당에 대해 강한 실망을 드러냈다. 그리고 주변의 분위기가 대체로 비슷하다고 했다.
정치의식이 매우 높은 유권자들이니 후보가 방문하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전남 순천, 목포 등지에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도 가졌다. 몇몇 기자들에게서 주민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또 캠프 내 호남 출신 자원봉사자가 현지 분위기가 뜨겁다는 소식도 전해줬다.
그런데 퇴근 전 인터넷을 통해 본 기사 하나 때문에 풀이 죽었다. 후보가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기자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특정 언론사 혹은 한두 언론사와 불편한 관계를 맺을 수는 있다. 충분히. 하지만 기자단과 대립을 했다는 것은 모든 언론사와 불편한 사이가 됐다는 것을 의미했고, 내 머릿속에는 노무현 정부 말기 기자실 폐쇄 문제로 각종 파동이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는 기자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입기자들이 캠프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다.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들 단순하지 않으냐. 땟거리(기사) 잘 주고, 정보에서 소외된다는 느낌 받지 않으면 기자들 불만 크지 않다.”
답답함이 커져 갔다. 지금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내 친구와 대화할 때 친구들의 불만도 이렇다. 취재하듯 대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기자들과 상당기간 오랜 시간을 보내고, 기자들의 대화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김성식 전 한나라당 의원이 9월 7일 캠프로 합류했다. 김 전 의원의 합류에 대해 언론이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인 부분은 한나라당 출신 인사들이 얼마나 합류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었다. 기사에서 몇몇 전직 의원의 이름이 거론됐다. 분위기가 다시 반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언론이 내놓은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하지만 내심 전망이 적중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반드시 그 바람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김 전 의원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김 전 본부장이 선거 캠프를 역동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일가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完走 예상하는 언론사 없는 데 충격
10월 9일. 캠프는 뭔지 모를 설렘에 들썩이고 있었다. 송호창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캠프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송 의원은 “안 후보가 모든 것을 걸었듯이 저 역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걸었다. 문재인 후보의 변화에 대한 진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결국 하나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의 설렘과는 달리 언론은 비판적 논조를 보였다.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이 신의를 저버렸다는 것이었다. 언론의 이 같은 비판 때문인지 송 의원 외에 추가 탈당은 없었다.
사실 문재인 캠프는 이미 두 달 전부터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을 막기 위한 ‘덫’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참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후단협’ 기사가 나왔다. 대체 이게 뭔가 하고 봤더니, 당내 경선에 반발해 탈당하는 사람들은 ‘후단협’과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비판이었다.
후단협이라는 용어는 2002년 정몽준 의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단일화 때 사용한 용어다.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모임’을 지칭하는 용어였는데, 정몽준 후보의 패배 및 단일화 파기 선언 때문에 후단협이라는 용어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남게 됐다.
친노 당권파는 2~3개월 후 정국까지 매우 치밀하게 예상하고, 각종 대책들을 미리 마련해 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노 당권파의 치밀한 준비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송 의원의 나 홀로 합류는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30여 명의 의원이 캠프로 합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도 든다.
10월 13일. 국민소통자문단이 출범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안철수 캠프도 ‘고공전’을 펼칠 수 있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론과의 마찰, 그리고 기삿거리 제공이 없다는 불평 등, 거대 정당과 나 홀로 맞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안철수 캠프로서는 대언론 관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문재인 캠프에서도 소통자문단 출범에 상당히 긴장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소통자문단은 매우 의욕적으로 일을 했다. 각 언론사를 순방하며 편집국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경영진 등과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소통자문단이 언론사를 순방한 뒤 들려주는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었다. 후보가 끝까지 완주할 것으로 보는 언론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다리를 불사르고 온 사람이 대체 몇 명인데 언론은 아직도 후보의 완주 의지를 의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일 깨닫게 된 것이었지만, 출입기자들과 언론사가 이런 시각을 계속 유지한 데에는 문재인 캠프의 언론 플레이가 큰 작용을 했다. 물론 우리의 대응이 미숙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예상치 못한 의원정수 축소 주장
10월 23일. 후보가 인하대 강연을 통해 중요한 정치개혁 메시지를 다시 제시했다. 정치권이 솔선수범해서 자기희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보가 이 메시지를 내보낸 이유는 2013년도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실업자들도 늘어날 것이고, 고통에 허덕이는 국민을 설득하고 다독이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먼저 자기희생을 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국회의원 정수 조정 문제였다. 기자들은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고, 문재인 캠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공을 퍼부었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 소수에게 로비가 집중될 것이고,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보는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관련 법에 국회의원을 200명 이상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다. 그러나 언론이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보도함으로써 이미 이것은 ‘진실’이 돼 있었다.
아직 후보의 생각을 정확히 읽지는 못하지만, 후보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공천권’이지 않았나 싶다. 나의 국회 출입기자 시절 경험을 잠시 이야기하자면, 연말 국회는 언제나 파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1~2개의 사안이었다. 나머지 ‘99’개의 사안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9개의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1~2개의 쟁점이 언제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견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처리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야는 언제나 강대 강으로 맞붙었다. 여야가 강대 강으로 맞붙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공천권’이 특정 지도자나 특정 계파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지도부에 ‘충성심’을 인정받아야 하고, 국회의원들은 이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때가 오면 언제나 ‘강공’으로 맞받아치기 때문이다. 결국 민생을 외면하는 국회는 ‘공천권’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정치개혁 논의에서 거의 언급되지 못했다. 캠프 내에서는 단일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정치개혁’ 어젠다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정치개혁 프레임은 작동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0% 정도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에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에 本心 들킨 뒤 전격 단일화 제안
11월 5일.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화 회동을 공식 제안했다. 모두의 예상을 깬 발언이었다. 모두들 정책 발표가 끝나는 11월 10일 이후 단일화 회동을 제안할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일 알게 된 것이었지만, 후보가 예상을 깨고 11월 5일 회동을 제안한 것은, 후보가 머릿속에 갖고 있던 타임 스케줄이 언론과 민주당에 모두 노출돼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11월 10일 이후 후보 단일화 이야기를 꺼내겠다는 발언이 언론에 여과 없이 노출됨으로써, 협상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결국 협상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후보가 예상보다 일찍 카드를 꺼내는 방법을 쓴 것이다.
예상을 깨는 후보의 발언으로 출입기자들은 분주해졌다. 기자들이 쏟아내야 할 기사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기 때문이다. 이제 기사 없다는 불평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후보가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혁신에 대해 합의하는 후보 단일화를 언급했다는 점에 매우 고무됐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인들은 다 똑같이 썩었다’는 국민 인식을 먹고 자란 것이었다. 그러므로 정치개혁 화두는 후보가 대선 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협상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오판이었음은 며칠 지나지 않아 드러나게 된다.
안철수 후보가 전남대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화 회동을 제안한 후 문재인 캠프 출입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당 창당은 어떻게 되는 거야?” “단일화 협상팀은 누가 될 것 같아?” 등등 질문이 막 쏟아져 들어왔다.
“단일화 협상팀 이야기는 없었잖아?” “아니야. 정치개혁협상팀이 단일화 협상팀이라고 했어. 문재인 캠프 대변인이 단일화 협상팀이라 명명하지 않고 정치개혁협상팀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안철수 후보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했어.”
그때만 해도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양측이 그날 합의한 것 중 중요한 사안은 두 가지였다. 후보 등록 전 ‘단일화’를 마무리 짓는다는 것과 ‘정치개혁 협상’ 실무팀을 꾸린다는 것이었다. 후보 단일화 방식에 대한 논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기자들은 단일화 룰 논의를 훨씬 앞서가는 신당 창당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날의 해프닝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됐다. 캠프에서 민주당 측에 공식 항의함으로써, 민주당이 ‘브리핑을 잘못했다’ 시인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실수였다고 해명했고, 나는 그것으로 끝이 나는 줄 알았다.
민주당이 의도한 ‘실수’
캠프는 11월 6일 이후 ‘암흑기’에 접어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 그리고 친노 당권파들이 원하는 프레임이 본격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복잡한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것을 독자들이 양해해 줬으면 좋겠다. 민주당이 원하는 프레임이 뭔지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1월 6일 이후 ‘실수’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는데,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나는 민주당의 실수가 상당히 고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항의를 하지 않으면 침묵하고, 항의를 하면 ‘오해·실수’였다고 얼버무리는 과정, 이 과정이 2002년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002년에도 합의문의 뜻을 왜곡해 브리핑했었다. 당시 민주당의 브리핑으로 인해 단일화 협상이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다. 민주당과 정몽준 측은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단일화한다는 합의에 이른 상태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경선’을 실시한다는 것으로 바꿔 브리핑해 버렸다. 이 합의문만 놓고 보면 ‘국민경선’의 ‘국’자도 없다. 국민의 뜻은 ‘여론조사’를 통해 반영될 수도 있고,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반영될 수도 있다.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왜 이런 식으로 브리핑을 했을까? 11월 14일 벌어진 일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11월 14일 한 일간지에 안철수 캠프와 문재인 캠프가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는 것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오보였다. 이 보도의 정보 출처는 당연히 문재인 캠프 측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의원정수 축소를 주장해 놓고 300명 유지에 합의하면, 정치개혁은 없는 것 아닙니까?” “뭐 어쩌겠어요. 통 큰 형님이 통 크게 의원정수 300을 유지하겠다는데.”
내가 기자들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정도 수준이었다. 상황은 내가 감지하고 있는 것보다 심각했다. 국민들의 눈에 안철수의 정치개혁, 새 정치는 온데간데없었다. 국민들의 눈에는 안철수 캠프와 문재인 캠프가 옥신각신 싸움박질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민주당의 ‘오보 브리핑’은 단일화 룰 협상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민주당의 ‘오보 브리핑’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게 됐는지, 2002년 사례를 통해 잠시 설명하겠다.
여론조사는 실시 날짜와 문항이 공개되면 안 된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2002년 당시 민주당 측은 여론조사 실시기관과 날짜 등 거의 모든 사안을 공개해 버렸다. 문항이 공개되면 어떻게 될까? 100만명에게 설문조사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전파할 수 있다. 새누리당 지지자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당시 정몽준 의원 측은 ‘신뢰상실’을 주장하며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협상 중단은 당연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도 민주당 측은 안철수 캠프와의 협상 과정에서의 관련 내용들을 언론에 상세하게 알렸다. 그리고 2002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실수였다’ ‘오해다’ ‘화 풀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민주당의 언론 플레이에 당해”
11월 14일. 결국 단일화 협상이 중단되고 말았다. 2002년과 마찬가지로 ‘신뢰의 상실’이 협상 중단의 빌미가 됐다. 단일화 협상 중단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인 윤건영 전 청와대 비서관 문제만 생각하면 지금도 속에서 열불이 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출신은 되고 친노는 안 되느냐는 ‘언론 플레이’를 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언론 플레이는 양측 모두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윤씨는 ‘친노 9인방’의 퇴진 선언 때 사퇴를 선언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왜 사퇴했던가? 당내에서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자 문재인 후보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물러났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협상장에 나타났다는 것은 그의 사퇴가 진정성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친노 핵심인사들이 뒤로 물러나는 ‘모습’만 보이고 ‘상왕’처럼 여전히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도 언론 보도는 묘하게 나왔다. 언론은 전형적인 진영 논리로 안철수 캠프 측을 비판했다. 물론 언론은 문재인 후보 또는 문재인 캠프 관계자 멘트를 통해서 보도했다. 팩트를 보도했으니 언론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안철수 캠프 측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캠프 측은 언론이 어떤 발언을 헤드라인으로 잡을지에 대해 분석을 끝낸 상태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문재인 캠프 측은 미디어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언론 플레이가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11월 17일 보도된 한 방송사 뉴스를 통해 살펴보겠다.
<앵커 멘트>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간의 단일화 과정을 보면 지난 2002년 대선을 연상케 하는데요. 10년 전과 지금,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모습의 단일화 과정을 김병용 기자가 비교했습니다.
<리포터>
2002년 대선 후보 등록 20일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측이 당시 부동의 1위였던 이회창 후보를 꺾을 방안을 찾아보자며 만났습니다. 단일화를 전제로 회동한 이번과는 다른 점입니다. 양측은 이른바 ‘담판’을 거쳐 협상 열흘 만에 단일화 룰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여론조사 ‘룰’이 유출됐다는 이유로 정 후보 측 협상단이 총사퇴하고 결렬 위기에 봉착합니다.
<녹취> 이철(국민통합21 단일화 추진단장/2002.11.18 - 후보 등록 9일 전) :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번엔 룰 문제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한 번의 상견례 뒤 하루 만에 양측이 돌아앉았습니다.
다시 2002년, 양측은 이틀간의 냉전 끝에 다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녹취> 신계륜(노무현 후보 비서실장) : “충분히 협의해서 빠른 시일 내에, 시간 내에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
27시간의 마라톤 협상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지만 노 후보가 정 후보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면서 TV 토론과 여론조사가 실시됐습니다.
<녹취> 노무현(민주당 대통령 후보) : “이번에도 역시 국민 여러분을 믿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녹취> 정몽준(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 : “저는 저의 운명을 국민 여러분 손에 맡겼습니다.”
양측이 러브샷을 하기까지 두 번의 결렬 위기를 거쳤습니다. 이번 대선, 후보 등록까진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여론조사 외에 다른 방법을 추가하기도 현실적으론 어려운 시간입니다. 2002년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습니다. 이번에도 단일화의 성패는 결국 두 후보의 결단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지 싸움에서 진 TV 토론
이 뉴스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대목은 2가지다. 이철 단장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부분이 첫 번째이고, “2002년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습니다”라는 기자의 멘트가 두 번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여론조사는 질문 문항과 조사 시기 등이 알려지면 안 된다. 때문에 이철 단장은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다”고 평가했다. 만약 여론조사 룰 유출이 실수였다면 치명적인 실수다. 전쟁터였다고 한다면 ‘암호’가 유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다고 평가하면서 ‘치명적 실수’는 ‘사소한 실수’가 돼버렸다. 시청자들은 이 뉴스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사소한 실수’에 안철수 후보가 삐쳐서 혹은 질 것 같으니 ‘몽니’를 부린다는 생각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원정수 조정하자고 합의한 것이지 축소하자고 합의한 것은 아니다. 보고를 제대로 못 받은 것 아니냐?”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이 진행되자 문재인 후보는 매우 거칠게 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후보는 매우 담담하게 맞받아쳤다. “정수 조정을 한다면 늘리거나 줄이는 것밖에 없지 않으냐.”
하지만 문 후보는 시종일관 ‘동어반복’을 하며 똑같은 논리를 계속 폈다. ‘정수’라는 단어에 대해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돼 있다.
‘일정하게 정하여진 수효나 수량.’
문 후보 말처럼 의원정수 조정이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되려면, 의원정수 조정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 비율 조정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논리상 맞지 않는 말이지만 문 후보는 손동작 몸동작 등 ‘액션’을 가미해 가면서 말을 쏟아냈다.
결국 논리싸움에서는 이기고, TV 토론 이미지 싸움에서는 패배했다. 다음 날 토론회에 대한 기자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10대 0’ 거의 일치된 견해였다. 일부 기자들은 “그러게 왜 출마해서는…”이라는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TV 토론을 나와 친한 몇몇 캠프 근무자와 함께 봤다. 치킨과 맥주를 곁들여서. 마치 한일전 중계 보는 듯한 느낌으로 토론을 지켜보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토론을 지켜보는 내내 유쾌하게 웃으며 봤다.
하지만 더 큰 우려는 패배했다는 상황인식이 아니었다. 사실 TV 토론이 끝난 뒤 몇몇 실무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는데, 이때 나온 이야기가 ‘너무나 큰 생각의 차이’였다. 후보는 처음 단일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비전과 정책을 공유하는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론 내내 ‘이명박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는 공격이 쏟아졌고, 캠프 근무자들에게도 큰 상처가 됐다.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후보가 이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기를 포기해 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믿고 싶지 않은 후보 포기
운명의 11월 23일. 캠프 기자실은 밀려드는 기자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뤘다. 평상시 100여 명의 기자들이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단일화 협상이 파행을 겪기 시작하면서 평상시보다 50여 명의 기자들이 더 오기 시작했다.
후보의 지방일정을 같이 소화하던 기자들이 갈 곳을 잃어 기자실을 찾기도 했고, 평소 연합 등 통신사 뉴스에 의존하던 지방지 기자들도 캠프 기자실을 찾기 시작했다. 기자실 근무자들은 부족한 책상을 채우느라 분주했다. 기자실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전날 문재인 후보와 우리 후보의 독대가 10여 분의 짧은 만남으로 끝나면서, 단일화가 결국 파행을 겪지 않겠느냐는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버티면 이긴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낮에 사우나에 가서 한숨 자고 오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그날 저녁. 유민영 대변인이 8시20분 후보의 입장 발표가 있다고 브리핑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예감이 적중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후보가 등장하기까지 20여 분의 시간이 마치 20년처럼 길었다. 후보가 등장하고 브리핑이 시작됐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철수입니다. 저는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합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하지만 마음 한 곳에서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정치, 정치쇄신을 위해 마지막까지 있는 힘을 다하겠다는 뜻이겠지 하며 마지막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나의 이런 헛된 기대가 깨지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제가 후보직 내려놓겠습니다.”
후보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캠프 업무는 중단됐지만…
문재인 후보는 공식 후보 등록을 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내게는 뉴스를 봐야 할 이유, 신문을 봐야 할 이유가 없었다. 후보가 사퇴 선언을 하고 찾아온 새로운 일주일. 사무실 뒷정리를 하기 위해 공평빌딩으로 나갔다. 그런데 내 눈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30~40명 정도 되는 기자들이 기자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해단식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공평빌딩 출근의 변이었다. 고마웠다. 그런데 어떤 기자가 평상시처럼 또 질문을 해왔다. 조간을 봤느냐며 말문을 꺼낸 그 기자는 후보와 문 후보가 곧 만날 것이라고 하는데 알고 있는 것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거의 대부분의 실무자들이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설사 출근을 하고 있다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얼마 안 될 테지만, 그 말에 부아가 치밀었다.
“또 언론 플레이인가?”
그 기자에게 민주당에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할 것을 주문했다. 양측의 만남과 관련해서 누구와 통화를 했으며, 실무 책임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언제 어디서 만날 것을 약속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내가 왜 이런 주문을 하는지 그 기자는 알아듣는 눈치였다.
11월 27일로 예정돼 있던 해단식이 갑자기 연기됐다. 해단식 연기 발표가 난 11월 26일. 그날은 공평빌딩 옆 건물에서 한 청년이 자살 소동까지 벌인 날이었다. 지지자들의 마음 정리가 아직 안 된 상태여서 돌발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해단식은 언제 열릴지 기약 없이 연기됐다. 나의 공평동 출근도 무한정 연장되고 있었다. 해단식까지 지켜본다던 기자들이 많았던 만큼, 해단식이 열릴 때까지는 기자들도 캠프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기자들에게 농담처럼 ‘이제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 아냐’라고 했다.
“할 일도 없는데 왜 나와?” “당신들이 나오지 말아야 나도 쉬러 갈 수 있어.”
그러나 이런 농담은 소용없었다. 어차피 나도 소용없는 걸 알고 있었기에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다. 캠프 업무는 중단됐지만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회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자들은 또 한 번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대다수 기자들이 생각한 것은 ‘신당 창당’ 움직임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해 당권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을 극구 말렸다. 기사 쓰는 거야 기자들의 업무니 당연하지만, 그 예측이 안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혹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다고 해도, 민주당은 당을 깨기보다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경우 지지율이 최소 70%에서 80%까지 치솟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야권이 분열된다면 백전백패다.”
문재인 지원 논란
그렇게 무료한 시간이 흘러가던 즈음, 드디어 해단식 날짜가 잡혔다. 12월 3일. 몇몇 기자들이 내게 물었다. 해단식 이후에도 계속 캠프로 나올 것이냐고. 나도 이제는 쉬고 싶다며 대선이 끝나면 여의도에서 한번 보자며 말을 돌렸다. 그리고 해단식이 끝나고 나도 족쇄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기자들의 문의 전화는 계속됐다.
기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항은 안철수 후보가 과연 문재인 후보를 도와줄 것이냐, 도와준다면 어떤 방식으로 도와줄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후보 사퇴한 것만큼 큰 도움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솔직히 ‘살신성인’을 몸소 실천했는데 더 이상 도움을 바라는 것은 염치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유세 지원 여부는 세간의 이목을 계속 집중시키고 있었다. 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계속 벌어졌기 때문이다. 후보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민주당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했다. 후보의 지원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자 ‘해산한 캠프’ 내에서 엇박자 움직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난 아는 게 없어”
12월 5일. 캠프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와 여의도에서 낮술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해산한 캠프’에서 기자들에게 후보의 지원유세 관련 브리핑을 한다는 속보가 떴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리핑이 취소됐다는 기사가 또 떴다.
또 기자들에게 전화가 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는 게 질문의 요지였다.
“이제 캠프에도 나가지 않는데 내가 뭘 알겠나”라고 사양했다. 무한정 연기될 것 같은 후보의 지원유세는 불과 하루 만에 이뤄졌다. 후보가 12월 6일 전격 지원을 선언한 것이다. 후보가 지원을 선언하자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까지 좁혀졌다.
몇몇 지인들로부터 탄식이 쏟아졌다.
“안철수로 단일화되면 100% 이기는 게임인데, 왜 문재인을 고집해서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만드느냐.”
모든 사람이 초박빙 게임이 됐다며 흥미진진하게 대선을 관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많은 사람이 누가 18대 대통령이 될지 여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사람이다. 하늘만이 안다.”
그 말이 정답이다. 나도 이제는 유권자 입장에서, 관전자 입장에서 12월 19일을 맞았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자가 설 자리에, 나의, 우리의 자랑스런 안철수 당선자가 서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것은 한낮 꿈이 되고 말았다.⊙
기자 생활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하릴없이 기다리는 것이 영 죽을 맛이었다. 방파제 등을 찾아나서면 낚시를 할 만한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해안도로를 타고 강화도를 거의 한 바퀴 돌 때쯤이었다.
“석모도로 갈까?”
강화도보다는 더 먼바다에 위치하고 있으니, 그곳에 가면 어딘가 낚시할 곳이 있겠다 싶었다.
“그래 석모도로 가자.”
석모도에 도착해 보니 상황은 강화도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결국 끼니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칼국수를 먹으며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망둑어 낚시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물이 들어와야 가능합니다.” “물이 몇 시쯤 들어오죠?” “오후 3시는 돼야 해요.”
이런 젠장. 하필이면 3시다. 오늘 안철수 교수가 출마 선언 하는 날인데. 망둑어를 좀 잡아놓고, 숯불에 구워 먹으며 여유 있게 출마 선언을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싶었다. 친구와 나는 먼길을 왔으니 출마 선언은 저녁 뉴스를 통해 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막상 3시가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서 DMB를 켰다.
“그동안 저는 재미있는 별명도 얻었고, 또 최근에는 저를 소재로 한 유머도 유행하더군요.”
역시 기성 정치인과 화법이 달랐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대목은 나오지 않았다. 초조하게 지켜봤다.
“그분들이 제게 한결같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문제를 풀어야 할 정치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절망했다 하셨습니다.”
“그래 속 시원하다.” 나도 모르게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그 순간 결정적인 멘트가 나왔다.
“저는 이제 저 자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답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 내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합니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제3의 길이 열리는구나 싶었다. 내가 지인의 소개로 안캠프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공평빌딩으로 첫 출근
출마 선언 이후 캠프 구성이 완료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서 내심 많이 초조했다. 벌써 일주일이 다 돼 가는데.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던 당시에 이미 야권의 단일화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었다. 민주당 경선이 한참 진행될 때에도 문재인 캠프에서는 단일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원하는 단일화 방식으로는 절대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초조했다. 지금이야 출마 선언으로 인한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품은 가라앉게 돼 있다.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단일화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캠프 구성조차 완료 안 됐다니 조금 초조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당분간 신경을 끄고 있으라고 충고했다. 캠프 구성을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그래서 또 낚시를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9월 23일 일요일. 낚시에 처음 입문하는 후배 녀석을 차에 태우고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선배와 친구를 만나 아침을 먹고 하남시로 시동을 걸었다. 한참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어디냐.” “낚시터 가고 있는데요.” “어디쯤 갔어?” “지금 강동구 상일동입니다.” “지금 바로 노트북 들고 종로구 공평빌딩으로 와라.”
그 말 한마디에 일행을 하남에 있는 낚시터에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행은 “첫날이니까 인사만 하고 와라”고 말했다. “알았다”고 답하기는 했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밤 12시를 넘겨 퇴근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종로로 향했다. 캠프가 꾸려진 공평빌딩에 도착해 보니, 공평빌딩 6층은 아직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박선숙 본부장과 유민영 대변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메시지팀으로 합류를 했다.
내게 업무가 주어진 시각은 저녁식사 후였다. 다음 날 후보가 국민대학교 무인자동차 연구소를 방문한다며 일정 메시지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무인자동차는 로봇”이라는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무인자동차가 로봇이라는 메시지를 만든 이유는 후보가 융합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연관성이 있다는 것. 융합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을 모으는 것이었기에, 무인자동차를 자동차가 아닌 로봇으로 인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로봇은 기계공학 또는 전자공학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뒷받침돼야 한다. 구글이 인문학의 시대를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융합을 강조하는 대통령 후보가 무인자동차가 로봇이라고 선언할 때 희망을 잃은 많은 인문학도들이 새로운 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메시지를 후보에게 넘기고 난 뒤 시계를 보니 이미 하루가 지나 있었다.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이틀을 보낸 공평빌딩을 나와 퇴근했다. 공평빌딩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박선숙 본부장, ‘후보 사퇴’ 질문에 화도 안 내고 “모르겠다”만
9월 24일. 나도 국민대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현장 속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과거사 관련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는 뉴스 속보가 스마트폰 어플에 떴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지겠구나 싶었다. 후보가 어떻게 말을 할까 나도 궁금했다.
현장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는데, 박선숙 본부장이 왔다. 기자들이 박 본부장을 둘러쌌다. 이해하기 힘든 질문들이 나왔다. 후보의 완주 의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출마 선언을 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저런 질문을 하나 싶었다. 박 본부장은 화를 낼 법도 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취지의 답변만 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질문도 이해하기 힘들고 답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금방 잊혔다. 안철수 후보가 국민대에 도착하자마자 몰려든 인파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취재 기자들의 경쟁도 학생들 못지않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후보의 말을 가까이에서 듣기 위해 서로의 몸을 밀치는 기자들을 보며 사고라도 일어날까 봐 조마조마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 발로 걸어갔다기보다 기자들과 학생들에 떠밀려서 갔다는 표현이 맞을 게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다 과연 이 많은 기자들이 간담회 장소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정연순 대변인에게 “기자가 너무 많아서 풀을 짜지 않으면 안 될 듯하다”고 말했다. 나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인자동차 연구소 연구원들과의 간담회는 풀 기자단만 들어와 취재했다.
후보 바로 뒤 맨바닥에 앉아서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는데 쪽지가 나에게 전해졌다. YTN이 생중계를 하고 있으니 되도록 말씀을 많이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후보에게 말을 건넬 엄두는 내지 못하고, 조용히 그의 팔을 당겨 쪽지를 말없이 전해줬다.
“다리를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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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후보 부인의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불거진 지난 2012년 9월 27일, 안철수 후보가 사과하는 모습. |
미리 준비한 메시지는 “나는 당신과 의견이 다르다. 그렇지만 만약 의견을 표명할 때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 편에 서서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후보는 언론자유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었기 때문에,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메시지를 준비한 선배가 경험이 풍부했기에 그래도 준비를 잘한 편이었다.
일정을 시작하고 난 뒤 초조하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속보 기사를 보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준비한 메시지에 바탕을 둔 기사들이 속속 올라왔다. 언론의 기본 기능이 비판이라는 점, 비판을 한다는 이유로 탄압받으면 안 된다는 점, 이 두 가지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점을 그 선배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명확히 전달한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사 주제가 확 바뀌어 있었다.
“다리를 불살랐다.”
역시나 또 후보의 완주 의지를 묻는 질문이 나온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미 출마 선언문에서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통합을 외치는 것은 위선”이라며 기성 정당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기성 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를 펴야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음을 강조했고, 이것이야말로 강력한 권력 의지의 표명이었다.
다운계약서로 지지율 再상승 기회 놓쳐
9월 26일. 후보의 지방 일정이 시작되면서 캠프는 조금 여유를 찾은 듯했다. 김해 봉하마을 방문,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와의 만남, 모교인 부산고 방문, 그리고 처가인 전남 여수 방문. 긴 여정이었다.
친노의 심장부인 봉하마을에 가서 무슨 말을 할까? 후보가 영화광이라는데, 부산국제영화제 관련해서 어떤 말로 문화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유권자인 학부모의 마음까지 낚아챌 수 있을까? 머릿속은 복잡했다.
지지율 재상승을 위한 모멘텀이 필요한 시기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인터넷 속보를 지켜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회장을 맡을 뻔했던 이야기, 모교 후배들에게 독도와 검찰 개혁에 관련해 한 이야기, 지역균형발전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 등 각종 이야기들을 인터넷 속보를 통해 접했다.
“내일 아침 조간은 어떻게 나올까?” 초조한 마음으로 다음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9월 27일. 안철수 캠프는 언론에 의해 제기된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으로 뒤숭숭했다. 2001년 서울 문정동 아파트를 살 때 후보 부인 명의로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이때 시세보다 낮은 액수를 계약서에 적어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제기였다.
후보가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곧바로 장하성 교수 캠프 합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산 인생을 불살랐다.” “안철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안철수 현상이라는 시대정신을 택한 것이다.”
방송사들은 후보의 사과 기자회견과 장 교수의 캠프 합류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느라 정신없이 분주했다. 언론사의 큰 관심에 캠프도 이내 진정되는 모습이었다. 모두들 이것으로 일단락됐다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후보가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자 캠프는 ‘앞서 사과로 갈음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다음 날 한 언론은 ‘갈음한다’는 입장 표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추가로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확인된 뒤, 안 후보 측이 ‘갈음한다’는 의사를 한 것은 ‘부인의 다운계약서 작성을 사과했으니 본인의 다운계약서 작성을 따로 사과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란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선거는 마라톤이다.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후보의 체력이 금방 고갈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추석 민심 잡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추석도 쉴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후보의 메시지보다 정연순 대변인의 무용담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 대변인이 국군수도통합병원에 다녀온 뒤 무용담을 털어놨는데, 정 대변인도 사진을 같이 찍자는 요청을 받았단다.
“아니 후보와 사진을 찍으면 되지 뭘 나한테까지 요청하느냐”고 사양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곧 영부인 될 분인데요.” 아마 통합병원 관계자들이 정 대변인을 안 후보 부인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기자단과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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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호창 민주당 의원이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겠다고 밝혀 한때 안 캠프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
정치의식이 매우 높은 유권자들이니 후보가 방문하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전남 순천, 목포 등지에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도 가졌다. 몇몇 기자들에게서 주민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또 캠프 내 호남 출신 자원봉사자가 현지 분위기가 뜨겁다는 소식도 전해줬다.
그런데 퇴근 전 인터넷을 통해 본 기사 하나 때문에 풀이 죽었다. 후보가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기자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특정 언론사 혹은 한두 언론사와 불편한 관계를 맺을 수는 있다. 충분히. 하지만 기자단과 대립을 했다는 것은 모든 언론사와 불편한 사이가 됐다는 것을 의미했고, 내 머릿속에는 노무현 정부 말기 기자실 폐쇄 문제로 각종 파동이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는 기자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입기자들이 캠프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다.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기자들 단순하지 않으냐. 땟거리(기사) 잘 주고, 정보에서 소외된다는 느낌 받지 않으면 기자들 불만 크지 않다.”
답답함이 커져 갔다. 지금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내 친구와 대화할 때 친구들의 불만도 이렇다. 취재하듯 대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기자들과 상당기간 오랜 시간을 보내고, 기자들의 대화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김성식 전 한나라당 의원이 9월 7일 캠프로 합류했다. 김 전 의원의 합류에 대해 언론이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인 부분은 한나라당 출신 인사들이 얼마나 합류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었다. 기사에서 몇몇 전직 의원의 이름이 거론됐다. 분위기가 다시 반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언론이 내놓은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하지만 내심 전망이 적중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반드시 그 바람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김 전 의원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김 전 본부장이 선거 캠프를 역동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일가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完走 예상하는 언론사 없는 데 충격
10월 9일. 캠프는 뭔지 모를 설렘에 들썩이고 있었다. 송호창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캠프로 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송 의원은 “안 후보가 모든 것을 걸었듯이 저 역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걸었다. 문재인 후보의 변화에 대한 진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결국 하나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의 설렘과는 달리 언론은 비판적 논조를 보였다.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이 신의를 저버렸다는 것이었다. 언론의 이 같은 비판 때문인지 송 의원 외에 추가 탈당은 없었다.
사실 문재인 캠프는 이미 두 달 전부터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을 막기 위한 ‘덫’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참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후단협’ 기사가 나왔다. 대체 이게 뭔가 하고 봤더니, 당내 경선에 반발해 탈당하는 사람들은 ‘후단협’과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비판이었다.
후단협이라는 용어는 2002년 정몽준 의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단일화 때 사용한 용어다.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모임’을 지칭하는 용어였는데, 정몽준 후보의 패배 및 단일화 파기 선언 때문에 후단협이라는 용어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남게 됐다.
친노 당권파는 2~3개월 후 정국까지 매우 치밀하게 예상하고, 각종 대책들을 미리 마련해 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노 당권파의 치밀한 준비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송 의원의 나 홀로 합류는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30여 명의 의원이 캠프로 합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도 든다.
10월 13일. 국민소통자문단이 출범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안철수 캠프도 ‘고공전’을 펼칠 수 있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론과의 마찰, 그리고 기삿거리 제공이 없다는 불평 등, 거대 정당과 나 홀로 맞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안철수 캠프로서는 대언론 관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문재인 캠프에서도 소통자문단 출범에 상당히 긴장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소통자문단은 매우 의욕적으로 일을 했다. 각 언론사를 순방하며 편집국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경영진 등과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소통자문단이 언론사를 순방한 뒤 들려주는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었다. 후보가 끝까지 완주할 것으로 보는 언론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다리를 불사르고 온 사람이 대체 몇 명인데 언론은 아직도 후보의 완주 의지를 의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일 깨닫게 된 것이었지만, 출입기자들과 언론사가 이런 시각을 계속 유지한 데에는 문재인 캠프의 언론 플레이가 큰 작용을 했다. 물론 우리의 대응이 미숙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예상치 못한 의원정수 축소 주장
10월 23일. 후보가 인하대 강연을 통해 중요한 정치개혁 메시지를 다시 제시했다. 정치권이 솔선수범해서 자기희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보가 이 메시지를 내보낸 이유는 2013년도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실업자들도 늘어날 것이고, 고통에 허덕이는 국민을 설득하고 다독이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먼저 자기희생을 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국회의원 정수 조정 문제였다. 기자들은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고, 문재인 캠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맹공을 퍼부었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 소수에게 로비가 집중될 것이고,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보는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관련 법에 국회의원을 200명 이상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다. 그러나 언론이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보도함으로써 이미 이것은 ‘진실’이 돼 있었다.
아직 후보의 생각을 정확히 읽지는 못하지만, 후보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공천권’이지 않았나 싶다. 나의 국회 출입기자 시절 경험을 잠시 이야기하자면, 연말 국회는 언제나 파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1~2개의 사안이었다. 나머지 ‘99’개의 사안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9개의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1~2개의 쟁점이 언제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견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처리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야는 언제나 강대 강으로 맞붙었다. 여야가 강대 강으로 맞붙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공천권’이 특정 지도자나 특정 계파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지도부에 ‘충성심’을 인정받아야 하고, 국회의원들은 이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때가 오면 언제나 ‘강공’으로 맞받아치기 때문이다. 결국 민생을 외면하는 국회는 ‘공천권’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정치개혁 논의에서 거의 언급되지 못했다. 캠프 내에서는 단일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정치개혁’ 어젠다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정치개혁 프레임은 작동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0% 정도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에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에 本心 들킨 뒤 전격 단일화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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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5일, 안철수 후보가 전남대 특강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한 후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
11월 10일 이후 후보 단일화 이야기를 꺼내겠다는 발언이 언론에 여과 없이 노출됨으로써, 협상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결국 협상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후보가 예상보다 일찍 카드를 꺼내는 방법을 쓴 것이다.
예상을 깨는 후보의 발언으로 출입기자들은 분주해졌다. 기자들이 쏟아내야 할 기사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기 때문이다. 이제 기사 없다는 불평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후보가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정치혁신에 대해 합의하는 후보 단일화를 언급했다는 점에 매우 고무됐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인들은 다 똑같이 썩었다’는 국민 인식을 먹고 자란 것이었다. 그러므로 정치개혁 화두는 후보가 대선 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협상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이 오판이었음은 며칠 지나지 않아 드러나게 된다.
안철수 후보가 전남대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단일화 회동을 제안한 후 문재인 캠프 출입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당 창당은 어떻게 되는 거야?” “단일화 협상팀은 누가 될 것 같아?” 등등 질문이 막 쏟아져 들어왔다.
“단일화 협상팀 이야기는 없었잖아?” “아니야. 정치개혁협상팀이 단일화 협상팀이라고 했어. 문재인 캠프 대변인이 단일화 협상팀이라 명명하지 않고 정치개혁협상팀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안철수 후보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했어.”
그때만 해도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양측이 그날 합의한 것 중 중요한 사안은 두 가지였다. 후보 등록 전 ‘단일화’를 마무리 짓는다는 것과 ‘정치개혁 협상’ 실무팀을 꾸린다는 것이었다. 후보 단일화 방식에 대한 논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기자들은 단일화 룰 논의를 훨씬 앞서가는 신당 창당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날의 해프닝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됐다. 캠프에서 민주당 측에 공식 항의함으로써, 민주당이 ‘브리핑을 잘못했다’ 시인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실수였다고 해명했고, 나는 그것으로 끝이 나는 줄 알았다.
민주당이 의도한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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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후보(왼쪽)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2012년 11월 21일,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을 하기 전에 악수를 나누는 모습. |
여기서부터는 조금 복잡한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것을 독자들이 양해해 줬으면 좋겠다. 민주당이 원하는 프레임이 뭔지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1월 6일 이후 ‘실수’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는데,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나는 민주당의 실수가 상당히 고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항의를 하지 않으면 침묵하고, 항의를 하면 ‘오해·실수’였다고 얼버무리는 과정, 이 과정이 2002년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002년에도 합의문의 뜻을 왜곡해 브리핑했었다. 당시 민주당의 브리핑으로 인해 단일화 협상이 중단되는 사태가 있었다. 민주당과 정몽준 측은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단일화한다는 합의에 이른 상태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경선’을 실시한다는 것으로 바꿔 브리핑해 버렸다. 이 합의문만 놓고 보면 ‘국민경선’의 ‘국’자도 없다. 국민의 뜻은 ‘여론조사’를 통해 반영될 수도 있고,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반영될 수도 있다.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왜 이런 식으로 브리핑을 했을까? 11월 14일 벌어진 일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11월 14일 한 일간지에 안철수 캠프와 문재인 캠프가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는 것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물론 오보였다. 이 보도의 정보 출처는 당연히 문재인 캠프 측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의원정수 축소를 주장해 놓고 300명 유지에 합의하면, 정치개혁은 없는 것 아닙니까?” “뭐 어쩌겠어요. 통 큰 형님이 통 크게 의원정수 300을 유지하겠다는데.”
내가 기자들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정도 수준이었다. 상황은 내가 감지하고 있는 것보다 심각했다. 국민들의 눈에 안철수의 정치개혁, 새 정치는 온데간데없었다. 국민들의 눈에는 안철수 캠프와 문재인 캠프가 옥신각신 싸움박질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민주당의 ‘오보 브리핑’은 단일화 룰 협상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민주당의 ‘오보 브리핑’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게 됐는지, 2002년 사례를 통해 잠시 설명하겠다.
여론조사는 실시 날짜와 문항이 공개되면 안 된다. 그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2002년 당시 민주당 측은 여론조사 실시기관과 날짜 등 거의 모든 사안을 공개해 버렸다. 문항이 공개되면 어떻게 될까? 100만명에게 설문조사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전파할 수 있다. 새누리당 지지자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당시 정몽준 의원 측은 ‘신뢰상실’을 주장하며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협상 중단은 당연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도 민주당 측은 안철수 캠프와의 협상 과정에서의 관련 내용들을 언론에 상세하게 알렸다. 그리고 2002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실수였다’ ‘오해다’ ‘화 풀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민주당의 언론 플레이에 당해”
11월 14일. 결국 단일화 협상이 중단되고 말았다. 2002년과 마찬가지로 ‘신뢰의 상실’이 협상 중단의 빌미가 됐다. 단일화 협상 중단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인 윤건영 전 청와대 비서관 문제만 생각하면 지금도 속에서 열불이 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출신은 되고 친노는 안 되느냐는 ‘언론 플레이’를 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언론 플레이는 양측 모두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왜냐하면 윤씨는 ‘친노 9인방’의 퇴진 선언 때 사퇴를 선언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왜 사퇴했던가? 당내에서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자 문재인 후보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물러났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협상장에 나타났다는 것은 그의 사퇴가 진정성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친노 핵심인사들이 뒤로 물러나는 ‘모습’만 보이고 ‘상왕’처럼 여전히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도 언론 보도는 묘하게 나왔다. 언론은 전형적인 진영 논리로 안철수 캠프 측을 비판했다. 물론 언론은 문재인 후보 또는 문재인 캠프 관계자 멘트를 통해서 보도했다. 팩트를 보도했으니 언론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안철수 캠프 측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캠프 측은 언론이 어떤 발언을 헤드라인으로 잡을지에 대해 분석을 끝낸 상태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문재인 캠프 측은 미디어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언론 플레이가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11월 17일 보도된 한 방송사 뉴스를 통해 살펴보겠다.
<앵커 멘트>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간의 단일화 과정을 보면 지난 2002년 대선을 연상케 하는데요. 10년 전과 지금,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모습의 단일화 과정을 김병용 기자가 비교했습니다.
<리포터>
2002년 대선 후보 등록 20일 전, 노무현-정몽준 후보 측이 당시 부동의 1위였던 이회창 후보를 꺾을 방안을 찾아보자며 만났습니다. 단일화를 전제로 회동한 이번과는 다른 점입니다. 양측은 이른바 ‘담판’을 거쳐 협상 열흘 만에 단일화 룰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여론조사 ‘룰’이 유출됐다는 이유로 정 후보 측 협상단이 총사퇴하고 결렬 위기에 봉착합니다.
<녹취> 이철(국민통합21 단일화 추진단장/2002.11.18 - 후보 등록 9일 전) :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번엔 룰 문제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한 번의 상견례 뒤 하루 만에 양측이 돌아앉았습니다.
다시 2002년, 양측은 이틀간의 냉전 끝에 다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녹취> 신계륜(노무현 후보 비서실장) : “충분히 협의해서 빠른 시일 내에, 시간 내에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
27시간의 마라톤 협상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지만 노 후보가 정 후보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면서 TV 토론과 여론조사가 실시됐습니다.
<녹취> 노무현(민주당 대통령 후보) : “이번에도 역시 국민 여러분을 믿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녹취> 정몽준(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 : “저는 저의 운명을 국민 여러분 손에 맡겼습니다.”
양측이 러브샷을 하기까지 두 번의 결렬 위기를 거쳤습니다. 이번 대선, 후보 등록까진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여론조사 외에 다른 방법을 추가하기도 현실적으론 어려운 시간입니다. 2002년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습니다. 이번에도 단일화의 성패는 결국 두 후보의 결단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지 싸움에서 진 TV 토론
이 뉴스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대목은 2가지다. 이철 단장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부분이 첫 번째이고, “2002년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습니다”라는 기자의 멘트가 두 번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여론조사는 질문 문항과 조사 시기 등이 알려지면 안 된다. 때문에 이철 단장은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기자는 “실무팀의 실수를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다”고 평가했다. 만약 여론조사 룰 유출이 실수였다면 치명적인 실수다. 전쟁터였다고 한다면 ‘암호’가 유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후보가 직접 나서 풀었다고 평가하면서 ‘치명적 실수’는 ‘사소한 실수’가 돼버렸다. 시청자들은 이 뉴스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사소한 실수’에 안철수 후보가 삐쳐서 혹은 질 것 같으니 ‘몽니’를 부린다는 생각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원정수 조정하자고 합의한 것이지 축소하자고 합의한 것은 아니다. 보고를 제대로 못 받은 것 아니냐?”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이 진행되자 문재인 후보는 매우 거칠게 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후보는 매우 담담하게 맞받아쳤다. “정수 조정을 한다면 늘리거나 줄이는 것밖에 없지 않으냐.”
하지만 문 후보는 시종일관 ‘동어반복’을 하며 똑같은 논리를 계속 폈다. ‘정수’라는 단어에 대해 사전에는 이렇게 정의돼 있다.
‘일정하게 정하여진 수효나 수량.’
문 후보 말처럼 의원정수 조정이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되려면, 의원정수 조정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 비율 조정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논리상 맞지 않는 말이지만 문 후보는 손동작 몸동작 등 ‘액션’을 가미해 가면서 말을 쏟아냈다.
결국 논리싸움에서는 이기고, TV 토론 이미지 싸움에서는 패배했다. 다음 날 토론회에 대한 기자들의 평가는 냉혹했다. ‘10대 0’ 거의 일치된 견해였다. 일부 기자들은 “그러게 왜 출마해서는…”이라는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TV 토론을 나와 친한 몇몇 캠프 근무자와 함께 봤다. 치킨과 맥주를 곁들여서. 마치 한일전 중계 보는 듯한 느낌으로 토론을 지켜보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토론을 지켜보는 내내 유쾌하게 웃으며 봤다.
하지만 더 큰 우려는 패배했다는 상황인식이 아니었다. 사실 TV 토론이 끝난 뒤 몇몇 실무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는데, 이때 나온 이야기가 ‘너무나 큰 생각의 차이’였다. 후보는 처음 단일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비전과 정책을 공유하는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론 내내 ‘이명박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는 공격이 쏟아졌고, 캠프 근무자들에게도 큰 상처가 됐다.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후보가 이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기를 포기해 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믿고 싶지 않은 후보 포기
운명의 11월 23일. 캠프 기자실은 밀려드는 기자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뤘다. 평상시 100여 명의 기자들이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단일화 협상이 파행을 겪기 시작하면서 평상시보다 50여 명의 기자들이 더 오기 시작했다.
후보의 지방일정을 같이 소화하던 기자들이 갈 곳을 잃어 기자실을 찾기도 했고, 평소 연합 등 통신사 뉴스에 의존하던 지방지 기자들도 캠프 기자실을 찾기 시작했다. 기자실 근무자들은 부족한 책상을 채우느라 분주했다. 기자실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전날 문재인 후보와 우리 후보의 독대가 10여 분의 짧은 만남으로 끝나면서, 단일화가 결국 파행을 겪지 않겠느냐는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버티면 이긴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낮에 사우나에 가서 한숨 자고 오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그날 저녁. 유민영 대변인이 8시20분 후보의 입장 발표가 있다고 브리핑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예감이 적중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후보가 등장하기까지 20여 분의 시간이 마치 20년처럼 길었다. 후보가 등장하고 브리핑이 시작됐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철수입니다. 저는 오늘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합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하지만 마음 한 곳에서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정치, 정치쇄신을 위해 마지막까지 있는 힘을 다하겠다는 뜻이겠지 하며 마지막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나의 이런 헛된 기대가 깨지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제가 후보직 내려놓겠습니다.”
후보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캠프 업무는 중단됐지만…
문재인 후보는 공식 후보 등록을 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내게는 뉴스를 봐야 할 이유, 신문을 봐야 할 이유가 없었다. 후보가 사퇴 선언을 하고 찾아온 새로운 일주일. 사무실 뒷정리를 하기 위해 공평빌딩으로 나갔다. 그런데 내 눈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30~40명 정도 되는 기자들이 기자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해단식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공평빌딩 출근의 변이었다. 고마웠다. 그런데 어떤 기자가 평상시처럼 또 질문을 해왔다. 조간을 봤느냐며 말문을 꺼낸 그 기자는 후보와 문 후보가 곧 만날 것이라고 하는데 알고 있는 것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거의 대부분의 실무자들이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설사 출근을 하고 있다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얼마 안 될 테지만, 그 말에 부아가 치밀었다.
“또 언론 플레이인가?”
그 기자에게 민주당에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할 것을 주문했다. 양측의 만남과 관련해서 누구와 통화를 했으며, 실무 책임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언제 어디서 만날 것을 약속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내가 왜 이런 주문을 하는지 그 기자는 알아듣는 눈치였다.
11월 27일로 예정돼 있던 해단식이 갑자기 연기됐다. 해단식 연기 발표가 난 11월 26일. 그날은 공평빌딩 옆 건물에서 한 청년이 자살 소동까지 벌인 날이었다. 지지자들의 마음 정리가 아직 안 된 상태여서 돌발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해단식은 언제 열릴지 기약 없이 연기됐다. 나의 공평동 출근도 무한정 연장되고 있었다. 해단식까지 지켜본다던 기자들이 많았던 만큼, 해단식이 열릴 때까지는 기자들도 캠프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기자들에게 농담처럼 ‘이제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 아냐’라고 했다.
“할 일도 없는데 왜 나와?” “당신들이 나오지 말아야 나도 쉬러 갈 수 있어.”
그러나 이런 농담은 소용없었다. 어차피 나도 소용없는 걸 알고 있었기에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다. 캠프 업무는 중단됐지만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회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자들은 또 한 번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대다수 기자들이 생각한 것은 ‘신당 창당’ 움직임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후보가 민주당에 입당해 당권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을 극구 말렸다. 기사 쓰는 거야 기자들의 업무니 당연하지만, 그 예측이 안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혹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다고 해도, 민주당은 당을 깨기보다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경우 지지율이 최소 70%에서 80%까지 치솟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야권이 분열된다면 백전백패다.”
문재인 지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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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전 후보가 2012년 12월 3일, ‘진심캠프’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기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항은 안철수 후보가 과연 문재인 후보를 도와줄 것이냐, 도와준다면 어떤 방식으로 도와줄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후보 사퇴한 것만큼 큰 도움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솔직히 ‘살신성인’을 몸소 실천했는데 더 이상 도움을 바라는 것은 염치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유세 지원 여부는 세간의 이목을 계속 집중시키고 있었다. 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계속 벌어졌기 때문이다. 후보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민주당의 패배는 불을 보듯 뻔했다. 후보의 지원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자 ‘해산한 캠프’ 내에서 엇박자 움직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난 아는 게 없어”
12월 5일. 캠프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와 여의도에서 낮술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해산한 캠프’에서 기자들에게 후보의 지원유세 관련 브리핑을 한다는 속보가 떴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리핑이 취소됐다는 기사가 또 떴다.
또 기자들에게 전화가 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는 게 질문의 요지였다.
“이제 캠프에도 나가지 않는데 내가 뭘 알겠나”라고 사양했다. 무한정 연기될 것 같은 후보의 지원유세는 불과 하루 만에 이뤄졌다. 후보가 12월 6일 전격 지원을 선언한 것이다. 후보가 지원을 선언하자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까지 좁혀졌다.
몇몇 지인들로부터 탄식이 쏟아졌다.
“안철수로 단일화되면 100% 이기는 게임인데, 왜 문재인을 고집해서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만드느냐.”
모든 사람이 초박빙 게임이 됐다며 흥미진진하게 대선을 관전하기 시작했다. 다시 많은 사람이 누가 18대 대통령이 될지 여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사람이다. 하늘만이 안다.”
그 말이 정답이다. 나도 이제는 유권자 입장에서, 관전자 입장에서 12월 19일을 맞았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자가 설 자리에, 나의, 우리의 자랑스런 안철수 당선자가 서 있기를 기대했는데, 그것은 한낮 꿈이 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