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 후보 노동정책 大同小異… “대선이슈에 노동이 없다”
⊙ 노동계 일부는 문재인 지지 선언, 그러나 안철수로 단일화될 경우 “모르겠다”
⊙ 민주노총, “특정 지지후보 없다”, “안철수는 착한 이명박”
⊙ 한국노총 “공약 평가해 노총 차원에서 지지하겠다”
⊙ 노동계 일부는 문재인 지지 선언, 그러나 안철수로 단일화될 경우 “모르겠다”
⊙ 민주노총, “특정 지지후보 없다”, “안철수는 착한 이명박”
⊙ 한국노총 “공약 평가해 노총 차원에서 지지하겠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월 22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문진국 위원장과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선언을 했지만 최종 후보에 대한 윤곽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노동계가 갈 길을 잃고 있다. 노동계 출신 후보들은 지지율이 미약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양대 노총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수혈 기지’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일자리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노동계 인사들도 적지 않다. 주요 후보들은 뚜렷한 노동 관련 공약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역대 대선에서 이처럼 노동계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라는 지적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후보들 잇달아 노총 방문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는 최근 잇달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10월 22일 한국노총을 방문했고, 안철수 후보는 11월 9일 양대 노총을, 문재인 후보는 11월 13일 전태일 재단과 양대 노총을 방문했다.
세 후보가 노총을 방문해 나눈 이야기는 대동소이하다. 박근혜 후보는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복수노조 제도 보완, 사내하도급 보호법 제정 등을 약속했다. 문재인 후보는 실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문제 해소, 최저임금 현실화 등을 제안했고, 안철수 후보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노사정위원회 위상 강화, 일자리 창출 등을 이야기했다. 이 밖에 문재인 후보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농성현장과 쌍용차 해고자 치료공간을 방문했고, 안철수 후보는 현대차 비정규직 근로자 농성장, 쌍용차 해고자 농성장 등을 찾았다. 박근혜 후보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다 노동계 인사들의 극렬한 반대로 실패하기도 했다. 각 후보 공히 ‘노동계 민심 잡기’를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들이 노동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모든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의 근간이 되는 노동문제에 대한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보들이 주장하는 비정규직 대책,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확대 등은 본질이 아닌 단기적인 요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대선 후보들의 노동정책이 이전 대통령 선거 때보다는 많이 반영돼 있지만 노동기본권 확보,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한 구체적 공약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각 후보가 내놓은 공약은 각종 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표 참조).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후보들의 노동 관련 공약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의 얘기다. “각 후보가 이야기하고 있는 정리해고 금지와 비정규직 차별 해소, 일자리 창출 같은 포퓰리즘은 양극화한 노동시장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노동정책을 하나씩 뜯어보면 대기업 정규직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쪽으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후보들이 모범답안만 늘어놨을 뿐 노동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후보 간 변별점이 별로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셋 중엔 문재인?
노동계에서 셋 중 그나마 가장 호감을 보이고 있는 후보는 문재인 후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법무법인 부산을 통해 노동변론에 나섰던 경력이 있는 만큼 여당의 박근혜 후보와 기업인 출신 안철수 후보보다 나은 점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최근 노동계 전문가 25명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의 노동공약에 대한 평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점 만점에서 문재인 후보가 3.6점, 안철수 후보가 3.1점, 박근혜 후보가 2점을 얻었다.
양대 노총의 현직 간부들이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9일 민노총과 한노총의 현직 간부 11명은 기자회견을 통해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캠프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민노총 서울본부의 이두헌 부본부장은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진보정당 운동이 무력화한 상황에서 새누리당 정권을 심판하고 노동자, 서민의 절박한 외침을 받아 안을 정권교체의 적임자가 문재인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지지선언에는 대한건설협회 노조위원장, 개인택시공제조합 노조위원장, 미래에셋과 HK저축은행 노조위원장 등이 동참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것일 뿐”이라며 “노총 차원의 지지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어쨌든 특정 후보 지지선언을 한 이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계 인사들이 정치판에 동원되듯 몰려가는 현상은 정치권에 노동문제를 포퓰리즘으로 접근하게 할 뿐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노동문제는 노동계가 중심이 돼서 쟁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노동계는 그런 역량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철수에 대해서는 의견 엇갈려
노동계 전문가들은 대부분 문재인 후보가 노동문제에 대해 높은 관심과 지식을 갖고 있고 박근혜 후보가 기업친화적이라는 점에 동의했지만,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고 있다. 현재의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는 반면, 기업인 출신인 데다 노동계에 대해서는 일말의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안철수 캠프의 노동계 출신 인사로는 민주노총의 이용식 전 사무총장과 이수봉 전 정책연구원장이 있다. 이들을 비롯한 노동계 출신 인사 34명은 캠프 내 노동연대센터를 구성, 안 후보의 노동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이용식 센터장은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빼앗기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것은 우리 정치가 썩어 있기 때문인 만큼, 정치권에 물들지 않은 안철수 후보를 중심으로 노동자 권리를 찾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모색하려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안철수 후보의 노동정책은 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데,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 참여 등이 포함돼 있다. 노동계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표현 대신 ‘근로’와 ‘근로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철수 후보는 노동계의 고민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으며, ‘착한 이명박’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동계 표심 잡아야 단일후보 될 가능성 높아
노동계가 이번 대선에서 별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하지만, ‘캐스팅 보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적지 않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 경쟁에서 노동계의 선택은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두 후보가 서민층의 표를 놓고 경쟁하는 국면이기 때문에 두 후보 중 노동계의 표심을 잡는 사람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는 그동안 진보정당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지지할 세력이 없고 두 야권후보 중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노동계에서의 인기는 안철수 후보보다는 문재인 후보가 좀 더 높다고 볼 수 있지만 당선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에서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도도 높기 때문에 반드시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볼 수 없어요. 두 후보 모두 노동 분야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문재인 또는 안철수를 지지하는 노동계 인사들이 반대편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 표심을 그대로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현재 노동계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 이들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경남지역 금속노조의 한 노조 관계자의 이야기다. “문재인 후보가 영남지역에서 노동 관련 변론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영남지역 노동계 인사들이 단체로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고 문 후보에 대한 로열티는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아마 최근 20여년간 부산-경남 지역에서 노동운동 해 본 사람 중 문 후보와 한 번쯤 연관이 안된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안철수로 야권 후보가 단일화한다면 이런 사람들이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 지지의사를 그대로 가져갈 이유가 없거든요. 안 후보가 부산 사람이라는 점 정도가 호감을 가질까요. 그때가 되면 기존의 문 후보 지지자들이 표면적으로는 단일화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겠지만 안 후보로 표심이 쏠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양대 노총, “공식적인 지지후보 없다”
한편 양대 노총은 내부적으로 지지후보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 대선 전까지 공식적인 지지후보를 표명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상태다. 과거 10여년 동안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침을 고수해 왔던 민주노총은 지난 8월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진보정당 지지 철회를 결정하고 정당을 통한 세력화 방침을 폐기했다. 또 김영훈 전 위원장이 11월 7일 퇴진한 뒤 지도부 공백상태를 맞고 있어 대선 지지후보를 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의헌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특정 후보와 관계없이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전 위원장이 위원장 직선제를 3년 유예시키면서 안팎으로 맹비난을 받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선 한 달 전 물러나면서 민노총은 지도력 부재 상황에 놓였다. 이와 거의 동시에 민노총의 일부 간부들이 문재인 지지선언에 동참하고 문재인 캠프로 합류한 사건은 대선을 앞두고 민노총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민노총 내부는 사실상 갈가리 찢어진 상태”라며 “대선을 앞두고 민노총이 이렇게 조용한, 즉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에는 내부적으로 새누리당 지지파와 민주통합당 지지파가 공존하고 있어 대선에서 명확한 방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었지만 2011년 진보 성향의 이용득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민주통합당 지지로 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지도부 내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이용득 위원장이 사퇴, 중도 성향의 문진국 위원장이 9월 취임했고 이번 대선에서는 지도부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한국노총의 공식 입장은 세 후보에게 노동정책 관련 질의와 한노총의 정책요구 사항을 담은 질의서를 보냈고, 답변을 받는 대로 분석·평가해 지지후보를 밝힐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노동계의 전망이다.
진보정당 약화도 노동이슈 몰락의 원인
노동이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되지 못한 것은 진보정당의 현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노동의제를 이끌고 대선 후보들을 압박해야 할 응집된 세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진보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은 내분과 부정선거 사태 등으로 동력을 잃었다. 진보 진영에선 진보정의당 심상정, 통합진보당 이정희, 김소연·김순자 등 대선 후보가 4명 있지만 1987년 대선 이후 노동계 후보가 이처럼 난립한 적이 없고, ‘노동자 후보’라는 상징성을 부여받은 후보도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향해 야권연대를 제안하고 야권연대 정책협약을 체결하자는 의견을 냈다. 협약에는 ▲노동현안 해결 특별위원회 설치 ▲민생 살리기 10대 공동정책 과제 이행 ▲국민약속이행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지만 유력 후보들이 이를 고려할지는 미지수다. 이정희 후보는 최근 부자증세를 기초로 한 조세·재정 정책 공약을 발표했지만 국민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다.
전(前)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 출신인 김소연 후보는 야권연대에도 부정적이다. ‘노동자대통령선거투쟁본부’ 1000여 명이 참여해 선출한 노동자 대선 후보인 그는 “야권연대란 야합에 불과하다”며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노동자의 삶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당시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되고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져 노동자들의 삶은 더 고통에 빠져들었다”고 주장했다. 김소연 후보는 비정규직법과 정리해고 제도 자체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며 ‘비정규직·정리해고 없는 세상’이라는 명료한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노동계의 대선 이슈는 ‘근로종료시간 이후까지 투표시간 연장’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높다. 이슈도 정책도 없는 이번 대선의 특징은 노동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후보들 잇달아 노총 방문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는 최근 잇달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10월 22일 한국노총을 방문했고, 안철수 후보는 11월 9일 양대 노총을, 문재인 후보는 11월 13일 전태일 재단과 양대 노총을 방문했다.
세 후보가 노총을 방문해 나눈 이야기는 대동소이하다. 박근혜 후보는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복수노조 제도 보완, 사내하도급 보호법 제정 등을 약속했다. 문재인 후보는 실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문제 해소, 최저임금 현실화 등을 제안했고, 안철수 후보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노사정위원회 위상 강화, 일자리 창출 등을 이야기했다. 이 밖에 문재인 후보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농성현장과 쌍용차 해고자 치료공간을 방문했고, 안철수 후보는 현대차 비정규직 근로자 농성장, 쌍용차 해고자 농성장 등을 찾았다. 박근혜 후보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다 노동계 인사들의 극렬한 반대로 실패하기도 했다. 각 후보 공히 ‘노동계 민심 잡기’를 나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후보들이 노동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모든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의 근간이 되는 노동문제에 대한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보들이 주장하는 비정규직 대책,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확대 등은 본질이 아닌 단기적인 요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대선 후보들의 노동정책이 이전 대통령 선거 때보다는 많이 반영돼 있지만 노동기본권 확보,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한 구체적 공약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각 후보가 내놓은 공약은 각종 산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차별 해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표 참조).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후보들의 노동 관련 공약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의 얘기다. “각 후보가 이야기하고 있는 정리해고 금지와 비정규직 차별 해소, 일자리 창출 같은 포퓰리즘은 양극화한 노동시장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노동정책을 하나씩 뜯어보면 대기업 정규직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쪽으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후보들이 모범답안만 늘어놨을 뿐 노동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후보 간 변별점이 별로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죠.”
셋 중엔 문재인?
 |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11월 13일 민주노총을 방문해 정의헌 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야기하고 있다. |
양대 노총의 현직 간부들이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9일 민노총과 한노총의 현직 간부 11명은 기자회견을 통해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캠프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민노총 서울본부의 이두헌 부본부장은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진보정당 운동이 무력화한 상황에서 새누리당 정권을 심판하고 노동자, 서민의 절박한 외침을 받아 안을 정권교체의 적임자가 문재인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지지선언에는 대한건설협회 노조위원장, 개인택시공제조합 노조위원장, 미래에셋과 HK저축은행 노조위원장 등이 동참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것일 뿐”이라며 “노총 차원의 지지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어쨌든 특정 후보 지지선언을 한 이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계 인사들이 정치판에 동원되듯 몰려가는 현상은 정치권에 노동문제를 포퓰리즘으로 접근하게 할 뿐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노동문제는 노동계가 중심이 돼서 쟁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노동계는 그런 역량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철수에 대해서는 의견 엇갈려
 |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는 지난 10월 22일 서울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열린 노동계 지지선언 및 노동연대센터 발족식에 참석했다. |
안철수 캠프의 노동계 출신 인사로는 민주노총의 이용식 전 사무총장과 이수봉 전 정책연구원장이 있다. 이들을 비롯한 노동계 출신 인사 34명은 캠프 내 노동연대센터를 구성, 안 후보의 노동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이용식 센터장은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빼앗기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것은 우리 정치가 썩어 있기 때문인 만큼, 정치권에 물들지 않은 안철수 후보를 중심으로 노동자 권리를 찾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모색하려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안철수 후보의 노동정책은 공약집 《안철수의 약속》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데,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 참여 등이 포함돼 있다. 노동계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표현 대신 ‘근로’와 ‘근로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철수 후보는 노동계의 고민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으며, ‘착한 이명박’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동계 표심 잡아야 단일후보 될 가능성 높아
노동계가 이번 대선에서 별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하지만, ‘캐스팅 보트’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적지 않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 경쟁에서 노동계의 선택은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두 후보가 서민층의 표를 놓고 경쟁하는 국면이기 때문에 두 후보 중 노동계의 표심을 잡는 사람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는 그동안 진보정당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지지할 세력이 없고 두 야권후보 중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노동계에서의 인기는 안철수 후보보다는 문재인 후보가 좀 더 높다고 볼 수 있지만 당선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에서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도도 높기 때문에 반드시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볼 수 없어요. 두 후보 모두 노동 분야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문재인 또는 안철수를 지지하는 노동계 인사들이 반대편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 표심을 그대로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현재 노동계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 이들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경남지역 금속노조의 한 노조 관계자의 이야기다. “문재인 후보가 영남지역에서 노동 관련 변론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영남지역 노동계 인사들이 단체로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고 문 후보에 대한 로열티는 비교적 높은 편입니다. 아마 최근 20여년간 부산-경남 지역에서 노동운동 해 본 사람 중 문 후보와 한 번쯤 연관이 안된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안철수로 야권 후보가 단일화한다면 이런 사람들이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 지지의사를 그대로 가져갈 이유가 없거든요. 안 후보가 부산 사람이라는 점 정도가 호감을 가질까요. 그때가 되면 기존의 문 후보 지지자들이 표면적으로는 단일화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겠지만 안 후보로 표심이 쏠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양대 노총, “공식적인 지지후보 없다”
한편 양대 노총은 내부적으로 지지후보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 대선 전까지 공식적인 지지후보를 표명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상태다. 과거 10여년 동안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침을 고수해 왔던 민주노총은 지난 8월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진보정당 지지 철회를 결정하고 정당을 통한 세력화 방침을 폐기했다. 또 김영훈 전 위원장이 11월 7일 퇴진한 뒤 지도부 공백상태를 맞고 있어 대선 지지후보를 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의헌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특정 후보와 관계없이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전 위원장이 위원장 직선제를 3년 유예시키면서 안팎으로 맹비난을 받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선 한 달 전 물러나면서 민노총은 지도력 부재 상황에 놓였다. 이와 거의 동시에 민노총의 일부 간부들이 문재인 지지선언에 동참하고 문재인 캠프로 합류한 사건은 대선을 앞두고 민노총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민노총 내부는 사실상 갈가리 찢어진 상태”라며 “대선을 앞두고 민노총이 이렇게 조용한, 즉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에는 내부적으로 새누리당 지지파와 민주통합당 지지파가 공존하고 있어 대선에서 명확한 방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었지만 2011년 진보 성향의 이용득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민주통합당 지지로 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지도부 내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이용득 위원장이 사퇴, 중도 성향의 문진국 위원장이 9월 취임했고 이번 대선에서는 지도부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한국노총의 공식 입장은 세 후보에게 노동정책 관련 질의와 한노총의 정책요구 사항을 담은 질의서를 보냈고, 답변을 받는 대로 분석·평가해 지지후보를 밝힐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노동계의 전망이다.
진보정당 약화도 노동이슈 몰락의 원인
 |
| 노동계는 대선 후보들에게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법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치적 동력이 부족한 상태다. |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향해 야권연대를 제안하고 야권연대 정책협약을 체결하자는 의견을 냈다. 협약에는 ▲노동현안 해결 특별위원회 설치 ▲민생 살리기 10대 공동정책 과제 이행 ▲국민약속이행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지만 유력 후보들이 이를 고려할지는 미지수다. 이정희 후보는 최근 부자증세를 기초로 한 조세·재정 정책 공약을 발표했지만 국민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다.
전(前)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 출신인 김소연 후보는 야권연대에도 부정적이다. ‘노동자대통령선거투쟁본부’ 1000여 명이 참여해 선출한 노동자 대선 후보인 그는 “야권연대란 야합에 불과하다”며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노동자의 삶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당시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되고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져 노동자들의 삶은 더 고통에 빠져들었다”고 주장했다. 김소연 후보는 비정규직법과 정리해고 제도 자체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며 ‘비정규직·정리해고 없는 세상’이라는 명료한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노동계의 대선 이슈는 ‘근로종료시간 이후까지 투표시간 연장’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높다. 이슈도 정책도 없는 이번 대선의 특징은 노동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