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大選 포커스] 대통령의 脫黨은 大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월간조선

이명박(李明博) 대통령은 지난 7월 24일 친인척 및 측근 비리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 “사이후이(死而後已)의 각오로 더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죽은 다음에야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미의 ‘사이후이’는 《논어》 태백 편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이 말은 친인척과 측근 비리에 대한 사과와 아울러 남은 7개월 임기 동안 국정 운영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새누리당 친(親) 박근혜 경선후보 진영에서는 총선 전부터 일각에서 제기해 온 이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에 대선 경선후보 첫 TV토론회가 예정돼 있었지만, 오후 2시에 계획에 없던 대통령 사과발표가 나오자 “생중계 토론회에 재를 뿌렸다”는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친박 캠프에서는 공개적으로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자제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도대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탈당하는 게 낫다.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갤럽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1987년 도입된 직선제로 선출된 역대 대통령이 모두 막판에 레임덕에 시달리다가 집권당을 떠났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이번에도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盧武鉉) 대통령은 대선 10개월 전에 탈당했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7개월 전에 당을 떠나야 했다. 노태우(盧泰愚) 대통령은 3개월 전에, 가장 오래 버틴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40여 일 전에 보따리를 쌌다.

박근혜, MB 탈당에 아직은 부정적

이 대통령의 탈당 방안도 이미 연초부터 새누리당의 친박(親朴) 측에서 ‘민심을 잃은 현 정권과의 차별화 전략’ 측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이 대통령이 여당의 당적(黨籍)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확고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어떤 형태로 있든 대통령은 책임정치를 해야 하고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한다”며 탈당론을 일축했다. 최근 청와대 측도 “이 대통령은 아직까지 전혀 탈당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친박 진영은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총선 이전인 지난 1월, 현재 박 후보 캠프의 김종인(金鍾仁)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이 대통령이 어떤 자세를 취해주는 것이 좋은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 대통령의 탈당 필요성을 언급한 데 이어 “이것은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 후보 측으로선 연말 대선의 주요 이슈가 ‘정권 교체’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최대 과제란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책 면에서도 성장, 대기업 위주 정책을 펴온 이명박 정부와는 확실히 차별화해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본선에서도 이를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박 후보는 이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에 대해 아직까지는 부정적이다. 그는 지난 3월 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역대 정부 말기 때마다 대통령이 탈당하는 일이 반복됐는데 그래서 국민 삶의 어려움이 해결됐는가. 그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측근 비리가 계속 터져나온 이후에도 이런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박 후보의 말대로 역대 대통령이 집권 마지막 해에 빠짐없이 여당을 탈당했지만, 그동안 대통령의 실패와 대통령과 집권당의 반목(反目)이 되풀이되는 후진적인 정치 문화는 개선되지 않았다.

국민들, 노태우 탈당에 긍정적

지난 1992년 노태우 대통령과 민자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후보는 노 대통령의 사돈인 SK그룹에 대한 이동통신사업 허가 문제, ‘관권선거 의혹사건’에 대한 중립 선거관리내각 구성을 위한 부분 개각 요구로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에 노태우 대통령은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1992년 9월 18일 민자당을 탈당했다. 그의 퇴임 160일 전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집권당을 떠나는 것은 당시가 최초였다. 그만큼 충격도 컸을 터였다.

집권 4년차부터 갤럽조사에서 이미 10%대 중반의 낮은 지지율에 시달렸던 노태우 대통령은 5년차 초반에는 11.9%로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당시엔 각 언론과 여론조사 회사가 요즘처럼 대통령 지지율을 측정하는 여론조사를 자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 이후에는 그의 지지율을 측정한 조사가 없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수서 택지 특혜 분양 사건 등으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고, 사실상 여권의 권력 중심추(錘)가 차기 대권 주자인 YS에게 쏠리면서 ‘물태우’로 불릴 만큼 최악의 레임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당시 여당 후보였던 김영삼 후보의 지지율은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 전후로 다소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12월에 반등하면서 42.0%의 득표율로 김대중 후보의 33.8%를 여유있게 제치고 당선됐다. 이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긍정적 평가가 과반수(57.5%)인 것에도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륙연구소가 1992년 9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민자당 탈당이 ‘대선의 공정성에 기여할 것’이라는 응답은 57.5%였으며 ‘이전과 다름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37.6%였다.

YS 탈당에도 집권당 후보 패배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1997년 10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YS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총재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대선 한 달 여 전인 11월 7일 임기를 110일 남겨 놓고 집권 여당을 박차고 나갔다. 이전 후보 시절에 노태우 대통령에게 했던 탈당 요구가 고스란히 부메랑이 됐다.

그는 19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권력누수를 겪기 시작한 뒤 집권 5년차인 1997년 한보게이트와 차남 김현철씨 구속 등이 이어지면서 깊은 레임덕 수렁에 빠졌다. 이회창(李會昌) 후보는 IMF 외환위기 사태와 YS 친인척 비리 사건으로 YS 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김영삼 대통령이 만든 신한국당을 한나라당으로 개명하며 철저한 차별화에 돌입했다. 이회창 후보는 김영삼 대통령의 이인제 후보 지원설과 함께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 유보 결정을 내린 데 반발하며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했다.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을 관철시켰지만 이회창 후보는 대선에서 패했다. 당시 갤럽조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IMF 위기로 인해 지지율을 측정하기 민망할 정도로 이미 낮은 상태인 6~7%에 불과했다. 유권자들은 철저히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로 인해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은 대선 정국의 변수(變數)로 작용할 만큼 영향력이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의 탈당 전후로도 여당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정체한 가운데 이인제(李仁濟) 후보의 지지가 낮아지면서 오히려 야당인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결국 대선에선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1.6%포인트란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당시 월드리서치 여론조사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유권자의 53.4%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고, 부정적 의견은 30.0%였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다 해서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이 대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그러나 여하튼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에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음에도 집권당 후보는 패했다. 다른 여러 요인이 겹친 탓으로 보인다.

국민들, DJ 탈당에 부정적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2002년 5월 6일 청와대 조순용 정무수석이 들고 온 김대중 대통령 탈당계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2002년 대선 7개월 전인 5월 6일 자신이 창당한 민주당과 결별했다. 임기를 295일 남긴 시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진승현·정현준·이용호 등 이른바 ‘3대 게이트’가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면서 레임덕에 빠졌고, 집권 5년차인 2002년 김홍업·김홍걸 두 아들의 구속을 전후해 비난이 빗발치자 탈당을 선택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선 이전 대통령의 경우에 비해 국민들의 평가가 부정적이었다. 2002년 5월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응답자들은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서’(36.5%)라는 청와대 설명보다는 ‘국면 전환용 위장 탈당’(51.7%)이라는 야당의 비판에 동조하는 견해가 많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이 여당의 노무현 후보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응답자의 49.2%가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답한 데 비해 ‘유리할 것’이라는 응답이 31.4%, ‘불리할 것’이라는 응답은 11.5%였다.

이처럼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국민 다수가 ‘국면 전환용’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이전의 대통령들과 달리 여당에서 노골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탈당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아들의 비리의혹 때문에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탈당한 것이란 견해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여당 내에선 탈(脫) DJ를 위한 방안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하는 흐름도 강하게 형성됐었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내던졌다는 해석도 있다.

당시 대선 정국은 2002년 초에 강하게 불었던 ‘노무현 바람’, 즉 노풍(盧風)이 가라앉던 시기였고, 노무현 후보의 하락세를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으로도 막아내진 못했다. 갤럽조사에서 2002년 4월 50.3%까지 치솟았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5월 초엔 47.6%로 하락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 이후인 6월 초엔 39.1%로 낮아지면서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은 본인의 지지율에도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았다. 2002년 연초에 33.0%였던 그의 지지율은 아들 비리 등으로 4월엔 23.4%로 급락했으며, 탈당 이후에도 20%대 중반을 계속 맴돌았다.

이후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대통령 역시 집권 5년차 탈당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 잇단 선거 참패와 측근 비리의혹이 불거지면서 당과 갈등을 겪다가 임기를 1년여 가까운 362일이나 남긴 2007년 2월 28일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했다.

노무현 탈당에도 부정적 여론 높아

그의 탈당은 열린우리당의 탈당 요구가 계기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 여러 가지 정책에 혼선, 문제성 발언 등으로 국민의 지지도가 격감하자 여당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은 이대로 가면 2008년 총선에서 대거 의원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그 원인을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찾고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친노파(親盧派)를 제외한 모든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시점은 집권 4년차 후반기부터 10%대 중반으로 하락했던 지지율이 10%대 초반으로 계속 추락하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외국인들이 한국의 주가를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제 용어인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에 빗대서 ‘노무현 디스카운트’란 신조어(新造語)도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벌이는 일은 무조건 싫다’는 의미다. 다수의 국민이 “개헌은 필요하지만, 다음 정부에서 추진하라”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역시 당시 대선 구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보다 더 높았다. 당시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당적 정리 문제에 대해 국민들은 ‘당적 유지’(41.5%) 의견이 ‘탈당’(34.8%) 의견보다 많았다. 그의 탈당이 실정(失政)을 책임지는 자세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기의 MB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집권당 탈당사를 되돌아보면, 대통령의 탈당이 대선 여론에 미친 영향을 명쾌하게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통령의 탈당으로 인해 본인의 지지율이나 여야 대선후보의 지지율 수치가 대부분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번의 역대 대통령 탈당을 통해 그해 대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적이 두 번 있고 패배한 적이 두 번 있기 때문에 ‘승리’ 또는 ‘패배’의 공식으로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을 평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의 집권당 탈당에 대해 국민들이 갈수록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추세인 것은 맞다. 처음엔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실정을 책임지는 자세로 국민 다수가 생각했지만, 점차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가 실패한 정권과의 인위적인 차별화를 위한 ‘꼼수’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최근 박근혜 후보의 경우에도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 문제가 풀기 어려운 난제(難題)다. 이 대통령은 집권 4년차였던 지난해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측근들이 각종 비리의혹에 연루돼 사법처리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올해 들어선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 내곡동 사저 논란, 최시중·박영준·이상득으로 이어지는 사상 초유의 초대형 측근 비리도 터졌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갤럽조사에서 지난해 초반엔 50%대에 육박했지만, 올해 초반엔 20%대 중반으로 반토막 났다가 지난 8월 첫째 주에 17%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구속되던 7월 중순에 처음으로 19%로 10%대에 진입한 이후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8년 촛불정국과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 그리고 지난 4월 여권의 재보선 패배 직후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총선에서 이명박근혜 프레임 작동 안 해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을 치면서 정권교체 여론도 높아졌다. 지난 7월 말 KBS·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여당인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이번에는 야권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보십니까?’란 질문에 ‘새누리당 후보’는 39.7%에 그쳤고 ‘야권 후보’는 45.6%에 달했다.

이처럼 정권교체 요구가 높으면서도 박근혜 후보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치열하게 선두 경쟁을 하는 이유는 다수의 국민이 박 후보의 당선을 ‘정권연장’이 아니라 ‘정권교체’로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선 박 후보의 대선 승리를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정권교체’로 생각한다는 유권자가 과반수인 53%에 달했다.

4·11총선에서도 박 후보가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 방식의 차별화가 적중했다. 정치적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정책과 노선의 ‘좌클릭’을 시도해 차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었다. 그 바람에 야권이 들고 나온 ‘이명박근혜(이명박=박근혜)’ 프레임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박 후보는 이 대통령에게 등 돌린 민심을 상당부분 흡수했다. KBS·미디어리서치의 7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 응답자 중에서 32.2%는 안철수 원장, 26.0%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문재인(文在寅) 민주당 고문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이보다 적은 15.1%였다. 이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유권자의 4명 중 1명 이상이 박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다.

인위적 차별화 효과는 한계

과거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선후보의 관계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매우 독특한 경우다. 직접적으로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던 전례로 보면 ‘김대중·노무현 모델’과 비슷하지만, 김대중 대통령도 2002년 대선을 7개월 남기고 여당을 탈당했다. 올해 대선을 4개월가량 남긴 현재, 이 대통령은 새누리당 당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재임 중 집권 여당을 탈당하지 않는 첫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이 모두 실패한 ‘확률 0%’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박 후보로선 이 대통령이 우군(友軍)이라기보다 짐에 가깝다. 대통령 측근 비리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 등에 대한 야당의 공세 수위가 높아지면서 새누리당 친박 진영에선 ‘대통령 탈당’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대통령을 몰아내는 것이나 대통령이 버티는 것이나 모두 모양새가 안 좋을 수 있다. 대통령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유권자가 박 후보와 이 대통령을 일심동체(一心同體)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실정에 대해선 심판하고 싶어하는 게 유권자의 속성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동안 박 후보 측은 대통령의 거취 문제에 신중을 기하자는 의견이었지만 앞으로 국면은 몇 번이고 바뀔 수 있다. 결정적인 순간 박 후보는 과거의 여당 대선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과의 갈등을 전면화하는 방식으로 정국 주도권 확보를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다.

이양훈 미디어리서치 부장은 “아직까지는 대선 판세가 크게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여당 후보의 전면적인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지만, 여야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요동치는 국면 변화에 따라선 여당과 이 대통령의 대립각이 날카롭게 세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의도적인 차별화가 반드시 대선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1997년과 2007년의 우리나라 대선뿐 아니라, 미국도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가 클린턴 대통령과 의도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가 공화당 부시에게 정권을 뺏긴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외 사례 모두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이 등을 돌렸던 것이 주요 패인”이라며 “여당이 대통령과의 차별화만 시도하고 책임을 회피한다면 결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친박, 국민 여론 곱지 않아 고민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 시도에 또 다른 걸림돌은 ‘대통령의 탈당’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다. 현재의 분위기로 그렇다는 얘기다.

연초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탈당이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가”란 질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52.6%)이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도움이 될 것’(30.9%)에 비해 훨씬 높았다. 박근혜 후보 지지층에서도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부정적 평가(49.0%)가 긍정적 평가(36.6%)에 비해 더 높았다.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유권자의 다수가 ‘책임 정치를 저버리고 표만 노리는 발상’으로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다.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채(負債)와 자산을 나눠갖지 않으려고 하지만 대선 국면에서 야권은 또다시 ‘MB·박근혜 공동책임론’을 꺼내들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과의 극단적인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어려운 여론을 감안하면 여당 대선후보로서 박 후보의 고민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