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정치적 변방… 여야 모두에 싸늘한 민심 달라지지 않아
⊙ “(이광재에 대해) 말하는 사람 없어요. 돈 문제 있다 하드래요”
⊙ ‘보릿고개’ 얘기하며 박근혜 대망론에 기대
⊙ “(이광재에 대해) 말하는 사람 없어요. 돈 문제 있다 하드래요”
⊙ ‘보릿고개’ 얘기하며 박근혜 대망론에 기대
“민주당을 내세워 봐야 별 거 없데요. 새누리당이 잘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래 바꾸고 저래 바꿔 봐야지요. 강원도 사람들, 그동안 많이 배웠거든.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한쪽을 편들어 봐야 우리는 영원한 변방이라는 걸 이제 다 압니다.”
강원도 원주시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 태백시 황지 자유시장에서 식사 배달 업무를 하는 30대 여성은 이랬다.
“민주당이 힘 없으니까 새누리당 찍었죠. 민주당 도지사도 뽑아 봤는데 그냥 그래요. 먹고살기가 어려우니까. 강원도에 박근혜(朴槿惠·이하 정치인 존칭 생략)가 여러 번 왔잖아요. 한 번 올 때마다 사람들이 확 뒤집히던데 뭐. 힘 없는 민주당 찍느니 박근혜 믿어 보자는 심정으로 투표했죠.”
이들의 말 속에는 강원도민이어서 느끼는 소외감, 여당과 야당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 그러면서도 강원도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오묘하게 섞여 있었다.
2년 만에 민심 이동
‘강원도의 선택’이 지난 4·11 총선의 화제 중 하나다. 강원도의 국회의석 9석 전체가 새누리당 후보에게 돌아가서다. 강원도가 새누리당의 ‘붉은 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리라고 예측한 이는 드물었다.
새누리당 강원도당 측은 총선 한 달 전에 “확실한 우세는 철원·화천·양구·인제뿐이고, 춘천, 강릉은 위험하다. 나머지는 백중 열세다”라고 밝혔다.
이 역시 새누리당의 어설픈 ‘장밋빛 기대’라는 시각이 많았다.
당시 민주당 강원도당 측은 “춘천, 원주, 홍천·횡성을 비롯해 9석 중 6~7석은 민주당 차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원도의 ‘야성(野性)’은 2년 전에 입증된 상태였다.
강원도민들은 2010년 6·2지방선거와 7·28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었다. 민주당 후보였던 최문순(崔文洵)을 도지사로 뽑았고, 강원도 내 18개 시·군에 민주당 출신을 두루 앉혔다. 기초단체장은 당시 한나라당 10명·민주당 4명, 광역의원은 한나라당 20명·민주당 12명, 기초(시·군)의원은 한나라당 87명·민주당 36명을 뽑았다. 그간 강원도가 줄곧 한나라당 출신에게 표를 몰아 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놀랄 만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지난 2010년 선거 이후에 정치권은 ‘야도(野道)가 되어 버린 강원도’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이 열풍은 올해 총선에서 그대로 유지될 듯싶었다.
결과는 새누리당 대(對) 민주당이 9 대 0. 민주당의 완패이자, 새누리당의 예상치 못한 선전이다. 불과 2년 만에 강원도의 민심이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총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야성’이던 강원도는 왜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 준 것일까. 지난 5월 7~9일 강원도의 곳곳을 두루 다니며 40여 명의 도민을 만났다.
박근혜, 새누리당에 마음 떠난 보수층 모아
《강원일보》의 이성현 정치부 기자는 “박근혜한테 뚫렸다”고 했다.
“강원도가 2년 전에 민주당에 표를 몰아 줬지만 ‘야도’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또 민주당을 지지했다면 야도로 고착됐겠지만요. 강원도 민심은 누구 하나, 어디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보면 됩니다. 통상 투표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고, 과거에 무조건 한나라당을 지지했죠. DJ, 노무현 정부 때에 한나라당 출신인 김진선(金振?) 씨가 12년 도지사를 했습니다. 과거에는 분명 보수적이었지만 지금은 여도라고, 또는 야도라고 보기 어려운 곳이 됐습니다. 그보다는 정치적으로 ‘학습’된 상태라고 봅니다. 처음에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최소 5석을 가져간다는 분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영동(강릉)은 보수색이 세서 새누리당 차지로 봤고, 춘천·원주는 야성으로 분류했습니다. 과거에 민주당이 총선 후보를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보수적인 강원도였는데, 변화의 바람이 불었죠. 이번 총선에서는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에 지원한 후보가 더 많아서 민주당 후보 경선이 치열했죠.”
―선거 과정에서 달라졌습니까.
“박근혜가 지나가면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이 5% 정도 올라갔습니다. 박근혜가 기존의 표를 확대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마음이 떠났던 사람들을 결집시켰다고 봅니다. 선거 이후에 ‘강원도, 박근혜 원톱에 뚫렸다’라고 제목을 잡을까 고민했습니다. 민주당 사람들조차 속수무책이라고 했습니다. 박근혜의 대항마가 없었던 거죠.”
보수적인 강릉 vs. 野性 강한 원주
강원도의 9개 지역구는 춘천, 원주(갑·을), 홍천·횡성, 태백·영월·평창·정선, 강릉, 동해·삼척, 속초·고성·양양, 철원·화천·양구·인제다.
지역 전문가에 따르면, 강릉과 동해·삼척 등 영동 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강했고, 철원·화천·양구·인제는 군사적인 요충지여서 역시 여당세가 강하다. 반면 영서지역인 춘천과 원주는 지리적으로 수도권과 인접한 탓에 중앙정치의 바람을 많이 타는 곳이란다. 원주의 경우, 지난 2010년 선거에서 시장은 물론, 당선된 시의원 전체가 민주당 출신이었다. 태백·영월·평창·정선은 노무현 정부 실세였던 이광재(李光宰)의 지역구다.
취재에 응한 사람들은 “새누리당이 강원도에서 싹쓸이한 것도 신기하지만, 야성 동네인 원주와 춘천, 이광재의 지역구인 태영평정(강원도민들은 태백·영월·평창·정선을 이렇게 부른다)에서조차 민주당이 밀린 것이 더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안일했다”(춘천시의원)
지난 5월 7일 오후, 춘천시 조양동에 위치한 닭갈비 골목을 찾았다. 식사 시간이 지나서인지 가게 안은 한산했다. 한 가게의 50대 여사장은 “지난 번에는 민주당 후보, 이번에는 새누리당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고 했다.
“이번에도 민주당을 찍으려고 했지요. 경제 대통령이라 해서 뽑았는데 사는 게 어려워졌잖아요. 여기 골목도 예전만 못해요. 예전에는 외지인이 찾아와서 오후 3, 4시에도 장사되고 그랬는데. 민주당에서 MB정권 심판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싶기도 했지요. 근데 뭐 민주당 뽑아 놔 봐야 거기서 거기야. 지들인들 뾰족한 수가 있나. 그래서 (새누리당 후보) 찍었지.” 그는 “힘을 분산시켜야 한다. 다음번에는 다시 또 민주당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60대 택시기사는 이런 말을 했다.
“춘천이 살기야 좋지요. 그런데 국회의원이 뭐 해 놓은 것이 없어요. 인구도 원주에 밀리지, 참 좀 있으면 원주는 광역도시 된다 하더라고요. 원주는 밥맛 없어. 빨갱이들이 많잖아요. 그런 거에 비하면 춘천은 사람들도 좋고 한데 줏대가 없고, 안 뭉쳐져요. 만날 낭만 타령이나 하고 말예요. 이번에도 (새누리당이) 뺏길 뻔했어요. 박근혜 바람이 불어 겨우 막았지.”
이재수(李載洙) 춘천시의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소속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춘천의 소외심리, 심리적 박탈감은 은연중에 드러납니다. MB정부 들어서 심해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번에 이광재가 도지사에 당선될 때 춘천에도 바람이 불었어요. 노무현 열풍 때에도 춘천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앙 여론의 영향이 컸죠. 이번 총선 때도 새누리당에 인기가 있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의 안일한 대처가 문제였습니다. MB의 인기가 없고, 2년 전에 강원도 사람들이 민주당을 찍어 줬다고 낙관한 겁니다. 민주당이 강원도민의 기대치만큼 일하지 못했다는 지역 정서를 읽지 못한 거죠. 변화를 바라는 도민의 심리를 모른 겁니다. 선거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춘천 사람들이 민주당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당보다 후보 선호 경향 짙어”(김진태 춘천 당선자)
새누리당 당선자인 김진태(金鎭台)씨는 마침 지역구에 있었다.
김 당선자의 얘기다.
“춘천의 30대에는 반(反)새누리 정서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으로 정당을 불신임하는 유권자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가령 성향은 민주당이지만, 지지하는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라는 식(式)으로 말입니다. 강원도가 정치적으로 외면받는 지역이어서인지, 자신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후보에게 표심이 쏠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거 초기에 민주당 후보가 우세했다고 하던데요.
“공천받지 못한 후보가 무소속으로까지 나오면서 줄곧 혼선을 거듭해 온 지역입니다. 하지만 결국 보수가 결집한 것이 승리의 기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권자들 중에는 ‘내가 당신은 잘 모르지만, 박근혜 위해서 찍어 준다’고 대놓고 말하는 분도 여럿이었습니다.”
춘천 시내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 지역에서 3선(選), 4선씩 시켜 봐야 일을 안 해. 그러니까 자꾸 바꿔야 하는 거야. 그래도 강원도가 영 꽝은 아니야.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강원도 사람이잖아. 또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니까.”
“김용민 막말이 좀 세더라고요”(투표하지 않았다는 원주 20대)
춘천에서 원주까지는 자동차로 50분 정도 걸렸다. 춘천과 달리 20~30대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상지대, 연세대 원주캠퍼스 등 대학이 많아서인 것 같았다.
‘할리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여학생을 만났다. 그는 “서울에서 유학을 왔는데 등록금 혜택을 받으려 주소지를 원주로 이전했다”며 “이번에 투표를 하지 않아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고 하잖아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번에 투표를 하지 않았어요. 선거권을 행사할 후보가 없더라고요.”
―왜요.
“처음에는 민주당 찍으려고 했죠. 새누리당은 누가 봐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인터넷 뉴스에 김용민 얘기로 도배가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새누리당에서 선거전략으로 이용하나 보다 싶어서 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나꼼수’ 재밌어서 제 주변에서 듣는 사람 많거든요.”
―그런데요.
“저희(20대)는 어디 앉으면 핸드폰 꺼내는 세대거든요. 친구들끼리 수다 떨 때도 핸드폰 보면서 해요. 실시간으로 소식이 올라오는데 김용민 막말이 좀 세더라고요. 그런데 ‘나꼼수’ 무서워서 그런 사람을 계속 후보로 내세우는 민주당도 어이가 없고요. 아무리 새누리당이 싫어도 이런 사람을 국회에 보내겠다는 정당 후보를 양심상 못 찍겠다더라고요. 솔직히 투표에 불참한 20대 유권자들 대부분은 김용민 때문일 걸요?”
“나라 걱정하는 노년층이 결집”(김기선 원주갑 당선자)
원주갑 당선자 김기선(金起善)씨는 정당 생활이 30년 넘었다. 1981년 민정당에 입당했고, ‘강원 출신’ 이광재가 정권 실세이던 무렵에는 강원도 정무부지사(2003년~2005년)를 지냈다. 김 당선자는 “MB정부가 탄생했을 때 강원도민들의 기대가 컸었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원래 보수적인 동네입니다. 새누리당이 야당이던 시절에 강원도는 경상도 못지않은 힘을 몰아 줬습니다. 어두웠던 10년 동안 변함없이 지지했으니 MB정부에서 빚 갚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춘천~속초고속도로며, 고성연수원 문제며 강원도의 발전 과제가 무산됐습니다. 강원도가 국가 발전에 소외 지역이다, 늘 윗목에 밀려 있다는 피해의식이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자존심이 상한 겁니다. 원주가 유치하려던 첨단의료기계복합단지도 오성, 대구로 갔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2년 전에 강원도 사람들이 민주당을 밀었던 겁니다.”
―이번 선거도 초반에는 민주당이 유리할 것으로 봤다는데요.
“막상 민주당 출신을 뽑았는데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민주당의 여러 행태를 보면서 보수 성향의 분들이 나라 걱정을 강하게 하게 됐습니다. 제가 원주 출신으로 정당 생활만 30년이 넘는데 요즘처럼 노년층이 나라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유세를 다니다 보면 젊은층은 여전히 반 새누리, 반 MB정부더군요. 50대 이후의 보수 세력이 투표장으로 대거 나온 것이 승리를 이끌었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표가 전면에 등장하고, 강원도를 자주 찾아서 사람들의 결집을 공고히 했고요. 장노년층이 결집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힘들었다고 봅니다.”
원주 공영주차장에서 주차비를 받고 있던 70대 유권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젊은애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몰라요. 그러면 안 되는거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덕분에 나라가 이만큼 사는 건데 맨날 (시민)운동이나 한다고….”
“안 그런 사람(이광재)인 줄 알았는데 다 그렇죠 뭐.”
강원도 태백에 위치한 황지 자유시장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북적였다. 시장통 내에 소머리국밥 전문집이 즐비했다. 한 식당에 들러 취재차 왔다고 하자, 옆테이블에 앉은 아주머니들의 얘기가 시작됐다. 동네가 넓지 않아서인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이번에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더라고요.
“뭐 찍을 사람이 없드랬어요. 무슨 토론회 보니까 염동열(廉東烈·새누리당 당선자)이 말 잘하드래요. 예전처럼 이광재 찍을 것도 아니고, 새누리나 민주나 우리 잘살게 해주면 그뿐이지.”
―2년 전 도지사 때 이광재를 찍었나요.
“다 찍었드랬어요. 이광재가 여기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똑똑하고 아이템이 풍부하다 하던데요. 나이가 좀 젊어서 도지사할란가 싶었는데 어르신들이 다 찍어도 된다 했드래요. 강원도에 그만한 인물 없다면서요. 강원도에 모처럼 인물 나왔다고 다들 그랬어요. 맨날 어르신들이 인물 없다 타령을 했는데 하나 나왔다고. 그래서 찍었는데 이제 없어졌잖아요.”
―없어졌다니요.
“별로 (이광재에 대해) 말하는 사람 없어요. 돈 문제가 있다고 하드래요. 뇌물을 받았다고 하던가. 안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 그렇죠 뭐.”
태백시 더덕 조합상회를 운영하는 60대 여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역이 너무 낙후돼 있으니까 좀 나아질까 싶어서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지요. 이광재는 뭐, 그렇지 뭐. 도지사 시켰는데 금방 정지됐다고 하더라고요. 도지사 선거에 나왔을 때부터 재판하고 있었다데요. 그런 거 모르고 찍어 줬지요. 태백에는 공장도 없고 살기가 다들 어려우니까 잘살게 해 달라고 이번에 (새누리당) 찍었어요. 박근혜가 대통령을 해야 하니까, 니들(국회의원)이 박근혜 좀 도와주라는 뜻도 있었고요.”
보수적인 강원도는 지난 2010년, ‘44세’의 이광재를 강원도지사로 선출했다. 이광재는 후보자이던 시절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었고, 도지사에 당선되자 마자 직무정지를 당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강원도에서 ‘이광재’라는 이름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이광재에 대한 실망
강원도의회의 한 도의원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광재가 이번 선거에서 잠행하면서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태영평정에서는 많이 나섰다고 해요. 한때 강원도 사람들이 이광재한테 기대가 컸죠. 젊고 깨끗하고, 진실돼 보인다는 평이 많았는데 결국 사람 됨됨이가 다 알려졌잖습니까. 이광재에 대한 기대로 최문순까지 도지사로 뽑았지만, 정치 잘한다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최문순은 이광재보다 정치적이지 못하고, 성품은 온화하다고들 하는데 능력 면에서 검증된 게 없지요. 이광재가 20대 때부터 노무현 대통령 따라다니면서 꼼수만 발달하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지켜봤습니다. 본인은 선거운동을 했다지만 거기에 영향 받은 사람은, 글쎄요.”
김기선 원주갑 당선자도 “선거 기간 중에 이광재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광재의 지역구인 태영평정에서 당선된 염동열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지역은 이광재에 이어 연극인 출신인 최종원(崔鍾元)이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광재씨의 고향이라고 해도 아성을 지키기에는 3번의 스캔들이 컸습니다. 강원도민들이 한때 이광재에게 기대를 걸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부 마니아 계층은 남아 있겠지만, 중도층은 많이 퇴색됐습니다. 강원도민들의 과거 집권당에 대한 불만이 표출될 때 이광재라는 인물이 나왔고, 강원도민의 불평이 이광재를 통해서 터져 나왔습니다. 당시 도민들에게 ‘이광재=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표가 쏠렸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선거를 치르면서 이광재를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제게 호의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강원도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그들의 불만을 표현해 줄 ‘그 누군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당 바람을 불러일으킨 이 지역에 변화가 왔기 때문에, 강원도 전체가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원도의 피해의식
강원도 사람들을 여럿 만나면서 그들이 가진 미묘한 ‘소외감’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이 말끝마다 ‘다 그렇지 뭐’라든가 ‘우리야 뭐…’라는 식의 표현을 자주 했다. 문득 취재 초반에 “누가 집권하든지 우리는 변방”이라고 했던 한 공무원의 얘기가 떠올랐다.
강원도 주재 기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지역신문 1면 톱 제목이 ‘200명 고용창출 효과’였던 적이 있습니다. 중앙에서 보면 웃을 일이지만, 1면 톱으로 며칠 나갈 정도예요. 강원도민들 마음속에는 우리가 낙후돼 있다, 돈이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겁니다.”
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춘천에서 20여년 지낸 한 공무원의 얘기다.
“숱한 규제 속에서 살아온 게 강원도지요. 철원 같은 경우 도청 소재지 멀다는 것을 떠나서, 강원도라서 괜히 피해를 더 본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강원도법과 경기도법이 다르다는 것은 화천, 광덕 계곡을 가 보면 압니다. 광덕 계곡 밑으로는 경기도이고, 위로는 강원도 화천이에요. 경기도 쪽은 펜션이며, 숱한 가건물이 들어서서 장사를 하는데 강원도 쪽은 텐트만 치려고 해도 작살을 냅니다.”
―안보 문제 때문입니까.
“군사 문제에, 수도권 물 책임 문제죠. 그러다 보니까 강원도는 피해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한꺼번에 규제가 9개 걸려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예전 노인네들이야 그런가 보다, 국가보안법·연좌제 당연한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의식에서 깨우친 젊은이들이 중년이 되니까 달라진 겁니다. 이광재가 광풍을 일으킨 이유가 이광재가 잘나서, 사람들이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한나라당을 짝사랑한 정서가 깨질 무렵에 이광재라는 강원도 사람이 나온 거지요. 매번 한나라당 밀어줘 봐야 도대체 우리한테 돌아온 게 뭐냐는 생각을 하게 됐던 거지요. 그랬는데 가만히 보니 이광재나, 민주당 놈들이나 다 똑같아요. 도민들이 ‘다 지나가는 회오리였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새누리당을 찍어 준 것이 이번 결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새누리당을 찍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강원도민들은 또 다른 누군가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창에 관심 쏠려 춘천에 예산 줄어들까 걱정”
그런가 하면 강원도에는 지역들끼리 미묘한 지역감정도 존재했다.
춘천에서 만난 한 시민은 “평창올림픽 때문에 오히려 걱정”이라고 했다.
“평창올림픽 얘기가 계속 나오면 서울 사람들이 강원도가 이제 먹고살 만한가 보다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중앙정부에서 평창에 지원을 하다 보면 당연히 다른 강원도 지역에 주는 예산은 줄어들겠고요. 춘천은 평창올림픽 때문에 오히려 더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주에서 만난 한 시민은 “강원도에서 인구 숫자로는 원주가 가장 많은데, 도청 소재지가 춘천에 있다고 다들 시골쯤으로 생각한다”며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선 원주 한 곳이라도 광역시에 못지않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강원도가 나서서 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백시 철암동의 한 동사무소에서는 동네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마을 현안을 논의 중이었다. 태백시 보건소에 물리치료사를 상주시키는 문제, 탄광보존 마을의 활성화 방안, 외부 관광객 유치방안 등이 논의됐다. 참석자 중 한 명은 “철암동의 단풍이 참 아름다운데 단풍 축제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깝다. 한때 잘나갔던 철암이 이렇게 변한 것이 절망적이다. 방안을 내세워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에 몰표 준 강원도 한심”
강원도 평창에는 ‘동계올림픽 유치’의 열기가 한풀 수그러든 것 같았다. 마을 입구에 나부끼는 플래카드가 몇 달 전의 환희를 연상시킬 뿐이었다. 한 플래카드에는 ‘평창올림픽 유치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방안 토론회’가 열린다고 쓰여 있었다. 평창 사람들에게 올림픽도 올림픽이지만, 그로 인한 먹거리 확대가 더욱 심각한 이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창에 들어서자 부쩍 메밀막국수 가게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원조 막국수’ 집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말수가 적었다.
“올림픽 개최하게 됐다고 외지인이 많이 찾아오고 그랬드래요. 아직 (개최 때까지)시간이 많으니까 준비한다고 한바탕 찾아들 오겠지요.”
―태영평정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던데요.
“사람들 마음이 이리저리 변하니까. 어른들 말로는 전에 (국회의원)했던 사람이 영 가볍고 그랬다던데요. 강원도 망신이라고 끌끌 하던데요.”
반면 ‘평창 한우마을’에서 만난 30대 주부는 “요즘 이광재씨 인기가 없냐”고 묻자 발끈했다.
“이광재씨가 뭐를 잘못했나요. 인기가 없고 말고가 어딨어요.”
―이번에 새누리당 찍은 것도 그렇고, 통 이광재씨에 대해 얘기하는 분들이 없어서요.
“이번 결과에 대해서는 평창 사람으로서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광재씨야 지금 활동이 활발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지지자들은 있게 마련이죠. 같은 고향 사람인데 나쁜 말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투표소에 덜 나가서 그렇지, 다음번 선거에서는 또 달라질 거예요.”
평창 시내에서 좀 벗어난 곳에서 GS칼텍스 주유소를 운영하는 40대 사장은 “결과를 보고 암담했다”고 했다.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개표 결과를 봤는데 식당 주인이랑 한참 욕을 했습니다. 강원도 사람들이 아주 제정신이 아니라고요. 지난번에 힘을 한 번 보여주는가 싶더니 도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러니까 강원도는 세월이 지나도 천덕꾸러기 신세를 못 면하는 거 아닙니까. 저도 (새누리당) 안 찍었고, 식당 주인도 안 찍었다고 했습니다. 그럼 대체 어떤 강원도민들이 새누리당을 찍은 거냐면서 한참 욕을 했어요. 우리 스스로 한심하지요.”
“박근혜 인기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강원도 당선자)
강원도의 한 당선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박근혜 위원장을 보고 ‘선거의 여왕’이라고 하던데 이번에 여실히 느꼈습니다. 처음에 민주당 후보에 한참 밀리다가 겨우 지지율이 오차 범위 내로 들어왔을 때, 박 위원장이 지원유세를 왔습니다. 그 다음에 바로 제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저도 지역구에서 10년 이상 지내 왔는데 이 정도 인기인 줄 몰랐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박근혜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볼 수 있었다.
강원도 정선군 5일 장터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박근혜가 어차피 대통령이 돼야 하니까, 박근혜를 도와주라는 차원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뽑았다”고 했다.
스스로를 ‘민주당원 수준의 열혈팬’이라고 밝힌 춘천의 한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는 요즘도 ‘보릿고개’ 얘기를 합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말끝마다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이만큼 먹고 산다’는 얘기를 합니다. 강원도가 전국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던 만큼,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강한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먹고살게 해 줬듯이, 낙후된 오늘날의 강원도를 박근혜가 먹고살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염동열 당선자는 “강원도의 60~70대는 보수적 색채가 역력하다. 국민들이 어려웠을 때 갖고 있던 대통령이라는 개념이 강력하게 존재한다.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셨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는 태영평정의 한 유권자는 “오는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없었다면 또 민주당을 찍었겠지만, 박근혜 가는 길을 막고 싶지는 않아 새누리당을 찍었다”고 말했다. 강릉의 한 시의원은 “시골에서 박근혜는 영화배우다. 노인 인구가 절대적인 곳에서 타당 후보가 박근혜를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는 스스로를 ‘변방지역’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강원도의 떠오르는 태양이 되어 줄 ‘수퍼스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동안의 ‘정치적 학습효과’로 인해 유권자의 표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배웠다. ‘야도’로도 가 봤고, ‘여도’로도 돌아와 봤다. 이제 이들은 2012년 대선(大選)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강원도 원주시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 태백시 황지 자유시장에서 식사 배달 업무를 하는 30대 여성은 이랬다.
“민주당이 힘 없으니까 새누리당 찍었죠. 민주당 도지사도 뽑아 봤는데 그냥 그래요. 먹고살기가 어려우니까. 강원도에 박근혜(朴槿惠·이하 정치인 존칭 생략)가 여러 번 왔잖아요. 한 번 올 때마다 사람들이 확 뒤집히던데 뭐. 힘 없는 민주당 찍느니 박근혜 믿어 보자는 심정으로 투표했죠.”
이들의 말 속에는 강원도민이어서 느끼는 소외감, 여당과 야당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 그러면서도 강원도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오묘하게 섞여 있었다.
2년 만에 민심 이동
‘강원도의 선택’이 지난 4·11 총선의 화제 중 하나다. 강원도의 국회의석 9석 전체가 새누리당 후보에게 돌아가서다. 강원도가 새누리당의 ‘붉은 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리라고 예측한 이는 드물었다.
새누리당 강원도당 측은 총선 한 달 전에 “확실한 우세는 철원·화천·양구·인제뿐이고, 춘천, 강릉은 위험하다. 나머지는 백중 열세다”라고 밝혔다.
이 역시 새누리당의 어설픈 ‘장밋빛 기대’라는 시각이 많았다.
당시 민주당 강원도당 측은 “춘천, 원주, 홍천·횡성을 비롯해 9석 중 6~7석은 민주당 차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원도의 ‘야성(野性)’은 2년 전에 입증된 상태였다.
강원도민들은 2010년 6·2지방선거와 7·28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었다. 민주당 후보였던 최문순(崔文洵)을 도지사로 뽑았고, 강원도 내 18개 시·군에 민주당 출신을 두루 앉혔다. 기초단체장은 당시 한나라당 10명·민주당 4명, 광역의원은 한나라당 20명·민주당 12명, 기초(시·군)의원은 한나라당 87명·민주당 36명을 뽑았다. 그간 강원도가 줄곧 한나라당 출신에게 표를 몰아 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놀랄 만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지난 2010년 선거 이후에 정치권은 ‘야도(野道)가 되어 버린 강원도’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이 열풍은 올해 총선에서 그대로 유지될 듯싶었다.
결과는 새누리당 대(對) 민주당이 9 대 0. 민주당의 완패이자, 새누리당의 예상치 못한 선전이다. 불과 2년 만에 강원도의 민심이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총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야성’이던 강원도는 왜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 준 것일까. 지난 5월 7~9일 강원도의 곳곳을 두루 다니며 40여 명의 도민을 만났다.
박근혜, 새누리당에 마음 떠난 보수층 모아
《강원일보》의 이성현 정치부 기자는 “박근혜한테 뚫렸다”고 했다.
“강원도가 2년 전에 민주당에 표를 몰아 줬지만 ‘야도’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또 민주당을 지지했다면 야도로 고착됐겠지만요. 강원도 민심은 누구 하나, 어디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보면 됩니다. 통상 투표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고, 과거에 무조건 한나라당을 지지했죠. DJ, 노무현 정부 때에 한나라당 출신인 김진선(金振?) 씨가 12년 도지사를 했습니다. 과거에는 분명 보수적이었지만 지금은 여도라고, 또는 야도라고 보기 어려운 곳이 됐습니다. 그보다는 정치적으로 ‘학습’된 상태라고 봅니다. 처음에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최소 5석을 가져간다는 분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영동(강릉)은 보수색이 세서 새누리당 차지로 봤고, 춘천·원주는 야성으로 분류했습니다. 과거에 민주당이 총선 후보를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보수적인 강원도였는데, 변화의 바람이 불었죠. 이번 총선에서는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에 지원한 후보가 더 많아서 민주당 후보 경선이 치열했죠.”
―선거 과정에서 달라졌습니까.
“박근혜가 지나가면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이 5% 정도 올라갔습니다. 박근혜가 기존의 표를 확대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마음이 떠났던 사람들을 결집시켰다고 봅니다. 선거 이후에 ‘강원도, 박근혜 원톱에 뚫렸다’라고 제목을 잡을까 고민했습니다. 민주당 사람들조차 속수무책이라고 했습니다. 박근혜의 대항마가 없었던 거죠.”
보수적인 강릉 vs. 野性 강한 원주
강원도의 9개 지역구는 춘천, 원주(갑·을), 홍천·횡성, 태백·영월·평창·정선, 강릉, 동해·삼척, 속초·고성·양양, 철원·화천·양구·인제다.
지역 전문가에 따르면, 강릉과 동해·삼척 등 영동 지역은 전통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강했고, 철원·화천·양구·인제는 군사적인 요충지여서 역시 여당세가 강하다. 반면 영서지역인 춘천과 원주는 지리적으로 수도권과 인접한 탓에 중앙정치의 바람을 많이 타는 곳이란다. 원주의 경우, 지난 2010년 선거에서 시장은 물론, 당선된 시의원 전체가 민주당 출신이었다. 태백·영월·평창·정선은 노무현 정부 실세였던 이광재(李光宰)의 지역구다.
취재에 응한 사람들은 “새누리당이 강원도에서 싹쓸이한 것도 신기하지만, 야성 동네인 원주와 춘천, 이광재의 지역구인 태영평정(강원도민들은 태백·영월·평창·정선을 이렇게 부른다)에서조차 민주당이 밀린 것이 더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안일했다”(춘천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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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의원은 “민주당이 안일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한명숙 전 민주당 대표의 강원도 지원유세. |
“이번에도 민주당을 찍으려고 했지요. 경제 대통령이라 해서 뽑았는데 사는 게 어려워졌잖아요. 여기 골목도 예전만 못해요. 예전에는 외지인이 찾아와서 오후 3, 4시에도 장사되고 그랬는데. 민주당에서 MB정권 심판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싶기도 했지요. 근데 뭐 민주당 뽑아 놔 봐야 거기서 거기야. 지들인들 뾰족한 수가 있나. 그래서 (새누리당 후보) 찍었지.” 그는 “힘을 분산시켜야 한다. 다음번에는 다시 또 민주당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60대 택시기사는 이런 말을 했다.
“춘천이 살기야 좋지요. 그런데 국회의원이 뭐 해 놓은 것이 없어요. 인구도 원주에 밀리지, 참 좀 있으면 원주는 광역도시 된다 하더라고요. 원주는 밥맛 없어. 빨갱이들이 많잖아요. 그런 거에 비하면 춘천은 사람들도 좋고 한데 줏대가 없고, 안 뭉쳐져요. 만날 낭만 타령이나 하고 말예요. 이번에도 (새누리당이) 뺏길 뻔했어요. 박근혜 바람이 불어 겨우 막았지.”
이재수(李載洙) 춘천시의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소속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춘천의 소외심리, 심리적 박탈감은 은연중에 드러납니다. MB정부 들어서 심해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번에 이광재가 도지사에 당선될 때 춘천에도 바람이 불었어요. 노무현 열풍 때에도 춘천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앙 여론의 영향이 컸죠. 이번 총선 때도 새누리당에 인기가 있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의 안일한 대처가 문제였습니다. MB의 인기가 없고, 2년 전에 강원도 사람들이 민주당을 찍어 줬다고 낙관한 겁니다. 민주당이 강원도민의 기대치만큼 일하지 못했다는 지역 정서를 읽지 못한 거죠. 변화를 바라는 도민의 심리를 모른 겁니다. 선거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춘천 사람들이 민주당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당보다 후보 선호 경향 짙어”(김진태 춘천 당선자)
새누리당 당선자인 김진태(金鎭台)씨는 마침 지역구에 있었다.
김 당선자의 얘기다.
“춘천의 30대에는 반(反)새누리 정서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전체적으로 정당을 불신임하는 유권자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가령 성향은 민주당이지만, 지지하는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라는 식(式)으로 말입니다. 강원도가 정치적으로 외면받는 지역이어서인지, 자신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후보에게 표심이 쏠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거 초기에 민주당 후보가 우세했다고 하던데요.
“공천받지 못한 후보가 무소속으로까지 나오면서 줄곧 혼선을 거듭해 온 지역입니다. 하지만 결국 보수가 결집한 것이 승리의 기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유권자들 중에는 ‘내가 당신은 잘 모르지만, 박근혜 위해서 찍어 준다’고 대놓고 말하는 분도 여럿이었습니다.”
춘천 시내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 지역에서 3선(選), 4선씩 시켜 봐야 일을 안 해. 그러니까 자꾸 바꿔야 하는 거야. 그래도 강원도가 영 꽝은 아니야.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강원도 사람이잖아. 또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니까.”
“김용민 막말이 좀 세더라고요”(투표하지 않았다는 원주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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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 소재 대학에 다니는 한 여학생은 “김용민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용민의 유세 모습. |
‘할리스’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여학생을 만났다. 그는 “서울에서 유학을 왔는데 등록금 혜택을 받으려 주소지를 원주로 이전했다”며 “이번에 투표를 하지 않아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고 하잖아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번에 투표를 하지 않았어요. 선거권을 행사할 후보가 없더라고요.”
―왜요.
“처음에는 민주당 찍으려고 했죠. 새누리당은 누가 봐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인터넷 뉴스에 김용민 얘기로 도배가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새누리당에서 선거전략으로 이용하나 보다 싶어서 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나꼼수’ 재밌어서 제 주변에서 듣는 사람 많거든요.”
―그런데요.
“저희(20대)는 어디 앉으면 핸드폰 꺼내는 세대거든요. 친구들끼리 수다 떨 때도 핸드폰 보면서 해요. 실시간으로 소식이 올라오는데 김용민 막말이 좀 세더라고요. 그런데 ‘나꼼수’ 무서워서 그런 사람을 계속 후보로 내세우는 민주당도 어이가 없고요. 아무리 새누리당이 싫어도 이런 사람을 국회에 보내겠다는 정당 후보를 양심상 못 찍겠다더라고요. 솔직히 투표에 불참한 20대 유권자들 대부분은 김용민 때문일 걸요?”
“나라 걱정하는 노년층이 결집”(김기선 원주갑 당선자)
원주갑 당선자 김기선(金起善)씨는 정당 생활이 30년 넘었다. 1981년 민정당에 입당했고, ‘강원 출신’ 이광재가 정권 실세이던 무렵에는 강원도 정무부지사(2003년~2005년)를 지냈다. 김 당선자는 “MB정부가 탄생했을 때 강원도민들의 기대가 컸었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원래 보수적인 동네입니다. 새누리당이 야당이던 시절에 강원도는 경상도 못지않은 힘을 몰아 줬습니다. 어두웠던 10년 동안 변함없이 지지했으니 MB정부에서 빚 갚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춘천~속초고속도로며, 고성연수원 문제며 강원도의 발전 과제가 무산됐습니다. 강원도가 국가 발전에 소외 지역이다, 늘 윗목에 밀려 있다는 피해의식이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자존심이 상한 겁니다. 원주가 유치하려던 첨단의료기계복합단지도 오성, 대구로 갔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2년 전에 강원도 사람들이 민주당을 밀었던 겁니다.”
―이번 선거도 초반에는 민주당이 유리할 것으로 봤다는데요.
“막상 민주당 출신을 뽑았는데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민주당의 여러 행태를 보면서 보수 성향의 분들이 나라 걱정을 강하게 하게 됐습니다. 제가 원주 출신으로 정당 생활만 30년이 넘는데 요즘처럼 노년층이 나라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유세를 다니다 보면 젊은층은 여전히 반 새누리, 반 MB정부더군요. 50대 이후의 보수 세력이 투표장으로 대거 나온 것이 승리를 이끌었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표가 전면에 등장하고, 강원도를 자주 찾아서 사람들의 결집을 공고히 했고요. 장노년층이 결집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힘들었다고 봅니다.”
원주 공영주차장에서 주차비를 받고 있던 70대 유권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젊은애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몰라요. 그러면 안 되는거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덕분에 나라가 이만큼 사는 건데 맨날 (시민)운동이나 한다고….”
“안 그런 사람(이광재)인 줄 알았는데 다 그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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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지사(오른쪽)와 그를 지원한 이광재 전 지사. |
―이번에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더라고요.
“뭐 찍을 사람이 없드랬어요. 무슨 토론회 보니까 염동열(廉東烈·새누리당 당선자)이 말 잘하드래요. 예전처럼 이광재 찍을 것도 아니고, 새누리나 민주나 우리 잘살게 해주면 그뿐이지.”
―2년 전 도지사 때 이광재를 찍었나요.
“다 찍었드랬어요. 이광재가 여기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똑똑하고 아이템이 풍부하다 하던데요. 나이가 좀 젊어서 도지사할란가 싶었는데 어르신들이 다 찍어도 된다 했드래요. 강원도에 그만한 인물 없다면서요. 강원도에 모처럼 인물 나왔다고 다들 그랬어요. 맨날 어르신들이 인물 없다 타령을 했는데 하나 나왔다고. 그래서 찍었는데 이제 없어졌잖아요.”
―없어졌다니요.
“별로 (이광재에 대해) 말하는 사람 없어요. 돈 문제가 있다고 하드래요. 뇌물을 받았다고 하던가. 안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 그렇죠 뭐.”
태백시 더덕 조합상회를 운영하는 60대 여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역이 너무 낙후돼 있으니까 좀 나아질까 싶어서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지요. 이광재는 뭐, 그렇지 뭐. 도지사 시켰는데 금방 정지됐다고 하더라고요. 도지사 선거에 나왔을 때부터 재판하고 있었다데요. 그런 거 모르고 찍어 줬지요. 태백에는 공장도 없고 살기가 다들 어려우니까 잘살게 해 달라고 이번에 (새누리당) 찍었어요. 박근혜가 대통령을 해야 하니까, 니들(국회의원)이 박근혜 좀 도와주라는 뜻도 있었고요.”
보수적인 강원도는 지난 2010년, ‘44세’의 이광재를 강원도지사로 선출했다. 이광재는 후보자이던 시절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었고, 도지사에 당선되자 마자 직무정지를 당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강원도에서 ‘이광재’라는 이름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이광재에 대한 실망
강원도의회의 한 도의원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광재가 이번 선거에서 잠행하면서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태영평정에서는 많이 나섰다고 해요. 한때 강원도 사람들이 이광재한테 기대가 컸죠. 젊고 깨끗하고, 진실돼 보인다는 평이 많았는데 결국 사람 됨됨이가 다 알려졌잖습니까. 이광재에 대한 기대로 최문순까지 도지사로 뽑았지만, 정치 잘한다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최문순은 이광재보다 정치적이지 못하고, 성품은 온화하다고들 하는데 능력 면에서 검증된 게 없지요. 이광재가 20대 때부터 노무현 대통령 따라다니면서 꼼수만 발달하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지켜봤습니다. 본인은 선거운동을 했다지만 거기에 영향 받은 사람은, 글쎄요.”
김기선 원주갑 당선자도 “선거 기간 중에 이광재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광재의 지역구인 태영평정에서 당선된 염동열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지역은 이광재에 이어 연극인 출신인 최종원(崔鍾元)이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광재씨의 고향이라고 해도 아성을 지키기에는 3번의 스캔들이 컸습니다. 강원도민들이 한때 이광재에게 기대를 걸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부 마니아 계층은 남아 있겠지만, 중도층은 많이 퇴색됐습니다. 강원도민들의 과거 집권당에 대한 불만이 표출될 때 이광재라는 인물이 나왔고, 강원도민의 불평이 이광재를 통해서 터져 나왔습니다. 당시 도민들에게 ‘이광재=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표가 쏠렸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선거를 치르면서 이광재를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제게 호의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강원도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그들의 불만을 표현해 줄 ‘그 누군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당 바람을 불러일으킨 이 지역에 변화가 왔기 때문에, 강원도 전체가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원도의 피해의식
강원도 사람들을 여럿 만나면서 그들이 가진 미묘한 ‘소외감’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이 말끝마다 ‘다 그렇지 뭐’라든가 ‘우리야 뭐…’라는 식의 표현을 자주 했다. 문득 취재 초반에 “누가 집권하든지 우리는 변방”이라고 했던 한 공무원의 얘기가 떠올랐다.
강원도 주재 기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지역신문 1면 톱 제목이 ‘200명 고용창출 효과’였던 적이 있습니다. 중앙에서 보면 웃을 일이지만, 1면 톱으로 며칠 나갈 정도예요. 강원도민들 마음속에는 우리가 낙후돼 있다, 돈이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겁니다.”
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춘천에서 20여년 지낸 한 공무원의 얘기다.
“숱한 규제 속에서 살아온 게 강원도지요. 철원 같은 경우 도청 소재지 멀다는 것을 떠나서, 강원도라서 괜히 피해를 더 본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강원도법과 경기도법이 다르다는 것은 화천, 광덕 계곡을 가 보면 압니다. 광덕 계곡 밑으로는 경기도이고, 위로는 강원도 화천이에요. 경기도 쪽은 펜션이며, 숱한 가건물이 들어서서 장사를 하는데 강원도 쪽은 텐트만 치려고 해도 작살을 냅니다.”
―안보 문제 때문입니까.
“군사 문제에, 수도권 물 책임 문제죠. 그러다 보니까 강원도는 피해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한꺼번에 규제가 9개 걸려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예전 노인네들이야 그런가 보다, 국가보안법·연좌제 당연한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의식에서 깨우친 젊은이들이 중년이 되니까 달라진 겁니다. 이광재가 광풍을 일으킨 이유가 이광재가 잘나서, 사람들이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한나라당을 짝사랑한 정서가 깨질 무렵에 이광재라는 강원도 사람이 나온 거지요. 매번 한나라당 밀어줘 봐야 도대체 우리한테 돌아온 게 뭐냐는 생각을 하게 됐던 거지요. 그랬는데 가만히 보니 이광재나, 민주당 놈들이나 다 똑같아요. 도민들이 ‘다 지나가는 회오리였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새누리당을 찍어 준 것이 이번 결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새누리당을 찍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강원도민들은 또 다른 누군가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창에 관심 쏠려 춘천에 예산 줄어들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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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시 철암동 동사무소에서 회의중인 주민들. |
춘천에서 만난 한 시민은 “평창올림픽 때문에 오히려 걱정”이라고 했다.
“평창올림픽 얘기가 계속 나오면 서울 사람들이 강원도가 이제 먹고살 만한가 보다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중앙정부에서 평창에 지원을 하다 보면 당연히 다른 강원도 지역에 주는 예산은 줄어들겠고요. 춘천은 평창올림픽 때문에 오히려 더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주에서 만난 한 시민은 “강원도에서 인구 숫자로는 원주가 가장 많은데, 도청 소재지가 춘천에 있다고 다들 시골쯤으로 생각한다”며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선 원주 한 곳이라도 광역시에 못지않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강원도가 나서서 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백시 철암동의 한 동사무소에서는 동네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마을 현안을 논의 중이었다. 태백시 보건소에 물리치료사를 상주시키는 문제, 탄광보존 마을의 활성화 방안, 외부 관광객 유치방안 등이 논의됐다. 참석자 중 한 명은 “철암동의 단풍이 참 아름다운데 단풍 축제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깝다. 한때 잘나갔던 철암이 이렇게 변한 것이 절망적이다. 방안을 내세워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에 몰표 준 강원도 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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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계올림픽 개최에 못지않게 지역 경기 활성화가 이슈임을 알 수 있다. |
평창에 들어서자 부쩍 메밀막국수 가게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원조 막국수’ 집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말수가 적었다.
“올림픽 개최하게 됐다고 외지인이 많이 찾아오고 그랬드래요. 아직 (개최 때까지)시간이 많으니까 준비한다고 한바탕 찾아들 오겠지요.”
―태영평정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던데요.
“사람들 마음이 이리저리 변하니까. 어른들 말로는 전에 (국회의원)했던 사람이 영 가볍고 그랬다던데요. 강원도 망신이라고 끌끌 하던데요.”
반면 ‘평창 한우마을’에서 만난 30대 주부는 “요즘 이광재씨 인기가 없냐”고 묻자 발끈했다.
“이광재씨가 뭐를 잘못했나요. 인기가 없고 말고가 어딨어요.”
―이번에 새누리당 찍은 것도 그렇고, 통 이광재씨에 대해 얘기하는 분들이 없어서요.
“이번 결과에 대해서는 평창 사람으로서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광재씨야 지금 활동이 활발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지지자들은 있게 마련이죠. 같은 고향 사람인데 나쁜 말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투표소에 덜 나가서 그렇지, 다음번 선거에서는 또 달라질 거예요.”
평창 시내에서 좀 벗어난 곳에서 GS칼텍스 주유소를 운영하는 40대 사장은 “결과를 보고 암담했다”고 했다.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개표 결과를 봤는데 식당 주인이랑 한참 욕을 했습니다. 강원도 사람들이 아주 제정신이 아니라고요. 지난번에 힘을 한 번 보여주는가 싶더니 도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러니까 강원도는 세월이 지나도 천덕꾸러기 신세를 못 면하는 거 아닙니까. 저도 (새누리당) 안 찍었고, 식당 주인도 안 찍었다고 했습니다. 그럼 대체 어떤 강원도민들이 새누리당을 찍은 거냐면서 한참 욕을 했어요. 우리 스스로 한심하지요.”
“박근혜 인기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강원도 당선자)
강원도의 한 당선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박근혜 위원장을 보고 ‘선거의 여왕’이라고 하던데 이번에 여실히 느꼈습니다. 처음에 민주당 후보에 한참 밀리다가 겨우 지지율이 오차 범위 내로 들어왔을 때, 박 위원장이 지원유세를 왔습니다. 그 다음에 바로 제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저도 지역구에서 10년 이상 지내 왔는데 이 정도 인기인 줄 몰랐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박근혜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볼 수 있었다.
강원도 정선군 5일 장터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박근혜가 어차피 대통령이 돼야 하니까, 박근혜를 도와주라는 차원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뽑았다”고 했다.
스스로를 ‘민주당원 수준의 열혈팬’이라고 밝힌 춘천의 한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는 요즘도 ‘보릿고개’ 얘기를 합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말끝마다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이만큼 먹고 산다’는 얘기를 합니다. 강원도가 전국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이었던 만큼,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강한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먹고살게 해 줬듯이, 낙후된 오늘날의 강원도를 박근혜가 먹고살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염동열 당선자는 “강원도의 60~70대는 보수적 색채가 역력하다. 국민들이 어려웠을 때 갖고 있던 대통령이라는 개념이 강력하게 존재한다.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어머니, 아버지가 모두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셨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는 태영평정의 한 유권자는 “오는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없었다면 또 민주당을 찍었겠지만, 박근혜 가는 길을 막고 싶지는 않아 새누리당을 찍었다”고 말했다. 강릉의 한 시의원은 “시골에서 박근혜는 영화배우다. 노인 인구가 절대적인 곳에서 타당 후보가 박근혜를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는 스스로를 ‘변방지역’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강원도의 떠오르는 태양이 되어 줄 ‘수퍼스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동안의 ‘정치적 학습효과’로 인해 유권자의 표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배웠다. ‘야도’로도 가 봤고, ‘여도’로도 돌아와 봤다. 이제 이들은 2012년 대선(大選)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