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전망] 4·11 총선서 드러난 ‘세대투표’와 박근혜 : 월간조선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이다.”

승리의 여신(女神) 니케(Nike)의 말이다. 박근혜(朴槿惠) 새누리당 의원은 여신의 앞머리를 낚아챌 수 있을까. 지금 그녀에겐 승리의 여신 니케의 무성한 머리칼이 코앞에서 잡힐 듯 보인다. 절호의 기회다. 4·11 총선은 박 의원이 진정한 ‘선거의 여왕’임을 재확인시켰다. 10% 이상의 지지율을 구가하던 통합진보당은 자체 내분으로 인해 어처구니없이 몰락했다. 민주통합당 역시 뚜렷한 대선주자 없이 지리멸렬이다. 누가 그녀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 원장과 김두관(金斗官) 경남도지사도 현재까진 ‘글쎄’인 상황이다.

그러면 박 의원이 18대 대통령에 ‘골인’할까. 현재 전망은 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란 제목의 노래 가사처럼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느낌이다. 혹자에겐 ‘이거는 (왠지, 뭔가 왠지) 뭔가 아니다 싶은’ 느낌일 테다. 딱히 표현하기 어렵지만 ‘박근혜 카드’가 시쳇말로 ‘쌈박’하거나 ‘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유권자의 60%를 차지하는 2040세대의 속내가 딱 이렇다.

“부산을 주목하라”

지난 4·11 총선을 복기해 보자. 우선 투표율을 보면, 지난 18대 총선(최종투표율 46.1%)과 비교했을 때, 최종투표율 54.3%로 8.2%포인트나 올랐다. 2010년의 지방선거(최종투표율 54.5%)와 비슷한 수준이다. 즉 2010년부터 투표율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의 45.0%, 30대의 41.8%가 투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8대 총선의 20대 투표율 28.1%, 30대 투표율 35.5%보다 각각 16.9%포인트, 6.3%포인트 상승했다. 트위터(Twitter)와 페이스북(Facebook)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이 확인된 대목이다.

물론 4·11 총선에서 SNS가 전국 판세를 흔들진 못했다. 그러나 서울, 경기, 부산에선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부산의 투표율이 눈에 띄게 올랐다. 부산의 투표율은 18대에선 42.9%였으나 19대에선 54.6%를 기록해 11.7%포인트 상승했다. 서울의 상승폭(18대 45.8%→19대 55.5%)보다 높았다. 그 결과 민주통합당은 부산에서 비록 문재인(文在寅·55.0% 득표율) 조경태(趙慶泰·58.2% 득표율) 등 지역구 2석밖에 건지지 못했지만, 문성근(文盛瑾), 김영춘(金榮春), 김정길(金正吉) 후보와 더불어 야권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다. SNS를 통한 여론몰이와 ‘투표 인증샷’ 등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다.

4·11 총선에서 부산의 정당투표 득표율을 보면 새누리당 51.31%, 민주통합당 31.78%, 통합진보당 8.42%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40.2%’에 이르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18대 총선에서 부산지역 정당별 득표율이 한나라당 43.52%, 민주당 12.73%, 자유선진당 5.19%, 민주노동당 5.28%, 창조한국당 3.76%, 친박연대 22.57%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전이다. 당시엔 보수표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자유선진당+친박연대’가 71.28%에 달했다. 야권 지지세는 ‘민주당+민주노동당=18.01%’에 그쳤다.

서울과 경기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은 새누리당(42.28%)과 자유선진당(2.11%)을 합하면 44.39%다. 민주통합당(38.16%)과 통합진보당(10.56%)의 합은 48.72%다. 경기도는 새누리당(42.35%)과 자유선진당(2.16%)을 합친 결과가 44.51%였고, 민주통합당(37.74%)과 통합진보당(11.01%)은 48.75%로, ‘보수 성향’의 표보다 ‘진보 성향’의 표가 더 많았다.

이 결과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새누리당(42.8%)+자유선진당(3.23%)=46.03%다. 민주통합당(36.45%)+통합진보당(10.3%)=46.75%로 야권표가 0.72%포인트 더 많다. 만약 4·11 총선이 대선이었다면 새누리당 후보는 야권 단일후보에게 아슬아슬하게 패배했을 것이다.

‘계급투표’와 ‘세대투표’

많은 선거전문가가 박 의원의 대선 낙승(樂勝)을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세대투표’ 때문이다. 더구나 12월 대선에선 SNS 가입자 1000만명 시대를 맞게 된다. 2040세대의 투표율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들은 SNS를 통해 ‘소통’하고 ‘연대’할 것이다.

이른바 ‘계급투표’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세대투표’다. ‘계급투표’는 계급별 맞춤 정책을 통해 극복할 수도 있지만, 세대투표에선 세대별 맞춤 정책을 내놓아도 20대가 50대와 같은 정치적 선택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대가 어떻게 50대처럼 생각할 수 있겠나. 2040세대와 5090세대는 ‘전혀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2040세대에겐 진보만이 대안일까.

오스트리아 작가 카를 크라우스(Karl Kraus)는 “내가 만약 두 개의 악(惡) 중에서 덜 악한 것을 택해야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야권의 패착(敗着)이 있다. 지난 4·11 총선에서 야권은 2040세대를 자신들의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갖고 놀 수 있다는 오만에 빠졌다.

한미(韓美)FTA 철폐를 주장하고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반대하며 ‘나꼼수(나는꼼수다)’에 열광하는 ‘극(極)진보층’은 SNS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극단적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 일부의 과격한 주장에 의해 SNS가 점령되자 야권은 착각했다. 그들이 2040세대의 진정한 대변자인 것으로.

이미 트위터와 페이스북 가입자가 각 600만을 넘어섰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라는 단일색깔로 결코 묶어질 수 없다. 소수의 극렬주의자는 다수의 SNS 이용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선동했지만 실패했다.

거듭 강조컨대 SNS 공간은 정치적 선동의 장이 아니다.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상식 대(對) 비(非)상식의 장’이다. 야권은 ▲한미FTA 폐기 ▲제주해군기지 반대 ▲김용민 막말 파문 등에 휘둘리며 2040세대 상당수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 대가는 처절했다. 결국 4·11 총선에서 박 의원은 질 뻔한 선거를 이겼고, 야권은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졌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을 탄생시키고, 4·11 총선에서 야권연대의 득표수가 ‘조금이라도 더 많을 수 있도록’ 허락해 세대투표의 주역으로 떠오른 ‘2040의 정치적 선택’은 무엇일까.

선거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요약하면 “20~40대는 월드컵의 붉은악마와 촛불집회 등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했는데, 그들은 권위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논리이다. 또 다른 논리는 “신(新)자유주의의 패배자가 된 2040세대의 ‘1 대 99’ 사회에 대한 증오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상당히 일리 있는 분석이다.

경제민주화 先占한 박근혜

보수정당이 2040을 잡을 수 있는 해법은 의외로 금방 나온다. ‘권위주의적 정치구조의 해체’와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난 ‘경제민주화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정치적 지점을 현 정치권에서 가장 정확하게 아는 인물이 박근혜 의원이라는 사실이다. 민주노동당 창당의 주역이자 진보정객인 주대환(周大煥)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자본주의 4.0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박근혜”라며 “박근혜 의원, 유승민 의원, 이혜훈 의원 등 새누리당이 잘하고 있다”고 예상 밖의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박 의원은 4·11 총선 내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권위주의 탈피’와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생애주기별 복지’라는 개념을 선점해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 행복’을 설파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2040세대는 박 의원에게 거리감을 두고 있다. 왜일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그런 정치적 불신도 있을 수 있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세대투표의 본질을 분명히 정의하고 그들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2040의 ‘아비투스’

2040세대가 박근혜 또는 새누리당 후보를 찍는다는 것은 세대 정서에 맞질 않는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자신들을 철저히 구별짓고 싶어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Bourdieu)가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서 말한 바로 그 ‘구별짓기’다.

이들은 보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논리 자체를 거부한다. 보수냐 진보냐 중에서 선택하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택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도 대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SNS상에서 ‘투표인증샷’ 놀이가 일어나고 우르르 투표장으로 몰려가다 보니 굳이 선택한 정당이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었을 뿐이다.

2040세대가 ‘(기성세대와) 구별짓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공간(SNS)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언어를 쓰면서 특유의 정치적 ‘아비투스(habitus)’로 정치적 의견을 교환하고 연대한다. 이때 이들에겐 정치도 ‘감각의 취향’이 중요하다.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란 ‘계급과 개인의 의식을 연결하기 위한 개념’으로, ‘특정집단의 기질, 즉 문화적 취향과 독특한 생활방식, 지각, 이해를 구성하는 요소’다. 조종혁(趙鍾赫)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미디어 아비투스와 상징적 폭력》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동일한 계급의 구성원들은 인지, 태도, 행위의 속성, 의지, 지각과 판단, 취향, 사물의 구별짓기 등에서 상호유사성을 공유한다. 이 유사성은 계급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담론과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그것의 자연화라는 다분히 무의식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르디외는 바로 이 계급과 문화적 성향들 사이에서 내재한 연결된 고리를 아비투스라 칭한다. 아비투스란 인간의 육체에 각인된 기질(body disposition), 혹은 체화(體化)한 성향, 혹은 체질 같은 것을 의미한다.”

조 교수는 “아비투스는 개인이 처한 객관적 사회구조로서의 계급과 개인의 자율성을 함께 고려한 ‘집합적 무의식의 성향(collective unconscious)’ 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구별짓기》를 옮긴 최종철은 “아비투스는 고도로 생성적(生成的)이어서 스스로 변동을 겪으면서 조건화의 객관적 논리를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뭔가 진보적이면서도 세련됨’

도대체 2040의 정치적 아비투스는 무엇일까. 답은 ‘뭔가 진보적이면서도 세련됨’이다. 이걸 정치평론가 박성민(朴聖珉) ‘민’ 대표는 ‘쿨한 강남성(性)’이라고 표현했다. ‘강남좌파’로 불리는 서울대 법대 조국(曺國) 교수, 피아노 치는 이정희(李正姬) 전(前)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孔枝泳)씨,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자’는 안철수 원장 등이 그들이다.

물론 이정희 전 대표는 최근 당내 부정선거 논란으로 ‘진보의 아이콘’에서 ‘타락한 꼬마 악마’로 추락했고, 나꼼수에 끌려 다닌 조 교수와 공씨 또한 4·11 총선에서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초기 나꼼수가 2040의 정치적 아비투스에 부합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공론의 장으로 나오면서 2040의 세련된 정치취향(?)으로부터 멀어졌다.

2040의 정치적 아비투스는 이념적 진영논리에 빠져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 못하고 ‘내 편과 네 편만 가르는’ 보수·진보 양 진영의 촌스러운, 시대착오적인 정치인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싶은 것이다.

박근혜 의원은 어떤가.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2040이 같은 세대에게 “(나는)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 쪽팔리는 일’이다. 박 의원의 정치적 역량을 폄하해서가 아니다. ‘왠지 그렇다’는 것이다. 딱히 꼬집을 순 없지만, ‘여하튼 새누리당스러움’이다. 뭔지 모르게 ‘구태하고 촌스럽고 산뜻하지 않은’, 소위 ‘쿨한 강남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게 바로 2040의 정치적 아비투스다.

박 의원이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2040의 정치적 취향에 부합하는 ‘진보적 느낌의 세련됨’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의 적(敵)은 결국 박근혜다. 야권은 어떤가. ‘문재인+안철수’ 조합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여전히 박근혜는 1% 부족하고 야권조합은 신기루처럼 ‘불확실’하다. 그래서 ‘박근혜 대망론’은 이르고, ‘야권 필패론’은 성급하다. 돈이 없어도 스타벅스 커피와 브런치와 와인을 즐기고, 탤런트 이미숙의 17세 연하남 불륜설을 ‘쿨하게’ 용납할 줄 아는 2040에게 한국 정치는 정말 ‘후지다’.

2040의 정치적 아비투스, 아니 ‘취향’이라고 해도 좋다. 거기에 집권의 해답이 있다. 박근혜든 안철수든, 또 다른 제3의 인물이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