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 鄭東基前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를 둘러싼 黨靑氣싸움의 전말 : 월간조선

2011년 1월 1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는 정동기(鄭東基) 감사원장 후보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 이틀 뒤 정 후보가 사퇴했다. 정 후보의 사퇴 며칠 뒤 정진석(鄭鎭碩) 당시 정무수석이 이명박(李明博) 대통령에게 정 후보와 위로의 저녁식사 자리를 갖겠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혼자 인간적인 척하지 마. 마음이 아파도 내가 더 아파. 내가 그 사람 왜 지명했는지 알아? 그 사람이 한양대 출신이야. 검찰에 한양대 출신이 몇 명이나 있나? 그 사람은 완전히 비주류야. 그런 사람이 그 자리에까지 올라가려고 얼마나 자기관리를 잘했겠어?

(감사원장 후보로) 이름이 올라온 사람 중에 그 사람처럼 자기관리 잘한 사람이 없어. 나하고 가깝다고 감사원장 시키려 한 게 아냐. 정치인들이 자기들은 얼마나 깨끗하다고 정동기를 시비하나. 정치인들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해. 정말 그 사람이 감사원장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김연광(金演光) 전(前) 청와대 정무 1비서관이 최근 자신이 공직에 진출한 후 겪었던 일화들을 묶어 펴낸 《오늘을 선택하는 사람, 내일을 선택하는 사람》에서 공개한 비화다.

당시 정 감사원장 후보 내정에서 사퇴까지의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상당한 갈등을 노정시켰다. 집권여당이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해 사퇴의견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청 간 사전협의 절차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청와대는 당으로부터 사후통보를 받았다. 청와대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시 홍상표(洪相杓) 홍보수석 이름으로 “당이 보여준 절차와 방식에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발표했을 정도다.

김 전 비서관은 이 사태와 관련해 책에서 “한나라당의 완벽한 기습이었다”고 술회했다. 정 후보 지명과 관련, 가장 긴박했고 당·청이 첨예하게 충돌했던 날인 2011년 1월 10일을 중심으로 한 김 전 비서관의 증언이다.

이날 이른 아침 김 비서관은 정진석 정무수석과 마주 앉았다. 늘 있는 일이었다. 이날 아침 두 사람은 당시 현안이었던 정 감사원장 후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광씨, 정동기 어떻게 하지.

“포기해야죠. 지난 정권 때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의 비서(민정수석)를 지낸 문재인씨를 법무장관에 임명하려다가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파국을 맞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비서(민정수석)를 지낸 정동기씨를 감사원장에 앉히려는 건데 감사원장은 법무장관에 비해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필요한 자립니다.”

―내가 한나라당 지도부를 좀 더 설득하는 건 어떨까.

“한나라당이 청문회에서 정동기 후보자를 지켜 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접촉해 보니 홍준표 최고위원을 비롯해서 한나라당 사람들이 다들 냉랭합니다. 설득은 물 건너 갔습니다.”

―지금 (대통령께) 중도사퇴 이야기를 꺼내야 되나.

“오늘 하셔야죠. ‘국회청문회까지 억지로 갈 수는 있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인준 동의안을 가결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VIP께 보고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난 정권 때 문재인 사태가 있지 않습니까.”

―오케이, 아무래도 그렇게 가는 수밖에 없겠지.

청와대를 향한 한나라당의 일방 통고

김연광 전 대통령 정무1비서관이 펴낸 《오늘을 선택하는 사람, 내일을 선택하는 사람》.

김 비서관과 이야기를 나눈 정 수석은 곧바로 이어진 정무수석실 비서관 회의를 마치고 대통령실로 향했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정 후보의 중도사퇴 이야기를 대통령 앞에서 꺼내는 게 이날 정 수석의 중요 임무 중 하나였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내정 후 한나라당이 ‘정동기 임명’에 반기를 들려는 조짐은 사전에 감지되고 있었다. 정 수석은 한나라당에 정 후보의 인사청문회를 하루만 실시해 줄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지금 같은 정치풍토하에서 이틀간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견뎌 낼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인사청문회를 이틀 동안 한다는 데 동의해 주었다. 정 후보에 대한 보호막 제공을 집권여당이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정 수석이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뜬 후 김 비서관은 잠깐 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원희룡(元喜龍)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전화였다. 원 총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김 비서관, 정진석 수석 전화가 안 되네요.

“본관에서 VIP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 중이라, 전파방해로 통화가 안 됩니다.”

―이거 참. 빨리 정 수석하고 통화를 해야 하는데 어떡하죠.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죠.”

―지금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는 사퇴해야 한다”고 결의했습니다. 사실 오늘 최고위원 회의에서 정동기 이야기가 가급적 안 나오게 하려고 제가 회의 시작 전에 사전점검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최고위원 한 사람이 얘기를 꺼내니까, 순식간에 만장일치로 반대가 이뤄졌습니다. 지금 안형환 대변인이 기자실로 내려가서 발표하려고 합니다. 정진석 수석에게 빨리 알려 드려야 하는데.

한나라당에 기습당한 청와대

김 비서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뒤통수를 몽둥이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원 총장에게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총장님, 지금 무슨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대한민국은 헌법이 정해 놓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입니다. 집권 여당이 마음대로 이끌어 가는 내각제 국가가 아닙니다. 더구나 이건 대통령의 인사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해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가 반대의결을 했다는 게 도대체 무슨 얘기입니까. 결의했다는 사실을 발표하실 겁니까. 잠시 ‘홀드’하십시오.”

―아니, 지금 ‘홀드’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안형환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발표하겠다고 통보를 했고, 회의장을 떠난 몇몇 최고위원들이 기자들을 만나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총장님, 잘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최고위원회가 설사 의결을 했더라도,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천양지차입니다. 최고위원들이 개인적으로 기자들에게 설명하더라도 ‘정동기 관련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정도로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공식발표 하지 말고 잠시 ‘홀드’ 하십시오.”

―나 참,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니까요.

원 총장과 통화하면서 김 비서관은 한나라당 지도부가 청와대와 상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방통보 수순을 밟고 있다는 심증이 굳어졌다고 한다.

김 비서관은 “아무리 급하더라도 대통령에게 보고는 하고 나서 당이 발표해야 하는 게 예의 아니냐”며 계속 ‘홀드’를 요청했다고 한다.

“총장님, 지금 청와대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동기를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입장이 아닙니다. 정진석 수석이 지금쯤 대통령께 정동기 후보 중도사퇴를 고려해야 한다고 보고하고 있을 겁니다. 당 지도부가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면 수용할 자세가 돼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청와대와 당이 이렇게 정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원 총장의 대답은 “발표를 미루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김 비서관은 청와대 본관으로 숨차게 달려가 잠시 회의장을 빠져나온 정진석 수석에게 원 총장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보고하면서 “지금 제일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최고위원 회의 의결결과 발표를 막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정 수석은 빈방에 들어가 원 총장과 유선 통화를 했다. 정 수석의 목소리가 방 밖까지 들렸다.

“원 총장, 당신 정치를 어디서 이따위로 배웠어?”

정 수석이 통화를 끝내고 대통령 집무실로 가서 한나라당 최고위원 회의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그 순간 안형환 대변인은 최고위원 회의 의결결과를 발표하고 있었다. 청와대로서는 완벽한 기습을 당한 것이었다.

외로운 재정건전성 확보 주의자 白容鎬

김 비서관은 정무 쪽과 정책 쪽의 사안별 접근 시각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반값 등록금’ 문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황우여(黃祐呂) 의원이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당선된 후 느닷없이 들고 나온 ‘반값 등록금’ 문제 때 청와대 백용호(白容鎬)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반응은 이랬다고 한다.

“반값 등록금과 대학 구조조정은 함께 가야 한다. 대학 진학률이 80% 이상인 상황에서 대학등록금을 무조건 일률적으로 낮추면 안 된다. MB 정부가 추진해 온 특성화고등학교 직업전문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등록금 인하가 추진돼야 한다.”

김 전 비서관의 증언에 따르면 백 실장은 청와대 안에서 외롭게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서 싸웠다고 한다. 임태희(任太熙) 당시 대통령실장도 재정건전성 강화 쪽이었지만 한나라당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재정건전성 확보 문제에 관한 한나라당 지도부의 반응은 “재정건전성이 표 모아 주나? 재정건전성 확보해서 야당에 정권 넘겨줄 거야?” 하는 식으로 냉담했다고 한다.

김 전 비서관은 언론에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대통령 주재 선임비서관 회의’도 소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7~8명의 각 수석실 선임비서관들을 청와대 근처의 식당, 청와대 민원실 2층의 찻집으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례화하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렸다고 한다.

업무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볍게 얘기하는 자리였는데 대통령에 대한 짓궂은 질문도 많이 나오는 자리였다고 한다. 대통령도 정주영(鄭周永) 회장과의 일화 등 자신이 현대건설 근무 시절 겪었던 추억, 카다피 등 중동의 지도자들을 만났던 이야기, 대통령 후보 시절과 당선 후 겪었던 설화(舌禍)의 뒷이야기 등을 했다고 한다.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재미있는 인물평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왜 밖으로 새 나오지 않았을까. 회의 참석 선임비서관들 끼리의 다음과 같은 약속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회의에서 대통령이 사적으로 한 얘기가 흘러나가 민망해지는 일들이 잦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하신 얘기가 새 나가면, 대통령께서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 이 자리에서 한 이야기는 밖에서 하지 말자.”

김연광 전 비서관은 《월간조선》 편집장 시절이던 2007년 11월 9일 통일문화연구원과 한국일보 공동 주최로 한국일보사에서 열린 제4회 통일문화대상 시상식에서 언론문화 부문 상을 받았다(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MB, “일과 끝나면 집사람 꽁무니만 쫓아다녀”

개헌과 관련한 청와대 측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비화도 있다.

2011년 1월 10일 이재오(李在五) 당시 특임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이원집정부제’를 지지한다는 글을 띄웠다.

“권력이 독점되면 부패와 갈등, 정쟁 분열이 끊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선으로 4년 중임으로 가고, 내각은 국회에서 구성하고,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에 관한 권한을 갖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합니다. 찬반 의견을 주십시오.”

이 특임장관이 권력분점에 방점을 찍는 개헌의견을 내놓으면서 개헌논의에 불을 지피려 한 것이다.

정진석 수석은 개헌 논의와 관련해 김 비서관에게 이런 지침을 주었다고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권력분점을 겨냥한 2원집정부제로의 개헌 드라이브는 성공하기 어렵다.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면 5당 원내대표 합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으로 개헌의 폭을 좁힌 것은 우리 정치판에서 더 이상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이 노 대통령 때보다 더 큰 정치력을 갖고 있지도 않다.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면 5당 원내대표 합의에서 출발하고, 정치권에 더 큰 역량이 있다면 그 너머로 가야 한다.”

이 특임장관의 개헌 불 지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됐다.

김 전 비서관은 이 책에서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대한 전말도 소개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면서 충청권 주민들 설득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심리학과 교수에게 충청권 사람들에 대한 심층 심리조사를 하게 했고, 정면돌파를 위해 국회 대신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과정도 소개하고 있다.

청와대 생활을 통해 김 전 비서관이 느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였을까.

김 전 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과가 끝나면 관저에서 무얼 하시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집 사람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지 뭘 하겠어”라고 답했다고 한다. 옆에 있던 김윤옥 여사도 한마디 했는데 “하도 따라다녀서 귀찮다. 어떨 때는 한참 숨어 있다가 나온다”고 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외로운 자리’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