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가덕도 신공항 무산·한진중공업 사태에 ‘남의 집 불구경’
⊙ 총선 최대 변수는 뿌리 깊은 부산 소외론
⊙ “親盧는 부산에 기여한 것이 없어”
⊙ 총선 최대 변수는 뿌리 깊은 부산 소외론
⊙ “親盧는 부산에 기여한 것이 없어”
- 지난해 12월 26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가 4월 총선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지역에서 출마하겠다고 밝힌 뒤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삼진아웃이라니까!”
지난 1월 3일 부산역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생각을 묻자 분노·실망·좌절이 깊게 배어 있는 한탄(恨歎)이 계속됐다.
작년은 부산 시민들에게 최악의 해였다. 2월엔 피해자만 2만5000명이 발생한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3월엔 부산 경제회복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가덕도 신공항 무산, 사(四)계절이 지나도록 해결책을 찾지 못하다 결국 외부 개입으로 해결된 한진중공업사태 등 부산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시련은 계속됐지만 정치력은 부족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민들은 지역 정치인들에게 해결을 부탁했지만 결과는 실망(失望)이었다.
부산은 국회의원 지역구 가운데 1곳을 제외한 17곳을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력 부재(不在)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으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썩은 막대기를 박아도 1번을 찍다 보니 제대로 일하는 정치인이 없었다”는 푸념 속에는 한나라당에 대한 원망이 깊게 묻어 있었다.
“세 번의 기회를 놓친 한나라당은 부산에서 삼진아웃을 당했다”는 부산역 앞 편의점 40대 주인의 냉혹한 평가가 현재의 한나라당에 대한 정확한 성적표였다. 부산 시민들이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세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쳐 버린 한나라당에 분노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런 정치 실종의 틈을, 그동안 깃발을 꽂을 기회를 엿보고 있던 민주통합당이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이른바 친노(친노무현)계의 ‘부산상륙작전’이다.
지난해 12월 26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이 나타났다. 이날 이른바 ‘문·성·길 트리오’는 각각 부산 사상, 북·강서을, 진을 출마를 선언했다. 친노(親盧)의 부산상륙작전이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이날 “썩은 막대기를 박아도 1번을 찍을 게 아니라, 사람 살 만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손을 잡아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통합당을 간판으로 내건 친노 인사들이 부산·경남(PK) 공략을 외치며 총선 출사표를 던짐에 따라 부산은 19대 총선의 최대 관심지역이 되었다. 친노는 “부산지역 선거구의 과반을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표밭을 다지고 있다. 목표만 원대하게 잡은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라는 수치(數値) 역시 이들의 목표가 단지 꿈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은 현역 의원인 한나라당 정치인들과 대등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부산을 찾은 것은 친노세력의 부산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과연 민주당이 친노세력을 앞세워 1990년 3당 합당 이후 20년 지역 맹주를 자처해 온 한나라당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까. 만일 성공할 경우 민주당의 정권 재탈환(再奪還)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부산역을 나와 민심이반(離叛)의 현장으로 향하면서 ‘민주당 부산상륙작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못살겠다”
부산역 근처 구(舊)부산저축은행에는 스무 명의 60·70대 할머니들이 은행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이들은 작년 5월부터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저축은행을 점거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은 예금자들의 예금의 절반인 4조5942억원을 불법적으로 각종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출했다. 현행법상 저축은행이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불법인데도 대규모 건설공사 등에 뛰어들어 막대한 손실을 입고, 또 그 대금의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하는 등 다양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이미 밝혀졌다.
“제 손을 한번 보세요. 고생을 많이 해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부었어요. 모텔 청소, 병원 간병 등 부산에서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간이식 수술을 해서 건강이 좋지 않지만 한 시간에 5000원 하는 일당 받아서 8000만원을 모아 저축은행에 넣었다가 그 돈 날리게 생겼습니다. 억울해서 내 돈 찾기 전에는 집에 못 갑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저축은행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70대 장씨 할머니는 울먹이며 호소했다. 노인들의 하소연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전재산을 날려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허리가 좋지 않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 떠나면 내 돈 못 찾을 것 같아 못 가겠어요.”
하나같이 처지가 딱했다. 절규(絶叫)에 가까운 노인들의 하소연에는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부산 경제에 대한 원망도 많았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계속 부산을 떠나고 있어요. 교통비, 난방비, 수도료 등 모든 공과금이 부산이 서울보다 비싸요. 도저히 부산에서 못살겠어요.”
부산물가가 서울보다 비싼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표 참조) 출생률 저하, 노인인구 증가는 전국적인 문제다. 그러나 2030년까지 인구가 50만명 감소할 것이 예상되는 부산 시민이 느끼는 위기감은 타지역을 뛰어넘는다. 2010년 말 부산시의 인구는 360만을 조금 넘는다. 이렇듯 먹고살기가 팍팍한 상황에 터진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지역경제에 일격(一擊)을 가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영세(零細)상인이어서 서민들의 고통이 특히 심했다. 그러나 영업정지 당시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들은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김옥주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영업정지로 내 돈 떼이게 생겼다고 피해자들이 아우성을 쳐서 함께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가 해결을 부탁했어요. 그런데 대화가 되지 않았어요. ‘5000만원 이상은 보장되지 않는데 왜 돈을 맡겼냐’며 반문하는 의원도 있었어요. 지금이야 피해보상 한도가 5000만원 이하라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은행과 저축은행의 차이도 모르는 노인이 많던 시절이에요. 지역구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기대했는데 사태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크게 실망했어요.”
이렇듯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배신감을 토로하는 피해자가 많다.
“공산당이라도 우리 도와주는 당 지지”
김 위원장에게 당시 상황을 좀 더 들었다.
―저축은행 부실에 대한 책임은 과거 정부에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저축은행 사태는 김대중에서 시작돼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삼대(三代)로 이어지는 정책실패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왜 이명박 정부만 비판하고 과거정부에는 책임을 묻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물러난 대통령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어요. 책임 있는 정부라면 자신들이 하지 않은 일이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점거농성을 하기보다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소송을 제기한 분이 있는데 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습니다. 3심까지 가게 되면 보상을 받는 데 10년 넘게 걸릴지도 모릅니다. 60·70대 노인들에게 10년 걸릴 소송을 하란 말입니까. 정부가 제대로 관리감독만 했어도 부실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어요. 김황식 총리도 감사원장 시절 ‘오만 군데에서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잖아요. 감독기관에서 뇌물 받고 제대로 관리감독 하지 않아서 부실을 키웠다는 것은 이미 다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죠.”
―불법 로비로 피해를 봤다는 건가요.
“저희는 오히려 로비가 약해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박근혜, 이상득 등 유력 정치인들의 지역구가 있는 대구, 포항에 있는 저축은행 가운데 영업정지된 곳은 없어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은 광주일고 출신들이었어요. 대구·경북(TK) 정권에서 로비력이 딸렸겠죠.”
―저축은행 사태가 부산 경제에 어떤 타격을 입혔나요.
“부산 시민들이 어렵게 번 돈이 모두 다른 지방으로 빠져나갔어요. 평창 부동산, 전남 신안군 개발사업 등에 저축은행 돈이 들어갔어요. 국내뿐이 아니에요. 캄보디아, 독일 등 해외에도 빠져나갔어요. 부산을 위해 쓸 돈이 밖으로 나갔으니 부산 경제가 어려워 질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문재인 이사장 등 친노인사들이 이번 총선에 대거 출마합니다.
“저희는 저희 돈만 찾게 해주면 공산당도 지지할 생각입니다. 밥 굶게 생겼는데 무슨 정치입니까.”
피해자들은 특히 TK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형님 예산’, ‘박근혜 예산’ 등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확실한 것은 현정부에서 부산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총선 최대변수 ‘부산 소외론’
부산 시민들의 소외·박탈감이 표에 미칠 영향은 이번 선거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TK를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는 가운에 이에 도전하는 야권 인사들은 PK 일색이다. 문재인 이사장뿐만이 아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조국 서울대 교수 등이 부산출신이다. 부산의 선택에 따라 이들이 힘을 받을 수도 있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
부산 소외론에 불을 지핀 사건은 가덕도 신공항 무산이었다. 가덕도 신공항은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건설 검토를 지시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4월 계획을 백지화했다. 특히 정부조사에서 가덕도가 경쟁 상대였던 밀양보다 낮게 평가되면서 부산 시민들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부산 시민들은 신공항이 무산된 이유는 K2 비행장 소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구가 비행장 이전을 위해 밀양을 적극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TK에 또 밀렸다’는 자괴감에 빠진 것은 이런 이유다.
신공항 유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상임의장은 “부산 경제·시민단체에서 사력을 다해 유치를 위해 뛸 때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가덕도 공항을 건설하지 말고)김해공항을 확장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나라당에 실망했다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작년 부산은 이데올로기 대립의 최전선이었다. 2010년 12월 한진중공업이 생산직 400명 정리해고 및 희망퇴직 계획을 노조에 통보하면서 시작된 ‘한진중공업 파업사태’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영도사업소 크레인 고공농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희망버스’로 불린 시위대의 부산 방문이 계속됐다.
당시 사태는 연대의 상징이라며 큰 반응을 얻었지만 부산 경제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특히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허남식 부산시장이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고 지역 주민 사이에서도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박인호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희망버스를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희망버스다 뭐다 하면서 외부 사람들이 지역경제 문제에 관여하면서 정치이슈로 변질시킨 것이 지역주민들의 불만이었습니다.”
그 당시 한나라당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右往左往)했다. 한나라당 핵심 부산시당 당직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사 양측의 대화를 주선했습니다. 외부에서 개입하지만 않았으면 조기에 수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부의 간섭으로 정치화되면서 노사합의가 어려워졌습니다. 노조측 이야기를 들으면 나름 일리가 있고, 사측 주장도 틀린 것이 없어 한쪽 편에 서기가 힘들었습니다.”
부산發 MB정권 심판론
이렇게 한나라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결국 사태해결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산 시민들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치력 부재에 실망한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실망은 정권심판론으로 이어질까.
박인호 의장에게 물었다.
―친노 인사들이 총선에 출마합니다. 이들 상당수가 부산에 연고가 있고요.
“부산은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듯이 한나라당의 아성(牙城)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한나라 독주체제에 염증이 났고 경쟁체제로 가야 부산이 발전한다고 부산시민들은 생각합니다.”
―‘과반을 차지하겠다’ 등 적극적으로 공세를 하고 있는데 가능할까요.
“부산은 뿌리 깊은 보수색채 때문에 바람으로만으로 되지 않아요. 경쟁체제로 간다는 것이지 과반은 과욕입니다.”
―문재인, 문성근씨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이 부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당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요.
“우선 문성근씨는 지역기반 자체가 없어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문재인씨는 전국적 지명도는 높지만 지역에서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제 득표로 연결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문재인씨는 유력 대권후보입니다. 부산 발전을 위해 지원하자는 여론은 없나요.
“그분 뽑아 주면 중앙 일만 하고 지역을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문 대표가 부산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는 비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산은 친노세력의 지역기반 아닌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 인연이 있지만 크게 기여한 것은 없습니다. 문재인씨도 마찬가지고요. 친노세력의 중심지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부산사람은 별로 없어요. 대통령을 두 명 배출했지만 지역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문재인씨뿐만 아니라 안철수 서울대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등 유력 야권 인사들이 부산출신입니다. 야권 PK 정치인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떠나면 사는 곳 사람 되는 것이죠. 출생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지역 일에 나서지 않다가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만 출생지를 들이미는 정치인들에게 부산 시민들은 관심이 없어요. 부산 시민들은 지역을 위해 어떤 일을 해 왔고 향후 부산 발전을 위해 이런 일을 하겠다는 비전을 듣고 싶어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평가는 어떠합니까.
“정치적으로 돈 안 드는 선거를 정착시키고, 지방분권을 위해 노력한 부분은 높게 평가하지만 부산 발전에 공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증(愛憎)의 관계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문재인씨는 청와대 비서실장 등 요직을 거쳤는데 지역을 위해 기여한 것은 없나요.
“공직에 있을 때 부산을 위해 좀 더 힘써 주었으면 부산이 이렇게 낙후(落後)되지 않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중앙에서 일하게 되면 지역 일은 못하게 되더라고요. 문재인씨는 대권후보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에 지역을 소홀히 할까 걱정이 됩니다.”
최대 격전지는 문재인의 사상구
부산은 이미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했다. 그러나 두 대통령이 부산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하는 부산 시민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부산 시민들은 총선 출마자들의 이름값보다 후보자가 ‘부산을 위해 무슨 일을 했고, 부산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다. 지금은 정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 때문에 노풍(盧風)이 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선거가 본격화되면 분위기는 변할 것이라는 분석이 오히려 많았다.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활동한 A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국 지역일꾼론으로 갈 겁니다. 지금은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 때문에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보지만 선거전이 시작되면 ‘지역발전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인물’을 찾게 될 거예요. 친노인사들이 부산에 많이 출마하는데, 지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도가 최고점일 거예요. 친노계 후보들 가운데 부산을 위해 일한 사람이 드물어요. 김정길씨의 경우 부산지역에서 계속 활동했지만 문성근씨는 부산하고 상관없는 사람이고 문재인씨 역시 부산을 위해 한 일이 없어요. 이들은 부산 발전보다는 정권교체를 위한 바람몰이로 부산에 출마하는 건데 지역 일꾼을 뽑는 총선에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예요.”
결론은 유권자들의 관심이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친노진영의 총선 성적표는 한나라당이 지역 공천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이 분위기를 쇄신(刷新)할 수 있는 참신한 인물을 내세우면 수성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문재인씨가 출마하는 사상구에 어떤 후보가 나오느냐에 따라 지역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상에서 문재인씨가 흔들릴 경우 노풍 자체가 힘을 잃을 수 있다.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권철현 전 주일대사, 김대식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공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상구는 부산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된 것으로 호남출신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이에 대해 언론인 A씨는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며 지역 민심을 전했다.
“아직 공천이 끝나지 않아 후보들이 자제하고 있지만 일단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나면 너도 나도 MB정권을 비판할 것입니다. 비록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지만 나는 MB정권과는 다르다고 말하겠죠. 권철현, 김대식씨는 현 정권에서 공직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을 내세워서는 문재인씨를 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거물급 정치인을 사상구에 공천할 것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문재인씨를 오히려 키워 줄 수 있습니다. 부산 지역의 시민·사회·경제 단체에서 활동했던 인사 가운데 참신한 인물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인물이 중요
지난 1월 4일 오후 수영구에 위치한 한나라당 부산시당 앞에서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 회원 20여 명이 MB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진보, 보수 단체가 극심한 이데올로기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지역경제 붕괴를 걱정하고 있는 부산에서는 보혁갈등(保革葛藤)은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위태로운 한나라당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한나라당은 부산 시민의 민의를 공천에 담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시(市)당 사무실로 들어갔다.
시당 최병문 홍보부장은 최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민주당측은 지역구의 반을 가져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데 가능할까요.
“친노인사들이 부산에 출마한다는데, 그 사람들 부산에서 인기 없습니다. 제가 문재인이라면 100%를 차지하겠다고 말하겠습니다. 문재인씨가 지난해 10월 부산동구청장 선거에 적극 뛰어들었지만 민주당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목표는 목표입니다.”
―민심이 한나라당에 좋지 않습니다.
“핵심은 인물입니다. 인물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나머지는 부차적(副次的)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지역구를 독식했습니다.
“시민들은 한나라당이라고 무조건 찍지는 않습니다.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부산 시민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도 인물이 아니다 싶으면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의 물갈이 욕구가 큰데요.
“부산은 계속 의원들을 교체해 왔습니다. 비록 무소속으로 당선돼 다시 한나라당에 입당했지만 18대의 경우 반이 바뀌었습니다. 인위적이든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건 물갈이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공천 갈등은 없을까요.
“제대로 된 인물을 공천하면 떨어진 쪽의 반발은 적습니다. 반발이 적고 분열이 덜 일어나면 결국 화합이 되고, 그러면 충분히 한나라당이 수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말 대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공천 잡음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소화해야죠. 시민들은 싸우는 모습을 싫어합니다.”
결국 이번 총선은 한나라당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평범한 명제(命題)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지역 곳곳에서 만난 부산 시민들은 한나라당을 초식(草食)공룡이라고 느끼는 듯했다. 거대한 몸을 유지하기 힘들어 뒤뚱거리지만 야성을 잃어버려 목표 없이 배회하는 초식공룡이 지금의 한나라당 모습 같았다. 친노진영이 공천 후보군을 명확히 하고 고지 점령을 위해 지역구를 누비고 있는 동안 한나라당은 박근혜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결론을 내려줄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권력이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지역 당원들의 민의가 밑에서 위로 전달되지 않고 위에서 낙하산처럼 내려온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은 결코 제대로 된 권력의지를 가지기 힘들다. 삼진아웃 정당 한나라당이 현명한 용인술로 재기할지, 친노진영의 새로운 투수에게 다시 무릎을 꿇게 될지 4월 총선 결과는 말해 줄 것이다.⊙
지난 1월 3일 부산역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생각을 묻자 분노·실망·좌절이 깊게 배어 있는 한탄(恨歎)이 계속됐다.
작년은 부산 시민들에게 최악의 해였다. 2월엔 피해자만 2만5000명이 발생한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3월엔 부산 경제회복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가덕도 신공항 무산, 사(四)계절이 지나도록 해결책을 찾지 못하다 결국 외부 개입으로 해결된 한진중공업사태 등 부산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시련은 계속됐지만 정치력은 부족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민들은 지역 정치인들에게 해결을 부탁했지만 결과는 실망(失望)이었다.
부산은 국회의원 지역구 가운데 1곳을 제외한 17곳을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력 부재(不在)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으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썩은 막대기를 박아도 1번을 찍다 보니 제대로 일하는 정치인이 없었다”는 푸념 속에는 한나라당에 대한 원망이 깊게 묻어 있었다.
“세 번의 기회를 놓친 한나라당은 부산에서 삼진아웃을 당했다”는 부산역 앞 편의점 40대 주인의 냉혹한 평가가 현재의 한나라당에 대한 정확한 성적표였다. 부산 시민들이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세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쳐 버린 한나라당에 분노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런 정치 실종의 틈을, 그동안 깃발을 꽂을 기회를 엿보고 있던 민주통합당이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이른바 친노(친노무현)계의 ‘부산상륙작전’이다.
지난해 12월 26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성근 국민의명령 대표, 김정길 전 행자부장관이 나타났다. 이날 이른바 ‘문·성·길 트리오’는 각각 부산 사상, 북·강서을, 진을 출마를 선언했다. 친노(親盧)의 부산상륙작전이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이날 “썩은 막대기를 박아도 1번을 찍을 게 아니라, 사람 살 만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손을 잡아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통합당을 간판으로 내건 친노 인사들이 부산·경남(PK) 공략을 외치며 총선 출사표를 던짐에 따라 부산은 19대 총선의 최대 관심지역이 되었다. 친노는 “부산지역 선거구의 과반을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표밭을 다지고 있다. 목표만 원대하게 잡은 것이 아니다. 여론조사라는 수치(數値) 역시 이들의 목표가 단지 꿈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은 현역 의원인 한나라당 정치인들과 대등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부산을 찾은 것은 친노세력의 부산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과연 민주당이 친노세력을 앞세워 1990년 3당 합당 이후 20년 지역 맹주를 자처해 온 한나라당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까. 만일 성공할 경우 민주당의 정권 재탈환(再奪還)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부산역을 나와 민심이반(離叛)의 현장으로 향하면서 ‘민주당 부산상륙작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못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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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3일 부산시 구(舊) 부산저축은행에서 점거 농성중인 70대 영업정지 피해자가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힘들게 모은 돈을 돌려 달라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
지난해 2월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은 예금자들의 예금의 절반인 4조5942억원을 불법적으로 각종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출했다. 현행법상 저축은행이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불법인데도 대규모 건설공사 등에 뛰어들어 막대한 손실을 입고, 또 그 대금의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하는 등 다양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이미 밝혀졌다.
“제 손을 한번 보세요. 고생을 많이 해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부었어요. 모텔 청소, 병원 간병 등 부산에서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간이식 수술을 해서 건강이 좋지 않지만 한 시간에 5000원 하는 일당 받아서 8000만원을 모아 저축은행에 넣었다가 그 돈 날리게 생겼습니다. 억울해서 내 돈 찾기 전에는 집에 못 갑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저축은행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70대 장씨 할머니는 울먹이며 호소했다. 노인들의 하소연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전재산을 날려서 집에서 쫓겨났어요. 허리가 좋지 않아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 떠나면 내 돈 못 찾을 것 같아 못 가겠어요.”
하나같이 처지가 딱했다. 절규(絶叫)에 가까운 노인들의 하소연에는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부산 경제에 대한 원망도 많았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계속 부산을 떠나고 있어요. 교통비, 난방비, 수도료 등 모든 공과금이 부산이 서울보다 비싸요. 도저히 부산에서 못살겠어요.”
부산물가가 서울보다 비싼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표 참조) 출생률 저하, 노인인구 증가는 전국적인 문제다. 그러나 2030년까지 인구가 50만명 감소할 것이 예상되는 부산 시민이 느끼는 위기감은 타지역을 뛰어넘는다. 2010년 말 부산시의 인구는 360만을 조금 넘는다. 이렇듯 먹고살기가 팍팍한 상황에 터진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지역경제에 일격(一擊)을 가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영세(零細)상인이어서 서민들의 고통이 특히 심했다. 그러나 영업정지 당시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들은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김옥주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영업정지로 내 돈 떼이게 생겼다고 피해자들이 아우성을 쳐서 함께 한나라당 의원들을 찾아가 해결을 부탁했어요. 그런데 대화가 되지 않았어요. ‘5000만원 이상은 보장되지 않는데 왜 돈을 맡겼냐’며 반문하는 의원도 있었어요. 지금이야 피해보상 한도가 5000만원 이하라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 은행과 저축은행의 차이도 모르는 노인이 많던 시절이에요. 지역구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기대했는데 사태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크게 실망했어요.”
이렇듯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배신감을 토로하는 피해자가 많다.
“공산당이라도 우리 도와주는 당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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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주 저축은행 비상대책 위원장. |
―저축은행 부실에 대한 책임은 과거 정부에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저축은행 사태는 김대중에서 시작돼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삼대(三代)로 이어지는 정책실패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왜 이명박 정부만 비판하고 과거정부에는 책임을 묻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물러난 대통령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어요. 책임 있는 정부라면 자신들이 하지 않은 일이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점거농성을 하기보다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소송을 제기한 분이 있는데 아직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습니다. 3심까지 가게 되면 보상을 받는 데 10년 넘게 걸릴지도 모릅니다. 60·70대 노인들에게 10년 걸릴 소송을 하란 말입니까. 정부가 제대로 관리감독만 했어도 부실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어요. 김황식 총리도 감사원장 시절 ‘오만 군데에서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잖아요. 감독기관에서 뇌물 받고 제대로 관리감독 하지 않아서 부실을 키웠다는 것은 이미 다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죠.”
―불법 로비로 피해를 봤다는 건가요.
“저희는 오히려 로비가 약해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박근혜, 이상득 등 유력 정치인들의 지역구가 있는 대구, 포항에 있는 저축은행 가운데 영업정지된 곳은 없어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은 광주일고 출신들이었어요. 대구·경북(TK) 정권에서 로비력이 딸렸겠죠.”
―저축은행 사태가 부산 경제에 어떤 타격을 입혔나요.
“부산 시민들이 어렵게 번 돈이 모두 다른 지방으로 빠져나갔어요. 평창 부동산, 전남 신안군 개발사업 등에 저축은행 돈이 들어갔어요. 국내뿐이 아니에요. 캄보디아, 독일 등 해외에도 빠져나갔어요. 부산을 위해 쓸 돈이 밖으로 나갔으니 부산 경제가 어려워 질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문재인 이사장 등 친노인사들이 이번 총선에 대거 출마합니다.
“저희는 저희 돈만 찾게 해주면 공산당도 지지할 생각입니다. 밥 굶게 생겼는데 무슨 정치입니까.”
피해자들은 특히 TK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형님 예산’, ‘박근혜 예산’ 등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확실한 것은 현정부에서 부산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총선 최대변수 ‘부산 소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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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상임의장. |
부산 소외론에 불을 지핀 사건은 가덕도 신공항 무산이었다. 가덕도 신공항은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건설 검토를 지시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4월 계획을 백지화했다. 특히 정부조사에서 가덕도가 경쟁 상대였던 밀양보다 낮게 평가되면서 부산 시민들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부산 시민들은 신공항이 무산된 이유는 K2 비행장 소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구가 비행장 이전을 위해 밀양을 적극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TK에 또 밀렸다’는 자괴감에 빠진 것은 이런 이유다.
신공항 유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박인호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상임의장은 “부산 경제·시민단체에서 사력을 다해 유치를 위해 뛸 때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가덕도 공항을 건설하지 말고)김해공항을 확장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나라당에 실망했다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작년 부산은 이데올로기 대립의 최전선이었다. 2010년 12월 한진중공업이 생산직 400명 정리해고 및 희망퇴직 계획을 노조에 통보하면서 시작된 ‘한진중공업 파업사태’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영도사업소 크레인 고공농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희망버스’로 불린 시위대의 부산 방문이 계속됐다.
당시 사태는 연대의 상징이라며 큰 반응을 얻었지만 부산 경제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특히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허남식 부산시장이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고 지역 주민 사이에서도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박인호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희망버스를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희망버스다 뭐다 하면서 외부 사람들이 지역경제 문제에 관여하면서 정치이슈로 변질시킨 것이 지역주민들의 불만이었습니다.”
그 당시 한나라당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右往左往)했다. 한나라당 핵심 부산시당 당직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사 양측의 대화를 주선했습니다. 외부에서 개입하지만 않았으면 조기에 수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부의 간섭으로 정치화되면서 노사합의가 어려워졌습니다. 노조측 이야기를 들으면 나름 일리가 있고, 사측 주장도 틀린 것이 없어 한쪽 편에 서기가 힘들었습니다.”
부산發 MB정권 심판론
이렇게 한나라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결국 사태해결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부산 시민들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치력 부재에 실망한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실망은 정권심판론으로 이어질까.
박인호 의장에게 물었다.
―친노 인사들이 총선에 출마합니다. 이들 상당수가 부산에 연고가 있고요.
“부산은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듯이 한나라당의 아성(牙城)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한나라 독주체제에 염증이 났고 경쟁체제로 가야 부산이 발전한다고 부산시민들은 생각합니다.”
―‘과반을 차지하겠다’ 등 적극적으로 공세를 하고 있는데 가능할까요.
“부산은 뿌리 깊은 보수색채 때문에 바람으로만으로 되지 않아요. 경쟁체제로 간다는 것이지 과반은 과욕입니다.”
―문재인, 문성근씨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이 부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당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요.
“우선 문성근씨는 지역기반 자체가 없어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문재인씨는 전국적 지명도는 높지만 지역에서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제 득표로 연결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문재인씨는 유력 대권후보입니다. 부산 발전을 위해 지원하자는 여론은 없나요.
“그분 뽑아 주면 중앙 일만 하고 지역을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문 대표가 부산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는 비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산은 친노세력의 지역기반 아닌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 인연이 있지만 크게 기여한 것은 없습니다. 문재인씨도 마찬가지고요. 친노세력의 중심지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부산사람은 별로 없어요. 대통령을 두 명 배출했지만 지역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문재인씨뿐만 아니라 안철수 서울대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등 유력 야권 인사들이 부산출신입니다. 야권 PK 정치인에 대해 부산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떠나면 사는 곳 사람 되는 것이죠. 출생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지역 일에 나서지 않다가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만 출생지를 들이미는 정치인들에게 부산 시민들은 관심이 없어요. 부산 시민들은 지역을 위해 어떤 일을 해 왔고 향후 부산 발전을 위해 이런 일을 하겠다는 비전을 듣고 싶어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평가는 어떠합니까.
“정치적으로 돈 안 드는 선거를 정착시키고, 지방분권을 위해 노력한 부분은 높게 평가하지만 부산 발전에 공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증(愛憎)의 관계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문재인씨는 청와대 비서실장 등 요직을 거쳤는데 지역을 위해 기여한 것은 없나요.
“공직에 있을 때 부산을 위해 좀 더 힘써 주었으면 부산이 이렇게 낙후(落後)되지 않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중앙에서 일하게 되면 지역 일은 못하게 되더라고요. 문재인씨는 대권후보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에 지역을 소홀히 할까 걱정이 됩니다.”
최대 격전지는 문재인의 사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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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명물 자갈치 시장에서 바라본 부산시 전경. |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 활동한 A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국 지역일꾼론으로 갈 겁니다. 지금은 한나라당에 대한 실망 때문에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보지만 선거전이 시작되면 ‘지역발전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인물’을 찾게 될 거예요. 친노인사들이 부산에 많이 출마하는데, 지금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도가 최고점일 거예요. 친노계 후보들 가운데 부산을 위해 일한 사람이 드물어요. 김정길씨의 경우 부산지역에서 계속 활동했지만 문성근씨는 부산하고 상관없는 사람이고 문재인씨 역시 부산을 위해 한 일이 없어요. 이들은 부산 발전보다는 정권교체를 위한 바람몰이로 부산에 출마하는 건데 지역 일꾼을 뽑는 총선에서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예요.”
결론은 유권자들의 관심이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친노진영의 총선 성적표는 한나라당이 지역 공천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이 분위기를 쇄신(刷新)할 수 있는 참신한 인물을 내세우면 수성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문재인씨가 출마하는 사상구에 어떤 후보가 나오느냐에 따라 지역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상에서 문재인씨가 흔들릴 경우 노풍 자체가 힘을 잃을 수 있다.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권철현 전 주일대사, 김대식 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공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상구는 부산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된 것으로 호남출신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이에 대해 언론인 A씨는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며 지역 민심을 전했다.
“아직 공천이 끝나지 않아 후보들이 자제하고 있지만 일단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나면 너도 나도 MB정권을 비판할 것입니다. 비록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지만 나는 MB정권과는 다르다고 말하겠죠. 권철현, 김대식씨는 현 정권에서 공직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을 내세워서는 문재인씨를 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거물급 정치인을 사상구에 공천할 것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문재인씨를 오히려 키워 줄 수 있습니다. 부산 지역의 시민·사회·경제 단체에서 활동했던 인사 가운데 참신한 인물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인물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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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문 한나라당 부산광역시당 홍보부장. |
이런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한나라당은 부산 시민의 민의를 공천에 담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시(市)당 사무실로 들어갔다.
시당 최병문 홍보부장은 최근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민주당측은 지역구의 반을 가져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데 가능할까요.
“친노인사들이 부산에 출마한다는데, 그 사람들 부산에서 인기 없습니다. 제가 문재인이라면 100%를 차지하겠다고 말하겠습니다. 문재인씨가 지난해 10월 부산동구청장 선거에 적극 뛰어들었지만 민주당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목표는 목표입니다.”
―민심이 한나라당에 좋지 않습니다.
“핵심은 인물입니다. 인물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나머지는 부차적(副次的)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지역구를 독식했습니다.
“시민들은 한나라당이라고 무조건 찍지는 않습니다.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부산 시민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도 인물이 아니다 싶으면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의 물갈이 욕구가 큰데요.
“부산은 계속 의원들을 교체해 왔습니다. 비록 무소속으로 당선돼 다시 한나라당에 입당했지만 18대의 경우 반이 바뀌었습니다. 인위적이든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건 물갈이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공천 갈등은 없을까요.
“제대로 된 인물을 공천하면 떨어진 쪽의 반발은 적습니다. 반발이 적고 분열이 덜 일어나면 결국 화합이 되고, 그러면 충분히 한나라당이 수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말 대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물론 공천 잡음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소화해야죠. 시민들은 싸우는 모습을 싫어합니다.”
결국 이번 총선은 한나라당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평범한 명제(命題)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지역 곳곳에서 만난 부산 시민들은 한나라당을 초식(草食)공룡이라고 느끼는 듯했다. 거대한 몸을 유지하기 힘들어 뒤뚱거리지만 야성을 잃어버려 목표 없이 배회하는 초식공룡이 지금의 한나라당 모습 같았다. 친노진영이 공천 후보군을 명확히 하고 고지 점령을 위해 지역구를 누비고 있는 동안 한나라당은 박근혜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가 결론을 내려줄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권력이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지역 당원들의 민의가 밑에서 위로 전달되지 않고 위에서 낙하산처럼 내려온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은 결코 제대로 된 권력의지를 가지기 힘들다. 삼진아웃 정당 한나라당이 현명한 용인술로 재기할지, 친노진영의 새로운 투수에게 다시 무릎을 꿇게 될지 4월 총선 결과는 말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