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 ‘안철수 멘토’ 법륜과 박경철의 동시 외국행 이유는 : 월간조선

“짜여진 각본 아닐까?”

한나라당 친박(親朴)계 핵심 관계자는 의심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철수(安哲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멘토이자 최측근인 법륜(法輪) 스님과 박경철(朴慶哲) 안동신세계연합의원 원장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해외로 나가 장기간 체류할 것이란 언론보도를 접하고서다.

그의 말이다.

“몸값이 최고조일 때 홀연히 사라진다는 것은 뭔가 꼼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안 원장의 대권 도전설을 잠복 상태로 만들기 위해 외국행을 일부러 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국내에 있으면 언론의 압박에 입을 열 수밖에 없으니까요. 측근들이 말을 하면 그것을 확인해 주는 차원에서라도 안 원장은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계속 언론을 타다 보면 이런저런 단점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요.”

조원진(趙源震) 한나라당 의원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조 의원은 “야권의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하면 모를까 신당 창당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그렇다면 안 원장과 그 측근들 입장에서는 야권통합 정당이 탄생할 때까지 숨죽이고 있다가 때가 되면 야권의 단일후보로 등장, 여권의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와 일대일로 맞서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 원장과 법륜 스님의 동시 장기 해외출장은 안 원장을 보호하기 위한 기획(企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인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원 또한 “안 원장이 19대 총선 서울 강남 불출마 선언을 한 상태에서 박 원장과 법륜 스님이 국내에 남아 있다면 정치꾼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도 숨 고르기 차원에서 해외 일정이 불가피했고. 사실 이들은 이렇게까지 안 원장의 인기가 높아질 것이라고는 상상 못했을 것이다. 안풍(安風)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보다 더욱 커진 것이다. 일단 시간을 벌면서 내공을 다지는 차원에서 외국행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누구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거의 동시에 정치권과 선을 그으려고 하는 것은 결국 ‘안철수 프로젝트’의 한 부분일 것이란 분석이 많다.

과연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비(非) 정치인들이 정치인들 뺨치게 몇 수 앞을 내다보고 큰 구상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팀이 프로팀을 농락하는 경우다. 그들의 동시 외국행에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외국행 결정 시기에 대해 명쾌한 답변 미뤄

박경철 원장은 왜 갑자기 해외 일정을 잡았을까. 안철수 원장과 포옹을 하며 울먹이는 박 원장의 모습.

먼저 사실확인을 위해 숱한 정치적 논란을 뒤로하고 2011년 12월 7일 독일로 출국한 법륜 스님 측과 접촉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평화재단 측 관계자는 “1년 전부터 예정돼 있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사장님은 1년 가운데 5개월 정도는 법회를 위해 해외에 나간다. 주로 매년 1월에는 인도, 2~3월에는 스리랑카·인도네시아·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보내고, 8월에는 중국 역사기행을 다닌다. 그러다가 9월에는 미국 전역에서 순회법회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륜 스님과 친분이 있는 화쟁(和諍)리더십아카데미 1기 수료생은 약간 다른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법륜 스님의 해외출장은 언제부터 계획됐습니까.

“내부적인 일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갑자기 잡힌 일정 아닌가요.

“….”

―왜 말씀이 없으시죠. 갑자기 잡힌 일정이란 말로 해석해도 됩니까.

“인제 그만하시죠.”

평화재단 측 관계자가 자신 있게 미리 예정했던 것이라고 한 답변과는 차이가 있었다. 화쟁리더십아카데미는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불교사회연구소가 개설했다. 법륜 스님은 1기 강사였고, 2011년 9월 5일 개강한 2기에서도 강연을 했다. 1기 강사진에는 법륜 스님 외에 조국(曺國) 서울대 교수, 윤여준(尹汝雋) 전 환경부 장관, 김종인(金鍾仁) 전 대통령 경제수석 등 안 원장의 ‘멘토’들이 대거 포진했었다.

《월간조선》은 2011년 12월 10일 박 원장에게도 해외출장 계획이 구체적으로 언제 정해졌는지를 물었다.

―1월부터 2년간 방송용 여행기를 제작하기 위해 그리스·이탈리아·독일·쿠바 등을 방문한다고 했는데 언제 계획한 것입니까.

“오랜 숙원사업이었습니다.”

―최근에 잡은 일정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까.

“주말에는 언론 취재에 응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랑 놀아 주는 중이거든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지만, 박 원장은 “주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월간조선》은 박 원장의 말대로 평일 계속 연락을 취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박경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PD도 금시초문

법륜 스님은 그렇다 쳐도 박 원장의 해외 일정은 안 원장의 인기가 치솟을 즈음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부인하긴 했지만 박 원장이 9월 이후 해외 일정을 잡은 정황이 포착된 까닭이다.

2011년 9월 17일 박 원장은 3년간 맡아 온 KBS 라디오 프로그램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에서 하차했다. 박 원장은 전날 한 언론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10년간 MBN에서 TV 프로그램 2개를 진행해 왔고, 3년간 라디오를 진행했다. 외도 치고는 길었다”며 “지난 3개월간 청춘콘서트와 책 집필까지 겹쳐져 체력적·정신적으로 완전히 고갈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하루 20분밖에 자지 못한 적도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건강한 비판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관성적인 방송을 하게 됐다”며 “청취자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추석 연휴 동안 고민하다 제작진에 하차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거짓이 아니라면 박 원장은 추석 연휴(9월 10~13일) 사이에 사퇴를 결심한 것이 된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를 연출했던 KBS 2라디오 하석필 PD와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박 원장이 9월 이전에 여행기 제작을 위해 제작진에게 ‘하차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귀띔해 줬나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여행기 제작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9월 하차가 느닷없는 일이라고 느꼈겠네요.

“갑작스러운 사퇴였습니다. 박 원장의 사퇴에 대해서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다.”

하 PD의 말과 박 원장 말을 그대로 종합하면, 여행기 제작을 위한 2년여의 해외 취재를 라디오 프로그램 하차 후 결정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박 원장의 말이 상식적으로 여러 군데서 엉키게 된다.

‘오랜 숙원사업’이라면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알 수밖에 없다. 무슨 정보기관 일도 아닌데 그와 3년간 호흡을 맞춰 온 라디오 제작진조차 몰랐다니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PD는 여행기 제작 같은 일에는 베테랑이다. 박 원장이 여행기를 제작할 생각이 있었다면 비용과 시간, 필요인원 등에 대해 PD를 놔두고 누구한테 묻겠는가.

박경철 병원측도 원장의 해외여행 전혀 모르는 상태

또 하나 상식과 어긋나는 일이 있다. 박 원장의 장기 해외여행은 병원 운영 문제와 직결된다. 박 원장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병원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박경철이 있는 병원과 없는 병원은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렸어야 한다. 알리지 않더라도 오래 근무했던 직원들은 눈치로라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 원장이 원장으로 있는 안동신세계연합병원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박 원장의 해외 일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기자에게 “원장님이 해외에 언제, 왜 나가시느냐”고 물었을 정도다.

박 원장이 라디오 진행에서 하차한 날(2011년 9월 17일)은 ‘안철수 바람’이 만만치 않은 위력을 보여준 시점이다.

추석 연휴 직후인 2011년 9월 14일 자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연휴 마지막 날인 13일 시행한 대선 가상 양자(兩者)대결 조사에서 안 원장은 41.2%로, 다른 대선 후보들보다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박근혜 전 대표(45.1%)를 턱밑까지 추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10월과 11월 초에는 판세가 엎치락뒤치락했지만 11월 말부터 12월에는 안 원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을 허물고, 대선후보 지지율 1위에 올랐다.

정치 정보가 많다는 청와대 정무팀 관계자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박 원장과 법륜 스님이 비슷한 시기에 해외에 나가는 것을 기획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BH(청와대)의 시각은 어떤가요.

“크게 신경 쓰지는 않지만, 그렇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법륜 스님은 정해진 주제 없이 현장에서 나온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즉문즉설(則問則說)’의 선구자입니다. 현재 재외동포들은 2012년 총선과 대선부터 적용되는 투표권 행사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면 법륜 스님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또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안 원장 관련 질문이 많이 나올 텐데 법륜 스님이 무어라 답변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해외동포에게 상당히 중요한 투표 기준이 된다고 봐야죠”

해외 부재자를 포함해 재외동포 유권자 수는 220만명(중앙선관위 추산)이다. 김대중(金大中) 전 대통령 당선 때 39만 표, 노무현(盧武鉉) 전 대통령 당선 때는 56만 표 차이로 승패가 결정됐다. 재외동포 유권자들도 국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재외동포 표를 의식해서 나갔단 말인가. 의심이 꼬리를 문다.

법륜 스님이 설립한 정토회 홈페이지를 뒤져 봤다.

법륜의 10가지 희망실천에 들어있는 ‘투표 참여’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회에서 법륜 스님이 강연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400여 개의 글 가운데 Morning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회원인지는 확인되지 않음)이 2011년 12월 2일에 올린 글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해외에서도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할 수 있습니다’였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전문이다.

<희망세상을 만드는 10가지 실천 사항 중 ‘나라의 주인으로서 꼭 투표하겠습니다’를 위해 어제 영사관에 가서 국외부재자신고를 했습니다.

다음 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해외에 거주해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단 투표를 하려면 꼭 신청기간(2011.11.13.~2012. 2.11) 동안에 등록을 해야 합니다.

영주권자인 경우 주민등록이 자동으로 말소된 경우가 많으니 가까운 영사관에 꼭 확인해 보기 바랍니다. 자세한 것은 재외선거 홈페이지(ok.nec.go.kr)에 있습니다.

투표할 수 있는 해외 정토 행자님들 바쁘게 살다 보면 놓치기 쉬우니 서둘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법륜 스님은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이 끝나면 객석을 향해 ‘10가지 희망실천’을 외우게 한다고 한다.

10가지 실천 사항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부족한 줄 알아 매일 108회의 참회의 절을 하겠습니다 ▲부모님께는 다만 감사한 마음을 내겠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는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내겠습니다 ▲자식에게는 항상 이해하는 마음을 내겠습니다 ▲세상의 주인이 되어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겠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기 위하여 빈 그릇 운동을 하겠습니다 ▲굶주리는 북한 아이를 위하여 하루 천원 이상 기부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통일의병이 되겠습니다 ▲나라의 주인으로서 꼭 투표하겠습니다 이다.

해외 동포의 투표율을 높이면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현재로선 정부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자문위원의 형태로 어느 정도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투표 행태는 예측할 수 없다.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도 “야당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과소 대표돼 있고 여당의 목소리는 과잉 대표돼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뚜껑을 열어 봐야 한다”고 했다.

정토회는 교민이 많은 미국 LA,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워싱턴과 캐나다 밴쿠버, 호주 시드니 등에 해외 사무국을 두고 있다.

박경철 “쿠바·그리스 여행기 쓸 것”

안철수 원장 멘토들의 애기를 종합해 보면 안 원장이 정치를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그만둔 후에 박 원장은 다른 일로도 바빴다. 그는 2011년 11월 9일 자신의 신간 《자기혁명》 독자들과 함께 서울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한 언론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박 원장은 “2012년의 계획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여행기를 쓰는 것이다. 제목도 ‘체 게바라(Che Guevara`1928~1967)의 눈으로 쿠바를 가다’로 정해 두었다. 제가 체 게바라가 돼 아바나의 해변을 걷는 거다. 그러려면 체 게바라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팩션(fact와 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로 사실에 기초해 상상력을 입힌 것) 같은 여행기를 쓰고 싶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의 시인이자 소설가)의 눈으로 그리스를 가다’도 생각하고 있다. 카잔차키스는 지금과 같이 경제가 파탄 난 조국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라고 밝혔다.

체 게바라는 노동자와 약자의 처지를 대변한 쿠바의 영웅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그는 안정적인 의사 자리를 버리고 공산주의 혁명에 뛰어들었다. 그는 공교롭게도 안 원장과 같은 의사 출신이다. 또 하필이면 두 번째 여행기의 대상지가 그리스다. 그리스는 복지 포퓰리즘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은 나라다. 안 원장과 여론조사 1~2위를 다투는 박 전 대표는 복지를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박 전 대표와 측근들은 ‘박근혜식 복지’의 밑그림을 그릴 때 포퓰리즘 정책에 따른 재정 파탄으로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의 나라는 연구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여기서 박 원장이 밝힌 내용도 가만히 뜯어보면 장기 해외여행이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장기 해외여행을 계획하려면 무엇을 해야겠다는 것이 명확해야 하는데, 앞뒤 말의 뉘앙스를 볼때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안철수의 대선 직행을 위한 숨고르기?

그렇다면 법륜 스님과 박 원장의 석연치 않은 장기 해외여행은 안철수 원장의 행보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장기 해외여행이 법륜 스님과 박 원장의 단순한 개인 일정일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정치분석가들도 이런 분석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잠시 안 원장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해 그를 아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안 원장의 멘토로 알려진 윤여준 전 장관과 김종인 전 수석은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안 원장이 내년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 원장의 의중을 더욱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그의 최측근인 강인철(姜仁喆) 변호사를 찾아갔다. 강 변호사의 존재는 2011년 12월 2일 자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강 변호사는 안 원장이 설립하기로 한 ‘범국민 기부 형태의 공익재단’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은 주인공이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 20여 년 검사생활을 한 뒤 2011년 9월 순천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법률사무소 ‘에이원’을 개업한 강 변호사는 안 원장과 개인적 인연으로 친분이 매우 두텁다.

2011년 12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봉빌딩 8층. 안 원장에 대한 질문이 부담스러워 취재에 응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 조금 일찍 갔다. 예상대로 강 변호사는 출근 전이었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국장은 “명함을 놓고 가면 전달하겠다”고 했다. 빌딩 1층에서 기다리는데 한 건물관리인은 “강 변호사의 차 종류를 아니 들어오면 곧바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 관리인은 “강 변호사님이 유명하죠?”라고 물었다. “왜 그러죠?”라고 되묻자 “아, 변호사 사무실 개업식 때 안철수 원장님이 직접 오셨다”고 했다. “화환만 보낸 거 아니었나요?”라고 하니 그는 “화환은 변호사 개업식 전에 보낸 것이고요”라고 답했다. 이어 “(안 원장은)생각보다 키가 작으셨다. 코트의 깃을 세워 얼굴을 못 알아봤는데 자세히 보니 맞더라. 그래서 개업식 끝나고 가실 때 사인을 받았다”고 했다. 강 변호사의 사무실 개소식은 2011년 12월 5일에 열렸다.

강인철 변호사 “안 원장 멘토들 말은 개인 생각”

강인철 에이원 대표변호사.

강 변호사가 출근한 뒤 그와 마주했다. 그는 앉자마자 “죄송한데 시간이 10분 정도밖에 없다. 오늘은 얼굴 익히는 자리로 하자”고 했다.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안 원장과는 어떻게 가까워졌습니까.

“사생활이라 말하기가 좀 그렇군요.”

―학연(學緣)은 아닌 것 같던데요.

“학교와 고향이 같아야만 친해지나요.”

―국민들은 안 원장이 어떤 결심을 할지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기부 문제로 자주 만나는 것으로 아는데 혹시 들은 것이라도.

“굉장히 민감한 질문이네요(웃음). 요즘은 제가 한마디해도 안 원장이 말한 것처럼 보도되더군요. 제가 말씀드릴 건 없네요. 다만 안 원장의 멘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다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안 원장은 누구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신중하다고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대권에 관련한 이야기도 그들만의 예상이겠네요.

“그렇죠. 하지만 본인이 (대선 출마) 결정을 하면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그래서 안 원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언을 듣고 ‘안철수 신당’ 창당을 접은 것처럼 보도가 나온 것을 적극적으로 부인한 겁니까.

“예. 저의 예를 들어 보죠. 제가 변호사 개업을 한다고 했을 때 동료 몇 명은 찬성하고, 몇 명은 반대하고 했어요. 다들 각자의 생각을 저한테 이야기한 거죠. 다 듣고 나서 결정했어요.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기로. 근데 이게 차리라고 이야기한 사람들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안 원장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결정은 자신이 했는데 누구한테 떠밀려서 했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면….”

―안 원장이 실제 기분 나빠 했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2011년 11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안 원장과 박 시장은 극비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안 원장에게 신당 창당에 반대하며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후 12월 1일 안 원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안철수 신당’ 창당 및 내년 총선에서 서울 강남권 출마설을 직접 부인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안 원장의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 원장은 원래 신당 창당 생각이 없었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각자의 시나리오를 갖고 ‘창당해라, 말아라’고 할 때 안 원장은 이미 제3당은 안 한다고 정리한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이례적이었다. 안 원장 측이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정치적 해석이 나오더라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검증을 피하겠다는 뜻인 듯

그렇다면 안철수 원장은 정치를 접은 것일까. 안 원장이 정치를 접었다면 법륜 스님과 박경철 원장의 장기 해외여행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안 원장 멘토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안 원장이 정치를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말이 대략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설이 성립한다면 법륜 스님과 박 원장의 장기 여행은 안 원장의 ‘총선전 웅크리기’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은 현재 학교에 딱 숨어서 밖에서 누리는 국민 지지도만 쳐다보고 있다. 지지율은 여전히 고공비행 중이다. 이런 이상(異常) 현상을 봐 가며 안 원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치분석가들은 안 원장이 총선을 건너뛰고 대선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고, 법륜 스님과 박경철 원장의 장기 해외여행도 그런 관점에서 지켜보고 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申律) 교수는 “안 원장이 정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에 200% 동의한다”며 “안 원장이 2012년 1월 즈음에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간 안 원장은 인생 전환점마다 책을 집필해 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7월 정도에는 (대선)나올 것이라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법륜 스님과 박 원장이 해외에 나가는 것은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의도이고 이것은 더 나아가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안 원장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시기에는 책을 내는 ‘버릇’이 있었다. 의사를 그만두고 안철수연구소를 창업(1995년)할 때 그는 《별난 컴퓨터 의사》라는 책을 펴냈다. 연구소를 주식시장에 상장(2001년)하기 전에는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을, 안철수연구소를 떠날 무렵(2004년)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책을 썼다. 1월에 책을 내기로 했다는 것을 두고 그가 또 한번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모색하려는 것 아니냐고 관측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