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미국이 원자탄을 만들지 않았다면 한국은
지금 일본국이 됐을 것
⊙ 정치하면서 피부 뽀얘진 대한민국 정치인 보고 절망 느끼지 않을 유권자가 없을 것
⊙ 대한민국 진보가 언제 밥 만드는 데 기여한 적 있나?
심상근
⊙ 67세. 서울대 공대 졸업. 미 버클리대 공학박사.
⊙ 미 로크웰 광통신소자 개발 매니저.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선임연구원. 피츠버그대 교수.
⊙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 한국과학재단 국책프로젝트 심사위원.
지금 일본국이 됐을 것
⊙ 정치하면서 피부 뽀얘진 대한민국 정치인 보고 절망 느끼지 않을 유권자가 없을 것
⊙ 대한민국 진보가 언제 밥 만드는 데 기여한 적 있나?
심상근
⊙ 67세. 서울대 공대 졸업. 미 버클리대 공학박사.
⊙ 미 로크웰 광통신소자 개발 매니저.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선임연구원. 피츠버그대 교수.
⊙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 한국과학재단 국책프로젝트 심사위원.
-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왼쪽). 2011 10월(오른쪽).
지난 10·26 보궐선거,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참으로 의미가 컸다. 20·30·40대 층의 분노가 주는 심각성을 잠시 잊고 그 흥행 가치로만 본다면 아카데미 각본상 정도는 수상할 만큼 드라마틱했다. 대표적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이하 정치인에 대한 존칭 생략)와 어느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예쁘게 나온다는 인기 정치인 나경원(羅卿瑗) 콤비 대(對) ‘청춘 콘서트’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망한 과학자이면서 실제로는 차기 대권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안철수(安哲秀)와, 그리고 자신은 시민을 위하여 좋은 일만 했다고 자부하는 반면 반대 진영으로부터는 재벌의 등을 쳐서 모금한 돈을 멋대로 썼다는 비난을 받는 시민운동가 박원순(朴元淳) 콤비. 프로 레슬링이었다면 아래와 같은 어나운스먼트가 들릴 것이다: Yes, Ladies and gentlemen, here we have two girls versus two boys, two pairs of sworn enemies! (숙녀 신사 여러분, 숙명적인 적수 two girls 對 two boys, 이들이 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심각했고, 이 선거를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된 것은 젊은 세대의 분노였다. 이 선거를 두고 열 가지, 백 가지 해설이 대두됐다. 나의 분석으로는, 그 젊은이들의 분노는 대통령의 피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를 설명하겠다.
불평을 들을 각오를 하고 이야기하자면, 한(韓)민족의 기질은 몽골족의 기질과 거의 같다. 몽골족은 이리떼처럼 무리를 지어 다른 무리들과 피로써 항쟁하여 승자독식(勝者獨食)을 원칙으로 살았다. 다른 부족에 쳐들어가면 각자 눈에 띄는 대로 자기 것이었다.
한민족은 그와 닮은 기질을 많이 가지고 무리를 지어 아귀다툼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나의 수필집 《백만 명 먹여 살리기》(도솔, 1996)에서 이를 ‘이리떼 식 생존방식’이라고 규정했다. 이 생존방식의 특징은, 상대를 소탕하기 위해서는 나라가 망해도 상관 안 하는 점이다. 이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신으로 갔다 돌아온 자들이 헷갈리는 소리들을 하는 바람에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작살이 났다. 요행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그때 한반도는 영원히 일본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한참 후, 서구문물을 재빨리 복사한 일본이 다시 독사의 혀를 한반도에 디밀었는데, 이야기는 똑같았다. 민비파와 대원군파에게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주 먼 둘째 사안이었고, 상대를 소탕하는 것이 하늘에 빛나는 태양처럼 가장 확실한 목적이었다. 일본이 미국에 깝죽대다가 얻어맞은 원자탄이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지금쯤은 완전히 일본의 일부일 것이고 국제사회는 이를 공인했을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조선시대 왕보다 견제장치 없어
한민족은 아주 고집이 세다. 아니면 망각증세가 심하다. 그 정도로 곤욕을 치르고도 눈썹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북이 분단되니 곧장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은 남한을 집어삼키겠다고 6·25전쟁을 일으켰다.
‘양보’ ‘타협’ ‘협상’? 그런 것들은 한민족 사전에 없다. ‘승자독식’, 이 단어는 고딕체로 아주 크게 인쇄되어 있다. 많은 사연을 거쳐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현 정부가 들어섰지만, 그 몽골족식, 이리떼식 생존방식은 어느 때보다도 건재하다. 미국식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뽑는 것은 전혀 아니다. ‘5년제 왕’을 뽑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왕조 시에는 왕에 대해 상당한 견제장치가 있었다. 그래서 왕이 멋대로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한국 대통령들, 아니 이 ‘5년제 왕’들은 조선왕조 시의 왕보다 더 독재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애초 그 민주주의를 만들 때 그것은 자기들을 위한 것이었다. 수출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앵글로색슨들은 자기들과는 딴판으로, 세상 어떤 나라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나라가 망하건 말건 승자독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민주주의를 한다고 미국식 정치제도를 들여왔지만 독재에 대한 견제장치는 조선왕조 시보다 오히려 약하다. “국회의원? 말 안 들으면 다음에 공천 안 준다고 해!”,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검찰에 비리 조사시켜 매장해 버려!”, “기업이 말 안 들어? 검찰, 국세청 동원해서 혼을 내고 필요하면 공중분해해 버려!”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만이 애용하던 레퍼토리가 아니다. ‘5년제 왕’들은 모두가 애용한다.
삼권분립(三權分立)? 여당 의원들은 세금만 축내는 거수기들이며,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그러다가 일이 다 끝난 임기 마지막, 유권자들의 오장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자기들이 다음 선거에 낙선할 것이 확실해진 후에야 레임덕 대통령에게 뭐라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당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소 잃은 후 외양간 고친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무리에 대한 충성보다 국익이 우선
미국에서 대통령이 그러한 독재를 못하는 이유는 미국인들, 더욱 정확히 이야기하여 미국 백인들은 각자 홀로 서기 때문이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와 마주하며 2000년 살면서 몸에 밴 습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의 의견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예수를 믿건 안 믿건 관계없이 모두가 그렇게 되었고, 종교를 떠나 사회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콩나물 물주기 효과이다. 하도 반복하면 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무리를 지어 국익은 뒤로 젖히고 무리 내에서의 충성을 앞세우는 문화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닉슨이 워터게이트에 연루되어 자기의 거짓말을 캐던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리처드슨 법무장관에게 명령했을 때 리처드슨은 즉시 사임했다. 이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리처드슨은 닉슨이 손수 키운 심복 중의 심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경우, 심복 아니라 심복 할아비라도 국익에 분명히 해로운 짓을 명령받는 경우 모두가 일제히 국익 편에 선다. 이는 미국 백인들이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한국인들보다 더 우수해서 그러는 것이 전혀 아니다. 모두가 그러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그러한 것만 보고 컸으므로 보통 미국인들은 모두가 자동적으로 그렇게 행동한다. 아니면 친구들로부터 절교를 당하고 심지어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문화의 힘은 그만큼 큰 것이다. 즉, 한국에서는 그 경우 국익을 지키면 배신했다고 지탄받고 고립되지만, 미국에서는 국익을 안 지키면 고립되고 심지어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한국 식으로 “국회의원? 말 안 들으면 다음에 공천 안 준다고 해!”,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검찰에 비리 조사시켜 매장해 버려!”, “기업이 말 안 들어? 검찰, 국세청 동원해서 혼을 내고 필요하면 공중분해해 버려!” 하는 경우 즉시 사임을 한다. 그리고 사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곧장 검찰에 가서 고발을 하거나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에 대문짝만하게 투고를 한다.
대한민국 ‘왕’은 재임기간 동안 더 젊어지는 것이 문제
무리의 이익을 국익에 앞세우는 문화는 청와대 보좌관들도 타락시킨다. 일단 청와대에 입성하면 보좌관들은 그 ‘5년제 왕’을 세상으로부터 차단시키고 고립시킨다. 그래야 우선 고물을 나누어 먹는 수효가 적어진다. 노무현의 경우처럼 당을 버리고 소수가 신당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푸닥거리의 근본동력 내지 셈법은 고물을 나누어 먹는 수효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명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들도 동력이 없으면 진행이 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그 ‘5년제 왕’은 청와대 내에서, 모르핀주사를 맞고 사는 사람처럼 아주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살게 된다.
이 ‘5년제 왕’은 재임 시 늙기는커녕 더 젊어진다. 모든 사안에서 잘못은 청와대 밖 상것들의 탓이고 각하는 인류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聖君)이라고 아침저녁으로 아부하므로 항상 행복하고, 고로 늙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5년제 왕’과 간신들은 똘똘 뭉쳐서 자기들에게 좋은 일, 자기들에게 수지 맞는 일들만 집행한다.
갓난아기들도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인지 아니지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정치인들은 서민들을 얕볼지 몰라도 서민들은 알 것은 다 안다. 결국 3년 차, 4년 차가 되면 서민들은 완전히 오장이 뒤집어지게 되고 환장을 하는 수준으로 약이 오르게 되며, 실제로 임기 말쯤 되면 이성을 잃을 수준으로 이를 득득 갈며 선거 날만 기다린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4년 전에는 들판에 선 허수아비라도 한나라당 후보면 덮어놓고 찍을 기세였다. 이는 항상 그랬다. YS(김영삼) 후에는 DJ(김대중), MH(노무현) 후에는 MB(이명박), 이런 식으로 시계추처럼 자동적으로 왔다 갔다 했다. 오직 예외는 DJ 이후였는데, 이는 100% 노무현(盧武鉉)당시 대선후보의 공덕이었다. “반미(反美)면 어때?”라는 식으로 급진적이어서 유권자들이 불안해했고 지지율이 실제로 절망적이었지만, 돈이 억수로 많은 사람이 믿고 보장하겠다는데 대부분 통장에 100만원도 없는 서민들이 못 믿을 이유가 있겠는가? 포장마차 원샷에 그렇게 모두가 홀딱 넘어갔다.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술한 바와 같이 5년이 지나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유권자들은 덮어놓고 반대편에 몰표를 주었다.
선거를 통한 응징을 기다린 젊은이들
노무현에 대한 극도의 반감으로 들판에 선 허수아비라도 한나라당 후보면 찍어 줄 기세였던 그로부터 근 4년이 지난 후, 더욱 정확히 2011년 10월 26일, 서두에 이야기한 보궐선거가 있었다. 서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오냐, 선거야. 너 잘 왔다!” 하고 벼르고 있었다. 다만 특징은,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보수고 진보고 간에 정치인들은 모두 보기 싫어졌고, 비정치인에 대한 동경이 무르익었다. 그래서 ‘안철수와 박원순’ 콤비가 갑자기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은 ‘비(非)정치인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정치적 실험이고, 위험도가 높다. 그러나 상술한 대로 한국 유권자들은 이성을 잃을 수준으로 미움이 그득 차게 된다. 어쨌든 그 바람에 초장부터 비정치인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를 15% 정도의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소위 ‘수첩공주’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전투복장을 하고 전면으로 나섰다. 나선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깽판으로 돌아갔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예정을 바꾸어 코앞에 있는 순대국집에 들어가서 5000원인가 6000원인가 하는 순대국을 먹었다.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보았다면 기절을 했을 것이다. “얘야, 미쳤니? 아무리 선거가 중해도 순대국을, 그것도 기자들 카메라가 지켜보는 중에…. 내가 그렇게 안 키웠는데 저러네….”
그리고 강원도 인제에 가서는 플라스틱 통 위에 차린 상에서 3000원짜리 국수를 먹었다. 그것도 수백 수천 명이 지켜보고 카메라들이 사방에서 돌아가는 와중에. 하여간 한국에 완전 구경이 났었다. 그 통에 호남을 제외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서울에서까지 한나라당이 완승했다. 참으로 쓸개도 간도 없는 유권자들이었다. ‘수첩공주’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야단법석이고 다 된 밥에 모래까지 뿌리며 편을 들어? 그러나 모든 것은 유권자들 마음이었고 유권자들은 ‘수첩공주’의 편을 철저히 들었다.
임기 4년차면 너나 할 것 없이 청와대에 원성 쏟아내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는 달랐다. 하기야 이것도 한때 위험했다. 그 ‘수첩공주’는 어떤 때는 나경원 후보와 나란히, 어떤 때는 홀로 서울 거리와 골목들을 거의 올인 수준으로 돌았다.
그와 더불어 정치판에 처음 들어섰고 고로 검증을 받은 적이 없는 박원순 후보에 대한 검증공세가 치열했다. 이래 저래 어렵쇼, 15% 정도 앞서던 판세는 여론조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에 박빙으로 돌아섰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선거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결국 문제는 ‘피부’였다.
진보진영 정치인들은 역동적이고,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다. 반면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경우, 대부분 일류학교 나오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외에는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정도로 무색무취의 한량들이다. 그러므로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 여론조사를 해야 시민들이 잣대를 들이밀 건더기가 별로 없다. 그러므로 결국 누가 더 예쁘고 누구 피부가 더 고운지 콘테스트로 낙착된다. 그래서 피부 곱고 예쁜 오세훈이 맹형규를 크게 눌렀었고, 같은 이유로 나경원도 아주 쉽게 후보경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는 한량 비슷한 한나라당 후보들 중에서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고르라니까 시민들이 그렇게 선택한 것일 뿐이다. 유권자들은 정작 본선에서는 피부가 고운 것도 시비를 걸고 넘어졌다. 오세훈 전 시장처럼 나경원 후보도 피부과를 다녔으니까 그렇게 곱고 예쁜 것인데, 예선에서는 좋다고 하고 왜 본선에서는 시비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 오세훈이 시장후보일 때에는 한나라당이 야당이었고 고로 모든 원성은 당시 여당, 더욱 정확히 이야기하여 청와대의 노무현으로 갔다. 그러므로 피부과를 다녔건 아니었건 밉살스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후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청와대를 접수하고 어언 4년이 흘렀고 원성은 다시 청와대로 향했다. 불행히도 이번 청와대의 주인장은 나경원 후보와 같은 당이었다. 실제로 한나라당 내에서도 박근혜와 달리 나경원은 소위 친이계(親李系)로 분류되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비를 걸고 싶은 판인데, 뭐! 1억짜리 피부과에 다녔다고? 나경원 후보는 펄펄 뛰며 “많아야 1000만원…”이라고 항변했지만 미워할 거리를 찾는 유권자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미국 대통령 8년 하면 20년은 늙어
나경원 후보의 피부만 문제가 아니었다. MB의 피부도 문제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임기 4년 간 약 10세 정도 늙고 재선에 당선되면 20세 정도 늙는다. 내 말이 안 믿어지면 클린턴, 조지W.부시(아들 부시)당선 시 사진과 퇴임 시 사진을 보기 바란다. 진짜로 바싹 늙어서 파파 할아버지가 되어 나간다.
MB의 보좌관들은 이 점에서 크게 실패했다. 적어도 TV 앞에 설 때는 서민들이 세상 살아가는 것 이상으로 대통령 노릇 하기도 팍팍하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얼굴에는 없는 주름살이라도 그려 넣고 회색가루라도 발라야 한다. 그런데 그의 피부는, 적어도 TV상에서는 나경원 후보 이상으로 곱다. TV 카메라 앞에 나서기 전에 분장 방법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농담이 아니다. 시각적 인상은 두뇌작동에 앞선다.
부언하자면,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노무현에 대한 혐오감으로 말미암아 서울에서 대거 한나라당 정치 초년생들을 국회로 보냈다. 만약 내 자신이 그렇게 당선된 한나라당 초선의원이었다면, 나는 예를 들어서 매달 며칠씩은 집에서 안 잘 것이다. 하루는 구로공단 근로자들과 합숙하고 하루는 중소기업 사장과 24시간 함께 지낼 것이고 하루는 편의점 알바생과 지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고 정책에 반영한다. 근로자로서 사는 것이 이렇구나, 중소기업 사장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알바로 돈을 버는 것이 이렇구나….
나경원과 MB의 피부는 감동을 주는 데 실패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소월(素月)이 울다가 스러져간 땅이다. 한민족의 대표적 정서는 소월이 노래하며 죽은 ‘연민’이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프레임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스테이크와 빵만으로 세 끼를 때우는 것과 유사하다. 하루라도 김치를 안 먹으면 밥을 안 먹은 것 같이 느끼는 것이 한국인들인 것처럼, ‘연민’을 잊는 순간 그 정치인은 한국 땅에서는 끝장이다. 이는 특히 잘 먹고 잘사는 엘리트 출신들로 가득 차 있는 한나라당 정치인들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는 요인이다. 한국에서는 보수(保守)일수록 소월의 ‘연민’을 더욱 깊이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 한민족을 버텨 주는 것은 그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극도로 나쁘고 나라마다 청년실업자 문제로 끌탕인 것을 안다. 그러나 수천 년간 한민족을 버텨 준 정신적 버팀목인 ‘연민’과 ‘염치’를 철저히 방기한 한나라당의 죄는 하늘을 찌른다. 한나라당이야말로 참으로 통탄스러운 집단이다.
결국 나경원의 피부와 그리고 MB의 피부가 문제였다. 감동을 주는 데 철저히 실패한 것이다. 사람이 끼니를 거르는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무시를 당하는 것은 참기 힘들다. 젊은이들이 분노한 것은 비단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집권당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인식에 그들은 처절히 분노한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뽑아 놓는 이 ‘5년제 왕’ 현상은 이제는 중단되어야 한다. 한국 유권자들은 그 ‘5년제 왕’에 대한 극도의 반감으로 거의 이성을 잃고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며 반대편에 표를 몰아 주어 왔는데, 이는 실제로 위험하다.
이번 10·26 보궐선거에 승리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에도 그러한 위험은 존재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어느 경우 극단적으로 진보적이었고, 그가 운영해 온 시민단체들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에 대한 검증공세는 중도에서 ‘1억 피부과 운운’, ‘수천만 원 유류비’ 등 나경원 후보 자신의 도덕적 허약성으로 인하여 붕괴된 바가 컸다. 다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철수 교수에게 큰 빚을 졌고, 대권(大權)을 향한 안철수 교수의 대망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박 시장은 놀라울 수준으로 중도(中道)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의 두뇌는, 나의 관측으로는 상당한 높은 수준이다. 이 점도 그가 ‘평소 소신과 다르게’ 원만한 노선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미국에선 진보진영도 나라 잘살게 하는 데 적극적
끝으로, 21세기에 접어든 즈음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경제’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무리를 이루어 이를 갈며 싸우는 습성으로 인하여 밖으로는 남북한, 그리고 안으로는 보수 대 진보, 이렇게 안팎으로 치열한 대치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고갈하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다.
그나마 정경(政經)분리가 상당히 확립되어 정치적 이전투구와 관계없이 재벌기업들이 전자분야, 자동차분야 등에서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에 관련되어, 진보 진영의 큰 허점은 나라를 잘살게 만드는 데 스스로 능동적으로 성취하였거나 기여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은 박정희의 독재와 신군부의 만행으로 얼룩진 바가 있지만, 잘잘못을 떠나서 한국이 지금처럼 잘살게 된 것이 보수와 진보 둘 중 어느 쪽의 공덕인지를 서민들에게 묻는다면 아마 80% 내지 95%가 보수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이는 한국의 진보진영이 안은 숙제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의 경우 진보진영도 보수 이상으로 나라를 잘살게 하는 데 적극적이다.
노무현 정권시절 삼성 내지 이건희(李健熙) 죽이기가 진행되었던 것은, 아무리 죄가 있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표를 크게 잃는 짓이었다.
잘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정치 같은 사안보다 서민들에게 100배 더 중차대한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지난 번 노무현 탄핵으로 한나라당이 박살이 났었다. 노무현이 그 사유를 제공하였고 실제로 그는 “메롱!” 하면서 탄핵을 기다리고 있는 식이었으므로 국민들 중에서 노무현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대통령중심제에서 정치게임으로 탄핵 운운하며 국가경제에 위해를 주게 될 가능성에 대하여서는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강하게 응징했다.
그 이전에도 그런 예가 있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 고발 직후 당시 이회창의 지지율은 28% 정도에서 17%로 급락했다. 이는 국민들이 DJ가 예뻐서 편을 든 것이 아니었다.
정치자금 건으로 경제를 책임진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을 유권자들이 차단한 것이다. 당시 이회창의 정책자문위원이었던 나는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 수준으로 그를 말렸지만 결국 그렇게 됐다. 그 고발만 아니었다면 그는 당선되었다. 정치적 게임으로 경제를 흔드는 것은, 탄핵이건 고발이건 유권자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이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잘난 한나라당에겐 국민들이 외국인처럼 느껴질지도
진보진영에서는 이를 모르는지, 혹은 표를 잃더라도 재벌들을 꺾어 놓아야 한다고 믿는지 나는 모른다.
진보진영 집권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재벌들에 대한 공격이다. 나의 생각에는 40대 일부와 50대, 60대는 이러한 면에 더 민감하고, 고로 보수가 미워도 보수에게 표를 준다. 진보진영이 50대, 60대로부터 더 많은 표를 얻기를 원한다면, 안보사안들과 함께 재벌에 대한 반감에서도 스스로 중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가 중요시하는 인권의 경우에도 인권의 초석은 경제이다. 잘살아야, 혹은 직장이 있어야 사람처럼 행세할 수 있다. 요새 세상에서는 인구의 99% 이상은 인권문제로 시달리지 않는다. 돈이 없고 직장이 없는 것이 백배 천배 절박한 사안이고, 재벌이 없다면 한국과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아무리 미워도 재벌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에 대하여 유권자들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보수진영이 20대에서 40대 사이에서 더욱 많은 지지를 얻으려면 내가 위에서 장황히 서술한 국민정서에 더욱 익숙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박근혜가 국민들에게 다가간 것은 한나라당으로서는 큰 소득이었다.
미국에서는 모두가 각기 혼자 선다. 그러므로 미국식 정치제도 또한 그러한 면이 있다.
반면, 한국인들은 정에 살고 정에 쓰러지는 사람들이다. 공부 잘해서 일류학교 다니고 고등고시 패스해서 입지한 한나라당 정치인들에게는 어쩌면 그러한 한국사람들이 거의 외국인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고 심지어 촌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러한 경향이 한나라당의 큰 문제점이다. 그렇게 잘났으면 세금 뜯어먹으며 살 것이 아니라 대기업으로 가든지 스스로 사업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이민을 가서 ‘잘난’ 미국사람들과 살든지 함이 옳은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심각했고, 이 선거를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된 것은 젊은 세대의 분노였다. 이 선거를 두고 열 가지, 백 가지 해설이 대두됐다. 나의 분석으로는, 그 젊은이들의 분노는 대통령의 피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를 설명하겠다.
불평을 들을 각오를 하고 이야기하자면, 한(韓)민족의 기질은 몽골족의 기질과 거의 같다. 몽골족은 이리떼처럼 무리를 지어 다른 무리들과 피로써 항쟁하여 승자독식(勝者獨食)을 원칙으로 살았다. 다른 부족에 쳐들어가면 각자 눈에 띄는 대로 자기 것이었다.
한민족은 그와 닮은 기질을 많이 가지고 무리를 지어 아귀다툼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나의 수필집 《백만 명 먹여 살리기》(도솔, 1996)에서 이를 ‘이리떼 식 생존방식’이라고 규정했다. 이 생존방식의 특징은, 상대를 소탕하기 위해서는 나라가 망해도 상관 안 하는 점이다. 이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신으로 갔다 돌아온 자들이 헷갈리는 소리들을 하는 바람에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작살이 났다. 요행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그때 한반도는 영원히 일본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한참 후, 서구문물을 재빨리 복사한 일본이 다시 독사의 혀를 한반도에 디밀었는데, 이야기는 똑같았다. 민비파와 대원군파에게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주 먼 둘째 사안이었고, 상대를 소탕하는 것이 하늘에 빛나는 태양처럼 가장 확실한 목적이었다. 일본이 미국에 깝죽대다가 얻어맞은 원자탄이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지금쯤은 완전히 일본의 일부일 것이고 국제사회는 이를 공인했을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조선시대 왕보다 견제장치 없어
한민족은 아주 고집이 세다. 아니면 망각증세가 심하다. 그 정도로 곤욕을 치르고도 눈썹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북이 분단되니 곧장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은 남한을 집어삼키겠다고 6·25전쟁을 일으켰다.
‘양보’ ‘타협’ ‘협상’? 그런 것들은 한민족 사전에 없다. ‘승자독식’, 이 단어는 고딕체로 아주 크게 인쇄되어 있다. 많은 사연을 거쳐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현 정부가 들어섰지만, 그 몽골족식, 이리떼식 생존방식은 어느 때보다도 건재하다. 미국식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뽑는 것은 전혀 아니다. ‘5년제 왕’을 뽑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왕조 시에는 왕에 대해 상당한 견제장치가 있었다. 그래서 왕이 멋대로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한국 대통령들, 아니 이 ‘5년제 왕’들은 조선왕조 시의 왕보다 더 독재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애초 그 민주주의를 만들 때 그것은 자기들을 위한 것이었다. 수출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앵글로색슨들은 자기들과는 딴판으로, 세상 어떤 나라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나라가 망하건 말건 승자독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민주주의를 한다고 미국식 정치제도를 들여왔지만 독재에 대한 견제장치는 조선왕조 시보다 오히려 약하다. “국회의원? 말 안 들으면 다음에 공천 안 준다고 해!”,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검찰에 비리 조사시켜 매장해 버려!”, “기업이 말 안 들어? 검찰, 국세청 동원해서 혼을 내고 필요하면 공중분해해 버려!”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만이 애용하던 레퍼토리가 아니다. ‘5년제 왕’들은 모두가 애용한다.
삼권분립(三權分立)? 여당 의원들은 세금만 축내는 거수기들이며,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그러다가 일이 다 끝난 임기 마지막, 유권자들의 오장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자기들이 다음 선거에 낙선할 것이 확실해진 후에야 레임덕 대통령에게 뭐라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당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소 잃은 후 외양간 고친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무리에 대한 충성보다 국익이 우선
미국에서 대통령이 그러한 독재를 못하는 이유는 미국인들, 더욱 정확히 이야기하여 미국 백인들은 각자 홀로 서기 때문이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와 마주하며 2000년 살면서 몸에 밴 습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의 의견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예수를 믿건 안 믿건 관계없이 모두가 그렇게 되었고, 종교를 떠나 사회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콩나물 물주기 효과이다. 하도 반복하면 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무리를 지어 국익은 뒤로 젖히고 무리 내에서의 충성을 앞세우는 문화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닉슨이 워터게이트에 연루되어 자기의 거짓말을 캐던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리처드슨 법무장관에게 명령했을 때 리처드슨은 즉시 사임했다. 이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리처드슨은 닉슨이 손수 키운 심복 중의 심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경우, 심복 아니라 심복 할아비라도 국익에 분명히 해로운 짓을 명령받는 경우 모두가 일제히 국익 편에 선다. 이는 미국 백인들이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한국인들보다 더 우수해서 그러는 것이 전혀 아니다. 모두가 그러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그러한 것만 보고 컸으므로 보통 미국인들은 모두가 자동적으로 그렇게 행동한다. 아니면 친구들로부터 절교를 당하고 심지어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문화의 힘은 그만큼 큰 것이다. 즉, 한국에서는 그 경우 국익을 지키면 배신했다고 지탄받고 고립되지만, 미국에서는 국익을 안 지키면 고립되고 심지어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한국 식으로 “국회의원? 말 안 들으면 다음에 공천 안 준다고 해!”,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검찰에 비리 조사시켜 매장해 버려!”, “기업이 말 안 들어? 검찰, 국세청 동원해서 혼을 내고 필요하면 공중분해해 버려!” 하는 경우 즉시 사임을 한다. 그리고 사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곧장 검찰에 가서 고발을 하거나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에 대문짝만하게 투고를 한다.
대한민국 ‘왕’은 재임기간 동안 더 젊어지는 것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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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1998년 1월(왼쪽). 2003년 3월(오른쪽). |
이 ‘5년제 왕’은 재임 시 늙기는커녕 더 젊어진다. 모든 사안에서 잘못은 청와대 밖 상것들의 탓이고 각하는 인류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聖君)이라고 아침저녁으로 아부하므로 항상 행복하고, 고로 늙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5년제 왕’과 간신들은 똘똘 뭉쳐서 자기들에게 좋은 일, 자기들에게 수지 맞는 일들만 집행한다.
갓난아기들도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인지 아니지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정치인들은 서민들을 얕볼지 몰라도 서민들은 알 것은 다 안다. 결국 3년 차, 4년 차가 되면 서민들은 완전히 오장이 뒤집어지게 되고 환장을 하는 수준으로 약이 오르게 되며, 실제로 임기 말쯤 되면 이성을 잃을 수준으로 이를 득득 갈며 선거 날만 기다린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4년 전에는 들판에 선 허수아비라도 한나라당 후보면 덮어놓고 찍을 기세였다. 이는 항상 그랬다. YS(김영삼) 후에는 DJ(김대중), MH(노무현) 후에는 MB(이명박), 이런 식으로 시계추처럼 자동적으로 왔다 갔다 했다. 오직 예외는 DJ 이후였는데, 이는 100% 노무현(盧武鉉)당시 대선후보의 공덕이었다. “반미(反美)면 어때?”라는 식으로 급진적이어서 유권자들이 불안해했고 지지율이 실제로 절망적이었지만, 돈이 억수로 많은 사람이 믿고 보장하겠다는데 대부분 통장에 100만원도 없는 서민들이 못 믿을 이유가 있겠는가? 포장마차 원샷에 그렇게 모두가 홀딱 넘어갔다.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술한 바와 같이 5년이 지나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유권자들은 덮어놓고 반대편에 몰표를 주었다.
선거를 통한 응징을 기다린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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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2003년 (사진 왼쪽). 2008년 2월(오른쪽). |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은 ‘비(非)정치인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정치적 실험이고, 위험도가 높다. 그러나 상술한 대로 한국 유권자들은 이성을 잃을 수준으로 미움이 그득 차게 된다. 어쨌든 그 바람에 초장부터 비정치인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를 15% 정도의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소위 ‘수첩공주’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전투복장을 하고 전면으로 나섰다. 나선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깽판으로 돌아갔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예정을 바꾸어 코앞에 있는 순대국집에 들어가서 5000원인가 6000원인가 하는 순대국을 먹었다.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보았다면 기절을 했을 것이다. “얘야, 미쳤니? 아무리 선거가 중해도 순대국을, 그것도 기자들 카메라가 지켜보는 중에…. 내가 그렇게 안 키웠는데 저러네….”
그리고 강원도 인제에 가서는 플라스틱 통 위에 차린 상에서 3000원짜리 국수를 먹었다. 그것도 수백 수천 명이 지켜보고 카메라들이 사방에서 돌아가는 와중에. 하여간 한국에 완전 구경이 났었다. 그 통에 호남을 제외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서울에서까지 한나라당이 완승했다. 참으로 쓸개도 간도 없는 유권자들이었다. ‘수첩공주’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야단법석이고 다 된 밥에 모래까지 뿌리며 편을 들어? 그러나 모든 것은 유권자들 마음이었고 유권자들은 ‘수첩공주’의 편을 철저히 들었다.
임기 4년차면 너나 할 것 없이 청와대에 원성 쏟아내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는 달랐다. 하기야 이것도 한때 위험했다. 그 ‘수첩공주’는 어떤 때는 나경원 후보와 나란히, 어떤 때는 홀로 서울 거리와 골목들을 거의 올인 수준으로 돌았다.
그와 더불어 정치판에 처음 들어섰고 고로 검증을 받은 적이 없는 박원순 후보에 대한 검증공세가 치열했다. 이래 저래 어렵쇼, 15% 정도 앞서던 판세는 여론조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에 박빙으로 돌아섰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선거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결국 문제는 ‘피부’였다.
진보진영 정치인들은 역동적이고,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다. 반면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경우, 대부분 일류학교 나오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외에는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정도로 무색무취의 한량들이다. 그러므로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 여론조사를 해야 시민들이 잣대를 들이밀 건더기가 별로 없다. 그러므로 결국 누가 더 예쁘고 누구 피부가 더 고운지 콘테스트로 낙착된다. 그래서 피부 곱고 예쁜 오세훈이 맹형규를 크게 눌렀었고, 같은 이유로 나경원도 아주 쉽게 후보경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는 한량 비슷한 한나라당 후보들 중에서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고르라니까 시민들이 그렇게 선택한 것일 뿐이다. 유권자들은 정작 본선에서는 피부가 고운 것도 시비를 걸고 넘어졌다. 오세훈 전 시장처럼 나경원 후보도 피부과를 다녔으니까 그렇게 곱고 예쁜 것인데, 예선에서는 좋다고 하고 왜 본선에서는 시비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 오세훈이 시장후보일 때에는 한나라당이 야당이었고 고로 모든 원성은 당시 여당, 더욱 정확히 이야기하여 청와대의 노무현으로 갔다. 그러므로 피부과를 다녔건 아니었건 밉살스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 후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청와대를 접수하고 어언 4년이 흘렀고 원성은 다시 청와대로 향했다. 불행히도 이번 청와대의 주인장은 나경원 후보와 같은 당이었다. 실제로 한나라당 내에서도 박근혜와 달리 나경원은 소위 친이계(親李系)로 분류되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비를 걸고 싶은 판인데, 뭐! 1억짜리 피부과에 다녔다고? 나경원 후보는 펄펄 뛰며 “많아야 1000만원…”이라고 항변했지만 미워할 거리를 찾는 유권자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미국 대통령 8년 하면 20년은 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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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클린턴: 1993년 7월(왼쪽). 2001년 3월(오른쪽). |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임기 4년 간 약 10세 정도 늙고 재선에 당선되면 20세 정도 늙는다. 내 말이 안 믿어지면 클린턴, 조지W.부시(아들 부시)당선 시 사진과 퇴임 시 사진을 보기 바란다. 진짜로 바싹 늙어서 파파 할아버지가 되어 나간다.
MB의 보좌관들은 이 점에서 크게 실패했다. 적어도 TV 앞에 설 때는 서민들이 세상 살아가는 것 이상으로 대통령 노릇 하기도 팍팍하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얼굴에는 없는 주름살이라도 그려 넣고 회색가루라도 발라야 한다. 그런데 그의 피부는, 적어도 TV상에서는 나경원 후보 이상으로 곱다. TV 카메라 앞에 나서기 전에 분장 방법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농담이 아니다. 시각적 인상은 두뇌작동에 앞선다.
부언하자면,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노무현에 대한 혐오감으로 말미암아 서울에서 대거 한나라당 정치 초년생들을 국회로 보냈다. 만약 내 자신이 그렇게 당선된 한나라당 초선의원이었다면, 나는 예를 들어서 매달 며칠씩은 집에서 안 잘 것이다. 하루는 구로공단 근로자들과 합숙하고 하루는 중소기업 사장과 24시간 함께 지낼 것이고 하루는 편의점 알바생과 지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고 정책에 반영한다. 근로자로서 사는 것이 이렇구나, 중소기업 사장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알바로 돈을 버는 것이 이렇구나….
나경원과 MB의 피부는 감동을 주는 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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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W. 부시: 2000년(왼쪽). 2009년 퇴임 무렵(오른쪽). |
젊은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극도로 나쁘고 나라마다 청년실업자 문제로 끌탕인 것을 안다. 그러나 수천 년간 한민족을 버텨 준 정신적 버팀목인 ‘연민’과 ‘염치’를 철저히 방기한 한나라당의 죄는 하늘을 찌른다. 한나라당이야말로 참으로 통탄스러운 집단이다.
결국 나경원의 피부와 그리고 MB의 피부가 문제였다. 감동을 주는 데 철저히 실패한 것이다. 사람이 끼니를 거르는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무시를 당하는 것은 참기 힘들다. 젊은이들이 분노한 것은 비단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집권당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인식에 그들은 처절히 분노한 것이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뽑아 놓는 이 ‘5년제 왕’ 현상은 이제는 중단되어야 한다. 한국 유권자들은 그 ‘5년제 왕’에 대한 극도의 반감으로 거의 이성을 잃고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며 반대편에 표를 몰아 주어 왔는데, 이는 실제로 위험하다.
이번 10·26 보궐선거에 승리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에도 그러한 위험은 존재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어느 경우 극단적으로 진보적이었고, 그가 운영해 온 시민단체들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에 대한 검증공세는 중도에서 ‘1억 피부과 운운’, ‘수천만 원 유류비’ 등 나경원 후보 자신의 도덕적 허약성으로 인하여 붕괴된 바가 컸다. 다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철수 교수에게 큰 빚을 졌고, 대권(大權)을 향한 안철수 교수의 대망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박 시장은 놀라울 수준으로 중도(中道)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의 두뇌는, 나의 관측으로는 상당한 높은 수준이다. 이 점도 그가 ‘평소 소신과 다르게’ 원만한 노선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미국에선 진보진영도 나라 잘살게 하는 데 적극적
끝으로, 21세기에 접어든 즈음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경제’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무리를 이루어 이를 갈며 싸우는 습성으로 인하여 밖으로는 남북한, 그리고 안으로는 보수 대 진보, 이렇게 안팎으로 치열한 대치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고갈하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다.
그나마 정경(政經)분리가 상당히 확립되어 정치적 이전투구와 관계없이 재벌기업들이 전자분야, 자동차분야 등에서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에 관련되어, 진보 진영의 큰 허점은 나라를 잘살게 만드는 데 스스로 능동적으로 성취하였거나 기여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은 박정희의 독재와 신군부의 만행으로 얼룩진 바가 있지만, 잘잘못을 떠나서 한국이 지금처럼 잘살게 된 것이 보수와 진보 둘 중 어느 쪽의 공덕인지를 서민들에게 묻는다면 아마 80% 내지 95%가 보수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이는 한국의 진보진영이 안은 숙제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의 경우 진보진영도 보수 이상으로 나라를 잘살게 하는 데 적극적이다.
노무현 정권시절 삼성 내지 이건희(李健熙) 죽이기가 진행되었던 것은, 아무리 죄가 있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표를 크게 잃는 짓이었다.
잘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정치 같은 사안보다 서민들에게 100배 더 중차대한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지난 번 노무현 탄핵으로 한나라당이 박살이 났었다. 노무현이 그 사유를 제공하였고 실제로 그는 “메롱!” 하면서 탄핵을 기다리고 있는 식이었으므로 국민들 중에서 노무현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대통령중심제에서 정치게임으로 탄핵 운운하며 국가경제에 위해를 주게 될 가능성에 대하여서는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강하게 응징했다.
그 이전에도 그런 예가 있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 고발 직후 당시 이회창의 지지율은 28% 정도에서 17%로 급락했다. 이는 국민들이 DJ가 예뻐서 편을 든 것이 아니었다.
정치자금 건으로 경제를 책임진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을 유권자들이 차단한 것이다. 당시 이회창의 정책자문위원이었던 나는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 수준으로 그를 말렸지만 결국 그렇게 됐다. 그 고발만 아니었다면 그는 당선되었다. 정치적 게임으로 경제를 흔드는 것은, 탄핵이건 고발이건 유권자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이는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잘난 한나라당에겐 국민들이 외국인처럼 느껴질지도
진보진영에서는 이를 모르는지, 혹은 표를 잃더라도 재벌들을 꺾어 놓아야 한다고 믿는지 나는 모른다.
진보진영 집권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재벌들에 대한 공격이다. 나의 생각에는 40대 일부와 50대, 60대는 이러한 면에 더 민감하고, 고로 보수가 미워도 보수에게 표를 준다. 진보진영이 50대, 60대로부터 더 많은 표를 얻기를 원한다면, 안보사안들과 함께 재벌에 대한 반감에서도 스스로 중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가 중요시하는 인권의 경우에도 인권의 초석은 경제이다. 잘살아야, 혹은 직장이 있어야 사람처럼 행세할 수 있다. 요새 세상에서는 인구의 99% 이상은 인권문제로 시달리지 않는다. 돈이 없고 직장이 없는 것이 백배 천배 절박한 사안이고, 재벌이 없다면 한국과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아무리 미워도 재벌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에 대하여 유권자들이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보수진영이 20대에서 40대 사이에서 더욱 많은 지지를 얻으려면 내가 위에서 장황히 서술한 국민정서에 더욱 익숙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박근혜가 국민들에게 다가간 것은 한나라당으로서는 큰 소득이었다.
미국에서는 모두가 각기 혼자 선다. 그러므로 미국식 정치제도 또한 그러한 면이 있다.
반면, 한국인들은 정에 살고 정에 쓰러지는 사람들이다. 공부 잘해서 일류학교 다니고 고등고시 패스해서 입지한 한나라당 정치인들에게는 어쩌면 그러한 한국사람들이 거의 외국인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고 심지어 촌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러한 경향이 한나라당의 큰 문제점이다. 그렇게 잘났으면 세금 뜯어먹으며 살 것이 아니라 대기업으로 가든지 스스로 사업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이민을 가서 ‘잘난’ 미국사람들과 살든지 함이 옳은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