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그룹 인터뷰] 30·40대 강남 아줌마들이 보는 나경원과 박원순 : 월간조선

“강남도 안심할 수 없다.”

요즘 한나라당 안팎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얘기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의 우려가 ‘엄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월 7일에 실시한 서울시장 보선 가상 양자(兩者)대결 여론조사 결과다. 박원순(朴元淳) 변호사가 야권의 단일후보가 되기 전(前)이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에서 박원순 변호사(이하 직책생략)를 지지한다는 사람은 전체의 52.5%, 나경원(羅卿瑗)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30.9%였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이 어떤 곳인가. 한나라당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다는 곳이다. ‘기호 1번’이 아니면 선거에 나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지역이다.

일주일 뒤에 실시한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두 사람의 격차가 많이 줄었다. 지난 9월 13일 여론조사에서는 박원순 지지율 41.3%, 나경원 40%였다.

《조선일보》는 이 결과에 대해, 박원순에 쏠렸던 강남·여성 유권자가 한나라당으로 유턴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불과 1년3개월 전에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를 보자.

오세훈(吳世勳) 한나라당 후보는 강남구에서 59.94%, 서초구에서 59.0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한명숙(韓明淑) 민주당 후보는 30%대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지난 10월 7일에 “나경원이 강남권에서 박원순을 추월했다”고 했다.

연구소는 강남3구와 강동구를 합친 ‘강남·동’ 지역에서 나경원 지지율이 49.3%, 박원순 47.7%라고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여권 후보가 야권 후보를 간신히 이기는, 그것도 오차 범위내에서 약간 앞서는 상황에 안도해야 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각종 여론에서 진원지로 지목하는 젊은 강남 여성 유권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월간조선》은 강남과 서초구에 사는 30·40대 여성 27명을 만났다. 표본으로 삼기는 규모가 작지만, 그들을 통해 요즘의 정치권을 바라보는 심리는 파악할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평균 연령은 37.1세로, 전업주부가 10명, 직장 여성이 17명이다. 이들 중 14명은 20년 이상 강남에 살고 있다. “강남에서 태어나 다른 구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27명 중 13명 “결정 못했다”

지난 10월 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희망의 나눔걷기’ 행사에 참석한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

기자가 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정치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 예상보다 크다는 점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대다수는 “정치는 잘 모른다. 인터뷰가 기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답변을 들어보니 지식 수준은 상당했다. 박원순과 안철수(安哲秀)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하 직책생략)의 단일화 과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었고, ‘투표를 하겠다’는 동기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별 생각 없이 투표장에 가 무조건 한나라당 찍는 세대 아닌가’라는 기자의 예상을 단숨에 깨 버렸다.

27명 중 절반 가량인 13명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나경원에게 투표한다는 사람이 10명, 박원순을 뽑겠다는 이가 3명이었다. 1명은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37세 A씨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했다.

A씨는 “보수적인 성향이지만 아직 정하지 못했다. 박원순이라는 사람이 잘 파악되지 않아서다. 그래도 거대 도시의 리더를 뽑는 일인데, 후보자에 대해서 알아보고 한 표를 던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초구에 8년째 살고 있는 전업주부 B씨 역시 ‘고민 중’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나경원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예쁘다, 똑똑하다를 떠나서 일하는 여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잘 병행하는 느낌이 들고요. 장애인 딸에 대해 자신감 있게 말하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멋있는 거랑 서울시장은 다르잖아요. 거대 조직을 이끌고 가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몰라서 마음의 결정을 못했어요. 박원순은 참신하기는 한데, 뭐랄까, 조심스러운 느낌이랄까요. 시민단체 사람이 시장을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좀 더 지켜보고 싶어요.”

서울의 비중에 비해 나경원은 너무 가벼워

박원순을 뽑겠다는 사람은 27명 중 3명이다.

두 명의 아이를 둔 41세의 여성은 “한나라당을 떠올리면 ‘기득권’, ‘비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경원을 보면 ‘엄친딸(엄마친구 딸의 줄임말로, 집안 좋고 공부 잘하며 외모가 좋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란 생각이지만, 박원순은 다르다. 박원순은 돈 욕심이 없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어서 그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서초구에 1년3개월째 살고 있는 39세의 여성도 ‘박원순 지지자’다.

“나경원은 실패라고는 경험해 본 적 없고 세상사를 많이 알지 못하는 엘리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아가 있다고는 하지만 특수계층의 장애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요. 박원순은 대한민국 사회의 기부 문화를 바꾼 사람이고, 아이디어가 많아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경원을 뽑겠다는 사람은 27명 중 10명이다.

14년째 강남에 살고 있고, 두 딸의 엄마인 서른여섯 살 C씨의 얘기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이 싫어졌어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믿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민주당 후보나 좌파를 뽑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경원이 서울시장 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거대함에 비해 비중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원순을 할 수는 없잖아요. 도무지 파악이 안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경원을 뽑으려고요.”

강남에 4년 전에 이사 왔고, 2명의 아이를 둔 직장여성 D씨 역시 나경원을 뽑을 예정이다.

“시민운동 하신 분이 서울시 같은 큰 살림을 맡을 수 있을까요. 나경원이 곱게 자라서 편하게 정치 생활을 한 분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혁신이나, 큰 일을 진행하기에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맞아요. 그래도 현재 상황에서는 나경원에게 좀 더 가까이 가 있네요.”

강남의 젊은 아줌마들이 바라보는 나경원과 박원순은 어떤 사람일까.

나경원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표현에서는 ‘야무지고 똑부러진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외에 ‘장애아 둔 엄마’ ‘엄친딸’ ‘실패한 적 없는 엘리트’ ‘말이 허공에 맴돎’ ‘꼼꼼한 강남 여성 대변인’ ‘50·60대 아저씨들의 로망’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 ‘온실 속의 화초’ ‘연예인 포스’ 등의 의견이 있었다.

박원순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었다. 호불호(好不好)가 무척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인권변호사’ ‘자선활동 관련 사업가’ ‘기부문화를 바꾼 사람’ ‘시민의견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반면에 ‘파악 안되는 인물’ ‘서민도 아니면서 서민후보라는 말이 어이없음’ ‘이중인격자’ ‘깔수록 지저분한 양파’ ‘뭔가를 감추려는 사람’ ‘거품’이라는 답이 있었다.

부모가 모두 강남에 사는 ‘강남 토박이’들의 대화

나경원 후보가 2011년 10월 9일, 중구 장충고등학교에서 열린 중구청장배 생활체육 축구대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거의 평생을 강남에서만 살았다는 ‘강남 토박이’들의 대화를 잠시 옮긴다.

강남구 삼성동에 살고 있는 E(34세)씨는 1남1녀를 둔 전업주부로 20년째 강남에 살고 있다. 그의 부모는 강남구 청담동에 산다. 서초구 서초동에 살고 있는 F(35세)씨는 전업주부이고, 27년째 강남에 살고 있다. 그의 부모는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다. 쌍둥이를 둔 G(36세)씨와 H(36세)씨는 직장여성으로, 25년 이상을 강남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데, G씨의 부모는 강남구 개포동에, H씨의 부모는 강남구 대치동에 살고 있다.

이들 네 명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전원 이회창(李會昌) 후보를 찍었다. 당시 이들의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노무현(盧武鉉) 열풍’을 일으킨 주역 세대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회창 후보를 찍을 정도로 한나라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들이다.

“박원순이 서민인 척하는 건 말 안되죠”

E씨: 저는 여태까지 투표는 매번 했어요. 부모님이 ‘골수 한나라당’이신데, 투표 당일날 아침 일찍부터 깨우셨어요. 투표부터 하고 와서 아침 먹었어요. 제 의지라기보다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어요. 부모님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구체적이신데, 굳이 그 의견에 비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늘 한나라당을 찍었어요. 2002년에 친구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했을 때도 저는 이회창 후보를 찍었어요.

G씨: 저희 집은 엄마, 아빠 정도가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누구 찍으라고 하실 정도예요(웃음). 가족모임이 잦은 편인데 다들 한나라당 찍으니까 그냥 찍는 거죠. 고모부 말씀이 박원순뿐만 아니라 안철수도 거품이라던데요. 신문에서 과대포장한 거라고. 이번에도 나경원 찍어야죠. 아까 회사에서 아는 언니가 나경원이 얼마 전에 달고 나온 브로치 예쁘다고 하던데, 나경원은 일단 예쁘잖아요?

F씨: 저희 집도 부모님이 골수 한나라당이세요. 투표를 오후에 해본 적이 없어요. 눈뜨면 일단 다녀와야 하는 곳이었거든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으레 한나라당 후보한테 투표하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자랐어요. 커서 보니까 부모님 말씀이 맞더라고요. 민주당이며 민노당 좌파들이 하는 얘기 중에 말도 안되는 것들이 많아요. 특히 자기들은 다 호의호식하면서 왜 없는 사람을 위로한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돼요.

G씨: 박원순, 너무 웃겨요. 자기가 무슨 서민이에요. 60평짜리 집에 산다면서요? 그런 사람이 서민인 척하고, 서민을 위한다고 하는 건 말도 안되죠. 생김새는 옆집 아저씨 같잖아요. 차라리 옆집 사람, 친근한 아저씨의 이미지를 앞세운다면 뭐라고 할 필요까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서민 이미지를 내세우는 건 너무 웃기잖아요?

H씨: 그게 좌파들의 특성 아닌가요? 자기들은 미국 유학 다녀와 놓고 반미(反美)주의자라고 외치고, 서울대 나와 놓고서는 서울대 없애자고 하는 모습들이 우습잖아요. 박원순 아들인가, 딸은 스위스에 유학 갔다면서요. 맞아요? 중국 유학 보내는데도 학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사람이 많은데, 스위스가 웬 말이에요?

“나경원 딸이 장애 있다 얘기 들으면 안됐다 싶어”

F씨: 좌파들의 논리가 너무 싫어요. 한나라당이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민주당이 너무하니까 한나라당 찍는 거예요. 솔직히 나경원도 시장감은 아니잖아요? 시장도 정치인이고, 시의 업무라는 것이 당을 떼서 생각할 수 없는 거잖아요. 나경원 하나가 변한다고 서울시 전체가 바뀌는 것도 아닐 테고요. 사실 나경원도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말’ 중에 하나잖아요. 그래서 나경원이 감은 안돼도 찍어야죠. 그냥 뭐, 예쁘고, 똑똑한 사람이죠.

H씨: 예쁘니까 보기는 좋던데요. 신문에 맨날 칙칙한 아저씨들 사진으로 도배되는 것보다는 나경원 같은 사람이 실리면 기분이 좋잖아요(웃음)? 저는 나경원이 의외로 저돌적인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곱게 자란 온실 속의 화초 같았는데 TV토론 같은 거 보니까 말 잘하던데요. ‘어, 의외다. 콘텐츠 있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F씨: 저는 딸이 있어서 그런지, 나경원 딸이 장애아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좀 동정이 갔어요. 세상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사람인데 아픔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요.

G씨: 안됐죠, 뭐. 아는 언니 말이 한 초등학교에 넣으려다가 거부당해서 나경원이 판사 시절에 소송했다던데요? 나중에는 결국 넣었다고 하던데. 애 키우는 엄마니까 아무래도 나경원 그 얘기 들으면 안됐다 싶은 생각도 들고, 잘됐으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E씨: 똑부러지고 잘할 것 같은데요. 여자라서 꼼꼼할 것 같고요. 솔직히 저는 안철수 나왔으면 안철수 찍으려고 했어요. 부모님이 들으시면 기절하시겠지만, 안철수는 뭔가 참신하잖아요. 평소 이미지도 좋고요. 안철수가 민주당으로 입당했다면 좀 생각해 봤겠지만 무소속으로 나왔으면 찍었을 거예요. 박원순이 나옴과 동시에 나경원으로 굳어졌죠(웃음).

F씨: 저는 안철수 안 찍었을 거예요. 머리 좋고 이미지 좋은 사람이 안철수뿐인가요. 교수가 뭣하러 정치판에 기웃거리는지 이해가 안 가요. 하긴 안철수가 정치하고 싶다기보다는 주위에서 부추긴 것 같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처신을 상당히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H씨: 저는 안철수 찍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 있죠? 누가 하든 다 똑같아 보이니, 그냥 정치 문외한도 한 번 해 봐라 싶은 심정으로 찍어 줬을 것 같아요. 안철수는 TV에서 보니까 반듯한 사람인 것 같아 보여서요. 그런데 이번에 실망 많이 했어요. 특히 박원순이랑 단일화했다는 부분은 정말 말도 안되죠. 주위에 친구들 중에서 ‘안철수 나왔으면 찍지만, 박원순은 안 찍는다’고 얘기하는 애들이 많아요.

G씨: 저는 별로예요. 그냥 서울시장에 관여한 것 자체가 우습고요. 아직 안철수에 대해 나쁜 이미지는 없는데, 그냥 그대로 살아 줘라 싶은 심정이랄까요. 상식적인 사람으로, 존경받는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바람이죠.

‘안철수 쓰나미’?

박원순 후보가 2011년 10월 13일, 남대문시장 입구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기자는 이 대목에서 많이 놀랐다. ‘노무현 열풍’ 때 이회창 후보를 찍을 정도로 ‘골수 한나라당’인 네 명 중 두 명이 ‘안철수를 뽑았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였다. 요즘 말하는 ‘안풍(安風·안철수 열풍)’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답변을 통계 냈다. ‘만약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했으면 그에게 투표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경원 지지자 10명 중 5명이 ‘그렇다’고 했다. 나경원은 한나라당 후보이고, 안철수가 만약에 출마를 했다면 비(非)한나라당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들의 심리는 대체 무엇인가.

응답한 36세의 서초구에 사는 한 여성은 이렇게 답했다.

“나경원이나 한나라당이 딱히 좋아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박원순을 못 뽑겠어서 나경원을 뽑으려는 거죠. 하지만 안철수가 나왔으면 그를 뽑았을 거예요. 그냥 한 번쯤은 새로운 인물을 뽑아 보고 싶은 심정이요. 한나라당이 해도, 민주당이 해도 말이 많으니까, 그럴 바에는 정치와 관련없는 사람에게 한 번 맡기는 심정으로 그에게 투표를 했을 겁니다.”

강남에 7년째 살고 있고, 자녀 1명을 둔 32살의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안철수가 신선해서 찍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성향이 없으니까, 당파(黨派)에 상관없이 행정에 주력하지 않을까요? 서울시 살림이라는 것이 정치와 무관하게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소신에 따라서 행정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아들 둘을 둔 39세의 주부는 ‘안철수 쓰나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나경원은 얼굴만 예쁘고 콘텐츠가 없다. 박원순은 시민의 의견을 잘 들어줄 것 같기는 하지만 알 수 없고, 안철수는 깨끗하다. 끝까지 고민했을 거다. 만약 출마했다면 ‘안철수 쓰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고 했다.

“안철수 찍지 않았을 것”에 대한 상반된 이유들

반면에 ‘안철수를 절대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상당수였다. 그런데 그 이유가 극과 극이었다. 한쪽은 ‘안철수처럼 깨끗한 아이콘이 혼탁한 정치에 발을 담그는 것이 안타깝다’는 식(式)이었다. 다른 쪽은 ‘안철수가 정치 참여를 선언하는 순간에 실망해서 뽑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36세로 강남에 7년 전에 이사온 한 여성은 “제발 정치로는 안 갔으면 좋겠다. 안철수처럼 깨끗한 분은 현재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 출마했어도 안 찍었을 거다. 정치는 아예 안하기를 바라서다”고 말했다.

강남에 27년째 살고 있으며 서른셋인 주부의 얘기다.

“안철수가 시장 후보로 거론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예전에 <무릎팍도사>(MBC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인터넷에서 대통령 시켜야 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이번에도 그냥 매번 후보군(群)에 포함되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박원순이랑 시장 출마 논의를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아직도 그 사람이 왜 저랬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예전의 좋았던 이미지까지 의심이 들어요. 교육자이고 연구소장이었던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있을까 싶어서요.”

강남에 16년째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안철수가 거론됐을 때 이 사람이 갈 때까지 갔구나 싶었다. 결국 이거였나. 정치판에 왜 나오려 하는가 싶었다. 절대 안 찍었을 거다”고 말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40세의 강남 거주자는 “안철수는 혁신과 선구자적인 행보를 보인 분으로 개인적으로는 존경한다. 하지만 기존 정치 속에서의 역할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매번 한나라당 후보 찍고도, ‘無黨派’라고 말하는 이들

지난 9월 7일, ‘청춘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 금오공대에 들어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정치권에서는 최근 불고 있는 ‘안풍’에 대해 기존의 정당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평을 내놓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이런 현상은 정확하게 나타났다. 인터뷰 응답자 27명 중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가 4명, 반(反) 한나라당이라는 사람이 1명이었다. 나머지 22명은 ‘나의 정치 성향은 무당(無黨)’이라고 답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여태까지 대다수의 투표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뽑았으면서도, 본인이 ‘무당파’라고 말한 사람이 10명이라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이들이 ‘안철수가 나왔으면 나경원 대신에 그를 뽑았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들일 것이다.

강남구 양재동에 사는 36세의 직장인 K씨의 얘기다.

“저희 부모님은 한나라당을 지지하시고 저는 투표를 꼬박꼬박 했어요. 노무현 대통령 때를 제외하고는 전부 한나라당 후보를 뽑았어요. 누가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한나라당이라고 말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얘기가 안 나와요. 애 둘 낳고, 회사 다니면서 살아 보니까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기 벅차서 정치에 큰 관심을 못 가지고요. 그래도 그냥 정치인들이 실현 가능한 공약을 내세우고 좀 실천을 해 줬으면 좋겠다 싶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집 전세 구하기 어렵고 물가는 턱없이 오르고 애들 유치원 보낼 곳도 마땅치 않고, 이런 상황이 되니까 기성 정당이라는 한나라당이 싫어졌어요. 신뢰할 수 없는 정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민주당은 아니에요.”

7년 전에 강남으로 이사 온 36세의 한 여성은 “한나라당이 제발 좀 잘해 줬으면 좋겠다. 민주당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요즘과 같은 무기력함이라면 별수가 없다”고도 했다.

자녀를 두 명 둔 40세의 주부는 “한나라당을 떠올리면 편하게 안주(安住)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경원, 박원순, 안철수 중에 선택하라면 안철수를 선택했을 거다”고 말했다.

부모에 이어 본인도 늘 한나라당을 지지했다는 한 여성은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저 같은 사람이 등 돌릴 정도면 한나라당이 정말 잘못한 거예요(웃음). 보수와 우파, 한나라당을 지지했어요. 주위에서 나이도 어린데 너무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진보 세력이 싫었어요. 민주당과 민노당을 싫어한 건 당연하죠. 그런데 요즘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해서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살기가 더 힘들잖아요. 높은 자리는 자기네들끼리 다 나눠 갖고, 똘똘 뭉치는 모습도 없고, 한마디로 무능력한 당이구나 싶어요.”

강남에 30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한 주부는 ‘한나라당’에 대해 ‘국민이 보여준 성원에 부응하는 역할을 못하는 당’이라고 규정했다.

최대 관심은 ‘육아’와 ‘재테크’

응답자의 대다수는 본인의 최대 관심사를 ‘육아’와 ‘재테크’라고 꼽았다.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며 답변을 머뭇거리던 이들이지만, 시장 후보의 TV토론을 지켜봤다는 이가 여럿이었다.

9살, 8살의 연년생을 키우는 서초구 전업주부의 얘기다.

“박원순이 정말 순박하게 생기셨잖아요. 사진으로 보면, 소탈하고 시민운동가 같고 친근한 이미지였어요. 나경원 하면, 예쁘고 깨끗한 이미지였어요. 똑똑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번에 TV토론 보니까 나경원이 정말 말을 잘하더라고요. 똑똑하지 않을까 싶었던 마음이 ‘아, 똑똑하구나’로 바뀌었다고 할까요(웃음). 박원순은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친근한 이미지는 좋았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 문제 제기만 실컷 하고,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런 사람이 시장이 되면 문제 제기는 잘하는데 해결능력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른셋의 전업주부 한 명도 “TV토론을 봤다”고 했다.

“TV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됐어요. 열심히 챙겨 보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얘기나 들어 보자 싶은 심정으로 봤어요. 원래 나경원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TV보니까 마음이 굳어졌어요. 개인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경원이 치고 박원순은 밀리는 분위기던데요. 나경원을 곱게 자란 사람으로만 생각했는데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런 사람이 시장 하면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응답자 27명 중에 26명은 “시장 투표를 꼭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 중 13명이 여전히 누구에게 투표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칭 ‘정치는 모르는 애기엄마’라고 부르는 30·40대 유권자의 마음이 누구에게 향할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