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공정사회] ‘전관예우’의 효과적인 근절방법은 무엇인가 : 월간조선

2011년은 ‘전관예우’로 시작했다. 정동기(鄭東基) 전(前) 대통령 민정수석(대검 차장 출신)이 대형로펌 재직 시 고액급여 논란으로 감사원장직에서 낙마했다. 2월에 터진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금융감독 당국의 전관들이 업무는 뒤로한 채, 경영진과 합세해 예금 탈취에 나선 사건이었다. 교과부 공무원들은 감사 대상 대학으로 이직해 대관(對官) 로비를 하고, 군인은 방산(防産)업체로 가 기밀을 누설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전관예우의 마수(魔手)가 미치지 않는 분야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며, 법조계는 부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우리 헌법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누구도 법 앞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하며, 특권을 누리는 사회적 특수계급은 한국 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헌법 11조’대로 법제가 운용되지 않는 데는 ‘전관예우(前官禮遇)’가 큰 원인이다. 즉 전관예우는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중대한 사회악(惡)이다.

1987년 이후 퇴임한 대법관 45명 중 42명이 변호사 개업

이명박 정부가 외치는 ‘공정사회’의 핵심기준은 ‘사법(司法)정의’다. 사법정의란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가리킨다. 우리 사법 풍토는 ‘유권무죄(有權無罪)’ ‘유전무죄(有錢無罪)’ 성향이 강하다. 정치인, 재벌 회장들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죄를 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결과를 만들어내는 1등 공신(功臣)은 전관들이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위직 전관들을 영입한 대형 5대 로펌이 맡은 형사사건의 1ㆍ2심 무죄율이 전체 형사사건 무죄율과 비교하면 약 6배 높다. 이는 상식적인 수준의 ‘차이’가 아니다. 누구든지 전관의 포진 여부와 무죄 비율의 상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전관을 찾는 데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특히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1년에 수십억 원을 버는 재벌이 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퇴임한 대법관 45명 중 변호사 업무를 하지 않은 이는 조무제(趙武濟·동아대 석좌교수)ㆍ배기원(裵淇原·영남대 석좌교수)ㆍ김영란 전 대법관(金英蘭·국민권익위원장) 3명에 불과하다. 대법관 출신에게 몰리는 대법원 상고(上告) 사건은 원칙적으로 변론은 하지 않고 상고이유서만 작성한다. 걸리는 시간은 3~4시간이지만, 가격은 최저 2000만원. 억대로 받는 경우도 일상 다반사다.

2010년 8월 김영란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트위터에 김 대법관에 대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개업 3년 안에 현찰 100억원을 버는 법조재벌이 되는데, 이를 마다한 김 대법관의 결단이 전관예우 풍토 근절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연 수입이 1년에 33억원쯤 된다는 얘기인데, 이 액수도 중간치를 말한 것이다. 이는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큰 화제가 됐지만, 아직 반론을 접한 경험은 없다. 고위직 출신 전관들이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법원장인 이용훈(李容勳)씨는 대법관을 퇴임하고서 5년 동안 변호사로 지내면서 60억원을 벌었다. 월평균 수입이 1억원이었다는 얘기다. 공직자재산신고액은 이리저리 감추려 했지만 미처 숨기지 못한 ‘일각(一角)’만이 드러난 것이란 걸 감안하면 수입은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의뢰인이 이처럼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높은 법률지식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첫째, 그의 인맥을 동원해 사건을 무마하거나,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목적이고, 둘째 향후 어느 자리로 갈지 모르는 전관에게 일종의 ‘보험’을 드는 성격이 강하다. 대형로펌이 ‘법무법인 OO 고문’, 기사가 딸린 고급 차량, 비서, 고액연봉을 제시하며 전관들을 무더기 영입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법관 중 이런 유혹을 뿌리칠 만한 ‘양식’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변호사법 개정안 발효됐지만, 실효성은 없다

지난 5월 국가기관에 근무하다 퇴직한 변호사가 퇴직 전 재직한 기관의 사건을 퇴직일부터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한 ‘변호사법 개정안’이 발효(發效)됐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내재적 한계점은 분명하다. 개정안은 변호사 개업지만 제한할 뿐 개업 자체를 금지한 게 아니다. 법조계는 여느 조직보다 더한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개업지 제한은 전관의 돈벌이에 큰 장애요소가 되지 않는다.

또한 개정안은 정식 선임계를 내지 않은 ‘음지(陰地) 변론’과, 자문 형식의 ‘우회(迂回) 변론’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처벌조항도 없어 전관들의 준법 의지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지만,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미 개정안이 발효된 상태에서 4100억원을 탈세한 혐의로 조사받는 권혁에게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 3명이 수억 원의 수임료를 받았다. 이들은 음습한 곳에 숨어 법치를 어지럽힌 대가로 거액의 수임료를 챙긴다. 전관예우는 더는 개인의 도덕성에 맡길 문제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변호사법 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않고, 부정부패에 맞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라는 것이 변호사란 직업의 제1원칙이다. 법정에는 서지 않고, ‘전화’와 ‘이름’만으로 일하는 이들은 ‘변호사법’의 보호를 받는 타락하고 부도덕한 ‘브로커’일 뿐이다. 법조 브로커를 근절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전관 변호사’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퇴임한 고위 법관(대법원장, 대법관, 법원장, 부장판사)ㆍ검찰관(검찰총장, 검사장, 부장검사)의 변호사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 이들에게 우국충정(憂國衷情)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사회적 기준이 용인할 수 있는 처신은 해야 한다. 고위 전관들은 그동안 누렸던 사회적 지위와 권력만으로도 퇴직 후 사회에 봉사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의무다.

그들은 ‘연금’에 의해 풍족하고 안정된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일정 수준의 자산도 갖춘 상태다. 개인의 욕구에 비해 생활이 단출하더라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명예를 누렸다면 그 정도 ‘가난’은 각오해야 한다. 퇴임 후에도 사리 추구를 위해 사법정의를 희롱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의도로 법복을 입었는지 궁금하다.

전관 변호사 배출은 ‘변호사 대량공급’이라는 정책 방향과도 모순

종국에는 법관을 종신(終身)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美國)의 연방판사는 종신직이다. 중간에 퇴임할 수가 있더라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다. 퇴임 후 현직 판검사와의 만남은 물론 통화까지 철저하게 금지돼 있기 때문에 전관예우가 발붙일 곳이 없다.

우리의 경우 현행 법원조직법상 판사의 임기는 10년이고, 중대과실이 없는 한 연임할 수 있다. 정년은 65세지만, 승진 누락을 하면 옷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이 관례다. 이렇게 배출된 전관 변호사는 자신의 근무지에 사무실을 차리고 해당 기관의 사건을 싹쓸이한다. 저인망(底引網) 어선이 어족자원의 씨를 말려 생태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듯이, 전관의 이런 행태는 변호사 업계에도 큰 문제다.

현재 대한변협의 회원은 1만1000명 정도다. 이 중 약 10%가 휴업계를 냈다. 대부분 사건 수임이 원활하지 못해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내년부터 연(年) 2000명 이상의 변호사 인력이 시장에 쏟아진다. 퇴임하는 판검사에게 변호사 자격을 주는 것은 ‘변호사 대량공급’을 통한 저렴한 법률서비스 제공이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모순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향후 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은 돈과 명예 중 택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현직 판검사 등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란 사실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다. 이미 과거에 수차례 전관의 개업지 제한에 대한 위헌(違憲) 논란이 있었다. 극한 처방인 ‘전관의 변호사 자격 제한’은 더욱 거센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 반발보다 국민의 분노가 더 크고 깊음을 당사자들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