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성별·나이·직업·여론조사까지 고려하는 5차방정식을 2차방정식처럼 대충 풀었다”
‘박희태를 탈락 안 시키면, 영남의 3선 이상을 제대로 물갈이할 수 있겠느냐’는 게 일부 공심위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또 ‘박희태만 날린다면 다 응해 주겠다’는 게 안강민 위원장의 생각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안강민·이방호·강창희 3명이 밀실에 가서 공천자 명단을 만든 겁니다. 친박의 강창희가 ‘노(No)’ 했다면, 절대 합의할 수 없다고 버텼다면 (김무성 의원이) 빠졌겠어요?”(한 공천심사위원)
⊙ 이방호·이재오·정두언 3자와 청와대 간 조율이 실질적인 공천… 이방호, MB에게 4~5차례 청와대
보고
⊙ MB가 추천한 후보도 공심위에서 탈락… “대통령은 웬만하면 다 해주자는 식. 특별한 공천지침도
없었다”
⊙ MB는 박재완 수석에게 “포항에 내려가 형의 출마를 막아라” 지시. 박재완 수석은 직접 안 가고
장다사로 비서관을 대신 보내
⊙ 공천 초기 김무성 의원 자택에서 이른바 ‘친박 공천대책위’ 가동
‘박희태를 탈락 안 시키면, 영남의 3선 이상을 제대로 물갈이할 수 있겠느냐’는 게 일부 공심위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또 ‘박희태만 날린다면 다 응해 주겠다’는 게 안강민 위원장의 생각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안강민·이방호·강창희 3명이 밀실에 가서 공천자 명단을 만든 겁니다. 친박의 강창희가 ‘노(No)’ 했다면, 절대 합의할 수 없다고 버텼다면 (김무성 의원이) 빠졌겠어요?”(한 공천심사위원)
⊙ 이방호·이재오·정두언 3자와 청와대 간 조율이 실질적인 공천… 이방호, MB에게 4~5차례 청와대
보고
⊙ MB가 추천한 후보도 공심위에서 탈락… “대통령은 웬만하면 다 해주자는 식. 특별한 공천지침도
없었다”
⊙ MB는 박재완 수석에게 “포항에 내려가 형의 출마를 막아라” 지시. 박재완 수석은 직접 안 가고
장다사로 비서관을 대신 보내
⊙ 공천 초기 김무성 의원 자택에서 이른바 ‘친박 공천대책위’ 가동
-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은 2008년 2월 28일 서울 여의도 당사 회의실. 오른쪽부터 안강민 공심위원장, 강창희 전 의원, 김애실 의원, 이방호 사무총장.
지난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 투표율은 역대 최저는 물론 지방선거까지 통틀어서 가장 낮은 46%였다.
투표율 하락을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 ‘위임의 위기’, ‘정통성의 위기’라는 말이 나왔다. ‘공천혁명’으로 기존 정치인을 대거 물갈이시켰다는 선거를 두고 왜 이런 평가가 나왔을까. ‘물갈이=개혁’으로 명명하며 공천을 ‘혁명’이라는 포장지로 덧씌운 것이 정작 유권자들에게는 낯 간지러운 일로 비쳤을까.
기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08년 4·9 총선을 살펴보기로 했다. 특히 ‘영남의원 대학살’을 이뤄낸 한나라당 공천과정에 직간접 개입했던 친이(親李) 실세와 친박(親朴) 인사, 강재섭(姜在涉) 당시 대표 측 입을 통해 공천의 정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서는 여전히 입조심을 했지만, “5차방정식으로 풀어야 할 것을 2차방정식으로 엉성하게 풀었다”고 총평을 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정당은 ‘흥행집단’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인지, 18대 공천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와 친박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노이즈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국민들이 역대 최저 투표율로 보복한 것이다.
정치학자 마틴 마거(Martin N. Marger)는 이런 말을 했다.
“권력 엘리트가 정권을 잡으면 그들이 이끄는 조직의 표면상 목적을 위해 일하기보다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전력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선 조직이 목적 그 자체가 되며, 조직의 영속화가 지상 목표가 된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조직 현상을 ‘목표의 전치(轉置)’라고 부른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한나라당 공천은 ‘목표의 전치’ 현상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다. 친이 실세들은 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해 정적(政敵)이었던 친박 의원을 낙천(落薦)시키고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를 사지(死地)로 몰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입에 달고 살았고, 그들 또한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공천 방안으로 외쳤던 ‘상향식 공천’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를 ‘혐오산업’을 넘어 ‘저주산업’으로 만드는 데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았다.
친박 정치인 역시 살기 위해 ‘친박연대’라는 기상천외한 정당조직을 만들어 한때 몸담았던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일부는 총선을 통해 다시 살아나 마치 물갈이의 허구를 입증하듯 한나라당에 당당히 복당했다.
친박계 구상찬(具相燦) 의원은 “지난 18대 공천이 얼마나 잘못됐고 형편없는지 객관적인 바로미터가 두 개 있다”며 18대 총선 공천에서 박희태(朴熺太·현 국회의장), 김무성(金武星·현 원내대표) 의원의 낙천을 예로 들었다.
“우리 당에서 필요 없다고 공천에서 배제했던 분이 지금 국회의장이 돼 있고, 부패했다고 배제했던 분은 엄청난 표차로 다시 돌아와 원내대표로 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는데 이에 대해 잘못했다는 목소리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또 지금 한 사람(李方鎬 당시 사무총장)은 장관급(지방분권촉진위원장)으로 다시 가 있어요. 개혁은 철저한 자기반성 속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에 대한 반성이 맨 앞에 있어야 합니다.”
이방호, 친박 돌풍 주장에 “부산은 내가 잘 안데이”
기자가 만난 친이 실세 정치인은 공천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인사다. 익명을 전제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당시 공천의 핵심역할을 이방호 사무총장이 맡았다고 했다. 이 총장과 이재오(李在五·현 특임장관) 의원, 정두언(鄭斗彦) 의원을 더해 3명의 친이 실세들이 1차 선별작업을 거쳐 이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다시 말해 공천작업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라는 얘기였다. 이 총장은 청와대와 조율을 거친 결과물을 들고 공천심사위원회(위원장 안강민·安剛民)에 들어가 공천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이방호·이재오·정두언 3자와 청와대 간 조율이 사실상 실질적인 공천이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 변수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왜일까. 그의 말이다.
“이방호 총장이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MB에게 보고한 뒤 별도의 지침을 받아 단일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 이상득(李相得) 의원(이하 SD)과 박영준(朴永俊·현 지식경제부 차관)씨가 끼어들고, 최시중(崔時仲) 방통위원장이 관여하고, 강재섭 당 대표도 끼어들었어요.
또 11명으로 구성된 친이·친박·중립 성향의 공천심사위는 독자적 자생력을 지닌 ‘생물체’였어요. 누구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권력실세들이 이래저래 공천에 관여하면서 이방호 총장으로선 장난칠 소지가 더 많아졌습니다. 누가 확인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SD 추천’이라 하고, ‘저 사람은 이재오·강재섭 추천’이라고 말하면 그뿐이지요. 서로 만나 ‘당신이 이 사람 추천했소?’라고 확인할 길이 없잖아요. 저는 이 총장이 장난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1차 선별작업이 공천의 기초자료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이방호·이재오·정두언의 1차 선별작업 뒤 MB에게 보고해 지침을 받았는데 이 작업 자체가 너무나 전략적이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주먹구구였지요. 이 총장이 이재오 의원에게 ‘누구를 공천하면 좋겠노?’라고 묻는 식이었습니다. 아마추어적이고 허술한 작업이었어요. 나름의 전략을 세워놓고 그 원칙에 따라 공천하겠다는 권력 내부의 분석과 토론이 전혀 없었어요. 순 엉터리였습니다.”
―‘영남 의원 물갈이’를 할 때 친이 쪽 의견은 어땠나요?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가 김무성 의원(당시 최고위원)이 낙천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PK(부산·경남)에 친박 무소속 돌풍이 일어난다’며 큰 걱정을 했어요. 그러나 이 총장의 반응은 이런 것이었어요. ‘걔가 뭘 아노. 부산은 내가 더 잘 안데이.’ 결국 박 특보 말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전략적 사고를 안 하고 공천한 결과지요.”
MB, 다른 얘기하다 30분 정도 공천 보고받아
이방호 총장은 공천과정에서 MB에게 4~5차례 보고했다고 한다. 보고 시간은 대략 1시간에서 길어야 2시간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공천과 관련 없는 얘기를 하느라 실제 공천 관련 보고는 항상 30분 안팎이었다고 한다. MB는 공천에 대한 ‘특별 지침’을 내렸을까. 계속된 친이 실세의 말이다.
“사실 MB는 제너러스(generous·관대)했어요. 웬만하면 다 해주자는 식이었습니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물갈이가 전혀 안 돼요. 기껏 10~15% 정도였을 겁니다. 특별한 MB의 지침이 없으니 이 총장의 여지가 그만큼 넓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결과적으로 MB가 ‘이 지역은 누구로 해야지’라고 말해도, 공심위에서 탈락되는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통합민주당 박재승(朴在承) 공천심사위원장이 과거의 당 실세들을 무더기로 쓸어내는 ‘대형사고’를 치면서 여야 간 물갈이 경쟁이 시작된다. 박재승 위원장은 그해 3월 5일 ‘범죄 유형을 막론하고 금고형 이상 확정자는 예외 없이 배제한다’는 공천기준을 전격 발표했다. 박재승발(發) 공천폭풍은 예상외로 컸다. ‘공천특검’이라 치켜세우던 민주당 지도부를 무색하게 했고 한나라당 역시 물갈이 폭을 두고 ‘흥행경쟁’에 첨벙 뛰어들게 했다.
박재승발 폭풍 이튿날인 3월 6일 한나라당은 현역 의원 5명을 한꺼번에 탈락시켰다. 3월 7일자 《조선일보》는 ‘민주당 공천의 여파가 한나라당에도 영향을 미칠 조짐’이라고 썼다. 공천에 탈락한 의원 5명은 친박 쪽에서 이규택(李揆澤)·한선교(韓善敎)·고조흥(高照興) 의원 등 3명, 친이 쪽 이재창(李在昌)·고희선(高羲善) 의원 등 2명이었다. 당시 공천에 관여한 또 다른 친이 실세의 말이다.
“공천이 웃긴 게, 여야가 개혁이란 간판을 걸고 물갈이 경쟁을 합니다. 검사출신 안강민 공심위원장의 부정적 역할도 빼놓을 수 없어요. 검사면 다 되잖아요. 보세요. 공천 결과 검찰출신은 웬만큼 다 됐어요. 그런데 안 위원장이 박희태 의원과 무지 사이가 안 좋았어요. 박 의원의 낙천은 안 위원장이 자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구원(舊怨)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박재승발 물갈이가 한나라당의 공천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네요.
“그렇지요. 박재승발 물갈이가 한나라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지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물갈이를 많이 하는 게 개혁이라는, 일종의 허구지요, 허구.”
SD 출마 막겠다던 이재오의 잠적
한나라당 18대 공천의 볼거리 중 하나는 대통령 형인 이상득 의원의 공천이다. 3월 13일 공심위가 영남지역 공천자를 발표하면서 현역의원 25명을 탈락시켰다. 《조선일보》는 이날 공천결과를 ‘목요일밤 대학살’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물갈이 비율은 43.5%(17대 공천 현역 교체율은 42.8%). 친박계 3선인 김무성 의원과 친이계 5선인 박희태 의원이 동반탈락됐다. 그러나 5선에다 공천 신청자 중 최고령(73)인 대통령의 친형은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공천후보 55인이 SD의 공천 반납을 요구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남경필·정두언·정태근(鄭泰根) 의원 등은 “SD가 공천을 반납하지 않으면 55인 모두가 공천을 내놓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SD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3월 25일 오전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총선후보 등록을 ‘무사히’ 마쳤다. 이 과정에서 “이재오가 배신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즈음, 55인의 반란을 이끌었던 정두언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충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은 총선 후에 평가받겠다”며 칼을 빼들었다가 엉거주춤 접어버렸다. 기자는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55인 반란에 참여한 친이 의원의 말이다.
“향후 일어날지 모르는 국정농단을 막기 위해 SD 불출마를 요구했지요. SD가 무슨 잘못을 했다기보다 SD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어요. 우리는 SD가 절대 출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MB에게 건의했지요. ‘우리도 출마 안 할 테니, SD 출마를 막아달라’고요. 그랬더니 청와대 반응은 ‘한 석(席)을 아껴라. 내게도 생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박희태 의원이 잘리고, SD는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다시 남경필 의원이 ‘안 된다’고 반대했던 것이죠. 이재오 의원 역시 ‘SD 공천은 안 된다’고 했어요. 왜냐면 자신이 은평을에서 100% 낙선될 게 확실했거든요. 거기서 죽으면 재기(再起)가 불가능하니 SD를 붙잡고 죽자는 의도였다고 생각해요. 후보등록 3일 전까지 이 의원은 스스로 불출마하겠다고 공언했지요. 그러나 슬슬 걱정이 됐어요. 우리는 ‘이재오 의원만 그만두고 정작 SD는 출마하면 어쩌나’ 우려했는데, 이 의원 말이 ‘그러니까 너희(친이 소장파)가 (SD 불출마가 관철되도록) 도와줘야지’하는 겁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어요.”
―이재오 의원이 몸을 던졌나요?
“이튿날 이 의원이 ‘청와대에 가서 담판짓겠다’며 가고, 우리는 반란군 55명을 규합했어요. 그런데 청와대 쪽에서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재오 의원 측근인 진수희(陳壽姬·현 보건복지부 장관)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청와대에서 이 의원을 안 만나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박재완(朴宰完·현 고용노동부 장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왜 안 만나주느냐’고 따졌더니, 박 수석 말이 이랬어요. ‘그게 아니라, 이재오 의원이 연락이 안 돼.’”
―그렇다면, MB는 형님 공천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반대했어요. 55인 반란 다음 날, MB는 박재완 수석에게 ‘포항에 내려가서 (형님께) 출마하지 말라고 설득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박 수석이 자신이 안 가고 지금의 장다사로 민정비서관(당시 정무비서관)을 대신 보냈어요. SD의 국회부의장 시절, 비서실장이던 장 비서관이 뭘 얘기했겠어요? 하나마나지요.”
―박재완 수석이 왜 안 갔을까요?
“입장 곤란하니까 안 간 것이지요.”
강재섭, 출근까지 거부하며 김무성 낙천 반대
―영남 물갈이의 하이라이트인 김무성 의원의 낙천은 누가 한 것입니까.
“MB도 아니고 SD도 아니었어요. 이방호·이재오의 결정과 판단이 더해진 것이라고 봅니다.”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김무성 의원은 낙천이 확정된 다음 날인 3월 14일 여의도 당사를 찾아 공천심사 과정의 청와대 개입설을 주장했다. 그는 이재오·이방호 두 사람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한나라당 공천은 한마디로 청와대 기획, 밀지(密旨)공천이다. 당권·대권이 엄연히 분리된 정당에서 청와대 결재를 받는 공천이 이뤄졌다”고 했다. 또 자신의 공천 탈락 배경에 대해 “(공천심사위) 현장에서 박희태 의원의 공천 배제론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왔고, ‘(친이계 공심위원들이) 박 의원 탈락을 반대하면 청와대가 나를 같이 탈락시키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강민 공심위원장이 박재승 민주당 위원장 신드롬에 경쟁심이 발동, 이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도 했다.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렸다.
MB는 김무성 의원의 낙천에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인터뷰에 응한 친이 실세의 말이다.
“대통령은 절대 자르지 말라고 했어요. 그건 확실합니다.”
이방호 총장이나 이재오 의원이 아무리 실세라 해도 MB의 뜻마저 거슬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는 이런 말을 기자에게 덧붙였다.
“MB는 김무성 의원뿐만 아니라 맹형규(孟亨奎·현 행정안전부 장관)·박희태 의원도 자르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공심위 내부도 생물입니다. (친박·친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물론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요. 그래서 어디까지 이방호 총장의 사심이 들어가고, 어디까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지, 그 선을 누가 알겠어요. 분명한 것은 대통령도 김무성·맹형규·박희태 의원을 낙천시키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은 이방호 총장의 ‘전횡’을 단정하는 표현인데….
“전횡이 아니라 이 총장의 ‘장난’입니다. 표현을 잘해야 합니다. 장난이지요.”
―당시 이방호 총장은 공천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였어요. 아무리 사심이 들어 있다 해도 낙천할 만한 논리도 없이 무턱대고 자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문점은 ‘현장’입니다. 공심위 현장에서 친박계 공심위원들이 자꾸 뛰쳐나가니까 불가피하게 그런 경우도 생길 수 있고, 서로 (친박·친이 물갈이를) 주고받으면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총장의 당시 위치로서는 누굴 자르더라도 SD나 강재섭 대표의 핑계를 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 와중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고….”
이번에는 강재섭 대표 쪽 한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강민 공심위원장은 민주당 박재승 위원장이 신나게 치겠다고 하니 덩달아 나섰고, 여기다 친이 실세들의 압력으로 이것 자르고 저것 자르고 하다가 엉망이 됐습니다. 강 대표는 당시 김무성 의원을 자르면 당이 깨진다고 극력 반대했어요. 그래서 출근까지 거부하며 (이방호 총장과) 투쟁을 벌였지요. 강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에) 진 사람의 좌장을 공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는데, 결국 영남 의원을 50% 가까이 자르고 공천을 개판 치자, 결국 자신의 공천(대구 서구)까지 스스로 포기했지요. 친이 실세라는 작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칼을 휘두른 것입니다.”
친박 측 인사는 김무성 의원 낙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항간에는 박희태 의원의 낙천 때문에 부득이 김무성 의원을 날렸다고 하지만 믿기 어렵습니다. MB는 김 의원의 낙천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낙천될지 꿈에도 몰랐다. 꼭 이래야 하느냐?’고 얘기했다고 해요. 김 의원은 ‘아무리 이방호 총장의 사심이 작용했다고 해도 MB 허락 없이 했을까’하는 의심을 가졌어요. 또 ‘정말 MB가 몰랐다면 누가 했을까. 아마 이재오가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어요. 한편으로 김 의원은 ‘사전에 박근혜 전 대표도 낙천을 알지 않았을까’ 내지 ‘박 전 대표가 낙천을 용인하지 않았을까’ 의심하며 섭섭한 감정을 가졌어요. 그것이 박 전 대표와 멀어지게 된 이유입니다.”
김무성 자택에서 ‘친박 공천대책위’ 가동
18대 공천 과정에서 친박 진영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을까. 기자는 다시 친박 쪽 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관계자는 “공천 초기 김무성 의원 집에서 이른바 ‘친박 공천대책위’가 가동됐다”고 증언했다. 이 자리에는 친박 측 공심위원인 강창희(姜昌熙) 전 의원과 이성헌(李性憲)·유정복(劉正福)·이혜훈(李惠焄)·송광호(宋光浩) 의원 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김무성 의원이 친박 측 사령관이라면 이성헌 의원은 실무책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이 인사의 말이다.
“몇몇 친박 핵심의원들이 김무성 의원 자택에 모여 별도의 자료를 만들고 대략적인 친박 공천안을 만든 것으로 압니다. ‘ABC’ 3등급으로 나눠 ‘A등급은 반드시 공천’, ‘B등급은 가급적 공천’, ‘C등급은 낙천해도 불가피’라는 식으로 (친이 측과) ‘네고(negotiation·협상)’했다고 알고 있어요. 김무성 의원 역시 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권력을 잡은 친이가 중심이 돼 공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안을 토대로 김 의원이 강재섭 대표와 이방호 총장과 만나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강 대표는 이 안을 MB에게 보고도 했고요.”
이 관계자는 또 “친박 입장은 두 가지 경로로 전달됐는데, 하나는 공심위에서 안강민·이방호·강창희를 통해, 다른 하나는 이방호·김무성·강재섭 라인을 통해서였다”고 기억했다.
청와대와의 핫라인 가동
강 전 대표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도권 한 의원의 말이다.
“친이 실세(이재오·최시중·이방호·이상득·정두언)들이 MB의 이름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이방호 총장을 통해 모든 공천 밀지가 내려오니 이 총장에게 무게가 실렸어요. 이재오 의원도 이 총장을 통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의원도 자기 계파를 못 챙겼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 총장은 공심위 도중 갑자기 대통령하고 통화하는 모습도 연출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통화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이방호 총장은 청와대 회동은 물론, 공천 국면의 고비고비마다 청와대와의 ‘핫 라인’을 통해 직보 시스템을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MB는 당 지도부와 실세들을 번갈아 만나며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친박계 의원 중 마지막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간 의원은 허태열(許泰烈)·이혜훈·박종근(朴鍾根)·이해봉(李海鳳)·유기준(兪奇濬) 의원이었다.
이 중 허태열 의원은 가까운 친박 의원들에게 “김무성 의원과 나 둘 중 한 사람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왜냐하면, 설마 자신이 낙천될 줄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허 의원은 김 의원이 낙천될 줄 미리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친박 쪽 인사는 이런 말을 기자에게 건넸다.
“허태열 의원은 부산고 출신입니다. 이방호 총장 역시 같은 고교를 나왔어요. 이번 공천과정을 보면 이 총장과 연고(부산고·연세대)가 있는 친박 의원들이 대거 살아남았잖아요. 반대로 경남고 출신은 낙천됐지요. 그래서 이 총장의 사심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방호의 ‘넘버 투’야심”
당시 이 총장은 공천과정에서 ‘부산고·연세대’ 인맥을 구축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공천을 따낸 정의화·허원제·김정훈·안경률·권경석 의원 등이 부산고 출신이었다. 신인 중에서는 경남 김해을의 송은복, 거제의 윤영, 함안·의령·합천의 조진래 공천자가 이 총장과 같은 부산고·연세대 인맥이었다. 인천 중·동·옹진군의 박상은 의원은 대학 친구 사이다.
공천에 관여한 친이 실세 의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방호 총장은 원대한 꿈을 가졌던 겁니다. 국회를 자기가 장악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자기보다 나이 많고 힘 좀 쓸 만한 다선(多選) 의원은 다 날리고, 2006년 7·11전당대회에 출마했다가 꼴찌 할 당시, 자기를 안 찍은 사람은 다 날린 겁니다. 나중 공천 결과를 보니 딱 들어맞았어요. 이 총장은 향후 권력의 ‘넘버 투’ 야심을 가졌던 겁니다. 가당치도 않은…”
―친박계 이혜훈 의원은 낙천 벼랑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하더군요.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혜훈 의원이 심하게 친이 쪽을 공격했으니 이재오 의원이 반드시 날려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누구를 공천할지 마땅한 인물이 없었어요. 이 의원 측에서 갑자기 공천한 인물이 박영아(朴英娥) 의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의원을 자르지 못하자 결국 맹형규 의원을 빼고 박 의원을 송파갑에 대신 집어넣은 겁니다.”
―대구지역 이해봉·박종근 의원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친박의 핵심이었던 유승민(劉承旼) 의원은 일찌감치 살아남았고, 비교적 선수(選數)가 높은 이해봉·박종근 의원 중 한 사람은 공천해야 한다는 게 강 대표의 입장이었지요. 그런데 두 사람 모두 탈락됐지요. 이 과정에 SD와 박영준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권력실세들은 자기만 생각했지 MB 생각 안 해”
―친박 쪽 인사 중에 친이 쪽 실세들과 접촉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유정복(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의원과 했지요. 처음엔 김무성 의원이 친박 측 명단을 친이 쪽에 건네기도 했지만 유 의원이 전해준 입장이 나름 공식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친박계 추천 인사(김옥이·임두성·이정현) 모두가 무난히 금배지를 달았다.
―유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의 교지(敎旨)를 받았을까요? 아니면 사심이 들어갔을까요?
“그것까지는 모르지요. 그분은 사심을 내세울 만큼 배포가 크지는 않다고 봐요.”
이 친이 의원은 “나름 친박 몫을 반영한 공천이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친박 몫으로 아예 숫자를 정하고 지역구도 정해 100% 반영하면 되는데, 친이 실세들과 공심위에서 (친박 인사를) 넣고 빼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이지요. 실제로 (친박 쪽에서) 요구도 했어요. 제가 볼 때는 2/3는 그쪽 의견이 반영됐어요. 친이 마음대로 공천을 했다는 것은 지나친 얘기고, (친박 진영의 요구를 두고) 이 사람은 되고 저 사람은 안 되고, 이런 식으로 쥐락펴락한 것을 가지고 (친박이) 열 받은 것이지요.”
―도대체 어떤 식으로 공천을 했나요.
“전체 명단을 두고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주먹구구식으로 이 지역에는 누구로 공천할까, 저 지역은 누구로 할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한마디로 지역·성별·나이·직업·여론조사까지 고려하는 5차방정식을 2차방정식밖에 못 푸는 사람들이 대충 풀었던 것이죠.”
―지금의 친박·친이 갈등의 원인은 권력 실세들의 잘못 때문이군요.
“당연합니다. 그 사람들은 한번도 MB를 생각한 적이 없어요. 자기만 생각했습니다.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뒤 어떤 식으로든 상대편을 끌어안아야 했어요. DJ가 김중권씨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앉혔잖아요. MB의 비서실장으로 최경환(崔炅煥) 의원이나 김성조(金晟祚) 의원을 쓰고, 원내대표는 김무성 의원을 시키면 친이·친박의 갈등은 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비서실장 자리를 자기 말 잘 듣는 사람만 시키고, 이재오 의원은 자기가 전당대회에 나가려고 안상수(安商守) 의원을 당 대표에 앉혀놓고… 그게 다 대통령을 위한 일들이 아니잖아요.”
영남 물갈이도 친박 姜昌熙가 OK
기자는 이방호 지방분권촉진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18대 공천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이 위원장은 “언젠가는 진실을 밝히겠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다”며 고사했다. 이번에는 국회의원 회관으로 찾아가 유정복 장관의 비서관에게 “증언을 듣고 싶다”고 청을 넣었다.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친박 측 공심위원이었던 강창희 전 의원에게 같은 부탁을 했지만 “지나간 이야기를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몇몇 공심위원에게 전화를 돌렸다. 모 대학 교수인 한 공심위원은 “오래전 일이라 다 잊었다”고 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18대 공천 당시 공심위원으로 참여한 인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듣게 됐다. 그가 밝힌 ‘영남 물갈이’의 전모는 이러했다.
“공심위원에 친이 쪽 사람만 있었나요? 아닙니다. ‘강창희’라는 친박을 대변하며 매일 이방호 총장하고 싸우다시피 다툰 사람이 있었어요. 공심위 현장에서 두 사람의 말싸움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런데 영남지역 공천자를 발표하던 날, 안강민·강창희·이방호 세 사람이 따로 밀실에 들어가 공천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명단을 가지고 내려왔지요. 세 사람이 ‘(이 명단에서) 한 사람도 넣고 빼고 못 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통과됐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공심위원장과 친이·친박 두 사람이 ‘그대로 통과시켜라. 이것 아니면 공천심사가 안 된다’고 해서 그대로 통과됐는데, 친박인 강창희 전 의원이 왜 ‘OK’를 했을까요?”
―왜 OK를 했을까요?
“강 전 의원이 OK를 안 했다면 영남 물갈이 합의가 될 수 없었겠지요. 다시 말해, 친박도 OK한 사항이란 말입니다. 강창희·이방호가 얼마나 싸웠는지…. 그런데 물갈이 명단이 나올 때는 하나도 안 싸우고 명단이 나왔거든요.”
―내부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도매금으로’ 처리했거든요. ‘박희태를 탈락 안 시키면, 영남의 3선 이상을 제대로 물갈이할 수 있겠느냐’는 게 일부 공심위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또 ‘박희태만 날린다면 다 응해 주겠다’는 게 안강민 위원장의 생각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밀실에 가서 명단을 짜자’해서 3명이 간 겁니다. 강창희가 ‘노(No)’ 했다면, 절대 합의 못 한다고 버텼다면, (김무성 의원이) 빠졌겠어요?”
―왜 안강민 위원장이 박희태 의원의 낙천을 고집했을까요?
“사실 공천심사 전체 기류로 볼 때, 안 위원장은 친박이었어요. 안 위원장이 박희태 의원을 제외시키지 않으면 위원장직도 던지겠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공심위원 사이에서, 특히 외부인사들 사이에서 (박희태 낙천에) 공감대가 형성됐지요. 위원장까지 그만두겠다고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좋다! 박희태를 주면(공천에서 빼면), 영남공천 과감하게 해도 되느냐?’고 해서, 3명이 들어가 합의된 문서가 그것입니다.”
―합의 시점이 몇 시쯤이던가요?
“하루종일 했지요. 밀실에서 돌아온 게 오후 4~5시쯤 안됐을까요? 세 사람이 가져온 명단은 논란 없이 그대로 통과됐습니다.”
―이혜훈 의원이 추천해서 김무성 의원이 넣었다는 친박 측 공심위원도 있었는데, 반발하지 않던가요?
“전혀요. 김무성 의원 낙천을 두고 당시 공심위원끼리 토론하고 이런 것도 없었습니다.”
―공심위 회의 과정에서 이방호 총장이 직접적으로 ‘김무성을 날려야 된다’고 언급한 적은 없었나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친이 실세들조차 ‘이방호 총장이 장난을 많이 쳤다’고 의심하더군요.
“저는 모르겠어요. 뭘 장난쳤는지.”
―예를 들어 공심위 도중 갑자기 MB 전화를 받는 식으로….
“에이, 그런 것 없었습니다. 다만 이방호 총장이 가끔 가다가 아침에 공천심사 과정을 보고하러 청와대에 간 것은 확실하지만,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릅니다.”
18대 총선의 경우 100% 하향식 공천
한나라당의 18대 공천은 소수가 주도하는 공천이었다. 친이 실세의 권력욕과 공심위원들의 물갈이 욕심이 만든 ‘미운 놈 찍어내기’식 자의적 공천이었다. 권력에 의한 하향식 공천은 공천불복을 양산했고 ‘친박연대’라는 기형조직이 생겨나게 했다.
이 모두가 친이 실세들이 ‘이명박 대통령 당(黨)’에 숨어 권력을 탐닉하겠다는 욕망에서 출발했다면 억측일까.
한나라당은 2008년 4·9총선 이후 자신들이 낙천시켰던 친박 의원들을 복당시켜 민주화 이후 가장 의석이 많은 ‘공룡정당’이 되었다. 그 결과, 친이·친박이 사사건건 멱살잡이를 벌이는 ‘봉숭아학당’이 되었다.
그 때문일까.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나경원(羅卿瑗) 의원은 지난 4월 14일 (사)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원장 김석우)이 주최한 정책심포지엄에서 “하향식 공천 실행기구인 공심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나 의원은 현재 한나라당 공천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말이다.
“취약지역과 전략지역을 제외한 지역은 모두 상향식 공천(경선)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또 하향식 공천의 실행기구인 공천심사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국민의 공천인 상향식 공천의 의미를 살려 공천과정과 절차를 관리·감독하는 공천관리위원회를 신설하면 어떨까 합니다. 현재 한나라당 당헌·당규는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전략지역 예외 규정을 남용해 이를 무력화하였습니다. 사실, 18대 총선의 경우 100% 하향식 공천이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경선을 실시하지 않는 전략지역은 ‘취약지역을 제외한 지역의 20% 미만’을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공천 갈등으로 인한 분열과 대립을 지양하기 위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천제도를 확립해야 합니다.”
18대 공천방식을 다 뜯어고치겠다는 한나라당 공천개혁특위 위원장의 생각이 얼마나 현실화될지 두고 볼 일이다. 또 설령 이런 제도가 확립되더라도 그게 지켜질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니 공천 방정식은 참으로 풀기가 쉽지 않다.⊙
투표율 하락을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 ‘위임의 위기’, ‘정통성의 위기’라는 말이 나왔다. ‘공천혁명’으로 기존 정치인을 대거 물갈이시켰다는 선거를 두고 왜 이런 평가가 나왔을까. ‘물갈이=개혁’으로 명명하며 공천을 ‘혁명’이라는 포장지로 덧씌운 것이 정작 유권자들에게는 낯 간지러운 일로 비쳤을까.
기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08년 4·9 총선을 살펴보기로 했다. 특히 ‘영남의원 대학살’을 이뤄낸 한나라당 공천과정에 직간접 개입했던 친이(親李) 실세와 친박(親朴) 인사, 강재섭(姜在涉) 당시 대표 측 입을 통해 공천의 정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서는 여전히 입조심을 했지만, “5차방정식으로 풀어야 할 것을 2차방정식으로 엉성하게 풀었다”고 총평을 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정당은 ‘흥행집단’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인지, 18대 공천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와 친박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노이즈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국민들이 역대 최저 투표율로 보복한 것이다.
정치학자 마틴 마거(Martin N. Marger)는 이런 말을 했다.
“권력 엘리트가 정권을 잡으면 그들이 이끄는 조직의 표면상 목적을 위해 일하기보다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전력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선 조직이 목적 그 자체가 되며, 조직의 영속화가 지상 목표가 된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조직 현상을 ‘목표의 전치(轉置)’라고 부른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한나라당 공천은 ‘목표의 전치’ 현상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다. 친이 실세들은 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해 정적(政敵)이었던 친박 의원을 낙천(落薦)시키고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를 사지(死地)로 몰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입에 달고 살았고, 그들 또한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공천 방안으로 외쳤던 ‘상향식 공천’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정치를 ‘혐오산업’을 넘어 ‘저주산업’으로 만드는 데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았다.
친박 정치인 역시 살기 위해 ‘친박연대’라는 기상천외한 정당조직을 만들어 한때 몸담았던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일부는 총선을 통해 다시 살아나 마치 물갈이의 허구를 입증하듯 한나라당에 당당히 복당했다.
친박계 구상찬(具相燦) 의원은 “지난 18대 공천이 얼마나 잘못됐고 형편없는지 객관적인 바로미터가 두 개 있다”며 18대 총선 공천에서 박희태(朴熺太·현 국회의장), 김무성(金武星·현 원내대표) 의원의 낙천을 예로 들었다.
“우리 당에서 필요 없다고 공천에서 배제했던 분이 지금 국회의장이 돼 있고, 부패했다고 배제했던 분은 엄청난 표차로 다시 돌아와 원내대표로 당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는데 이에 대해 잘못했다는 목소리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또 지금 한 사람(李方鎬 당시 사무총장)은 장관급(지방분권촉진위원장)으로 다시 가 있어요. 개혁은 철저한 자기반성 속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에 대한 반성이 맨 앞에 있어야 합니다.”
이방호, 친박 돌풍 주장에 “부산은 내가 잘 안데이”
기자가 만난 친이 실세 정치인은 공천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인사다. 익명을 전제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당시 공천의 핵심역할을 이방호 사무총장이 맡았다고 했다. 이 총장과 이재오(李在五·현 특임장관) 의원, 정두언(鄭斗彦) 의원을 더해 3명의 친이 실세들이 1차 선별작업을 거쳐 이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다시 말해 공천작업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라는 얘기였다. 이 총장은 청와대와 조율을 거친 결과물을 들고 공천심사위원회(위원장 안강민·安剛民)에 들어가 공천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이방호·이재오·정두언 3자와 청와대 간 조율이 사실상 실질적인 공천이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 변수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왜일까. 그의 말이다.
“이방호 총장이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MB에게 보고한 뒤 별도의 지침을 받아 단일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 이상득(李相得) 의원(이하 SD)과 박영준(朴永俊·현 지식경제부 차관)씨가 끼어들고, 최시중(崔時仲) 방통위원장이 관여하고, 강재섭 당 대표도 끼어들었어요.
또 11명으로 구성된 친이·친박·중립 성향의 공천심사위는 독자적 자생력을 지닌 ‘생물체’였어요. 누구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권력실세들이 이래저래 공천에 관여하면서 이방호 총장으로선 장난칠 소지가 더 많아졌습니다. 누가 확인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SD 추천’이라 하고, ‘저 사람은 이재오·강재섭 추천’이라고 말하면 그뿐이지요. 서로 만나 ‘당신이 이 사람 추천했소?’라고 확인할 길이 없잖아요. 저는 이 총장이 장난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1차 선별작업이 공천의 기초자료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이방호·이재오·정두언의 1차 선별작업 뒤 MB에게 보고해 지침을 받았는데 이 작업 자체가 너무나 전략적이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주먹구구였지요. 이 총장이 이재오 의원에게 ‘누구를 공천하면 좋겠노?’라고 묻는 식이었습니다. 아마추어적이고 허술한 작업이었어요. 나름의 전략을 세워놓고 그 원칙에 따라 공천하겠다는 권력 내부의 분석과 토론이 전혀 없었어요. 순 엉터리였습니다.”
―‘영남 의원 물갈이’를 할 때 친이 쪽 의견은 어땠나요?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가 김무성 의원(당시 최고위원)이 낙천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PK(부산·경남)에 친박 무소속 돌풍이 일어난다’며 큰 걱정을 했어요. 그러나 이 총장의 반응은 이런 것이었어요. ‘걔가 뭘 아노. 부산은 내가 더 잘 안데이.’ 결국 박 특보 말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전략적 사고를 안 하고 공천한 결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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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공천 당시 친이 실세들은 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해 친박 의원을 낙천시키고 박근혜 전 대표를 사지로 몰았다. 낙천된 친박 의원들은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된 뒤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김무성 의원 등 친박 무소속연대 의원들이 2008년 7월 11일 입당, 환영을 받고 있다. |
MB, 다른 얘기하다 30분 정도 공천 보고받아
이방호 총장은 공천과정에서 MB에게 4~5차례 보고했다고 한다. 보고 시간은 대략 1시간에서 길어야 2시간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공천과 관련 없는 얘기를 하느라 실제 공천 관련 보고는 항상 30분 안팎이었다고 한다. MB는 공천에 대한 ‘특별 지침’을 내렸을까. 계속된 친이 실세의 말이다.
“사실 MB는 제너러스(generous·관대)했어요. 웬만하면 다 해주자는 식이었습니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물갈이가 전혀 안 돼요. 기껏 10~15% 정도였을 겁니다. 특별한 MB의 지침이 없으니 이 총장의 여지가 그만큼 넓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결과적으로 MB가 ‘이 지역은 누구로 해야지’라고 말해도, 공심위에서 탈락되는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통합민주당 박재승(朴在承) 공천심사위원장이 과거의 당 실세들을 무더기로 쓸어내는 ‘대형사고’를 치면서 여야 간 물갈이 경쟁이 시작된다. 박재승 위원장은 그해 3월 5일 ‘범죄 유형을 막론하고 금고형 이상 확정자는 예외 없이 배제한다’는 공천기준을 전격 발표했다. 박재승발(發) 공천폭풍은 예상외로 컸다. ‘공천특검’이라 치켜세우던 민주당 지도부를 무색하게 했고 한나라당 역시 물갈이 폭을 두고 ‘흥행경쟁’에 첨벙 뛰어들게 했다.
박재승발 폭풍 이튿날인 3월 6일 한나라당은 현역 의원 5명을 한꺼번에 탈락시켰다. 3월 7일자 《조선일보》는 ‘민주당 공천의 여파가 한나라당에도 영향을 미칠 조짐’이라고 썼다. 공천에 탈락한 의원 5명은 친박 쪽에서 이규택(李揆澤)·한선교(韓善敎)·고조흥(高照興) 의원 등 3명, 친이 쪽 이재창(李在昌)·고희선(高羲善) 의원 등 2명이었다. 당시 공천에 관여한 또 다른 친이 실세의 말이다.
“공천이 웃긴 게, 여야가 개혁이란 간판을 걸고 물갈이 경쟁을 합니다. 검사출신 안강민 공심위원장의 부정적 역할도 빼놓을 수 없어요. 검사면 다 되잖아요. 보세요. 공천 결과 검찰출신은 웬만큼 다 됐어요. 그런데 안 위원장이 박희태 의원과 무지 사이가 안 좋았어요. 박 의원의 낙천은 안 위원장이 자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구원(舊怨)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박재승발 물갈이가 한나라당의 공천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네요.
“그렇지요. 박재승발 물갈이가 한나라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지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물갈이를 많이 하는 게 개혁이라는, 일종의 허구지요, 허구.”
▣ 18대 공천 살생부 들여다보니…
다 지난 일이 아니었다. 한나라당 몇몇 의원은 18대 공천 당시에 떠돌던 살생부(殺生簿)를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다시는 이런 음모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 의원 대개가 친박 ‘생환(生還)’ 의원들이었다.기자는 한 의원으로부터 ‘이재오 리스트’를 건네받았다. 이 리스트는 공천 당시 친박 진영 중에서 반드시 손봐야 할 사람 명단을 적은 것이었다. 1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들 중 공천을 받은 이는 모두 6명. 나머지 12명은 실제로 낙천됐으나 이 중 4명은 친박 꼬리표를 달고 출마해 생환했다. 리스트를 기자에게 준 의원도 생환했다. 그의 말이다. “당시에 권력실세였던 이재오·이방호 의원이 만들었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고 실제로 그들 이름을 단 리스트가 떠돌았습니다. 이 살생부대로 박근혜 죽이기가 이뤄진 것이죠. 몇몇을 빼고 차례차례 리스트대로 타살당했지요.” 역대 총선 때도 ‘공천 살생부’는 당내 권력실세의 의중을 실어 돌아다니곤 했지만 당시엔 대선 경선의 후유증인 계파 갈등을 반영해 보다 복잡해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자는 당시에 돌아다녔다는 ‘한나라당 물갈이 예상 명단’도 건네받았다. 낙천자 명단이 상당수 적중했다. 그러나 살생부치고는 뭔가 엉성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몇몇 표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5선은 전원 생존 또는 이상득은 포기 가능성도. ―이규택 교체 유력, 이강두 가능성.(현재 중앙위원회 위원장이라 교체 쉽지 않을 듯) ―박종근 이해봉 이경재 황우여 김영선 이상배 김기춘 등 박측 의원 교체 유력. ―이윤성 김광원 임인배 등 경선 때 실적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 MB 측도 교체가능성. ―서병수 엄호성 허태열 김성조 교체 유력. ―김학송(경선 기획홍보단장 맡아 전향한 케이스), 권영세 교체 가능성도. ―이혜훈 유기준 김태환 이진구 한선교 정희수 정진섭 고진화(다만 이재오가 상당히 보호막이 되고 있어 생존 가능성도 점쳐짐) 교체유력. ―허천 심재엽 김영덕 유승민 이계진은 교체 가능성> 실제로 살생부를 ‘실세’들이 작성했을까. 기자가 만난 친박 의원들은 “실세들의 측근이나 보좌관들이 정보를 듣고 기자에게 흘려 지상(紙上)으로 분위기를 띄운 뒤 차례로 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세들이 직접 작성하진 않았으나, 공천 판을 흐릴 목적으로 정보를 흘렸다는 것이다. |
SD 출마 막겠다던 이재오의 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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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2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방호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총선 불출마 압력을 받은 이상득 의원과 대화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곁에 앉은 박희태 의원도 공천에서 탈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
물갈이 비율은 43.5%(17대 공천 현역 교체율은 42.8%). 친박계 3선인 김무성 의원과 친이계 5선인 박희태 의원이 동반탈락됐다. 그러나 5선에다 공천 신청자 중 최고령(73)인 대통령의 친형은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공천후보 55인이 SD의 공천 반납을 요구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남경필·정두언·정태근(鄭泰根) 의원 등은 “SD가 공천을 반납하지 않으면 55인 모두가 공천을 내놓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SD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3월 25일 오전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총선후보 등록을 ‘무사히’ 마쳤다. 이 과정에서 “이재오가 배신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즈음, 55인의 반란을 이끌었던 정두언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충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은 총선 후에 평가받겠다”며 칼을 빼들었다가 엉거주춤 접어버렸다. 기자는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55인 반란에 참여한 친이 의원의 말이다.
“향후 일어날지 모르는 국정농단을 막기 위해 SD 불출마를 요구했지요. SD가 무슨 잘못을 했다기보다 SD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어요. 우리는 SD가 절대 출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MB에게 건의했지요. ‘우리도 출마 안 할 테니, SD 출마를 막아달라’고요. 그랬더니 청와대 반응은 ‘한 석(席)을 아껴라. 내게도 생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박희태 의원이 잘리고, SD는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다시 남경필 의원이 ‘안 된다’고 반대했던 것이죠. 이재오 의원 역시 ‘SD 공천은 안 된다’고 했어요. 왜냐면 자신이 은평을에서 100% 낙선될 게 확실했거든요. 거기서 죽으면 재기(再起)가 불가능하니 SD를 붙잡고 죽자는 의도였다고 생각해요. 후보등록 3일 전까지 이 의원은 스스로 불출마하겠다고 공언했지요. 그러나 슬슬 걱정이 됐어요. 우리는 ‘이재오 의원만 그만두고 정작 SD는 출마하면 어쩌나’ 우려했는데, 이 의원 말이 ‘그러니까 너희(친이 소장파)가 (SD 불출마가 관철되도록) 도와줘야지’하는 겁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어요.”
―이재오 의원이 몸을 던졌나요?
“이튿날 이 의원이 ‘청와대에 가서 담판짓겠다’며 가고, 우리는 반란군 55명을 규합했어요. 그런데 청와대 쪽에서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재오 의원 측근인 진수희(陳壽姬·현 보건복지부 장관)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청와대에서 이 의원을 안 만나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박재완(朴宰完·현 고용노동부 장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왜 안 만나주느냐’고 따졌더니, 박 수석 말이 이랬어요. ‘그게 아니라, 이재오 의원이 연락이 안 돼.’”
―그렇다면, MB는 형님 공천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반대했어요. 55인 반란 다음 날, MB는 박재완 수석에게 ‘포항에 내려가서 (형님께) 출마하지 말라고 설득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박 수석이 자신이 안 가고 지금의 장다사로 민정비서관(당시 정무비서관)을 대신 보냈어요. SD의 국회부의장 시절, 비서실장이던 장 비서관이 뭘 얘기했겠어요? 하나마나지요.”
―박재완 수석이 왜 안 갔을까요?
“입장 곤란하니까 안 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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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공천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 자리배치도. |
강재섭, 출근까지 거부하며 김무성 낙천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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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공천 당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친박계 김무성 의원을 자르면 당이 깨진다”면서 출근까지 거부, 이방호 총장과 대립했다. |
“MB도 아니고 SD도 아니었어요. 이방호·이재오의 결정과 판단이 더해진 것이라고 봅니다.”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김무성 의원은 낙천이 확정된 다음 날인 3월 14일 여의도 당사를 찾아 공천심사 과정의 청와대 개입설을 주장했다. 그는 이재오·이방호 두 사람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한나라당 공천은 한마디로 청와대 기획, 밀지(密旨)공천이다. 당권·대권이 엄연히 분리된 정당에서 청와대 결재를 받는 공천이 이뤄졌다”고 했다. 또 자신의 공천 탈락 배경에 대해 “(공천심사위) 현장에서 박희태 의원의 공천 배제론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왔고, ‘(친이계 공심위원들이) 박 의원 탈락을 반대하면 청와대가 나를 같이 탈락시키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강민 공심위원장이 박재승 민주당 위원장 신드롬에 경쟁심이 발동, 이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도 했다.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렸다.
MB는 김무성 의원의 낙천에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인터뷰에 응한 친이 실세의 말이다.
“대통령은 절대 자르지 말라고 했어요. 그건 확실합니다.”
이방호 총장이나 이재오 의원이 아무리 실세라 해도 MB의 뜻마저 거슬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는 이런 말을 기자에게 덧붙였다.
“MB는 김무성 의원뿐만 아니라 맹형규(孟亨奎·현 행정안전부 장관)·박희태 의원도 자르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공심위 내부도 생물입니다. (친박·친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물론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요. 그래서 어디까지 이방호 총장의 사심이 들어가고, 어디까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지, 그 선을 누가 알겠어요. 분명한 것은 대통령도 김무성·맹형규·박희태 의원을 낙천시키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은 이방호 총장의 ‘전횡’을 단정하는 표현인데….
“전횡이 아니라 이 총장의 ‘장난’입니다. 표현을 잘해야 합니다. 장난이지요.”
―당시 이방호 총장은 공천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였어요. 아무리 사심이 들어 있다 해도 낙천할 만한 논리도 없이 무턱대고 자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문점은 ‘현장’입니다. 공심위 현장에서 친박계 공심위원들이 자꾸 뛰쳐나가니까 불가피하게 그런 경우도 생길 수 있고, 서로 (친박·친이 물갈이를) 주고받으면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총장의 당시 위치로서는 누굴 자르더라도 SD나 강재섭 대표의 핑계를 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 와중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고….”
이번에는 강재섭 대표 쪽 한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강민 공심위원장은 민주당 박재승 위원장이 신나게 치겠다고 하니 덩달아 나섰고, 여기다 친이 실세들의 압력으로 이것 자르고 저것 자르고 하다가 엉망이 됐습니다. 강 대표는 당시 김무성 의원을 자르면 당이 깨진다고 극력 반대했어요. 그래서 출근까지 거부하며 (이방호 총장과) 투쟁을 벌였지요. 강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에) 진 사람의 좌장을 공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는데, 결국 영남 의원을 50% 가까이 자르고 공천을 개판 치자, 결국 자신의 공천(대구 서구)까지 스스로 포기했지요. 친이 실세라는 작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칼을 휘두른 것입니다.”
친박 측 인사는 김무성 의원 낙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항간에는 박희태 의원의 낙천 때문에 부득이 김무성 의원을 날렸다고 하지만 믿기 어렵습니다. MB는 김 의원의 낙천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낙천될지 꿈에도 몰랐다. 꼭 이래야 하느냐?’고 얘기했다고 해요. 김 의원은 ‘아무리 이방호 총장의 사심이 작용했다고 해도 MB 허락 없이 했을까’하는 의심을 가졌어요. 또 ‘정말 MB가 몰랐다면 누가 했을까. 아마 이재오가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어요. 한편으로 김 의원은 ‘사전에 박근혜 전 대표도 낙천을 알지 않았을까’ 내지 ‘박 전 대표가 낙천을 용인하지 않았을까’ 의심하며 섭섭한 감정을 가졌어요. 그것이 박 전 대표와 멀어지게 된 이유입니다.”
김무성 자택에서 ‘친박 공천대책위’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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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강민 공심위원장. 그는 5선인 박희태 의원의 물갈이를 고집해 관철시켰다. |
이 관계자는 “공천 초기 김무성 의원 집에서 이른바 ‘친박 공천대책위’가 가동됐다”고 증언했다. 이 자리에는 친박 측 공심위원인 강창희(姜昌熙) 전 의원과 이성헌(李性憲)·유정복(劉正福)·이혜훈(李惠焄)·송광호(宋光浩) 의원 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김무성 의원이 친박 측 사령관이라면 이성헌 의원은 실무책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이 인사의 말이다.
“몇몇 친박 핵심의원들이 김무성 의원 자택에 모여 별도의 자료를 만들고 대략적인 친박 공천안을 만든 것으로 압니다. ‘ABC’ 3등급으로 나눠 ‘A등급은 반드시 공천’, ‘B등급은 가급적 공천’, ‘C등급은 낙천해도 불가피’라는 식으로 (친이 측과) ‘네고(negotiation·협상)’했다고 알고 있어요. 김무성 의원 역시 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사람입니다. 권력을 잡은 친이가 중심이 돼 공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안을 토대로 김 의원이 강재섭 대표와 이방호 총장과 만나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강 대표는 이 안을 MB에게 보고도 했고요.”
이 관계자는 또 “친박 입장은 두 가지 경로로 전달됐는데, 하나는 공심위에서 안강민·이방호·강창희를 통해, 다른 하나는 이방호·김무성·강재섭 라인을 통해서였다”고 기억했다.
청와대와의 핫라인 가동
강 전 대표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도권 한 의원의 말이다.
“친이 실세(이재오·최시중·이방호·이상득·정두언)들이 MB의 이름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이방호 총장을 통해 모든 공천 밀지가 내려오니 이 총장에게 무게가 실렸어요. 이재오 의원도 이 총장을 통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의원도 자기 계파를 못 챙겼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 총장은 공심위 도중 갑자기 대통령하고 통화하는 모습도 연출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통화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이방호 총장은 청와대 회동은 물론, 공천 국면의 고비고비마다 청와대와의 ‘핫 라인’을 통해 직보 시스템을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MB는 당 지도부와 실세들을 번갈아 만나며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친박계 의원 중 마지막까지 천당과 지옥을 오간 의원은 허태열(許泰烈)·이혜훈·박종근(朴鍾根)·이해봉(李海鳳)·유기준(兪奇濬) 의원이었다.
이 중 허태열 의원은 가까운 친박 의원들에게 “김무성 의원과 나 둘 중 한 사람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왜냐하면, 설마 자신이 낙천될 줄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허 의원은 김 의원이 낙천될 줄 미리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친박 쪽 인사는 이런 말을 기자에게 건넸다.
“허태열 의원은 부산고 출신입니다. 이방호 총장 역시 같은 고교를 나왔어요. 이번 공천과정을 보면 이 총장과 연고(부산고·연세대)가 있는 친박 의원들이 대거 살아남았잖아요. 반대로 경남고 출신은 낙천됐지요. 그래서 이 총장의 사심이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방호의 ‘넘버 투’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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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 의원 50% 물갈이’로 동반탈락했던 친이계 박희태 의원(현 국회의장)과 친박계 김무성 의원. 2008년 4월 2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 의원은 당시 무소속이었다. |
공천에 관여한 친이 실세 의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방호 총장은 원대한 꿈을 가졌던 겁니다. 국회를 자기가 장악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자기보다 나이 많고 힘 좀 쓸 만한 다선(多選) 의원은 다 날리고, 2006년 7·11전당대회에 출마했다가 꼴찌 할 당시, 자기를 안 찍은 사람은 다 날린 겁니다. 나중 공천 결과를 보니 딱 들어맞았어요. 이 총장은 향후 권력의 ‘넘버 투’ 야심을 가졌던 겁니다. 가당치도 않은…”
―친박계 이혜훈 의원은 낙천 벼랑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하더군요.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혜훈 의원이 심하게 친이 쪽을 공격했으니 이재오 의원이 반드시 날려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누구를 공천할지 마땅한 인물이 없었어요. 이 의원 측에서 갑자기 공천한 인물이 박영아(朴英娥) 의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의원을 자르지 못하자 결국 맹형규 의원을 빼고 박 의원을 송파갑에 대신 집어넣은 겁니다.”
―대구지역 이해봉·박종근 의원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친박의 핵심이었던 유승민(劉承旼) 의원은 일찌감치 살아남았고, 비교적 선수(選數)가 높은 이해봉·박종근 의원 중 한 사람은 공천해야 한다는 게 강 대표의 입장이었지요. 그런데 두 사람 모두 탈락됐지요. 이 과정에 SD와 박영준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권력실세들은 자기만 생각했지 MB 생각 안 해”
―친박 쪽 인사 중에 친이 쪽 실세들과 접촉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유정복(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의원과 했지요. 처음엔 김무성 의원이 친박 측 명단을 친이 쪽에 건네기도 했지만 유 의원이 전해준 입장이 나름 공식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친박계 추천 인사(김옥이·임두성·이정현) 모두가 무난히 금배지를 달았다.
―유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의 교지(敎旨)를 받았을까요? 아니면 사심이 들어갔을까요?
“그것까지는 모르지요. 그분은 사심을 내세울 만큼 배포가 크지는 않다고 봐요.”
이 친이 의원은 “나름 친박 몫을 반영한 공천이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친박 몫으로 아예 숫자를 정하고 지역구도 정해 100% 반영하면 되는데, 친이 실세들과 공심위에서 (친박 인사를) 넣고 빼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이지요. 실제로 (친박 쪽에서) 요구도 했어요. 제가 볼 때는 2/3는 그쪽 의견이 반영됐어요. 친이 마음대로 공천을 했다는 것은 지나친 얘기고, (친박 진영의 요구를 두고) 이 사람은 되고 저 사람은 안 되고, 이런 식으로 쥐락펴락한 것을 가지고 (친박이) 열 받은 것이지요.”
―도대체 어떤 식으로 공천을 했나요.
“전체 명단을 두고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주먹구구식으로 이 지역에는 누구로 공천할까, 저 지역은 누구로 할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한마디로 지역·성별·나이·직업·여론조사까지 고려하는 5차방정식을 2차방정식밖에 못 푸는 사람들이 대충 풀었던 것이죠.”
―지금의 친박·친이 갈등의 원인은 권력 실세들의 잘못 때문이군요.
“당연합니다. 그 사람들은 한번도 MB를 생각한 적이 없어요. 자기만 생각했습니다.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뒤 어떤 식으로든 상대편을 끌어안아야 했어요. DJ가 김중권씨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앉혔잖아요. MB의 비서실장으로 최경환(崔炅煥) 의원이나 김성조(金晟祚) 의원을 쓰고, 원내대표는 김무성 의원을 시키면 친이·친박의 갈등은 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비서실장 자리를 자기 말 잘 듣는 사람만 시키고, 이재오 의원은 자기가 전당대회에 나가려고 안상수(安商守) 의원을 당 대표에 앉혀놓고… 그게 다 대통령을 위한 일들이 아니잖아요.”
영남 물갈이도 친박 姜昌熙가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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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천 심사 결과를 놓고 칩거해 온 박근혜 전 대표가 2008년 3월 23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총선 공천 결과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사진은 기자회견 직후 모습. |
다시 친박 측 공심위원이었던 강창희 전 의원에게 같은 부탁을 했지만 “지나간 이야기를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몇몇 공심위원에게 전화를 돌렸다. 모 대학 교수인 한 공심위원은 “오래전 일이라 다 잊었다”고 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18대 공천 당시 공심위원으로 참여한 인사를 통해 당시 상황을 듣게 됐다. 그가 밝힌 ‘영남 물갈이’의 전모는 이러했다.
“공심위원에 친이 쪽 사람만 있었나요? 아닙니다. ‘강창희’라는 친박을 대변하며 매일 이방호 총장하고 싸우다시피 다툰 사람이 있었어요. 공심위 현장에서 두 사람의 말싸움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런데 영남지역 공천자를 발표하던 날, 안강민·강창희·이방호 세 사람이 따로 밀실에 들어가 공천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명단을 가지고 내려왔지요. 세 사람이 ‘(이 명단에서) 한 사람도 넣고 빼고 못 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통과됐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공심위원장과 친이·친박 두 사람이 ‘그대로 통과시켜라. 이것 아니면 공천심사가 안 된다’고 해서 그대로 통과됐는데, 친박인 강창희 전 의원이 왜 ‘OK’를 했을까요?”
―왜 OK를 했을까요?
“강 전 의원이 OK를 안 했다면 영남 물갈이 합의가 될 수 없었겠지요. 다시 말해, 친박도 OK한 사항이란 말입니다. 강창희·이방호가 얼마나 싸웠는지…. 그런데 물갈이 명단이 나올 때는 하나도 안 싸우고 명단이 나왔거든요.”
―내부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도매금으로’ 처리했거든요. ‘박희태를 탈락 안 시키면, 영남의 3선 이상을 제대로 물갈이할 수 있겠느냐’는 게 일부 공심위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또 ‘박희태만 날린다면 다 응해 주겠다’는 게 안강민 위원장의 생각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밀실에 가서 명단을 짜자’해서 3명이 간 겁니다. 강창희가 ‘노(No)’ 했다면, 절대 합의 못 한다고 버텼다면, (김무성 의원이) 빠졌겠어요?”
―왜 안강민 위원장이 박희태 의원의 낙천을 고집했을까요?
“사실 공천심사 전체 기류로 볼 때, 안 위원장은 친박이었어요. 안 위원장이 박희태 의원을 제외시키지 않으면 위원장직도 던지겠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공심위원 사이에서, 특히 외부인사들 사이에서 (박희태 낙천에) 공감대가 형성됐지요. 위원장까지 그만두겠다고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좋다! 박희태를 주면(공천에서 빼면), 영남공천 과감하게 해도 되느냐?’고 해서, 3명이 들어가 합의된 문서가 그것입니다.”
―합의 시점이 몇 시쯤이던가요?
“하루종일 했지요. 밀실에서 돌아온 게 오후 4~5시쯤 안됐을까요? 세 사람이 가져온 명단은 논란 없이 그대로 통과됐습니다.”
―이혜훈 의원이 추천해서 김무성 의원이 넣었다는 친박 측 공심위원도 있었는데, 반발하지 않던가요?
“전혀요. 김무성 의원 낙천을 두고 당시 공심위원끼리 토론하고 이런 것도 없었습니다.”
―공심위 회의 과정에서 이방호 총장이 직접적으로 ‘김무성을 날려야 된다’고 언급한 적은 없었나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친이 실세들조차 ‘이방호 총장이 장난을 많이 쳤다’고 의심하더군요.
“저는 모르겠어요. 뭘 장난쳤는지.”
―예를 들어 공심위 도중 갑자기 MB 전화를 받는 식으로….
“에이, 그런 것 없었습니다. 다만 이방호 총장이 가끔 가다가 아침에 공천심사 과정을 보고하러 청와대에 간 것은 확실하지만,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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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천심사가 막바지에 접어들 즘인 2008년 3월 11일 오전 서울 한 지역구의 전략공천에 반대하는 당원들이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18대 총선의 경우 100% 하향식 공천
한나라당의 18대 공천은 소수가 주도하는 공천이었다. 친이 실세의 권력욕과 공심위원들의 물갈이 욕심이 만든 ‘미운 놈 찍어내기’식 자의적 공천이었다. 권력에 의한 하향식 공천은 공천불복을 양산했고 ‘친박연대’라는 기형조직이 생겨나게 했다.
이 모두가 친이 실세들이 ‘이명박 대통령 당(黨)’에 숨어 권력을 탐닉하겠다는 욕망에서 출발했다면 억측일까.
한나라당은 2008년 4·9총선 이후 자신들이 낙천시켰던 친박 의원들을 복당시켜 민주화 이후 가장 의석이 많은 ‘공룡정당’이 되었다. 그 결과, 친이·친박이 사사건건 멱살잡이를 벌이는 ‘봉숭아학당’이 되었다.
그 때문일까.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나경원(羅卿瑗) 의원은 지난 4월 14일 (사)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원장 김석우)이 주최한 정책심포지엄에서 “하향식 공천 실행기구인 공심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나 의원은 현재 한나라당 공천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말이다.
“취약지역과 전략지역을 제외한 지역은 모두 상향식 공천(경선)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또 하향식 공천의 실행기구인 공천심사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국민의 공천인 상향식 공천의 의미를 살려 공천과정과 절차를 관리·감독하는 공천관리위원회를 신설하면 어떨까 합니다. 현재 한나라당 당헌·당규는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전략지역 예외 규정을 남용해 이를 무력화하였습니다. 사실, 18대 총선의 경우 100% 하향식 공천이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경선을 실시하지 않는 전략지역은 ‘취약지역을 제외한 지역의 20% 미만’을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공천 갈등으로 인한 분열과 대립을 지양하기 위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천제도를 확립해야 합니다.”
18대 공천방식을 다 뜯어고치겠다는 한나라당 공천개혁특위 위원장의 생각이 얼마나 현실화될지 두고 볼 일이다. 또 설령 이런 제도가 확립되더라도 그게 지켜질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니 공천 방정식은 참으로 풀기가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