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통치 관련 평가 높지만, 정치·자질 관련 평가 낮아
⊙ 계속되는 인사실패도 프로젝트형 리더십이 원인
⊙ 레임덕 원만하게 관리하려면 소통에 힘쓰면서 ‘정치’에 올인해야
金亨俊
⊙ 54세.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現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인문교양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 계속되는 인사실패도 프로젝트형 리더십이 원인
⊙ 레임덕 원만하게 관리하려면 소통에 힘쓰면서 ‘정치’에 올인해야
金亨俊
⊙ 54세.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美아이오와대 계량정치학 박사.
⊙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선거학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現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인문교양부) 교수,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 원장.
이명박(李明博) 대통령(MB)이 집권 4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비슷한 시점의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할 때 MB는 국정운영 지지도가 50%대를 넘나드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임기 말로 치닫는 이 시점에서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락하는 것이 상례(常例)인데 MB는 집권 초기 10%대로 급락했다가 오히려 꾸준히 상승세(上昇勢)를 유지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MB의 지지도는 높은데 바닥 민심(民心)은 싸늘하고, 국론(國論)은 사분오열(四分五裂)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 같은 괴리(乖離)가 생기는 것일까.
국민들은 대통령을 다양한 기준에 의해 평가한다. 특히 통치(governing)와 정치(politics)를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통치영역은 ‘대통령이 행정가로서 일을 잘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통치의 일차적인 관심은 대통령이 경제·외교·안보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놓았느냐에 모여 있다.
MB 정부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극복하고,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여기에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位相)과 국민의 자긍심(自矜心)을 높였다. 북한의 안보 위협 속에서 한미 동맹 관계는 더욱 공고화되었다. 이런 상황과 성취로 인해 MB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
통치영역과는 달리 정치영역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극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감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대통령은 최근 개헌(改憲)논의에 드라이브를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야(與野)관계, 한나라당 내 역학(力學) 구도, 개헌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 레임덕 시기의 도래 등 여러 상황으로 보아 지금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개헌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주장이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에도 공감대 형성 등 충분한 정치적 준비 없이 세종시 수정안(修正案)을 정운찬(鄭雲燦) 총리를 앞세워 내놓으면서 추진하다가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국론만 분열시킨 적이 있다. 개헌 문제도 비슷한 전철(前轍)을 밟을 개연성이 크다.
세종시와 과학벨트의 예
세종시 문제도 돌이켜보면 정치 부재(不在)가 가져온 재앙이었다. 아무리 세종시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책과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사활적(死活的) 이해가 걸려 있는 정치 문제였다.
이런 민감한 정치 현안을 다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전(事前)에 이해 당사자들과 충분한 교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정치의 ABC이다. 만약, 사전에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와 물밑 접촉을 통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조율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박 전 대표의 체면을 살리면서 9부2처2청이 아니라 최소 부처만을 내려보내는 타협안을 마련했을 수도 있었다.
박 전 대표와 사전에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수정안 자체를 제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효율성과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이런 기본적인 정치 협상과 절차를 무시했다. 대신 충청 출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수정안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귀결되었다.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大選)에서 충청권에 약속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를 백지화(白紙化)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정치권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위원회가 어떤 식으로 결정하든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MB 발언은 ‘공약 백지화’가 아니고, 합리적으로 하겠다는 말이다”고 부연 설명했다. 사고는 대통령이 치고 수습은 청와대가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인사(人事)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가 이어졌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평가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인사를 꼽는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가운데 무려 8명이 낙마(落馬)해 역대 최다(最多)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효율성 위주 인사의 한계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이런 거듭된 인사 실패의 본질적인 이유로 청와대 인사 시스템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특한 인사 스타일을 지적한다. 이 대통령은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가진 방송좌담회에서 자신의 인사 스타일을 밝혔다.
“대통령이 단임제(單任制)로 5년을 하면 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지가 중요하다. 효율적으로 하려면 우선 추진력이 있어야 하고 나는 일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뜻을 같이해야 한다. 정부는 정치가 아니다. 정부는 하나의 팀워크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그런데 인사를 이처럼 효율성에 치중하다 보니 정치가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민(文民)정부 출범 첫 조각에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국무총리에 호남 출신 황인성(黃仁性),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비(非)상도동계 출신인 박관용(朴寬用), 감사원장으로 대쪽 판사라는 이회창(李會昌) 대법관, 안기부장으로 교수 출신 김덕(金悳)을 임명했다. 이는 자신에게 편한 사람보다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2009년에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에서 강력한 정적(政敵)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외교수장(首長)인 국무장관으로 기용했다. 일각에서는 오바마의 구심력(求心力)이 약화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지만, 오바마는 ‘통합’이라는 정책목표 아래 과감히 힐러리를 끌어안았다.
집권 3년차 시동을 건 오바마는 최근 새 백악관 비서실장에 민간 출신인 윌리엄 데일리 JP모건 체이스 회장을 임명했다. 그동안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던 오바마가 미국 2위 은행의 경영자를 발탁한 것은 야당인 공화당과 타협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집권 후반기 국정(國政) 운영의 초점을 경제에 맞추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는 오바마가 심복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과 부합하는 정치적 파트너를 선택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김영삼과 오바마 대통령의 인사가 국민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인사를 ‘팀워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MB의 반복적인 인사 실패, 거칠고 아마추어적인 정책 갈등 조정, 상징 조작의 미숙함, 야당 배제의 불도저식 국정 운용 스타일 등을 접하면서, “대통령이 일은 참 열심히 하는데 정치는 정말 못한다”는 확신을 갖는 듯하다.
바닥 민심이 싸늘한 이유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인식과 선입관(先入觀)은 그의 도덕성과 신뢰에 대한 일반 국민의 평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로 온 나라가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은 직후 리서치 앤 리서치가 실시한 국민의식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면 대체로 신뢰가 간다’에 대하여, ‘그렇다’는 응답은 35.3%에 그쳤다.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61.6%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현 정부가 주장하면 대체로 신뢰가 간다’에 대하여, ‘그렇다’는 응답은 31.5%,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65.9%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는 경제 논리만을 앞세워 쇠고기 협상을 빨리 매듭지어 한미(韓美) FTA의 조속한 비준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MB의 조급함과 정치적 미숙함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최근에 대전시장 출신인 한나라당 박성효(朴城孝)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과학벨트 공약을 백지화함으로써 충청 민심이 분노하고 있다”면서 “‘일하는 대통령’에서 나아가 이제는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라고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발언은 대통령의 신뢰에 또 한 번 큰 상처를 주었다.
종합하면, 일반 국민들은 ‘다층적(多層的) 평가 틀’ 속에서 대통령을 평가한다. 다음 <표>에서 보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상황과 성취로 구성된 통치영역에서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국정운영 지지도가 높은 것이다. 하지만 정치영역에서는 아주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신뢰성과 서민성이 포함된 자질영역에서도 아주 나쁜 평가를 받고 있다. 바닥 민심을 결정하는 정치와 자질 영역에서의 평가가 너무 나쁘기 때문에 국정운영 지지도는 높은데 바닥 민심은 싸늘한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가 최근 발주한 ‘대통령 브랜드 이미지 전략’ 외부 연구 용역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을 ‘국민을 배려하거나 위하는 척하는 리더’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그들은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우리 사회를 약자(弱者)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로 본다”고 지적했다.
‘친근감’ 부족이 핵심 약점
“MB가 친(親)서민 얘기할수록 서민과 비서민 편이 더 갈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언급한 리서치 앤 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 포트폴리오’ 분석에서도 이런 점이 확인되었다. ‘친근감’(부족)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약점으로, 반응성과 서민성이 부수 약점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조).
반대로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통치영역에서는 아주 나쁜 평가를 받았지만 자질영역에서는 높게 평가받았다. 통치영역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나빴던 것은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뺏기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바닥 민심을 좌우하는 자질영역에서는 평가가 좋아 퇴임 후에 오히려 지지가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재임 중에는 국정운영 지지도가 최악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후에 5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추모대열에 합류하도록 했던 요인이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분석 틀이 유용하다(<그림 2> 참조). 대통령학 연구 전문가인 알렉산더 조지(Alexander George) 교수는 대통령의 선택과 행위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인지 스타일’(cognitive style)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정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정치인임을 부정
정권 출범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와 실제로 행한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를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방송좌담회에서도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할 때도 그랬지만 대통령 될 때도 국민에게 경제대통령으로서 우리 서민 살림살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해서 당선된 사람이어서 과거의 오랜 정치적 관습과 다른 시도를 해왔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만과 비판적 인식을 아주 잘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정치를 책략으로, ‘정무(政務)’를 권모술수와 밀실정치로 간주하는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능력 전체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둘째,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가 정치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적으로 그는 “저는 과거처럼 권력을 행사한 사람도 아니고, 정치인 출신도 아니고 일해 오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중심제하에서는 대통령이 하는 일이 다 정치이고, 정치의 최정점(最頂點)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의식적으로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을 잡아 주류(主流)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은 소수(少數), 비주류라고 언급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7급 공무원’ 같은 대통령은 싫다!
셋째,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정치로 풀기보다는 경제나 다른 논리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세종시, 과학벨트, 개헌 문제가 모두 이에 해당된다.
대통령의 인식 못지않게 대통령이 사회화(社會化) 과정에서 어떤 학습(leaning)을 거쳤는지도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랜 기간 동안 전문경영인의 길을 걸으면서 독특한 CEO형 리더십을 체득했다. CEO 리더십에 대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MB식 CEO 리더십’은 몇 가지 독특한 면이 있다.
1. 성취지향적 리더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무리 어려워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반대했던 청계천의 경우, 결국 성공했고 이것이 대통령이 되는 토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4대강도 마찬가지이다. 올해 4대강이 완성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두고 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더욱이, 자신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은 결국 망했다는 믿음도 갖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리더십이 정치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정치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할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영역에서 져도 이길 수 있고, 이겨도 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2. 모든 것을 자기가 직접 결정하는 만기총람(萬機總攬)형 리더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CEO가 책임을 지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참모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약화(弱化)되고,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미루며 눈치만 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관련 부처 장관, 청와대 참모, 일선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을 대통령이 주도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때는 대통령이 일선 공무원처럼 행동하면서 대통령의 권위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한다. 집권 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일선 파출소를 직접 방문해 유괴범 검거를 지시한 적이 있다. 이를 반영하듯, 청와대가 발주한 연구 용역에서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 7급 공무원 같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유형의 리더십은 인사에서도 역(逆)기능적으로 작동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CEO만 똑똑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모는 다소 도덕성이 떨어지고 능력이 모자라도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자신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편한 사람으로만 조직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프로젝트 리더십과 총리 인사
3. 각론(各論)에 강한 프로젝트 리더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권에서와 같은 추상적 거대 담론(談論)보다는 아주 구체적인 사항에 관심이 많다. 집권 초기 고(高)환율 정책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52개 물가지표를 만들어 관리하도록 하면서, 경제 관련 장관들로 하여금 이 물가에 대해 숙지하도록 한 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특정 과제들에 대해서는 강세를 보일지 모르지만 비전을 만들고 실천하는 데는 한계가 따르기 쉽다. 각론 성격의 과제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과제를 통해서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걸 밝히는 비전이 약해지기 쉽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과거를 잊고 빠르게 다른 프로젝트로 전환시키는 데 능숙하다. 총리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초대 한승수(韓昇洙) 총리는 ‘자원외교 총리’,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총리’, 김황식(金滉植) 총리는 ‘공정 총리’로 각각 제한된 역할을 부여했다.
이로 인해 총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울러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
여하튼 정치에 대한 이런 인식과 학습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지혜를 빈약하게 하고 정치 감각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은 정치로 풀어야 할 민감한 정치현안을 정치로 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심지어 이런 현안들을 너무나 쉽게 접근하는 경향이 자주 나타났다.
또 정치를 자신이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기보다는 대리인(代理人)을 통해 접근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모습도 연출되었다. 세종시 문제를 정운찬 총리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 처리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껄끄러운 반대자들을 만나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爆沈)과 연평도 포격으로 국가 안보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하나 된 국민이 최강의 안보입니다”라는 대(對)국민 메시지만 전달했을 뿐 이명박 대통령은 정작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야당 대표들과 만나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
여하튼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정치 지혜와 정치 감각이 부족한 것은 상징조작과 정치 메시지(언어)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정치 리더십을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정치에 대한 인식 바꾸어야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레임덕은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내가 권력에 빠진다거나 권력을 행사한 삶도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더불어 “더 해야 할 일을 하고 떠나야겠으며, 기초를 닦고 가야겠다”고 발언했다. 일을 열심히 하면 레임덕이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발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정치 감각을 잃어 정치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해 일을 하더라도 정치 지혜를 바탕으로 정치 감각을 살리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레임덕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오랜 기간 동안 학습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CEO형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다. 이것이 이 대통령이 남은 재임기간 동안 정치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될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처럼 정치를 피하고 무시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통령의 힘은 급속하게 빠지겠지만 이를 정치 지혜를 빌려 풀어나가야 한다. 개헌, 과학벨트 및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한미 FTA 비준, 남북관계 개선 등 해결하기 까다롭고 민감한 정치 난제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정치 지혜와 정치 감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정치에 대한 인식의 대변화를 이뤄야 한다. 정치는 더럽고 비생산적이라서 피해야 할 대상이라고 더 이상 인식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정치를 피할 게 아니라 진짜 정치를 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실패했지만 정치만은 성공했다는 대통령은 여태 한 명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실패하고도 다른 모든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대통령도 없었다”는 한 중견 언론인의 충고를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다시 말해, 지금부터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를 통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을 걷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轉回)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정치소통 제대로 해야
둘째, 정치소통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과 국정 소통 방식은 ‘홍보만 있고, 소통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대통령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만 전달하고 대통령의 치적이나 성과만을 홍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동안 수십 차례 회견을 했지만 민감한 현안을 묻고 답하는 제대로 된 기자회견은 사실상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특히 새해를 맞이하면서 신년 연설을 3번 했지만 그것도 대통령이 정리된 원고만 읽는 것으로 끝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4번의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번의 신년 회견과 2번의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27번의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것(going to the public)을 선호했고, 이것이 여야를 넘어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제는 일방적인 담화 또는 연설, 정해진 각본에 따른 국민과의 대화를 하기보다는 기자회견·토론 등 쌍방향 대화에 치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청계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울시장 당시 많은 사람이 반대했던 청계천 복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원칙을 가지고 이해 당사자들과 수천 번 만나서 대화하고 토론해 성공을 거두었던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국민과 정치권을 향한 정치소통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셋째, 더욱 낮은 자세로 야당을 존중해야 한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과 야당의 관계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9월 이후 28개월 동안 야당 대표와 회동하지 않았다. 손학규(孫鶴圭) 신임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지 3개월여가 지났지만 회동에 인색하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조와 지지를 구해야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안보 등 국정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야당에 제공하는 파격을 보여야 한다. 야당에 의한 국가 기밀 누설을 두려워해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은 야당을 무시하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집권 경험이 있는 야당도 여당 못지않게 국가와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믿음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은 통 큰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김영환(金榮煥) 민주당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최중경(崔重卿)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요청한 적이 있다. 김영환 의원은 이에 대해 “헌정(憲政)과 정치사에서 드문 일로, 국회를 중시하는 대통령의 이런 태도와 인식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감동인사’ 필요
미국의 대통령들은 야당 의원들과 수시로 통화를 하고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현안을 조율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역사적인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법안’을 통과시킬 때 야당과 직접 소통을 했다. 대통령이 야당을 존중하고 수시로 만나 대화를 한다면 풀리지 않을 것이 없다. 개헌 문제만 해도 방송좌담회를 통해 필요성을 제기하기보다는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가서 정중하게 제안했다면 진정성을 인정받았을지 모른다.
넷째,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감동 인사’를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3년 내내 측근인사·회전문 인사 논란에 휘말렸다. 특히 지난해 12월 31일에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감사원장에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수석비서관을 지명한 것은 ‘친정(親政)체제 구축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좁은 인력풀을 가지고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 인사를 하다 보니 회전문·돌려막기 인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여하튼 국민들은 인사를 통해 대통령의 정치 감각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이제는 변해야 한다. 깜짝쇼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숨은 진주를 찾아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주장하는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인사가 있다면 십고초려(十顧草廬)를 해서라도 모셔오는 파격을 보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 과제로 제시한 친서민, 공정사회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사들을 많이 발탁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성취시킨 전력(前歷)이 많다. 그 이유는 ‘안 된다’는 생각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이 크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은 정치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은 재임기간 동안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세간의 평가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특유의 돌파력을 보일지도 모른다. 깨달음은 찰나에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동안 부족했던 정치 감각을 강화시켜 정치를 통해 승부를 걸려고 한다면 다음의 사항들을 진지하게 자문(自問)해 봐야 한다.
정치적 숙고의 시간 많이 가져야
이미 닥쳐오기 시작한 레임덕을 원만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개헌 논의에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 아닐지?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무조건 미루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정 평가 기준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대선에서 약속한 충청권 과학벨트 유치를 받아들이는 용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기존의 청와대 정무팀과 자신의 순장조(殉葬組)로 무장된 특보 체제로 과연 임기 말에 불어닥칠 엄청난 정치적 난제들을 무난히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지?
이런 질문에 대한 정치적 숙고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올해가 지나면 이 대통령의 통치 환경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정치의 중심은 미래권력에 쏠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재임기간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 올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직 대통령들이 겪었던 욕먹으면서 퇴임하는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이 열릴 것이다.⊙
특이한 점은 MB의 지지도는 높은데 바닥 민심(民心)은 싸늘하고, 국론(國論)은 사분오열(四分五裂)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 같은 괴리(乖離)가 생기는 것일까.
국민들은 대통령을 다양한 기준에 의해 평가한다. 특히 통치(governing)와 정치(politics)를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 통치영역은 ‘대통령이 행정가로서 일을 잘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통치의 일차적인 관심은 대통령이 경제·외교·안보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놓았느냐에 모여 있다.
MB 정부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극복하고,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여기에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位相)과 국민의 자긍심(自矜心)을 높였다. 북한의 안보 위협 속에서 한미 동맹 관계는 더욱 공고화되었다. 이런 상황과 성취로 인해 MB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
통치영역과는 달리 정치영역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극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감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대통령은 최근 개헌(改憲)논의에 드라이브를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야(與野)관계, 한나라당 내 역학(力學) 구도, 개헌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 레임덕 시기의 도래 등 여러 상황으로 보아 지금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개헌 자체가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주장이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에도 공감대 형성 등 충분한 정치적 준비 없이 세종시 수정안(修正案)을 정운찬(鄭雲燦) 총리를 앞세워 내놓으면서 추진하다가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국론만 분열시킨 적이 있다. 개헌 문제도 비슷한 전철(前轍)을 밟을 개연성이 크다.
세종시와 과학벨트의 예
세종시 문제도 돌이켜보면 정치 부재(不在)가 가져온 재앙이었다. 아무리 세종시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책과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사활적(死活的) 이해가 걸려 있는 정치 문제였다.
이런 민감한 정치 현안을 다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전(事前)에 이해 당사자들과 충분한 교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정치의 ABC이다. 만약, 사전에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와 물밑 접촉을 통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조율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박 전 대표의 체면을 살리면서 9부2처2청이 아니라 최소 부처만을 내려보내는 타협안을 마련했을 수도 있었다.
박 전 대표와 사전에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수정안 자체를 제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효율성과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이런 기본적인 정치 협상과 절차를 무시했다. 대신 충청 출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수정안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귀결되었다.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大選)에서 충청권에 약속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를 백지화(白紙化)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정치권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위원회가 어떤 식으로 결정하든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MB 발언은 ‘공약 백지화’가 아니고, 합리적으로 하겠다는 말이다”고 부연 설명했다. 사고는 대통령이 치고 수습은 청와대가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인사(人事)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가 이어졌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평가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인사를 꼽는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가운데 무려 8명이 낙마(落馬)해 역대 최다(最多)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효율성 위주 인사의 한계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이런 거듭된 인사 실패의 본질적인 이유로 청와대 인사 시스템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특한 인사 스타일을 지적한다. 이 대통령은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가진 방송좌담회에서 자신의 인사 스타일을 밝혔다.
“대통령이 단임제(單任制)로 5년을 하면 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지가 중요하다. 효율적으로 하려면 우선 추진력이 있어야 하고 나는 일 중심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뜻을 같이해야 한다. 정부는 정치가 아니다. 정부는 하나의 팀워크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그런데 인사를 이처럼 효율성에 치중하다 보니 정치가 실종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민(文民)정부 출범 첫 조각에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국무총리에 호남 출신 황인성(黃仁性),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비(非)상도동계 출신인 박관용(朴寬用), 감사원장으로 대쪽 판사라는 이회창(李會昌) 대법관, 안기부장으로 교수 출신 김덕(金悳)을 임명했다. 이는 자신에게 편한 사람보다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2009년에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에서 강력한 정적(政敵)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외교수장(首長)인 국무장관으로 기용했다. 일각에서는 오바마의 구심력(求心力)이 약화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지만, 오바마는 ‘통합’이라는 정책목표 아래 과감히 힐러리를 끌어안았다.
집권 3년차 시동을 건 오바마는 최근 새 백악관 비서실장에 민간 출신인 윌리엄 데일리 JP모건 체이스 회장을 임명했다. 그동안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던 오바마가 미국 2위 은행의 경영자를 발탁한 것은 야당인 공화당과 타협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집권 후반기 국정(國政) 운영의 초점을 경제에 맞추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는 오바마가 심복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과 부합하는 정치적 파트너를 선택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김영삼과 오바마 대통령의 인사가 국민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인사를 ‘팀워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MB의 반복적인 인사 실패, 거칠고 아마추어적인 정책 갈등 조정, 상징 조작의 미숙함, 야당 배제의 불도저식 국정 운용 스타일 등을 접하면서, “대통령이 일은 참 열심히 하는데 정치는 정말 못한다”는 확신을 갖는 듯하다.
바닥 민심이 싸늘한 이유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인식과 선입관(先入觀)은 그의 도덕성과 신뢰에 대한 일반 국민의 평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로 온 나라가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은 직후 리서치 앤 리서치가 실시한 국민의식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면 대체로 신뢰가 간다’에 대하여, ‘그렇다’는 응답은 35.3%에 그쳤다.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61.6%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현 정부가 주장하면 대체로 신뢰가 간다’에 대하여, ‘그렇다’는 응답은 31.5%,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65.9%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는 경제 논리만을 앞세워 쇠고기 협상을 빨리 매듭지어 한미(韓美) FTA의 조속한 비준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MB의 조급함과 정치적 미숙함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최근에 대전시장 출신인 한나라당 박성효(朴城孝)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과학벨트 공약을 백지화함으로써 충청 민심이 분노하고 있다”면서 “‘일하는 대통령’에서 나아가 이제는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라고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 발언은 대통령의 신뢰에 또 한 번 큰 상처를 주었다.
종합하면, 일반 국민들은 ‘다층적(多層的) 평가 틀’ 속에서 대통령을 평가한다. 다음 <표>에서 보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상황과 성취로 구성된 통치영역에서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국정운영 지지도가 높은 것이다. 하지만 정치영역에서는 아주 미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신뢰성과 서민성이 포함된 자질영역에서도 아주 나쁜 평가를 받고 있다. 바닥 민심을 결정하는 정치와 자질 영역에서의 평가가 너무 나쁘기 때문에 국정운영 지지도는 높은데 바닥 민심은 싸늘한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가 최근 발주한 ‘대통령 브랜드 이미지 전략’ 외부 연구 용역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을 ‘국민을 배려하거나 위하는 척하는 리더’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그들은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우리 사회를 약자(弱者)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로 본다”고 지적했다.
‘친근감’ 부족이 핵심 약점
“MB가 친(親)서민 얘기할수록 서민과 비서민 편이 더 갈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언급한 리서치 앤 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 포트폴리오’ 분석에서도 이런 점이 확인되었다. ‘친근감’(부족)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약점으로, 반응성과 서민성이 부수 약점으로 나타났다(<그림 1> 참조).
반대로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통치영역에서는 아주 나쁜 평가를 받았지만 자질영역에서는 높게 평가받았다. 통치영역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나빴던 것은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정권을 뺏기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바닥 민심을 좌우하는 자질영역에서는 평가가 좋아 퇴임 후에 오히려 지지가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이 재임 중에는 국정운영 지지도가 최악이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후에 5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추모대열에 합류하도록 했던 요인이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분석 틀이 유용하다(<그림 2> 참조). 대통령학 연구 전문가인 알렉산더 조지(Alexander George) 교수는 대통령의 선택과 행위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인지 스타일’(cognitive style)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정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정치인임을 부정
정권 출범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와 실제로 행한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를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방송좌담회에서도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할 때도 그랬지만 대통령 될 때도 국민에게 경제대통령으로서 우리 서민 살림살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해서 당선된 사람이어서 과거의 오랜 정치적 관습과 다른 시도를 해왔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만과 비판적 인식을 아주 잘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정치를 책략으로, ‘정무(政務)’를 권모술수와 밀실정치로 간주하는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능력 전체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둘째,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가 정치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적으로 그는 “저는 과거처럼 권력을 행사한 사람도 아니고, 정치인 출신도 아니고 일해 오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중심제하에서는 대통령이 하는 일이 다 정치이고, 정치의 최정점(最頂點)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의식적으로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을 잡아 주류(主流)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은 소수(少數), 비주류라고 언급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7급 공무원’ 같은 대통령은 싫다!
셋째,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정치로 풀기보다는 경제나 다른 논리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세종시, 과학벨트, 개헌 문제가 모두 이에 해당된다.
대통령의 인식 못지않게 대통령이 사회화(社會化) 과정에서 어떤 학습(leaning)을 거쳤는지도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랜 기간 동안 전문경영인의 길을 걸으면서 독특한 CEO형 리더십을 체득했다. CEO 리더십에 대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MB식 CEO 리더십’은 몇 가지 독특한 면이 있다.
1. 성취지향적 리더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무리 어려워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반대했던 청계천의 경우, 결국 성공했고 이것이 대통령이 되는 토대가 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4대강도 마찬가지이다. 올해 4대강이 완성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두고 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더욱이, 자신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은 결국 망했다는 믿음도 갖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리더십이 정치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정치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할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영역에서 져도 이길 수 있고, 이겨도 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2. 모든 것을 자기가 직접 결정하는 만기총람(萬機總攬)형 리더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CEO가 책임을 지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참모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약화(弱化)되고,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미루며 눈치만 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관련 부처 장관, 청와대 참모, 일선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을 대통령이 주도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때는 대통령이 일선 공무원처럼 행동하면서 대통령의 권위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한다. 집권 초기 이명박 대통령은 일선 파출소를 직접 방문해 유괴범 검거를 지시한 적이 있다. 이를 반영하듯, 청와대가 발주한 연구 용역에서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 7급 공무원 같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유형의 리더십은 인사에서도 역(逆)기능적으로 작동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CEO만 똑똑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모는 다소 도덕성이 떨어지고 능력이 모자라도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자신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편한 사람으로만 조직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프로젝트 리더십과 총리 인사
3. 각론(各論)에 강한 프로젝트 리더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권에서와 같은 추상적 거대 담론(談論)보다는 아주 구체적인 사항에 관심이 많다. 집권 초기 고(高)환율 정책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52개 물가지표를 만들어 관리하도록 하면서, 경제 관련 장관들로 하여금 이 물가에 대해 숙지하도록 한 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특정 과제들에 대해서는 강세를 보일지 모르지만 비전을 만들고 실천하는 데는 한계가 따르기 쉽다. 각론 성격의 과제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과제를 통해서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걸 밝히는 비전이 약해지기 쉽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과거를 잊고 빠르게 다른 프로젝트로 전환시키는 데 능숙하다. 총리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초대 한승수(韓昇洙) 총리는 ‘자원외교 총리’,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총리’, 김황식(金滉植) 총리는 ‘공정 총리’로 각각 제한된 역할을 부여했다.
이로 인해 총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울러 총리가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
여하튼 정치에 대한 이런 인식과 학습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지혜를 빈약하게 하고 정치 감각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은 정치로 풀어야 할 민감한 정치현안을 정치로 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심지어 이런 현안들을 너무나 쉽게 접근하는 경향이 자주 나타났다.
또 정치를 자신이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기보다는 대리인(代理人)을 통해 접근하거나, 피하려고 하는 모습도 연출되었다. 세종시 문제를 정운찬 총리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 처리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껄끄러운 반대자들을 만나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爆沈)과 연평도 포격으로 국가 안보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하나 된 국민이 최강의 안보입니다”라는 대(對)국민 메시지만 전달했을 뿐 이명박 대통령은 정작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야당 대표들과 만나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
여하튼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정치 지혜와 정치 감각이 부족한 것은 상징조작과 정치 메시지(언어)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정치 리더십을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정치에 대한 인식 바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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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3월 31일 일산경찰서를 찾아 어린이 유괴범의 조속한 검거를 지시했다. |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더라도 정치 감각을 잃어 정치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해 일을 하더라도 정치 지혜를 바탕으로 정치 감각을 살리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레임덕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오랜 기간 동안 학습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CEO형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다. 이것이 이 대통령이 남은 재임기간 동안 정치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될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처럼 정치를 피하고 무시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통령의 힘은 급속하게 빠지겠지만 이를 정치 지혜를 빌려 풀어나가야 한다. 개헌, 과학벨트 및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한미 FTA 비준, 남북관계 개선 등 해결하기 까다롭고 민감한 정치 난제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정치 지혜와 정치 감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정치에 대한 인식의 대변화를 이뤄야 한다. 정치는 더럽고 비생산적이라서 피해야 할 대상이라고 더 이상 인식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정치를 피할 게 아니라 진짜 정치를 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실패했지만 정치만은 성공했다는 대통령은 여태 한 명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실패하고도 다른 모든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대통령도 없었다”는 한 중견 언론인의 충고를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다시 말해, 지금부터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를 통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을 걷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轉回)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정치소통 제대로 해야
둘째, 정치소통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과 국정 소통 방식은 ‘홍보만 있고, 소통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대통령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만 전달하고 대통령의 치적이나 성과만을 홍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동안 수십 차례 회견을 했지만 민감한 현안을 묻고 답하는 제대로 된 기자회견은 사실상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특히 새해를 맞이하면서 신년 연설을 3번 했지만 그것도 대통령이 정리된 원고만 읽는 것으로 끝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4번의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번의 신년 회견과 2번의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27번의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것(going to the public)을 선호했고, 이것이 여야를 넘어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제는 일방적인 담화 또는 연설, 정해진 각본에 따른 국민과의 대화를 하기보다는 기자회견·토론 등 쌍방향 대화에 치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청계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울시장 당시 많은 사람이 반대했던 청계천 복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원칙을 가지고 이해 당사자들과 수천 번 만나서 대화하고 토론해 성공을 거두었던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국민과 정치권을 향한 정치소통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셋째, 더욱 낮은 자세로 야당을 존중해야 한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과 야당의 관계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9월 이후 28개월 동안 야당 대표와 회동하지 않았다. 손학규(孫鶴圭) 신임 대표 체제가 출범한 지 3개월여가 지났지만 회동에 인색하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조와 지지를 구해야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안보 등 국정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야당에 제공하는 파격을 보여야 한다. 야당에 의한 국가 기밀 누설을 두려워해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은 야당을 무시하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집권 경험이 있는 야당도 여당 못지않게 국가와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믿음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은 통 큰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김영환(金榮煥) 민주당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최중경(崔重卿)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요청한 적이 있다. 김영환 의원은 이에 대해 “헌정(憲政)과 정치사에서 드문 일로, 국회를 중시하는 대통령의 이런 태도와 인식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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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제목의 신년 방송좌담회를 가졌지만,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았다. |
‘감동인사’ 필요
미국의 대통령들은 야당 의원들과 수시로 통화를 하고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현안을 조율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역사적인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 법안’을 통과시킬 때 야당과 직접 소통을 했다. 대통령이 야당을 존중하고 수시로 만나 대화를 한다면 풀리지 않을 것이 없다. 개헌 문제만 해도 방송좌담회를 통해 필요성을 제기하기보다는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가서 정중하게 제안했다면 진정성을 인정받았을지 모른다.
넷째,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감동 인사’를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3년 내내 측근인사·회전문 인사 논란에 휘말렸다. 특히 지난해 12월 31일에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감사원장에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수석비서관을 지명한 것은 ‘친정(親政)체제 구축 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좁은 인력풀을 가지고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 인사를 하다 보니 회전문·돌려막기 인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여하튼 국민들은 인사를 통해 대통령의 정치 감각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이제는 변해야 한다. 깜짝쇼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숨은 진주를 찾아 국민을 감동시켜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주장하는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인사가 있다면 십고초려(十顧草廬)를 해서라도 모셔오는 파격을 보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 과제로 제시한 친서민, 공정사회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사들을 많이 발탁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성취시킨 전력(前歷)이 많다. 그 이유는 ‘안 된다’는 생각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이 크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은 정치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은 재임기간 동안 정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세간의 평가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특유의 돌파력을 보일지도 모른다. 깨달음은 찰나에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동안 부족했던 정치 감각을 강화시켜 정치를 통해 승부를 걸려고 한다면 다음의 사항들을 진지하게 자문(自問)해 봐야 한다.
정치적 숙고의 시간 많이 가져야
이미 닥쳐오기 시작한 레임덕을 원만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개헌 논의에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 아닐지?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무조건 미루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정 평가 기준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대선에서 약속한 충청권 과학벨트 유치를 받아들이는 용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기존의 청와대 정무팀과 자신의 순장조(殉葬組)로 무장된 특보 체제로 과연 임기 말에 불어닥칠 엄청난 정치적 난제들을 무난히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지?
이런 질문에 대한 정치적 숙고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올해가 지나면 이 대통령의 통치 환경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정치의 중심은 미래권력에 쏠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재임기간이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 올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직 대통령들이 겪었던 욕먹으면서 퇴임하는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이 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