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社, “우리도 모르는 기막힌 일… 너무 억울하다”
⊙ 은행연합회, “당시의 구체적인 전산기록 남아있지 않다”
⊙ 국세청, “資金 입출금 현황 현재 정밀조사 中”
⊙ “불법자금이다” “은행측 잘못이다” 의견 엇갈려
⊙ 은행연합회, “당시의 구체적인 전산기록 남아있지 않다”
⊙ 국세청, “資金 입출금 현황 현재 정밀조사 中”
⊙ “불법자금이다” “은행측 잘못이다” 의견 엇갈려
-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주둔해 있던 도하부대가 이전하면서 이 일대가 집중 개발될 예정이다. 서울 독산동 도하부대 일대 항공사진. 출처 구글.
2007년 12월 7일,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육군 도하부대 부지(약 17만㎡·5만여평)가 민간에 매각됐다. 인수자(引受者)는 건설시행업을 하는 J사(社·부산 소재)였다. 매각대금은 3600여억 원. 원래 삼양사 소유였던 이 땅은 1970년대 초 정부에 징발될 당시, ‘매각시(時) 원(原)소유주에게 우선적으로 매각한다’는 계약조건이 붙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금천구 지역민들은 30년 넘게 상주(常駐)해 온 군부대의 이전을 요구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들어 부대 이전(移轉)이 가시화되자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던 삼양사는 J사와 “국방부로부터 땅을 매입할 때 곧바로 J사에 매각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땅의 소유권은 2007년 12월 7일 하루 만에 국방부에서 삼양사를 거쳐 J사로 넘어갔다. 국방부와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부대가 도시발전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매각대상이 됐고, 최초 소유자의 환매요청에 따라 기획재정부의 승인으로 최종 매각 처리됐다”고 했다.
브로커의 관심 대상이었던 독산동 땅
독산동 군부대 ‘부지 매각’ 얘기는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나왔다. 매각을 빌미로 사기(詐欺) 사건이 적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땅을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던 것이다.
2007년 12월, 이 땅이 매각되기 전에도 이상한 소문은 나돌았다. 브로커와 사채업자들 사이에서는 “모 인사가 땅을 매입하려고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에게 로비를 했다”, “또 다른 인물이 여권 정치인에게 매각 협력 조건으로 수십억 원의 정치자금을 줬다”는 식의 확인 불가능한 얘기가 무성했다.
J사가 2007년 말 ‘독산동 군부대 땅’을 매입하면서 소문은 잠잠해졌다.
그런데 이듬해 초부터 잡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독산동 땅’을 사기 위해 일을 추진해 왔던 이(李)모씨가 땅 매입에 실패하자 J사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씨는 2008년 4~5월경 한 지인(知人)으로부터 “사채업자 김(金)모씨가 J사를 통해 7000억~8000억원의 불법자금을 세탁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J사를 의심하던 이씨는 2008년 7월 신용정보회사인 ‘한국신용평가정보’가 작성한 ‘J사 신용분석보고서’와 ‘J사 여신현황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를 접한 이씨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J사가 1조원이 넘는 거액(巨額)을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사실이 보고서에 적시(摘示)돼 있었다. 2000년 자본금 6억6000만원으로 설립된 J사는 2006년까지 영업활동이 거의 없었는데 2007년부터 금융권으로부터 거액을 차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씨는 관련 자료를 근거로 J사 관계자와 사채업자 김모씨를 관계기관에 고소했다. 그러자 상대방도 맞대응했다. 수사 결과, 일부 인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수사는 사인(私人) 간의 고소 부분에 대해서만 이뤄졌고, J사의 거액 차입금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갑자기 사라진 1조원
그렇다면 J사의 신용·여신현황보고서에 기록된 ‘차입금 1조원’의 정체는 무엇일까.
기자는 한국신용평가정보가 발행한 J사의 신용분석보고서와 여신현황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J사는 2007년 12월 960억원(1·2금융권 차입 비율은 각각 52%·48%)을 빌렸다. 그런데 2008년 6월 23일, J사는 1·2금융권으로부터 총 1조1580억원을 빌린 것으로 돼 있다. 차입금의 대부분은 2금융권(93.5%)이었다. 2금융권 어느 회사로부터 얼마를 빌렸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나흘 뒤인 6월 27일, J사는 2금융권에서 빌린 200억원을 갚아 차입금은 1조1380억원이 됐다. 한국신용평가정보는 ‘과다여신·여신급증’을 이유로 J사에 가장 낮은 신용등급인 ‘E등급’ 판정을 내렸다.
이상한 대목은 2008년 8월 5일을 기준으로 작성된 J사의 여신현황보고서에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는 ‘2007년도 여신현황’만 기재돼 있을 뿐, ‘2008년도 여신현황’은 기록 자체가 없다. 2007년 12월 J사가 960억원을 빌린 사실만 적시돼 있고, 2008년도 여신현황은 공란(空欄)으로 남아 있다. 이와 함께 J사의 여신등급은 A등급(소액여신·여신감소)으로 상향됐다. 2008년도 여신현황이 보고서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뭘까.
이상한 대목은 또 나타났다. 3주 후 발급된 또 다른 여신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8월 28일 현재, J사가 금융권으로부터 빌린 돈은 24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1조원이 넘던 차입금이 두 달 만에 24억5000만원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차입금 24억5000만원은 전액(全額) 1금융권에서 빌린 것이고, 2금융권에서 빌린 액수는 ‘0’원이었다.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J사는 두 달 만에 1조원이 넘는 차입금을 거의 다 갚았다는 얘기다. 특히 차입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2금융권 돈은 100% 상환됐다. 8월 28일 당일 J사의 신용등급은 C등급(평균적 여신·여신유지)이었다.
과연 2008년 6월부터 8월 두 달 사이에 J사와 금융기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국내 대기업의 건설계열사를 책임지고 있는 한 기업인은 “자본금 6억원에 불과한 작은 회사가 1조원이 넘는 돈을 금융권으로부터 빌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신용평가정보가 작성한 여신현황보고서가 잘못된 것일까.
이와 관련해 한국신용평가정보 측은 “여신현황은 10~15일 만에 갱신되기 때문에 2008년도 자료는 현재 전산에 남아 있지 않다. 더군다나 여신현황 수치는 우리 회사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전(全) 금융회사의 전산망과 연결돼 있는 전국은행연합회 전산서버에 있는 자료가 여신현황보고서에 그대로 기록되는 것이다”고 했다.
“불법자금인 양 수사기관에 의혹 제기”
기자는 은행연합회 측에 J사의 2008년도 여신현황을 문의했다. 연합회 관계자의 말이다.
“연합회는 개인 및 법인의 여신현황에 대한 자료 5년치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물론 월별 차입금 현황은 남아 있지 않고 해당 연도 12월 말을 기준으로 얼마의 돈이 차입됐는지 그 수치만 남아 있습니다. 이 수치는 은행연합회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거래 금융기관이 입력한 정보를 우리가 통합해서 관리·보관할 뿐입니다. 구체적인 여신현황은 거래 금융기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자는 J사의 실제 소유자라고 밝힌 박모(C건설 대표)씨를 만나 궁금한 사항에 대해 조목조목 물어봤다. 다음은 박(朴)씨와의 일문일답이다.
―J사의 등기부등본에 등재(登載)된 대표이사는 누구입니까.
“제가 운영하는 건설회사 직원 출신입니다. J사의 대주주는 저와 저의 회사입니다.”
―2008년 6월부터 8월 두 달간 J사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독산동 땅을 매입한 것 말고는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다. 2007년 12월 독산동 땅을 사들이면서 계약금을 납부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1000억여 원을 빌렸고 2008년 6월경 PF자금을 일으키면서 차입금이 1500억원 가량 늘어났습니다.”
―한국신용평가정보가 작성한 여신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6월 23일 1·2금융권으로부터 1조1580억원을 빌린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기가 막힐 뿐입니다. 더욱 억울한 일은 독산동 땅에 욕심을 냈던 사람들이 그런 잘못된 자료를 가지고 마치 불법자금인 양 수사기관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용평가정보 회사가 작성한 자료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까.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 여신현황보고서에 기록된 숫자는 은행연합회에 보관돼 있는 전산자료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직원 두 명을 은행연합회에 보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은행연합회도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2008년도 월별 여신현황에 대한 자료는 없고 2008년 12월 기준으로 작성된 차입금 현황만 있습니다.”
박씨는 은행연합회가 2010년 9월 16일 발급한 ‘J사 여신잔액 조회’ 문건을 기자에게 건넸다. 문건에 따르면, 2008년 12월 현재 J사는 우리은행으로부터 80여억원, KB투자증권으로부터 290억원 등 총 370여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돼 있다. 문건에는 2008년 6월부터 8월 사이의 차입금 현황은 없었다.
―조금 전에 2008년 6월경 PF자금을 일으키면서 차입금이 1500여억원이라고 했는데 은행연합회 자료에는 2008년 12월 현재 차입금이 370여억원에 불과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데요.
“프로젝트파이낸싱을 위한 유동성 자금은 차입금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올해 1월부터 사건 眞相 추적해 온 국세청
―현재 J사가 금융권으로부터 빌린 돈은 얼마나 됩니까.
“독산동 땅 매입 자금과 이자, 용역비 등을 합쳐 대략 5400여억원입니다. 건물을 지어 분양이 이뤄져야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는데 착공도 안 한 상태에서 수익을 낼 수는 없지요. 현재 공사는 인허가 단계에 있습니다.”
―2008년도 여신현황보고서에 정체불명의 자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언제 알았습니까.
“올해 5월 무렵 알게 됐습니다. 고소·고발 사건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지요.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수정해 보려고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기관에도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하니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자료가 남아 있으면 수정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요. 만약 그때 1조원이 넘는 불법적인 대출이 확인되면, 제가 자살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1금융권이든 2금융권이든 뭔가 잘못됐습니다. 제가 볼 때 이건 소설입니다.”
―여신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6월 당시 1조원이 넘는 거액이 대부분 2금융권에서 들어온 것으로 돼 있는데 KB투자증권 외에 다른 금융회사와 거래한 적은 없습니까.
“PF자금과 관련해 정상적으로 돈을 빌린 금융권 말고는 없습니다.”
기자는 J사의 여신현황보고서에 잡힌 정체불명의 자금을 취재하던 중, 국세청이 2010년 1월부터 이와 관련해 조사를 진행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무 조사는 J사의 본점(부산 소재) 관할관청인 부산지방국세청이 맡고 있었다.
10개월 동안 진행된 조사 결과에 대해 부산지방국세청에 문의했다. 한 실무 책임자는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현재 최선을 다해 정밀 조사 중이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금천구 지역민들은 30년 넘게 상주(常駐)해 온 군부대의 이전을 요구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들어 부대 이전(移轉)이 가시화되자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던 삼양사는 J사와 “국방부로부터 땅을 매입할 때 곧바로 J사에 매각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땅의 소유권은 2007년 12월 7일 하루 만에 국방부에서 삼양사를 거쳐 J사로 넘어갔다. 국방부와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부대가 도시발전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매각대상이 됐고, 최초 소유자의 환매요청에 따라 기획재정부의 승인으로 최종 매각 처리됐다”고 했다.
브로커의 관심 대상이었던 독산동 땅
독산동 군부대 ‘부지 매각’ 얘기는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나왔다. 매각을 빌미로 사기(詐欺) 사건이 적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땅을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던 것이다.
2007년 12월, 이 땅이 매각되기 전에도 이상한 소문은 나돌았다. 브로커와 사채업자들 사이에서는 “모 인사가 땅을 매입하려고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에게 로비를 했다”, “또 다른 인물이 여권 정치인에게 매각 협력 조건으로 수십억 원의 정치자금을 줬다”는 식의 확인 불가능한 얘기가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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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금천구 독산동 도하부대 약도. |
그런데 이듬해 초부터 잡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독산동 땅’을 사기 위해 일을 추진해 왔던 이(李)모씨가 땅 매입에 실패하자 J사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씨는 2008년 4~5월경 한 지인(知人)으로부터 “사채업자 김(金)모씨가 J사를 통해 7000억~8000억원의 불법자금을 세탁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J사를 의심하던 이씨는 2008년 7월 신용정보회사인 ‘한국신용평가정보’가 작성한 ‘J사 신용분석보고서’와 ‘J사 여신현황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를 접한 이씨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J사가 1조원이 넘는 거액(巨額)을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사실이 보고서에 적시(摘示)돼 있었다. 2000년 자본금 6억6000만원으로 설립된 J사는 2006년까지 영업활동이 거의 없었는데 2007년부터 금융권으로부터 거액을 차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씨는 관련 자료를 근거로 J사 관계자와 사채업자 김모씨를 관계기관에 고소했다. 그러자 상대방도 맞대응했다. 수사 결과, 일부 인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수사는 사인(私人) 간의 고소 부분에 대해서만 이뤄졌고, J사의 거액 차입금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갑자기 사라진 1조원
그렇다면 J사의 신용·여신현황보고서에 기록된 ‘차입금 1조원’의 정체는 무엇일까.
기자는 한국신용평가정보가 발행한 J사의 신용분석보고서와 여신현황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J사는 2007년 12월 960억원(1·2금융권 차입 비율은 각각 52%·48%)을 빌렸다. 그런데 2008년 6월 23일, J사는 1·2금융권으로부터 총 1조1580억원을 빌린 것으로 돼 있다. 차입금의 대부분은 2금융권(93.5%)이었다. 2금융권 어느 회사로부터 얼마를 빌렸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나흘 뒤인 6월 27일, J사는 2금융권에서 빌린 200억원을 갚아 차입금은 1조1380억원이 됐다. 한국신용평가정보는 ‘과다여신·여신급증’을 이유로 J사에 가장 낮은 신용등급인 ‘E등급’ 판정을 내렸다.
이상한 대목은 2008년 8월 5일을 기준으로 작성된 J사의 여신현황보고서에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는 ‘2007년도 여신현황’만 기재돼 있을 뿐, ‘2008년도 여신현황’은 기록 자체가 없다. 2007년 12월 J사가 960억원을 빌린 사실만 적시돼 있고, 2008년도 여신현황은 공란(空欄)으로 남아 있다. 이와 함께 J사의 여신등급은 A등급(소액여신·여신감소)으로 상향됐다. 2008년도 여신현황이 보고서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뭘까.
이상한 대목은 또 나타났다. 3주 후 발급된 또 다른 여신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8월 28일 현재, J사가 금융권으로부터 빌린 돈은 24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1조원이 넘던 차입금이 두 달 만에 24억5000만원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차입금 24억5000만원은 전액(全額) 1금융권에서 빌린 것이고, 2금융권에서 빌린 액수는 ‘0’원이었다.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J사는 두 달 만에 1조원이 넘는 차입금을 거의 다 갚았다는 얘기다. 특히 차입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2금융권 돈은 100% 상환됐다. 8월 28일 당일 J사의 신용등급은 C등급(평균적 여신·여신유지)이었다.
과연 2008년 6월부터 8월 두 달 사이에 J사와 금융기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국내 대기업의 건설계열사를 책임지고 있는 한 기업인은 “자본금 6억원에 불과한 작은 회사가 1조원이 넘는 돈을 금융권으로부터 빌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신용평가정보가 작성한 여신현황보고서가 잘못된 것일까.
이와 관련해 한국신용평가정보 측은 “여신현황은 10~15일 만에 갱신되기 때문에 2008년도 자료는 현재 전산에 남아 있지 않다. 더군다나 여신현황 수치는 우리 회사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전(全) 금융회사의 전산망과 연결돼 있는 전국은행연합회 전산서버에 있는 자료가 여신현황보고서에 그대로 기록되는 것이다”고 했다.
“불법자금인 양 수사기관에 의혹 제기”
기자는 은행연합회 측에 J사의 2008년도 여신현황을 문의했다. 연합회 관계자의 말이다.
“연합회는 개인 및 법인의 여신현황에 대한 자료 5년치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물론 월별 차입금 현황은 남아 있지 않고 해당 연도 12월 말을 기준으로 얼마의 돈이 차입됐는지 그 수치만 남아 있습니다. 이 수치는 은행연합회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거래 금융기관이 입력한 정보를 우리가 통합해서 관리·보관할 뿐입니다. 구체적인 여신현황은 거래 금융기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자는 J사의 실제 소유자라고 밝힌 박모(C건설 대표)씨를 만나 궁금한 사항에 대해 조목조목 물어봤다. 다음은 박(朴)씨와의 일문일답이다.
―J사의 등기부등본에 등재(登載)된 대표이사는 누구입니까.
“제가 운영하는 건설회사 직원 출신입니다. J사의 대주주는 저와 저의 회사입니다.”
―2008년 6월부터 8월 두 달간 J사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독산동 땅을 매입한 것 말고는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다. 2007년 12월 독산동 땅을 사들이면서 계약금을 납부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1000억여 원을 빌렸고 2008년 6월경 PF자금을 일으키면서 차입금이 1500억원 가량 늘어났습니다.”
―한국신용평가정보가 작성한 여신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6월 23일 1·2금융권으로부터 1조1580억원을 빌린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기가 막힐 뿐입니다. 더욱 억울한 일은 독산동 땅에 욕심을 냈던 사람들이 그런 잘못된 자료를 가지고 마치 불법자금인 양 수사기관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용평가정보 회사가 작성한 자료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까.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 여신현황보고서에 기록된 숫자는 은행연합회에 보관돼 있는 전산자료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직원 두 명을 은행연합회에 보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은행연합회도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하더군요. 2008년도 월별 여신현황에 대한 자료는 없고 2008년 12월 기준으로 작성된 차입금 현황만 있습니다.”
박씨는 은행연합회가 2010년 9월 16일 발급한 ‘J사 여신잔액 조회’ 문건을 기자에게 건넸다. 문건에 따르면, 2008년 12월 현재 J사는 우리은행으로부터 80여억원, KB투자증권으로부터 290억원 등 총 370여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돼 있다. 문건에는 2008년 6월부터 8월 사이의 차입금 현황은 없었다.
―조금 전에 2008년 6월경 PF자금을 일으키면서 차입금이 1500여억원이라고 했는데 은행연합회 자료에는 2008년 12월 현재 차입금이 370여억원에 불과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데요.
“프로젝트파이낸싱을 위한 유동성 자금은 차입금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올해 1월부터 사건 眞相 추적해 온 국세청
―현재 J사가 금융권으로부터 빌린 돈은 얼마나 됩니까.
“독산동 땅 매입 자금과 이자, 용역비 등을 합쳐 대략 5400여억원입니다. 건물을 지어 분양이 이뤄져야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는데 착공도 안 한 상태에서 수익을 낼 수는 없지요. 현재 공사는 인허가 단계에 있습니다.”
―2008년도 여신현황보고서에 정체불명의 자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언제 알았습니까.
“올해 5월 무렵 알게 됐습니다. 고소·고발 사건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지요.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수정해 보려고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기관에도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하니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자료가 남아 있으면 수정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요. 만약 그때 1조원이 넘는 불법적인 대출이 확인되면, 제가 자살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1금융권이든 2금융권이든 뭔가 잘못됐습니다. 제가 볼 때 이건 소설입니다.”
―여신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6월 당시 1조원이 넘는 거액이 대부분 2금융권에서 들어온 것으로 돼 있는데 KB투자증권 외에 다른 금융회사와 거래한 적은 없습니까.
“PF자금과 관련해 정상적으로 돈을 빌린 금융권 말고는 없습니다.”
기자는 J사의 여신현황보고서에 잡힌 정체불명의 자금을 취재하던 중, 국세청이 2010년 1월부터 이와 관련해 조사를 진행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무 조사는 J사의 본점(부산 소재) 관할관청인 부산지방국세청이 맡고 있었다.
10개월 동안 진행된 조사 결과에 대해 부산지방국세청에 문의했다. 한 실무 책임자는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현재 최선을 다해 정밀 조사 중이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