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盧武鉉 차명계좌의 진실은? : 월간조선

“현재 진행 중인 노무현(盧武鉉)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는 종료될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원인과 경위에 대해서는 검찰과 경찰이 조사 중이며, 신속히 규명해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당일 김경한(金慶漢) 당시 법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불법자금 수수 의혹 사건’의 중단을 선언했다. 며칠 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공소권 없음’을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마침내 ‘망각의 강’에 수장(水葬)됐다. “국민에게 사건의 진상을 소상히 알려드리겠다”던 정부당국은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 외에 그의 ‘혐의’에 대해서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盧武鉉 차명계좌를 둘러싼 새로운 국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던 이 사건이 조현오(趙顯五) 경찰청장의 ‘동영상 강연 발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3월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 청장이 경찰 기동대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노무현 차명계좌’를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은 조 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ㆍ고발했다.

이 사건은 고소ㆍ고발인의 의도와 달리 ‘노무현 자살 사건’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이인규(李仁圭) 전 대검(大檢) 중앙수사부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는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니다”고 언론에 밝히면서 의구심은 한층 더해졌다. 이인규 전 부장은 “정상문(鄭相文)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차명으로 관리하던 계좌들이 사실은 노 대통령 쪽으로 흘러들어간 자금이니까 차명계좌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노무현 차명계좌’ 논란은 오는 10월 국정감사에서 정치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與野) 정치권은 현재 국정감사를 앞두고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 증인 채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차명계좌와 관련해 당시 검찰 수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사역할을 했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다. 박연차(朴淵次)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정상문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지인(知人) 명의의 차명계좌에 보관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12억5000만원에 대해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한 돈”이라고 진술했다.

“드러난 차명계좌는 없다”

2010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이 고인의 투신 장소인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열렸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 전 비서관이 스스로 ‘노 전 대통령 퇴임 후를 위한 돈’이라고 밝힌 만큼 노 전 대통령의 인지(認知) 여부와 상관없이 차명계좌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전직 검찰 고위관계자는 “현재까지 드러난 차명계좌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이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영웅 심리로 공연히 그러는 거지. 한때 소문이 무성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도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전혀 없어요. 노 전 대통령이 당선축하금을 박연차 회장에게 맡겨 놓고 꺼내 썼다는 얘기가 있는 모양인데,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박연차 게이트’를 취재했던 한 중앙일간지 기자도 “취재한 결과, 차명계좌는 없는 걸로 파악됐다”며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이 이상한 돈의 흐름을 봤을 수는 있겠지만 직접 확인하거나 수사해도 처벌하기가 어려워 아예 수사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이상한 돈의 흐름을 차명계좌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고 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임채진(林采珍) 변호사는 차명계좌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에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나. 묻지 말라”고 했다. “없다”나 “있다”가 아니라 “묻지 말라”는 것이어서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당시 수사 상황을 알고 있는 한 검찰 관계자는 “박연차 회장의 홍콩 계좌에서 500만 달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에게 들어갔는데, 이것을 노무현 차명계좌라고 의심할 수는 있지만 수사가 중단돼 추적을 못했다”고 했다.

2008년 11월부터 시작된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하이라이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불법자금’이었다. 2009년 4월, 검찰이 박연차 회장의 홍콩 소재 유령회사였던 ‘APC’의 비자금 입출금 내역을 확보하면서 수사의 칼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정면을 향했다.

당시 검찰은 박연차 회장이 APC 신한은행 홍콩지점 계좌를 통해 2003년 7월부터 2007년 12월(APC가 해산된 시점)까지 비자금 6746만 달러를 조성했고, 이 계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500만 달러,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에게 40만 달러,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 250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와 별도로 검찰은 박연차 회장이 2007년 6월 말 정상문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청와대 관저로 미화(美貨) 100만 달러가 담긴 두 개의 돈가방을 전달한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박연차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100만 달러는 노 전 대통령이 달라고 해서 줬고, 500만 달러는 노 전 대통령 요청으로 ‘애들(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600만 달러는 포괄적 뇌물”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차명계좌’의 발언 당사자인 조현오 경찰청장을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식 임명했다.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박연차 게이트’는 절정에 달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확실시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검찰은 “권양숙 여사와 건호씨는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참고인”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에게 전달된 박연차 회장의 돈 ‘600만 달러’를 노 전 대통령이 수수(收受)한 ‘뇌물’로 판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조카사위가 받은) 500만 달러는 퇴임 후 알게 됐고, 100만 달러는 집사람(권양숙)이 나 몰래 받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노 전 대통령이 김해 봉하마을 사저(私邸) 뒤편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野圈)은 이명박(李明博)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와 여권(與圈)을 ‘살인범(殺人犯)’으로 몰아세웠다. 친노(親盧)세력도 전국적인 추모분위기를 조성하며 결집에 나섰다. 그러잖아도 초기 정부 인사 실패에 광우병 괴담이 겹쳐 휘청대던 여권은 ‘피의자의 자살’이라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뽑혀 나오던 ‘노무현 의혹’은 덮여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포괄적 뇌물 수수 의혹 사건을 재고(再考)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조 청장 발언이 정치 쟁점화되면서 수사 재개 또는 특검(特檢)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홍준표(洪準杓)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 여당에서 이런 주장이 제기되자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이런 입장을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수사 재개에 반대하고, 특검 도입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가 절반을 넘긴 이 시점에 특검 운운하는 것은 퇴행적인 정치행태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에 대해 국민과 유가족의 상심이 헤아릴 수 없이 컸습니다. 노 전 대통령 관련 수사를 중단할 때는 사실상 국민적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닙니까. (차명계좌) 문제가 세간의 중심적 화제가 되는 것은 국민 통합의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공정(公正)사회’, ‘국민통합’을 화두로 내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의 당사자인 조현오 청장 내정자를 경찰청장에 정식 임명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두 개의 또 다른 비자금 계좌”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총괄지휘자였던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왼쪽)과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 이 전 부장은 최근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은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니다”고 했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인사들은 ‘노무현 차명계좌’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사실관계를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익명(匿名)을 요구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과 박연차 회장 간 금전 거래를 법적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차명계좌 존재 여부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의심스러운 계좌가 5~6개가량 더 있는 걸로 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수 개의 계좌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수사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주성영(朱盛英)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추가 비자금 조성 의혹이 있는 두 개의 계좌를 공개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까지 한 마당에 ‘박연차 비자금 조성 의혹’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주성영 의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검찰이 확인한 박연차 회장의 홍콩 유령회사 APC 비자금 계좌(신한은행 홍콩지점 계좌)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두 개의 계좌가 있습니다. APC의 UBS 스위스 계좌에서 태광실업의 미국 현지법인 태광아메리카의 J씨 계좌로 1200만 달러가 입금됐고, APC의 홍콩상하이은행 홍콩계좌에서 태광아메리카 BANKER’S TRUST 계좌로 2550만 달러가 입금된 정황이 있습니다. J씨와 태광아메리카 BANKER’S TRUST 두 개의 계좌에 총 3750만 달러가 입금된 것입니다. 이 돈은 박연차 회장이 불법으로 조성해 해외로 반출한 자금이거나 해외에서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일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철저히 수사해 국민 앞에 모든 의혹을 밝혀야 합니다.”

주성영 의원의 의혹 제기에 이귀남(李貴男) 법무장관은 “수사 단서가 되면 내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계좌에 대해 수사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 주 의원은 “의혹을 제기한 후 법무부에 진행상황을 체크해 봤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에서 충분히 조사했고, 확인된 것이 없다’는 내용의 두 줄짜리 답변만 보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수사가 끝났다는 이유로 검찰은 내가 제기한 사항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기관의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이다.

“박연차 회장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흥미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와의 사적(私的) 관계에 대해 몇몇 중요한 사실들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딸이 매입한 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의 고급주택이 한 사례입니다. 박 회장의 진술기록을 공개하면 정치권에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기 직전,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미국 뉴저지주(州) 허드슨클럽의 고급주택을 매입한 사실이 터져 나왔다. 정연씨가 박연차 회장에게서 받은 40만 달러를 주택 매입 자금으로 사용한 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에 따르면, 정연씨는 2007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어머니 권양숙 여사로부터 20만 달러를 송금받았다. 이와 별도로 2007년 6월 권양숙 여사는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40만 달러는 계약금이라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주택 매입자금(160만 달러)의 잔금으로 추정했다. 검찰은 100만 달러가 자녀의 집을 사는 데 사용됐다면 이 돈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검찰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정연씨와 계약서상의 소유주 등에게 계약서 사본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실체적 진실은 미궁에 빠져버렸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 분명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박연차 회장의 돈으로 미국의 고급주택을 매입하는 등 비(非)정상적인 자금을 받아 썼다는 사실이다. 과거 전두환(全斗煥), 노태우(盧泰愚)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수수한 불법자금은 국고(國庫)에 전액 환수됐고 현재까지 당사자들은 미납된 추징금에 대해 납부 의무를 지고 있다. 공정사회를 주창(主唱)하는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들어간 불법자금을 회수했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현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사실상 불공정(不公正)에 가까운 ‘관용’을 베풀고 있다.

“내가 그 사람 이름 밝히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저지주 소재 고급주택 허드슨클럽.

기자는 ‘노무현 차명계좌’ 논란을 취재하면서 실증적인 차명계좌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조현오 경찰청장의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 이전부터 여권의 소수 핵심인사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편한 진실’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

고급 정보(情報)에 밝은 한 여당 의원은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10월 경남 양산 보궐선거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유력 친노(親盧)인사가 야당 후보로 나온다는 얘기가 무성(茂盛)했죠. 실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씨를 넣으면 한나라당 박희태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여권의 한 핵심인사가 ‘친노인사는 절대 못 나온다. 그가 출마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기록이 먼지를 털고 세상에 기어나올 것이다. 차명계좌를 포함해 여러 건이 터진다’고 얘기했습니다.”

“핵심인사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느냐”는 기자의 집요한 요청에 여당 의원은 “내가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히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며 끝까지 함구했다.

최근 여권 최고위층을 만난 한 인사는 이렇게 전했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한 측근을 만났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대해 말하더라고요. 그때는 무심코 지나갔는데 조현오 경찰청장의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지난해 대통령 측근이 언급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최근에 만난 여권 핵심인사의 말은 더욱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는 ‘10만원짜리 수표를 추적하다가 정체불명의 비자금을 발견했다고 들었다. 규모는 수십억 원대라고 한다. 검찰이 비자금 계좌를 발견한 사실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알았고, 이로 인해 자살 전날 밤 고민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한나라당이 특검을 발의하면 진실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특검 카드를 가지고 정치권 동향을 살피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고위층 인사가 언급한 비자금 관련 발언이 검찰수사에서 확인된 사항인지는 불투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과 민주당을 압박하려는 역공작일 수도 있다.

여권 최고위층의 발언과 조현오 경찰청장의 발언에는 ‘10만원짜리 수표’와 ‘거액의 비자금’이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수표와 관련해 당시 검찰 수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이 2008년 노 전 대통령 퇴임을 전후로 발행된 지 오래된 10만원권 수표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여권 최고위층 인사의 말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하기 전날 밤 과연 어떤 고민을 했을까. 그날 밤 봉하마을 사저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인사의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하기 하루 전 2009년 5월 22일 밤,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심하게 다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권 여사는 사저에 묵지 않은 걸로 압니다. 이 때문에 다음 날 아침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진 노무현 대통령이 오전 8시쯤 양산에 있는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권양숙 여사는 병원에 뒤늦게 도착했습니다.”

한명숙, 이해찬, 김두관, 안희정 등 친노(親盧) 인사들이 2009년 8월 노 전 대통령 100재에 참석한 뒤 비석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李明博 대통령 자신이 걸림돌”

‘노무현 차명계좌’는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정치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여권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분석가는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록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발력이 큽니다. 향후 총선(總選)이나 대선(大選) 때 친노(親盧)세력 등 야권이 결합할 조짐이 보이면 여권은 ‘노무현 비자금 카드’를 써먹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를 공개할 때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언론이 취재를 통해 세상에 알리지 않는 이상 여권이 먼저 흘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림돌이 있어요. 이명박 대통령 자신입니다. 2007년 대선 때 거론된 BBK 사건이나 도곡동 땅 소유주 논란 그리고 최근 문제가 됐던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등이 명쾌하게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죠.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비자금 카드를 활용하는 데는 제약이 있어요. 청와대가 ‘노무현 차명계좌’에 대한 특검을 반대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압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듯 친노(親盧) 측의 공세가 거세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비서실장’으로 불리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만약 차명계좌가 있었다면 저승사자처럼 전직 대통령을 도덕적으로 죽이려고 대들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나 홍만표 수사기획관 이런 사람들이 언론에 안 흘리고 가만히 놔뒀을까. 아주 단순한 사안인데 이것을 굳이 특검을 하고 국회에서 입법절차를 밟고, 특검과 특검보를 임명하고 이렇게 시간을 끌 이유는 없다”고 반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은 “차명계좌는 절대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여권의 몇몇 핵심인사들이 공유하고 있는 ‘노무현 비자금’ 의혹에 상당히 억울해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노무현 차명계좌’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들이 ‘누명을 벗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들이 먼저 검찰 수사기록의 완전 공개를 요구하거나 정치권에 특검을 요구하면 될 텐데 아직 그런 움직임이 없다.⊙

▣ 盧武鉉 전 대통령 검찰 수사 일지

[2008년]
12월 4일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 형 건평씨 구속
12월 22일     검찰, 세종증권 비리의혹 중간 수사결과 발표

[2009년]
3월 14일     검찰, 박연차 회장 정관계 로비의혹 본격 수사
3월 말~4월 초   노 전 대통령 600만 달러 수수 혐의 언론에 보도
3월 26일     검찰, 이광재 민주당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3월 27일     검찰, 박진 한나라당 의원 조사
3월 28일     검찰, 서갑원 민주당 의원 조사
4월 초     검찰, 박연차 회장 홍콩 현지법인 APC 계좌자료 확보
4월 6일     검찰, 박관용 전 국회의장 소환조사
4월 8일     검찰,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구속영장 청구
4월 10일     검찰,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씨 소환조사
4월 11일     검찰, 권양숙 여사 참고인 소환조사
4월 12일     검찰,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 ‘500만 달러 의혹’ 참고인 조사
4월 15일     검찰, 라응찬-박연차 의문의 50억원 수사
4월 22일     검찰, 노 전 대통령에게 서면질의서 발송
4월 25일     검찰, 노 전 대통령 답변서 수령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출두
5월 9일     권양숙 여사, 100만 달러 사용처 검찰에 이메일 제출
5월 11일     검찰,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 부부 소환조사
5월 12일     검찰, 정연씨 박연차 회장 돈 40만 달러 추가 수수 정황 포착
5월 23일     노 전 대통령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