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40대 총리와 2012 대선 - 金台鎬, 大選街道에 변수가 될 것인가? : 월간조선

김태호 전(前) 경남지사가 총리로 내정됐을 때, 언론은 ‘40대 세대교체 깜짝쇼’로 표현했다. 많은 사람이 적잖이 놀랐다. 김태호 전 지사가 지난 6ㆍ2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사 출마를 포기했을 때 사람들은 “잘 풀리면 보궐선거에 출마해서 중앙에 진출할 것” “운 좋으면 장관직에 기용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잘 풀려도 너무 잘 풀렸고, 운이 좋아도 ‘이보다는 더 좋을 수 없다’가 되었다. 모든 것이 예상치를 웃돌았고, 장사로 치면 대박이고 처음 산 로또복권이 1등에 그것도 혼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김태호의 기용에 대해 기자들이 물었을 때 나는 짧게 답했다. “잘했으면 정말 좋겠다”고. 이것은 진심이다. 정권교체에 정치적 목표를 두었던 나로서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 뿌리째 흔들렸던 법치(法治)를 바로 잡고 땀 흘린 사람,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회복하는 사회로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좀 걱정스럽다. 왜냐하면 우선 나부터가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여의도 밥을 먹은 지 6년차 정치인이고, 기자로서 정치권에 들어오기까지 한 10년 동안 시사칼럼부터 취미인 야구칼럼까지 종류 불문하고 열심히 썼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주목이 내 직업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니…. 김태호 총리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이강두(李康斗) 전 의원의 보좌관, 여의도연구소 연구원, 도(道)의원, 군수, 지사로 이르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간 경남에서 꽤 인기가 있는 정치인이라는 간단한 이력이다. 물론 서양사람도 굽어볼 수 있을 정도로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누구나 살가운 사람이라고 일컬을 정도의 친화력, ‘겸손하고 사람이 됐다’는 여러모로 괜찮은 인물평을 최근에 들었다.

그렇지만 과연 총리감일까?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그 답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를 언론을 통해서라도 간접 경험을 한 적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은 “누구셔?”에 대한 답이다.

“누구셔?”

그런 점에서 그에 대한 김문수(金文洙) 경기지사의 언급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김태호 후보자에 대해 “예측할 수 없고, 검증되지 않았고, 신뢰할 수 없는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김문수 지사의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보자.

“갑자기 자고 나면 어! 이 총리가, 이 사람이 누구지? 갑자기 그냥 이게 누군지…. 예측이 전혀 안된다. 그러니까 저게 또 몇 달 갈지, 과연 청문회는 통과할 수 있는 것인지, 언제 그만둘지, 저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저 사람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떤 과거의 경력을 쌓아서 어떻게 검증을 받아서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서 … 국민들의 신뢰와 예측과 검증된 역량에 대한 믿음이 없다. 중국처럼 다음 지도자를 예정해 놓은 예측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늘 할 말하는 김문수 지사는 한마디 더 했다. “언제 해 처먹는지, 뒤로 뭘 빼먹는지, 다음에 저 사람이 그만두고 자살을 할지, 총 맞아 죽을지 정말 모른다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한나라당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지했던 내 주변사람들도 비슷한 걱정을 했다.

“노무현 정권 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아마추어리즘이었다. 나라를 자신들의 허접한 이상(理想)의 실험실로 만들었던 것이었다. 현장에 처음 나온 사람들이 집안에 물 샌다면 장판 뜯고 시멘트 바닥 뜯고 여기가 아닌갑다~하고 그냥 가버린 행태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슷하지 않은가?”

“총리는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들과도 다르고 장관과도 다르다. 연륜(年輪)과 경험과 내공이 있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연륜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젊다. 경험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얇다. 내공을 이야기하기에는 말 그대로 할 ‘말’이 없지 않은가?”

“이제 신파극은 지겹다”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꼴의 인생스토리? 이젠 지겹다. 소 장수 아들에 가난했던 어린 시절? 모든 대통령 후보자의, 높이 올라간 정치인들의 고정곡(固定曲)이다. ‘왜 우리 정치는 이렇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백 투 더 패스트(Back to the past)인가’ 싶어 짜증스럽다.

젊은 40대 총리라면 좀 다른 환경에서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아가는 과정의 진부한 스토리가 그대로이다. 정치권의 주군이니 가신이니 안가니 하는 단어에 정말 신물나는데, 왜 40대 세대교체 총리의 깜짝쇼 주인공 사연은 여전히 그 옛날 유랑극단의 신파극(新派劇)인지 모르겠다. 교체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달라진 것이 없는데 무슨 교체인가?”

상당히 신랄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했다. 왜 우리 정치만 고여 있는 물인가? 세상은 급물살을 타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30년 전의 유행가를 리메이크해서 아이돌 걸그룹에 부르게 하는 것인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 이야기의 요점이었다.

파올로 코엘료의 작품 <11분>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술집에서 일하는 것과 다른 직업의 차이점? 다른 직업은 일해 본 경험과 햇수가 많을수록 급여가 올라가지만 술집 아가씨의 일은 그 반대다. 화류계(花柳界)에 나온 경험이 전무(全無)할 때 그 값이 최고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나, 한국 정치판도 비슷하다. 원대한 꿈을 안고 정당에 들어왔다. 지난한 세월 온갖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으며 정권쟁취를 위해 바친 이른바 간단치 않은 부상을 당한 정치인은 상이(傷痍)용사 대접도 받기 어렵다. 대신에 비(非)정치적인 분야에서 ‘정치의 때를 묻히지 않은’ 포장이 채 뜯어지지 않은 ‘참신한’ 사람들은 ‘인재영입’이라는 구매조건 아래 정치권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니 사고초려(四顧草廬)를 하며 여야(與野) 불문하고 모셔오기에 정신이 없다.

정운찬 총리는 왜 실패했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10일 정운찬 전 총리가 참석한 마지막 국무회의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기에 앞서 정운찬 전 총리를 위로하고 있다.

김태호의 전임자인 정운찬(鄭雲燦) 전 총리도 그 출발은 화려했다. ‘케인지언 아이돌’로서 정치권은 그를 주저 없이 ‘대권주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나라당과 ‘케인지언 아이돌’은 그 접점(接點)을 참으로 찾기 어려움에도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정당은 정책을 묻지 않는다’라는 희한한 전통이 이 한국정치에는 있으니 말이다. 물론 민주당은 더 했다.

그 정운찬 총리, 한때 휘황찬란한 무대 위에 세워졌다가 어느 날 맥없이 내려왔다. 이제 정치권에서는 웬만해서 그를 대권주자 반열에 꼽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커다란 인기를 예고했던 ‘케인지언 아이돌’은 왜 실패했을까?

그것은 바로 정계(政界)와 연예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연예계는 정계보다 훨씬 더 앞서 있다. 인기를 먹고 사는 간단치 않은, 슬픈(?) 직업이라는 점에서 정치와 연예계는 닮아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우리 정치판에서는 아이돌이 클 수가 없다. 왜? 열정적인 기획사, 매니저가 없기 때문이다.

탤런트 노주현씨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뜻깊은 지적을 했다. 즉 “젊은 연예인들의 열정이나 끈기가 예전 같지 않아 아쉽다”는 것이었다. “대신 최근 들어 이른바 연예기획사의 프로정신은 대단하다”고 씁쓸하게 덧붙였다. 가만히 보면 우리 시대의 아이돌, 이른바 걸그룹이나 꽃미남 그룹들은 철저히 기획사의 관리감독 그리고 전략 아래 만들어지고 키워지고 성공한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하기는 최근 들어 정치 역시 ‘대중적 이미지’와 ‘미모는 최고의 소개장이자 추천서’라는 말이 들어맞는 듯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는 하드코어이다. 예전에는 세(勢)와 돈으로 정치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철저하게 ‘개인기’가, 즉 ‘개인적 능력’이 밑받침한다. 돈이고 세가 있어도, 개인기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순진한 생각과 지극히 낙천적인 시각으로 정치무대에 올라선 정운찬 총리에게는 치열하게 살아남아야겠다는 개인기가 부족했다. 게다가 치밀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창 먹고 커야 할 아이돌 소녀들을 방울토마토로 연명케 하는 비정한 기획사도 그의 뒤에는 없었다. 서울대 총장의 연장선에서 어찌어찌해 보다가 쓰라린 고배(苦杯)를 들었던 ‘케이지언 아이돌’이 정운찬 총리가 아니었나 싶다. 더 좋은 시절이 정치에 온다면? 선량한 사람들이 권력을 사이좋게 나눠 갖자고 양해각서를 체결한다면 그는 성공한 총리가 됐을 수도 있다.

김태호와 김문수

김문수 경기지사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처절한 선거전 끝에 승리, 한나라당의 체면을 세웠다.

그렇다면 김태호 후보자는 어떠할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오로지 신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중앙에서 잘 모르는 사람이기에 발탁되었다. 게다가 혁혁한 공로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김문수 경기지사의 발언에 대해 김태호 후보자는 “중국과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국민이 선택하고 평가하고 뽑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총리는 선출직이 아니라 지명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태호 전 지사를 세대교체용 젊은 총리로 ‘지명’했다.

왜 김태호를 지명했는지에 대해 ‘48세 젊은 총리’ 외에 이야기가 없다. 공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오랫동안 텃밭이라고 하는 경남에서 졌다. 그것도 참담하게. 그 옛날 한나라당이 다수당(多數黨)의 힘으로 해임시켰던 김두관(金斗官) 전 행자부 장관에게 이명박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던 이달곤(李達坤) 후보가 참패했다. 치욕적인 패배였다. 만일 김태호 전 지사가 ‘당을 위해’ 3선에 도전했다면 ‘김두관 경남지사’가 가능했을까? 그의 불출마선언에 대해 ‘정치적 야망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도 한나라당 안에서 적지 않았다. 그는 책임져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

반면 김문수 지사는 상당히 고민했던 것 같다. 자신도 일찌감치 대권(大權)의 꿈을 갖고 있건만 최종적으로 경기도지사 재(再)도전을 결정했다. 대권가도(街道)까지 2년을 버틸 자금 부족부터 당내 입지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자신으로 인해 경기도지사 자리를 내줄 경우에 대한 책임감이 그를 끝까지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결과 김문수 지사는 처절한 선거운동을 거쳐 승리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체면을 지켜줬다. 그는 재선 경기도지사가 됐다. 그러나 불출마를 선언하고 한나라당의 텃밭은 내준 김태호 전 지사는 ‘총리 후보자’가 됐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해도 좀 불공평하지 않은가?

치열함ㆍ끈끈함이 없는 이명박 사람들

이명박 대통령이 어느 날 말했다고 한다. “왜 내게는 이광재(李光宰)나 안희정(安熙正)이 없는가?”라고 말이다. 그 답은 이명박 대통령만 모르고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광재, 안희정은 서로에게 뜨거운 동지였다. 그 지나친 뜨거움에 국민들은, 우리 역사는 1도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과연 동지가 있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시절 현장에서 일할 일꾼들을 모집했다가 해체했던 것처럼, ‘정치일꾼’들을 이용해 정치를 해 왔다. 경선(競選)에서는 안국팀을 부렸지만, 청와대수석들은 하버드와 코넬 출신으로 구성하는 식으로, 그때그때 ‘유동성이 뛰어난 팀’을 운영했다. CEO로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정치는, 국정(國政)은 기업경영과는 다르다. 정치는 이윤이나 효율성을 잠시 제쳐놓고 손해를 감수하고 때를 기다리는 일이 적잖이 있다. ‘노짱’과 노사모의 관계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무슨 일이든 감수하는 과열된 동지적 관계는 국민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 점을 알기에 ‘쿨한 인사’를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이명박 대통령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리더십의 요체는 ‘정확한 상벌(賞罰)’운용이다. 잘한 사람, 땀 흘린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답하고 사고 친 사람은 엄히 책임을 묻는 상벌체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운 좋은 사람’이나 ‘로또 맞은 사람’ ‘회색지대에 안주했던 온유한 이들’이 VIP초대장을 들고 주변에 있다. 맨발로 전장(戰場)을 걸어본 일이 없고 적이 던진 돌에 얼굴을 맞아 피 흘리고 찢어진 적도 없다. 처절함이 없고 치열함은 물론이고, 함께한 가슴 사무친 세월도 없기에 대통령께 감히 ‘노(No)’라고 할 이유가 없다. 과거를 공유(共有)하지 않았기에 무엇이 예스(Yes)이고 무엇이 노(No)인지를 헷갈릴 수도 있다.

김태호의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 ‘노(No)라고 할 수 있는 총리’가 될 때이다. 대통령을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서, 내일 총리를 그만두어도 좋다는, 이명박 정권의 소모품이 되어도 좋다는 마음을 가질 때 그는 성공할 수 있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면 살 수 있다.

그는 이 정권을 만드는 데 특별한 공(功)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아, 총리감!”이라고 할 만한 경륜과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니다. ‘새로 발매한 정치상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국시장’에 선을 보였으니 그는 확실히 보답하고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행운이 아니라는 것, 그가 로또 맞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MB매니지먼트, 즉 MB기획사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김태호의 앞날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운도 때로는 실력이 될 수 있다. 그는 바닥부터 올라온 자수성가형(自手成家型) 인물이라는 점이 최대강점이다. 시골출신이라는 점도 그렇다. 선거를 여러 차례 겪었던 점도 유리하다.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되는 영남지방이라는 비아냥도 있으나 모든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절망과 슬픔, 서러움을 경험한다. 그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곱게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는 점, 우직함을 밑천으로 도전했던 수차례 선거, 시골출신의 끈기와 불굴의 의지로 ‘죽기 살기’로 해본다면 많은 사람이 그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곁이 되어 줄 것이다.

김태호의 성공은 가수 ‘비’의 성공과 흡사할 수 있다. ‘비’는 기획사의 작품이지만 오디션을 거쳤다. 시골출신의 도전정신과 끈기로 주변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고 한다. 눈이 작고 못생겨서 쌍꺼풀 수술을 고민했다고 하지만 월드스타가 된 뒤 그의 동양적 외모는 빛을 발했다.

김태호도 ‘여의도의 비’가 될 수 있다. 그가 정말로 기획사의 연습생격인 ‘인턴총리’에 머물지 않고 제 몫을 하겠다는 치열함으로 일한다면 ‘노바디 김태호’는 ‘섬바디 김태호’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에게 공직자로서의 기본자세와 공직에 대한 헌신, 정치인으로서 용기, 시대정신을 읽는 눈이 있을 경우의 얘기다. 공직에 대한 인식이 허술하다면, 총리자리를 즐기는 한량(閑良)총리가 된다면, 행사용 총리로서 얌전히 ‘대독(代讀)총리’에 만족한다면, 그의 하늘에는 태양은 물론 별도 달도 뜨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수없이 배신을 당하고도 여전히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총리라는 자리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정치인 김태호’에 대한 희망을 주어야만 한다.

MB, 정권 再창출해야 ‘성공한 대통령’ 가능

지난 6월 29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회 찬반투표를 앞두고 박근혜 의원이 반대 토론을 하고 있다.

김태호의 등장은 여의도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혹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절대로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대권(大權)을 넘길 수 없다는 표시”라고 말한다. “사적(私的)인 것이 정치적인 말이다”라는 말은 두 사람 사이에도 통용된다.

두 사람은 서로 개인적인 감정의 앙금을 털어 버리기가 어려운 관계이다. 게다가 세종시 문제를 놓고 두 사람은 ‘루비콘강을 건넜고 주사위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경선에서 날 선 공격이나 정권교체 후의 공천(公薦)갈등을 넘어서 정책적 반목이 마침내 비등점(沸騰點)을 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까지 나섰다는 것은 친박계 의원들에 대한 확실한 표단속인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이혼도장’을 찍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정치, 반목의 정치, 상생(相生)과 공생(共生)을 거부하는 ‘독자생존의 정치’의 포문(砲門)을 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권 재(再)창출에 빨간신호등이 켜진 것이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에게 불안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해야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보적인 박근혜 주자의 틈새를 보았음이 틀림없다. 김태호는 박근혜와 많은 부분이 겹치는 ‘대체재(代替財)’이다. 김 후보자는 영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지 관리에 잠재력이 있다. 1997년처럼 ‘9룡(龍) 후보 시대’를 재현한다면 박근혜의 기반을 충분히 잠식할 수 있는 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위기

당 대표 시절 진영(왼쪽), 김무성(오른쪽) 의원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박근혜 의원.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박 전 대표의 곁을 떠났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위기는 경북 달성군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대권 차기 주자 박근혜’를 거부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한 군수후보를 위해 온갖 곳의 유세요청을 거부하고 지역구에서 상주(常駐)유세를 펼쳤음에도 떨어졌다. 주민들은 악수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 원인은 불통(不通)이다. ‘소통(疏通)의 부재(不在)’가 아니라 주민들과의 불통이었다. 군수 후보와 박 전 대표를 대신해 많은 일을 결정했던 ‘지역구 대리인’에 대해 주민들의 불만은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첫 선거 때 도와준 사람, 충성도 높은 사람’이라는 판단 아래 많은 것을 그 대리인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 결과 달성군의 민심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니라 무소속 후보를 선택했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주자의 지역구에서 일종의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김무성(金武星)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역구의 공천이야말로 민주주의 개념이, 그것도 신중하고도 섬세한 헤아림이 필요하다. 지역구민이 거부하는 후보를 공천하는 것은 매우 비(非)민주적인 일이다.

“친박의원들 사이에서는 박 전 대표의 뜻을 헤아리느라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면 박 전 대표는 “제가 꼭 말을 해야 아시나요?”라고 단 한마디 한다고 한다.

본인이 말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아나? 더구나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최선을 다해 말로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유권자와 국민에게 설명하고 호소해야 한다. 때로는 목이 터지도록 외쳐야 한다. 선문답(禪問答)하듯 한마디씩 던지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더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라’하는 것은 그 자체가 비민주적인 것이다.

김무성 의원도, 진영(陳永) 의원도 친박의 울타리를 떠났다. 다른 친박의원도 다 중요한 의원들이나 이 두 사람은 박 전 대표에게는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떠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경선’에서 물심양면으로 큰 역할도 했던 김무성 원내대표는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전 대표와의 미묘한 갈등 속에서 떠났다. 진영 의원도 ‘박 전 대표 대통령 만들기가 오로지 한 목표’인 친박으로서 ‘충성도 부족’이라는 질타를 견디지 못해 떠났다. 큰 힘이 되어줄 사람, 열정을 지닌 사람, 사려 깊은 행동을 하는 이들이 곁을 떠난다면 박근혜 리더십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꿈틀거리는 잠룡들

지금 여의도 안팎에서는 수많은 잠룡(潛龍)이 꿈틀거리고 있다. 앞으로 한나라당의 대선경선은 1등 주자가 외려 ‘페이스메이커’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인제(李仁濟), 이회창(李會昌)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대통령 경선은 숨어 있는 용들의 ‘잠재력을 발현’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김태호 전 지사의 등장은 한나라당의 경선가도에 메기처럼 다른 물고기들을 더 기운차게 펄떡이게 할 것이다.

‘정치인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진정한 정치인’이라는 말을 확인시켜 준 이재오(李在五) 의원 역시 대선후보이든 혹은 킹 메이커든 ‘여의도 정치무대’를 활기차게 만들 것이다. 김문수 지사는 그 특유의 열정과 치밀한 전략, 뜨거운 용기로 ‘타오르는 횃불’이 될 수 있다. 정몽준 전 대표는 자신이 가진 수많은 구슬을 꿸 실과 바늘만 있다면 글로벌리스트로서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대선주자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들, 용이 되고자 하는 이들은 사심(私心)을 버려야 한다. 스스로 희생양(犧牲羊)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한다. 한 번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여러 번 죽을 수 있다는 정치철학을 가져야 한다. 국민은 무심(無心)한 듯하고 어리석은 듯하고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이제까지 진짜 무심했고 어리석었고 멀리 내다보지 못한 것은 대권을 꿈꾸던 수많은 용들이었다.

그 많은 용은 어디로 갔을까? 이무기조차 되지 못한 미꾸라지들이 써 온 대선 역사를 뒤로하고, 오늘 우리 국민들은 다시 새로운 용들을 선 볼 채비를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절망으로 반복되지 않을 희망을 꿈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