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9일 김태호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 창성동 국무총리실 별관으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1962년 8월생인 김태호씨가 ‘1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국무총리에 지명되면서 정치에 관심깨나 있다는 사람들의 단골 술안줏거리가 됐다. 어느 신문을 봐도, 어느 방송을 들어도 ‘김태호 지명 이후’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할 말들이 더욱 많다. 원래 정설(定說)이 없으면 이설(異說)이 난무하는 법이다. 얼마 전까지 경남도지사를 했다는 것 외에 프로필을 찾아봐도 별로 잡히는 것이 없다. 경남지사 때 무슨 업적이 있나 해서 찾아봐도 역시 별볼일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인터넷에서 치면 청계천부터 줄줄이 뜬다.
그렇다면 뭘까.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왜 이런 사람을 기라성 같은 선배 장관의 지휘자로 뽑았을까. 정녕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朴槿惠) 독주’의 대선가도(街道)에 자갈을 까는 심정으로 ‘키워보려고’ 그를 발탁했을까. 그렇다면 이명박과 박근혜 관계, 나아가 여권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금과 같은 불안한 균형이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균열로 치달을 것인가.
역대 총리 출신이 대통령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김태호 카드는 대선가도에서 어떤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정권의 2인자 이재오(李在五) 의원을 총리 직속의 특임장관에 기용한 것은 또 뭘까. 이재오 의원을 ‘명실상부한 실권자 총리’로 만들기 민망하니까 슬쩍 얼굴 마담을 세운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 총리가 실제는 특임장관의 결재를 받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까. 박근혜보다 10년이나 젊은, 잘 생긴 외모의 남자를 통해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 오려는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지만 누구 하나 시원하게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자들의 분석을 통해 궁금증들을 풀어봤다.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발언자는 익명 처리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권 레이스 시동”
―48세 국무총리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이 놀랐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냉철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초기 반응이 유지되고 있는지요.
―‘연못에 돌이 던져졌다. 물이 출렁거렸다. 모두 숨을 죽였다. 지나가던 버스 바퀴에 튕긴 돌 한 개가 우연히 날아든 것인지, 아니면 계속 날라올 돌들의 첫 번째인지를 살피고 있다’ 대충 이런 분위기죠.
―더 화제는 돌이 떨어진 곳 가장 가까운 곳에 박근혜와 김문수가 있다는 것이죠. 박근혜 전 대표는 정말 독하죠. 속이 끓었을 텐데 아무런 내색을 않고 있어요. 김문수 경기지사는 “자고 일어나면 새 총리, 누군지도 몰라”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6·2지방선거 후 박근혜를 견제할 수 있는 유력주자로 주목받았는데, 이번에 돌팔매질을 당한 기분일 테니 그런 격한 반응이 나올 법하지요.
―김문수 지사는 “자고 나면 총리” 발언을 김태호 총리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해명했다고 합니다. 짐짓 여유를 부렸겠죠. 그렇지만 김 지사가 내심 긴장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한 사석에서 “역사와 민족이 부른다면 임기 다 못 채울 수도 있다”고 했다는군요. 김 지사는 또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2년 전에는 70%라고 했는데 요즘은 50%”라고 말했다고 해요. 적극적인 대선 행보로 해석할 수 있지요. 다 ‘김태호 효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야당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입니다.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차기를 생각한 인사든 뭐든 MB가 저런 인사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정치학자들은 ‘8·8 개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권 레이스 시동이 걸렸다’고 분석하더군요. 2012년 총선까지 당분간 큰 선거가 없잖아요. 그 상황에서 ‘40대 총리’의 인위적 등장은 다음 대선을 좌우할 변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이 그동안 박근혜에 일종의 실망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김태호가 기존 총리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던데요.
김태호의 박근혜 비판이 청와대에 전해졌다는 주장도
―MB가 그런 것까지 예상을 해서 발탁을 했을까요. 임명과정을 들여다보면 대략 답이 나올 텐데요.
―둘 사이에 별 인연이 없다는 것 외에 새로운 팩트가 없습니다. 둘은 성장, 출신 배경이 다르잖아요. 그러니 MB가 집권 후반기 중요 관심사인 ‘정권재창출’에 유효한 패로 김태호를 찍어서 올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청와대 사람들 얘기로는, 낙동강 사업 시작할 때 달성보에서 기공식을 했는데, 다른 시도지사와 달리 김태호 지사는 즉석 연설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 대통령이 연설 내용을 듣고 감탄하면서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죠. 또 김영삼 기념관 기공식 때도 김태호 지사가 너무 나서지도 않으면서 적절하게 이 대통령에게 스스럼없이 스킨쉽과 말을 걸었고, 이 대통령도 좋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얘깁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쪽에서 나온 얘긴데요. 김무성 원내대표와 김태호씨가 굉장히 친하다고 해요. 김태호 총리가 지사를 그만둔 뒤 함께 골프를 치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 얘기가 청와대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는 거지요. 이 말이 모두 사실이면 정말 간단하지 않은 사람이지요. YS와 DJ가 경쟁했을 때, YS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DJ 험담하는 것이고, DJ가 제일 좋아할 때는 누가 YS를 깎아내릴 때라는 것 아닙니까. 이건 정치권에서 내공이 있는 사람들만 아는 얘긴데 젊은 나이에 그걸 터득했다면 ‘총리감’에 손색이 없죠.
―이런 얘기도 있어요. 이번 개각에는 이재오 등 친위세력이 많이 들어갔잖아요. 그걸 물타기 하기 위해 젊은 총리를 뽑았다는 얘기죠. 사람들의 관심을 온통 김태호에 쏠리게 하면서 실제는 친위그룹 급부상에 대한 비판을 피해 갔다는 말이죠. 그렇게 보면 ‘이재오 특임장관’에 오히려 정치적 암수(暗數)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견은 아직 소수이긴 합니다만.
―그럼요. 그동안 총리 후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론됐습니까.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과학자 안철수씨, 강현욱 전 전북지사, 이완구 전 충남지사, 정우택 전 충북지사 이름이 다 나왔어요. 심지어 이 대통령이 휴가 가기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몇몇 언론사 정치부장에게 50대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이를 그대로 믿으면 인물난을 겪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상득 의원은 강현욱 밀었다고 알려져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기 전인 7월 31일 측근들이 ‘김태호는 적절치 않다’고 한 데 대해 ‘그만한 사람 있어?’라고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검증팀에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강재섭, 이완구 등 7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여권 핵심들 얘기를 들으면 7월 초 이미 젊은 총리 콘셉트에 꽂혀 있었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은 들러리였던 셈이지요.
―사후 분석인지는 몰라도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한 달 전쯤 젊은이 얘기 나왔을 때 나는 김태호가 될 거라고 감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형님은 이번에 전혀 힘을 못 썼나요.
―웬걸요.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쪽에서 강현욱씨 얘기를 오래전부터 들었어요. 실제 이상득 의원이 화합을 내세우며 강현욱씨를 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종 검증과정에서 여권 내 입지가 너무 약하다는 주장이 먹혀들었다고 합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김덕룡, 강재섭, 박세일, 김태호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 실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까요.
―홍 의원이 그 네 사람에 대해 참 모질게 얘기했어요. 그런데 영향은 못 미쳤다고 봅니다. 원래 홍 의원은 대통령 눈 밖에 난 지 오래입니다. 이 대통령은 심지어 참모들에게 ‘사람은 팔자대로 사는 게 아니다. 모든 게 자기 하기 나름이다. 홍준표는 만날 저런 식으로 행동하니 저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박근혜 전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된 데 대해서도 설이 분분해요. 친박계에서는 ‘본부중대 심야 습격사건’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박근혜 측을 와해시키려는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죠. 알아보니 박근혜가 승낙한 적이 없다고 해요. 박근혜라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입각 여부를 물으면 알아서 하라는 식인데, 유정복이 눈치 없이 덜컥 들어갔고, 마치 청와대가 박근혜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배려한 듯이 기사가 나오니까 박 전 대표로선 더 열 받은 상황이죠. 감투를 무기로 살살 친박 진영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위기의식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친박진영에서.
“박연차 손 피할 수 없었을 것”
“대통령이 꿈이었으니 주변정리 잘했을 것”
―그나저나 김태호씨는 경남지사 재직시절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었잖습니까. 기사에도 나왔으니 청와대에서 알아보고 클리어돼 임명했겠지만, 정말 깨끗한 것인가요.
―청와대는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는 게 없어서 지명할 수 있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최초 혐의 내용이라는 것이 좀 애매해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어느 여성을 시켜서 김태호씨에게 돈을 줬다는 것인데, 지금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 아닙니까. 박연차 회장은 ‘제3자에게 주라고 했다’고 하고 김태호씨는 ‘받은 적 없다’고 하는데, 박연차 회장이 돈 전달자로 지목한 ‘제3자’는 조사할 수 없으니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는 거예요. 토털리 클리어(totally clear)하지는 않아요.
―그 왜 그런 얘기도 있잖습니까. 부산 경남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 중 박연차 돈 안 먹은 사람 없다는 얘기. 신문에 나올 정도더군요. 그쪽 지역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돈 안 받은 사람을 ‘천연기념물’이라 한다지요. 더구나 박연차 회장은 자기 돈을 받지 않으면 반드시 해코지하는 걸로도 지역에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은행 지점장이 돈 거절했다가 다음 날 예금이 우르르 빠져나가 결국 손들고 말았다는 일화도 있잖습니까. 경남도지사를 가만히 놔뒀을 리 없다는 것이죠. 박연차라는 사람을 잘 아는 여권 사람 중에는 그것을 불안해하기도 한다 합니다.
―뭐 김태호씨가 원래 꼿꼿한 스타일일 수도 있잖아요. 중앙 정치 무대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말인데, 젊은 사람답지 않게 내공이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친박과 친이가 서로 줄 세우기를 하는 판에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양쪽 모두에서 내락을 받았다는 사실은 엄청난 정치력이라고 봐야죠. 제가 듣기로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꿈꾸면서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에 주변 정리를 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지방에서 키운 것이나 고향 부모에게 늘 효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것을 ‘김태호의 대통령 기획’으로 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렇다면 주변정리도 확실히 했겠죠.
―사실 경남지사 재출마를 포기했을 때도 박연차 건으로 출마를 포기했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김 지사가 작년 말부터 사람들 만나 이야기 들으면서 중앙정치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도지사 3번 하면 출구가 막힌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2번 하고 그치고,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는군요.
김태호는 정두언과 특히 친해
―시도지사 간담회 때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하고 “저 이번에는 출마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때 “지방에서 3선하나 재선하나 경력은 마찬가지니 중앙에서 승부하겠습니다”라고 했고, 이 대통령은 “잘해 봐. 나도 도와줄게”라고 격려했다는 것이지요. 김태호씨가 당시 그런 말을 한 것은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최고위원으로 출마하거나 재보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인데, 뜻밖에도 큰 자리가 굴러들어 왔다는 얘깁니다. 억세게 관운이 좋다고 봐야죠.
―정두언 등 한나라당 내 소장파가 김태호를 박근혜 대항마로 만들어 보자고 해 기획한 작품이라는 말도 있어요.
―정두언 의원 얘기를 들어본 적 있어요. 김태호 지사 시절 ‘한나라당 의원 중에서 정두언이 가장 좋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작년 이후 정 의원이 경남에 갈 때마다 가끔 식사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었다고 합니다. 정 의원도 김태호 지사가 3선을 포기한 올해 초 “굉장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내공이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죠. 주거니받거니 해 가면서 형님 동생 관계를 유지했단 얘깁니다. 둘 다 형님 동생 숫자로 헤아리라면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김태호 총리는 김무성 원내대표한테는 ‘큰 형님’이라고 부른답니다. 왜 흔히 ‘사와리가 좋다’고 말하지요. 일본말로 촉감이란 뜻인데, 우리는 친화력으로 번역할 수 있지요. 김태호 총리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 중에 이 말을 빼놓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997년 한나라당 9룡(龍) 시절에 이수성 전 총리가 전국에 형님 동생 하는 사람이 5만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거든요. 김태호 총리에 대해서도 형님이 3만명, 동생이 2만명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돌고 있습니다. 아마 몇 번만 만나면 통성명하고 형님, 동생 할 정도로 사람을 잘 사귀는 모양입니다.
―뭐 그 정도면 5만명에 부부표와 가족표를 합쳐 최소한 100만 표는 되겠군요. 정말 김태호 총리가 여권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까요. 역대 총리가 실제 대통령이 된 적은 없었잖아요. 실제 총리라는 자리는 지명된 직후에 반짝하다가 취임하면 곧바로 잊히고, 나중에 대통령 실정(失政)을 대신 뒤집어쓰고 퇴진할 때 또 한 번 반짝하는 직책이거든요. 그게 부(副)사장과 비슷해요. 권한은 사장과 전무가 다 갖고 있고, 부사장은 사장이 뭘 맡기지 않으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요. 그러다가 ‘고위직 임원 퇴진’ 얘기 나오면 함께 나가야지요. 총리가 꼭 그런 자리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총리실 취재해 봤잖아요. 거긴 기자도 할 일이 별로 없어 매일 고민하게 만드는 부서예요.
김문수 경기지사와의 一戰에선 失點
―나이가 젊다는 게 오히려 건방져 보일 수 있다는 측면도 있어요. 총리가 된 뒤 김문수 경기지사와 한바탕 했잖아요. 김문수 지사가 중국과 비교하면서 ‘갑자기 튀어나온 총리’라 비판하자 “우린 사회주의가 아니다”고 반박한 것이 좀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아요. 총리 지명이 되긴 했지만 국민들 시각은 김태호 총리의 체급이 아직은 김문수급(級)에 훨씬 미치지 못하거든요. 그런데도 맞짱을 뜨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역시 내공이 약하다는 방증이라는 얘깁니다. 경기도지사는 인구 1000만명의 대표고, 나이(김문수 59세, 김태호 48세)를 보나 경륜으로 보나 맞짱 상대는 아니지요. 왜 우리 싸우다가도 ‘젊은 것이 버릇없이’라고 하면 대충 승패가 기울잖아요. 그런 점에서 김태호 총리가 이번에 실점(失點)을 한 것 같습니다.
―글쎄요. 그건 좀 지엽적인 얘기고요. 결국은 본인 하기 나름 아닐까요. 기라성 같은 당내 선배들한테 ‘귀여움’을 받느냐 아니냐, 다시 말하면 당내 지지기반을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1차 관문이겠지요. 경남지사 시절처럼 친화력 있게, 친이(親李)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한 번 노려볼 만하지요.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들의 지지죠. ‘젊은 사람 총리 시켰더니 잘하네’란 얘기가 나와 지지율이 올라야지요. 아무리 친이의 지지를 얻더라도 국민지지율이 크게 밀리면 대선후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야권에선 김태호의 가능성을 평가절하하고 있더군요.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도 최근 사석에서 “김태호 별것 아니다”라고 일축했다던데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부정적입니다. “대권주자는 키우려고 해서 키워지는 게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해양수산부 장관도 시키고 했지만, 그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큰 건 아니다. 자기가 알아서 성장했다.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다. 그건 군사독재 때나 가능한 얘기다”라는 거지요. 민주당 내 친노(親盧) 인사도 대선후보는 누가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정치권에서 이 말은 진리지요.
“대통령 입장에선 박 전 대표 콱 쥐어박고 싶을 것”
―이번 개각을 놓고 친박(親朴) 쪽은 부글부글합니다. 전체적인 기류가 그렇습니다. 친박 중진인 허태열 의원 같은 이는 “그런 식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으냐. 난 참 대통령이 이해가 안된다. 그렇게 박근혜한테 차기를 주기가 싫은 건지. 요즘 돌아가는 게 그렇지 않으냐.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고 하더라고요. 친박은 그러잖아도 친이로부터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어느 친박은 “요즘 <한겨레>, <경향신문>이 좋아”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합니다. <한겨레>, <경향신문>은 사사건건 이명박 대통령에 날을 세우고 있잖아요. 그게 좋다는 거지요. 얼마나 반이(反李) 감정이 사무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이 정도인 줄 최근까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전 솔직히 친박계 분위기라는 것이 실체로서 존재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아마 개각 직전에 ‘유정복이 입각할 수도 있지 않으냐’라고 물었다면 친박계 전원이 ‘턱 없는 소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친박계에는 박 전 대표의 생각이 중요할 뿐입니다. 만약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양해 없이 유 의원을 기용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만, 그 경우라도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 뒷거래하는 비서실장을 둔 지도자’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요. ‘사람을 잘 못 보는 사람’은 대통령감으로선 치명적이죠.
―이번 개각이 반드시 박근혜 전 대표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상당합니다. 만약 ‘박근혜의,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에 의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5년 내내 0순위였던 사람이 승진하듯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은 너무 싱겁잖아요. 흥행이 되겠습니까.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2002년처럼 상대 진영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후보가 있다면 국민들은 그쪽의 역동성에 매료되지 않겠어요. 그건 한나라당이 제일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서 여당에 대선후보군이 많아지는 것이 결코 박근혜에 나쁘지 않다는 견해도 많습니다. 좋게 보는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구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한마디로 MB의 심모원려(深謀遠慮)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전 좀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이번 개각을 놓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결별이다 어쩌다 얘기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을 모르는 것이라고 감히 단정합니다. 이 대통령은 물론 박 전 대표가 싫겠죠. 당내 경선에서 진 사람이 고개 빳빳이 쳐들고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하고 있으니 콱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겁니다. 그래서 정운찬으로 실패했으니 김태호든 누구든 박근혜의 대항마로 한번 키워보자는 생각을 했을 법하지요.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이 대통령이 ‘될 사람’을 밀 것이라고 봐요. 지금 항간에서는 이 대통령이 ‘(다음 정권을) 박근혜에 주느니 차라리 민주당에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전 이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은 ‘장사꾼’ 출신입니다. 화난다고 쪽박까지 깨버리면 남는 것은 기업의 파산입니다. 지난 10년간 한나라당, 나아가 대한민국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하긴 부부가 갈라서기로 하면 아예 원수가 되긴 하더군요.
중립 의원들, “이번에 박근혜도 반성 기회 가져야”
―친이도 친박도 아닌 한나라당 의원이 몇 안되긴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우려는 경선 스타트도 전에 당이 쪼개지는 사태입니다. 친이가 딴살림을 차리든, 친박이 당을 뛰쳐나가는 사태가 벌어지든 하면 그야말로 쪽박이 깨지는 경우잖아요. 이걸 상상하기도 싫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최근 박근혜가 조금 몰리는 듯한 분위기를 이들은 즐기고 있더군요. 그동안 박근혜가 매몰차고 싸늘하게 당을 좌지우지했다면서 이번 기회에 박근혜도 반성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인 주장입니다.
―요즘 소설가 김진명씨가 말한 ‘박근혜 탈당 가능성 50%’가 세간의 화제입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킹 메이커> 등 정치소설로 유명한 김진명씨가 8월 7일 방송된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친이세력을 신뢰하지 않고 있어 당내 경선에 함부로 뛰어들기가 참 어렵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치권에서는 반대로 얘기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실정입니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은 아버지(박정희)가 만든 당’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것은 이회창 총재의 독선적인 당 운영 때문에 본인이 주장해 온 당내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아 당을 뛰쳐나갔던 것이고, 지금은 경선 룰 등이 합의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또 2002년 탈당했을 때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설령 박 전 대표가 당내 경선에서 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정상 이길 것이라고 판단하고 밀어붙일 공산이 더 크다는 분석을 내놓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친박 핵심들도 만약을 가정해서라도 탈당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더군요. 심지어 “나가려면 친이가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현재 당내 역학구도로 보면 친이와 친박은 7대 3 정돕니다. 이런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박 전 대표로선 다른 길이 없는 셈이지요. 일각에서는 박근혜와 친이 일부의 연대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즉 이상득 의원 쪽과의 연합 얘기인데, 원래 박근혜 대표 시절에 이상득 의원이 사무총장이었지요. 이때 이상득 의원은 새까만 후배인 박근혜 대표를 정말 잘 모셨습니다. 박근혜 대표도 당시 이상득 사무총장을 굉장히 신뢰했고요. 천막당사 아이디어도 이상득 의원이 냈다고 해요. 코오롱 CEO 출신인 이상득 의원의 재주가 남다르다고 봐야겠지요. 자신의 동생이 박근혜 대표의 경쟁자가 될 것이 뻔한데도 어떻게 박 대표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런 전력 때문에 2012년엔 당내에서 친이계, 특히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이 박근혜를 돕는 선봉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차피 친이계 중 이상득 의원 쪽과 이재오·정두언 의원 쪽은 견원지간이잖습니까. 둘 중 한 세력이 박근혜 전 대표와 협력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요. 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된다면 박 전 대표의 탈당 운운은 소설이 되는 것이지요.
―그보다도 2011년 말까지 박 전 대표가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면 한나라당 친이계는 공중분해될 것입니다. 권력의 움직임에 특히 민감한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많습니다. 검사와 공무원 출신이 유난히 많잖습니까. 그 사람들 권력의 추가 움직이는 것을 미리 예측하는 데는 귀신입니다. 그러니 박 전 대표가 지지율을 다 까먹지 않는 한 지금처럼 외롭게 살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주간조선>에도 나왔지만, 구(舊)동교동계와 박 전 대표가 손잡으려는 움직임도 있지요. 박 전 대표 쪽에서 부인하고 있지만 실제 이 얘기는 오래됐죠. 동교동계의 맏형격인 권노갑씨를 중심으로 해서 박 전 대표 측과 접촉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동교동계가 현재의 민주당에 별로 먹혀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박 전 대표가 외연을 확대하려 한다는 사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박 전 대표 쪽에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인 보수 세력은 그러잖아도 박 전 대표를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박 전 대표가 북한을 방문했던 때의 행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고요. 또 그 후 북한에 대해 유화적 자세를 보였고, 특히 천안함 사태 때도 박 전 대표는 똑 부러지게 북한을 비판하지 않았어요. 보수층은 ‘박근혜가 북한과 뭐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설령 동교동계와 손을 잡더라도 그걸 공론화하는 시기는 선거가 임박해 정파 간 합종연횡이 무성할 때가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次期 설계는 신기루
―정리를 해보자면, MB는 결국 ‘박근혜 독주’를 막는 것이 곧 자신의 레임덕을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보고, 대권주자 후보군을 양성하는 차원에서 김태호 총리를 지명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인데요. 김태호를 콕 찍어서 ‘대권주자로 키우겠다’가 아니라 그런 여럿 중 한 명으로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죠. 원래 정운찬 전 총리도 그런 카드였는데, 청문회와 세종시 논란 과정에서 구겨버렸다고 봐야죠. 이런 MB 구상의 성공 여부야 물론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그런 판단에 기울어 있다고 집약할 수 있겠습니다. 진보에 가까웠던 정운찬으로 실패했으니 이제는 48세 총리를 지명함으로써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 그것도 MB로선 한 번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습니까. 다만 대통령이 이렇게 순리(順理)를 거스르며 정치 공학적으로 다음 정권에 집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건 여전히 과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과거 예를 봐도 대통령이 후계 구도에 과도하게 집착해서 성공을 거둔 사례가 기억에 없는데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3당 통합 때 내각제 합의각서까지 받아 놓고도 내각제 개헌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을 막지도 못했잖습니까. 엄청난 액수의 대선자금을 건네주고도 오히려 그때 쌓인 감정으로 본인이 구속당하지 않았나요. 바로 그렇게 대통령이 된 김영삼씨 역시 이수성, 이인제로 옮겨다니다가 이회창 후보와 관계가 악화되면서 사실상 방관자가 돼 정권을 김대중-김종필 연합팀에 넘겨주었고, 그 후 김대중씨도 이인제, 정몽준, 노무현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씨는 후계구도에 처음부터 깊이 관여한 흔적이 없고요. 대통령이 되면 항상 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사실은 신기루였다는 게 제 취재 경험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요즘 측근들에게 ‘나에게 레임덕이란 없다’고 한다던데요. 굉장한 자신감에 차 있다고 할까. 특히 6·2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1달 보름 만에 치러진 7·28 재보선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하자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한단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최근에 박근혜 전 대표가 보수층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는 기미를 보이면서 이 대통령의 자신감은 점점 더 강해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난 박근혜의 경쟁자가 아니다”고 되뇌어도 결국 둘은 ‘영원한 경쟁자’로 보입니다.
김태호는 親李의 암중모색 카드 중 하나
―얼마 전 만난 한나라당 한 중진의원의 얘기가 귀에 남습니다. 대통령이 김태호를 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사람을 키우는 맛’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미 머리가 큰 사람들은 도와줘 봤자 자기가 잘나서 됐다고 생각하고 은혜를 모르겠지만 중앙정치무대에 무명인 사람을 발탁하면 확실하게 자기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는 겁니다.
―그만큼 리스크(위험)도 크지요. 공연히 못 먹는 감 찔러 본다는 식으로 이 감 저 감 건드리다가 안주인에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요 몇 년간 역사만 봐도 그런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지요. 기자처럼 제3자가 되면 훤히 그런 것이 보인단 말입니다. 그런데 권력자가 되면 아니더라고요. 권력자가 자신감을 갖는 것이 꼭 나쁘다고 할 거까지야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지나친 해석인데요. 여권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차기 구도를 설계하는 일 아닙니까. 설령 자기 사람이 뒤를 잇지 못해도 여권 대선가도에 흥행성이라도 보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막말로 현직 대통령이 누구를 되게 할 수는 없어도 안 되게 할 수는 있다는 것 아닙니까. 만약 1997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DJ 비자금 수사를 막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2002년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을 할 때 현대중공업을 세무조사해 정몽준씨 돈줄을 죄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자꾸 현실론, 상황론을 전개하게 되는데요. YS가 DJ 비자금 수사를 정녕 막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2002년엔 DJ 시절이니까 현대중공업 세무조사를 하지도 않았겠지만 순전히 가정을 전제로 말하면, 당시 분위기로 미루어 정몽준씨 ‘목’을 졸랐다가는 이회창씨가 더 큰 패배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분위기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이죠.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임기말이라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정치판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실론도 맞지만 대통령의 힘이라는 것은 마지막까지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인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현직 대통령과 각(角)을 세워 성공한 케이스는 YS가 유일한데, 그것은 YS가 여권 내 다른 후보에 비해 월등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지금 지지율로 보면 박근혜와 다른 후보군은 비교가 안되죠. 다른 후보군을 다 합쳐도 박근혜 지지율만 못하니까요. MB로선 그런 답답함이랄까 그런 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기존 김문수, 오세훈 외에 김태호를 더 합류시켰다고나 할까 뭐 그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겠어요. MB가 건설업자 출신이잖아요. 아마 2012년 대선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공사 기간=5년. 시행자=이명박. 시공자=김문수·오세훈·김태호 등. 공사 진척도=55%. 시행자=박근혜는 다른 공사를 하고 있는데 거긴 공사진척도가 80%죠. 만약 ‘이명박 도로’의 시공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 공기(工期)를 단축한다면 먼저 준공(竣工)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김태호는 김문수·오세훈이 땀을 뻘뻘 흘리고 공사를 하고 있는데 중간에 ‘백’으로 들어간 케이스죠. ‘뒷문으로 들어가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CEO들의 철학인 듯해요.⊙
그렇다면 뭘까.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왜 이런 사람을 기라성 같은 선배 장관의 지휘자로 뽑았을까. 정녕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朴槿惠) 독주’의 대선가도(街道)에 자갈을 까는 심정으로 ‘키워보려고’ 그를 발탁했을까. 그렇다면 이명박과 박근혜 관계, 나아가 여권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금과 같은 불안한 균형이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균열로 치달을 것인가.
역대 총리 출신이 대통령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김태호 카드는 대선가도에서 어떤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정권의 2인자 이재오(李在五) 의원을 총리 직속의 특임장관에 기용한 것은 또 뭘까. 이재오 의원을 ‘명실상부한 실권자 총리’로 만들기 민망하니까 슬쩍 얼굴 마담을 세운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 총리가 실제는 특임장관의 결재를 받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까. 박근혜보다 10년이나 젊은, 잘 생긴 외모의 남자를 통해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 오려는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지만 누구 하나 시원하게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자들의 분석을 통해 궁금증들을 풀어봤다.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발언자는 익명 처리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권 레이스 시동”
―48세 국무총리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이 놀랐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냉철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초기 반응이 유지되고 있는지요.
―‘연못에 돌이 던져졌다. 물이 출렁거렸다. 모두 숨을 죽였다. 지나가던 버스 바퀴에 튕긴 돌 한 개가 우연히 날아든 것인지, 아니면 계속 날라올 돌들의 첫 번째인지를 살피고 있다’ 대충 이런 분위기죠.
―더 화제는 돌이 떨어진 곳 가장 가까운 곳에 박근혜와 김문수가 있다는 것이죠. 박근혜 전 대표는 정말 독하죠. 속이 끓었을 텐데 아무런 내색을 않고 있어요. 김문수 경기지사는 “자고 일어나면 새 총리, 누군지도 몰라”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6·2지방선거 후 박근혜를 견제할 수 있는 유력주자로 주목받았는데, 이번에 돌팔매질을 당한 기분일 테니 그런 격한 반응이 나올 법하지요.
―김문수 지사는 “자고 나면 총리” 발언을 김태호 총리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해명했다고 합니다. 짐짓 여유를 부렸겠죠. 그렇지만 김 지사가 내심 긴장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한 사석에서 “역사와 민족이 부른다면 임기 다 못 채울 수도 있다”고 했다는군요. 김 지사는 또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2년 전에는 70%라고 했는데 요즘은 50%”라고 말했다고 해요. 적극적인 대선 행보로 해석할 수 있지요. 다 ‘김태호 효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야당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입니다. 전병헌 정책위의장은 “차기를 생각한 인사든 뭐든 MB가 저런 인사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정치학자들은 ‘8·8 개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권 레이스 시동이 걸렸다’고 분석하더군요. 2012년 총선까지 당분간 큰 선거가 없잖아요. 그 상황에서 ‘40대 총리’의 인위적 등장은 다음 대선을 좌우할 변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이 그동안 박근혜에 일종의 실망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김태호가 기존 총리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던데요.
김태호의 박근혜 비판이 청와대에 전해졌다는 주장도
―MB가 그런 것까지 예상을 해서 발탁을 했을까요. 임명과정을 들여다보면 대략 답이 나올 텐데요.
―둘 사이에 별 인연이 없다는 것 외에 새로운 팩트가 없습니다. 둘은 성장, 출신 배경이 다르잖아요. 그러니 MB가 집권 후반기 중요 관심사인 ‘정권재창출’에 유효한 패로 김태호를 찍어서 올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청와대 사람들 얘기로는, 낙동강 사업 시작할 때 달성보에서 기공식을 했는데, 다른 시도지사와 달리 김태호 지사는 즉석 연설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 대통령이 연설 내용을 듣고 감탄하면서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죠. 또 김영삼 기념관 기공식 때도 김태호 지사가 너무 나서지도 않으면서 적절하게 이 대통령에게 스스럼없이 스킨쉽과 말을 걸었고, 이 대통령도 좋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얘깁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쪽에서 나온 얘긴데요. 김무성 원내대표와 김태호씨가 굉장히 친하다고 해요. 김태호 총리가 지사를 그만둔 뒤 함께 골프를 치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 얘기가 청와대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는 거지요. 이 말이 모두 사실이면 정말 간단하지 않은 사람이지요. YS와 DJ가 경쟁했을 때, YS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DJ 험담하는 것이고, DJ가 제일 좋아할 때는 누가 YS를 깎아내릴 때라는 것 아닙니까. 이건 정치권에서 내공이 있는 사람들만 아는 얘긴데 젊은 나이에 그걸 터득했다면 ‘총리감’에 손색이 없죠.
―이런 얘기도 있어요. 이번 개각에는 이재오 등 친위세력이 많이 들어갔잖아요. 그걸 물타기 하기 위해 젊은 총리를 뽑았다는 얘기죠. 사람들의 관심을 온통 김태호에 쏠리게 하면서 실제는 친위그룹 급부상에 대한 비판을 피해 갔다는 말이죠. 그렇게 보면 ‘이재오 특임장관’에 오히려 정치적 암수(暗數)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의견은 아직 소수이긴 합니다만.
―그럼요. 그동안 총리 후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론됐습니까.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과학자 안철수씨, 강현욱 전 전북지사, 이완구 전 충남지사, 정우택 전 충북지사 이름이 다 나왔어요. 심지어 이 대통령이 휴가 가기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몇몇 언론사 정치부장에게 50대 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이를 그대로 믿으면 인물난을 겪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상득 의원은 강현욱 밀었다고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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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찬 총리와 김태호 총리 후보자. 지난 6월 22일 부산 신항에서 열린 현대상선터미널 개장식에 함께 참석했다. 김태호 후보자는 당시 경남지사로서 임기를 일주일여 남긴 상태였다. |
―사후 분석인지는 몰라도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한 달 전쯤 젊은이 얘기 나왔을 때 나는 김태호가 될 거라고 감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형님은 이번에 전혀 힘을 못 썼나요.
―웬걸요.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쪽에서 강현욱씨 얘기를 오래전부터 들었어요. 실제 이상득 의원이 화합을 내세우며 강현욱씨를 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종 검증과정에서 여권 내 입지가 너무 약하다는 주장이 먹혀들었다고 합니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김덕룡, 강재섭, 박세일, 김태호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 실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할까요.
―홍 의원이 그 네 사람에 대해 참 모질게 얘기했어요. 그런데 영향은 못 미쳤다고 봅니다. 원래 홍 의원은 대통령 눈 밖에 난 지 오래입니다. 이 대통령은 심지어 참모들에게 ‘사람은 팔자대로 사는 게 아니다. 모든 게 자기 하기 나름이다. 홍준표는 만날 저런 식으로 행동하니 저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박근혜 전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이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된 데 대해서도 설이 분분해요. 친박계에서는 ‘본부중대 심야 습격사건’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박근혜 측을 와해시키려는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죠. 알아보니 박근혜가 승낙한 적이 없다고 해요. 박근혜라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입각 여부를 물으면 알아서 하라는 식인데, 유정복이 눈치 없이 덜컥 들어갔고, 마치 청와대가 박근혜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배려한 듯이 기사가 나오니까 박 전 대표로선 더 열 받은 상황이죠. 감투를 무기로 살살 친박 진영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위기의식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친박진영에서.
“박연차 손 피할 수 없었을 것”
“대통령이 꿈이었으니 주변정리 잘했을 것”
―그나저나 김태호씨는 경남지사 재직시절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었잖습니까. 기사에도 나왔으니 청와대에서 알아보고 클리어돼 임명했겠지만, 정말 깨끗한 것인가요.
―청와대는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는 게 없어서 지명할 수 있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최초 혐의 내용이라는 것이 좀 애매해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어느 여성을 시켜서 김태호씨에게 돈을 줬다는 것인데, 지금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 아닙니까. 박연차 회장은 ‘제3자에게 주라고 했다’고 하고 김태호씨는 ‘받은 적 없다’고 하는데, 박연차 회장이 돈 전달자로 지목한 ‘제3자’는 조사할 수 없으니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는 거예요. 토털리 클리어(totally clear)하지는 않아요.
―그 왜 그런 얘기도 있잖습니까. 부산 경남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 중 박연차 돈 안 먹은 사람 없다는 얘기. 신문에 나올 정도더군요. 그쪽 지역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돈 안 받은 사람을 ‘천연기념물’이라 한다지요. 더구나 박연차 회장은 자기 돈을 받지 않으면 반드시 해코지하는 걸로도 지역에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은행 지점장이 돈 거절했다가 다음 날 예금이 우르르 빠져나가 결국 손들고 말았다는 일화도 있잖습니까. 경남도지사를 가만히 놔뒀을 리 없다는 것이죠. 박연차라는 사람을 잘 아는 여권 사람 중에는 그것을 불안해하기도 한다 합니다.
―뭐 김태호씨가 원래 꼿꼿한 스타일일 수도 있잖아요. 중앙 정치 무대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말인데, 젊은 사람답지 않게 내공이 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친박과 친이가 서로 줄 세우기를 하는 판에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양쪽 모두에서 내락을 받았다는 사실은 엄청난 정치력이라고 봐야죠. 제가 듣기로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꿈꾸면서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에 주변 정리를 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지방에서 키운 것이나 고향 부모에게 늘 효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은 것을 ‘김태호의 대통령 기획’으로 보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렇다면 주변정리도 확실히 했겠죠.
―사실 경남지사 재출마를 포기했을 때도 박연차 건으로 출마를 포기했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김 지사가 작년 말부터 사람들 만나 이야기 들으면서 중앙정치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도지사 3번 하면 출구가 막힌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2번 하고 그치고,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는군요.
김태호는 정두언과 특히 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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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첫 관문은 ‘박연차 게이트’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는 일이다. 사진은 2008년 12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을 나서는 모습. |
―정두언 등 한나라당 내 소장파가 김태호를 박근혜 대항마로 만들어 보자고 해 기획한 작품이라는 말도 있어요.
―정두언 의원 얘기를 들어본 적 있어요. 김태호 지사 시절 ‘한나라당 의원 중에서 정두언이 가장 좋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작년 이후 정 의원이 경남에 갈 때마다 가끔 식사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었다고 합니다. 정 의원도 김태호 지사가 3선을 포기한 올해 초 “굉장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내공이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죠. 주거니받거니 해 가면서 형님 동생 관계를 유지했단 얘깁니다. 둘 다 형님 동생 숫자로 헤아리라면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김태호 총리는 김무성 원내대표한테는 ‘큰 형님’이라고 부른답니다. 왜 흔히 ‘사와리가 좋다’고 말하지요. 일본말로 촉감이란 뜻인데, 우리는 친화력으로 번역할 수 있지요. 김태호 총리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 중에 이 말을 빼놓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997년 한나라당 9룡(龍) 시절에 이수성 전 총리가 전국에 형님 동생 하는 사람이 5만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거든요. 김태호 총리에 대해서도 형님이 3만명, 동생이 2만명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돌고 있습니다. 아마 몇 번만 만나면 통성명하고 형님, 동생 할 정도로 사람을 잘 사귀는 모양입니다.
―뭐 그 정도면 5만명에 부부표와 가족표를 합쳐 최소한 100만 표는 되겠군요. 정말 김태호 총리가 여권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까요. 역대 총리가 실제 대통령이 된 적은 없었잖아요. 실제 총리라는 자리는 지명된 직후에 반짝하다가 취임하면 곧바로 잊히고, 나중에 대통령 실정(失政)을 대신 뒤집어쓰고 퇴진할 때 또 한 번 반짝하는 직책이거든요. 그게 부(副)사장과 비슷해요. 권한은 사장과 전무가 다 갖고 있고, 부사장은 사장이 뭘 맡기지 않으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요. 그러다가 ‘고위직 임원 퇴진’ 얘기 나오면 함께 나가야지요. 총리가 꼭 그런 자리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총리실 취재해 봤잖아요. 거긴 기자도 할 일이 별로 없어 매일 고민하게 만드는 부서예요.
김문수 경기지사와의 一戰에선 失點
―나이가 젊다는 게 오히려 건방져 보일 수 있다는 측면도 있어요. 총리가 된 뒤 김문수 경기지사와 한바탕 했잖아요. 김문수 지사가 중국과 비교하면서 ‘갑자기 튀어나온 총리’라 비판하자 “우린 사회주의가 아니다”고 반박한 것이 좀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아요. 총리 지명이 되긴 했지만 국민들 시각은 김태호 총리의 체급이 아직은 김문수급(級)에 훨씬 미치지 못하거든요. 그런데도 맞짱을 뜨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역시 내공이 약하다는 방증이라는 얘깁니다. 경기도지사는 인구 1000만명의 대표고, 나이(김문수 59세, 김태호 48세)를 보나 경륜으로 보나 맞짱 상대는 아니지요. 왜 우리 싸우다가도 ‘젊은 것이 버릇없이’라고 하면 대충 승패가 기울잖아요. 그런 점에서 김태호 총리가 이번에 실점(失點)을 한 것 같습니다.
―글쎄요. 그건 좀 지엽적인 얘기고요. 결국은 본인 하기 나름 아닐까요. 기라성 같은 당내 선배들한테 ‘귀여움’을 받느냐 아니냐, 다시 말하면 당내 지지기반을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1차 관문이겠지요. 경남지사 시절처럼 친화력 있게, 친이(親李)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한 번 노려볼 만하지요.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국민들의 지지죠. ‘젊은 사람 총리 시켰더니 잘하네’란 얘기가 나와 지지율이 올라야지요. 아무리 친이의 지지를 얻더라도 국민지지율이 크게 밀리면 대선후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야권에선 김태호의 가능성을 평가절하하고 있더군요.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도 최근 사석에서 “김태호 별것 아니다”라고 일축했다던데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부정적입니다. “대권주자는 키우려고 해서 키워지는 게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해양수산부 장관도 시키고 했지만, 그걸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큰 건 아니다. 자기가 알아서 성장했다.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다. 그건 군사독재 때나 가능한 얘기다”라는 거지요. 민주당 내 친노(親盧) 인사도 대선후보는 누가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정치권에서 이 말은 진리지요.
“대통령 입장에선 박 전 대표 콱 쥐어박고 싶을 것”
―이번 개각을 놓고 친박(親朴) 쪽은 부글부글합니다. 전체적인 기류가 그렇습니다. 친박 중진인 허태열 의원 같은 이는 “그런 식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으냐. 난 참 대통령이 이해가 안된다. 그렇게 박근혜한테 차기를 주기가 싫은 건지. 요즘 돌아가는 게 그렇지 않으냐.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고 하더라고요. 친박은 그러잖아도 친이로부터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어느 친박은 “요즘 <한겨레>, <경향신문>이 좋아”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합니다. <한겨레>, <경향신문>은 사사건건 이명박 대통령에 날을 세우고 있잖아요. 그게 좋다는 거지요. 얼마나 반이(反李) 감정이 사무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이 정도인 줄 최근까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전 솔직히 친박계 분위기라는 것이 실체로서 존재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아마 개각 직전에 ‘유정복이 입각할 수도 있지 않으냐’라고 물었다면 친박계 전원이 ‘턱 없는 소리’라고 했을 것입니다. 친박계에는 박 전 대표의 생각이 중요할 뿐입니다. 만약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양해 없이 유 의원을 기용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만, 그 경우라도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 뒷거래하는 비서실장을 둔 지도자’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요. ‘사람을 잘 못 보는 사람’은 대통령감으로선 치명적이죠.
―이번 개각이 반드시 박근혜 전 대표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상당합니다. 만약 ‘박근혜의,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에 의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5년 내내 0순위였던 사람이 승진하듯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은 너무 싱겁잖아요. 흥행이 되겠습니까.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2002년처럼 상대 진영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후보가 있다면 국민들은 그쪽의 역동성에 매료되지 않겠어요. 그건 한나라당이 제일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서 여당에 대선후보군이 많아지는 것이 결코 박근혜에 나쁘지 않다는 견해도 많습니다. 좋게 보는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구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한마디로 MB의 심모원려(深謀遠慮)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전 좀 다르게 보고 싶습니다. 이번 개각을 놓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결별이다 어쩌다 얘기하는 것은 권력의 속성을 모르는 것이라고 감히 단정합니다. 이 대통령은 물론 박 전 대표가 싫겠죠. 당내 경선에서 진 사람이 고개 빳빳이 쳐들고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하고 있으니 콱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겁니다. 그래서 정운찬으로 실패했으니 김태호든 누구든 박근혜의 대항마로 한번 키워보자는 생각을 했을 법하지요.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이 대통령이 ‘될 사람’을 밀 것이라고 봐요. 지금 항간에서는 이 대통령이 ‘(다음 정권을) 박근혜에 주느니 차라리 민주당에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전 이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은 ‘장사꾼’ 출신입니다. 화난다고 쪽박까지 깨버리면 남는 것은 기업의 파산입니다. 지난 10년간 한나라당, 나아가 대한민국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하긴 부부가 갈라서기로 하면 아예 원수가 되긴 하더군요.
중립 의원들, “이번에 박근혜도 반성 기회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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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박근혜 독주’ 가도에 변수가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권 실세 이재오 특임장관과의 관계도 변수거리다. 사진은 경남지사 후보시절, 김 지사(맨 오른쪽)가 2006년 4월 한나라당 경남 필승결의대회에서 당시 이재오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표, 김학송 경남 도당위원장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
―요즘 소설가 김진명씨가 말한 ‘박근혜 탈당 가능성 50%’가 세간의 화제입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킹 메이커> 등 정치소설로 유명한 김진명씨가 8월 7일 방송된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친이세력을 신뢰하지 않고 있어 당내 경선에 함부로 뛰어들기가 참 어렵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치권에서는 반대로 얘기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실정입니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은 아버지(박정희)가 만든 당’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것은 이회창 총재의 독선적인 당 운영 때문에 본인이 주장해 온 당내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아 당을 뛰쳐나갔던 것이고, 지금은 경선 룰 등이 합의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또 2002년 탈당했을 때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설령 박 전 대표가 당내 경선에서 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정상 이길 것이라고 판단하고 밀어붙일 공산이 더 크다는 분석을 내놓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친박 핵심들도 만약을 가정해서라도 탈당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더군요. 심지어 “나가려면 친이가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현재 당내 역학구도로 보면 친이와 친박은 7대 3 정돕니다. 이런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박 전 대표로선 다른 길이 없는 셈이지요. 일각에서는 박근혜와 친이 일부의 연대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즉 이상득 의원 쪽과의 연합 얘기인데, 원래 박근혜 대표 시절에 이상득 의원이 사무총장이었지요. 이때 이상득 의원은 새까만 후배인 박근혜 대표를 정말 잘 모셨습니다. 박근혜 대표도 당시 이상득 사무총장을 굉장히 신뢰했고요. 천막당사 아이디어도 이상득 의원이 냈다고 해요. 코오롱 CEO 출신인 이상득 의원의 재주가 남다르다고 봐야겠지요. 자신의 동생이 박근혜 대표의 경쟁자가 될 것이 뻔한데도 어떻게 박 대표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런 전력 때문에 2012년엔 당내에서 친이계, 특히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이 박근혜를 돕는 선봉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어차피 친이계 중 이상득 의원 쪽과 이재오·정두언 의원 쪽은 견원지간이잖습니까. 둘 중 한 세력이 박근혜 전 대표와 협력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지요. 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된다면 박 전 대표의 탈당 운운은 소설이 되는 것이지요.
―그보다도 2011년 말까지 박 전 대표가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면 한나라당 친이계는 공중분해될 것입니다. 권력의 움직임에 특히 민감한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많습니다. 검사와 공무원 출신이 유난히 많잖습니까. 그 사람들 권력의 추가 움직이는 것을 미리 예측하는 데는 귀신입니다. 그러니 박 전 대표가 지지율을 다 까먹지 않는 한 지금처럼 외롭게 살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주간조선>에도 나왔지만, 구(舊)동교동계와 박 전 대표가 손잡으려는 움직임도 있지요. 박 전 대표 쪽에서 부인하고 있지만 실제 이 얘기는 오래됐죠. 동교동계의 맏형격인 권노갑씨를 중심으로 해서 박 전 대표 측과 접촉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동교동계가 현재의 민주당에 별로 먹혀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박 전 대표가 외연을 확대하려 한다는 사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박 전 대표 쪽에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인 보수 세력은 그러잖아도 박 전 대표를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박 전 대표가 북한을 방문했던 때의 행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고요. 또 그 후 북한에 대해 유화적 자세를 보였고, 특히 천안함 사태 때도 박 전 대표는 똑 부러지게 북한을 비판하지 않았어요. 보수층은 ‘박근혜가 북한과 뭐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설령 동교동계와 손을 잡더라도 그걸 공론화하는 시기는 선거가 임박해 정파 간 합종연횡이 무성할 때가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次期 설계는 신기루
―정리를 해보자면, MB는 결국 ‘박근혜 독주’를 막는 것이 곧 자신의 레임덕을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보고, 대권주자 후보군을 양성하는 차원에서 김태호 총리를 지명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인데요. 김태호를 콕 찍어서 ‘대권주자로 키우겠다’가 아니라 그런 여럿 중 한 명으로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죠. 원래 정운찬 전 총리도 그런 카드였는데, 청문회와 세종시 논란 과정에서 구겨버렸다고 봐야죠. 이런 MB 구상의 성공 여부야 물론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그런 판단에 기울어 있다고 집약할 수 있겠습니다. 진보에 가까웠던 정운찬으로 실패했으니 이제는 48세 총리를 지명함으로써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 그것도 MB로선 한 번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습니까. 다만 대통령이 이렇게 순리(順理)를 거스르며 정치 공학적으로 다음 정권에 집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건 여전히 과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과거 예를 봐도 대통령이 후계 구도에 과도하게 집착해서 성공을 거둔 사례가 기억에 없는데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3당 통합 때 내각제 합의각서까지 받아 놓고도 내각제 개헌을 성사시키지 못했고,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을 막지도 못했잖습니까. 엄청난 액수의 대선자금을 건네주고도 오히려 그때 쌓인 감정으로 본인이 구속당하지 않았나요. 바로 그렇게 대통령이 된 김영삼씨 역시 이수성, 이인제로 옮겨다니다가 이회창 후보와 관계가 악화되면서 사실상 방관자가 돼 정권을 김대중-김종필 연합팀에 넘겨주었고, 그 후 김대중씨도 이인제, 정몽준, 노무현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씨는 후계구도에 처음부터 깊이 관여한 흔적이 없고요. 대통령이 되면 항상 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사실은 신기루였다는 게 제 취재 경험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요즘 측근들에게 ‘나에게 레임덕이란 없다’고 한다던데요. 굉장한 자신감에 차 있다고 할까. 특히 6·2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1달 보름 만에 치러진 7·28 재보선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하자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한단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최근에 박근혜 전 대표가 보수층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는 기미를 보이면서 이 대통령의 자신감은 점점 더 강해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난 박근혜의 경쟁자가 아니다”고 되뇌어도 결국 둘은 ‘영원한 경쟁자’로 보입니다.
김태호는 親李의 암중모색 카드 중 하나
―얼마 전 만난 한나라당 한 중진의원의 얘기가 귀에 남습니다. 대통령이 김태호를 택한 이유 중의 하나가 ‘사람을 키우는 맛’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미 머리가 큰 사람들은 도와줘 봤자 자기가 잘나서 됐다고 생각하고 은혜를 모르겠지만 중앙정치무대에 무명인 사람을 발탁하면 확실하게 자기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라는 겁니다.
―그만큼 리스크(위험)도 크지요. 공연히 못 먹는 감 찔러 본다는 식으로 이 감 저 감 건드리다가 안주인에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요 몇 년간 역사만 봐도 그런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지요. 기자처럼 제3자가 되면 훤히 그런 것이 보인단 말입니다. 그런데 권력자가 되면 아니더라고요. 권력자가 자신감을 갖는 것이 꼭 나쁘다고 할 거까지야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지나친 해석인데요. 여권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차기 구도를 설계하는 일 아닙니까. 설령 자기 사람이 뒤를 잇지 못해도 여권 대선가도에 흥행성이라도 보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막말로 현직 대통령이 누구를 되게 할 수는 없어도 안 되게 할 수는 있다는 것 아닙니까. 만약 1997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DJ 비자금 수사를 막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2002년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을 할 때 현대중공업을 세무조사해 정몽준씨 돈줄을 죄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자꾸 현실론, 상황론을 전개하게 되는데요. YS가 DJ 비자금 수사를 정녕 막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2002년엔 DJ 시절이니까 현대중공업 세무조사를 하지도 않았겠지만 순전히 가정을 전제로 말하면, 당시 분위기로 미루어 정몽준씨 ‘목’을 졸랐다가는 이회창씨가 더 큰 패배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분위기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이죠.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임기말이라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정치판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실론도 맞지만 대통령의 힘이라는 것은 마지막까지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인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현직 대통령과 각(角)을 세워 성공한 케이스는 YS가 유일한데, 그것은 YS가 여권 내 다른 후보에 비해 월등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지금 지지율로 보면 박근혜와 다른 후보군은 비교가 안되죠. 다른 후보군을 다 합쳐도 박근혜 지지율만 못하니까요. MB로선 그런 답답함이랄까 그런 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기존 김문수, 오세훈 외에 김태호를 더 합류시켰다고나 할까 뭐 그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겠어요. MB가 건설업자 출신이잖아요. 아마 2012년 대선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공사 기간=5년. 시행자=이명박. 시공자=김문수·오세훈·김태호 등. 공사 진척도=55%. 시행자=박근혜는 다른 공사를 하고 있는데 거긴 공사진척도가 80%죠. 만약 ‘이명박 도로’의 시공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 공기(工期)를 단축한다면 먼저 준공(竣工)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김태호는 김문수·오세훈이 땀을 뻘뻘 흘리고 공사를 하고 있는데 중간에 ‘백’으로 들어간 케이스죠. ‘뒷문으로 들어가도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CEO들의 철학인 듯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