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이슈] 영국 총선 결과 분석 : 월간조선

역사적인 선거였다. 5월 6일 실시된 영국 총선(總選)에서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은 306석을 얻어 의회 제1당이 됐다. 보수당은 57석을 획득한 자유민주당과의 연정(聯政)을 통해 13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이번 선거는 영국 보수주의 정치사(政治史)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캐머런은 유서 깊은 보수주의 전통, 특히 19세기 후반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비전을 되살리려 한다. 물론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다.

첫째, 나이 차가 크다. 2005년 12월 보수당 당수가 된 캐머런은 올해 불과 43세다. 그는 1812년 42세의 나이에 총리가 된 로버트 젠킨슨 (Robert Jenkinson) 이래 최연소(最年少) 총리다.

반면 디즈레일리는 영국 역사상 최고령(最高齡) 총리 중 한 사람이다. 디즈레일리는 두 번에 걸쳐 총리를 지냈는데, 그가 처음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64세였다. 그의 첫 번째 총리직은 1년도 안돼 끝났다. 그가 두 번째로 총리가 된 것은 70세 때였다. 그가 영국 정치사에 남을 눈부신 업적을 남긴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둘째, 배경이 다르다. 캐머런은 잘 알려진 것처럼 화려한 혈통(血統)의 가문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을 나왔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는 보수당 싱크탱크인 보수당연구소(Conservative Research Department)를 거쳐 존 메이저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 보좌관으로 일했다.

반면에 디즈레일리는 아웃사이더였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그는 월텀스토우대 히검홀을 나왔고, 보수당원이 되기 전에는 훗날 자유당으로 흡수되는 급진주의자 분파(分派)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셋째, 저술활동에서 차이가 난다. 옥스퍼드를 최우등으로 졸업했지만 캐머런은 이렇다 할 집필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디즈레일리는 소설가 및 정치평론가, 이론가로도 명망이 높다.

디즈레일리의 ‘토리 민주주의’ 계승

19세기 말 보수당의 위기를 극복하고 보수당 전성시대를 연 벤저민 디즈레일리.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캐머런은 디즈레일리가 주창한 ‘보수당식(式) 민주주의’, 즉 ‘토리 민주주의(Tory Democracy)’ 비전을 계승하려 한다. ‘어느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국가공동체(共同體)’를 구현하려 했던 것이 디즈레일리의 ‘토리 민주주의’다. 캐머런은 그 이상(理想)을 이어받아 다시 한 번 보수당 전성시대를 열려는 것이다.

캐머런이 디즈레일리의 이상을 계승하려는 것은 디즈레일리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디즈레일리가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던 19세기 중반 보수당은 일대 위기에 빠져 있었다. 영국 사회는 격변을 겪었다. 영국사가(英國史家) E. P. 톰슨의 지적처럼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19세기에 이르러 영국 사회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수많은 농민이 도시로 이주해 공장 노동자가 됐다. 이들은 빈부(貧富)격차와 인간 이하의 생활환경에 분노하면서 보다 많은 정치적 발언권을 요구했다.

그 결과 참정권이 대폭 확대되면서 도시 거주자와 노동자들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국교도(國敎徒), 귀족, 그리고 농촌 거주자 등을 핵심 지지층으로 삼았던 보수당에는 악몽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 결과 보수당은 1846~1870년 패배를 거듭했다.

이 기간 동안 존 러셀과 파머스턴 경(卿)은 휘그당과 자유당, 윌리엄 글래드스턴은 자유당, 애버딘 백작이 필주의자(Peelite : 19세기 중반 수입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곡물법’ 폐지 논란 당시,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보수당을 탈당했던 필 총리의 지지자들)를 대표해서 정부를 이끌었다. 반면 같은 기간 보수당의 집권 기록은 초라했다. 더비 경이 세 차례 총리가 됐지만, 모두 2년을 넘기지 못했다.

디즈레일리는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1840년대에 조지 스마이트, 존 매너스, 그리고 헨리 호프 등과 함께 ‘청년잉글랜드’(Young England) 운동을 결성했다. 산업화와 그에 따른 사회문제에 대해 젊은 보수주의자들의 대안(代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기득권(旣得權)세력과 급진변혁세력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제3의 길’을 찾으려 했다. 디즈레일리는 “사회에서 변화는 불가피하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변화의 방법이다”라면서 계층과 성(性), 종교를 불문하고 영국 국민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정치 비전을 구상했다.

캐머런, 보수당 개혁 그룹 결성

캐머런이 정계에 입문했을 때, 보수당은 커다란 곤경에 처해 있었다. 보수당은 199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사회·문화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히려 “근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s)”면서 전통적인 가치만을 고수하려 했다.

반면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의 리더십 아래 환골탈태(換骨奪胎)했다. 노동당의 전통적인 핵심 지지층인 노동조합의 지지에만 의존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젊은 도시 거주자 및 중산층(中産層)에 호소력 있는 정책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보수당은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에 참패(慘敗)한 이래 2002년과 2005년 총선에서 잇달아 패배했다. 보수당은 윌리엄 헤이그, 이언 던컨스미스, 마이클 하워드 등을 내세워 새로운 모습을 보려주려 애썼지만, 보수당의 쇠락은 멈출 줄 몰랐다.

보수당의 추락 속에서 캐머런은 조지 오스번(신임 재무부 장관), 마이클 고브, 에드 바이지 등과 함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잉글랜드 지역당’ ‘백인남성당’ ‘부유층·특권층을 위한 정당’이라는 보수당의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를 위해 캐머런 등은 대처주의와 선(線)을 긋고 나섰다. 정부는 절대악(絶對惡)이고 시장(市場)은 절대선(絶對善)이라는 이분법(二分法)에서 벗어나 노령층·저(低)소득층·소수(少數)인종 등 사회적 약자(弱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이념적 공통점 때문에 캐머런은 국내(國內)정책에서 디즈레일리와 유사한 정책을 추구한다.

1870년 재(再)집권한 디즈레일리는 일련의 온건 개혁정책을 통해 저소득층에 최소한의 삶의 질(質)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1874년에는 섬유산업 종사자의 노동시간을 하루 9시간 반으로 규정하는 ‘공장법’을 제정했다. 1년 뒤에는 ‘공공보건법’과 ‘노동자 거주환경 개선법’, ‘식품의약법’, ‘노사(勞使)관계법’, ‘노동조합법’ 을 만들었다. 1878년에는 10세 이하 어린이의 고용을 금지하는 ‘공장법’을 제정했다. 때문에 디즈레일리는 노동운동가들로부터 “보수당은 자유당이 50년 걸려도 하지 못할 업적을 5년 만에 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디즈레일리는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공공보건법’과 ‘노동자 거주환경 개선법’을 제정하면서도, 관련 사업의 집행 주체(主體)는 지방정부로 못 박았다. 같은 해 입안(立案)된 ‘우애단체법’은 정부에 등록한 민간단체가 제한적인 감사(監査)·감독을 받는 조건으로 부동산과 동산을 소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저소득 계층에 노령연금(老齡年金)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지난 4월 캐머런 영국 보수당 당수가 선거 유세 전 학생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캐머런도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려 한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중 재정적자(赤字)를 줄이기 위해 공무원연금 상한(上限)제도 도입과 공공(公共)부문 근로자 임금의 동결(凍結)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노령층을 위한 예산은 줄이지 않겠다”고 했고, 겨울철 난방비 지원과 기초생활보장비도 계속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한 뒤 캐머런은 “강도 높은 정부지출 삭감정책을 추진하겠다”면서도 저소득층을 위한 감세(減稅)정책을 마련, 최소한 2500만명의 저소득층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캐머런은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보다 근본적 방안으로 강도 높은 교육개혁을 단행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도 부유층 자녀들과 같은 교육환경과 교육기회를 누리게 하겠다”면서, 이를 위해 교사 임용기준을 높이고 우수 인재를 교사로 영입하기 위한 예산을 늘리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그는 비영리(非營利)재단 및 자선단체 등으로 하여금 ‘아카데미’라는 자립형(自立型) 공립학교를 설립,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 선택 폭을 넓히겠다고 약속했다. 스웨덴식 교육개혁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머런은 사회개혁정책 집행에 있어 중앙정부에 대한 과신(過信)을 경계한다. 그는 2009년 11월 10일 정치평론가 휴고 영을 기리기 위한 추모강연회에서 ‘큰 사회(Big Society)’ 비전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회개혁에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사회적 기업가, 지역사회운동가 등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노동당 정부 집권기간 동안 매년 평균 3000여 개의 새로운 법을 쏟아내고 4730억 파운드를 복지정책에 투입했지만, 빈부격차는 오히려 커지고 청년실업자의 숫자도 늘었다”고 비판했다.

캐머런은 외교정책에서도 디즈레일리를 닮고자 한다.

디즈레일리는 소수 진보성향 지지층을 의식해 이상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대외(對外)정책을 폈던 자유당의 글래드스턴과는 달리, 이상에 치우친 외교정책을 지양(止揚)하면서 외교정책의 중심에 국익(國益)을 놓았다.

동시에 그는 군사력 사용에 신중을 기했다. 디즈레일리 시대의 영국은 세계 1위의 해군력을 자랑했지만, 함부로 무력(武力)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열강(列强) 사이에서 중재자(仲裁者) 역할을 자임(自任)했다. 이와 같은 대외정책은 큰 성과를 냈다.

1875년 디즈레일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집트 수에즈운하(運河) 소유권을 획득,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가는 전략(戰略) 수송로를 확보하고 아시아와의 교역을 증진하는 길을 열었다. 1878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오스만 튀르크 간의 이견(異見)을 해결하기 위해 열린 베를린 회담에 참석, 러시아의 영향력을 억제하면서 키프로스를 영국령(領)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대외정책은 도시 노동자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보수당 지지층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자유주의적 보수주의 추구

캐머런의 대외정책은 디즈레일리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캐머런은 대외개입을 자제하는 대신,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는 대외정책을 통해 도시 중산층, 35세 미만 젊은 층의 지지를 확보하려 한다. 그는 총선공약집에서 UN의 권고를 따라서 2013년까지 국민소득의 0.7%를 국제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단, 그는 지원금액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지를 모니터한 뒤 그러지 않을 경우 지원규모를 축소하거나 지원을 중단해 후진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도록 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캐머런이 평화주의에 경도(傾倒)된 것은 아니다. 그는 국방력 감축에 반대한다. 야당 당수 시절 그는 고든 브라운 수상의 국방정책, 특히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영국군이 충분한 장비를 갖출 수 있는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병(派兵), 다수(多數)의 사상자(死傷者)를 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캐머런은 잠수함 발사 전략미사일 현대화를 추진하는 등 핵(核)억지력 확보를 지지한다. 캐머런 정부의 국방부 장관을 맡게 된 리엄 폭스도 “북한과 이란 등의 핵위협이 상존(常存)하는 한 핵전력(核戰力) 폐기는 무모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2006년 9월 11일 영미(英美)관계 증진을 위한 단체인 ‘영미프로젝트’(British-American Project)에서 행한 연설에서 캐머런은 “인종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수단 다르푸르 지역 등에 인도주의적 개입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리아·이란 등을 비판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계속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군사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확산하려 하지는 않겠다”고 함으로써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과는 생각이 다름을 분명히 했다. 캐머런은 이 자리에서 “나는 ‘신(新)보수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보수주의’(Liberal Conservatism)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함께 이라크전(戰)을 일으킨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염두에 둔 것이다.

디즈레일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디즈레일리 이후 보수당은 수십 년에 걸쳐 전성시대를 구가(謳歌)했다. 그가 퇴임한 뒤 보수당은 글래드스턴과 로즈베리 백작이 이끄는 자유당에 맞서 1874년에서 1902년에 이르는 28년 동안 모두 4회, 총 20년을 집권했다. 이 기간 동안 자유당도 수차 정권을 잡았지만, 1880~1885년 집권한 글래드스턴 정권을 제외하면 모두 2년 미만의 단명(短命)에 그쳤다.

세 가지 난제 극복이 관건

캐머런이 이렇게 디즈레일리를 자신의 모범으로 삼고 있지만, 그가 디즈레일리의 업적에 준하는 업적을 이룰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캐머런의 앞길에는 난제(難題)가 산적해 있다.

첫째, 경제난을 극복해야 한다. 디즈레일리의 사회개혁은 심각한 경제위기가 없는 상태 아래서 진행됐다. 산업활동은 활기를 띠었고, 전(全) 세계에 걸친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식민지는 안정적인 원자재(原資材) 공급처와 영국산 제품의 소비처 역할을 했다.

캐머런이 직면한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영국은 엄청난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2009년 현재 재정적자는 1780억 파운드, 정부부채(負債)는 GDP의 60%대에 육박했다. 경기회복세는 둔하기만 하다. 2009년 GDP 성장률은 -5%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G7 국가 중 가장 긴 경기침체기를 겪고 있다.

둘째, 영미 관계 재(再)정립을 중심으로 한 국제무대에서 영국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캐머런의 영국은 팍스 브리태니카 시대를 구가하던 디즈레일리 시대의 영국이 아니다.

가장 큰 고민은 영미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와 양국(兩國)관계는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걸어왔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외교성과를 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 경제강국들이 발언권을 높이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필수조건인 국방과 외교 예산을 큰 폭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연정을 순항(順航)시켜야 한다. 대부분의 서(西)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영국은 연정의 전통이 거의 없다. 자유민주당의 전신인 자유당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의 전시(戰時)정부에 동참한 뒤에는 연정이 수립된 적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연정에 가장 근접한 시기는 1974년이었다. 소수당(少數黨) 정부를 이끌어야 했던 노동당의 해럴드 윌슨이 자유민주당의 협조하에 국정을 운영했다. 따라서 캐머런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정치실험을 하게 됐다.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자유민주당 좌파(左派) 의원들과 보수당 우파(右派) 의원들 사이에서 벌어질 충돌을 막으며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

5월 12일 취임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정치 (New Politics)’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캐머런. 과연 그가 ‘토리 민주주의’의 전통을 되살려 새로운 정치를 꽃피워낼 수 있을지,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보수당 전성시대를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 보수당이 예상보다 부진했던 이유

경제위기 해법 제시와 커뮤니케이션 실패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 차이는 20%를 넘었다. 보수당이 의회 다수당(多數黨)으로 단독 집권을 하기 충분한 수치였다. 하지만 지지율 격차는 점점 줄기 시작하더니 총선 직전에는 5%에서 7%대에 머물렀다. 세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첫째, 경제위기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캐머런은 금융기관이 도산위기에 놓였음에도 구제금융 집행에 반대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는 입장을 180도 바꿨다.

아울러 신뢰할 만한 경제팀을 꾸리지 못했다. 그림자내각의 재무장관 조지 오스번은 경제위기를 극복해 내기에는 연륜이나 경험이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둘째,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했다. 캐머런이 내세운 ‘큰 사회’ 정책에 대해 대다수 유권자들은 이렇다 할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책 아이디어 자체의 문제보다도 마케팅에 미숙했기 때문이다. ‘큰 사회’ 정책을 설명하는 캐머런은 대학 교수가 강의를 하는 것을 연상시켰다. 왜 현 시점에서 그런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간명한 설득을 하지 못했다.

셋째, 상대를 과소(過小)평가했다. 보수당은 TV토론회에 대비해서 미국으로부터 오바마의 TV 토론팀을 초빙했지만 클레그 자유민주당 당수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94만명이 시청한 1차 토론회 이후 자민당의 지지율은 10% 이상 치솟았다. 이로써 보수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는 희망사항으로 끝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