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 백악관의 匠人들 : 월간조선

백악관은 미국 대통령 가족이 살 집으로 만들어졌다. <웨스트 윙>과 같은 드라마가 있지만, 원래 백악관은 대통령의 ‘집무실’이 아니라, 대통령의 부인과 자녀, 손님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출발했다.

‘퍼스트 패밀리’가 사는 집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맞는 최고·최적의 특별한 환경을 필요로 한다. 특별한 환경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백악관에서 현재 퍼스트 패밀리를 책임지는 사람은 약 90명 정도이다. 이들은 대통령 가족과 백악관을 찾는 손님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특별한 사람, 즉 미국판 장인(匠人)들이다. 청소와 세탁을 하는 가정부에서부터, 파티 때 칵테일을 나르는 버틀러(Butler), 냉난방 시설의 파이프를 점검하는 엔지니어, 정원을 손질하는 정원사,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을 관리하는 이발사, 파티 때 등장하는 디저트를 만드는 셰프, 취임식 때 입는 옷을 준비하는 재단사, 대통령 집무실에 그림을 전시하는 큐레이터, 부러진 의자를 손질하는 목수, 정상회담이 열리는 회의실의 꽃 장식사, 식탁 위의 테이블과 창문의 커튼을 장식하는 데코레이터,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지는 쿠킹 셰프….

갖가지 명목의 타이틀을 가진 백악관 장인은 대통령을 가까이하는 신분이란 이유로 정보기관이 특별하게 채용, 관리한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 관한 한 적어도 해당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다. 백악관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頂上)에게 최고의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백악관 주방을 돌아보는 미셸 오바마.

90명의 백악관 장인을 선발하는 총책임자는 대통령의 부인, 즉 퍼스트 레이디다. 물론 최종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대통령의 아내이자 주부인 퍼스트 레이디가 이들의 실질적 인사권자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백악관 장인은 국가예산에 의해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지만, 실제로는 백악관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퍼스트 레이디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90명의 백악관 장인 가운데 필자가 주목한 사람은 백악관 내 꽃 장식을 담당하는 사람, 대통령의 옷을 만드는 양복 재단사, 골동품과 역사적 유물 그림들을 관리하는 큐레이터, 대통령의 머리를 다듬는 이발사,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지는 쿠킹 셰프 등 5명이다. 이들은 백악관 장인 가운데 핵심에 해당된다.

이 글은 오바마 대통령에 관한 부분은 다루지 않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일상은 1급 국가비밀로 돼 있어서 장인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의 현직 보스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어떤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지조차 1급 비밀이다.

기억과 꿈을 만드는 백악관 쿠킹셰프 월터 샤이브

백악관 쿠킹셰프 월터 샤이브.

“백악관 쿠킹셰프(Cooking Chef : 각종 오찬·만찬의 애피타이저와 메인코스 요리를 담당하는 셰프. 백악관에는 쿠킹셰프 외에 빵과 디저트 등을 담당하는 패스트리 셰프(Pastry Chef)가 있다)의 역할은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백악관 북쪽 문에서 200m 떨어진 세인트 레기스 호텔에서 만난 월터 샤이브는 가죽으로 된 브라운색의 큰 공책을 들고 나타났다. 샤이브는 185㎝ 정도의 큰 키에 미국인치고는 다소 날씬한 몸매를 가진 인물이다. “좋은 레스토랑의 기준은 먼저, 셰프가 날씬해야만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월터 샤이브는 1994년 4월~2005년 2월 미국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졌던 백악관 쿠킹셰프이다. 1954년 태어난 샤이브는 보통 10대 때부터 요리사 경력을 시작한 다른 일류 요리사들과는 달리 22세 때부터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샤이브가 요리 공부를 시작한 곳은 CIA였다. 그렇다고 그가 미 중앙정보국에서 요리 공부를 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기서 ‘CIA’는 미국 최고의 셰프양성소인 뉴욕 소재 미국요리학교(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뜻한다.

그는 “MIT 출신 박사인 아버지에게 셰프가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참 동안 웃은 뒤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나 지금부터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샤이브가 CIA 실습과정을 끝낸 것은 25세 때이던 1979년이다. 이후 워싱턴과 보스턴의 힐튼 호텔, 플로리다주 휴양지에서 셰프로서 일했다.

샤이브가 백악관에 취직한 것은 1994년이다. 셰프라는 직업을 택한 지 15년 만에 백악관 쿠킹셰프 자리에 오른 것이다.

“처음으로 셰프로 일한 워싱턴 캐피털 호텔에서 백악관까지의 거리는 500m 정도이다. 500m 나아가는 데 15년이 걸린 셈이다.”

1명 뽑는 백악관 쿠킹셰프에 4000명 넘게 지원

백악관 쿠킹셰프 채용 방식은 퍼스트 레이디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재클린 케네디가 1961년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르네 베르던을 뉴욕에서 데려온 이래, 퍼스트 레이디가 알고 있던 인물이 발탁되는 것이 백악관의 쿠킹셰프 자리였다.

공개경쟁을 통해 쿠킹셰프가 뽑힌 것은 클린턴 대통령 때부터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백악관이 쿠킹셰프를 찾고 있다고 널리 보도했다.

샤이브가 백악관에 이력서를 넣었을 때 이미 지원자가 4000명에 이르렀다. 1차 시험은 백악관에서 이뤄졌다. 보통 15~20명이 한 조(組)가 되어 시험을 치렀다. 모두 보안을 요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함께 들어간 셰프 외에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면접관은 호텔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백악관 수석집사, 퍼스트 레이디의 비서와 같은 연회담당 비서 두 사람 등 모두 10여 명이었다.

질문은 요리를 어디서 배웠는지, 어떤 요리를 잘 만드는지, 수백 명 단위의 요리를 만들 수 있는지, 대통령 가족에게 주로 어떤 음식을 서비스할 것인지 등이었다. 샤이브는 “나는 당시 맛은 물론, 건강을 생각하는 가장 미국적인 요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1, 2차시험을 통과한 뒤 3차인 결선의 날, 아침부터 음식을 만들어 10명의 심사위원에게 제공했습니다. 나는 당시 힐러리 클린턴에게 ‘내가 만든 음식은 다른 수백 명의 손님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요리’라고 말했죠. 백악관이 국빈만찬(國賓晩餐)을 도울 셰프를 찾는다고 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춘 요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대통령 부부 두 사람을 위한 요리와 수백 명분의 요리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강조했습니다.”

최종 테스트가 끝난 이틀 뒤인 저녁 9시, 전화가 왔다. “당장 내일 아침 7시까지 백악관으로 나오라”는 명령이었다.

샤이브가 힐러리와 만나고 나오자 클린턴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얼마나 큰 햄버거를 만들어줄 것인가?”

아칸소 출신의 클린턴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미국인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인 햄버거였다.

DJ 만찬 時 쌀 케이크로 한국인 배려

1998년 6월 8일 백악관 국빈만찬 시 건배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미 대통령. 이때 나온 와인은 30달러가량의 미국산이었다.

백악관에서 이뤄지는 만찬은 국빈방문이거나 공식방문이면서도 특별히 중요한 정상에게만 적용되는 의전(儀典)이다. 공식방문의 경우 점심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실무방문의 경우 아예 식사 없이 끝내는 경우도 있다. 만찬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미국과 방문국이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찬메뉴는 방문국 정상이 워싱턴을 찾기 3개월 전부터 논의된다. 국빈만찬에 제공되는 음식은 방문국의 요리문화와 정상의 건강과 나이, 취향을 고려해 만들어진다.

1998년 6월 9일 백악관에서 이뤄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만찬은 250명이 초대된 대규모 파티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클린턴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샤이브는 당시 만찬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만찬에서 제공된 애피타이저는 텍사스산(産) 양파인 비달리아와 토마토 소스 버섯을 곁들인 왕새우 요리였다. 버섯을 넣어 맛을 부드럽게 하면서 칼로리를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노령(老齡)의 김대중 대통령을 배려한 요리라고 볼 수 있다.

이어 메인으로 나온 것은 생강과 설탕을 버무려 만든 양고기 요리였다. 배추의 사촌쯤 되는 채소인 박초이(청경채)를 넣어 느끼한 맛을 덜어 주었다. 양고기와 더불어 쌀 케이크도 함께 내놓아 한국인의 입맛을 배려했다. 필자 생각으로는 참석자들 대부분은 쌀로 만든 케이크가 나오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 같다.

양고기와 함께 샐러드가 나왔지만, 양치즈가 간간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과연 반응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한국인으로 양치즈를 먹는 경우는 딱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요리에 아주 정통하거나, 아사(餓死) 직전이기 때문에 아무것이나 기꺼이 먹을 준비가 된 사람. 단언컨대, 한국인의 99%는 양치즈를 입에 넣는 순간, 거의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양치즈를 접했을 때, 노령의 김대중 대통령의 표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백악관은 보통 만찬에 화이트와인·레드와인·스파클링와인(샴페인) 등 세 종류의 알코올을 제공한다. 전부 미국산인 것은 물론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만찬 때, 두 정상의 건배를 위해 사용한 스파클링 와인은 캘리포니아의 에르미타제 로델러(L’Ermitage Roederer)가 만든 1991년산 쿠베였다. 클린턴 대통령의 파티를 위해 백악관이 직접 요청해서 만든 와인이었다. 당시 한 병당 30달러 선에서 거래되던 중간급 와인으로, 현재는 70달러 정도다.

백악관 만찬에 등장하는 와인은 보통 시가 30달러 전후(前後)의 미국산이 대부분이다. 가끔 청와대에 등장하는 100달러 이상의 와인은 백악관에는 아예 없다.

이날 나온 화이트 와인은 샤도네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샤퍼에서 만든 1996년산 레드 숄더(Red Shoulder)였다. 드라이하고 뒤끝이 깨끗한 레드 숄더는 1996년산이 가장 인기가 높으며, 당시 30달러 정도였다. 현재 8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이 와인은 나파밸리의 샤도네 중에서는 비교적 고가에 들어가는 와인이다.

레드 와인은 오리건주(州)의 렉스 힐(Rex Hill)에서 만들어진 피노노와르 1994년 리저브였다. 오리건주는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고급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곳으로, 렉스 힐의 와인은 고급으로 정평이 나있다. 피노노와르 리저브의 경우 현재 약 2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국빈만찬의 한 끼 가격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 점심식사를 하는 백악관 요리사들.

백악관에서 베풀어지는 국빈만찬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1인당 얼마나 할까? 이 같은 궁금증을 풀어줄 행사가 지난 2001년 5월 저녁 워싱턴의 백악관 뒤편에 인접한 헤이 애덤스 호텔에서 열렸다.

헤이 애덤스 호텔이 재현한 백악관의 국빈만찬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주관하는 요리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참가자 1인당 비용은 200달러였다. 한 끼에 200달러짜리 식사는 평균적인 미국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싼 것이다. 하지만 이 가격은 백악관 국빈만찬을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해 책정된, 이윤(利潤) 제로의 가격이었다.

헤이 애덤스 호텔 내 존 헤이 룸에서 열린 국빈만찬 참가자는 전부 120여 명이었다. 이날 호텔 측이 제공한 메뉴는 1987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고르바초프 구(舊)소련 공산당서기장과의 국빈만찬을 재현한 것이었다. 호텔 측이 레이건-고르바초프 만찬을 선택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이 역대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미식가(美食家)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헤이 애덤스에서 국빈만찬의 이벤트가 열리는 동안 스미소니언은 백악관의 의전관련 전문가를 초청, 국빈만찬 관련 매너에 대한 특별 레슨도 실시했다.

샤이브는 백악관 요리사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대통령의 건강,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체중이라고 말한다. 특별한 질환이 없는데도 대통령의 체중이 늘거나 줄어드는 것은 셰프의 요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샤이브는 대통령의 건강을 고려해서 백악관 음식 담당자들이 다음과 같은 3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 콜레스테롤과 만병의 근원이 되는 지방과 설탕, 프로틴을 낮추는 음식을 만든다. 동물성 지방을 삼가고, 붉은 고기(Red Meat)를 없애는 것은 기본적인 원칙이다.

둘째,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 요리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할수록 맛과 영양이 더해진다.

셋째, 철저히 미국산 재료를 사용한다. 백악관에 사용되는 음식의 재료는 99.99%가 미국산이다. 나머지 0.01%는 미국에서 찾을 수 없는 재료, 즉 특정 지역에만 존재하는 향신료·치즈·올리브 오일과 같은 것이다. 백악관에서 먹는 요리란, 미국산 재료로 만들어진 미국식 요리이다. 대통령의 요리도 예외일 수 없다.

백악관 밖의 양복 匠人 조지스 드 파리

‘대통령의 재단사’ 조지스 드 파리. 뒤에 오바마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이 보인다.

백악관에서 동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워싱턴 14번가 650번지에 위치한 양복점 조지스 드 파리. 미국 대통령이 입는 양복을 만드는 재단사가 일하는 곳이다.

파리가 백악관과 인연을 처음 맺은 것은 1963년 린든 존슨 대통령 때였다. 이후 백악관의 주인으로 들어온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등 8명의 대통령이 파리의 단골손님이었다. 40년 이상 백악관과 인연을 맺은 것이다.

파리는 ‘대통령의 재단사(裁斷師)’라는 타이틀을 가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양복 디자이너다. 그의 고객에는 미국 대통령뿐 아니라 워싱턴과 세계의 실력자들도 포함된다. 고객 리스트에 올라 있는 사람은 부시 대통령에서부터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미국 상·하 양원(兩院) 의원 수백 명, 그리고 워싱턴의 외교관 등이 있다.

이들이 양복 한 벌을 위해 지불하는 금액은 최하 4000달러부터 시작된다. 가볍고 보온성과 통풍성이 뛰어난 고급 디자인의 양복지로 만든 신사복의 경우, 한 벌에 1만 달러가 넘는다. 조지스 드 파리의 이름이 새겨진 양복은 바로 돈과 권력, 명예의 상징이다.

부시 양복 주름의 비밀

백악관에 고용된 공무원이 아니라 자신의 양복점을 갖고 있는 파리는 엄밀히 말해 백악관의 장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백악관의 그 어떤 장인보다도 긴 경력과 경험을 가지고, 대통령을 위해 일해 왔다. 그는 대통령이 입을 양복을 재단하기 위해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세 번씩 백악관을 드나든다.

파리는 키가 155㎝를 넘지 않는 단신(短身)이다. 머리가 보통 사람보다 두 배 정도 크고 핑크빛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영원히 기억할 수밖에 없다. 목에 걸친 노란색의 재단용 자와 오른쪽 손가락에 낀 골무를 보면 그가 양복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60년 이상 바느질을 하고 가봉용 핀을 만져 온 그의 손가락은 거의 돌처럼 굳어져 있다.

파리가 미국을 넘어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04년 6월 대통령 선거 TV토론회를 통해서였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파리가 만든 양복을 입고 출연했다. 부시는 가끔씩 말을 더듬는 특유의 말버릇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역사상 IQ가 가장 낮은 대통령 후보’라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하지만 그날 부시는 전체적으로는 민주당 후보 존 케리에게 밀리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능숙히 대답하면서 예상 밖으로 선전(善戰)했다.

반(反)부시 인터넷 매체가 ‘부시의 선전’을 부시가 입은 재킷에 생긴 주름과 연결시킨 것은 텔레비전 토론회가 끝난 직후였다. 대통령이 입은 양복 상의(上衣)의 등 뒤에 수수께끼의 T자형 주름이 생긴 것이 텔레비전에 비치면서 과연 그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에서 일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그럴듯한 얘기는 등 뒤에 생긴 주름이 옷 속에 감추어 둔 무선장치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무선장치는 백악관 정치고문 칼 로브가 부시가 기자들의 질문에 능숙하게 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장치했다는 얘기였다.

결국 부시의 양복을 만든 재단사 파리에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파리는 “전화하거나 찾아온 기자의 수가 500명이 넘는다. 그럴듯한 얘기를 원하는 기자들을 피해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로 여행을 갔다고 했다”고 말했다.

파리는 부시의 양복 상의에 잡힌 T자형 주름은 몸에 잘 맞는 양복을 입은 사람이 동작을 크게 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 여의고 펜팔 친구 만나러 미국에 왔다 정착

백악관 서재의 카터 미 대통령. 카터 대통령은 패션에 둔감했다.

파리가 자신의 일생을 건 직업으로서 옷 만들기에 나서게 된 계기는 14세 때 맞은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 때문이다. 그가 고향인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25세 되던 1960년 봄이었다. 원거리 펜팔로 사귄,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닮은 프랑스계 미국인 여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직접 만나 보니 그 여인은 10세 연상에다 미모와는 거리가 먼 뚱뚱한 여성이었다.

할 일을 찾던 파리는 워싱턴의 한 작은 양복점 심부름꾼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반년쯤 일하면서 모은 400달러로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면도칼로 천을 자르고, 미싱도 없이 전부 손으로 바느질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미싱은 당시 돈을 벌어 처음으로 구입한 물건입니다. 40년이 지났지만 독일제인지 아직도 아주 잘 돌아갑니다.”

파리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1963년 루이지애나주 출신 하원의원을 통해 당시 부통령 린든 존슨을 만나면서였다. 백악관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파리는 “거구(巨軀)인 존슨의 몸을 재기 위해서는 항상 작은 책상을 이용해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파리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전통적인 영국식 재단법에 의해 양복을 만든다.

“나는 직접 손으로 옷을 만듭니다. 구체적으로는 영국식 재단법이죠. 상의·하의와 함께 조끼를 반드시 준비합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 할아버지가 입고, 할머니가 만들었던 1세기 전 스타일의 옷을 만듭니다.”

백악관 근처 파리의 양복점이자 작업실에 들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19세기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수동식 스팀 다리미, 작동이 가능한지조차 의심스러운 미싱, 40㎝ 크기의 무거운 가위, 쇠로 된 무거운 자 등은 양복점 안에 가득한 다리미에 전 옷감 냄새와 함께 묘한 시간차를 느끼게 만든다. ‘전통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파리의 철학이다.

파리는 린든 존슨 이래 8명의 미국 대통령의 패션 감각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조지 W. 부시(아들) 대통령은 초콜릿색과 네이비 블루색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그는 무척 친절하고 사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세 번씩 백악관으로 불려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파리는 “대통령의 양복을 만들 때는 치수를 재거나, 가봉(假縫)을 하기 위해 백악관에 직접 들어간다. 옷은 양복점에서 만들지만, 대통령에게 옷을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확인시켜 가면서 완벽한 제품을 만든다”고 했다.

파리에 의하면 민주당 출신인 카터와 클린턴은 옷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치수를 재는 동안, 카터와 클린턴은 아무 말 없이 거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옷에 관한 센스가 세련되지 못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카터는 클린턴보다 옷에 대한 감각이 더 둔했습니다.”

파리의 양복점 작업실 뒤쪽 벽에는 파리가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 클린턴 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부시 부자와 클린턴이 보낸 사신(私信)도 벽 한쪽에 걸려 있다.

“당신이 만들어준 넥타이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로라도 함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2001년 3월 5일 조지 부시”

“미국 정치인들의 옷, 정장인지 작업복인지”

프랑스 출신인 파리는 미국 정치인들의 패션 감각에 대해 혹평했다.

“옷에 대한 센스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미국 정치인들은 나의 모국(母國)인 프랑스 정치인들에 비해 상당히 수준이 낮습니다. 그들은 가끔 정장(正裝)인지 노동자의 작업복인지 모를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하지만 정치인의 패션은 단순히 의상(衣裳)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환경의 산물이다. 유럽에 비해 미국 정치가는 겉모습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이 정도(正道)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파리도 그 점은 잘 알고 있다.

“미국 정치가 사이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마오쩌둥(毛澤東)이나 카스트로처럼 대중과 같은 옷차림을 하는 것이 미덕(美德)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고급 모자를 쓰는 것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는 전통을 만든 사람은 멋쟁이로 알려진 존 F. 케네디입니다. 유럽이나 리비아의 카다피와 달리, 미국인들은 정치인의 패션이 일반인들의 모델이 된다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경우 정치인의 패션이 국민들 사이에서 곧바로 유행한다. 유럽의 경우 귀족이 존재하고 그들의 문화를 동경하는 대중이 존재하지만, 미국은 귀족문화를 피해 온 청교도가 개척한 나라다. 미국인들은 일요일에 교회 갈 때 외에는 정장 입기를 꺼린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중에는 패션에 민감했던 대통령도 많다. 옷에 가장 관심을 쏟았던 인물은 초대(初代)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다. 그는 항상 “남자의 권위와 가치는 그가 입고 있는 옷을 통해 나타난다”고 말했다.

대통령 이발사가 된 아프간 총리의 딸 자히라 자히르

아프간 총리의 딸에서 미국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 자히라 자히르.

자히라 자히르의 공식 타이틀은 워터게이트 호텔 ‘자히라 살롱’의 사장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여학생 지원단체인 ‘자히라의 학교를 돕는 친구들(Friends of Zahira’s Schools)’의 총책임자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자히라는 ‘대통령의 이발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 않다. 백악관은 이발사나 헤어드레서를 정식으로 채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자히라도 ‘백악관 장인’의 범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백악관에는 이발소나 뷰티살롱이 따로 없다. 백악관 사람들은 백악관 밖에서 머리를 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예외이다. 1분 1초를 아껴야 하는 대통령은 이발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결국 이발사를 백악관 안으로 불러들이는, ‘출장 이발’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자히라는 바로 출장이발을 위해 대통령을 만나는 인물이다. 한 번 갈 때마다 대통령 개인의 돈으로 팁을 포함해 30달러 정도를 받는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발사’와 대통령의 관계는 다른 어떤 정치가나 유력자(有力者)보다 깊다. 대통령을 1대1로, 그것도 주기적(週期的)으로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가끔 이발사에게 국내·외 문제에 관해 의견을 묻기도 한다. ‘인(人)의 장막’에 가려진 대통령에게 이발사 자히라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물어볼 수 있는 중요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호텔 안에 있는 자히라의 뷰티살롱 벽에는 눈에 익은 많은 사람의 사진이 30여 장 걸려 있다. 조지 H. 부시와 바버라에서부터 조지 W. 부시와 로라, 역대 정부 각료, 플라시도 도밍고와 마거릿 대처의 모습도 눈에 띈다.

수많은 사진 중에서 자히라가 가장 아끼는 것은 흑백으로 된 자신의 아버지 사진이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케네디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60년 워싱턴을 방문했던 자히라의 아버지 압둘 자히라는 당시 아프가니스탄 하원의장이었다. 압둘 자히라는 이후 아프가니스탄 총리를 지냈다.

자히라는 1975년 남편이 유엔주재 아프가니스탄 부대사로 뉴욕으로 부임하면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자히라의 미국 생활은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공산쿠데타가 발생, 왕정(王政)이 무너졌다. 국왕은 해외로 망명했고, 자히라의 아버지는 체포되어 가택에 구금됐다.

뉴욕의 아프가니스탄 대사관 직원 전원에게는 본국 귀환명령이 내려졌다. 자히라에게 있어서 귀국이란 곧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자히라는 “조국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자히라의 가족은 미국 망명(亡命)을 선택했다. 미국에 주저앉기는 했지만, 본국으로부터의 송금(送金)이 끊어진 상태에서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자히라는 세 명의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취미로 배워뒀던 미용이 도움이 됐다. 다행히 미국에서 이발사나 미용사는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 없는 직업이었다. 망명생활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자히라는 뉴욕 맨해튼의 작은 미용실에 취직했다. 총리의 딸, 외교관의 부인에서 보통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는 미용사가 된 것이다.

자히라가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옮긴 것은 1985년이었다.

“내가 취직한 곳은 세인트 레기스 호텔 내 지하에 있는 작은 이발소였습니다. 벽에는 닉슨, 포드, 레이건을 비롯해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정부고위 관료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레이건의 이발사 밀턴 피트와의 만남

자히라가 취직한 이발소는 과거 닉슨과 포드의 머리를 깎았고, 당시 레이건의 이발사로 일하고 있던 밀턴 피트가 주인으로 있는 곳이었다.

자히라는 피트를 돕는 보조이발사였다. 손톱 다듬기, 머리를 감는 일, 염색 등을 담당했다.

“피트의 이발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나서 피트에게 내가 아프간 총리의 딸이란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피트는 깜짝 놀라면서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하더군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총리의 딸이 아니라, 머리를 손질하는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죠.”

세인트 레기스 호텔 이발소에는 공화당의 고위 실력자들이 수시로 출입했다. 피트가 대통령의 이발사이고, 호텔이 백악관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피트가 백악관에 들어가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의 손톱 깎는 일을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물었어요. 고마운 제의였지만, 처음에는 싫다고 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상층계급에 속했던 나로서는 백악관에 들어가면 잊어버렸던 옛 기억이 되살아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피트는 매주 화요일 오전에 백악관에 들어갔다. 대통령이 손톱 다듬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레이건부터였다. 할리우드 출신의 레이건 부부에게 있어서 손톱 다듬기는 머리를 깎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습관이었다.

피트가 자히라에게 대통령 부부의 손톱 다듬기를 맡아 달라고 한 것은 담당자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자히라는 결국 피트의 부탁에 못 이겨 백악관으로 들어갔다.

“아프간에 스팅어 미사일을”

미국이 제공한 스팅어 미사일로 무장한 아프간 전사(戰士). 자히라는 레이건이 아프간에 스팅어 미사일을 제공하도록 조언했다.

자히라가 레이건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아프간 총리의 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레이건은 그녀의 두 손을 잡으면서 “미국은 아프간인들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건은 이날 자히라에게 “스팅어 미사일을 아프간 반소(反蘇) 저항세력에게 제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소련군 헬리콥터를 잡을 수 있는 휴대용 지대공(地對空) 미사일을 아프간 저항세력에게 제공하는 문제는 그 무렵 미국 정가(政街)의 핫 이슈였다. 미(美) 의회에서는 스팅어 미사일을 현대적 군사지식이 없는 아프간인들에게 넘기는 데 대해 부정적이었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자히라는 얼른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레이건은 “곰곰이 생각해서 12일 뒤에 다시 얘기를 해 달라”고 말했다.

12일 뒤란, 레이건이 다음번 이발을 하는 날을 뜻했다. 자히라는 군사전문가가 아닌 자신이 스팅어 미사일 문제에 대해 대통령에게 얘기해야 한다는 데 대해 커다란 부담을 느꼈다. 12일 뒤 다시 백악관을 찾았을 때, 자히라는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무기에 관한 한, 아프간인들은 천부적(天賦的)인 재능을 갖고 있다.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미사일을 제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아프간의 반소 전사(戰士)들에게 스팅어 미사일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자히라가 레이건의 이발사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피트가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트 대신 레이건의 머리를 깎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레이건의 이발사가 되다

“당시 나는 너무도 떨려서 어떻게 일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였어요. 낸시는 레이건 대통령이 머리를 깎을 때 항상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죠. 레이건이 나에게 뭔가 농담을 걸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떨렸어요. 레이건은 농담을 걸었는데도 반응이 없자 ‘왜 웃지 않는거지’라고 하더군요.”

자히라는 백악관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머리를 깎은 여성 이발사이다. 레이건은 자히라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듯 “우리가 지금 기네스북의 현장을 만들고 있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후 자히라는 70대에 접어든 피트를 대신해 레이건의 이발을 맡게 된다.

“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그 어떤 정치가보다도 멋을 아는 사람이었어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스타일을 가진 대통령이었죠. 헤어스타일은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자히라는 백악관을 드나드는 동안,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 부시도 단골손님으로 만들었다. 부시는 1988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자히라를 특별손님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부시는 자히라를 아들인 조지 W. 부시에게도 소개해 주었다. 자히라는 2001년 1월 20일 조지 W. 부시의 취임식 날 아침에 그의 머리를 깎으면서 아버지에 이어 아들과도 인연을 맺었다.

클린턴은 전용이발사를 쓰는 대신, 민주당 선배인 지미 카터처럼 유니섹스 헤어 드레서에게 머리를 맡겼다. 클린턴 시절, 헤어 드레서는 수시로 바뀌었다. 클린턴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헤어 드레서를 만난 인물이다. 한 번 이발료가 200달러에 달하는 베벌리힐스의 헤어 드레서도 그중 한 명이다.

클린턴이 고급 헤어 드레서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할리우드와 특별한 커넥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헤어 드레서를 자주, 많이 이용한 것은 할리우드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히라는 클린턴과 조지 W. 부시를 예로 들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공화당 대통령은 짧은 머리에 옆머리도 짧게 깎으면서, 아주 고전적인 스타일의 머리 모양을 원하죠. 반면 민주당 대통령은 다소 긴 머리를 원하며, 뒷머리도 긴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자히라에 의하면, 민주당 대통령이 공화당 대통령보다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더 쓴다고 한다. 공화당 대통령은 이발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뿐 별로 머리에 신경을 안 쓰는 타입이다. 민주당 대통령이 헤어스타일에 민감한 이유는 이발사가 아닌 유니섹스 헤어 드레서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적용되는 미적 감각을 남성인 대통령에게도 응용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머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민주당 대통령은 헤어스타일을 통해 보수적인 이미지를 타파(打破)할 수 있다고 보는지 항상 새로운 머리 스타일에 주목한다.

비밀경호원 출신의 백악관 큐레이터 렉스 스카우튼

비밀경호원 출신으로 백악관 수석큐레이터를 지낸 렉스 스카우튼.

“백악관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준비해야만 합니다. 수개월 전에 만들어진 스케줄에 의해 움직이지만, 항상 새로운 상황이 닥칠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의 최고 통수권자가 사는 집을 지키는 장인으로서 하루하루가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백악관 역사상 최장수 장인으로 알려진 전 큐레이터 렉스 스카우튼은 2001년 이후 거의 모든 사회활동을 끊고 워싱턴 근교 자신의 집에서 조용히 생활하고 있었다. 평범한 2층 집 안은 그의 예술적 감각을 증명하듯, 갖가지 그림과 장식물들이 기품 있게 장식돼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린 그림과 한국의 이승만(李承晩)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화병, 일본 황실(皇室)에서 얻었다는 작은 도자기가 깨끗이 전시돼 있었다.

스카우튼은 겉보기에는 1925년생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지만, 연약한 목소리 속에서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스카우튼은 1986~1997년의 11년간 백악관 수석큐레이터로 일했다. 그의 나이 61세 때부터 72세 때까지였다. 스카우튼이 수석큐레이터로 일한 시기는 백악관 역사상, 큐레이터 업무가 완성기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스카우튼은 원래 큐레이터에 관한 전문 지식이나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큐레이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1997년 퇴직한 스카우튼은 현재 미국건축가협회(AIA) 명예이사 등 문화와 관련된 10여 개의 직함과 함께 특이한 직함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미국비밀경호협회(SSA) 이사가 그것이다. 이 직함은 그가 백악관 수석큐레이터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미시간주 빈농(貧農) 출신인 스카우튼은 대공황(大恐慌)이 닥치기 직전인 1925년에 태어났다. 그는 18세 때 입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주로 북아프리카전선에서 싸웠다.

1945년 종전(終戰) 후 스카우튼은 3년 과정인 미시간주 경찰행정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이 대학을 졸업한 지 1년 뒤인 1949년, 그는 비밀경호국 요원이 됐다. 그의 주된 임무는 대통령 경호가 아니라 위조지폐나 위조수표를 찾아내는 일이었다(미국의 비밀경호국은 원래 재무부 소속으로 위폐 수사가 본연의 임무였다).

스카우튼이 요인 경호업무를 맡기 시작한 것은 1953년부터였다. 이후 그는 닉슨 당시 부통령의 경호원으로 일하면서 한국 등 64개국을 여행했다. 그의 집에 있는 세계 각국의 물건들은 이 시절에 선물로 받은 것이다.

백악관 수석집사가 된 경호원

백악관의 블루룸. 백악관 큐레이터는 백악관 내의 장식품과 비품들의 관리와 보수를 담당한다.

부통령 경호업무는 닉슨이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패하면서 끝났다. 스카우튼은 1961년 1월, 당시 백악관 수석집사로부터 보조집사 자리로 옮기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이후 스카우튼은 성실하고 정확한 일처리로 능력을 인정받아 1969년에는 백악관 수석집사 자리에 올랐다. 백악관 구석구석을 책임지는 ‘총지배인’이 된 것이다.

스카우튼은 백악관 수석집사로 있으면서 젊은 시절 자신이 경호원으로 모셨던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후에도 그는 포드, 카터, 레이건 대통령을 모셨다. 61세가 되던 1986년, 스카우튼은 백악관 수석집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악관 장인은 60대에 접어들면 대통령 임기가 바뀌는 시기를 택해 퇴직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퇴직 3개월 뒤 낸시 레이건이 그를 다시 백악관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낸시는 공석(空席)이 된 백악관 수석큐레이터 자리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낸시는 스카우튼이 미국 예술에 대해 많은 지식과 열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비밀경호국 요원으로 출발, 백악관에서 비밀경호원, 보조집사, 수석집사를 거친 스카우튼은 61세의 나이에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후 스카우튼은 수석큐레이터로서 5명의 보조큐레이터를 거느리고 백악관 내 모든 예술품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1980년대 초까지 백악관 큐레이터는 백악관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구입, 보수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스카우튼은 인터넷을 통해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다른 박물관과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스카우튼은 72세가 되던 1997년, 건강을 이유로 수석큐레이터에서 물러났다. 백악관 역사상 장인으로서 퇴직을 두 번 경험한 것은 스카우튼이 처음이다. 1949년 트루먼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 들어가 48년 동안 10명의 대통령을 모신 그는 백악관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장인이었다.

스카우튼은 “큐레이터 업무는 외면적으로 화려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루하고 피곤한 ‘귀신들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케네디 이전 백악관 내 물건의 80% 이상은 복제품(複製品)이었습니다. 가구나 그림 도자기와 같은 진품(眞品)이 부서지거나 심하게 훼손됐기 때문에 비슷한 가짜를 만들어 걸어 두거나 사용했습니다. 내가 일을 그만둔 1997년 기준으로 백악관 내 물건 가운데 복제품은 20% 이하에 불과합니다. 내가 있는 동안 한 일은 창고에 있는 진품을 찾아내서, 수선하고 새롭게 다듬는 일이었습니다. 창고에 쌓인 물건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으며,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분석, 재현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일입니다.”

스카우튼이 비전문가이면서도 수석큐레이터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귀신과의 싸움’을 인내심을 갖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성보다 열정과 신뢰

스카우튼은 백악관에서 일하는 장인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먼저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다. 열정에는 애국심에서부터, 최고로서의 자부심, 또는 개인적인 호기심 등이 포함된다. ‘반드시 백악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정이야말로 백악관 장인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열정이 필요한 이유는 1년 365일 24시간 비상체제로 움직이는 곳이 백악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가족을 모시는 그들에게 개인적인 사정은 2차적인 문제다. 물론 그들에게도 휴가나 주말은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야간근무는 없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지 항상 백악관으로 불려 들어갈 준비를 해야만 한다.

스카우튼은 “열정을 갖지 못한 사람은 1년 내에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수석집사로 백악관 장인을 직접 선발했던 스카우튼은 신입 장인 가운데 약 10% 정도가 바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중간에 탈락한다고 말했다.

열정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일부 장인의 경우 세습직으로 자연스럽게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신뢰에 기초한 가족사의 연장선에서 장인이 되는 것이다. 보안 문제도 세습 장인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꽃 장식 스태프 도티 템플

백악관의 꽃 장식을 책임졌던 도티 템플.

“꽃 장식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과 어울려 기쁨을 더해 주는 요소로서 의미를 갖습니다. 꽃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도티 템플은 백악관 역사상 꽃담당 수석스태프로 가장 오랫동안 일한 인물이다. 닉슨 때부터 시작된 템플의 백악관 장인 생활은 클린턴 시절까지 30년간 이어졌다.

템플은 인터뷰 첫마디에서 “꽃 디자이너는 주인공을 우아하고 따뜻하게 만들기 위한 조역(助役)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악관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해 내가 만든 꽃 장식을 전 세계 지도자와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꽃을 좋아했던 가족의 영향으로 3세 때부터 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템플은 고등학교 졸업 후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작은 농업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입학생 가운데 여성은 템플 혼자였다.

졸업 후 템플은 프랑스인이 경영하는 결혼장식 전문 꽃가게에서 일했다. 이후 뉴욕과 매사추세츠를 오가며 꽃 장식가로 일하던 그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 갤러리에 꽃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템플대 예술대학 부설 템플 갤러리는 꽃 디자이너를 기능직이 아닌 교양과 교육이란 측면에서 길러냈다. 템플은 여기서 일하면서 미국 꽃 장식 아카데미의 의뢰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꽃 디자인에 대해 강연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이 분야의 유명인사로 떠올랐고, TV에도 출연했다.

1973년 1월, 백악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닉슨 대통령이 재선 취임식 축하파티에 자원봉사자로 초청된 것이다. 백악관에 정규직 꽃 장인은 4명밖에 없었다. 큰 행사나 만찬이 있을 경우에는 외부의 자원봉사자들이 도왔다. 닉슨 취임식 때는 5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행사를 도왔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템플은 꽃 관련 업무를 돕기 위해 매일 백악관에 출근했다. 포드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정식 백악관 직원이 됐고,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후 백악관 꽃담당 수석스태프가 됐다.

백악관의 꽃 업무는 보통 아침 6시부터 시작된다. 꽃은 주문한 지 48시간 이내에 화원(花園)에서 직송(直送)된다. 꽃은 보통 새벽 3시쯤 백악관 동쪽 문으로 들어온다. 작업장은 북쪽 1층으로 주방 옆에 있다. ‘플라워 숍’으로 불리는 작업장은 백악관 전체가 그러하듯 3~4명만이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협소한 공간이다. 보통 꽃 장식은 바깥쪽에 천막을 치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백악관에 도착하는 즉시 꽃은 물속에 담근다. 꽃잎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다. 꽃은 테이블에 장식하기 하루 전날 차가운 냉장고 속에 보관해 둔다. 장식용 꽃은 화병용, 화환, 아치형, 트리형과 같이 다양한 스타일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다. 완성된 꽃 장식은 대부분 꽃 스태프들이 직접 옮긴다.

백악관의 꽃 장식은 보통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정도 바꿔 준다. 이 같은 일은 업무가 시작되는 아침 8시 이전에 전부 끝내야 한다. 특별한 행사가 없을 경우에도 백악관에서 소요되는 꽃 장식은 보통 하루에 75~100개가량 된다.

재클린이 꽃 담당 스태프 만들어

백악관의 꽃 작업장.

꽃 장식물은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의 책상에서부터, 웨스트 윙과 이스트 윙의 사무실, 리셉션 장소, 식당, 화장실 등 사람의 눈길이 가는 모든 곳에 놓인다.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와 전용기 에어포스 원의 꽃 장식도 맡는다. 에어포스 원의 경우 이·착륙 때 화병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제작한 용기를 사용한다.

이 밖에 국립묘지 무명(無名)용사의 무덤 앞에 장식되는 조화, 사망한 정치가들에게 보내는 조화, 외국방문단을 위한 화환, 전직 대통령을 위한 화환 등도 만든다.

백악관에 꽃 담당 스태프라는 자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재클린 케네디 때부터이다. 재클린은 역대 퍼스트 레이디 가운데 꽃에 대한 예산을 가장 급격히 늘린 인물이다. 꽃을 직접 외국에서 수입하고, 꽃을 보관하기 위한 냉장시설을 설치한 것도 재클린이다. 재클린은 백악관 내에 꽃 장식물이 들어설 장소를 하나하나 정해서 지시했다고 한다. 재클린이 지정한 장소는 오늘날까지 대부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재클린은 다양한 종류의 꽃을 부채처럼 원심형(圓心型)으로 장식하는 디자인을 즐겼다고 한다. 프랑스의 영향이 강하게 밴 디자인이다.

템플은 “최근에는 꽃 자체보다, 꽃과 주변공간과의 조화가 한층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꽃을 사올 때는 퍼스트 레이디와 상의해서 구입한다고 한다.

행사를 위해 꽃 장식을 할 때는, 백악관 방문 인사의 출신국의 꽃이나 그의 개인적인 취미를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 카터 대통령 시절 덩샤오핑(鄧小平)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조지아주의 화훼(花卉)업자들은 카멜리아꽃을 백악관으로 보냈다. 카멜리아꽃은 특별한 장식 없이 큰 화병에 담겨 백악관 곳곳에 놓였다. 카멜리아꽃은 꽃 장식이라는 측면에서는 수준 이하인 꽃이지만, 중국 측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이유는 이 꽃의 원산지(原産地)가 중국일 뿐 아니라, 당시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의 고향인 조지아주의 주화(州花)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