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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金大中 前 대통령, “崔淳永으로부터 대한생명 뺏으라고 내가 결정”

예금보험공사 문건 단독 입수: 대한생명 돈(3조5500억원)을 공적자금으로 둔갑시켜 최순영 회장의 경영권 박탈.

김성동  

백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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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大中 대통령은 KBS와의 특별대담 중 “옛 소유자(최순영)로부터 대한생명을 뺏어 가지고 새로 살린다”는 말을 하면서 ‘빼앗아’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는지 ‘빼~’라는 말을 하면서 잠시 주춤거린 뒤 그대로 ‘뺏어 가지고’라고 말했다.

⊙ 1999년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22개 보험사에는 1년6개월 동안 경영정상화 기회를 준 반면
    대한생명에는 고작 11일간만 줘.
⊙ “법치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께서 대한생명을 뺏으라고 얘기해 충격받아” (최순영 회장)

金大中 대통령의 당선 2주년 기념 KBS 특별대담 동영상은 月刊朝鮮 인터넷 홈페이지(http://monthly.chosun.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신동아그룹 해체의 진실을 밝혀 줄 결정적 증거가 드러났다. 진실을 밝힌 당사자는 뜻밖에도 金大中(김대중) 정권의 국정 최고 책임자였던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다.
 
  김 대통령은 1999년 12월 19일 당선 2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KBS 특별대담-거실에서 만난 대통령’에 출연해 신동아그룹의 주력기업이었던 대한생명 해체의 결정적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날 대담에는 洪性奎(홍성규) 당시 KBS 보도국장, 소설가 金周榮(김주영)씨, 정신과 의사 李那美(이나미)씨가 출연했고, 김 대통령은 사전 원고도 없이 얘기를 풀어 나갔다.
 
  특별대담이 방영됐던 1999년 연말은 ‘옷로비 사건’에 대한 特檢(특검)과 검찰의 수사 종료를 앞둔 시점이었다. 2000년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Y2K(연도를 마지막 두 자리로 표기하는 컴퓨터가 2000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2000년대와 1900년대를 구분하지 못해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혼란을 뜻함)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 불안감도 퍼진 상황이었다.
 
  憲政(헌정) 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된 ‘옷로비 사건’은 당시 검찰총장 부인과 통일부장관 부인, 崔淳永(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이 연루돼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대담이 방송된 다음날 특별검사팀은 옷로비 사건의 수사를 종료했고, 열흘 뒤인 12월 30일은 大檢(대검)도 수사를 종결했다.
 
  특검팀은 ‘최순영 회장의 부인이 남편을 위해 고위층 부인들에게 시도한 실패한, 포기한 로비’라고 결론을 냈고, 대검은 ‘자작극으로 촉발된 실체 없는 로비’라고 발표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지 않자 여론은 김대중 정권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검찰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정황이 드러났고, 김 대통령에게 허위보고서가 제출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KBS 특별대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IMF 극복 과정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국정최고 책임자로서 노력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 했다.
 
 
  “이렇게 된 것이 모두 내 책임”
 
1999년 12월 19일 KBS 특별기획 프로그램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신동아그룹 해체의 비밀을 실토했다.
  김 대통령은 “요즘 잠은 잘 주무십니까”라는 대담자의 첫 번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잠은 그저 잡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고민이나 걱정은 많습니다. 그보다 요새 소위 옷로비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대담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좋은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구나 20세기를 보내는 마당에 당선된 후 2년 동안 무슨 일을 했고, 또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 모든 것을 투명하고 엄정하게 처리해서 깨끗이 청산하고 새해를 맞이했으면 합니다.”
 
  대담자가 “요즘 대통령의 지지도가 당선 때보다 많이 떨어져 걱정이다”라고 하자 김 대통령은 ‘옷로비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김 대통령의 답변이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 가지고 국민들을 걱정시키는 것들을 보면 나도 한탄이 절로 나오고, 이게 무슨 팔자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옷로비 사건 얘긴데, 부인들이 청문회 나가서 하는데 제가 보고서 아내한테 얘기했어요. 네 분(편집자注: 옷로비 사건 관련 당사자들) 중에 한 사람도 국민에게 이렇게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는 사람이 없냐고요. 대통령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서도 사과했는데,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옷로비 사건이란 말하자면, 로비해서 대한생명 신동아그룹 총수의 구속을 면하고 재산을 보존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처리는 제대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인들의 불건실한 태도, 떼 지어서 고급 의상실을 다닌다든가, 거짓말을 한다든가, 또 정부의 책임 있는 입장에 있는 검찰의 고위직에 있는 분이 문서를 상대방들 피의자 측에 유출한다든가, 이런 상식이 없는 일 때문에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고,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참, 물론 모두 내 책임이지요. 나는 대통령이 된 후 과거에 하지 않은 일을 하나 했습니다. 장관이나 고위직 사람을 임명할 때 꼭 부인을 오라고 해서 같이 임명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인들로 하여금 내조를 잘해야 남편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부탁하기 위해 당신더러 오라고 한 거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런 것이 아무 효과가 없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지금 솔직한 이야기로 참 안타깝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국민에게는 볼 면목도 없고, 그런 심정입니다.”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발언
 
   대한생명 퇴출의 진실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김 대통령의 답변에서 나온다. 대담자로 나선 소설가 김주영씨는 이렇게 물었다.
 
  “이 사건의 큰 줄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옷로비 사건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심각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대통령님께까지 거짓이 보고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거짓이 보고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국민들이 상당히 분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담자가 언급한 ‘거짓보고’란 옷로비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사직동팀과 검찰 등이 사건의 진실과 다르게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을 말한다. 김 대통령에게 보고된 문건에는 ‘최순영의 부인 이형자씨가 자기 남편의 구속을 피하고 검찰총장을 음해하려고 자작극을 벌였다. 구속시켜야 한다’는 것이었고, 김 대통령의 재가가 난 다음날 최순영 회장은 검찰에 연행·구속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담자의 ‘거짓보고’라는 말에 약간 흥분한 듯 질문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답했다. 김 대통령은 대한생명의 해체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불쑥 말을 꺼냈다. 김 대통령의 말이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해서 저도 알고 있고, 또 만일 거짓이 보고되었다면 그것은 아주 큰일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니까. 지금은 수사 중이니까 곧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큰 줄거리를 말하자면, 대한생명에 대한 여러 가지 비리, 그리고 이것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구속방침, 그리고 대한생명은 완전히 이것이 부실화되었기 때문에 퇴출시켜서 새로이, 말하자면, 옛 소유자로부터 빼~, 이것을 뺏어 가지고 새로이 살려 나가야 한다, 이런 줄거리는 전부 보고가 되어 있고, 또 그것도 전부 내 결정·승낙을 받아서 실천한 것입니다. 그중의 상당부분은, 그래서 큰 줄거리는 다 보고가 된 겁니다.(하략)(09분 57초)>
 
 
  편집되지 않고 전국에 퍼져 나간 김 대통령의 말
 
청와대 관저 거실에서 대담 중인 김대중 대통령.
  김 대통령은 ‘옛 소유자(최순영 회장)로부터 대한생명을 뺏어 가지고 새로 살린다’는 말을 하면서 ‘빼앗다’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는지 ‘빼~’라는 말을 하면서 잠시 주춤거린 뒤 그대로 ‘뺏어 가지고’라고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한생명은 완전히 부실화되었고 이것을 소유자(최순영 회장)로부터 뺏은 다음 새로 살려야(경영정상화) 한다는 보고가 내게 전부 이뤄졌고, 그것(실행 여부)도 전부 내가 결정했고 내 승낙을 받아서 (관련 기관이) 실천한 것입니다.”
 
  ‘대한생명을 정상화하기 위해 회사 오너로부터 경영권을 뺏어서라도 처리해야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당시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김 대통령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대한생명의 오너에게서 경영권을 빼앗아 회사를 국영화시킨 후 민간에 매각하겠다는 정부의 사전 계획안이 있었고, 그 모든 것을 김 대통령 자신이 진두지휘했다는 뜻이 된다. 김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책임자로서 해서는 안될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김 대통령의 발언이 편집도 되지 않은 채 공중파를 탄 이유는 무엇일까.
 
  추론컨대 당시 대한생명은 부실덩어리로 간주됐고, 그룹 오너인 최순영 회장은 外貨(외화)를 해외로 빼돌리는 악덕 기업인으로 낙인 찍혀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생명은 1999년 2월 12일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가 있은 후 세 차례에 걸쳐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정부 소유(국영화)로 있다가, 2002년 12월 한화그룹으로 매각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TV 대담에서 밝힌 대로, 금융감독원이 1999년 2월 11일 대한생명을 상대로 특별검사를 실시한 것도 청와대에 미리 보고됐고 승낙을 얻은 후 집행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특별조사가 있기 하루 전인 2월 10일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은 검찰에 연행·구속됐다.
 
 
  신동아그룹, 손보기로 한 첫 번째 그룹
 
최순영 전 신동아 그룹 회장.
  최순영 회장은 2009년 月刊朝鮮 3월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룹 해체까지 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까.
 
  “정치적인 이유였죠. 그룹 총수를 구속시킨 상태에서 주력기업인 대한생명을 국영화하고 그룹 전체를 공중분해시킨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돼요. 1997년 大選(대선) 때 김대중 후보 측에 선거자금을 안 낸 기업으로 지목되면서 정치보복을 당한 겁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權魯甲(권노갑)씨 등 당시 동교동계 실세들로 구성된 9인의 비선조직 모임에서 ‘손 좀 보기로’ 한 첫 번째 그룹으로 지목된 게 신동아그룹이었어요. 비선조직의 실체는 아태재단 출신 황○○ 장로의 傳言(전언)으로 알게 됐지요. 이 비선조직은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정권 초기에 필요할 때마다 모여 중요사안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룹 해체는 DJ 정권의 시나리오에 의해 실행된 거였어요.”
 
  ―어떤 근거로 사전 각본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겁니까.
 
  “1999년 세상에 알려진 옷로비 사건을 먼저 말씀 드려야겠군요. 이 사건의 본질은 통일부 장관 부인이 저의 처를 돕는다는 명분하에 자기의 이익도 챙길 겸 당시 검찰총장 부인인 연정희씨에게 접근해 라스포사 의상실에 가서 외상으로 옷을 사게 하고 그 옷값을 저의 처에게 대신 내도록 한 것입니다. 저의 처는 도를 넘는 일이라 거절했어요. 그게 다입니다.
 
  실체적 진실은 옷로비 사건이 아니라 ‘옷값 대납 요구 거절 사건’이지요. 옷값 대납 요구는 제가 구속되기 6개월 전인 1998년 가을 무렵 있었어요. 검찰총장 부인이 연결돼 있으니 검찰총장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신경을 썼죠. 저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가깝다고 알려진 조풍언씨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조풍언씨는 저와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근데 조풍언이가 얼마 후 ‘이 문제는 내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고 전해 왔어요. 그러던 와중에 저와 교회활동을 하며 알게 된 김○○ 전 고려대 총장이 ‘김대중 정권이 조만간 신동아그룹을 손볼 것’이라며 실세 중 한 사람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를 전해 주더군요. 그 얘기를 한 사람은 비선조직에서 활동했던 황○○ 장로였습니다.
 
  (중략)나중에 황○○ 장로로부터 직접 들었는데 ‘권노갑씨보다 이수동씨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해요. 이수동씨가 비선조직 모임에서 ‘(대선 때) 정치자금도 안 내고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손 좀 보자’고 했다는 겁니다. 그가 주도했다고 해요. 비선 모임은 이수동씨 집에서 모이기도 했고, 효자동 한식당에서 모이기도 했답니다. 신동아그룹 문제로 말이죠. 이들은 다른 문제도 서로 논의하곤 했답니다. ‘○○은행장은 누구를 시키자’, ‘한전 사장은 누구를 시키자’는 등의 인사문제를 논하기도 했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이 모임을 유지하면서 자기들 몫을 챙겼다는 겁니다.”>
 
 
  대한생명 부실기업 만들기
 
  그렇다면 과연 1999년 당시 대한생명은 회생 불가능한 부실덩어리였을까. 김대중 대통령이 TV 대담에서 “대한생명은 부실화됐기 때문에”라고 말한 대목을 검증해 보자.
 
  금감원은 1999년 3월 23일 대한생명의 자산·부채 평가 및 특별검사 결과를 발표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대한생명에 대해 2월 11일부터 3월 13일까지 자산·부채 평가 및 특별검사를 실시한 결과, 1998년 12월 말 현재 同社(동사)의 부채대비 순자산부족액이 2조9000억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순영 회장의 회사자금 횡령, 계열사 등에 대한 부당 대출, 책임준비금 과소적립, 외화유가증권 부당 투자 등의 위법 부당한 사실을 적출하였다.
 
  대한생명의 현재 재무상황으로는 보험사업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어, 조속한 시일 내에 대한생명의 자본 충실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국내외 경쟁입찰을 통해 자본유치가 이루어지는 시점까지 회사 가치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정상영업을 유지시키는 한편, 회사운영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실시하기 위해 99년 3월 23일자로 대한생명에 대해 관리명령을 내리고 보험관리인을 선임하였다.>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는 그해 5~7월, 대한생명의 공개매각을 세 차례 추진했지만 유찰된다. 한 달 뒤인 8월, 금감위는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금 감소 명령을 취했다.
 
  최순영 회장을 비롯한 대한생명 측은 서울행정법원에 ‘금감위의 부실금융기관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내 승소한다. 행정법원은 대한생명이 부실금융기관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금감위가 행정법원에 이의를 제기, 대한생명의 영업상 대출분을 부채로 산정해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확정한다.
 
  금감위는 1999년 9월 3일 대한생명 측에 ‘대한생명에 대한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자본금 감소 명령 등 관련 사전 통지 및 의견제출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낸다. 공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융감독원이 실시한 대한생명의 자산·부채 평가결과, 동사는 99년 6월 30일 기준으로 부채가 자산보다 2조6753억원을 초과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보험영업 부문에서의 적자 확대, 해약률의 증가, 신규보험 영업에서의 부진 및 직원과 영업조직의 동요로 정상적인 보험사업의 영위가 어려운 것으로 판단됩니다.
 
  당 위원회는 동사에 대해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자본금의 감소명령’ 처분을 사전에 통지하오니 의견이 있으면 99년 9월 10일까지 당 위원회에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2개 보험사는 1년6개월, 대한생명은 단 11일뿐
 
  금감위는 대한생명 측에 ‘할 말 있으면 해 보라’며 일주일의 시간을 줬다. 대한생명 측은 서둘러 자구방안을 마련했지만 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렸다. 마침내 금감위는 그해 9월 14일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금 감소(주식 소각)를 통보했다.
 
  금감위가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貴社(귀사)에 대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 부채가 자산을 2조6753억원(99년 6월 말 기준) 초과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것이 명백하므로, 귀사를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또한 해약의 증가, 수입보험료의 감소, 영업조직의 동요와 이탈 및 유동성 부족 등으로 영업을 지속하기가 어렵다고 인정되어 귀사의 조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예금보험공사에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주주 책임분담 원칙에 따라 동사의 기존 주식 전부를 無償(무상) 소각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
 
  금감위는 대한생명 측에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할 예정이라는 통지서를 보낸 지 11일 만에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 인해 최순영 회장이 갖고 있던 지분을 포함해 모든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보름 뒤인 1999년 10월 1일 예금보험공사는 대한생명에 1차 공적자금 500억원을 투입했고, 최순영 회장의 품에 있던 대한생명은 정부로 넘어갔다.
 
  대한생명에 대한 금감위의 전격적인 조치는 당시 22개 생명보험사를 처리하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IMF 직후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금감위는 1998년 5월, 22개 생명보험사에 대해 경영정상화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그로부터 1년6개월 후(1999년 12월 30일) 이들을 대상으로 몇몇 기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했다. 타 보험사의 경우, 회사 정상화 기간이 1년6개월 동안 주어진 반면, 대한생명에는 고작 11일이란 시간만 주어진 것이다.
 
  최순영 회장이 1999년 2월 구속될 당시 대한생명은 자산 규모 14조6800억원의 대규모 생명보험회사였다. 최 회장은 금융감독위원회의 대한생명 부실금융기관 처분에 대해 “법적 절차와 형평성을 무시한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月刊朝鮮(2009년 3월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생명 유동성 부족은 터무니없어
 
  “단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기존 주식 전부를 무상 소각시킨 것은 신동아그룹을 공중분해시키려는 계획된 시나리오였음이 분명해요. 당시 대한생명은 유동성자금 3조5900억원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그 이후로도 매월 3조5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확보했죠. 유동성 부족으로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에요. 특히 동종 회사인 삼성생명은 고객이 해약할 때 접수 후 3일 후에 해약금을 이체하는 방법으로 유동성을 관리했는데, 대한생명은 보험금을 요구하는 고객의 요청을 제때 처리하지 못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대한생명의 유동성 부족이 공적자금 투입의 원인이라면 현금을 투입해 유동성을 개선해야 하는데, 당시 정부는 현금을 투입하지 않고 채권으로 자산부족분을 보전했어요.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 채권은 2002년 6월까지 대한생명 금고 안에 그대로 보관돼 있었어요. 현찰이 있으니 채권을 현금화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이는 대한생명에 유동성 위기가 없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겁니다. 공적자금은 국민의 세금입니다. 세금을 그냥 떼먹으면 당장 형무소行(행)이니까 공적자금을 묘하게 받아 뒷돈을 빼먹은 거예요. 그게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대한생명 현금 3조5500억원으로 만들어진 공적자금의 허구성
 
1999년 9월 14일 예금보험공사가 작성한 문건. 부실하다던 대한생명의 돈으로 공적자금을 만들었다.
  대한생명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1차 500억원(1999년 10월 1일), 2차 2조원(1999년 11월 16일), 3차 1조5000억원(2001년 9월 5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총 3조5500억원이 투입됐다.
 
  문제는 공적자금 투입 방식이었다. 일반적으로 공적자금은 재정 상태가 부실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정부 자금이 대부분 현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대한생명에 들어간 공적자금 3조5500억원은 본래 대한생명의 돈이었음이 月刊朝鮮이 입수한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 문건에 의해 처음으로 드러났다.
 
  ‘예보 문건’은 최순영 회장이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현금을 투입하지 않고 채권으로 자산부족분을 보전했다”고 한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문건이다. 예보 문건과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정부는 대한생명의 돈을 공적자금으로 둔갑시켜 대한생명에 투입한 후 회사 경영권을 박탈, 국유화시킨 것이다.
 
  다음은 月刊朝鮮이 입수한 예보 문건 <대한생명보험에 대한 출자안 및 예금보험기금채권 발행안>의 주요 부분이다. 이 문건은 예보가 대한생명에 1차 공적자금 500억원을 투입하기 직전인 1999년 9월 14일에 작성된 문건이다.
 
  <1. 의결주문
  대한생명보험(株)에 대한 출자안을 본문과 같이 의결한다.
 
  2. 제출이유
  금융감독위원회는 99년 9월 14일 대한생명보험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동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동사의 현재 수권자본금 800억원 중 납입자본금 300억원을 제외한 500억원을 우선 출자해 줄 것을 요청해 온 바 예금자보호법 제38조에 의거, 출자하고자 운영위원회에 부의하는 것임.
 
  3. 의결본문
 
  가. 출자
  ·출자방식: 대한생명보험에서 신주인수권을 부여할 경우 출자참여
  ·출자금액: 500억원
  ·출자방식: 현금출자
 
  나. 출자재원 조달
  ·예금보험기금 채권 발행
  ·발행금액: 500억원
  ·인수기관: 대한생명보험(이하 생략)>
 
  이 공문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는 ‘예금보험기금 채권’ 500억원을 발행하고 대한생명이 이를 인수한다. 대한생명은 채권 인수대금으로 500억원을 예보에 입금한다. 예금보험공사는 그 돈을 다시 대한생명에 현금출자한다. 대한생명에 세 차례 투입된 공적자금 3조5500억원은 모두 이와 같은 방식으로 들어갔다.
 
 
  유동성 자금 충분했던 대한생명
 
금융감독위원회가 작성한 1999년 9월 3일자 문건(왼쪽)과 9월 14일자 문건. 금감위는 대한생명 측에 경영정상화 기회를 고작 11일간만 부여했다. 9월 14일자 문건은 최순영 회장이 갖고 있던 대한생명 경영권을 박탈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대한생명이 실제로는 예금보험공사 채권을 매입할 정도로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금감위와 예보는 공적자금 투입 대상이었던 대한생명에서 현금을 받아 예보 채권을 구입하도록 한 후, 그 자금을 대한생명에 도로 집어넣었다. 상황을 종합하면, 당시 대한생명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직후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 상황이 있었지만 1998년 이후에는 유동성 부족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대한생명에 들어온 예보채권도 금고에 5년 이상 그대로 보관돼 있었다. 대한생명이 현금화할 수 있는 자금으로 3조500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었기에 채권을 매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가 대한생명에 1차 공적자금 5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날(1999년 9월 14일)은 공교롭게도 금융감독위원회가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한 날이다. 대한생명을 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같은 날에 이뤄졌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우연이거나, 아니면 대한생명을 국영화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했거나 둘 중 하나다.
 
  김대중 대통령의 TV 발언대로, 금감위와 예보는 “대한생명의 경영진이 회사를 살리겠다”는 자구노력을 제대로 듣지 않고 대한생명의 경영권을 ‘뺏어간’ 셈이다.
 
  예금보험공사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예보는 2001년 5월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하기 위해 향후 5년간 예상되는 대한생명의 당기순이익을 발표했다. 그런데 예보는 예상 순이익을 실제 순이익보다 훨씬 적게 발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생명의 예상되는 순이익이 적어야 ‘부실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될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예보는 2001년도 대한생명의 예상 당기순이익을 65억원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순이익은 8684억원이었다. 2002년도의 예상 순이익은 1200억원이었으나 실제 순이익은 9794억원이었다. 2003년도의 실제 순이익은 6150억원, 2004년에는 5366억원, 2005년에는 3749억원의 순이익이 났다. 예보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의 예상 순이익을 1조3600억원으로 잡았으나 실제로는 3조3700억원의 순이익이 발생했다. 당초 예측한 수치와 무려 2조원 이상의 차이가 난 것이다.
 
  당시 예금보험공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조카인 李亨澤(이형택)씨가 전무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동화은행 영업부장(이사대우)으로 있다가 1999년 1월 예금보험공사 전무이사가 됐다. ‘예보 전무’는 공적자금 집행을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다. 퇴출당한 동화은행 부장이 하루 아침에 예보 전무가 되자 당시 언론은 ‘파격 인사’라고 보도했다. 이 전무는 2002년 보물섬 사건과 신앙촌 개발 비리 사건에 연루돼 사법처리됐다.
 
 
  大選 일주일 전 대한생명 매각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한생명은 김대중 정권의 끝 무렵인 2002년 12월 12일 한화그룹에 넘어갔다. 대통령 선거(2002년 12월 19일)가 있기 일주일 전이었다. 한화는 대한생명 주식 51%를 1주당 2275원, 총 8236억원에 인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헐값 매각 논란 등 적잖은 정치·사회적 갈등이 야기됐다.
 
  당시 재계에서는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기 직전에 대한생명을 서둘러 매각한 데는 김대중 대통령 측근들의 남다른 속사정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최순영 회장이 1999년 2월 구속될 당시 신동아그룹은 22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었다. IMF 직후라 모든 기업이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신동아그룹은 善戰(선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 회장은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생명을 비롯해 동아제분·신동아건설·신동아화재·한일약품·호텔송도비치·태흥산업·삼풍산업·대생상호신용금고·우정상호신용금고 등이 그룹의 대표회사였지요. IMF라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전 계열사가 부도 없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1999년도 그룹사의 총자산이 약 19조7000억원이었고, 매출액은 9조2000억원가량 됐어요. 대한생명이 주력회사였는데 1999년 2월 현재 자산 규모가 14조6800억원에 달했어요. 현금·예금액이 1조원, 언제든지 팔아 현금화할 수 있는 유가증권이 2조5000억원 등 매월 3조5000억원 이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었죠. 5만여 명의 우수한 영업조직과 450만명의 계약자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매월 5000억원 이상의 수입보험료를 냈습니다.”
 
  ―신동아그룹은 당시 재계 서열 몇 위였습니까.
 
  “한국의 실력 있는 기업이라 하면 삼성·현대·엘지·대우 등 5대 그룹을 들 수 있겠죠. 나머지 그룹은 서로 비슷비슷했어요. 신동아그룹은 서열상 24~25위 정도였습니다.”
 
  ―그룹사 총자산이 20조원 정도면 작은 회사는 아니죠.
 
  “물론 그렇죠. 그런데 정치적으로 사건이 터지니까 하루아침에 계열사가 날아가 버리더군요. 정치적인 사건은 정치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대처하는 방법이 좀 미숙했어요. 또 정권이 설마 그렇게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8개월 동안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는데 뭐를 할 수 있겠습니까. 보석으로 밖에 나와 보니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계열사 중에 대표적인 회사가 대한생명이었어요. 그룹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회사가 공중분해돼 가는 거예요. 물론 구치소 안에 있을 때부터 간접적으로 ‘그룹을 포기하라’는 의사를 전달받았죠. 저를 면회하러 온 사람이 정부 측 뜻을 가지고 와서 ‘정부가 대한생명, 동아제분 주식을 포기하라고 한다’고 전해 줬는데 ‘나는 포기 못 한다’며 반발했죠. ‘너희가 정정당당하게 기업을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 봐라. 이유가 상당하다면 내가 포기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버텼죠. 그래도 계속해서 포기하라는 압력이 있었어요. 결국 포기 안 했죠. 포기를 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대한생명 뺏으라고 얘기한 것 보고 충격받아”
 
최순영 회장은 최근 서울 온누리 교회에서 지난 10년간의 고난을 신앙으로 이겨냈다는 간증을 했다.
  ―압력은 어느 쪽에서 들어왔습니까.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이었어요. 그런데 모든 것이 사전에 계획돼 있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제가 구속된 그 다음날 금감원이 그룹사에 특별검사를 나왔어요. 이게 있을 수 있습니까. 주식 포기를 종용한 대표적인 사람이 금감위 담당 국장이었어요. 물론 그 사람은 위에서 시키니까 그랬겠죠. 실무자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만이 아니에요. 여러 루트를 통해 주식을 포기하라는 압력이 들어왔어요. 뒤늦게 ‘아, 이 정권이 회사를 통째로 가져가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8개월 만에 나오니까 그때는 정권이 사실상 대한생명을 다 가져간 상태였어요. 눈 뜨고 빼앗긴 셈이죠. 신동아건설·공영사·동아제분·프린스호텔·삼풍도 다 팔아먹었어요. 제 승인도 없이, 8개월 만에 다요. 별 볼 일 없는 것만 남아 있더군요.”>
 
  최순영 회장은 月刊朝鮮 3월호와의 인터뷰 이후 여러 곳으로부터 격려와 위로를 받았다. 그는 CTS 기독교 TV, CGN TV, 극동방송 등에 출연해 “지난 10년 동안 있었던 어려움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한국 기독교지도자 협의회가 주최한 ‘나라를 위한 특별기도회’를 비롯해 금란교회·강남교회·할렐루야교회·평강교회·온누리교회·명성교회·강남금식기도원 등에서 연사로 초청돼 강연과 간증을 하고 있다.
 
  최순영 회장에게 “1999년 KBS가 방영한 ‘김대중 대통령 특별대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다. 최 회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대담 진행자로 나온 김주영 작가가 김 대통령에게 옷로비 사건과 관련해 ‘거짓보고’가 있었다고 말한 대로, 제 아내가 남편의 구속을 면하기 위해 자작극을 꾸몄다는 보고서는 거짓입니다. 그런 잘못된 정보로 대통령이 저와 신동아그룹에 나쁜 감정을 가졌는지 모르죠. 아무튼 김 대통령 본인이 직접 말한 것처럼, 대한생명을 비롯한 신동아그룹 전체를 나라에 빼앗겼습니다. 저의 구속이 정치적으로 이뤄졌다는 차원에서 억울한 점도 없지 않고요.
 
  이제라도 당시 김대중 대통령 실세 노릇을 했던 분들은 김 대통령이 살아 계시는 동안 사죄하고 진실을 밝혀야 해요. 대선 때 김대중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안 줬다는 이유로 ‘신동아그룹을 손볼 것’이라는 소문을 익히 듣고는 있었지만,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께서 이렇게 대한생명을 뺏으라고 얘기한 것을 보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正義가 강물같이 흐르는 나라가 되길”
 
  ―이번에 드러난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의 문건에 따르면, 당시 대한생명은 타 생명보험사에 비해 경영정상화 기간이 불과 11일밖에 안됐습니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당시 대한생명에 절차에 따라 실질적인 자구기회가 주어졌다면,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고도 경영정상화는 충분히 가능했어요. 결국 신동아그룹 해체는 절차와 형평성을 무시한 정치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대한생명을 포함한 신동아그룹의 강제 해체 사건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정확한 진상이 밝혀져야죠. 신동아그룹 퇴직 임직원 1918명이 서명한 탄원서와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명의의 탄원서가 청와대에 제출됐어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사가 이뤄져야 해요. 저는 요즘 간증집회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같이,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병상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까.
 
  “그동안 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뤄낸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하루빨리 쾌유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대한생명 매각 과정
 
  ▲1999년
  2월 11일: 최순영 회장 강제연행, 구속
  2월 12일~3월 13일: 금융감독원의 대한생명 자산-부채 특별검사
  3월 14일: 금융감독위원회, 메트라이프의 MOU 효력 소멸선언
  3월 23일: 금융감독원 특별검사 결과 발표. 대한생명에 경영관리명령 부과
  5월 8일~6월 28일: 금융감독위원회의 대한생명 3차례 공개매각 입찰
  7월 23일: 금감위의 대한생명 공개매각 유찰 발표
  8월 6일: 금감위는 대한생명에 대하여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자본금 감소 명령
  8월 31일: 금감위의 부실금융기관 결정 등 처분 취소 판결(행정법원 제13부)
  9월 3일: 금감위는 대한생명에 대해 부실금융기관결정 및 자본금의 증가-감소명령 등과 관련 사전통지 및 1999년 9월 10일 기한으로 의견제출 요청
  9월 14일: 금감위는 대한생명에 대해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자본금의 증가-감소명령 통보
  10월 1일: 관리인들은 대한생명의 기존발행주식 전부를 무상 소각시키고 예금보험공사에 신주 1000만주를 발행해 인수토록 결의(예금보험기금 채권 500억원 출자)
  11월 26일: 예금보험공사는 2조원 추가 출자(예금보험기금채권)
 
  ▲2001년
  2월 19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출범
  2월 27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대한생명 매각추진 의결
  9월 6일: 예금보험공사, 대한생명 1조5000억원 추가출자(예금보험기금채권)
  12월 24일: 한화컨소시엄(한화 60%·일본 오릭스 33%·호주 맥쿼리 7%) 및 메트라이프를 인수협상 대상자로 공동선정
 
  ▲2002년
  3월 21일: 메트라이프, 대생 인수의사 철회. 한화컨소시엄 투자제안서 제출
  6월 27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한화컨소시엄을 대한생명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조건부 선정
  9월 23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우선협상 대상자인 한화컨소시엄을 대한생명 인수자로 최종 승인
  10월 28일: 예금보험공사, 대한생명 가치를 1조6150억원으로 평가. 한화컨소시엄에 대한생명 지분 51%를 8236억원에 매각
  12월 12일: 한화컨소시엄, 2차 인수대금 4118억원 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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