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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법원 內 판사모임 ‘우리법 연구회’
현직 회원 판사 129명·前 회원 53명 명단 공개

1988년 출범 후 대법관(朴時煥), 법무부장관(康錦實) 등 배출

백승구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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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 회원은 총 129명. 전체 법관 중 약 3% 규모. 민주화 운동세력이 ‘우리법 연구회’의 모체… 사법파동의 核으로 나서

⊙ “우리법 연구회는 헌법 공부하는 학술 연구단체. 판사의 본분 넘어서지 않는다면 다양성 보장해야.
    判事가 검사동일체처럼 판단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 맞지 않아”(문형배 우리법 연구회 회장)
⊙ “우리법 연구회는 판사집단 내에 왼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전체로 볼 때 중간에서
    오른쪽에 있는 중도우파”(우리법 연구회 관계자)
⊙ “대법원은 법원의 私조직화를 우려하는 국민의 우려 불식시켜야” (대한변협 성명서)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
  ‘우리법 연구회’는 사법부 독립, 대법관 임명 등 법조계의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섰던 법원 內(내) 일부 판사들의 모임이다. 최근 申暎澈(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도 ‘우리법 연구회’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1988년 출범한 우리법 연구회는 朴時煥(박시환) 현 대법관을 비롯해 康錦實(강금실) 전 법무장관, 金宗勳(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朴範界(박범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을 배출했다. 회원 중 일부가 盧武鉉(노무현) 정권 때 주요 보직에 임용되면서 이 모임은 법조계 내외로부터 ‘정치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세상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법 연구회는 그동안 정확한 규모가 알려지지 않았다. 月刊朝鮮이 입수한 명단에 따르면, 우리법 연구회의 현직 판사 회원은 총 129명이다. 전체 법관 중 약 3% 규모라고 한다. 연수원 17기부터 37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수와 연령대의 판사들이 가입돼 있다.
 
  부장판사급 20여 명을 비롯해 대법원, 고등·지방법원, 특허법원, 사법연수원, 법원행정처 등 근무기관도 다양하다. 우리법 연구회 측에 문의한 결과, 月刊朝鮮이 입수한 명단은 2009년 8월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다. 작년과 올해 초를 기준으로 작성된 것으로, 일부 회원이 탈퇴했을 수 있다.
 
박시환 現 대법관
  우리법 연구회는 2005년 李容勳(이용훈) 대법원장 취임을 계기로 변화를 겪는다. 가장 큰 특징은 회원 가입 자격. 이전에는 변호사로 개업한 전직 법관들도 회원으로 활동했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우리법 연구회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면서 부장급 고참 판사와 변호사들이 연구회에서 탈퇴했다.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법원에 이런 단체가 있어서는 안된다. 젊은 판사들은 모르겠지만 부장판사 등 연장자들은 탈퇴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강금실 전 장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李光範(이광범) 서울고법 부장판사, 故(고) 韓騎澤(한기택) 판사 등 주요 창립 멤버들이 그해 연말 탈퇴했다.
 
  2003년 대법관 제청 파문 당시 사법개혁을 주장하며 사표를 냈던 박시환 당시 서울지법 부장판사도 2005년 11월 대법관이 되기 직전 연구회를 그만뒀다.
 
 
  한 달에 한 번씩 세미나 열어
 
강금실 前 법무장관
  우리법 연구회는 한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통해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는다. 월례회에서 발표된 논문은 대략 5년 주기로 별도의 논문집으로 묶어 발간한다.
 
  연구회는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다섯 권의 자료집을 냈다. 논문집에 따르면, 우리법 연구회는 민주주의와 통일을 지향하며 노동·여성·인권·북한 등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다뤄 왔다.
 
  가장 최근에 나온 논문집은 2005년에 출간한 ‘우리법 연구회 논문집’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의 논문들이 수록돼 있다.
 
  이 기간 동안 연구회가 다룬 주제는 다양하다. 그중에서 사법개혁·대법원의 기능과 구성·대법원장의 권한·법관인사제도 등 司法學(사법학) 분야가 가장 많다. 양심적 병역거부·사면권 통제·행정수도 위헌결정 등 憲法(헌법) 분야와 외국인 노동자·근로자 파견제·정리해고·공무원 노동조합·복수노조·산업재해 등 勞動法(노동법) 분야도 관심대상이었다.
 
故 한기택 판사
  양형문제·구속제도·형사공판절차의 개선·증거능력·성폭력범죄·피해자 보호 등 형사사법제도의 개선에도 중점을 뒀다.
 
  우리법 연구회가 사법제도 변혁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는 모임의 탄생 배경과 관련 있다. 우리법 연구회의 출발은 1988년 이른바 ‘제2차 사법파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사법파동이란 1988년 당시 사회 전체에 불어닥쳤던 민주화 열기 속에 서울·수원·부산·인천지역 소장판사 430여 명이 대법원장 선임과 관련해 ‘법원 독립과 사법부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서명에 참가한 사건을 말한다. 이로 인해 盧泰愚(노태우) 정권이 유임시키려 했던 金容喆(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이 퇴진하고 李一珪(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한다.
 
 
  “소위 운동권이 사법부에 편입돼 1988년 6월 서명운동 기획·주도”
 
김종훈 前 대법원장 비서실장
  우리법 연구회 창립멤버인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은 2002년 4월 우리법 연구회 홈페이지에 2차 파동 당시 상황을 회상하는 글을 올렸다. 글의 한 대목이다.
 
  “1988년 6월 10일 통근버스를 이용해 퇴근했다. 집에 일찍 도착하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밤 9시경 서교호텔 뒤 맥주집으로 불려 나갔다. 나를 불러낸 사람은 사법연수원 13기 동기생으로 서울민사지방법원에 근무하고 있던 유남석, 이광범, 한기택 판사와 심규철 시보였다.
 
  유남석 판사는 나와 대학동기생, 이광범, 한기택 판사는 1년 후배로 대학시절 서울법대 학보(Fides) 편집위원이었고, 심규철 시보는 이념서클인 농촌법학회 회원이었는데, 대학시절 학보편집실을 중심으로 친하게 어울리던 사이다. 서울법대가 ‘유신법대’로 놀림받던 시절에 학회활동을 하였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중략) 당시 사법부의 최대 관심사는 대법원장 임명을 비롯한 대법원 구성이었고, 대법원장에는 김용철 대법원장의 유임이, 대법관은 민주정의당·평화민주당·통일민주당의 나누기가 확정적이었다. (중략) 우리는 여러 말할 것 없이 성명을 내자는 데 합의했다. 대상에 대해서는 일단 서울지방법원 관내로 하기로 했고, 인천지방법원은 내가 주도하여 서울지방법원 판사들의 성명에 동의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중략)
 
1988년 6월 소장판사 430여 명이 집단 성명에 참가한 2차 사법 파동으로 사퇴한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이 잔무를 처리한 후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결과적으로 전국 법관의 반수 가까이인 430여 명이 서명에 참가했지만, 우리는 30명만 서명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다.”
 
  2차 사법파동의 발단이 된 이날 모임은 며칠 후 실행에 옮겨졌고 마침내 우리법 연구회의 모체가 만들어졌다. 김종훈 전 비서실장이 쓴 글의 다른 대목이다.
 
  “(중략) 원래 디데이는 6월 15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무슨 사정에서인지 6월 15일에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서명이 있었고, 곧바로 서울가정법원과 시내 支院(지원)의 서명이 잇달았다. (중략) 이일규 대법원장 시대의 출범은 6·15 서명운동의 가시적 성과라 하겠다. (중략) 1988년 서명운동은 향후 사법 조직 내 민주화 운동세력이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시적으로는 그해 8월 우리법 연구회의 모체가 탄생했다.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다.”
 
 
  강금실 판사와 일부 소장판사들이 창립
 
박범계 前 청와대 법무비서관
  ‘우리법 연구회의 모체’란 당시 강금실 판사를 포함한 일부 소장판사들의 법학서적 독서회와 2차 사법파동의 중심에 섰던 판사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던 모임을 말한다.
 
  이 모임은 이듬해 우리법 연구회라는 명칭으로 정식 출범했다. 김종훈·유남석·이광범·강금실·강신섭·박윤창 판사와 박종술·이태화 변호사 등이 창립멤버였다. 이들 대부분은 司試(사시) 23회 및 사법연수원 13기 동기생들이다. 사시 23회(사법연수원 13기)는 합격 인원이 300명으로 늘어난 첫 번째 기수다.
 
  인원이 300명으로 늘어나면서 다양한 성향의 법조인이 법조계에 들어왔다.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이 쓴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법시험 300명 세대 1기생인 사법연수원 13기 중에는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 100여 명이었다면 아예 사법시험 공부를 할 엄두를 못 냈을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이 사법부에 진출했던 것이다. 유신과 긴급조치 시대의 법과대학생은 권력에 앞장서 순응하는 사람들이었다. 오죽했으면 서울법대를 유신법대라 했겠는가.
 
이용훈 대법원장이 2005년 9월 대법원장 지명자 신분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1978년엔가, 1979년에 서울대에서 동맹휴학을 한 적이 있다. 서울법대생들의 대부분은 평소에는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고 도서실에 처박혀 있었는데, 동맹휴학을 한다고 하니까 혹시 찍힐까 봐 출석률이 90%에 육박했다. 정말 부끄러운 군상들의 집합체였다. 그런 사람들이 오늘날 사법조직의 상위그룹에 속해 있다.
 
  그런데 사법연수원 13기가 되면서 비록 일부나마 소위 운동권이 사법조직에 편입되었고, 그런 사람들이 1988년 6월 15일의 서명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것이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박시환 대법관과 사법파동
 
2003년 대법관 제청 파문 당시 사법개혁을 주장하며 사표를 낸 박시환 현 대법관(당시 서울지법 부장판사)이 서울지방법원장실에서 법원장의 사표 반려 권유를 받고 나오고 있다.
  우리법 연구회는 일부 판사들의 ‘목숨 건 행동’에서 출범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우리법 연구회의 전·현직 회원들 중 일부는 과감한 언행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우리법 연구회의 명칭을 作名(작명)한 것으로 알려진 박시환 대법관이 그중 한 명이다.
 
  박 대법관은 ‘사법파동’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는 네 차례의 사법파동 중 세 차례에 걸쳐 주역으로 활동했다. 2차 사법파동은 1985년 불법시위 대학생을 석방한 박시환 당시 인천지법 판사가 강원도 영월지원으로 좌천되자 법원 내 팽배해 있던 불만이 터져 나온 측면이 없지 않다.
 
  1993년 박시환 당시 서울민사지법 판사는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과 함께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채택하고, 법관회의 제도화를 요구했는데 이게 3차 사법파동으로 번졌다.
 
  노무현 정권 출범 첫해였던 2003년 박시환 당시 서울지법 부장판사는 4차 사법파동으로 법복을 벗었다. 그는 당시 연공서열 위주의 대법관 인선에 반대하며 “기대가 철저히 외면됐다”며 사표를 냈다.
 
  법원을 떠난 직후 박시환 당시 변호사는 2003년 8월 우리법 연구회 게시판에 사표를 낼 때의 심정을 글로 올렸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고 우리법 연구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시각들이 있을 것이다. (중략)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에 대해 누구나 가장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하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카드를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기회에 적절히 골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중략) 이번의 실행이 100%의 효율도를 갖지 못했다 하더라도 60~70%의 효율도를 갖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자위해 본다.”
 
  최근 ‘촛불집회 재판 촉구’논란으로 법원 조직이 떠들썩했던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박시환 대법관은 이 사건을 ‘5차 사법파동’으로 규정했다. 박시환 대법관은 신영철 대법관 사태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상황은 5차 사법파동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이번 사태를 신 대법관 개인의 일탈 행위로 치부하고 넘어가면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재판 개입은 유신, 5공 때부터 계속돼 왔던 것이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해서 이번 기회에 끊고 가야 한다.”
 
  우리법 연구회 회원 중 일부는 박시환 대법관의 뜻과 같이하며 신 대법관의 사퇴를 주장했다.
 
 
  “법원 내 사조직 해체해야” (변협 성명)
 
2009년 5월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파동 조장 중단과 박시환 대법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金平祜)는 지난 5월 ‘법원의 단합과 결단을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대법원은 법원 내 엘리트 사조직의 존재 여부 및 활동상황을 조사해 해체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고 했다. 성명서의 일부분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문제를 둘러싸고 법원 내외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법원 내 엘리트 사조직으로 알려진 우리법 연구회의 초대 회장을 지낸 박시환 대법관이 최근의 법원 내부 상황을 4·19 및 6월 항쟁과 같은 정치적 사건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부적절한 발언이다. 이를 기화로 정치권과 사회단체가 너도 나도 나서서 대법관의 ‘탄핵’ 및 심지어는 대법원장 책임론까지 거론하는 정치논쟁으로 사태가 번져 나가고 있다. (중략)
 
  사법의 중추인 법원이 조속히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전국의 법관이 개별 행동을 중단하고 언행을 조심하며 법원의 首長(수장)인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일치 단합하여야 한다. 대법원은 이념적인 엘리트 사조직의 존재 여부 및 활동상황을 조사하여 해체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조속히 단행함으로써 법원의 사조직화를 우려하는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법원의 권위와 신뢰는 누구보다 먼저 법관 스스로가 법원 조직을 존중하고 신뢰하여야만 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대한변협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법 연구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 비판적이면서도 건설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만든 것으로 안다. 우리 사법부가 군사정권을 지내오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부분을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모임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어떻게 변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판결 사례
 
  우리법 연구회의 창립멤버였던 김종훈 전 비서실장이 모임 홈페이지에 올린 글처럼 우리법 연구회에 ‘민주화 운동세력’ ‘운동권 성향’의 법조인이 일부 유입되면서 소속 회원들의 발언과 판결 사례는 사회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법 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박시환 대법관은 2008년 宋斗律(송두율)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위헌적 요소가 제거되지 못한 국가보안법은 마땅히 폐지되거나 근본적으로 개정돼야 하며, 법원으로서는 국가보안법 조항에 대해 다시 한 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라는 별개의견을 내놓았다.
 
  박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제한에 대한 엄격한 해석은, 지난 시기에 국가보안법이 정권안보 차원이나 비판세력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오·남용되고 공안담당 기관의 과잉의욕에 의하여 무리한 법집행이 이루어짐으로써 국민의 인권이 침해당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중핵인 기본권이 위태롭게 되었던 지난 시대를 정리하고 다시는 그런 전철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과거로부터 확실한 단절을 긋는다는 의미에서도 반드시 확실히 해 두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김○○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2008년 일심회 사건으로 징역 7년형이 확정된 장민호씨 등 5명이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을 침해했다”며 金昇圭(김승규) 전 국정원장과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는 지난 5월 ‘김용준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역 8년을 살았던 김용준씨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김씨는 위법하게 징역살이를 했고, 가족도 사회적 냉대와 신분·경제상의 불이익을 당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2억264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유승룡 판사는 지난 2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5·18 구속부상자회의 양모 회장과 임원 이모씨 2명에 대해 “임시총회 개최를 둘러싼 정상화대책위원회의 논의 과정이 정당했고, 예산집행도 하자가 없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집행된 예산으로 양 회장과 이씨가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2008년 인사비리 혐의로 기소된 李正燮(이정섭) 전남 담양군수에 대해 암수술을 받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석을 허가했지만, 4개월 뒤인 11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보석을 취소해 법정 구속했다. 같은 해 9월에는 金載均(김재균) 민주당 의원의 부인을 기초의회 의장 후보자들이 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민에겐 선처, 정치인에겐 냉혹
 
2009년 봄 ‘촛불집회 재판 촉구’로 논란이 된 ‘신영철 대법관 사태’ 당시 우리법 연구회 회원들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신 대법관의 사퇴를 주장하는 글을 잇달아 올려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우리법 연구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文炯培(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이례적 행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7년 자살하기 위해 여관방에 불을 질렀다가 붙잡힌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연이어 외치라”고 한 후, “자살이 우리에겐 살자로 들린다. 삶의 이유를 찾으라”고 했다.
 
  그는 피고인에게 중국 작가 탄줘잉의 에세이집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선물한 후, 징역 1년에 집행유예(2년)를 선고했다. 2006년 7월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집에 불을 지르려 한 피고인에게 같은 책을 선물했다.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을 살해한 30대 주부에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휘둘러 온 60대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20대에게 정상을 참작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또 화폐위조 대학생에겐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최소 5년 이상 또는 사형·무기징역인 화폐위조범에 대해 그는 “청년실업으로 취업을 못 한 수석 입학생이 경제적으로 곤궁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선처했다.
 
  이처럼 서민들에겐 너그러운 판결을 내린 문 부장판사는 정치인들에게는 냉혹했다. 그는 2005년 裵英宇(배영우) 창원시의회 의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같은 해 8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궐석재판을 받아온 金政夫(김정부) 한나라당 의원의 부인 정모씨에 대해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그는 당시 ‘친구 크리톤의 권유에도 탈옥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도주하는 것은 유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 판사는 골재채취업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金鍾奎(김종규) 경남 창녕군수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는 선고 당시 “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염자 목지본무 만선지원 제덕지근·청렴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이며 모든 선의 근원이고 덕의 근본)”이라는 <목민심서>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정렬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2004년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 3명에 대해 최초로 무죄를 선고해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그는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이 나온 후 법조계 내부에서 찬반 논란이 일어났다. 당시 변호사이던 박시환 대법관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양심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되 대체복무를 통해 형평성의 문제를 해소하면 된다”고 했다.
 
  李石淵(이석연·당시 변호사) 법제처장은 이에 대해 “병역 거부가 양심의 자유에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내려진 이번 판결은 법원이 헌재의 몫까지 판단해버린 것”이라고 했다.
 
  이 판사는 판결을 내리기 20일 전 우리법 연구회 월례세미나에 참석해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국제연합에서도 그 산하의 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 거부권 인정을 주장하고, 권리를 인정하는 견해가 다수를 점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권이 인정돼 획기적인 인권 신장의 전기가 마련될 것을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정렬 판사의 특이한 판결
 
이정렬 서울동부지법 판사.
  이 판사는 또 공무원 노조의 ‘노동3권’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 23명에 대해 행위의 실정법상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제헌헌법의 이념’과 ‘입법적 미비’ 등을 이유로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같은 우리법 연구회 회원인 金裕範(김유범)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2004년 월례세미나에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법률안에 관한 고찰과 입법방향’을 발표, 상반된 주장을 내놓았다. 논문 내용 중 일부다.
 
  “공무원노조법안에 대해선 미흡한 부분도 있고, 더 나아가 노동단체에서는 그 내용이 심히 못마땅할 수도 있으나, 아직은 공무원노조에 관한 첫 실험대라고 보고 어느 정도의 불만족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공노 등 법외 공무원노조들은 법 통과를 반대하는 것보다는, 법률의 통과를 통해 법외 노조상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보인다.”
 
  이정렬 판사는 영장전담 판사 시절인 2001년 만 18세의 청소년을 고용해 매춘을 알선한 가요주점 업주에 대한 구속영장을 “업주에게 21세 이상이라고 말한 점과 성년인 것처럼 가짜로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등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청소년보호법으로는 보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두 기각했다.
 
  이 판결에 대해 당시 전북여성단체연합회 등 도내 여성계는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청소년 관련법 정착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유흥업주 등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반발했다. <한겨레신문>은 선고 사흘 뒤 사설을 통해 “나이를 속인 매춘 청소년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법원의 결정은 충격적”이라며 “거짓말을 한 청소년은 보호할 수 없고, 나이를 확인하지도 않고 매매춘을 통해 돈까지 챙긴 업주는 보호하는 법이 정말 우리나라의 법인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결정이다”라며 이 판사의 판결을 비판했다.
 
  이 판사는 이외에도 상습 음주운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30대 남성에 대해 ‘12년 만에 가족과 상봉 후 사망한 사실조차도 몰랐던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면서 술을 마신 점’ 등을 참작해 영장을 기각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절도 혐의로 붙잡힌 중학생을 “합의가 있었고, 깊이 반성하는 데다 준결승전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각했다.
 
  金珉岐(김민기) 판사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시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학생시위-5월 17일 전국 모든 중고등학교 학생들 단체 휴교시위, 문자 돌려주세요’란 문자를 보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재수생 장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씨의 문자메시지는 개인적 의견 표명에 불과하고, 중·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려는 것일 뿐 불법적 폭력 시위를 선동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우리법 연구회의 성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은 지난 7월 성명을 내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법 연구회는 1988년 창립, 정례 모임을 결성한 대한민국의 진보성향의 판사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우리법 연구회는 박시환 대법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노무현 정부 시절 요직에 발탁되어 판사들의 정치 사조직이 아니냐는 평을 받았고, (중략) 과연 사법부 내의 사조직이 바람직하냐 하는 비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법 관련 시민단체와 많은 사람이 우리법 연구회의 인적 구성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판단된다.”
 
  이 단체는 최근 ‘김민선 고소사건, 우리법 연구회 판사가 맡으면 안돼’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촛불집회에 대해 특정한 시각을 가진 우리법 연구회 판사는 편향적일 수 있다”며 “민사소송의 판사가 배당되면 우리법 연구회 판사인지, 특별히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검증하여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의 테두리 내에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권유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법 연구회가 국민 권리보호에 도움이 됐는지 회의적”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의 李憲(이헌) 회장은 “순수하게 연구하는 판사들의 모임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세력화·권력화돼 목소리를 크게 내는 조직은 존속의 필요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판사들이 모여 공부하고, 또 그 내용을 판결에 적용해 국민의 권리 보호에 도움이 된다면 그 이상 좋을 수 없겠죠. 하지만 우리법 연구회 소속 회원들이 우리나라 사법 발전이나 국민의 권리보호 신장에 도움이 됐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시변은 지난 3월 19일 신영철 대법관 사건과 관련, ‘재판관여 의혹에 대한 추가 진상조사 요청서’를 대법원에 내고 우리법 연구회 등 법원 내 특정 모임의 영향력과 사건의 관계와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조사요청서 중 일부다.
 
  <우리법 연구회라는 법원 내 특정모임이 과거 군사정부 시절 하나회와 같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법원 안팎의 지적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사법의 관료화·서열화를 부추기고,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헌 회장은 “알려진 바와 같이 몇 차례 있었던 사법파동의 발원지가 우리법 연구회였고, 초창기 회원들이 주도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순수하게 연구하는 판사들의 모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과거 하나회의 경우 문제점이 지적이 돼서 해체가 됐습니다. 우리법 연구회도 문제가 있다면 그 사례를 참고할 수 있겠죠. 그들의 활동으로 인해 사법부 내부가 분열되고 세력화되는 등 계속 문제점이 제기돼 왔습니다. 사법 발전에 기여하고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에 노력해야 하는데, 세력화가 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과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판사들이나 국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고, 또 순기능이 있었는지, 제 기억엔 없네요. 항상 말썽을 일으키는 모습과 국민의 일반 정서와 유리된 판결을 해서 국민을 놀라게 하고 분노케 한 것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민변의 경우,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나름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 일부분에 있어선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법 연구회는 그 일부분도 없는 것 같습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헌변)’의 林炚圭(임광규) 회장은 “우리법 연구회는 자유민주적 이념에 훼손을 가하는 성향의 판사들이 많은 모임”이라며 “세력을 형성하고 人事(인사)에 반발하는 등 법률 공부가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단체들이야 그럴 수도 있다고 쳐도, 국가기관이나 公(공)조직에 침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정 신성불가침해야 할 곳이 판사 사회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잘못된 국가관을 가진 판사들이 생겨났고, 거기에 젊은 판사들이 편승해 세력화되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봅니다.”
 
  ―법원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판사가 소신에 따라 국가보안법 피고인을 석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존재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법원 내 사조직은 안됩니다. 법원은 그야말로 개인이 독립해서 심판하는 곳이며, 이를 통해 사법권 독립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군에서도 안된다고 하지만, 군대보다 더 사조직이 있으면 안되는 곳이 바로 법원입니다. 예전 하나회도 옳지 않은 조직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론 육사 동창 중 유능한 장교들이 모여 엘리트를 추구했었죠. 우리법 연구회는 그런 것도 아니고,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판사들이 있습니다. 해체해야 합니다.”
 

 
  “우리법 연구회는 중도우파” (우리법 연구회 관계자)
 
   우리법 연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 법조인은 우리법 연구회의 성격에 대해 “재판을 잘하는 방법을 같이 모색해 보는 모임”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내부적, 외부적으로 장애가 있을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에 대해 논의하는 모임입니다. 물론 외부에서 ‘정치성향의 모임’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판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로서 재판을 잘하는 것, 사법적 독립 문제를 제기하면 법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외부에서는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와 관련해 우리법 연구회는 단체 차원에서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회원 개인의 자격으로 견해를 밝힌 것에 불과합니다.”
 
  다음은 이 법조인과의 대화 내용이다.
 
  ―우리법 연구회 내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회원은 매월 한 번씩 만납니다. 어떤 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 때, 개인적 차원에서 각자 판단해서 행동하는 것이지 연구회 차원에서 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토론하다 보면 소수의견도 있고 다수의견도 있습니다.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이 외부적으로 공표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이 마치 모임의 전체 의견인 것처럼 비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李政烈(이정렬) 판사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것입니다. 내부에서 토론할 때는 분명 소수의견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법 연구회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좌파성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판사집단은 굉장히 보수적이며 좌우를 따진다면 우파집단입니다. 우파와 중도우파만 있지요. 우리법 연구회는 판사집단 내에서 약간 진보성향을 보여 왼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중간에서 오른쪽에 있는 분들입니다. 중도우파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법 연구회를 좌파집단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부정확하다고 봅니다.”
 
  ―우리법 연구회가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모임이 지향하는 ‘재판을 잘하자’는 선언은 아주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우리법 연구회가 토론하는 주제들이 약간 민감한 주제들이 들어 있어 사회로부터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고는 봅니다. 우리법 연구회의 부정적 측면은 없습니다.”
 
  사법행정의 최고기관인 대법원은 우리법 연구회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사법행정이란 법원의 조직·인사·예산·회계·시설 등 사법부를 운영해 가는 데 필요한 행정작용을 말한다. 대법원장을 보좌해 사법행정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대법원 산하에 법원행정처가 있다. 吳碩峻(오석준) 대법원 법원행정처 공보관은 “우리법 연구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우리법 연구회라는 단체 이름으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로서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공식 입장입니다. 얘기를 하면 괜히 오해만 삽니다.”
 
  ―모임의 규모는 어느 정도라고 파악하고 있습니까.
 
  “공식적인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누가 회원인지 파악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원 내 공식단체는 어떤 게 있습니까.
 
  “민사실무연구회, 형사실무연구회, 비교법실무연구회, 노동법실무연구회 등 여섯 개가 있습니다. 법원에 등록한 공식단체는 법원으로부터 몇 가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판사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우리법 연구회와 같은 모임이라고 봅니다. 구성원이나 참여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간여할 바가 아닙니다.”
 
 
  “연구회가 좌파면 헌법도 좌파”
 
우리법 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
  일각에서는 민사판례연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모임은 사법연수원 기수별로 임용 성적이 뛰어난 일부 판사들만 가입한다고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이 모임의 회원이었고 양창수 대법관은 모임 회장 출신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이 모임에 대해 “순수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현재 우리법 연구회 회장은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다. 1992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된 뒤 3년간의 창원지법 경력을 빼고 줄곧 부산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음은 문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우리법 연구회의 세미나는 주로 어디서 합니까.
 
  “한 달에 한 번씩 주로 서울에서 만납니다. 20~30명씩 참가해요. 현직 회장이라 서울에 올라가지만 지방에 있는 회원들은 참석하기 어려운 점도 있어요.”
 
  ―회원은 얼마나 됩니까.
 
  “130여 명 정도 됩니다. 현직 법관만 자격이 주어지는데 변호사로 개업하면 탈퇴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우리법 연구회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변호사들과 함께하니까 오해하기도 해서요. 판사들 연구모임이라는 점을 정확히 하기 위해 현직 법관으로 한정했습니다.”
 
  ―우리법 연구회를 定義(정의)한다면.
 
  “학술연구단체입니다. 우리 판사들이 헌법에 대해 연구가 부족합니다. 헌법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헌법을 연구하자는 것이죠. 남들이 별로 연구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판사가 꼭 알아야 할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지난번에 난민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법원 내에 이런 내용의 논문이 거의 없더군요. 통일 이후의 사법부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연구대상입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양쪽의 법제가 서로 달라 복잡한 문제가 전개될 겁니다. 이런 문제들을 사전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죠. 독일 통일 사례를 보고 우리가 원용할 수 있는 부분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법 연구회를 두고 ‘법원 내 사조직’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헌법을 잘 봐야 합니다. 우리 헌법은 잘돼 있어요. 그런데 헌법에 대해 판사들이 연구를 잘 안 해요. 예를 들어, 경제와 관련해 공공성에 기초해 일정 부분을 제한하도록 돼 있어요. 복지제도도 마찬가지고요. 아무튼 그런 부분을 연구하는 겁니다. 우리 모임을 좌파라고 한다면 우리 헌법을 ‘좌파’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좌파라는 용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좌파라는 말 자체를 동의하지 않습니다.”
 
 
  “私모임 아닌 학술연구단체”
 
  ―회원으로 있는 일부 판사의 판결 내용을 보고 우리법 연구회 전체를 좌파성향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박시환 대법관이 송두율 사건에서 내놓은 의견이 사례가 될 수 있겠군요.
 
  “전임 이회창 대법관이 낸 소수의견을 본 적이 있습니까? 박시환 대법관과 이회창 대법관의 의견이 다르다고 보지 않습니다. 원정화 간첩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첩혐의로 구속된 그의 계부에 대해 재판을 맡았던 신某(모)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부장판사가 좌파입니까. 저는 어떤 판결을 가지고 좌파적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이정렬 판사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좌파라고 하던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연구해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종교적 신념에 기초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을 허용하는 입법례와 허용하지 않는 입법 사례를 따져 봐야지요. 가령 독일의 경우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먼저 정의하고 좌파냐, 우파냐를 따져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법 연구회 회원들의 이념적 성향이 진보적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합니까.
 
  “그것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진보라는 개념이 좌파와 구별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어요. 저는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이 모임의 회장입니다. 우리 모임의 회원 성향은 다양합니다.”
 
  ―우리법 연구회가 일부 판사들의 私(사)모임은 맞습니까.
 
  “법원 내 민사판례연구회라는 게 있는데 그게 사조직입니까? 법원 내에는 이런 단체들이 많습니다. 민사판례연구회는 판사와 교수들이 모인 학술연구단체입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곳이 바로 민사판례연구회입니다. 대법원장도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입니다. 그 단체가 사조직이라면 모르겠지만…. 사모임의 정의가 판사들의 친목도모를 위한 단체라면 우리법 연구회는 사모임이 아닙니다. 우리법 연구회는 학술연구단체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리법 연구회가 과거 군부 내의 ‘하나회’와 유사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회원 중 일부가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행정처에 간 걸 두고 그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광범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 같은 분은 오래전에 행정처에 갔어야 할 분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분이지요. 그분의 초임지가 서울민사지법입니다. 성적이 매우 우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명단 공개 거부한 적 없다”
 
  ―일반인들은 우리법 연구회 홈페이지의 정보를 볼 수 없게 돼 있더군요.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니 우리법 연구회의 ‘박시환 정신’ ‘한기택 정신’을 강조하고 있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박시환 대법관은 우리법 연구회의 이름을 만든 분입니다. ‘외국법만 연구하지 말고, 우리법 좀 연구하자. 외국의 금과옥조 같은 이론만 소개하지 말고 좀 떨어지지만 우리의 법을 우리 실정에 맞게 해석하자’는 취지입니다. 그의 정신을 본받자는 뜻에서 박시환 정신을 강조한 겁니다. 고인이 되신 한기택 부장판사의 좌우명은 ‘목숨 걸고 재판하자’입니다. ‘재판을 잘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는 거죠. 재판을 잘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우리법 연구회의 목적입니다. 이런 것들을 회원에게 자세히 풀어서 얘기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박시환 정신, 한기택 정신이라고 통칭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전직 회원들은 모임에 참석합니까.
 
  “원칙적으로 안 합니다. 다만 모임에 오시면 안 만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 정도입니다.”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할 당시 우리법 연구회가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회원 중 일부가 한 것에 대해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법 연구회와는 무관합니다. K 변호사를 두고 얘기하는 것 같은데 확대 해석하지 말기 바랍니다.”
 
  ―신영철 대법관의 문제에 대해 우리법 연구회 회원들이 사퇴를 주장했습니다.
 
  “법원 내부 게시판에 30~40건의 글이 올라왔는데 그중 우리 회원이 쓴 글은 30%에 불과해요. 70%는 비회원입니다. 비회원들이 왜, 무슨 이유로 글을 올렸는지 분석해 봐야 해요. 회원과 비회원이 쓴 글의 내용에 질적인 차이가 있다면, 우리법 연구회가 조직적으로 뭐를 했다, 안 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올라온 글을 보면 회원과 비회원을 구분할 수 없어요. 판사회의에서 논의된 결과를 봐도 큰 틀에서 비슷합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우리법 연구회가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일부 회원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전 정권에서 ‘잘나갔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 보직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습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일부 회원이 요직에 간 것은 맞습니다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회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법 연구회는 그동안 논문집 다섯 권을 냈습니다. 논문집을 보면 저자 이름이 모두 나와 있어요. 모두가 우리법 연구회 회원입니다. 우리법 연구회 이름은 이미 대부분 공개돼 있어요. 구체적인 명단을 왜 공개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렇다면 민사판례연구회나 민사실무연구회 회원 명단은 공개돼 있습니까? 우리법 연구회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법 연구회에 대해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질까요.
 
  “우리에 대해 조금 못마땅한가 보죠. 우리는 명단 공개를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굳이 비밀로 할 필요도 없고요. 그게 무슨 관심사인지 그것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법 연구회 논문집을 보면 대부분 회원이 다 들어있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논문집에 다 나와요. 열심히 안 하는 사람들은 우리법 연구회에 대한 사회의 과도한 관심에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회장인 제가 ‘우리법 연구회 명단이 이렇습니다’라며 공개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자기들이 글을 쓰고 논문을 발표하면 자동적으로 공개되는 거지요.”
 
  ―회원 모집은 어떻게 합니까.
 
  “솔직히 말해 코트넷 내부 게시판에 회원모집 공고를 올려서 공개모집하고 싶어요. 우리가 비밀단체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게 오해를 많이 불러일으키더라고요. 세 과시하는 것이 아니냐며. 가입 의사가 있다고 하면 그냥 받아들입니다. 아무튼 우리 모임에 대해 나름 공개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부족하다면 좀 더 넓히도록 해 보겠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한 판사, 판단 부족 인정”
 
  ―서울대 출신이 많던데요.
 
  “모임을 처음 만들 때 서울대 출신이 중심이 돼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출신 학교를 따지는 건 아닙니다. 전체 판사 중 70%가 서울대 출신입니다. 전체 법관 중에 연구회 회원 비율도 3% 정도밖에 안됩니다.”
 
  ―요즘 세미나에서 토론된 주제는 무엇입니까.
 
  “사이버모욕죄와 판사임용제도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요지는 무엇입니까.
 
  “사이버모욕죄 조항을 신설하는 데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판사임용제도에 대해서는 연수원을 졸업하고 바로 판사가 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는 거아닌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변호사 경험을 쌓은 후 판사로 임관되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지난 6월 미국 최초 히스패닉계 출신 대법관인 소토마요르 씨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법관은 오로지 법 조항만을 따라야 한다. 주관이나 이념을 개입시키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과거 판사 시절 “현명한 라티노 판사가 백인 남성보다 더 나은 판결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를 수정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법관은 어떻게 판결해야 한다고 봅니까.
 
  “일단 입법자의 뜻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법조문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죠. 사실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도 필요해요. 법관의 경험은 한정돼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인, 전문 심리위원, 사건과 관련된 여러 관계자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겠지요.”
 
  ―이념적 성향 때문에 모임 소속 일부 판사들을 기피하려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를 하나 들죠. 이정렬 판사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냈습니다. 판결을 하기 전 연구회 세미나에서 관련 논문을 발표했는데 참석했던 회원 다수가 이 판사의 견해에 반대했어요.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라고 하기에는 논리가 비약적이다’며 비판을 받았지요. 이정렬 판사는 고민을 더 했고 결국 자신의 소신대로 무죄판결을 했습니다. 그 사건은 2심, 3심에 가서 뒤집혔어요. 이 판사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견해가 불충분했다고 인정했지요.
 
  만일 이정렬 판사가 연구회의 토론과정이 없었다면 더욱 더 한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연구회는 이념을 놓고 얘기하지 않아요. 소속 회원 중 일부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모든 토론의 출발점은 ‘판사’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세미나에 직접 참여해 본다면 우리에 대한 시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언론에 공개하는 게 좋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세미나 공개 문제를 놓고 논의 중입니다. 작년 창립 20주년 기념 세미나를 할 때 조선일보 기자도 참석했습니다만 언론에 공개적으로 ‘우리가 세미나를 하니까 와서 취재해 달라’고 얘기를 할 상황은 못 됩니다. 우리는 공개를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우리대로 세미나를 해온 거죠.”
 
  문형배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판사가 본분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다양성은 보장해 줘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인혁당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가 나왔어요. 당시 인혁당 사건을 판결했던 판사 모두가 피의자에게 유죄를 인정했다면 얼마나 서운한 일이었겠습니까. 다행히 한 분이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한 분의 소수의견이 있었기에 지금 와서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의견도 있었구나’ 하는 것 아닙니까. 판사가 그 본분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다양성은 어느 정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검찰의 검사동일체의 원칙처럼 판사가 일사불란하게 판단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 맞지 않습니다.”
 
 
  법관은 헌법·법률·양심에 따라 심판
 
  우리법 연구회가 태동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與野(여야) 정권교체를 두 번했다. 盧泰愚(노태우)·金泳三(김영삼) 정권에서 金大中(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李明博(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갈등을 겪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쟁점 사안으로 浮上(부상)한 주제를 우리법 연구회는 많이 다뤄 왔다.
 
  법조계를 비롯해 우리 회사가 법원 내 일부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 연구회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목숨을 걸고 재판을 해야 한다”는 그들이 바로 한 개인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법관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돼 있다. 뜨거운 열정이 넘쳐 흘러 특정 신념으로 변해, 특정 재판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을 기대한다. ⊙
 

  ▣ 우리법 연구회 회원 분석
 
  우리법 연구회의 현직 법관 회원 총 129명은 연령별로는 40대가 66명, 30대가 59명, 20대가 4명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39세, 최연소 회원은 27세다. 평균 기수는 27.8기다.
 
  출신지역별로는 부산·경남이 32명(25%)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서울·경기 28명(22%), 광주·전남 27명(21%), 대구·경북 13명(10%) 순이다. 대전·충남은 8명(6%), 전북과 충북이 각각 6명(5%), 강원은 4명(3%), 제주는 3명(2%), 일본이 1명(1%)이다. 권역별로 구분하면, 영남권이 45명(35%)으로 가장 많고, 호남권은 33명(26%), 수도권은 28명(22%), 충청권이 14명(11%)이다.
 

  출신대학은 서울대가 가장 많다. 129명 중 101명(77%)이 서울대 출신이고 이들 중 80명이 법대를 나왔다. 고려대는 11명(8%), 연세대는 8명(6%)이다. 성균관대와 이화여대 출신이 각각 2명(2%)이며, 동아대·전남대·전북대·중앙대·한양대 출신은 각 1명(1%)이다.
 
  출신고교는 42명(32%)이 서울·경기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호남 소재 고교 졸업자는 36명(28%)이고, 영남권은 35명(27%)이다.
 

  근무기관을 기준으로 할 때 가장 많은 곳은 17명이 근무하는 서울중앙지법이다. 그 다음으로 13명이 서울고법에, 11명이 서울남부지법에 재직 중이다. 부산지법과 광주지법에는 각각 10명이 있고, 서울동부지법에 7명, 대법원·수원지법·대전지법에 각 6명, 인천지법에 5명, 전주지법에 4명, 법원행정처·사법연수원·서울북부지법·서울서부지법·의정부지법에 각 3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우리법 연구회 前(전) 회원(탈퇴자)은 총 53명이다. 박시환 대법관과 부장판사 6명, 법원행정처 국장, 법학과 교수, 사망 회원 등을 제외한 37명이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탈퇴한 법조인은 연수원 11기부터 35기까지 분포돼 있으며, 평균 나이는 47세다. 탈퇴자 중에는 초창기 멤버가 많다.
 
  출신지역을 분석하면, 호남이 21명(39%)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서울·경기가 12명(23%)이다. 충청은 10명(19%)이고, 영남은 9명(17%)이다. 탈퇴자의 출신 대학은 서울대가 압도적이다. 53명 중 47명(88%)이 서울대이고, 이들 중 한 명을 제외한 46명이 법대 출신이다. 나머지 6명은 고려대 3명(6%), 연세대 2명(4%), 성균관대 1명(2%)이다.
 
  전·현직 회원 182명을 모두 합쳐 지역별로 분류하면, 영·호남 출신이 각각 54명(30%)으로 가장 많고 수도권은 40명(22%), 충청권은 24명(13%)이다. 학교별로는 서울대 출신이 148명(80%)으로 가장 많고, 고려대 14명(7%), 연세대 10명(5%), 성균관대 3명(2%) 순이다. 성별로 구분하면, 남자가 150명(82%) 여자는 32명(18%)이다. 평균 나이는 41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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