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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호

나의 文學靑年 시절 (16) 소설가 姜石景

「모든 것이 막막했지만 글을 쓰는 일은 내게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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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카뮈에 감염, 「이방인」의 첫 구절 기도문처럼 외워
● 어두운 군부시대와 아버지의 파산, 불안정한 가정, 어디에도 내 영혼이 뿌리 내릴 방은 없었다.
● 작열하는 8월의 사루비아가 필 무렵 등록금 내러 갔다가 불쑥 휴학계를 내
● 李御寧 선생 추천으로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姜石景
1951년 대구 출생. 이화女大 조소과 졸업. 1973년 문학사상에 「根」과 「오픈게임」으로 제1회 신인문학상 수상하며 등단. 1986년 「숲속의 방」으로 제6회 녹원문학상과 제10회 오늘의 작가상, 2001년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로 제8회 21세기문학상 수상. 작품집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 「米佛(미불)」, 「밤과 요람」, 「내 안의 깊은 계단」 등.
다락방에서 책읽기

  대부분의 문인들이 청소년기부터 詩(시)를 썼다든가, 남다른 감성과 조숙한 행동거지로 문필가가 될 조짐을 보이는데, 나는 지극히 평범했다. 단 한 번도 작가를 꿈꾼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범생이처럼 일기를 쓴 적도 없었다. 숙제로 쓴 것 외에는.
 
  책은 유난히 좋아했다. 내가 어릴 때 다락 한 면이 아버지의 서가로 채워져 있었는데, 약밥이며 단술·떡가래 등 음식까지 저장된 다락은 내 최상의 놀이터였다. 서가엔 김내성의 「魔人(마인)」부터 「삼국지」, 「마농레스코」 등 온갖 책들이 들어차 있었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다락에 올라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뜻도 잘 몰랐을 테지만 세상에 책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놀 때도 그렇게 몰입하지는 않았다. 그 나이답게 십자가생이나 고무줄놀이를 즐겨 했지만 반 아이들 속에서 왠지 혼자 동떨어져 있는 듯 했다. 뒤에야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는데, 이방인 의식 같은 것이었다.
 
  거기다 집에서도 무언가 허한 것을 느꼈다. 엄마의 사치 취향으로 집에는 온통 통영자개농들이 번쩍거리고 당시엔 보기 드문 프랑스 인형들이 긴 장갑을 낀 채 유리 케이스 안에서 웃고 있었지만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느낌의 정체도 뒤에야 알았는데 물질의 공허였다.
 
  중학교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며 책을 많이 읽었다. 그때 「가을에 온 여인」, 「김약국의 딸들」 등 박경리 소설을 죄다 읽었고, 박화성과 김말봉의 「찔레꽃」 등 통속소설과 제대로 된 번역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몇 권이나 되는 「홍루몽」도 읽었다.
 
  중학교까지는 만화도 엄청 보고 만화 그림도 즐겨 그렸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선 세계문학전집에 빠져들었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은 인생의 고난·격정 같은 것이 한참 가슴에 맴돌았고, 디킨즈의 「데이비드 커퍼필드」는 그 두꺼운 분량에도 손을 놓을 수 없어서 수업시간에 교과서로 한쪽 페이지를 가리고 보았다.
 
  바다의 태풍 장면이 한 페이지가량 묘사된 것을 읽곤 작가란 정말 천재이거나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 반에는 전교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다는 독서파가 있었는데, 늘 조용한 그 아이가 하루는 내게 「17세기」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분위기가 그렇다고 했지만, 공부나 학교생활에 별 흥미를 갖지 않으면서, 다른 세계의 책에 빠져 있는 내가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 같았나 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유일한 과목이 수학이어서 대학 진학을 결정할 땐 수학과를 선택하려 했지만, 동양화를 배우는 단짝친구를 따라 화실에 갔다가 방향을 돌려 美大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학생 때 잠깐이었지만 만화가가 되고 싶어 했고, 초등학교 때는 내 그림이 곧잘 교실 게시판에 붙곤 해서 공연한 자신감을 가졌다. 내게 데생을 가르친 선생은 國展(국전)에 특선을 한 조소과 대학원생이었는데, 그가 흙으로 작품하는 것을 보고 부드러운 흙에 친화감을 가졌다. 또 입체적인 조각에 마음이 끌렸고, 막연하게나마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는 듯했다.
 
 
  대학시절, 「실존」과의 첫 대면
 
1975년 서울 경복궁 돌담길에서. 당시 강석경은 월간지「여학생」社의 기자였다.
  교수에게 레슨을 받지 않고도 원하던 美大에 어렵지 않게 입학했지만, 대학은 내가 보호의 제복을 벗고 처음 나선 세상이었다. 행복의 전도사 같은 발랄한 여대생들이 앞으로 무리지어 지나가면 나는 마치 낯선 별에 떨어진 神의 의붓자식 같아 멈칫거렸다.
 
  대학이라는 집단 속에서 나는 이방인이 된 듯했다. 그즈음 나는 카뮈에 감염되어 「오늘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는 이방인의 첫 문장을 기도문처럼 되새기곤 했는데, 벌거숭이 「이방인」은 화두처럼 내 의식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실존」과의 첫 대면이었다.
 
  첫 채플 시간이었다. 기독교 학교여서 정오마다 채플에 참석해야 하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내 눈을 끌었다. 같은 과의 K로 내 옆 좌석이 그 아이의 지정된 자리였다. 그 아이는 숯으로 칠한 듯 시커먼 일자 눈썹을 찌푸리고 퀭한 눈으로 강단을 쏘아보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과 반항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나는 한눈에 그 아이에게 매료당했다. 「아름다운 여자」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나는 그 아이를 「뫼르소」라고 마음속으로 불렀다. 군중 속에서 연대감을 가진 유일한 얼굴이었다.
 
 
  뫼르소와 단짝, 자주색 블라우스
 
강석경은 현재 경주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펴고 있다.
경주 봉황대에서.
  나는 뫼르소와 2학기부터 단짝이 되었다. 그 아이와 늘 함께 다닌 고교동창이 휴학을 했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나와 달리 일찍이 미술을 선택한 藝高(예고) 출신이었으나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았고, 미팅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자친구가 있었으나 열정의 끝을 다 안다는 듯 데이트를 할 때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맥주잔만 비웠다.
 
  나는 마이크로 하는 교양수업과 美大의 공동작업실에 이내 흥미를 잃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열심히 끼고 다녔다. 카뮈의 「이방인」은 문학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 듯했다. 나는 책에서 生(생)의 상징들과 조우하면서 문학 속의 인생에 탐닉했다. 현실이 오히려 꿈 같았다. 무의식 속에 부유하는 꿈, 깨어나면 공허한 꿈.
 
  그즈음 공화당이 추진한 3選 개헌안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대학가에서도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우리 학교에선 모두 흰 블라우스를 입는 것으로 반대시위를 하기로 했다. 나도 따르려 했지만 그 흔한 옷 중에 흰 블라우스가 없었다.
 
  흰 옷을 살 수도 있었지만 그건 나답지 않은 과장된 행위 같았다. 그래서 검은 자주색 블라우스를 찾아내 그것을 입고 다녔다. 그건 내 식의 반대 표시였지만 물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흰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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