嚴相益
1954년 경기 평택 출생. 경기高·고려大 법대 졸업.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軍 판사 역임. 수필집 「피고인 각하」, 「임종연습」, 「욕심 그릇이 작을수록 행복하다」 등 발표.
1954년 경기 평택 출생. 경기高·고려大 법대 졸업.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軍 판사 역임. 수필집 「피고인 각하」, 「임종연습」, 「욕심 그릇이 작을수록 행복하다」 등 발표.
예수가 한때 살았다는 헤미스 사원
지난 7월31일 오후. 해발 3500m에 있는 티베트의 공가공항에는 투명한 뙤약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부신 파란 하늘에 하얀 조각구름이 흘러갔다. 공항을 나와 몇 걸음을 걷자 약간의 어지럼증이 소리 없이 찾아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숨이 찼다. 인민해방군에게 점령당한 티베트는 1980년 들어서야 조금씩 외부에 알려졌고, 지금도 이곳을 여행하려면 중국관리의 여행허가서를 얻어야 한다. 또한 다른 지방으로 갈 때는 공안에게 검문을 받고 신고를 해야 했다.
눈의 나라 티베트는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분지였다. 산 頂上에는 일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이 쌓여 있고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나라다. 티베트 여행의 白眉(백미)는 라싸에서 출발해 국경인 장무를 넘는 험악한 히말라야의 비포장길 725km의 대장정에 오르는 것이었다.
티베트와 네팔 국경을 따라 이어지는 히말라야 산맥을 볼 수 있는 길이다. 여름이라 도로를 따라 피어난 노란 유채꽃이 히말라야 바람에 인사를 하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겨울에 이 길을 넘을 때는 외로움과 두려움, 추위와 배고픔 등 다양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공항에서 얄루江을 따라 버스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라싸가 있었다. 집집마다 걸린 하양·빨강·초록·파랑·노랑 등 다섯 가지 색깔의 「룽다(깃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천 조각에는 불경이 적혀 있었다.
붉은 가사를 두른 티베트의 승려들이 지나가고 인력거꾼들이 손님들을 기다렸다. 까무잡잡한 티베트人들이 마니차를 돌리며 가고 있었다. 마니차는 불경이 든 금속통이다. 한 번 돌릴 때마다 그 속에 든 불경을 염불한 셈이 된다는 것이다.
100년 전 그곳을 다녀간 한 미국인이 쓴 여행기를 읽은 게 생각이 났다. 저자는 이곳을 「超人(초인)의 나라」라고 했다. 한 수도사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빠져나와 히말라야의 마을을 이곳저곳 돌아다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산등성이에는 무수한 사원들이 있다.
그중 헤미스 사원은 한때 예수가 살던 곳이라는 전설을 갖고 있다. 라싸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가 어린 시절 잠시 거기 다녀갔다고 믿고 있다.
티베트의 상징은 어디를 가도 바위산에 기댄 붉은 벽과 흰 벽, 향 연기와 웅얼대는 주문으로 가득 찬 포탈라 宮(궁)이다. 궁전은 수많은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때가 낀 이부자리와 간단한 여행 도구를 가지고 멀리서부터 「五體投地(오체투지)」를 하며 산과 들을 건너온 사람들이다.
더러운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온몸을 뻗는 五體投地는 인간의 가장 겸손하고 낮은 자세라는 것이다. 그들은 쉴 새 없이 神과 영적 파장을 맞춘다는 주문인 『옴마니반메홈』을 외쳤다. 그 여섯 글자를 돌이나 나무에 새기고 각기 다른 색깔로 칠하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그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물질적인 충족이 아니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그들의 소망이라고 했다.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五體投地 |
| 라싸의「조캉 사원」에서 한 순례자 가족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
밝은 햇빛이 비치는 宮 앞은 시끌시끌한 시장거리였다. 어깨를 비비대며 옷가게, 생필품을 파는 노점 등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정육점엔 시뻘건 야크 고기가 갈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점원이 투박한 쇠도끼로 야크의 갈비뼈를 반으로 꺾어 대에 나란히 걸치고 있었다.
종교가 시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 담벼락을 따라 금도금을 한 커다란 마니차가 빙빙 돌았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마니차를 돌리면서 빌었다. 노파 한 명이 마니차 손잡이에 묻은 기름때를 정성껏 닦아 내고 있었다. 좁은 시장거리 중간쯤에 구멍 뚫린 벽에서 향 연기가 흘러 나왔다.
집단으로 수도하는 「조캉 사원」, 「세라 사원」들을 둘러봤다. 승려가 되는 길은 멀고 험했다. 어려서 出家(출가)해 성인이 될 때까지 청소하고 빨래하고 명상과 함께 예비 라마승으로서의 다양한 견문과 불교지식을 배운다고 했다. 중국의 사천성 계곡에서 혼자 끝없는 히말라야 산길을 순례하는 라마승을 본 적이 있다. 그들만의 독특한 수업방식이자 깨달음을 얻어 가는 수행과정도 있었다.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學僧(학승)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 토론의 정원으로 찾아갔다. 붉은 가사를 걸친 젊은 승려들이 뜨거운 자갈밭에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질러 가면서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다른 무언가를 간절히 갈구하고 있었다.
절도범으로 몰려 조사받아 |
| 히말라야 시골마을인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 앞 전경. |
오지여행에서 여권은 생명같이 귀하다. 여권이 없으면 국경을 나가지 못하고 대책 없이 몇 달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관리들이 권위주의적이고 무책임하면 더욱 그렇다. 형사는 통역도 없이 붉은 괘지에 만년필로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직업이 뭡니까?』
세 명의 형사 중 젊은 형사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물었다.
『변호사입니다』
그가 한자로 「律士(율사)」라고 적었다. 나는 일단 그가 정말 공무원인지 확인했다. 관광객을 노린 사기꾼일지도 모른다.
『잠깐만, 당신 경찰이 맞습니까? 신분증을 봅시다』
내 말에 형사는 놀란 표정으로 『왜 그러느냐』고 되물었다.
『진짜 형사인지 아닌지, 어떤 경찰서에 소속되어 있는지 먼저 증명서를 보고 확인해야 할 거 같습니다』
형사는 불쾌한 듯 마지못해 뒷주머니에서 경찰관 신분증을 꺼내 표지만 얼른 보여 주었다. 나는 그걸 달라고 해서 열어 보았다. 사진과 함께 형사의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다.
형사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나는 오전 9시경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린 그 관광객 부부만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나는 바로 그 옆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10분 정도도 되지 않아 그 부부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갔는데, 잠시 후 여자 종업원이 그 자리에 있는 재킷을 들어 보이면서 「당신 일행의 것이냐」고 물었어요. 그게 다입니다』
형사가 그외 자질구레한 것들을 물으면서 붉은 괘지에 질문과 답변을 한자로 써 내려갔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듯 형사는 순간순간 「뭘 물어야 할까」 하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외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형사가 마지막 질문을 할 때 식당의 한 종업원이 생각이 났다.
『그 관광객 부부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왔을 때 내가 종업원에게 그분들이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해 줬죠. 그때 종업원이 당황하면서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얼른 다른 데로 가버렸어요. 좀 이상했죠. 「혹시 바닥에라도 지갑이 떨어지지 않았나」 하고 먼저 테이블 주변을 살피는 게 상식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 여자 종업원은 전혀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조서를 다 쓴 형사가 마지막 장의 빈칸을 가리키면서 『서명하라』고 명령했다. 원칙은 정식통역을 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 통역을 통해서 조서의 내용을 알려준 후에 서명을 요구하는 게 세계 어느 나라나 형사소송법의 공통된 기본 원칙이었다.
『무슨 소리를 썼는지 모르는데 함부로 서명할 수는 없죠. 내가 이해 못 한다고 먼저 앞에 적고 나서 이름을 쓰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시키는 대로 그냥 서명만 하시오』
형사가 다그쳤다. 나는 할 수 없이 서명했다. 그런 경험은 또 다른 차원의 오지여행이었다.
「절망의 꽃」 |
| 히말라야 산맥으로 출발하기 직전 중국 장체의 한 호텔 앞에서. |
외줄기 흙길이 거대한 히말라야 봉우리의 풍만한 허리를 길게 감으면서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내가 탄 낡은 지프차는 메마른 구덩이를 돌고 깨진 바위가 부서져 내린 기슭을 피하면서 하늘길을 올라갔다.
군데군데 난 이끼와 키 작은 풀덩이들로 한여름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은 마치 퇴색한 낡은 초록 카펫을 깐 것 같았다. 그 풀을 뜯는 야크 떼들이 점점이 보였다. 계곡에는 몇 채의 티베트人 흙집들이 나타나곤 했다. 집 담벼락마다 까만 야크 똥이 붙어 있었다. 야크 똥은 나무가 없는 高山지대에서 유일한 에너지원이었다.
지프차는 헉헉거리면서 구름을 뚫고 5200m의 봉우리까지 올랐다. 차에서 내려 하늘을 쳐다봤다. 투명한 파란 하늘에는 바람이 구름들을 빠르게 몰아가고 있었다. 까마득한 아래로 새파란 호수가 보였다.
나는 神仙(신선)들이 사는 듯한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직접 느끼고 싶었다. 길 옆의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숨이 찼다. 키 작은 풀들이 듬성듬성 군락을 지어 있었다. 나는 그 풀들 속에 숨어 있는 작은 보라색 꽃을 발견했다. 혹한의 겨울을 이기고 아무도 보지 않는 高山 위에 피어난 「절망의 꽃」이었다. 그걸 대하는 마음이 여느 것과 같을 수 없었다.
기회가 되면 세일리스 산도 보고 싶었다. 전설 속의 수미산이었다. 티베트人들은 그 산을 순례하기 위해 수십 년간 준비한다고 했다. 천막을 치고 밤을 보내며 매일 조금씩 다가서는 고행길이 그들의 꿈이라고 했다. 그 산은 힌두교의 시바神이 머물던 곳으로 여기기 때문에 인도人들도 그곳에 또 다른 의미를 두고 있었다.
다시 6시간 가량 달려 장체 마을에 도착했다. 바위산 위에 사원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 사하촌이 형성돼 있었다. 회칠한 흙집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티베트의 옛 모습과 풋풋한 시골 냄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누런 먼지가 바람에 날리는 사원 마당으로 들어갔다. 웃통을 벗은 뚱뚱한 남자 한 명이 五體投地를 하고 있었다. 배에 누런 먼지가 잔뜩 묻었다.
나는 법당 입구의 기둥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그때 뒤에서 마당을 쓸던 티베트人 노파가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손짓했다. 티베트人들은 항상 이부자리를 가지고 다니는데 노파는 나에게 자기의 요를 내주었다. 따뜻한 정이 밀물처럼 가슴에 스며들었다. 가진 게 없어도 맑고 착한 영혼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티베트였다.
나는 사원 마당 한쪽 벽 그늘에 앉은 몇 명의 티베트人을 보았다. 땟물이 흐르는 낡은 옷의 꾀죄죄한 티베트人 네 명이 사슴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례자인지 거지인지 구별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행복한 미소와 선량한 눈을 가졌다. 몇 가지 안 되는 음식과 초라한 집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혹한의 기후에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지도 않는 게 티베트人들의 삶이라고 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을 봐야 한다. 자연이 된 진짜 인간의 본원적인 모습을.
어느새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인 티베트 고원에 저녁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묵을 여인숙도 없이 황량한 산길을 끝없이 가야 하는 나그넷길이었다. 길가에는 이따금씩 홀로 앉아 落照(낙조)를 바라보면서 깊은 명상에 빠져 있는 티베트人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람 같은 자유인 |
| 바코르를 돌고 있는 순례자들. |
라마승을 찾아가 진리를 공부한다는 코털을 기른 교수도 있었다. 그는 『사마르 칸트를 거쳐 왔다』고 했다. 부인이 옷가게를 한다는 교사 부부는 이번 방학에 티베트 고원을 건너 은둔의 왕국 부탄으로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티베트 고유의 약초를 찾아온 한의사도 있었다.
20여 년 전부터 여행에 미쳐 세계를 떠도는 학원 원장도 있었다. 그는 아내도, 여행 동료도 필요없다고 한다. 혼자 다녀야 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두 바람 같은 자유인들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났다. 히말라야 산길을 달리는 일은 계속됐다. 어느새 나는 티베트에 익숙해져 갔다. 기슭을 어설프게 깎아 만든 산길은 불안했다. 벼랑에 매달려 있던 검은 흙과 돌들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툭 갈라지면서 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언제 길이 끊기고 차와 사람이 매몰될지 몰랐다.
뒤에 따라오던 지프차가 퍼져 그 차에 타고 있던 여행객이 다른 차의 짐칸에 분산되어 타고 가기도 했다. 오래 전 폐차되어야 할 구형 지프차를 티베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고장이라도 날 때면 중고 부속품을 구하기 위해 首都(수도) 라싸로 가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티베트人 운전기사는 여유만만했다. 차 안에 말 울음소리가 나는 경쾌한 티베트 음악을 틀어놓고 달렸다. 요철이 심한 비포장길에서는 마치 말을 타고 고원을 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산허리에 점점이 박힌 노란 바위들로 인해 마치 금띠를 두른 듯한 붉은 산이 나타났다. 그 산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공상과학 소설 속 외계의 어느 행성 위에 있는 것 같았다. 高山지대에는 아직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잠시 차가 쉴 때 티베트人들의 오래된 집에 들어가 보았다. 흙바닥 위에 나무침대가 있고, 야크 털로 직물을 짜는 도구가 보였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낀 꼬마는 구석에서 잠들어 있었고, 흙방 한쪽에 무쇠솥과 국자가 보였다. 야크 똥을 메주같이 뭉쳐 귀하게 보관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재래식 화장실은 하늘을 가리는 지붕도 없고 벽도 없다. 게다가 화장실 하나에 4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온 가족이 한꺼번에 볼일을 보게 되어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가족이 함께 볼 일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황량한 히말라야의 계곡 사이 다양한 형태의 마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떤 마을은 마치 서부영화 세트장 같았다. 먼지가 이는 흙길 양쪽으로 몇 채의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이따금씩 개들만 다닐 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원형의 탁자를 둘러싸고 서부의 총잡이들이 포커를 하고 있을 것 같은 곳도 있고, 노란 유채꽃에 마을 앞의 밀밭이 바람에 파도치는 평화로운 마을도 있었다.
끝없는 히말라야의 고원 길끝이 보이지 않는 히말라야의 고달픈 길을 며칠 동안 계속 달렸다. 가파른 오르막길의 진창에서 화물차가 지쳐서 주저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외길이라서 그럴 때면 뒤의 차들은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실은 지프차들이 도심의 러시아워 때처럼 투명한 햇빛을 콧등에서 튕겨내며 서 있었다.
그들은 그것마저 하나의 경험으로 간직하는 것 같았다. 그 험준한 길들은 지금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이런 자연 그대로의 길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 같다.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웅장한 雪山 봉우리로 서서히 해가 지고 협곡에 어둠이 내렸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총총했다. 히말라야의 밤길은 낮과는 전혀 달랐다. 지리에 익숙한 티베트人 운전사지만 수시로 방황했다. 고원의 길은 사막처럼 자주 형체를 바꾸는 것 같았다.
눈은 따갑고 몸은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물 한 방울이 아쉬운 건기라 짙은 모래바람이 휘몰아쳐 내 몸뚱이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 힘들었다. 밤의 사막 한가운데를 홀로 가는 이러한 삭막함도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여행의 묘미였다.
기온이 급강하하는 한밤중에 간신히 팅그리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불빛 한 점 없는 깜깜한 길 옆에 사방이 담으로 둘러쳐진 낡은 단층 건물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행 7일째의 밤을 묵을 숙소였다. 한 방에 남녀 구분 없이 여러 명을 자게 하는 高山지대의 합숙소였다.
베이스 캠프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서는 에베레스트로 오르는 티켓도 판다고 했다. 담 한가운데 뚫려 있는 검은 입 같은 문을 통과하니 넓은 마당이 나왔다. 건물 귀퉁이 초라한 공용식당 함석문 앞에 알전구가 약한 빛을 뿜어 내며 밤을 지키고 있었다. 지친 몸을 눕힐 방이었다. 추웠다. 손때 묻은 길다란 나무탁자와 의자가 몇 개 있고, 방 가운데서 넓적한 무쇠 난로 위에 물이 끓고 있었다. 티베트人 여자가 연료인 야크 똥을 불구멍에 몇 개 던져 넣었다. 죽었던 불이 피식하며 타올랐다.
구석의 의자에 앉았다. 티베트人 여자가 다가와 뜨거운 야크 젖을 한 잔 따라 주었다.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고원을 먼저 건너온 서양인들 서너 명이 어둠침침한 구석에서 밤참을 먹고 있었다. 흰죽을 한 그릇 얻어 마시고 배정받은 방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방은 난방시설도 없었다. 한가운데서 30촉짜리 알전구만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네 벽에 바짝 붙여 놓은 좁은 나무침대들이 때묻은 이불을 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 붉고 푸른 단청을 한 원주가 불빛을 받아 기괴한 느낌을 주며 서 있었다.
모자를 쓴 것 같은 고산병 |
| 중앙티베트 드리궁 틸 근처. 야크를 이용해 탈곡을 하고 있는 농촌 풍경. |
그렇게 밤이 가고 어느새 히말라야의 새벽이 밝아 왔다. 나는 마당을 가로질러 문 밖으로 나갔다. 물결치는 봉우리들 저쪽으로 웅장한 에베레스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은 8000m급의 봉우리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8848m의 에베레스트, 8481m의 마칼루, 8153m의 초오유봉이 한꺼번에 자태를 보였다.
그 광경 하나하나가 고생하며 고원을 건너온 보답처럼 느껴졌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 식당으로 갔다. 이번 여행길에서 만난 화가의 얼굴에 새까만 기운이 비쳤다. 그는 산만 그린다고 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40代인 그는 활기차 보였었다.
『어젯밤 몸이 괜찮기에 맥주 한잔을 시켜서 먹었어요. 「원래 건강하니까 이젠 적응이 됐겠지」 하고 약도 먹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밤새 숨이 막혀서 잠을 못 잤어요. 가만히 있는데도 꼭 모자를 쓴 것 같아요. 무심결에 벗으려고 손을 가져가면 머리에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高山증세인가 봐요』
다른 사람들도 머리가 「띵」하다고 했다.
나는 더욱 깊은 히말라야의 계곡으로 들어갔다. 협곡을 돌면 웅장한 설봉들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타났다. 까마득히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좁은 산길을 야크 떼가 점령하고 있었다. 경적을 울려도 야크들은 오히려 눈을 멀뚱하게 뜨고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따금씩 스치는 유목민의 텐트에 눈길이 갔다. 풀밭 위의 무쇠 솥에서는 허연 김이 오르고 있었다. 같이 먹고 공동으로 야크를 키우면서 이동하는 삶이었다. 천막과 한 개의 무쇠 솥, 몇 개의 밥그릇 그 최소한의 물질 속에서도 그들의 내면은 여유와 풍요로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시비 거리 찾는 국경 경비원한 지역을 벗어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검문이었다. 중국 군인들이 차를 세웠다. 입에 문 담배를 질겅거리면서 젊은 군인이 운전석에 올라앉았다. 그는 운전석의 여러 단추들을 작동시키며 장난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여권을 요구했다. 검문이 아니라 시비 거리를 찾는 것 같았다.
밖에 있던 다른 군인들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자기들끼리 떠들어 댔다. 그들의 행동은 검문소마다 비슷했다. 그때마다 필자는 그 지역에 감금되지 않기 위해 여권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국경지역의 중국 세관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수많은 트럭들을 잡아 두었다. 국경마을 장무의 도로는 잡아둔 인도·네팔의 트럭들로 이미 기능을 잃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프차를 돌려보내고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동네 골목 같은 좁은 도로에 설치한 차단기 하나가 국경이었다. 그 옆의 허름한 단층 건물이 출입국 사무실이었고, 길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구멍가게 몇 채가 어깨를 바짝 붙이고 앉아 있었다.
나는 출입국 사무실에서 비자도장을 받았다. 낡은 나무탁자 앞의 관리는 이틀 정도면 공짜고, 그 이상 있으려면 돈을 내라고 했다. 국경을 넘어 카트만두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국경 동네 한쪽 끝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네팔 국경의 시골마을은 예전 우리의 가난한 달동네와 비슷했다. 썩은 판자를 덧댄 어둠침침한 낡은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집은 바닥에 깐 매트리스와 빨랫줄에 걸린 몇 개의 옷들이 살림의 전부였다.
국경에서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셰르파族 안내원입니다』
기다리던 그가 능숙한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넓적하고 거무튀튀한 얼굴의 사람 좋아 보이는 네팔人이었다.
필자는 그가 타고 온 버스에 올랐다. 머나먼 티베트 고원을 달려온 다른 한국인들도 함께 차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셰르파族 남자의 설명이 시작됐다.
『저는 한국의 삼부토건이 이곳에 와서 공항을 지을 때 노동자로 일하면서 한국말을 배웠어요. 덕분에 지금은 한국 등산객들의 에스코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15회 에레베스트 오른 셰르파人「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네팔은 히말라야의 8000m급 高峯(고봉) 14개 중 9개가 있는 高山의 나라였다. 그중에서도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는 길목의 솔루쿰부 지역엔 우리와 같은 몽골族인 셰르파族이 살고 있다. 셰르파族 안내인이 말을 계속했다.
『세계 사람들은 셰르파族을 「짐꾼」으로 아는데, 우리는 하나의 민족입니다. 서양인들은 히말라야로 와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걸 대단하게 생각하는데 셰르파族에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동네에 에베레스트를 열다섯 번 오르내린 아저씨가 있어요. 서양인들은 산소통을 메고 가는데 그 아저씨는 술병을 차고 올라갔어요.
한번은 그 아저씨가 에베레스트를 안내하고 내려오는데 등산객들이 소형 비행기를 불렀어요. 등산객들 내려올 때는 대부분 5인승 비행기들을 타요. 그런데 그 셰르파族 아저씨는 그냥 15일 동안 눈길을 걸어서 집으로 왔어요. 그리고 나중에 그 비행기표를 팔아서 또 술을 사 마셨어요. 그게 셰르파族이죠』
적응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히말라야 高山지역에서 양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담배를 피우는 티베트人도 있었다. 셰르파族 안내인이 설명을 계속했다.
『티베트의 양치는 사람들은 일년에 한번씩 양들을 몰아가지고 여기 와서 양털과 생필품을 바꾸어 가요. 양털만 깎아 운송하기 싫으니까 아예 양떼들과 같이 오는 거죠. 돌아갈 때는 벌거벗은 양들이 소금이나 그릇들을 짊어지고 히말라야로 가죠.
네팔 농부들은 티베트의 양치기들을 좋아하죠. 그들이 양을 몰고 넘어오기만 하면 집집마다 양치기들을 모시느라고 야단이에요. 그 양들이 자기 밭에 똥을 싸 주면 일년치 비료는 거뜬하거든요』
네팔 叛軍과 金日成 |
| 네팔 카트만두市 바그머디 강변의 화장터. 한 줄기 연기로 변해 버린 삶에서 인생무상을 느낄 수 있다 |
자기들끼리 먹고 자고 그렇게 알아서 산다는 설명이었다. 지나다 들른 목조의 옛 왕궁 건물 3층 창에서 화장을 짙게 한 소녀가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그들이 만든 살아 있는 女神(여신)이었다. 거리도 神像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인간을 밟고 서 있는 퉁방울 눈의 神像에게 행인들이 붉은 꽃잎을 바치기도 하고, 과자를 놓고 가기도 했다. 숨어 있던 아이들이 나타나 얼른 음식을 채 갔다.
『여기 카트만두 분지에서는 지금도 샤카族이 살고 있어요. 부처가 태어난 룸비니도 여기서 가까워요. 그러니까 부처님도 따지면 네팔人이죠』
부처의 둥그런 배와 눈만 강조해 만든 코믹한 모양의 탑들이 곳곳에 보였다. 거리에는 부리부리한 눈에 텁석부리 수염을 한 힌두교의 수도승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부자들은 돈을 믿고 가난한 사람들은 종교를 믿어요. 왕족들은 신분을 믿고 살죠. 네팔은 1972년 북한과 수교했는데, 金日成은 네팔의 혁명가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思想교육을 해서 보냈어요.
그 사람들이 공산당 叛軍(반군)이 되어 지금 산악지역을 장악하고 있어요. 공산당들이 천민인 수드라 계급을 파고들어 지금 한창 혁명이 진행 중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있고 무장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게 보이기도 했다.
火葬에서 나를 찾다마지막 여행지는 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카트만두의 바그머디 강가였다. 그곳 사람들의 소망은 너무나 소박했다. 죽으면 체온이 식기 전에 그 강가의 제단에서 火葬(화장)되는 것이다.
내가 바그머디江에 도착할 때쯤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강 위로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때마침 강가 제단에는 火葬이 엄숙히 거행되고 있었다.
뼈에 가죽을 씌운 듯한 비쩍 마른 노인이 강가에 설치된 양철지붕 아래서 허리 높이 정도로 통나무 장작을 쌓고 있었다. 잠시 후 몇 명의 청년이 비에 흠뻑 젖은 시신 한 구를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저승으로 가는 사람의 마지막 소유물은 가슴에 놓인 노란꽃 한 다발이었다. 火葬을 담당하는 비쩍 마른 노인이 천을 들춰 시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얀 얼굴에 짙고 검은 눈썹을 한 20代의 아리안 청년이었다. 수드라 계급에 속하는 火葬담당 노인은 청년의 시신 위에 놓였던 노란꽃을 누런 흙탕물 속으로 미련 없이 던졌다. 이윽고 그 노인은 불이 붙은 짚 뭉치를 청년의 뺨에 댔다.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영혼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영감은 장작단 아래의 짚더미에 불을 붙였다. 회색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영혼들을 쳐다봤다. 강가의 녹슨 양철지붕 아래 설치된 몇 개의 다른 壇(단) 위에서도 검은 연기와 함께 붉은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불붙은 단 위에서 시신의 팔다리가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노인은 팔다리를 다시 불속에 밀어 넣고 길다란 막대로 불을 쑤셨다. 검붉은 불길이 솟아오르면서 살점들이 완전히 녹고 있었다. 흙탕물이 흐르는 강 위로 굵은 빗방울이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어느새 폭우로 변했다.
하얀 얼굴을 한 청년의 시신은 어느새 누렇고 탁한 한 덩어리의 연기가 되어 비 내리는 잿빛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 옆에는 火葬을 기다리는 다른 屍身(시신)들이 비를 맞으며 강가에 누워 있었다.
여행의 끝에 우연히 히말라야人들의 저승 가는 모습을 본 나는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그 하얀 미남 청년이 살면서 느꼈던 기쁨이나 슬픔, 사랑과 미움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극장 스크린 위에 잠시 비쳤던 오래된 흑백영화의 한 영상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