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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확인] 金炯旭 살해 현장 책임자의 마무리 증언

『루마니아 출신 조폭이 살해했다』

송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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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情 소속 프랑스 유학생 2명이 루마니아 출신 조직폭력배에게 美貨 10만 달러를 주고 金炯旭을 청부살해
● 국정원 간부, 『金炯旭 사체의 유기장소를 밝히지 않는 것은 프랑스와의 외교마찰을 피하기 위한 것』
사실로 확인된 月刊朝鮮 특종
  金炯旭(김형욱) 前 중앙정보부(現 국정원) 부장이 金載圭(김재규) 부장의 지시에 의해 中情 요원들에 의해 청부살해됐다는 月刊朝鮮 2005년 3월호 보도내용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는 지난 5월25일 金炯旭씨 실종사건 중간발표를 통해, 金씨는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金載圭씨의 지시를 받은 駐佛 한국대사관 李相悅(이상열) 공사가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중앙정보부 요원을 동원해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의 발표내용 요지는 다음과 같다.
 

 
 
 月刊朝鮮 보도 그대로의 국정원 발표
 
  <金炯旭은 金載圭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를 받은 駐佛 한국대사관의 중앙정보부 거점장이었던 李相悅 공사가 중정 요원으로 프랑스에서 연수 중이던 신모(실제 姓은 邊모)씨와 이모(실제 姓은 金모)씨에게 지시해 납치 살해했다.
 
  신모씨는 동구라파인 2명을 동원, 金炯旭씨를 살해한 뒤 이들과 함께 파리 인근 야산에 시체를 버린 뒤, 승용차 편으로 파리 시내로 돌아왔다. 이때 이모씨는 신씨의 지시를 받고 美貨 10만 달러(韓貨 약 1억2000만원)를 007가방에 넣어 파리 시내의 한 호텔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신씨 일행을 만난 이씨는 신씨와 함께 나타난 동구라파인 2명에게 金炯旭 살해 사례비로 美貨 10만 달러를 건네주었다>
 
  국정원의 이같은 발표내용은 月刊朝鮮 3월호 보도내용과 일치한다. 일부 언론의 「파리 근교의 양계장에서 분쇄기로 갈아 죽였다」는 등의 보도는 신빙성이 없어 배척됐다.
 
  月刊朝鮮은 金炯旭씨 실종사건이 발생한 1979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이 사건에 대해 탐사보도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당시 안기부에 근무했던 인사들의 증언도 폭 넓게 소개했다.
 
  月刊朝鮮이 그동안 보도해 온 기사의 목록을 보면 ▲「金炯旭은 어디로 갔는가」(1984년 9월호) ▲「충격공개/회고록 출판을 둘러싼 金載圭와 金炯旭의 비밀협상」(1986년 1월호) ▲「朴正熙 대통령과 金炯旭의 실종」(1987년 1월호) ▲「金炯旭 실종과 情報部의 역할」(1994년 11월호) ▲金景梓 인터뷰 「金炯旭은 회고록이 완성된 직후 한 여성 연예인을 만나기 위해 파리에 갔다가 실종됐다」(2004년 3월호) 등이다.
 
  2003년 12월 어느 날, 기자는 국정원 간부 출신 선배와 함께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 커피숍에서 눈 내리는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金炯旭 실종사건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됐다. 선배는 『다른 국정원 출신에게 들은 얘기인데, 金炯旭 실종사건에 관계한 안기부 직원이 지금도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는 얘기를 했다.
 
  이때 기자의 기자수첩에서 사라졌던 「金炯旭 실종사건」이 다시 기자수첩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국정원 전·현직 공무원들을 만나 이 사건에 대해 묻기 시작하면서 金炯旭 실종사건에 대한 첩보 및 정보량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자는 그러던 중 2005년 1월 우연하게 金炯旭 실종사건에 대한 결정적 제보를 접하게 됐다. 金炯旭씨는 金載圭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를 받은 中情 요원들에 의해 파리 근교에서 살해됐고, 金씨를 직접 살해한 사람은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직폭력배였다는 것이다. 이 결정적 제보내용은 세부적인 확인과정을 거쳐 月刊朝鮮 2005년 3월호에 「결정적 증언/26년 만에 드러난 金炯旭 前 중앙정보부장의 실종 미스터리 『金炯旭 유인살해는 이 사람이 했다』」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金炯旭 실종사건에 대한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의 중간발표가 있은 이후 月刊朝鮮은 후속 취재를 통해 金씨를 직접 살해한 인물의 출신 국가를 파악했다.
 
 
 
 최종 증언
 
金載圭 前 중앙정보부장이 金炯旭 살해공작의 최종 명령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는 「金炯旭을 살해한 사람은 동구라파 출신」이라고 발표했다. 확인 결과, 이들은 루마니아 출신으로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 중이던 조직폭력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루마니아 출신 조폭들은 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신모씨로부터 청부살해 부탁을 받았다.
 
  당시 中情 요원으로 프랑스에서 유학 중 李相悅 駐佛 한국대사관 공사(파리 거점장)로부터 金炯旭 살해지시를 처음 받고 루마니아 출신 조폭을 고용, 金씨를 살해한 것으로 밝혀진 신모씨는 중앙정보부 정규과정 10기 공개채용 시험을 통해 입사했다.
 
  국정원 전직 간부는 신씨에 대해 『평소 의리를 중요시했고, 국가관이 투철했던 직원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신씨는 金炯旭 살해사건에 가담한 직후 발생한 이른바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국정원에서 퇴사했다고 한다.
 
  신씨와 함께 金炯旭 납치·살해사건에 가담해 金씨를 살해한 루마니아 출신 조폭들을 만나 사례비 10만 달러를 전달해 준 이모씨는 정규과정 12기 출신으로 2004년 말 국정원에서 퇴사했다.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의 金炯旭 실종사건에 대한 중간발표 내용 중 몇 가지는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우선,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는 「신모씨가 동구라파 출신 2명과 함께 金炯旭을 승용차로 납치, 살해한 뒤 시체를 파리의 인근 숲 속에 버리고 낙엽으로 시체를 덮어 놓았다」고 발표한 점이다. 시체를 땅을 파서 묻지 않고 낙엽으로만 덮어 놓은 채 방치했다면, 지금까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프랑스와의 외교마찰 우려, 시신 유기장소 공개 안 해
 
  국정원의 한 간부는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가 金炯旭의 시체 유기장소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막연하게 파리 인근 숲에 낙엽으로 덮어 놓았다고 발표한 것은 프랑스와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정보 요원들이 프랑스에서 사람을 살해했다는 것은 프랑스의 입장에서 볼 때 엄연한 주권침해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金炯旭씨 시체 유기장소를 정확하게 밝힐 경우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는 시체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시체가 발견된다면 韓·佛 간 중요한 국제문제로 대두되게 된다는 점을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 측이 감안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月刊朝鮮에 金炯旭 살해의 전모를 밝혔던 제보자들은 「金炯旭 시신 처리」 과정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루마니아 출신 조폭 2명이 권총으로 金炯旭을 사살했다. 우리는 죽이는 데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金炯旭이 죽은 걸 확인하고 10만 달러를 준 뒤 그 현장을 떠났다. 조폭들이 그 장소에 金炯旭을 묻었는지, 다른 곳으로 시신을 가져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 측이 金炯旭 실종사건을 왜 서둘러 공개했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국정원 직원들은 『정보기관이 수행했던 공작은 어떠한 경우에도 공개해서는 안 되는데 왜 金炯旭 실종사건을 조사했고, 중간발표까지 했느냐』며 상당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국정원의 한 전직 중간간부는 『공작차원에서 이뤄진 金炯旭 실종사건이 공개되는 바람에 상부의 지시에 의해 일선에서 공작을 수행한 직원들이 살인자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며 『앞으로 상부에서 지시를 한다고 해서 누가 일선에서 공작활동을 하겠느냐』고 했다.
 
  해외파트에서 주로 근무를 해 온 또 다른 국정원 출신은 『특정인의 사망원인에 대해 국가기관이 끝까지 밝히는 것이 올바른 행위일지는 모르지만, 사망 과정에 국가 정보기관이 개입됐다면, 그 사실은 영원히 비밀로 해야 한다』면서 『다른 외국기관이 앞으로 우리나라 정보기관과 합동으로 공작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우려했다.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의 국정원 측 책임자인 金萬福(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은 국정원 출신들의 친목단체인 「양지회」가 펴낸 2005년 봄호 기고문을 통해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발족 및 운영 이유에 대해 밝힌 적이 있다. 金실장은 기고문에서 盧武鉉(노무현)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주장한 2004년 8·15 광복절 경축사 내용을 소개한 뒤 『(위원회가 발족된 것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부응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 발족이 盧대통령의 뜻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양지회의 한 회원은 『盧武鉉 대통령이 국정원 과거사건진실委를 발족토록 한 이유 중 하나는 「金炯旭 살해의 최고 책임자가 朴正熙 대통령」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朴正熙 대통령이 金炯旭 살해의 최고 책임자라는 증언을 확보하지 못해 당초 진실委 발족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국정원의 과거사건진실委 발족을 전후해 일어나기 시작한 국정원內 잡음은 최근 高泳耉(고영구) 국정원장의 사의표명을 계기로 심화되고 있다.
 
  양지회의 한 회원은 『高泳耉 원장이 취임 직후 金大中(김대중) 정부 시절 직원채용 과정에서 호남 출신 지원자들에게 가산점을 준 의혹에 대해 감찰실로 하여금 조사토록 지시를 해놓고 지금까지 그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조만간 이 부분에 대해 사법절차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라고 했다.
 
 
 
 『高원장은 駐日 한국대사관 공사 임용 둘러싸고 청와대와 마찰』
 
  高泳耉 원장의 사의표명에 대해서도 갖가지 說들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 전직 고위 간부는 『高원장의 건강에 상당한 이상이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2005년 직원 정기인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것이 사의표명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국정원은 매년 6월1일 정기인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올해는 아직까지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高원장이 駐日 한국대사관 공사 임용을 둘러싸고 청와대 측과 의견이 엇갈렸고, 이 일이 사의표명의 직접적인 이유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高泳耉 국정원장 체제는 金炯旭 실종사건을 비롯한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 출범과 함께 갖가지 사건으로 인해 내홍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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