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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題의 인물]「일본 보수本流의 기수」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

납치자 문제 때 對北 강경노선 주도, 차기 총리감으로 浮上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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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유신과 조선침략의 주도세력을 배출한 야마구치 출생.
외할아버지가 기시 前 총리, 아버지는 자민당 거물. 盧武鉉 정권에 대해서도 「No」라고
말하기 시작한 日本의 主流. 헌법개정으로 일본의 「정상국가화」 다짐.
부드러운 「강철의 심」
  지난 3월24일 오전 일본 도쿄 시내 자민당 당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간사장 대리를 만났다. 후리후리한 키에 부드럽고 순박한 인상을 한 그는 極右의 이미지와는 너무 멀었다. 그의 말은 빨랐으나 文法的으로 정확했고 중복이 거의 없었다. 「아베 신조의 등뼈에는 헌법개정이라는 강철의 심이 박혀 있다」라는 평이 생각났다.
 
  아베 신조 중의원 의원은 自他가 공인하는 日本 우파의 차세대 지도자이다. 1954년에 출생하여 올해 51세인 그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기 일본 총리감 1위」로 나타나고 있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계파 정치와 세습 출마가 전통이 되어 있는 일본 政界에서는 출신부터가 眞骨(진골)이다.
 
  그의 아버지는 1980년대에 외무장관을 지냈던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이다. 아베 신타로는 자민당의 보수 主流인 후쿠다派의 보스로서 확실한 총리감이었으나 身病으로 좌절했다. 1987년, 장기 집권한 나카소네(中曾根) 총리 후임을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아베 신타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가 출마했다. 세 사람은 투표를 피하고 합의에 의해 총재를 결정하기로 했으나 잘 되지 않아 나카소네의 지명에 따르기로 약속했다.
 
  시마네縣 출신인 다케시타는 인접한 야마구치縣 출신인 아베와 친구 사이였다. 둘은 1958년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동기생 사이였으나, 아베는 한 번 낙선하여 당선 횟수는 적었다. 나카소네는 黨內 최대 파벌(經世會)을 이끌던 다케시타를 자민당 총재, 즉 총리로 지명했다. 자민당 수뇌부에서는 다케시타 다음엔 아베가 총리를 맡는다는 묵계가 이뤄졌으나 아베는 1991년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67세였다.
 
  아버지의 비서로 있다가 중의원에 진출한 아베 신조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총리의 꿈」을 승계한 셈이다(그의 할아버지, 즉 아베 신타로의 아버지도 군국주의 시절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도조 히데키 퇴진운동을 벌였으니 정치 3代 가문이다).
 
 
 
 납치자 문제에 강경 대처, 인기 폭등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의 외할아버지는 戰後 일본 政界의 오랜 실력자였던 기시노부스케(岸信介)이다. 기시는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明治유신과 조선 침략의 주도세력을 배출했던 야마구치縣(시모노세키가 이곳에 있다)의 정치 名門家 출신. 그는 총리로서 美日 안보조약 개정으로 오늘의 美日 동맹체제를 굳혔고, 그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韓日 국교정상화와 미국으로부터의 오키나와 반환을 성사시켰다.
 
  日本 정치의 주류 家門에서 어릴 때부터 정치를 공기처럼 호흡하면서 커 온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고이즈미(小泉) 총리의 직계이다. 고이즈미는 또 前 총리 모리(森喜郞)派에 속한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金正日과 회담할 때 동행했다. 金正日은 日北 수교 회담을 진척시키기 위해 놀라운 고백을 했다. 그는 『북한의 對南 공작 기관이 열세 명의 일본인을 납치하였는데, 여덟 명은 죽었고 다섯 명이 살아 있다』고 했다. 이 自白은 東北亞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한 대사건으로 확대되었다. 일본의 언론과 여론이 분노하자 일본 정부도 對北 강경책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강경 선회의 중심에 아베 신조(당시 관방副장관)가 있었다.
 
  2002년 10월15일 납북되었던 일본인 다섯 명이 10일 뒤에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조건下에 귀국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던 아베 신조는, 귀환 일본인들을 북한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외무관료들의 주장을 꺾고 「정부 방침으로써 송환 不可」를 결단했다. 결국 이 강경책은 북한을 굴복시켰다. 일본은 작년에 귀환 납치자의 在北 가족도 돌려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베 신조의 인기는 올라갔다. 2003년 총선을 앞두고 고이즈미 총리는 당시 49세이던 아베 신조 의원을 자민당의 간사장으로 임명했다. 아베의 대중적 인기를 선거에 써먹기 위함이었다. 아베 의원은 총선 이후엔 「간사장 대리」로 내려갔으나 그의 言行은 항상 언론의 기삿감이 되고 있다. 그는 일본 左派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 온 아사히(朝日) 신문에 대해서는 직설적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아사히 신문은) 납치 문제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수치를 감추기 위해서 (납치자 구출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 같다』 (2004년 2월1일 TV 對談)
 
  납치자 가족들과 납치자 구출 모임은 이런 아베 의원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아베 의원은 한국의 납북자 가족 모임과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한국의 국회의원들과도 교류하고 있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일본 政界의 가장 큰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헌법 개정에 의한 정상 국가로의 복귀」를 해낼 인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일본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교전권을 명시하고 자위대의 위상을 군대로 분명히 한다는 것이 헌법개정론의 핵심이다.
 
  그는 나카소네 前 총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와 함께 보수 본류의 3大 인물로 꼽힌다. 아베 의원이 대표하는 일본 자민당의 본류는 朴正熙 정권 때는 親韓派로 분류되었으나 최근의 獨島 문제 이후엔 한국 언론에 의해 極右 또는 反韓派로 공격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의원의 경우, 일본의 한국 지배를 공개적으로 반성하고, 朴대통령에 의한 「한강의 기적」을 높게 평가하며, 한국인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런 그를 反韓이나 極右로 분류하는 데는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다.
 
  獨島 문제를 계기로 하여 한국의 언론과 盧정권 사람들에 의하여 일본內의 「양심세력」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들 중에는 親金正日 인사들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반대해 온 진짜 反韓 인사들이 많다. 이것이 韓日관계의 二重性이다.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를 인터뷰하기 위해 일본에 가서 知韓인사들을 만나본 소감을 정리하면 이렇다.
 
 
 
 할 말은 하겠다는 日本
 
  ▲金正日 정권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계기로 하여 일본의 여론이 우경화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이나 이와나미 출판사로 대표되던 左派는 여론에서 밀리고 있다. 獨島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생길 때 한국 편을 들어 주던 左派가 약화되는 것과 동시에 일본 여론의 우경화가 反韓化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美日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의 보수 本流는 미국과 멀어지는 盧정권을 큰 부담 없이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중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까지 한편이 되는 사태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右派가 獨島 문제를 국제분쟁 거리로 만들고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고 있다는 확증은 없다. 일본의 일부 한반도 전문가들은 남한 정권이 親北化하든지 金正日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갈 때는 獨島를 「군사적 위협의 전초기지」로 想定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를 엿보였다.
 
  ▲최근 축적된 韓日 양 국민 사이의 엄청난 人的·문화적 교류가 정치·외교적 갈등의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대해 죄의식을 가진 日人들도 줄어들고 日本에 대해 본능적 반감을 가진 한국인도 줄고 있다.
 
  ▲北核 및 인권 문제를 계기로 하여 金正日 정권을 東北亞 평화의 敵으로 규정하여 그를 정치적으로 無力化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韓·美·日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과 동시에 美·日 정권을 공통의 敵으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韓·中·北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同時 진행의 충돌코스가 한국을 韓·美·日의 해양 자유동맹으로부터 떼어 놓는다면, 이는 좋은 친구를 버리고 나쁜 친구와 사귀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동맹국의 잘못 선택은 국가적 재앙
 
  한국의 국가 이익을 기준으로 할 때 獨島 문제는 시급하지 않고 北核의 해결이 더 급하다. 일본의 獨島 영유권 주장은 역사적·지리적·법률적으로 억지이고, 전쟁을 하지 않는 한 獨島를 가져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韓·美·日의 동맹을 강화하여 北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마당에 급하지 않은 獨島 문제에 집착하여 北核 문제 해결의 기반에 균열을 가게 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해 준 韓·美·日 동맹체제를 변질시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바보스러운 自害 행위」이다. 위기가 왔을 때 동맹국을 잘못 선택하면 국가적 재앙이 온다.
 
  ▲1930년대의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서구의 일류국가인 美·英을 적으로 돌리고 파쇼 국가인 獨·伊와 동맹했다가 戰犯 국가가 되었다. 명치유신과 러·日 전쟁 때는 일본이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은인을 원수로 돌린 결과는 파멸이었다.
 
  ▲신라는 세계 제국인 唐과 동맹하여 삼국 통일에 성공했고, 백제는 후진국 倭와 동맹하여 멸망했다.
 
  ▲조선조의 仁祖는 허황된 명분론에 집착하여 흥하던 淸을 멀리하고, 망하던 明을 따르다가 병자호란을 불렀다.
 
  ▲북한이 저지경이 된 것은 대륙의 독재국가 소련·중국과 동맹했기 때문이고, 한국이 번영한 것은 미국·일본 등 선진 해양 민주국가들과 손잡았기 때문이다.
 
  ▲盧武鉉 대통령은 오늘의 한반도 상황이 19세기 末의 한반도와 비슷하므로 韓·美·日의 남방 3각 동맹체제에서 벗어나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잘못된 역사 해석에 바탕을 둔 틀린 처방이다.
 
  19세기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오늘은 민주주의 확산 시대이다. 19세기의 조선은 허약했고, 오늘의 한국은 강력하다. 19세기의 일본은 침략자였지만, 21세기의 일본은 다르다. 19세기의 조선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가진 일본·淸·러시아를 견제해 줄 동맹국을 갖지 못했지만, 21세기의 한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과 손잡고 있다. 韓美 동맹 해체는 영토적 야심이 없는 친구를 버리고 한국을 먹으려 하는 북한과 그 후견 세력인 중국에 따라가려는 자살 행위가 된다.
 
 
 
 一流 국가가 되어야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열정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앵커우먼 출신 저널리스트 사쿠라 요시코氏는 이렇게 말했다.
 
  『혈연적으로 일본과 한국인은 가장 가깝다. 몽골인과 한국인이 일본인의 本家인 셈이다. 分家인 일본인은 本家에 감사해야 하지만 동시에 한반도를 거쳐 日本 열도에까지 진출하여 좋은 나라를 만든 조상들의 진취성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本家인 한국인들도 이 점을 평가해주었으면 한다』
 
  임진왜란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한국 측에 대해 日本이 먼저 성의를 보이는 방법은 역사적·지리적·현실적 면에서 아무런 논거도 효력도 없는 獨島 영유권 주장의 포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한국이 자유통일을 이룩하면서 一流 국가가 되어 아시아의 유일한 一流 국가 日本과 대등하게 서는 길이 있다.
 
  유럽의 宿敵(숙적) 프랑스와 독일의 친선관계도 쌍방이 勝敗(승패)를 고르게 나누고 國力(국력)이 대등해졌을 때 이루어졌다. 한국인은, 지난 200년간 非서양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日本의 성취를 평가하면서도 일본의 선진화 과정에서 피해를 당했던 쓰라린 기억을 건설적으로 전환시켜 이제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업적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터뷰] 아베 신조(安倍晋三)
 
  『한국에서 (독도) 문제를 너무 크게 취급한다. 일본은 이를 국제분쟁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영토문제 해결은 어렵다』
 
   ―盧武鉉 대통령이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일본 중앙정부가 시마네 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방조했다고 비판했는데 사실입니까.
 
  『그것은 현의회의 판단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지 중앙정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한국 측이 문제삼지 않았다면 일본 국민 대부분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일본 정부가 獨島 문제를 국제분쟁화하여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다케시마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공식적인 대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우리가 먼저 이것을 주장하고 나올 생각은 없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4800만 한국인 중 獨島가 한국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나온다면 장래 韓日관계는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다케시마에 대한 종래의 입장을 변경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만, 이 문제로 해서 日韓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4월 초에 일본에서 교과서 검정결과가 발표되면 일본과 한국에서 비판이 일어날 것인데 대책이 있습니까.
 
  『일본에서의 교과서 검정은 한국의 국정교과서와는 방식이 다릅니다. 정부는 교과서의 記述(기술)만 정확하면 검정에서 통과시켜 주고 (채택 여부는) 각 교육위원회에서 판단합니다. 중앙정부는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의 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여 분쟁거리를 만들기 전까지는 韓日 양국관계가 매우 좋았습니다. 兩국민들의 교류가 활발하여 연간 약 400만 명이 상호 방문하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라든지 배용준 붐과 같은 일도 있었습니다.
 
  『양국 사이에 분쟁이 있더라도 이를 확대시키지 않도록 언론과 정치가 사전에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번 문제도 일본의 한 지방의회의 결의를 한국 언론이 너무 크게 취급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북한정권에는 압력을 넣어야 변한다』
 
  ―일본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만약 남한이 좌경화 내지 친북화되었을 경우에는 獨島가 새로운 의미를 가질 것이기 때문에, 즉 일본에 대한 군사적 위협의 장소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그런 상황을 想定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인들이 그 정도로 친북화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로서도 韓日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도 생각합니다』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께서는 북한의 核문제, 인권탄압, 일본인 납치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金正日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뜻의 발언을 더러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레짐 체인지(체제교체)를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납치문제와 核문제로 북한과 협상을 하고 있는데 그 정권을 바꾸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부 일을 그만두고 자민당 간사장이 된 뒤로는 「북한과 협상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압력을 가해야 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의 요코다 메구미氏의 가짜 유골사건 이후엔 언제까지나 金正日 정권과 교섭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압력을 가해서 태도가 바뀌도록 한다는 것이 일본 외교의 기본방침입니다』
 
  ―북한에 대해서 6者 회담에 참석해 달라고 애걸하듯이 할 게 아니라 시간을 정해서 언제까지 참석하지 않으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여 경제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6者 회담은 주변국들에게 주어진 찬스가 아니라 북한에게 주어진 찬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이 계속해서 6者 회담에 불참하면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도 이야기했듯이 별도의 選擇肢로서 당연히 유엔으로 이 문제를 가져가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2000년 남북 頂上회담 직후 金大中 정부는 소위 비전향 長期囚들을 북송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하라 타다아키氏 납치범이자 북한공작원인 辛光洙도 보내주었습니다. 최근 아베 간사장 대리께서는 이 辛光洙를 일본으로 인도해 줄 것을 북한 측에 요구하고 있는데 법률적 근거가 있습니까.
 
  『辛光洙는 일본인 납치범으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법률과 증거에 입각하여 그를 지명수배해 놓았습니다. 金大中 정부가 그를 북송시켜 주기 전에 일본 정부가 辛光洙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었습니다. 辛光洙는 별도의 납치사건에도 간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辛光洙를 반드시 일본 측에 넘겨주어야 합니다』
 
  ―辛光洙가 그 이외의 납치사건에 관계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는 없지만 그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유골이 가짜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일본인 납치실행범으로 밝혀진 辛光洙 등을 넘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盧武鉉 정부의 對北 유화정책과 소위 對美 자주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북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對北 유화정책이 북한에 이용되고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한국의 성의 있는 지원에 대해서 善意로써 보답하지 않고, 가져갈 것은 다 가져가면서 줄 것은 주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그런 식으로 해도 먹혀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對北 유화정책은 북한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朴대통령은 큰일에 정확한 판단을 내린 분』
 
  ―화제를 좀 바꾸겠습니다. 저는 朴正熙 대통령의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만, 朴대통령은 아베 간사장 대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前 총리와 특히 친밀했습니다. 朴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朴대통령은 한국의 안전을 확보한 다음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을 성공시킴으로써 한국의 번영에 큰 공적을 남겼습니다. 朴대통령은 특히 韓日 국교정상화라는 매우 어려운 결단을 내렸고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40년 전의 일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당시엔 사정이 달랐고 상대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정치인이란 존재는 중대사안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느냐 못 내리느냐에 의해서 평가됩니다. 朴대통령은 큰일에 정확한 판단을 내린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베 간사장 대리의 외할아버지 되시는 기시 前 총리도 美日 안보조약 개정을 관철시켜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던데, 아베 의원께서는 그때 「안보 반대」라고 외쳤다면서요.
 
  『그때는 제가 어린아이였습니다. 외할아버지 집을 데모대가 포위하여 「안보 반대」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된 할아버지께서는 저를 불러 등으로 말을 태워 주시면서 같이 놀았습니다. 저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따라 「안보 반대」라고 소리쳤더니 곁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안보 찬성」이라 말하라고 하시더군요(웃음)』
 
  ―부친 되시는 아베 신타로 선생의 정치觀은 어떠했습니까.
 
  『아버지는, 정치지도자 자리는 쟁취하기보다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추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결과적으로는 총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외교는 성의를 다해서 해야 하고, 수동적으로 해선 안 되며 항상 창조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버지 아베 신타로氏가 중의원 선거에서 한 번 낙선하셨는데,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느낌이 어떠했습니까.
 
  『정치의 비정함을 알았습니다. 그때 저는 소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세번째 선거에서 낙선하여 3년 동안은 의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국회 복귀를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 쏟는 것을 보고 정치인은 역시 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誠意를 다하면 움직이지 못할 것이 없다』
 
  ―정치인으로서 마음에 새기고 계시는 말이 있습니까.
 
  『저의 고향은 야마구치현, 도쿠가와 시절엔 조슈한(長州藩)입니다만 명치유신의 志士들을 많이 길러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란 선생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인용한 孟子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誠意를 다하면 움직이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至誠而不動者未之有也)」는 말씀입니다』
 
  ―아베 간사장 대리께서 출생하신 야마구치현 유야초라는 곳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혹시 선조가 한반도에서 온 渡來人이 아닙니까.
 
  『야마구치 지역은 옛날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그곳 사람들은 피가 서로 많이 섞였을 것입니다』
 
  ―최근 시마네(島根)의 이즈모(出雲) 神社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만 「日本書紀」에 따르면 이즈모 神社가 모시는 스사노오노미고도라는 神은 신라에서 살다가 배를 만들어 부하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울릉도·독도는 경상북도, 즉 신라지역 사람들인데 시마네 사람들이 고향 사람들에 대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古代史를 있는 그대로 본다면 한국과 일본 사람들은 혈연적으로 인종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두 나라 사람들이 인정하고 들어가면 오늘의 문제들을 보는 눈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한 데 대해서 우리는 겸허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만, 언제나 이 시대에 대해서만 화제로 삼는 것은 日韓 양국에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우경화는 이미지 조작의 결과』
 
  ―韓美관계가 나빠지고 사이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韓美관계가 나빠지면 日韓관계는 나빠지지 않는다는 說도 있었습니다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盧武鉉 정권이 좌경화하고 있다는 해설도 있고, 그래서 동맹국인 미국에 대해서 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反日로 나온다는 말도 합니다.
 
  저로서는 그것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없습니다만, 일본이 日韓관계를 결코 가볍게 보지는 않습니다. 하루 1만 명 정도가 교류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경쟁관계이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을 보는 눈은 10년 전의 한국에 대한 일본의 視覺과 크게 달라졌습니다』
 
  ―일본 右派에선 「正常국가화」라고 부르는, 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지위 명시 문제에 대해서 한국의 많은 언론은 일본의 우경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자들이 「아베 신조가 일본의 우경화, 그 선두에 서 있다」고 해서, 「그냥 우경화라고 말하면 곤란하니까 구체적인 정책을 들어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지적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60년간의 안보정책 분야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논의가 나오면 우익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일본의 자위대 예산은 연간 약 5조 엔입니다. 우리는 이 예산을 늘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1% 줄였습니다.
 
  자위대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의 지배 원칙에 비추어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헌법의 자위대에 대한 규정에 모순이 있다고 한다면 이를 바로잡자는 것입니다.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만약 교전상태가 벌어져 자위대원이 포로가 되었을 경우에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살해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서 (헌법개정으로) 법률적으로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미지 조작으로써 우경화라고 몰아붙인 점이 많습니다. 무엇이 우경화인지 실체가 없어요. 좌익의 입장에서 본다면야 모든 것이 우경화이겠지요』
 
  ―장시간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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