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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클럽] 한국 해군 최초의 勝戰이 보도연맹원 학살이라니?

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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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6일 점심 무렵 회사로 배달되어 온 문화일보를 읽던 기자는 『「25년간 美 문서보관소에서 살았죠」- 近代 史料 180상자 분량 발굴 在美 史學者 방선주 박사』라는 기사를 접하고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방선주 박사- 기자 注)는 특히 『6·25 당일 부산 앞바다에서 800여 명이 탄 1000t급 북한군 괴선박을 7시간30분 동안 대치하다가 격침시켰다는 주한 美 해군사령부의 1일 전투보고 비밀문서도 입수했다』며 『전쟁통에 오랜 시간 대치한 것으로 봐서 북한 군함이 아닌 보도연맹 관련자 처벌용이 아니었는지 침몰지점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선주 박사가 말하는 怪선박 격침 사건이란 1950년 6월25일 저녁에서 이튿날 새벽 사이에 우리 해군의 백두산함이 북한 수송선을 격침시킨 「대한해협 海戰」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백두산함이 격침시킨 북한 수송선에는 북한 인민군 해군 陸戰隊(해병대) 600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만일 이들이 부산 상륙에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어찌되었을지는 不問可知이다. 이 때문에 노먼 존스는 그의 저서 「6·25 秘史」에서 대한해협 海戰을 가리켜 「6·25 전쟁의 分水嶺(분수령)」이라고까지 말했다.
 
  대한해협 海戰은 공지의 사실이었다. 1984년 합동참모본부에서 발간한 「韓國戰史」는 다섯 페이지에 걸쳐 대한해협 海戰을 기록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한해협 海戰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던 權主赫(권주혁) 이건산업 부사장은 작년 6월 백두산함의 승전기록을 담은 「바다여, 그 말하라!」라는 책을 펴냈다. 權부사장이 이 책을 쓴 경위,백두산함의 건조 및 도입과정, 백두산함의 전투기록과 퇴역, 대한해협 海戰, 참전자들의 후일담 등에 대해서는 月刊朝鮮 2003년 8월호에 실려 있다.
 
  그런데 그 대한해협 海戰이 졸지에 「美 해군 비밀문서를 통해 새로 발굴된 사실」로, 그것도 모자라 「보도연맹원들을 바다에 水葬(수장)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소재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전경웅 디펜스 코리아 전문위원은 문제의 기사를 보고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勝戰인 대한해협 海戰은 韓國戰史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6·25 開戰 당일 그 황망 중에 정부가 보도연맹원들을 배에 태워 바다로 내보내 水葬시킨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생각인가』라고 반문하면서,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 학자도, 최소한의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기자도 어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방선주 박사는 2001년 9월에는 白凡 金九 선생 암살범 安斗熙가 美 CIC 요원이자, 反共 비밀결사였던 白衣社 요원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이에 대해 白衣社 요원이었던 이성열씨가 月刊朝鮮을 찾아와 방박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인터뷰를 했었다(月刊朝鮮 2001년 10월호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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