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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대학 졸업식 풍경 속의 예외

졸업생들이 찾아 가지 않은 졸업장이 科사무실에 방치돼 먼지만 쌓여간다

추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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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 졸업식은 사진 찍기로 시작해서 사진 찍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외는 총장이 졸업생 全員과 악수한 한국외국어大

●『졸업식은 학생들에게 하는 마지막 서비스』(한국外大 홍보담당자)
●『졸업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사전정보가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참석해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나와 버렸다』(고려大 졸업생)
한국外大의「마라톤 졸업식」
지난 2월27일 열린 한국외대 학위 수여식에서는 안병만(왼쪽) 총장이 졸업생 전원에게 직접 졸업장을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월27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소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학부 및 대학원 졸업식에서 安秉萬(안병만·63) 총장이 1000여 명에 이르는 졸업생 전원에게 직접 졸업장을 전달하고 일일이 악수를 나눈 것이다. 대학총장이 졸업생 전원에게 졸업장을 직접 수여하는 일은 외국에서는 흔하지만 국내에서는 신선한 「사건」이었다.
 
  대학 홍보 도우미로 활동한 李惠英(이혜영·24·독일어과 卒)양은 『총장님과 악수를 하며 「졸업 축하한다. 그동안 홍보 도우미로 일 많이 했는데 고생 많았다」는 격려의 말을 직접 들었다』며 무척 감격스러워했다. 李양은 『졸업식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졸업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태국어과 졸업생 鄭旻(정민·23)양도 『이번 졸업식으로 학교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며 『愛校心도 생기고 학위를 받는 것에 대해 숙연해졌다』고 했다.
 
  졸업생들을 감격시킨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安총장이다. 지난 1월10일, 미국 델라웨어大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安총장은 델라웨어大 총장이 모든 졸업생에게 직접 졸업장을 수여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는 것이다. 安총장은 『사진만 찍다 가는 一過性(일과성) 졸업식이 안타까워 미국처럼 졸업생 개개인이 主人이 되는 場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外大는 졸업식 일주일 전부터 졸업식 참가 신청을 받았다고 한다. 800여 명의 학부 졸업생들이 신청을 했는데, 석·박사학위 취득 예정자를 포함해 1000여 명의 졸업생들을 한 곳에 수용하기 위해 행사장도 大운동장에 마련했다. 학교 측은 사상 최장시간의 「마라톤 졸업식」이 될 것을 예상해 졸업식 거행 시간을 예년보다 1시간 빠른 오전 10시로 앞당겼고, 졸업식장에 일일이 번호표를 붙여 놓는 등 사전준비를 꼼꼼히 했다.
 
  이에 앞서 주요 일간지들은 「安총장이 졸업생에게 졸업장을 건네주고 사진을 찍는 데 1명당 1분씩 걸린다고 해도 1000여 명이 졸업식을 마치려면 산술적으로 무려 16.67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한국外大의 이색 졸업식에 관심을 가졌다.
 
  우려와는 달리 졸업식은 1시간30분 만에 무사히 끝났다. 총장의 축사를 비롯, 여타의 시간을 빼면 졸업생 전원과 악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40~50분 정도였다. 학생 1명당 5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졸업장 받는 장면 촬영해 全員에게 우송
 
   졸업식은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졸업식장 주변에서 사진 찍느라 長蛇陣(장사진)을 이루었겠지만 이번 한국外大의 졸업식에서는 행사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항상 썰렁했던 式場이 꽉 채워졌으며 축제 분위기가 감돌았다.
 
  金基一(김기일·35) 한국外大 홍보담당은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며 『기존 졸업식 행사는 학생들에게 외면당했었는데 이번에는 野外에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생 전원이 행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학교 관계자로서도 뜻깊었다』고 말했다. 한국外大에서는 외부 사진업자 2명을 단상에 배치해 졸업생들 한 명 한 명이 총장에게 졸업장 받는 장면을 찍어 두었다. 金씨는 『이 사진을 졸업생 전원에게 보내 줄 예정』이라며 『학생들에게 하는 마지막 서비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安총장은 『1000여 명의 졸업생과 계속해서 악수를 하느라 팔이 무척 아팠으나 학생들이 좋아하니까 총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安총장은 졸업식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장면을 소개했다.
 
  『박사학위를 받는 졸업생 중의 한 명이 중풍에 걸렸는지 아들의 부축을 받아 단상 위로 천천히 걸어 올라왔습니다. 그 졸업생이 걸어 올라오는 3분여 동안 학생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숙연해졌습니다. 아마 졸업생 전원이 참석하는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그 분도 졸업식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졸업식에서 처음 校歌를 불렀다』
 
   국내 다른 대학들의 2004년도 졸업식은 어땠을까. 이화女大 2004년 졸업생 金卿仙(김경선·24)양은 『졸업식장에서 校歌를 처음 불러 보았다』며 『졸업식에서 부른 교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른 교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金씨는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고 밖에 있는 학생들 중에는 한번도 교가를 불러보지 못하고 교문 밖을 나가는 이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학의 졸업식장 풍경은 한결같다. 사진 찍는 졸업생들과 그 가족, 그 사이에 사진기사, 필름·음료·풍선 등을 파는 잡상인들이 섞여 시골 장터를 무색케 할 정도다. 상인들이 파는 먹거리도 다양해져 우동, 김밥, 번데기에 이르기까지 안 파는 음식이 없을 정도다.
 
  이 북새통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기념사진 촬영이다. 한국의 대학 졸업식은 사진 찍기로 시작해서 사진 찍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졸업식장 밖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지만, 정작 졸업식장 안은 썰렁함이 감돈다. 어느 대학의 졸업식을 가봐도 마찬가지다. 학위수여식장의 좌석 배치는 보통 맨 앞의 단상을 중심으로 바로 아래에 박사석, 석사석, 학사석 순이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학사보고에 이어 박사·석사·성적우수 학사 순으로 학위수여식이 이어진 후, 총장의 축사와 교가제창을 끝으로 거의 예외 없이 1시간여 만에 式은 끝난다.
 
  일반적으로 졸업식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으나, 그나마 참여하는 학생들마저도 式에 집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총장이 축사를 하는 중에도 단상 아래의 학생들은 사진을 찍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자기 일에 열중한다. 심지어 잡담을 하거나 화장을 고치는 학생까지 있었다. 학위수여자들 중에는 박사학위 수여자들만이 진지한 자세를 보인다.
 
  졸업식은 통상 강당에서 이루어지는데 1층에는 학위수여자인 학생들이 앉고, 2층에는 학부모들이 앉는다. 빈 자리가 많은 1층과는 달리 2층은 학부모, 친지들로 가득 차는 것이 보통이다. 자녀들이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졸업식장에 참석을 한다. 그렇기에 1층보다 훨씬 엄숙하고 집중하는 분위기다.
 
 
 
 졸업생들을 소외시키는 졸업식
 
  2004년 홍익大 졸업생 金모(23)양은 『賞 받는 학생들이나 졸업식장에 가는 것 아니냐』며 『졸업식장에 참석하는 이들은 통상 고리타분한 학생들』이라고 했다. 아예 졸업식날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금년에 연세大를 졸업한 鄭모(24)양은 행정고시 준비로 지방에 내려가 있는 터라 졸업식에 불참했다. 鄭양은 『친구에게 미리 졸업장을 대신 받아다 줄 것을 부탁해 놓았다』고 했다.
 
  이화女大 학과 사무실 조교를 지낸 金모(29)씨는 『졸업장을 찾아가지 않아 科사무실 구석에 방치된 채 먼지만 쌓여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졸업생들은 졸업식 전날 학과 사무실에서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미리 받아 놓는다. 졸업식날 아침에 학사모를 쓰고 가족·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바로 학과 사무실에 반납하고 졸업장을 받는다. 그렇게 학교 교문 밖을 나가는 것으로 졸업식이 끝난다. 학교 근처 식당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한 후 친구·선배와 다시 만나 술자리를 갖는 것이 졸업식의 일반적인 행태다.
 
  금년 고려大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柳正錫(유정석·29)씨는 『우리나라 대학의 졸업식은 학생회 임원진들, 성적 우수자들, 운동부 학생들만 앞에 나가서 상 받고, 나머지 졸업생들은 들러리』라며 『어떻게 보면 학교가 다수의 졸업생들을 소외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大 기계공학과 朴志相(박지상·24)군은 졸업식장에 들어갔다가 서먹해서 되돌아 나왔다고 한다. 朴군은 『졸업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사전정보가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참석해도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나와 버렸다』고 했다.
 
  지난 2월26일 치러진 서울大 졸업식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졸업식장內 학사석은 3분의 2가량이 비어 있었다. 2층에 있던 학부모들은 한눈에 들어오는 1층의 텅빈 의자들을 보며 『아이구, 자리가 많이 비었네…』하며 혀를 끌끌 찼다.
 
  한 시간 만에 졸업식이 끝나고 학교 관계자들과 박사·석사들이 퇴장하고 나자 행사 시간 내내 밖에 있던 졸업생들이 갑자기 式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학위수여식 플래카드가 걸린 단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을 따라 사진촬영 기사와 필름 파는 장사꾼들까지 들어왔다. 곧이어 장내에는 『3월3일 입학식 관계로 준비를 해야 하니 밖에 나가서 촬영하기 바랍니다』는 방송이 거듭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대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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