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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 흘리는」 羅州 성모상 현상,그 5년 뒤 이야기

아직도 향기는 코끝을 찔렀고, 광주 교구청의 부정적 평가도 유지되고 있다

우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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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한 향기
눈물과 피눈물을 흘렸다는 화제의 성모상. 키 50cm 가량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聖物이다. 표시한 부분이 성모상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다.
  기자는 5년 前에 聖母 마리아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전라남도 羅州 「성모의 집」이란 곳에서 한 향기를 맡았다. 장미향 같기도 하고 백합향 같기도 했지만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새콤한 꽃향기였다. 강렬하고 냄새도 짙었다.
 
  이 향기는 성모 마리아상과 예수상이 걸려 있는 祭壇(제단) 바로 밑, 기도회 장소 맨 앞에 놓여 있는 유리 상자 속에서 풍겨 나왔다. 신자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시멘트 바닥 위에 깔아 놓은 얇고 낡은 카펫 위에 그 상자는 있었다.
 
  당시 기자는 상자 위에 놓인 유리 뚜껑을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바닥에 깔려 있는 낡은 카펫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지만, 가로·세로 20cm 크기의 작은 공간에서 향기가 풍겨 나왔다.
 
  「성모의 집」 자원봉사자 金東明(48)씨는 『성모님의 향기』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8월27일부터라고 했다. 이날 낮 12시경, 십자가 위에서 느닷없이 사랑의 불꽃과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聖體(성체: 가톨릭에서는 예수의 몸, 즉 살을 의미한다. 미사 도중 신자들이 먹는 하얀 밀떡을 성체라고 칭한다) 하나가 카펫 위에 떨어졌고, 그 직후부터 聖體가 떨어진 곳에서만 향기가 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기자는 1998년 4월 말, 羅州 「성모의 집」을 찾아가 문제의 향기를 맡아 보았고, 「성모의 집」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른바 기적이란 현상들에 대하여 취재했다. 「성모의 집」에 모셔 놓은 「羅州의 성모님」이 1985년 6월30일부터 눈물을, 그리고 1986년 10월19일부터는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1992년 11월24일부터는 장미꽃 향과 비슷한 香油를 흘리기 시작했다는 등의 내용은 月刊朝鮮 1998년 6월호에 「참배 금지당한 羅州의 기적」이란 제목으로 기사화되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羅州 「성모의 집」
 
   이 향기가 지금도 계속해서 풍겨 나오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기자는 지난 4월26일 羅州로 내려갔다.
 
  전남 나주시 교동 107번지, 나주川 옆에 있는 「성모의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경이었다. 「성모의 집」은 성당이 아닌 경당이다. 경당은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소를 말한다. 예배소 안에는 여자 신자 한 명이 조용히 默珠(묵주: 큰 구슬 다섯 개, 작은 구슬 54개를 줄에 꿰고 끝에 십자가를 단 聖物) 기도를 드리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유리 상자는 5년 前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상자 앞에 한글과 영문으로 써놓은 글(이곳은 1997년 8월27일 낮12시경 聖體께서 내려오신 자리입니다)에 세월의 때가 묻어 있었다. 상자 위의 유리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5년 전에 맡았던 그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맡았다. 역시 그 향기였다. 카펫도 5년 전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낡고 얇았다. 시멘트 바닥과 카펫 사이에 스티로폼을 깔아 놓은 것이 5년 전과 달랐다.
 
  다음날 오후 1시경, 「성모의 집」을 다시 찾아갔더니 신자 두 명이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상자 속에서는 어제와 똑같은 향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성모의 집」 관리인 朴연훈씨(세례명 루비노)는 『카펫을 털고 말리는 청소를 수시로 하고 있지만 향기는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모의 집」과 관계 있는 누군가가 정기적으로 향수를 뿌려 놓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의심에 朴씨는 『만일 그렇게 한다면 지난 5년 동안 계속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꼬리가 잡히게 마련』이라며 『그런 造作이 있었다면 여기에서 일어났던 각종 기적들은 벌써 부인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聖體 기적」이란 것
 
  기자는 화제의 성모상을 자세히 관찰했다. 祭壇 중앙에 모셔 놓은 성모상은 열쇠가 채워진 유리장 속에 들어 있었다. 키는 50cm 가량이며, 플라스틱으로 만든 聖物인데 가톨릭 신자들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밝은 미소를 띠고 있다는 점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눈물과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던 1991년 5월16일, 이른바 「聖體 기적」이라 불리는 기이한 현상이 나주 「성모의 집」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聖體 기적」이란 가톨릭 신자들이 미사 때 먹는 밀로 만든 떡이 인간의 살과 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톨릭 역사에 의하면 「聖體 기적」은 서기 700년경 이탈리아 란치아노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프란체스코 성당에는 바실리오회 소속 수도자들이 살았는데 이 중에 믿음이 확고하지 못한 한 수도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미사 때 사용하는 밀떡 속에 진실로 예수의 몸(聖體)이 현존하는지, 또 포도주 안에 예수의 피(聖血)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늘 의심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 도중에 그가 聖體를 축성하자(가톨릭 의식의 하나로 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에게 봉헌하여 성스럽게 하는 것), 밀떡은 살로 변하고 포도주는 피로 변했다는 것이다. 피는 즉시 응고돼 다섯 개의 球體(구체) 덩어리로 변했는데, 이 피와 살이 밀봉된 용기 안에 봉인된 상태에서 보존돼 있다고 한다.
 
  1200년의 세월이 흐른 1970년, 란치아노를 관할하는 대주교 등의 요청에 의해 이 聖體와 聖血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조사는 아레초 종합병원 내과과장 오도아르도 리놀리 교수의 주도 아래 1970년 11월18일에 시작해 1971년 3월4일에 끝났다.
 
  조사 결과, 聖體와 聖血은 모두 사람의 것으로 판명 났다. 聖體는 심장의 줄무늬진 근육 조직으로 확인되었으며 聖體와 聖血에 대한 혈액형은 똑같이 AB형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조사팀은 『聖體와 聖血의 혈액형이 동일하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것이라는 점을 가리킬 수도 있으나, 같은 혈액형을 가진 두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성모의 집」에서 약 3km쯤 떨어진 곳에는 「성모님 동산」이 있다. 이 동산은 미국인 20여 명의 기부금에 의해 단장되고 있었다. 기부한 미국인의 이름은 동산 맨 위에 있는 바위에 적혀 있는데 이들은 「성모님의 發顯(발현)을 믿고 나주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신자라고 한다.
 
  이 동산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간 예수의 고행을 재현하는 「십자가의 길」도 있다. 기자가 이 동산을 찾아갔을 때 여자 두 명, 남자 한 명이 맨발로 기도하며 걷고 있었다.
 
  이 「십자가의 길」에서 2001년 11월9일, 란치아노 성당의 기적과 유사한 「聖血」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선혈이 낭자한 피가 돌과 낙엽 위에 묻어 있는 것을 수십 명의 신자가 목격했다는 것이며, 이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십자가의 길」 입구 표지판에는 이 피에 대해 이렇게 적어 놓았다.
 
 
 
 「십자가의 길」에 나타난 血痕
 
  「2001년 11월9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때 예수님은 聖血을, 성모님은 피눈물을 처참하게 흘리시는 顯示를 보았는데 실제로 3000여 개의 돌과 낙엽들 위에 금방 흘린 듯한 선혈이 낭자하였으며 살점과 피가 돌 위에 엉켜 붙어 있었다. 바로 이날 성모님께서는 『갈바리아의 십자가 길에서 애절하게 바치는 너희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나는, 피 흘리며 너희와 함께 하고 있는 내 아들 예수의 곁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너희와 동행하고 있다』는 말씀을 주시어, 이날 보여 주신 징표는 바로 예수님의 聖血과 성모님의 피눈물임을 알게 해 주셨는데 국내외의 DNA(유전자) 검사 결과 모두 사람의 살과 피로 판명되었습니다」
 
  하늘에서 피가 떨어진 이러한 현상은 2002년 1월18일에도 일어났다고 한다. 피는 「십자가의 길」 위 돌과 보도블록에 떨어졌는데 光州에 사는 曺基鶴(조기학·58)씨는 목격자 중의 한 사람이다. 曺씨는 31년간 농어촌진흥공사에 근무하다 3년 전, 건강이 나빠 퇴직한 사람이다. 曺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의 목격담을 이렇게 말했다.
 
  『그날 오전 9시30분경 聖血이 내려왔다는 소리를 듣고 집사람과 같이 구경하기 위해 성모님 동산에 갔습니다. 도착한 시각이 오후 5시20분경입니다. 성모의 집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聖血 보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후드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제 발 앞에 일곱 방울의 피가 떨어졌습니다. 바위와 보도블록 위에 떨어진 이 피들은 「팍 팍」 하는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피에서 장미향 비슷한 향기가 나는데….
 
  정신이 멍해지고 엄청 놀랐습니다. 코에서 코피가 뚝뚝 떨어지는 광경을 연상하면 당시 상황이 이해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피가 떨어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曺씨는 『그동안 심장병과 고혈압, 肝(간)경화 등으로 고생했는데 羅州 성모님을 알게 된 후 병이 다 나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羅州의 기적을 믿는다』고 말했다.
 
 
 
 십자가 모양의 血痕에 나타난 성모 얼굴
 
  「십자가의 길」 위의 돌과 보도블록에 떨어진 피는 서울에 사는 李廣(이광·64)씨가 촬영했다. 李廣씨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앙 부처에서 33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은퇴했다』고 했다. 『취미가 사진이어서 공직생활 중에 야생화 촬영을 많이 했다』고 그는 말했다. 다음은 李廣씨와의 일문일답.
 
  ―그날(2002년 1월18일) 「성모님 동산」에 왜 갔습니까.
 
  『오전 9시30분경 십자가의 길에 聖血이 내려왔다는 연락을 받고 사진을 찍기 위해 내려갔습니다. 오후 5시20분쯤 성모님 동산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에서 피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 장면을 직접 보았습니까.
 
  『현장 근처에 있었지만 피가 떨어지는 장면은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오전에 떨어진 血痕(혈흔)들을 관찰했는데 이 血痕들이 2001년 11월9일의 것과 거의 비슷한 모양이어서 사진 찍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철수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몇 사람이 십자가의 길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로 올라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으악」 하고 고함을 지르기에 급히 올라가 보니 바위와 보도블록 위에 붉은 피가 묻어 있고 목격자 일곱 명이 소스라치게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후드득」 하는 소리가 나면서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핏방울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저는 카메라로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니콘 F2 카메라에 105mm 렌즈를 사용했습니다』
 
  ―핏방울이 떨어진 장소는 어떠했습니까.
 
  『한 평 정도의 공간인데 큰 바위 한 군데와 보도블록 등 일곱 군데에 붉은색이 선명한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지만 찍고 난 후 인화를 했더니 바위 위의 혈흔은 십자가 모양이고, 십자가 정중앙에 羅州 성모님의 얼굴과 거의 비슷한 영상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날씨는 어떠했습니까.
 
  『아주 맑았습니다』
 
  ―언제 가톨릭에 입문했습니까.
 
  『羅州를 알고 나서 2001년에 영세를 받았습니다』
 
  기자는 「성모님 동산」에 전시돼 있는, 血痕(혈흔)이 묻어 있다는 돌멩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1년 반이 지난 탓인지 돌멩이에는 누르스름하고 검은 흔적들만 보였다.
 
  서울大 의대 법의학교실 李正彬(이정빈) 교수는 사체 검안과 유전자 감식 전문가다. 2001년 가을 어느 날, 李교수의 연구실에 한 초로의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聖血이라는 성스러운 피가 있다. 이 피에 대한 검사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李교수는 『사람의 피인지, 동물의 피인지, 그리고 사람 피라면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는 검사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 남자는 피가 묻은 돌멩이 하나를 李교수에게 주며 유전자 검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李正彬 교수에 의한 유전자 감식 결과
 
  이 제의를 받은 李正彬 교수는 처음엔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李교수는 검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자료들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血痕이 묻은 돌멩이와 나뭇잎 등을 건네 받은 李교수는 유전자 감식에 돌입했다. 다음은 李正彬 교수와의 일문일답.
 
  ―의뢰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의도 있고, 합리적인 분이었습니다. 일에 대한 집착력이 대단했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돌멩이 3개와 나뭇잎 하나에 묻은 血痕 감정 결과가 작년 3월7일에 나왔는데 모두 사람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동물의 피가 아닌가 의심했는데 사람 혈흔이고, 여자 피라는 결과가 나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사는 한 번으로 끝났습니까.
 
  『두 번째로 작년 8월에 혈흔이 묻어 있는 거즈를 갖고 왔는데 AB형의 남자로 판명되었습니다. 올해 초에 또다시 혈흔이 묻은 돌멩이를 갖고 와 현재 검사를 진행중입니다』
 
  ―의뢰인이 돌멩이를 가져올 때 누구의 혈액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까.
 
  『처음 것은 성모의 혈액이라 했고, 두 번째 것은 예수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자 혈액인 것으로 판명된 피의 혈액형은 무엇입니까.
 
  『처음엔 혈액형 검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혈액형 검사를 해 보았는데 AB형과 B형일 가능성이 높은데 확실하지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을 현재 조사 중입니다』
 
  ―의뢰인이 갖고 온 돌멩이나 나뭇잎, 거즈 등에 묻어 있는 혈흔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묻혀 놓았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조작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의 피가 섞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증거물을 계속 가져오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결과는 같은 사람의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현대 의학은 기적을 부정』
 
  ―검사는 어떻게 합니까.
 
  『피 묻은 돌을 생리식염수에 넣어 피 속의 백혈구를 끄집어 냅니다. 이 백혈구에서 DNA를 추출하는데 의뢰받은 돌멩이들은 건조 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백혈구 추출이 용이했습니다. 피가 말라 있으면 백혈구는 상당히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미라 속의 혈액형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DNA를 한우와 젖소, 고양이, 개, 오리, 염소, 말, 토끼 등 동물의 유전자와 비교했는데 동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유전자가 그 피 속에는 들어 있었습니다. 사람 血痕은 분명합니다』
 
  ―검사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2001년부터 올해까지 3년에 걸쳐서 조사를 했는데, 결과가 똑같이 나왔습니다. 여자 혈액의 경우엔 동일한 여자 것으로 판명되었고, 남자 것은 AB형이 확실합니다』
 
  ―聖體 기적이나 聖血 기적이란 말을 들어 보았습니까.
 
  『의뢰인이 그런 말을 하면서 羅州의 기적과 관련된 자료들을 잔뜩 보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는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聖血이 묻어 있다는 돌멩이들에 대한 현장 조사는 해 보았습니까.
 
  『羅州에는 가보지 않았습니다』
 
  李正彬 교수에게 유전자 감식을 의뢰한 사람은 朴日圭(박일규·71)씨였다. 朴씨는 미원그룹 산하 기업인 내셔널합섬(現 세원화성), 한국중앙기계, 대한리노륨 등 3개 회사 사장과 미원그룹 회장 상담역을 역임했다.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朴씨는 李正彬 교수에게 의뢰한 돌멩이와 나뭇잎, 거즈 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돌멩이와 나뭇잎은 2001년 11월9일에 내려온 聖血이 묻은 것이고, 거즈는 聖體가 피와 살로 변했을 때 그 피를 닦은 것입니다. 그때가 1995년 7월1일 새벽인데, 저도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聖血을 거즈로 닦아 준 분은 말레이시아에서 온 프란시스 수 신부입니다.
 
  이탈리아 란치아노 성당에 보관돼 있는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 결과 예수님의 혈액은 AB형이라고 통념화되고 있습니다. 羅州에서 살과 피로 변한 聖體 역시 예수님의 살과 피이기 때문에 거즈에 묻어 있던 血痕이 남자 것의 AB형이라는 유전자 조사 결과는 예수님의 聖血임을 입증하는 단서가 될 것입니다. 여자 혈액에 대해선 혈액형 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동정녀 성모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모님도 AB형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필리핀 신부: 『나는 기적을 보았다』
 
  지난 4월30일 기자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 호텔에서 필리핀 신부 제리 올보스(49)를 만났다. 올보스 신부는 1991년 5월16일 한국을 방문, 羅州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자리에서 성모를 대신하여 「나주의 기적」을 행하고 있다는 윤 율리아(여·57·본명 윤홍선)에게 聖體를 영해 준(먹게 해 준) 신부로서 율리아의 입 속에 들어간 聖體가 가장자리부터 실핏줄이 생기면서 차츰 피와 살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 사람이다.
 
  올보스 신부는 필리핀 가톨릭 신자 16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을 인솔하고 지난 4월28일 한국에 도착, 羅州 「성모의 집」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서울에 올라와 명동성당과 절두산 聖地를 순례하고 5월1일 출국하기 전 기자와 만났다. 올보스 신부와의 인터뷰 자리에는 필리핀 순례단의 여행 안내를 맡은 예성관광주식회사 徐慶原(서경원·42) 대표가 배석, 통역을 맡았다. 다음은 올보스 신부와의 일문일답이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1984년부터 1988년까지 4년간 한국에서 파견근무를 했습니다. 경기도 광명시의 한 성당에 籍(적)을 두고 한국말도 배웠습니다. 파견근무를 마치고 필리핀에 돌아갔는데 羅州 「성모의 집」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1991년 5월 羅州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나주성당에서 윤 율리아에게 영해 준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영성체가 살로 변하고 그 주변에서 피가 생기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聖體 기적을 목격한 이후 저는 더욱 더 공경심을 가지고 미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羅州를 관장하는 광주교구청은 그 현상이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초능력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공지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현상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저는 기적이라고 믿습니다. 광주교구청의 결정에 順命(순명)하기는 하지만 광주교구청에서 내린 결정이 다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羅州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들은 감춘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윤 율리아가 성모님과 예수님을 대신해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 그녀가 광주교구청의 결정에 順命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겸손하다는 사실은 羅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반증입니다.
 
  羅州는 필리핀內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聖地입니다. 羅州로 순례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羅州에 가서 병이 치유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 치유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신앙심이 더 경건해진다는 점입니다』
 
 
 
 외국 신도들이 찾아오기도
 
  ―羅州가 聖地로 인정받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포르투칼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 이탈리아의 시라쿠사 같은 聖地도, 聖地로 인정받을 때까지 상당 기간 박해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들은 초창기엔 거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羅州도 시작에 불과합니다. 저는 로마 교황청에서 언젠가는 羅州를 聖地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조지 올보스 신부는 그의 어머니와 누이도 羅州를 순례했다고 말했다. 통역을 맡은 예성관광주식회사 徐慶原 대표는 1991년부터 「성모의 집」을 위시해 한국內 가톨릭 聖地 참배를 원하는 全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여행사를 운영해 왔다고 한다.
 
  徐慶原 대표에 따르면 한국 순례단은 보통 6박7일 일정으로 들어와 서울에서 하루를 머물며 명동성당, 절두산, 새남터 등을 둘러본 뒤 羅州에 내려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徐慶原 대표는 『미국, 멕시코, 캐나다, 벨기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홍콩 등지에서 많이 오는데 羅州를 참배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羅州 「성모의 집」은 매달 한 번, 첫째 토요일에 기도회를 갖고 있다.
 
  지난 5월3일 기도회 날에는 1500여 명이 참석했다. 외국인도 수십 명이었다. 羅州에 온 신자들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 「성모님 동산」에 모여 이른바 「기적수」라는 물로 샤워를 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은 후,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 「성모의 집」에 모여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30분까지 철야 기도하고 해산했다.
 
  「성모의 집」을 사랑하는 신자들이 스스로 「기적수」라 부르는 샘은 1992년 6월27일 聖母의 계시를 받았다는 윤 율리아가 발견했다고 한다. 샘 앞에는 맨손으로 땅을 파고 있는 윤 율리아의 사진과 샘을 발견하게 된 내력, 그리고 기적수와 관련된 예수의 계시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1992년 6월27일 윤 율리아가 聖母님의 顯示(현시)를 보여 준 장소를 찾아 내어 맨손으로 땅을 팠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메마른 너의 영혼과 육신을 생기 돋아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 모여라. 이 물을 마시고 씻어라. 내 어머니와 나를 찾아 이곳에 와서 全心을 다하여 간곡히 부르짖을 때마다 내 불타는 聖心의 빛과 자비의 빛을 내려줄 것이며 내 어머니께서도 聖心의 빛과 자비의 물줄기를 내려줄 것이니 그러면 너희의 모든 갈증이 해소되고 은총으로 충만케 되어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윤 율리아의 성모상
 
  샘 옆에는 전남 보건환경연구원에서 조사한 水質 검사표가 붙어 있었다. 色度는 1이하로 맑으며, 냄새가 나지 않고 암모니아나 페놀, 세제 등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수소이온 농도(ph)는 7.9로 알칼리성이며, 먹는 물의 기준으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물을 만져 보니 마치 비누칠을 한 것처럼 미끌미끌했다.
 
  「성모님 동산」에는 이 물을 모으는 대형 저수 탱크와 순례온 신자들이 목욕할 수 있는 샤워시설이 설치돼 있다. 「성모의 집」 관리인 朴연훈씨는 『철야 기도가 있는 날이면 하루에 25t 내지 30t 가량의 물이 소비된다』고 말했다.
 
  「성모의 집」은 원래 나주川 변의 쓰레기장이었다. 이 일대 400평의 땅을 매입해 「성모의 집」을 지은 사람은 각종 「기적」을 행하고 있다는 윤 율리아이다. 윤 율리아는 개신교 신자였다고 한다. 6·25 전쟁통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둘이서 친척집에 얹혀 살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미용 기술을 익혀 생활을 헤쳐 나간 그녀는 20代 후반에 癌(암)에 걸렸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남편(김만복)의 권고로 성당을 찾았다. 남편은 농촌지도소 소장이었다. 성당에 다닌 지 3일 만에 그녀는 『성경을 가까이 하라』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癌이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후 그녀는 病者를 낫게 하는 등 기적을 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3년 어느 날, 폐병에 걸린 朴연훈씨(「성모의 집」 관리인)가 소문을 듣고 윤 율리아를 찾아왔다고 한다. 윤 율리아는 朴씨를 위해 기도했다. 병을 고친 朴씨는 윤 율리아가 돈을 받지 않자 고마움의 표시로 聖物 가게에서 산 성모상을 선물했다. 윤 율리아의 미장원(나주시 중앙동 정미용실)에 놓여 있던 이 성모상이 선물받은 지 2년 후인 1985년 6월30일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羅州 기적의 시작이다.
 
  눈물을 흘리던 이 성모상이 이듬해인 1986년 10월19일부터 눈물 대신에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이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자 윤 율리아는 1986년 11월5일 화제의 성모상을 羅州 천주교회 사제단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 나주川변의 쓰레기장을 매입, 「성모의 집」을 지어 성모상을 모셔왔다는 것이다. 「성모의 집」은 1987년 12월8일 완성되었다.
 
 
 
 池學淳 주교의 목격담
 
  성모상에서 눈물과 피눈물이 흘러 내리는 현상은 1992년 1월4일을 기해 그쳤다고 한다. 대신 1992년 11월24일부터는 장미꽃 향과 비슷한 짙은 향기를 풍기는 香油(향유)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香油를 흘리는 현상은 1994년 10월23일까지 2년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생기자 1986년부터 1992년 사이에 「성모의 집」을 찾아온 사제·수도자·평신도가 13만여 명에 달했다고 관리인 朴연훈씨는 말했다. 외국인 방문객도 15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성모의 집」에는 방문객들의 방명록이 남아 있다. 방명록에 따르면 원주교구청 池學淳(지학순·작고) 주교는 1990년 1월20일 오전 10시경 성모상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池學淳 주교는 방명록에 자필로 「나는 확실히 보았고, 굳이 믿습니다」라고 썼다.
 
  池學淳 주교를 따라온 원주교구청 소속 김 니꼴아오 수녀는 「오전 10시경 주교님을 모시고 경당에 와보니 성모님께서 눈물을 한없이 흘리고 계셨습니다. 어느 누가 의심한다 해도 분명히 저는 보았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羅州 천주교회 이천수 주임 신부는 방명록에 「1989년 7월5일 김대건(한국 최초의 신부) 대축일에 피눈물을 흘린다는 전화보고를 받았다. 경당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40분. 잠깐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 성모 제단 앞에 나아가 자세히 관찰해보니 오른쪽에 눈에서 흘린 피가 가슴과 치맛자락, 발등에까지 굳어 있었고, 왼쪽 눈에서는 머금은 듯한 눈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10분쯤 기도하고 나서 나중에 증거로 삼기 위하여 기념 촬영하였다」고 기록했다.
 
  그 다음에 일어난 것이 이른바 「聖體 기적」이다. 이 기적을 목격한 사람은 앞에 언급한 필리핀의 제리 올보스 신부다. 제리 올보스 신부는 「은총은 강물처럼」이란 책에 목격담을 이렇게 적었다.
 
  「저는 1991년 5월16일 羅州성당에서 미사 중, 윤 율리아에게 聖體를 영해 준 신부입니다. 그때 저는 필리핀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聖體 기적을 목격하였습니다. 율리아의 입 속에 들어간 聖體가 가장자리부터 실핏줄이 생기면서 차츰 피와 살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첫 번째 기적 이후 이와 똑같은 일이 윤 율리아 신상에서 여덟 번이나 일어났다고 한다. 윤 율리아가 1992년 이탈리아 란치아노 성당에서 미사를 볼 때, 그리고 1994년 11월2일 하와이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세계적 성체 연구가 마르틴 루치아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 중에 윤 율리아의 입에 들어간 聖體가 피와 살로 변하며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성모의 집」과 윤 율리아를 둘러싼 이같은 각종 「기적」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駐韓 교황청 대사 죠반니 블라이티스 주교가 이를 로마 교황청에 보고한 1994년 11월 말부터라고 한다. 駐韓 교황청 대사가 「성모의 집」을 방문한 것은 1994년 11월24일이다. 이날 성모상 위의 십자가에서 알파(α)와 오메가(Ω) 문양을 새긴 聖體가 두 개로 쪼개져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광주 교구청의 조사
 
  성 미카엘 대천사가 하늘에서 聖體를 갖고 내려와 세 목동에게 영하여 주었다는 포르투칼 파티마의 기적(1917년 발생)과 같은 현상이 羅州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죠반니 블라이티스 주교는 자신이 목격한 일을 로마 교황청에 보고했고, 로마 교황청은 1995년 5월 교황 개인 비서인 몬시뇰(주교와 신부 가운데의 직책) 투투를 羅州에 보내 『羅州 성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교황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外信을 통해 보도되면서 외국인 1만여 명이 聖地 참례차 羅州를 찾았다고 한다.
 
  「성모의 집」을 관장하는 光州교구청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광주교구청은 1994년 12월30일 「나주 본당 윤 율리아와 그의 성모상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과 메시지에 대한 조사위원회」(약칭 羅州조사위원회)를 결성한다.
 
  1997년 2월 이탈리아에서 발행되는 가톨릭계 전문 주간지 일 세그노誌는 3회에 걸쳐 「羅州 사건」을 특집으로 다뤘다. 첫 번째 특집 기사의 제목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미사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_한국의 羅州에서 성 베드로 성당으로」이었다. 이 기사는 마리아 영성 신학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르네 로랑생 신부가 썼다.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1995년 10월 율리아는 로마로 순례를 떠났다. 그녀는 10월31일 오전 7시30분 교황청 3층에 있는 교황 개인의 소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초대되었다. 교황에게서 직접 성체를 분배받았는데, 이때 성체가 피를 흘리는 놀랍고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는 미사에 함께 참여한 한국 주교단 사무총장 신부에게 다가가 입을 열고 그에게 일어난 현상을 보여 주었다.
 
  교황의 비서관 중 한 명이 요한 바오로 2세가 깊은 묵상을 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율리아를 소성당 뒤편으로 데리고 나갔다. 마시 전례가 끝나고 나서, 늘 그랬듯이 교황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면서 默珠를 하나씩 선사했다. 율리아에게는 그 중 두 개를 선물했다.
 
  그리고 나서 그 변화한 성체를 보존하고 있던 율리아는 입을 열고 교황에게 살과 피로 변한 광경을 보여 주었다. 교황은 이를 관찰하였고,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율리아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교황은 羅州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성모 마리아의 눈물 사진 앨범이 전달되었고 그는 이를 매우 유심히 관찰했었기 때문이다. 1995년 8월 교황 비서 중 한 명이 羅州에 가서 교황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달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6년 3월21일 한국의 주교들에게 羅州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였는데, 성체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나주 사건에 대해 어떤 암시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광주교구청의 부정적 판단
 
  1998년 1월1일, 광주교구청은 尹恭熙(윤공희) 대주교 이름의 공지문을 발표, 羅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신앙적으로 참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어떤 초능력에 의한 현상일 수도 있다」고 규정했다.
 
  광주교구청은 공지문에서 「윤 율리아 입에 모신 성체가 입 안에서 살 덩어리와 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사제의 축성으로 빵과 포도주가 聖體와 聖血로 실제 변화한 후에도 그 형상은 여전히 빵과 포도주여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광주교구청은 결론적으로 「羅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관련된 유인물, 간행물, 오디오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의 발행과 유포를 공식적으로 금하며 이와 관련된 홍보물을 읽거나 보는 것 역시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 신도들은 이 같은 교도권에 순종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성모의 집」에서 기도회 모임을 갖는 것을 금지시켰다.
 
  공지문에 따라 「성모의 집」은 예배금지 조치를 당했다.
 
  광주교구청은 나주의 「기적」과 관련한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광주교구청 책임자는 尹恭熙 대주교 후임인 崔昌武(최창무) 대주교인데, 대주교 비서실 측은 『대주교님의 일정상 인터뷰할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서실 측의 한 수녀는 『설사 인터뷰를 한다 해도 대주교님께서는 아마 노 코멘트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서실장이라고 신분을 밝힌 신부는 『우리는 나주 「성모의 집」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그곳에 가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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