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注> 月刊朝鮮 1999년 9월호 「두만강을 건너온 임철(10)·임소연(8) 오누이의 눈에 비친 북한 어린이들의 삶과 죽음」 기사의 주인공인 이들 오누이는 1999년 4월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한 후 2001년 1월 서울에 들어와 먼저 온 아버지와 재회했다. 北에서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중국에 나와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조선족·한족 학교를 다녔다. 한국에 온 이들은 현재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의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글은 초등학교 6학년인 임철군의 눈에 비친 한국 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이다.
한국에 와서의 첫 느낌
나는 먼저 우리 가족 모두를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신 한국 月刊朝鮮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중국 땅에서 헤매던 우리를 따뜻한 손길로 도와 주시고 성심성의를 다해 지원해 주시며 보살펴 주시고 한국 땅에 들어설 때까지 염려해 주신 마음에 어쩔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으로 제가 한국 생활을 체험한 소감을 적었습니다.
백화점 풍경
2001년 1월 나는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 꿈만 같았습니다. 그토록 바라며 그리워하던 한국으로 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믿기지 않았고 너무 기뻤습니다. 아마도 그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처음 한국의 건물들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고 멋있었습니다. 높고 높은 것이 하늘에 닿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넓고 넓은 길거리들과 많고 많은 자동차들을 보면서 눈앞이 황홀하였습니다. 이런 광경은 중국에서 텔레비전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왔다갔다하는 많은 자동차들을 보면 당황스럽고 머리가 혼돈스러웠습니다. 또한 높은 빌딩들을 볼 때면 머리를 너무 하늘로 쳐들어 목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건물들의 층수를 하나하나 세려면 하나같이 꼬박 반나절은 더 걸릴 것 같은 높이들입니다.
이번에 나는 한국의 롯데백화점을 가보았습니다. 백화점 정문을 열고 턱 들어서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눈부시고 황홀한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 넓어 끝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백화점 안에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귀한 물건들이 쭉 깔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물건 하나 하나가 내 눈엔 금보다도 귀하게 보였고 신기했습니다. 중국에서도 백화점은 가보았지만 이처럼 멋있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너무도 멋있고 좋은 물건들이 많아 머리가 뗑해질(띵해질) 지경이었습니다.
백화점은 고도로 발전한 기술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에 올라서면 자동으로 쭉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 등 갖가지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가만있으면 자동으로 올라가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나 같은 애들이 좋아하는 게임과 오락기구도 있고 어린 꼬마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많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자 나는 갑자기 모두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북한에서라면 꿈도 꾸지 못하고 상상도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남한 사회는 정말 발전하고 멋있는 사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각종 서비스와 안내원들의 친절하고 상냥한 안내, 봉사 등을 접하고 남한 사회는 친절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허나 북한에서 말하는 남한 사회는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북한에서는 남한 사회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기만 살려고 마구 남을 죽이고 약탈하며 온갖 나쁜 행위가 일어나는 어두운 사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아무 짓이나 다하겠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접하고 있는 자본주의 남한은 북한에서 말하는 것과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람들 모두가 얼굴이 밝으며 행복해 보였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밝은 사회였습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명칭은 인민이 주인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주인입니다. 나도 한국에 와서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란 국민들이 국가를 책임지고 주인이 되어 누구의 탄압과 압력도 받지 않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국민에 의해 해결되는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허가를 받아야 되고, 일을 하고 싶어도 정부의 탄압과 압력 때문에 하지도 못하니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북한은 자기들이 제일 행복하다며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나도 한국에 와서 모든 걸 깨닫게 되었고 비로소 이때까지 속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모든 북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북한 정권이 정말 미웠습니다.
지금도 계속 속으면서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정말 불쌍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빨리 불쌍한 북한 사람들을 살려줘야 할 텐데… 하고 나는 매일 한국에 와서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빨리 통일이 돼야 하는데 왜 이렇게 통일의 앞날은 보이지 않고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 한심스럽습니다.
학교 생활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 학교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하나원(탈북자 정착을 위한 교육기관. 경기도 안성 소재-편집자 注) 등 모든 과정을 여섯 달 동안 마치고 한국 사회에 나왔습니다. 사회에 나오자마자 쉬지도 않고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내 나이 열네 살인데 초등학교 6학년으로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중학교 1학년인데 교육부에서 중학교에서의 수업횟수가 없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내 나이보다 한두 살 아래인 한국 애들과 같이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게 싫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지 나는 나와 나이가 똑같은 한국 애들과 같이 공부하며 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조금 모자라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나는 지금 학교에서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애들과도 잘 지내며 마음껏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 남한 애들과 차별 없이 대접받고 싶으며 나도 그들을 다른 생각 없이 대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섯 달 동안 한국 애들과 공부했습니다. 애들이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이 북한하고 엄청 차이가 납니다. 수업시간에 북한은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조용하게 선생님의 설명을 귀담아 듣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선생님 설명에 귀 기울여지곤 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릅니다. 수업시간에도 계속 자기가 할 일만 하고 규율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애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수업태도도 각자 다릅니다.
북한에서의 수업태도는 곧은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선생님에 대해 예절이 없는지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것이 예절을 지키는 태도인지 전혀 무관심합니다. 선생님도 별로 신경을 안 쓰십니다.
처음 나는 애들이 떠들고 말하는 소리 때문에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집중하려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애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듭니다. 선생님은 애들이 너무 세게 떠들면 한 번씩 큰 소리 치시고 그 후 잠시 조용해집니다. 그러다가 5분도 안 되어 또다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때문에 한국에서 공부를 하려면 북한이나 중국보다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학교는 북한이나 중국보다 시설이 훨씬 잘 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학교 크기는 한국의 학교와 비슷하나 시설은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학교 교육은 북한이나 중국보다 배우는 것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 좋은 학교에서 잘 공부하면 될 터인데 학교에 나와서는 밤에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다며 잠을 자지 않으면 장난치니 마치 아빠가 밤에 술 마시고 직장에 나가서 자는 것과 같은 감을 줍니다. 분위기가 이래서인지 어떤 때는 선생님도 수학 문제를 칠판에 써놓고 『너희들 학원에서 배웠지 한 번 풀어 봐』 하고는 하실 일만 합니다. 그러니 나같이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집니다.
먹을 것이 없어 공부도 못 하고…
북한은 중학교에도 컴퓨터가 한 대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도 북한에서 살면서 한 번도 컴퓨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말로만 컴퓨터가 있다고 들었으나 나는 컴퓨터에 대해 흥미도 없었거니와 그냥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에만 그쳤습니다. 실제로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본 것은 중국에서였습니다.
중국 학교에 컴퓨터가 있긴 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한심합니다. 말이 컴퓨터지 인터넷이라든가 하는 것은 보지도 못했습니다. 인터넷이 있기는 있는데 교육을 안 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부터 한국처럼 좋은 환경에서 배우고 공부했다면 지금은 천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한국 애들은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복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북한은 식량사정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 식량사정 때문에 학교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힘이 없어서 애들은 학교에 나오지를 못합니다. 애들이 너무 학교에 오지를 않아서 데리러 가면 모두 먹지 못해서 힘없이 누워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도 대답 없이 그냥 누워 있기만 합니다. 수업할 때면 애들의 자리는 비어 있고 몇몇 애들만 학교에 나와 수업을 받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다른 애들은 먹고살기 위해 아빠, 엄마를 도와 물건을 팔며 장사도 하고 집에서 어린 동생을 봐주며 하루 종일 집에만 붙어 있기도 합니다.
지금 이들에게는 공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인데 공부를 해서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반면 한국은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와서 공부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학교에 결석하는 사람도 없고 항상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그러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학교를 다니다 보니 나쁜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왕따」라는 것이 있는데 완전히 한 애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대상(상대)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는 전혀 이런 것이 없습니다. 드문드문 어떤 애가 싫거나 그 애가 나쁜 일을 했을 때 놀려 주거나 같이 놀지 않는 것은 있지만, 모두가 그 애를 싫어하게 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내가 『왜 이 애를 왕따 시키냐』고 물어보면 『싸가지가 없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다른 애가 왕따가 되고 다음에는 또 다른 애가 되고…. 왕따라는 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는 학교 다닌 지 다섯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왕따가 두세 명이 연이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애를 왕따시킨 애는 바로 전에 왕따로 따돌림받던 애입니다. 나는 이럴 때면 애들이 나보다 한 살 아래여서 철이 없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애들한테서 따돌림받는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학교에 나오기 싫고, 누구도 자기를 대상(상대)해 주지 않으니 미쳐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나도 몇 번 마음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배려는 하나도 없이 자기의 생각만 말하니 남한테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북한에서 온 애들한테는 그런 마음의 상처가 더 큽니다. 한국 애들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허나 나는 지금 애들과 잘 지내고 있고 애들도 나한테 잘해 주고 있습니다.
아직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걸 밝히지는 않았지만 눈치가 빠른 애들은 조금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지금 나는 한국 애들이 모두 다니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아빠가 실업자여서 나는 아빠를 도와 집에서 자습을 많이 하리라 마음먹은 것입니다.
『너희들, 학원 가서 공부해』
우리 반 애들 중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있는 애는 나까지 두세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외에 애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주로 속셈학원, 태권도학원, 피아노학원 등입니다. 속셈학원 같은 데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과목을 다시 복습시켜 주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원에서 복습시켜 주니 공부가 더 잘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애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 안 합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설명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장난만 합니다. 아마도 학원에 가면 한 번 더 가르쳐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드문드문 선생님은 설명하시다가 애들이 듣지 않고 너무 떠들자 『너희들, 학원 가서 공부해. 그래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은 공부가 아니고 학원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만이 공부지? 학원 선생님한테 가서 많이 배워』 하고 성을 내셨습니다. 선생님도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면 그렇게 말하셨을까? 애들은 그 말을 듣고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고 계속 웃고 떠들었습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국회는 뭘 하는 곳이냐?』 하고 질문하니 대답하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누구도 대답을 안 하니 『학급장인 네가 한 번 말해 보라』고 나를 가리켰습니다.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텔레비전에서 본 그대로 『국회는 양복 입은 사람들의 결투장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도 웃고 애들도 웃었습니다. 나와 짝꿍인 친구가 『맞어. 두목이 졸개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된 말투로 쌈하는 곳이야』라고 했습니다. 순간 나는 말을 잘못했구나 했는데 선생님은 뜻밖에도 『임철이 정확히 봤어, 국회는 전쟁판이야』고 긍정해 주었습니다.
남한에서 만난 우리들
북한에서 온 아이들의 괴로움
지금 한국에는 나처럼 북한에서 빠져나와 중국을 걸쳐 온 북한 형님·누나·동생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지금 사회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주최한 「한겨레 계절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조선일보에서 후원을 해주어 우리가 공부한다니 고맙습니다. 이 학교는 제가 이번이 두 번째로 갔다온 것입니다. 가보니 전에 여름학교에서 보던 얼굴들은 몇 안 되고 모두 생소하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습니다. 모두 금방 하나원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금방 나왔다는데 인원이 20명 정도 되니 나보다도 전에 온 아이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100명도 넘을 것입니다. 하나원 어느 기수에는 아이들만 해도 20명이나 왔었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도 계속 오고들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북한에서 온 아이들의 걱정, 괴로움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떤 한국 사람들은 원하던 한국으로 왔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들이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배운 지식입니다. 발전된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모르다가 이제야 배우려고 하니,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운 한국 애들한테 뒤쳐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 때문에 학교에 들어가도 자신보다 두세 살 아래인 애들하고 공부해야 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공부하기가 싫습니다.
나는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린애들하고 어울리자니 말도 안 통하고 대상(상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한심하고 괴롭습니다. 학교에선 내가 나이가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키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학교 애들과 다툴 때면 애들은 계속 내 나이를 비웃으며 놀려댑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이라서 괜찮습니다. 더한 것은 이번에 중학교에 올라가는데 한국은 중학교부터 선후배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한 학년만 더 많아도 선배로 존경어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올라가면 중학교 2학년 나이입니다.
그럼 나와 나이가 같은 애들한테도 선배라고 하면서 존경어를 써야 한다니 정말 자존심이 상합니다.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왜? 무엇이 한국 애들보다 못해서 나이가 같은 애들한테 존경어를 써야 되지? 하고 생각할 때면 정말 억울하고 중학교에 올라가기가 싫습니다. 그러나 나는 만약 지금이라도 중학교 2학년에 붙여 준다면 수준은 많이 떨어지겠지만 몇 달 안으로 따라잡을 자신이 있습니다. 허나 이미 이렇게 정해졌으니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검정고시를 택하는 이유
나이가 어린 동생 같은 애들하고 어울리기가 싫으니 친구 사귀는 일도 힘들고, 서로의 사고방식이 잘 맞지 않으니 힘듭니다. 그래서 모두 학교를 택하지 않고 자신과 수준이 맞는 상태에서 상처도 안 받으며 공부하기 위해 검정고시 같은 것을 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다가도 힘들어서 나오고, 어떤 아이들은 학교 다닌 애들의 경험담을 듣고 아예 검정고시를 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 주시는 선생님들은 모두 학교를 들어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빨리 지식들을 터득하고 한국 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다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미래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른들보다 밝고도 멉니다. 어른들은 모두 우리가 부럽다고들 하십니다. 우리도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무사히 오게 된 것을 복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하루하루가 아니라 내일입니다. 내일을 위해 우리에게는 많은 임무가 있습니다. 첫째로 공부를 잘해야 합니다. 공부를 잘해 빨리 선진국을 배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애들보다 몇 배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노력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국 애들처럼 똑같은 童心의 시절입니다. 한국 애들처럼 게임도 하고 싶고 오락실도 노래방도 다니며 실컷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면 나중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모두 참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한국 애들은 편안하게 방학을 보낼 때 우리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한겨레 계절학교로 나왔습니다. 계절학교에서 우리는 20일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쉬지도 않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여러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대학생 형님, 누나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계속 걱정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의 앞날은 어떠할지? 참으로 걱정이 되고 때로는 사는 것이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북한에서 하던 고생을 생각하며 다시 뉘우치군(곤) 합니다. 우리가 왜 이 한국으로 왔을까요? 그것은 바로 살려고, 잘 살려고 왔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탈락하면 안 됩니다.
친구들
왜 집안에서만 놀까?
나는 사회에 나와서 많은 한국 친구들을 만나보았고 같이 어울려 놀았습니다. 같이 어울린 친구들 중에는 좋은 친구도 많고 나쁜 친구도 많습니다. 특별히 내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알게 된 것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입니다. 처음 학교 들어갈 때에는 많이 두려웠습니다. 정작 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렸습니다.
처음에 애들은 매우 호기심이 있어 했습니다. 전학생이라면 북한과 중국보다도 더 호기심 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한테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어디서 왔는가? 이름은 뭔가? 하고 계속 질문했습니다. 애들과 얘기를 하며 차차 두려움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허물 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애들도 내 말투나 행동에서 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처음에 학교에서 빨리 친구를 사귀려고 친구들의 취미나, 생활, 성격 등을 세심히 관찰하였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무엇을 즐겨하는지, 어떻게 즐기는지도 알아보니 공통적으로 한국 애들은 모두 게임을 즐겨합니다. 집마다 모두 컴퓨터가 있는데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앉아서 게임을 합니다. 부모님들이 엄격히 게임을 금하시고 공부를 위주로 통제당하는 애들은 그렇지 않으나 대부분 부모님들이 게임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안 하십니다. 우리 반에도 45명 중 집에서 부모님 때문에 게임을 못 하는 애들은 5명도 안 됩니다.
어느 날 나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가보니 집에는 부모님들은 안 계시고 친구 혼자만 있었습니다. 어디 가셨냐고 물으니 모두 회사에 가셔서 저녁 늦게 돌아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는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니 잔소리도 없고 참 좋다고 했습니다. 내가 덧붙여 『그럼, 아빠 엄마가 오실 때까지 뭐 하니?』 하고 물으니, 친구는 『뭐 그냥 게임이나 하지, 할 게 없잖아』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 공부는 안 하니?』 하고 물으니 『학원 가잖아』 하고 친구가 대답해 줬습니다. 나는 이 일을 겪고 초등학교 애들은 학원 가는 이외에는 자기 혼자서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들이 집에 붙어서 게임만 하니 애들이 밖에 나와서 놀지를 않습니다.
하루는 너무 심심해서 제일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나 심심해서 그러는데 나와서 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왜 나가서 놀아? 추운데 그냥 집에서 놀면 되잖아. 다른 애들한테 전화해 봐』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정말 화가 났고 한심했습니다. 날씨가 별로 춥지도 않은데 왜 나와서 놀기 싫어할까? 아마도 컴퓨터에 중독되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마트에서 있었던 일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주로 밖에서 술래잡기라든가 아니면 축구, 농구 등을 합니다. 밖에서는 체육놀이를 하는 것이 더 즐거운데 하필이면 그 머리 아픈 게임을 또 하자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계속 컴퓨터만 바라보니 눈이 나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도 이제는 게임을 많이 배워서 여기 애들이 하는 게임을 다 할 줄 아는데 게임에 빠지니까 운동도 안 되고 공부도 잘 안 됩니다.
한국에는 안경을 쓰는 애들이 참 많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어릴 때 안경을 쓰지 않습니다. 보통 대학 때부터 안경을 쓰는데 한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쓰는 것입니다. 벌써 이렇게 눈이 나쁘면 커서는 어떻게 될까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 대신 게임 같은 것을 할 때면 여느 때보다 진지하고 집중을 합니다.
하루는 어느 친구의 생일이었습니다. 그 애가 나한테 다가와 내일 자기 생일이니 초대하겠다는 것입니다. 모두 나까지 다섯 명을 초대했습니다. 그 애는 생일을 집에서 보내지 않고 엄마한테서 돈을 받아서 밖에서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 날 그 친구가 돈을 다 대고 PC방에서 게임도 몇 시간씩 하면서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피자를 먹어 보았습니다. 오후에는 돌아다니며 놀이기구도 타고 오락실에서 오락도 했고 마지막으로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불렀습니다.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 친구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 날 나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마음 좋은 그 친구에게 감사했습니다. 생일이라서 응당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쓰며 우리를 즐겁게 해준 그에게 어쨌든 감사했습니다. 한국이란 게 이런 재미도 있구나 하고 생각되고 하여튼 높은 문화수준을 즐기누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우리 친구들은 모두 본래 마음은 곱고 착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돈돈 하는 어른들과 이 사회 영향 때문에 많은 생활에서 애들이 돈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함께 느꼈습니다. 우리 학급의 좀 잘 사는 애들은 용돈이 풍족한 애들과 같이 휩쓸려 놀고 용돈이 변변치 않은 나 같은 애들과는 될수록 놀기를 피합니다.
하루는 우리 반의 어떤 애가 오후에 이마트에 가서 게임도 하고 쇼핑도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아이들이 나서서 그렇게 하자고 하니 그 애는 내 옆의 친구를 보고 『야 넌 빠져, 너는 돈도 없지 않아. 그리고 학급장인 너도』 하며 나도 한 옆으로 밀쳐 놓았습니다.
나는 북한에서 왔으니 없다 치고 옆의 친구는 참 불쌍한 애입니다. 그 애 부모님들은 이혼해서 그 애를 할머니한테 맡기고 모두 어디론가 갔다고 합니다. 나는 서럽기도 해 집에 와서 아빠에게 이 말을 하니 아빠는 아무 말씀 없이 지갑에서 돈 2만원을 꺼내 그 친구를 데리고 이마트에 가서 놀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 애와 같이 이마트에 가니 우릴 떠밀던 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돈 2만원을 보이며 『우리 다 같이 놀자』고 청했습니다. 그러니 그 친구는 아까 잘못했다며 오히려 우리에게 오뎅도 사주었습니다.
나는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고 앞으로 친구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차차 친구들과 더 가까이 친해질 수도 있고 가깝게 마음속에 담아둘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적응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북한에 관심 없는 아이들
드문드문 선생님이 사회 시간에 북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그러면 애들은 무슨 북한에 대해 들을 게 있냐면서 그냥 못살고 굶주린 나라가 아니냐고들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분노가 솟아오릅니다. 선생님은 북한에 대해 흥미가 많으신지 계속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듣는 아이들은 정말 북한이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죽어나가느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정말이라고 하시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북한이 몇 년도부터 식량 사정이 어려웠는지, 어떻게 되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그러면 애들은 잘 이해를 못 하고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겠느냐고 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은 거의 믿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좋게 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여 모두 아주 미개한 나라, 원시적인 나라로만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북한에 대해 올바르게 또 공식적으로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반 선생님이 들려 주시는 북한에 대한 좋은 얘기는 교과서에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만 그냥 우리한테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설명을 해주십니다.
물론 북한에서도 남한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발전했다고 하는 한국에서 무엇이 북한의 장점이고 무엇이 단점인지 하는 것을 한마디도 가르치지 않으니 우리 친구들은 후에 커서도 북한을 잘 이해 못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북한에 대해 취미도 없거니와 물어보면 전혀 맞지 않게 아무렇게나 마구 대답해 버립니다.
한번은 내가 친구한테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후진국이고 먹을 게 없잖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럴 때면 나는 더욱더 나의 신분을 떳떳하게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밝혔다가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고 더욱 얕잡아 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국에서는 더 발전한 나라에서 왔다고 하면 높이 보고 후진국에서 왔다고 하면 낮추어 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면 『와』 하고, 영어라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학교에서 북한에 대해서도 조금 교육시켜서 애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애들도 북한에 대해서 이해하고 북한에서 온 우리들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같은 애들이 자라나면 커서도 서로를 미워하며 계속 세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느낀 것만 가지고는 아직 전 한국 친구들을 다 안다고 판단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더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많이 어울리며 느껴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앞으로 많은 한국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한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인정 없는 한국 사람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의 모든 것이 좋아 보였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직접 살아 보니 나쁜 점도 많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점도 많았습니다. 좋았던 점은 한국이 매우 발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느 곳을 가도 모두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 가서 내 친구들을 만나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우러러볼 것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나의 신분을 숨기며 그 애들과 마음 놓고 어울리지 못했지만, 지금 가면 애들한테서 부러운 눈빛을 받으며 떳떳하게 어울릴 것 같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한국을 부러워했고 한국 사람들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족들은 너도나도 한국에 와서 돈을 벌어 살고 싶어합니다. 그 한국에 내가 왔으니 이것이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인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직도 우리 집 옆에 몇 명이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몇 번 얼굴만 본 것이 전부입니다. 북한 같으면 서로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얼굴이라도 익히며 지내겠는데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어른들은 시간이 있으면 옆집에 놀러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재미있게 지냅니다. 그리고 비록 식량사정이 어려워도 맛있는 것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맛보라고 가져오고 또 가져다 주군(곤) 합니다. 그리고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울기도 하고 상의도 합니다. 한국은 이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하려 해도 무뚝뚝하게 가만있습니다. 서로 남남인 것입니다. 이것이 아직 내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이고 의문입니다.
우리 아빠가 친구 분들을 만나는데 나도 몇 번 따라가 보았는데, 만나서는 모두 쌀쌀하게 누런 물 같은 커피만 놓고 신경전을 벌이듯 이야기를 재어가며 나누다 헤어집니다. 여기서 느낀 것은 인사성이 북한보다 훨씬 밝은데 내 생각에는 딱 겉치레를 하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속은 딴 데 있으면서 말로만 안녕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합니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옛날에 사셨던 분이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가면 우리 세대에는 아예 거리도 전장판 같은 느낌이 들까 봐 두렵습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북한에서 왔다고 해서 전화도 오고 하더니 지금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럴 때 이웃과 얘기도 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서로 돈 관계만 맺어지니 서로에게 진실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탈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돈이 없고 가진 것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세상입니다. 나는 드문드문 부모님이랑 어른들이 정말 힘들어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모두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럴 때면 나도 괴롭고 돈이 정말 밉습니다. 그놈의 돈이 없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젠 한국에 왔으니 난 참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생활하여 내가 이루고 싶던 꿈들을 모두 이룰 것입니다. 그러려면 옆에 있으면서 나를 지켜보아 주시는 분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많이 도와 주시고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2년 새해 1월 임철 올림.●
나는 먼저 우리 가족 모두를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신 한국 月刊朝鮮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중국 땅에서 헤매던 우리를 따뜻한 손길로 도와 주시고 성심성의를 다해 지원해 주시며 보살펴 주시고 한국 땅에 들어설 때까지 염려해 주신 마음에 어쩔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 마음으로 제가 한국 생활을 체험한 소감을 적었습니다.
백화점 풍경
2001년 1월 나는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 꿈만 같았습니다. 그토록 바라며 그리워하던 한국으로 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믿기지 않았고 너무 기뻤습니다. 아마도 그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것입니다.
처음 한국의 건물들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고 멋있었습니다. 높고 높은 것이 하늘에 닿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넓고 넓은 길거리들과 많고 많은 자동차들을 보면서 눈앞이 황홀하였습니다. 이런 광경은 중국에서 텔레비전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왔다갔다하는 많은 자동차들을 보면 당황스럽고 머리가 혼돈스러웠습니다. 또한 높은 빌딩들을 볼 때면 머리를 너무 하늘로 쳐들어 목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건물들의 층수를 하나하나 세려면 하나같이 꼬박 반나절은 더 걸릴 것 같은 높이들입니다.
이번에 나는 한국의 롯데백화점을 가보았습니다. 백화점 정문을 열고 턱 들어서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눈부시고 황홀한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 넓어 끝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백화점 안에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귀한 물건들이 쭉 깔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물건 하나 하나가 내 눈엔 금보다도 귀하게 보였고 신기했습니다. 중국에서도 백화점은 가보았지만 이처럼 멋있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너무도 멋있고 좋은 물건들이 많아 머리가 뗑해질(띵해질) 지경이었습니다.
백화점은 고도로 발전한 기술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에 올라서면 자동으로 쭉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 등 갖가지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가만있으면 자동으로 올라가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나 같은 애들이 좋아하는 게임과 오락기구도 있고 어린 꼬마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많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자 나는 갑자기 모두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북한에서라면 꿈도 꾸지 못하고 상상도 못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남한 사회는 정말 발전하고 멋있는 사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각종 서비스와 안내원들의 친절하고 상냥한 안내, 봉사 등을 접하고 남한 사회는 친절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허나 북한에서 말하는 남한 사회는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북한에서는 남한 사회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기만 살려고 마구 남을 죽이고 약탈하며 온갖 나쁜 행위가 일어나는 어두운 사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아무 짓이나 다하겠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접하고 있는 자본주의 남한은 북한에서 말하는 것과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람들 모두가 얼굴이 밝으며 행복해 보였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밝은 사회였습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명칭은 인민이 주인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주인입니다. 나도 한국에 와서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란 국민들이 국가를 책임지고 주인이 되어 누구의 탄압과 압력도 받지 않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국민에 의해 해결되는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허가를 받아야 되고, 일을 하고 싶어도 정부의 탄압과 압력 때문에 하지도 못하니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북한은 자기들이 제일 행복하다며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나도 한국에 와서 모든 걸 깨닫게 되었고 비로소 이때까지 속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모든 북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북한 정권이 정말 미웠습니다.
지금도 계속 속으면서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정말 불쌍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빨리 불쌍한 북한 사람들을 살려줘야 할 텐데… 하고 나는 매일 한국에 와서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빨리 통일이 돼야 하는데 왜 이렇게 통일의 앞날은 보이지 않고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 한심스럽습니다.
학교 생활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 학교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하나원(탈북자 정착을 위한 교육기관. 경기도 안성 소재-편집자 注) 등 모든 과정을 여섯 달 동안 마치고 한국 사회에 나왔습니다. 사회에 나오자마자 쉬지도 않고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내 나이 열네 살인데 초등학교 6학년으로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중학교 1학년인데 교육부에서 중학교에서의 수업횟수가 없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내 나이보다 한두 살 아래인 한국 애들과 같이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게 싫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지 나는 나와 나이가 똑같은 한국 애들과 같이 공부하며 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조금 모자라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나는 지금 학교에서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애들과도 잘 지내며 마음껏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굳이 밝히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 남한 애들과 차별 없이 대접받고 싶으며 나도 그들을 다른 생각 없이 대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섯 달 동안 한국 애들과 공부했습니다. 애들이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이 북한하고 엄청 차이가 납니다. 수업시간에 북한은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조용하게 선생님의 설명을 귀담아 듣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선생님 설명에 귀 기울여지곤 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릅니다. 수업시간에도 계속 자기가 할 일만 하고 규율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애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수업태도도 각자 다릅니다.
북한에서의 수업태도는 곧은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선생님에 대해 예절이 없는지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것이 예절을 지키는 태도인지 전혀 무관심합니다. 선생님도 별로 신경을 안 쓰십니다.
처음 나는 애들이 떠들고 말하는 소리 때문에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집중하려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애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듭니다. 선생님은 애들이 너무 세게 떠들면 한 번씩 큰 소리 치시고 그 후 잠시 조용해집니다. 그러다가 5분도 안 되어 또다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계속 들립니다. 때문에 한국에서 공부를 하려면 북한이나 중국보다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학교는 북한이나 중국보다 시설이 훨씬 잘 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학교 크기는 한국의 학교와 비슷하나 시설은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학교 교육은 북한이나 중국보다 배우는 것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 좋은 학교에서 잘 공부하면 될 터인데 학교에 나와서는 밤에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다며 잠을 자지 않으면 장난치니 마치 아빠가 밤에 술 마시고 직장에 나가서 자는 것과 같은 감을 줍니다. 분위기가 이래서인지 어떤 때는 선생님도 수학 문제를 칠판에 써놓고 『너희들 학원에서 배웠지 한 번 풀어 봐』 하고는 하실 일만 합니다. 그러니 나같이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집니다.
먹을 것이 없어 공부도 못 하고…
북한은 중학교에도 컴퓨터가 한 대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도 북한에서 살면서 한 번도 컴퓨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말로만 컴퓨터가 있다고 들었으나 나는 컴퓨터에 대해 흥미도 없었거니와 그냥 있는가 보다 하는 생각에만 그쳤습니다. 실제로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본 것은 중국에서였습니다.
중국 학교에 컴퓨터가 있긴 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한심합니다. 말이 컴퓨터지 인터넷이라든가 하는 것은 보지도 못했습니다. 인터넷이 있기는 있는데 교육을 안 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부터 한국처럼 좋은 환경에서 배우고 공부했다면 지금은 천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한국 애들은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복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북한은 식량사정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 식량사정 때문에 학교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힘이 없어서 애들은 학교에 나오지를 못합니다. 애들이 너무 학교에 오지를 않아서 데리러 가면 모두 먹지 못해서 힘없이 누워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도 대답 없이 그냥 누워 있기만 합니다. 수업할 때면 애들의 자리는 비어 있고 몇몇 애들만 학교에 나와 수업을 받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다른 애들은 먹고살기 위해 아빠, 엄마를 도와 물건을 팔며 장사도 하고 집에서 어린 동생을 봐주며 하루 종일 집에만 붙어 있기도 합니다.
지금 이들에게는 공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인데 공부를 해서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반면 한국은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와서 공부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학교에 결석하는 사람도 없고 항상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그러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학교를 다니다 보니 나쁜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왕따」라는 것이 있는데 완전히 한 애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대상(상대)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는 전혀 이런 것이 없습니다. 드문드문 어떤 애가 싫거나 그 애가 나쁜 일을 했을 때 놀려 주거나 같이 놀지 않는 것은 있지만, 모두가 그 애를 싫어하게 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내가 『왜 이 애를 왕따 시키냐』고 물어보면 『싸가지가 없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다른 애가 왕따가 되고 다음에는 또 다른 애가 되고…. 왕따라는 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는 학교 다닌 지 다섯 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왕따가 두세 명이 연이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애를 왕따시킨 애는 바로 전에 왕따로 따돌림받던 애입니다. 나는 이럴 때면 애들이 나보다 한 살 아래여서 철이 없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애들한테서 따돌림받는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학교에 나오기 싫고, 누구도 자기를 대상(상대)해 주지 않으니 미쳐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나도 몇 번 마음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배려는 하나도 없이 자기의 생각만 말하니 남한테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북한에서 온 애들한테는 그런 마음의 상처가 더 큽니다. 한국 애들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허나 나는 지금 애들과 잘 지내고 있고 애들도 나한테 잘해 주고 있습니다.
아직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걸 밝히지는 않았지만 눈치가 빠른 애들은 조금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지금 나는 한국 애들이 모두 다니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아빠가 실업자여서 나는 아빠를 도와 집에서 자습을 많이 하리라 마음먹은 것입니다.
『너희들, 학원 가서 공부해』
우리 반 애들 중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있는 애는 나까지 두세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외에 애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주로 속셈학원, 태권도학원, 피아노학원 등입니다. 속셈학원 같은 데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과목을 다시 복습시켜 주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원에서 복습시켜 주니 공부가 더 잘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애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 안 합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설명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장난만 합니다. 아마도 학원에 가면 한 번 더 가르쳐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드문드문 선생님은 설명하시다가 애들이 듣지 않고 너무 떠들자 『너희들, 학원 가서 공부해. 그래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은 공부가 아니고 학원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만이 공부지? 학원 선생님한테 가서 많이 배워』 하고 성을 내셨습니다. 선생님도 얼마나 안타까우셨으면 그렇게 말하셨을까? 애들은 그 말을 듣고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고 계속 웃고 떠들었습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국회는 뭘 하는 곳이냐?』 하고 질문하니 대답하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누구도 대답을 안 하니 『학급장인 네가 한 번 말해 보라』고 나를 가리켰습니다.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텔레비전에서 본 그대로 『국회는 양복 입은 사람들의 결투장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도 웃고 애들도 웃었습니다. 나와 짝꿍인 친구가 『맞어. 두목이 졸개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된 말투로 쌈하는 곳이야』라고 했습니다. 순간 나는 말을 잘못했구나 했는데 선생님은 뜻밖에도 『임철이 정확히 봤어, 국회는 전쟁판이야』고 긍정해 주었습니다.
남한에서 만난 우리들
북한에서 온 아이들의 괴로움
지금 한국에는 나처럼 북한에서 빠져나와 중국을 걸쳐 온 북한 형님·누나·동생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지금 사회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주최한 「한겨레 계절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조선일보에서 후원을 해주어 우리가 공부한다니 고맙습니다. 이 학교는 제가 이번이 두 번째로 갔다온 것입니다. 가보니 전에 여름학교에서 보던 얼굴들은 몇 안 되고 모두 생소하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습니다. 모두 금방 하나원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금방 나왔다는데 인원이 20명 정도 되니 나보다도 전에 온 아이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100명도 넘을 것입니다. 하나원 어느 기수에는 아이들만 해도 20명이나 왔었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도 계속 오고들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북한에서 온 아이들의 걱정, 괴로움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떤 한국 사람들은 원하던 한국으로 왔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들이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배운 지식입니다. 발전된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모르다가 이제야 배우려고 하니,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운 한국 애들한테 뒤쳐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 때문에 학교에 들어가도 자신보다 두세 살 아래인 애들하고 공부해야 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공부하기가 싫습니다.
나는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린애들하고 어울리자니 말도 안 통하고 대상(상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한심하고 괴롭습니다. 학교에선 내가 나이가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키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학교 애들과 다툴 때면 애들은 계속 내 나이를 비웃으며 놀려댑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이라서 괜찮습니다. 더한 것은 이번에 중학교에 올라가는데 한국은 중학교부터 선후배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한 학년만 더 많아도 선배로 존경어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올라가면 중학교 2학년 나이입니다.
그럼 나와 나이가 같은 애들한테도 선배라고 하면서 존경어를 써야 한다니 정말 자존심이 상합니다. 도저히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왜? 무엇이 한국 애들보다 못해서 나이가 같은 애들한테 존경어를 써야 되지? 하고 생각할 때면 정말 억울하고 중학교에 올라가기가 싫습니다. 그러나 나는 만약 지금이라도 중학교 2학년에 붙여 준다면 수준은 많이 떨어지겠지만 몇 달 안으로 따라잡을 자신이 있습니다. 허나 이미 이렇게 정해졌으니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검정고시를 택하는 이유
나이가 어린 동생 같은 애들하고 어울리기가 싫으니 친구 사귀는 일도 힘들고, 서로의 사고방식이 잘 맞지 않으니 힘듭니다. 그래서 모두 학교를 택하지 않고 자신과 수준이 맞는 상태에서 상처도 안 받으며 공부하기 위해 검정고시 같은 것을 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다가도 힘들어서 나오고, 어떤 아이들은 학교 다닌 애들의 경험담을 듣고 아예 검정고시를 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 주시는 선생님들은 모두 학교를 들어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빨리 지식들을 터득하고 한국 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다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미래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른들보다 밝고도 멉니다. 어른들은 모두 우리가 부럽다고들 하십니다. 우리도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무사히 오게 된 것을 복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하루하루가 아니라 내일입니다. 내일을 위해 우리에게는 많은 임무가 있습니다. 첫째로 공부를 잘해야 합니다. 공부를 잘해 빨리 선진국을 배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애들보다 몇 배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노력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국 애들처럼 똑같은 童心의 시절입니다. 한국 애들처럼 게임도 하고 싶고 오락실도 노래방도 다니며 실컷 즐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면 나중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모두 참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한국 애들은 편안하게 방학을 보낼 때 우리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한겨레 계절학교로 나왔습니다. 계절학교에서 우리는 20일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쉬지도 않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여러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대학생 형님, 누나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계속 걱정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의 앞날은 어떠할지? 참으로 걱정이 되고 때로는 사는 것이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북한에서 하던 고생을 생각하며 다시 뉘우치군(곤) 합니다. 우리가 왜 이 한국으로 왔을까요? 그것은 바로 살려고, 잘 살려고 왔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탈락하면 안 됩니다.
친구들
왜 집안에서만 놀까?
나는 사회에 나와서 많은 한국 친구들을 만나보았고 같이 어울려 놀았습니다. 같이 어울린 친구들 중에는 좋은 친구도 많고 나쁜 친구도 많습니다. 특별히 내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알게 된 것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입니다. 처음 학교 들어갈 때에는 많이 두려웠습니다. 정작 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렸습니다.
처음에 애들은 매우 호기심이 있어 했습니다. 전학생이라면 북한과 중국보다도 더 호기심 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한테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어디서 왔는가? 이름은 뭔가? 하고 계속 질문했습니다. 애들과 얘기를 하며 차차 두려움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허물 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애들도 내 말투나 행동에서 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처음에 학교에서 빨리 친구를 사귀려고 친구들의 취미나, 생활, 성격 등을 세심히 관찰하였습니다. 그리고 애들이 무엇을 즐겨하는지, 어떻게 즐기는지도 알아보니 공통적으로 한국 애들은 모두 게임을 즐겨합니다. 집마다 모두 컴퓨터가 있는데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앉아서 게임을 합니다. 부모님들이 엄격히 게임을 금하시고 공부를 위주로 통제당하는 애들은 그렇지 않으나 대부분 부모님들이 게임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안 하십니다. 우리 반에도 45명 중 집에서 부모님 때문에 게임을 못 하는 애들은 5명도 안 됩니다.
어느 날 나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가보니 집에는 부모님들은 안 계시고 친구 혼자만 있었습니다. 어디 가셨냐고 물으니 모두 회사에 가셔서 저녁 늦게 돌아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는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니 잔소리도 없고 참 좋다고 했습니다. 내가 덧붙여 『그럼, 아빠 엄마가 오실 때까지 뭐 하니?』 하고 물으니, 친구는 『뭐 그냥 게임이나 하지, 할 게 없잖아』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 공부는 안 하니?』 하고 물으니 『학원 가잖아』 하고 친구가 대답해 줬습니다. 나는 이 일을 겪고 초등학교 애들은 학원 가는 이외에는 자기 혼자서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들이 집에 붙어서 게임만 하니 애들이 밖에 나와서 놀지를 않습니다.
하루는 너무 심심해서 제일 친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나 심심해서 그러는데 나와서 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왜 나가서 놀아? 추운데 그냥 집에서 놀면 되잖아. 다른 애들한테 전화해 봐』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정말 화가 났고 한심했습니다. 날씨가 별로 춥지도 않은데 왜 나와서 놀기 싫어할까? 아마도 컴퓨터에 중독되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마트에서 있었던 일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주로 밖에서 술래잡기라든가 아니면 축구, 농구 등을 합니다. 밖에서는 체육놀이를 하는 것이 더 즐거운데 하필이면 그 머리 아픈 게임을 또 하자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계속 컴퓨터만 바라보니 눈이 나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도 이제는 게임을 많이 배워서 여기 애들이 하는 게임을 다 할 줄 아는데 게임에 빠지니까 운동도 안 되고 공부도 잘 안 됩니다.
한국에는 안경을 쓰는 애들이 참 많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어릴 때 안경을 쓰지 않습니다. 보통 대학 때부터 안경을 쓰는데 한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쓰는 것입니다. 벌써 이렇게 눈이 나쁘면 커서는 어떻게 될까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 대신 게임 같은 것을 할 때면 여느 때보다 진지하고 집중을 합니다.
하루는 어느 친구의 생일이었습니다. 그 애가 나한테 다가와 내일 자기 생일이니 초대하겠다는 것입니다. 모두 나까지 다섯 명을 초대했습니다. 그 애는 생일을 집에서 보내지 않고 엄마한테서 돈을 받아서 밖에서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 날 그 친구가 돈을 다 대고 PC방에서 게임도 몇 시간씩 하면서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피자를 먹어 보았습니다. 오후에는 돌아다니며 놀이기구도 타고 오락실에서 오락도 했고 마지막으로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불렀습니다.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 친구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 날 나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마음 좋은 그 친구에게 감사했습니다. 생일이라서 응당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쓰며 우리를 즐겁게 해준 그에게 어쨌든 감사했습니다. 한국이란 게 이런 재미도 있구나 하고 생각되고 하여튼 높은 문화수준을 즐기누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우리 친구들은 모두 본래 마음은 곱고 착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돈돈 하는 어른들과 이 사회 영향 때문에 많은 생활에서 애들이 돈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함께 느꼈습니다. 우리 학급의 좀 잘 사는 애들은 용돈이 풍족한 애들과 같이 휩쓸려 놀고 용돈이 변변치 않은 나 같은 애들과는 될수록 놀기를 피합니다.
하루는 우리 반의 어떤 애가 오후에 이마트에 가서 게임도 하고 쇼핑도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아이들이 나서서 그렇게 하자고 하니 그 애는 내 옆의 친구를 보고 『야 넌 빠져, 너는 돈도 없지 않아. 그리고 학급장인 너도』 하며 나도 한 옆으로 밀쳐 놓았습니다.
나는 북한에서 왔으니 없다 치고 옆의 친구는 참 불쌍한 애입니다. 그 애 부모님들은 이혼해서 그 애를 할머니한테 맡기고 모두 어디론가 갔다고 합니다. 나는 서럽기도 해 집에 와서 아빠에게 이 말을 하니 아빠는 아무 말씀 없이 지갑에서 돈 2만원을 꺼내 그 친구를 데리고 이마트에 가서 놀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 애와 같이 이마트에 가니 우릴 떠밀던 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돈 2만원을 보이며 『우리 다 같이 놀자』고 청했습니다. 그러니 그 친구는 아까 잘못했다며 오히려 우리에게 오뎅도 사주었습니다.
나는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고 앞으로 친구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차차 친구들과 더 가까이 친해질 수도 있고 가깝게 마음속에 담아둘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적응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북한에 관심 없는 아이들
드문드문 선생님이 사회 시간에 북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그러면 애들은 무슨 북한에 대해 들을 게 있냐면서 그냥 못살고 굶주린 나라가 아니냐고들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분노가 솟아오릅니다. 선생님은 북한에 대해 흥미가 많으신지 계속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듣는 아이들은 정말 북한이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죽어나가느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정말이라고 하시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북한이 몇 년도부터 식량 사정이 어려웠는지, 어떻게 되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도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그러면 애들은 잘 이해를 못 하고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겠느냐고 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은 거의 믿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좋게 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여 모두 아주 미개한 나라, 원시적인 나라로만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북한에 대해 올바르게 또 공식적으로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반 선생님이 들려 주시는 북한에 대한 좋은 얘기는 교과서에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만 그냥 우리한테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설명을 해주십니다.
물론 북한에서도 남한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발전했다고 하는 한국에서 무엇이 북한의 장점이고 무엇이 단점인지 하는 것을 한마디도 가르치지 않으니 우리 친구들은 후에 커서도 북한을 잘 이해 못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북한에 대해 취미도 없거니와 물어보면 전혀 맞지 않게 아무렇게나 마구 대답해 버립니다.
한번은 내가 친구한테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후진국이고 먹을 게 없잖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럴 때면 나는 더욱더 나의 신분을 떳떳하게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밝혔다가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고 더욱 얕잡아 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국에서는 더 발전한 나라에서 왔다고 하면 높이 보고 후진국에서 왔다고 하면 낮추어 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면 『와』 하고, 영어라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학교에서 북한에 대해서도 조금 교육시켜서 애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애들도 북한에 대해서 이해하고 북한에서 온 우리들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같은 애들이 자라나면 커서도 서로를 미워하며 계속 세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느낀 것만 가지고는 아직 전 한국 친구들을 다 안다고 판단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더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많이 어울리며 느껴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앞으로 많은 한국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한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인정 없는 한국 사람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의 모든 것이 좋아 보였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직접 살아 보니 나쁜 점도 많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던 점도 많았습니다. 좋았던 점은 한국이 매우 발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느 곳을 가도 모두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 가서 내 친구들을 만나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리고 우러러볼 것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나의 신분을 숨기며 그 애들과 마음 놓고 어울리지 못했지만, 지금 가면 애들한테서 부러운 눈빛을 받으며 떳떳하게 어울릴 것 같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한국을 부러워했고 한국 사람들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족들은 너도나도 한국에 와서 돈을 벌어 살고 싶어합니다. 그 한국에 내가 왔으니 이것이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인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직도 우리 집 옆에 몇 명이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몇 번 얼굴만 본 것이 전부입니다. 북한 같으면 서로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얼굴이라도 익히며 지내겠는데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어른들은 시간이 있으면 옆집에 놀러가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재미있게 지냅니다. 그리고 비록 식량사정이 어려워도 맛있는 것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맛보라고 가져오고 또 가져다 주군(곤) 합니다. 그리고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울기도 하고 상의도 합니다. 한국은 이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하려 해도 무뚝뚝하게 가만있습니다. 서로 남남인 것입니다. 이것이 아직 내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이고 의문입니다.
우리 아빠가 친구 분들을 만나는데 나도 몇 번 따라가 보았는데, 만나서는 모두 쌀쌀하게 누런 물 같은 커피만 놓고 신경전을 벌이듯 이야기를 재어가며 나누다 헤어집니다. 여기서 느낀 것은 인사성이 북한보다 훨씬 밝은데 내 생각에는 딱 겉치레를 하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속은 딴 데 있으면서 말로만 안녕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합니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옛날에 사셨던 분이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가면 우리 세대에는 아예 거리도 전장판 같은 느낌이 들까 봐 두렵습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북한에서 왔다고 해서 전화도 오고 하더니 지금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럴 때 이웃과 얘기도 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서로 돈 관계만 맺어지니 서로에게 진실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탈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돈이 없고 가진 것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세상입니다. 나는 드문드문 부모님이랑 어른들이 정말 힘들어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모두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럴 때면 나도 괴롭고 돈이 정말 밉습니다. 그놈의 돈이 없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젠 한국에 왔으니 난 참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생활하여 내가 이루고 싶던 꿈들을 모두 이룰 것입니다. 그러려면 옆에 있으면서 나를 지켜보아 주시는 분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많이 도와 주시고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2년 새해 1월 임철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