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들이 그려 본 나뭇잎
지난 3월30일 토요일 오후 3시, 「미술동네 가까이 가기」(朝鮮日報, 月刊朝鮮 공동주최)라는 교양강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다. EBS의 「우리 미술 바로보기」, KBS의 「문화탐험 오늘」 등의 방송 진행과 베스트셀러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著者로 잘 알려진 韓젬마(32)씨가 강사로 나선 탓일까. 비 오는 토요일 오후임에도 강연회장은 270여 명의 청중으로 가득찼다. 20~30代 후반의 직장여성과 주부들이 대부분이지만, 청바지 차림의 고등학생에서부터 백발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韓씨는 강단에 오르자마자 청중들에게 갖고 있는 팸플릿 여백에 나뭇잎을 연필로 그려보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린 그림과 자신의 그림을 비교해 보라고 하자 청중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중들이 그린 나뭇잎의 모양이 대부분 비슷했기 때문이다. 韓씨는 나뭇잎을 찍은 10여 장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 줬다. 쑥, 솔잎, 단풍 등 종류에 따라서 잎의 모양이 전부 다른 것을 보고 청중들은 무릎을 쳤다. 韓씨는 미술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본래 존재하는 다양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韓씨는 두 시간 동안 이와 같은 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아예 강단에서 내려와 돌아다니면서 청중들과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주최 측에서는 황급히 무선마이크를 준비해야만 했다. 조각 공원 근처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점심시간마다 조각 작품의 제목을 맞추는 내기를 했는데, 늘 「無題(무제)」라고 답하는 사람이 이겼다는 에피소드를 들려 주면서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乖離(괴리)된 미술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청중들은 웃고 즐기면서도 자신들이 갖고 있는 미술에 대한 先入見을 되짚어 보고 있는 듯했다.
『미술은 전시장에 가서 직접 보고 느껴야』
韓씨는 美術感想(미술감상)이란 특별히 정해진 방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느끼면 그만이라고 강조한다. 그림을 보기도 전부터 작가의 성향이나 그림의 주제를 알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理論(이론)의 틀에 갇혀서 정작 그림은 보지 못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의 책 「그림 읽어주는 여자」는 韓씨의 이와 같은 의견을 잘 대변하는 책이다. 韓씨는 이 책이 절대로 미술 이론서가 아님을 강조한다.
『제 책은 그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을 위한 책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오히려 제 책을 보지 않는 것이 낫지요. 그림이란 말만 들어도 「그림은 무슨 그림이야」 하고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잖아요. 바로 그런 대다수를 독자로 겨냥한 책입니다』
실제로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읽어보면 본격적인 그림에 대한 설명은 없다. 미술에 관한 초보적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들춰본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을 만큼 신변잡기적인 에세이들로 가득 차 있다. 드가의 그림을 두고 뜬금없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한 感想을 늘어놓는가 하면, 미로의 그림을 두고는 자신이 음치라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는 그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독자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일부러 그림에 관한 정보는 배제했다고 한다. 다만 사람들이 그녀가 제시한 에피소드를 즐겁게 읽다가 무심코 옆에 나란히 실린 그림을 보고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西洋의 名畵들만 실려 있는 기존의 미술서적과 달리, 韓씨의 책에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실려 있다. 韓씨는 미술이란 전시장에 가서 직접 보고 느껴야만 진짜라고 말한다. 그런데 서양의 명화들은 프랑스의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에 가야만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미술을 더더욱 멀게 느껴지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발이 닿을 수 있는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韓씨는 자신은 절대 美術史家(미술사가)나 큐레이터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에 자신을 「그림 DJ」라고 命名하고 있다. 마치 날씨나 분위기에 따라서 다양한 노래를 틀어 주는 DJ(Disk Jockey:음악을 틀면서 사이사이에 대사를 넣는 해설·진행자)처럼, 평범한 일상생활에 그림을 넌지시 얹는 일이 「그림 DJ」의 일이라는 것이다.
색다른 미술서적을 출간한 그녀를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그림을 모르는 것도 아닌 애가 정작 그림에 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핀잔도 많이 들었지요』
만약 책이 잘 팔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미술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다.
15만 부 이상 판매된 「그림 읽어주는 여자」
1999년에 발간된 韓씨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는 미술서적으로는 異例的으로 15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현재 32쇄까지 인쇄됐다고 한다. 대중에게 그의 미술 서적이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방송으로 다져진 그녀의 지명도가 한몫을 했다. 책의 표지에는 연예인 뺨치는 그의 사진이 전면에 실려 있다. 실제로 그는 2000년에 P&G의 팬틴 샴푸의 CF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다. 천주교의 세례명인 「젬마(Jemma)」라는 본명도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이다.
韓씨는 1995년 지금은 없어진 A&C 케이블 텔레비전의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재미있어 보이고 체질에 맞을 것 같아서」 방송 제의를 수락했다고 한다. 서울 선화예술 중·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同 대학원에서 판화를 공부하는 등 미술가로서 正道를 걸어 온 그녀가 방송활동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말렸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미술전문 MC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송활동을 하게 되면서 韓씨는 작업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美術」이 자신들의 삶과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술로만 꽉찬 生을 살아온 그녀에게 일반인의 미술에 대한 無關心은 충격적이었다. 그림이 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에 속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림이란, 바로 옆에 있어도 아무 관심도 끌 수 없는 대상에 불과했다.
『세상에는 이미 좋은 미술 入門書(입문서)들이 많이 나와 있으며 이 책들이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징검다리의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첫 발을 내디딜 징검돌 하나가 없어서 사람들이 아예 강을 건널 꿈도 꾸지 못하더란 것입니다. 좋은 미술입문서까지 가기 위해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징검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집필과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30일 토요일 오후 3시, 「미술동네 가까이 가기」(朝鮮日報, 月刊朝鮮 공동주최)라는 교양강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다. EBS의 「우리 미술 바로보기」, KBS의 「문화탐험 오늘」 등의 방송 진행과 베스트셀러 「그림 읽어주는 여자」의 著者로 잘 알려진 韓젬마(32)씨가 강사로 나선 탓일까. 비 오는 토요일 오후임에도 강연회장은 270여 명의 청중으로 가득찼다. 20~30代 후반의 직장여성과 주부들이 대부분이지만, 청바지 차림의 고등학생에서부터 백발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韓씨는 강단에 오르자마자 청중들에게 갖고 있는 팸플릿 여백에 나뭇잎을 연필로 그려보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린 그림과 자신의 그림을 비교해 보라고 하자 청중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중들이 그린 나뭇잎의 모양이 대부분 비슷했기 때문이다. 韓씨는 나뭇잎을 찍은 10여 장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 줬다. 쑥, 솔잎, 단풍 등 종류에 따라서 잎의 모양이 전부 다른 것을 보고 청중들은 무릎을 쳤다. 韓씨는 미술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본래 존재하는 다양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韓씨는 두 시간 동안 이와 같은 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아예 강단에서 내려와 돌아다니면서 청중들과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주최 측에서는 황급히 무선마이크를 준비해야만 했다. 조각 공원 근처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점심시간마다 조각 작품의 제목을 맞추는 내기를 했는데, 늘 「無題(무제)」라고 답하는 사람이 이겼다는 에피소드를 들려 주면서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乖離(괴리)된 미술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청중들은 웃고 즐기면서도 자신들이 갖고 있는 미술에 대한 先入見을 되짚어 보고 있는 듯했다.
『미술은 전시장에 가서 직접 보고 느껴야』
韓씨는 美術感想(미술감상)이란 특별히 정해진 방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느끼면 그만이라고 강조한다. 그림을 보기도 전부터 작가의 성향이나 그림의 주제를 알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理論(이론)의 틀에 갇혀서 정작 그림은 보지 못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의 책 「그림 읽어주는 여자」는 韓씨의 이와 같은 의견을 잘 대변하는 책이다. 韓씨는 이 책이 절대로 미술 이론서가 아님을 강조한다.
『제 책은 그림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을 위한 책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오히려 제 책을 보지 않는 것이 낫지요. 그림이란 말만 들어도 「그림은 무슨 그림이야」 하고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잖아요. 바로 그런 대다수를 독자로 겨냥한 책입니다』
실제로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읽어보면 본격적인 그림에 대한 설명은 없다. 미술에 관한 초보적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들춰본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을 만큼 신변잡기적인 에세이들로 가득 차 있다. 드가의 그림을 두고 뜬금없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한 感想을 늘어놓는가 하면, 미로의 그림을 두고는 자신이 음치라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는 그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독자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일부러 그림에 관한 정보는 배제했다고 한다. 다만 사람들이 그녀가 제시한 에피소드를 즐겁게 읽다가 무심코 옆에 나란히 실린 그림을 보고 이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西洋의 名畵들만 실려 있는 기존의 미술서적과 달리, 韓씨의 책에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실려 있다. 韓씨는 미술이란 전시장에 가서 직접 보고 느껴야만 진짜라고 말한다. 그런데 서양의 명화들은 프랑스의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에 가야만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미술을 더더욱 멀게 느껴지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발이 닿을 수 있는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韓씨는 자신은 절대 美術史家(미술사가)나 큐레이터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에 자신을 「그림 DJ」라고 命名하고 있다. 마치 날씨나 분위기에 따라서 다양한 노래를 틀어 주는 DJ(Disk Jockey:음악을 틀면서 사이사이에 대사를 넣는 해설·진행자)처럼, 평범한 일상생활에 그림을 넌지시 얹는 일이 「그림 DJ」의 일이라는 것이다.
색다른 미술서적을 출간한 그녀를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그림을 모르는 것도 아닌 애가 정작 그림에 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는 핀잔도 많이 들었지요』
만약 책이 잘 팔리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미술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다.
15만 부 이상 판매된 「그림 읽어주는 여자」
1999년에 발간된 韓씨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는 미술서적으로는 異例的으로 15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현재 32쇄까지 인쇄됐다고 한다. 대중에게 그의 미술 서적이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방송으로 다져진 그녀의 지명도가 한몫을 했다. 책의 표지에는 연예인 뺨치는 그의 사진이 전면에 실려 있다. 실제로 그는 2000년에 P&G의 팬틴 샴푸의 CF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다. 천주교의 세례명인 「젬마(Jemma)」라는 본명도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이다.
韓씨는 1995년 지금은 없어진 A&C 케이블 텔레비전의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재미있어 보이고 체질에 맞을 것 같아서」 방송 제의를 수락했다고 한다. 서울 선화예술 중·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同 대학원에서 판화를 공부하는 등 미술가로서 正道를 걸어 온 그녀가 방송활동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말렸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미술전문 MC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송활동을 하게 되면서 韓씨는 작업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美術」이 자신들의 삶과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술로만 꽉찬 生을 살아온 그녀에게 일반인의 미술에 대한 無關心은 충격적이었다. 그림이 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에 속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림이란, 바로 옆에 있어도 아무 관심도 끌 수 없는 대상에 불과했다.
『세상에는 이미 좋은 미술 入門書(입문서)들이 많이 나와 있으며 이 책들이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데 징검다리의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첫 발을 내디딜 징검돌 하나가 없어서 사람들이 아예 강을 건널 꿈도 꾸지 못하더란 것입니다. 좋은 미술입문서까지 가기 위해서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징검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집필과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