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시달리는(?) 엔씨소프트社
서울 강남구 삼성동 승광빌딩 「엔씨소프트」 건물은 항상 「엘리베이터 고장」 상태다. 1층 복도에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니 옆 계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씌어 있는 종이가 붙어 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면 100여 평 규모의 고객지원센터가 보인다. 신분증을 목에 건 엔씨소프트 직원들은 한 층을 더 올라가 철문을 한 번 더 통과한 후에야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세계 1위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만든 게임회사. 항상 즐거워야 할 「엔터테인먼트 회사」 직원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철저한 보안 속에서 생활하는 것일까?
이 회사 2층 고객지원센터는 조용한 날이 없다. 게임 이용자들이 리니지 안에서 잃어버린 캐릭터·무기 등을 찾아달라며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원들이 찾아와 리니지를 PC방에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엔씨소프트는 한마디로 리니지 때문에 울고 웃는 회사이다.
「血盟(혈맹)」이라는 뜻의 리니지(Lineage)는 유럽 중세 시대를 무대로 주인공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왕권을 되찾는 내용. 게이머는 기사·요정·마법사(남·녀로 구분) 또는 군주(왕자·공주)의 캐릭터 중 하나를 分身(분신)으로 삼아 괴물이나 다른 이용자와 싸워야 한다.
괴물을 죽이면 칼과 갑옷 같은 전리품을 얻어 경험치를 높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게임 중 캐릭터가 마법의 액체를 마시면 발걸음이 빨라지고, 투명 망토를 쓰면 투명인간이 돼, 괴물이나 상대방 캐릭터를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점.
괴물을 물리치면 돈을 벌어 더 좋은 무기를 구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이용자들이 해킹을 통해 다른 사람의 무기를 훔치거나 실제 돈으로 무기를 거래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한다.
엔씨소프트 고객지원센터를 찾는 사람들도 대부분 게임 속 무기를 잃어버려 화가 난 경우다. 이들은 자신의 무기를 찾아달라며 엔씨소프트 직원들을 상대로 떼를 쓰기도 하고, 무기를 훔쳐간 사람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연락처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객지원센터 정성태 팀장은 『이용자들이 고객지원센터에 직접 찾아와 접수하는 사건이 하루 평균 40여 건에 달한다』며 『이들은 대부분 현실과 게임을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 고객지원센터에서 만난 金모(44)씨는 리니지 속 아이템을 자신의 「재산」이라고 말하며 『내 재산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리니지에 들인 돈이 수백만원이 넘는데, 이게 재산이 아니고 뭐냐』며 반문했다. 이곳에는 장사를 포기하고 인천에서 달려온 30代 여성, 학교도 안 가고 제주도에서 올라온 10代 학생 등 金씨처럼 「재산」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게임 속에서 실제로 물건 사고 팔아
그렇다면 이들은 왜 게임 안과 밖의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까? 리니지 안에 들어가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곳에는 보도블록이 깔린 거리와 다양한 건물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일반적인 컴퓨터 게임에서 行人(행인)들은 게임이 설정해 놓은 「배경」에 불과하지만, 리니지에서 이들은 실제 게임 이용자들이다. 리니지는 수십만 명이 동시에 접속해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에 가면, 게임 속의 화폐 「아데나」를 이용해 마법·무기값을 흥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게임 안에 작은 세상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게임 이용자들은 채팅을 통해 대화도 즐긴다. 「시험 망쳐 짜증난다」, 「마누라랑 싸웠다」 등 채팅창을 통해 인생 상담도 오간다. 하지만 이런 대화 사이로 「반지 55만」, 「세트 250만」 같은 단어가 수시로 뜬다. 게임 안에서 순간 이동이 가능한 반지를 55만원에 팔고, 투구·부츠·갑옷 등 일곱 가지 무기를 묶어 250만원에 판다는 「광고」였다. 마을 한 구석에서는 주소·통장번호를 물으며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모습도 보인다.
리니지에 등장하는 아이템은 칼·창 등 무기와 바나나·팬케이크 등 음식, 다이아몬드·사파이어 같은 보석류를 합쳐 300여 종에 달한다.
이런 아이템은 원래 게임 속 화폐인 「아데나」를 통해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아데나는 싸움에서 이기거나 괴물을 물리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
이 때문에 일부 게임에 빠진 사람들은 아데나를 얻기 위해 실제 현금 거래에 나서고 있다. 리니지 게임의 비공식 홈페이지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게임 아이템을 사고 판다는 의견이 올라오고, 오프라인에는 아데나를 판매하는 전문점도 등장했다.
「헤이샵」이라 부르는 이 가게는 폐업한 PC방을 빌려 아르바이트생 몇 명을 고용, 하루 종일 리니지만 해 아데나를 얻은 후, 이를 게임 이용자들에게 현금을 받고 파는 곳이다.
현실과 게임의 혼돈 상태는 리니지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불리는 攻城戰(공성전)에서 극치를 이룬다. 공성전은 城을 지키고 있는 君主의 부대와 성을 빼앗으려는 군대와의 전투로, 이틀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열린다. 攻城戰에 투입되는 인원은 약 100여 명. 전투를 위한 장비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도 수백만원이 든다. 리니지 안의 집단 동호회인 「혈맹」 회원들은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만나 작전을 짜기도 한다.
성을 빼앗으면 군주는 돈을 벌고, 혈맹 회원들은 군주의 보호 아래 편안히 게임을 할 수 있다. 공성전이 이뤄지는 날이면 전국의 혈맹 회원들이 성 앞에 모이고, 군주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전투를 진행한다. 일부 게이머는 PC방에 모이기도 하고, 군주는 주요 게이머에게 휴대전화로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리니지 이용객 300만명 달해
도대체 리니지의 어떤 점이 게이머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리니지는 원래 만화가 申一淑(신일숙)씨의 同名 순정만화를 기초로 만들었다. 만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듀크 데필)의 죽음 이후 어머니(가드리아 공주)가 변절을 하면서 주인공 데포로쥬는 어린 나이에 왕권을 빼앗긴다. 가드리아와 결혼을 해 왕권을 차지한 켄 라우헬 기사는 그의 심복인 마녀 케레니스와 함께 데포로쥬의 후견인인 혈맹 5人을 차례로 제거한다. 유배길에 오른 뒤 「말하는 섬」에서 힘과 도덕을 얻은 데포로쥬는 다섯 수호기사와 약혼녀인 로엔그린과 힘을 합쳐 왕권 회복을 노린다.
『무엇보다 복잡한 인간사를 게임에 모두 녹였습니다. 단순히 괴물을 죽여 힘을 키운 뒤 왕이 되거나 성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 경제의 요소를 도입했죠. 괴물을 죽여 돈(아데나)을 벌고, 다시 무기나 도구를 사고 이를 이용해 원군을 확보한 뒤 힘을 합쳐 성을 정복해 가는 과정이 인간사와 너무 비슷합니다』
金澤辰(김택진) 사장은 리니지의 인기 비결을 「인간 세상의 축소」에서 찾고 있었다.
또 다른 인기 비결은 리니지의 게임 구조 자체가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게이머들이 싫증을 느낄 쯤이면 리니지에는 전혀 다른 배경에 다른 시나리오가 있는 게임 단계(에피소드)가 추가된다. 올 여름에는 12개의 에피소드를 끝내고, 새로운 게임 「리니지2」의 시범 서비스가 시작된다. 이 게임은 리니지의 150년 前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金澤辰 사장은 『리니지가 중세를 거쳐 고대, 신의 시대 등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매달 2만9700원을 내고 리니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300만명에 달한다. 대구광역시의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리니지의 세계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프리챌 게임동호회 「인조이 더 게임」의 운영자 고훈(27)씨는 『리니지는 기계와 사람이 하는 게임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끼리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리니지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하나의 국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도시, 「리니지 왕국」을 만든 엔씨소프트는 어떤 회사일까? 엔씨소프트는 1997년 기업의 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SI(시스템 통합)업체로 출발했다. 이 회사를 세운 金澤辰 사장은 현대전자 연구원으로 근무할 당시, 국내 최초의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 「아미넷」(現 신비로)을 만든 인물. 엔씨소프트도 처음에는 SK텔레콤의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 「넷츠고」를 개발하는 일을 했다.
엔씨소프트가 게임회사로 변신한 것은 1998년 9월 「리니지」를 서비스하면서부터.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2000년 7월 코스닥에 등록하기 전까지 대우전자·금호그룹·KCC그룹 등에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평범한 벤처기업이었다. 엔씨소프트가 코스닥 시장에서 첫 거래를 시작하던 당시는 코스닥의 거품이 꺼지고, 주가가 폭락하던 시기.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당시로서는 꽤 높은 값인 주당 7만8400원(액면가 500원)에 코스닥에 입성했다. 이후 엔씨소프트는 투자자들 사이에 「황제주」로 불리며 상승 행진을 지속, 올 들어 株價(주가)가 20만원을 훌쩍 넘어 섰다.
金澤辰 사장 2697억원으로 국내 재산 순위 12위
엔씨소프트가 이처럼 주식시장에서 환영받는 것은 탄탄한 실적 덕분이다. 엔씨소프트는 2000년 매출 582억원에 순이익 232억원을 올린 데 이어, 작년에는 1247억원의 매출과 11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2000년에 비해 순이익이 떨어진 것은 작년 5월 세계 최고 게임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 군단을 영입하기 위해 470억원을 일시불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의 지분 31.61%를 갖고 있는 金澤辰 사장은 올해 서른다섯 살에 불과한 젊은이다. 하지만 그는 주식 보유액을 기준으로 2697억원의 재산을 가진 우리나라 열두 번째 부자다.
金사장은 서울大 전자공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컴퓨터공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서울大 컴퓨터연구회에서 활동하며, 1989년에는 이찬진 現 드림위즈 사장과 함께 「아래아 한글」을 개발했다. 한글 타자연습 소프트웨어 「한메타자교사」를 개발한 한메소프트도 그가 창업한 회사였다.
軍 복무를 대신해 그는 병역특례자로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1993년 한글과컴퓨터가 현대전자에 아래아한글 공동 개발을 제안하면서, 金사장은 개발팀장으로 한컴에 파견됐다. 바로 金사장이 「평생의 동지」 宋在京(송재경ㆍ34)씨를 만나게 된 시기였다.
『아마 1997년 12월이었습니다. 그때 송재경씨는 한컴에서 나와 허진호 박사가 운영하던 인터넷 업체 아이네트에서 게임 개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허 박사님은 IMF쇼크 때문에 게임 사업을 중단하기로 한 상태였죠. 허 사장님을 찾아가 송재경씨를 꼭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드렸습니다』
대만에서도 회원 137만명
宋씨는 이미 1994년 한컴을 나온 뒤 1995년 넥슨에서 국내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상태였다. 서울大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순정만화를 좋아해 만화가 김진씨의 「바람의 나라」, 신일숙씨의 「리니지」를 모두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는 현재 엔씨소프트의 미국 자회사인 엔씨인터랙티브 부사장을 맡고 있다.
송재경 부사장을 통해 人材의 중요성을 깨달은 金澤辰 사장은 지난해 세계 게임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스카우트전을 펼쳤다. 게임 「울티마」 시리즈를 개발한 미국의 천재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과 그의 동료들을 470억원(세금 포함)의 현금과 주식을 주며 엔씨소프트로 끌어온 것. 엔씨소프트의 해외 진출을 위해 도박을 건 셈이다.
국내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1990년대 국내 IT분야 최대 히트 상품으로 아래아한글과 리지니를 꼽는다. 1995년까지 맹위를 떨치던 아래아한글은 아직도 널리 이용되기는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에 비해 점유율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이에 반해 리니지는 처음부터 외국 대형 게임 업체들과 경쟁을 벌이면서 2000년대에도 여전히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독설로 유명한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도 『한국産 중에서 「리니지」만큼은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추켜세울 정도다.
리니지는 현재 대만·미국·일본·홍콩에 차례로 진출한 상태. 곧 중국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리니지는 대만에서 회원수가 137만명이고, 동시 접속자수가 13만명에 달할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金澤辰 사장은 『리니지가 피와 의리를 중시하는 화교의 정서에 어필하고 있다』면서 『결국 리니지가 글로벌 상품이 되느냐의 여부는 중국 시장에서 결정날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 건물 5층 金澤辰 사장의 사무실에는 「해외 여행용 가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가방에는 여권·정장·세면도구 같은 비상 출장용품이 담겨 있다. 한 달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는 그는 미국·일본·대만의 해외 사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공항으로 直行(직행)한다. 그는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리니지와 엔씨소프트밖에 없다』며 『지난해는 매출이 1000억원 넘었으니, 올해는 100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승광빌딩 「엔씨소프트」 건물은 항상 「엘리베이터 고장」 상태다. 1층 복도에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니 옆 계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씌어 있는 종이가 붙어 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면 100여 평 규모의 고객지원센터가 보인다. 신분증을 목에 건 엔씨소프트 직원들은 한 층을 더 올라가 철문을 한 번 더 통과한 후에야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세계 1위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만든 게임회사. 항상 즐거워야 할 「엔터테인먼트 회사」 직원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철저한 보안 속에서 생활하는 것일까?
이 회사 2층 고객지원센터는 조용한 날이 없다. 게임 이용자들이 리니지 안에서 잃어버린 캐릭터·무기 등을 찾아달라며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원들이 찾아와 리니지를 PC방에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엔씨소프트는 한마디로 리니지 때문에 울고 웃는 회사이다.
「血盟(혈맹)」이라는 뜻의 리니지(Lineage)는 유럽 중세 시대를 무대로 주인공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왕권을 되찾는 내용. 게이머는 기사·요정·마법사(남·녀로 구분) 또는 군주(왕자·공주)의 캐릭터 중 하나를 分身(분신)으로 삼아 괴물이나 다른 이용자와 싸워야 한다.
괴물을 죽이면 칼과 갑옷 같은 전리품을 얻어 경험치를 높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게임 중 캐릭터가 마법의 액체를 마시면 발걸음이 빨라지고, 투명 망토를 쓰면 투명인간이 돼, 괴물이나 상대방 캐릭터를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점.
괴물을 물리치면 돈을 벌어 더 좋은 무기를 구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이용자들이 해킹을 통해 다른 사람의 무기를 훔치거나 실제 돈으로 무기를 거래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한다.
엔씨소프트 고객지원센터를 찾는 사람들도 대부분 게임 속 무기를 잃어버려 화가 난 경우다. 이들은 자신의 무기를 찾아달라며 엔씨소프트 직원들을 상대로 떼를 쓰기도 하고, 무기를 훔쳐간 사람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연락처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객지원센터 정성태 팀장은 『이용자들이 고객지원센터에 직접 찾아와 접수하는 사건이 하루 평균 40여 건에 달한다』며 『이들은 대부분 현실과 게임을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 고객지원센터에서 만난 金모(44)씨는 리니지 속 아이템을 자신의 「재산」이라고 말하며 『내 재산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는 『리니지에 들인 돈이 수백만원이 넘는데, 이게 재산이 아니고 뭐냐』며 반문했다. 이곳에는 장사를 포기하고 인천에서 달려온 30代 여성, 학교도 안 가고 제주도에서 올라온 10代 학생 등 金씨처럼 「재산」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게임 속에서 실제로 물건 사고 팔아
그렇다면 이들은 왜 게임 안과 밖의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까? 리니지 안에 들어가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곳에는 보도블록이 깔린 거리와 다양한 건물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일반적인 컴퓨터 게임에서 行人(행인)들은 게임이 설정해 놓은 「배경」에 불과하지만, 리니지에서 이들은 실제 게임 이용자들이다. 리니지는 수십만 명이 동시에 접속해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에 가면, 게임 속의 화폐 「아데나」를 이용해 마법·무기값을 흥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게임 안에 작은 세상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게임 이용자들은 채팅을 통해 대화도 즐긴다. 「시험 망쳐 짜증난다」, 「마누라랑 싸웠다」 등 채팅창을 통해 인생 상담도 오간다. 하지만 이런 대화 사이로 「반지 55만」, 「세트 250만」 같은 단어가 수시로 뜬다. 게임 안에서 순간 이동이 가능한 반지를 55만원에 팔고, 투구·부츠·갑옷 등 일곱 가지 무기를 묶어 250만원에 판다는 「광고」였다. 마을 한 구석에서는 주소·통장번호를 물으며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모습도 보인다.
리니지에 등장하는 아이템은 칼·창 등 무기와 바나나·팬케이크 등 음식, 다이아몬드·사파이어 같은 보석류를 합쳐 300여 종에 달한다.
이런 아이템은 원래 게임 속 화폐인 「아데나」를 통해 구입해야 한다. 하지만 아데나는 싸움에서 이기거나 괴물을 물리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
이 때문에 일부 게임에 빠진 사람들은 아데나를 얻기 위해 실제 현금 거래에 나서고 있다. 리니지 게임의 비공식 홈페이지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게임 아이템을 사고 판다는 의견이 올라오고, 오프라인에는 아데나를 판매하는 전문점도 등장했다.
「헤이샵」이라 부르는 이 가게는 폐업한 PC방을 빌려 아르바이트생 몇 명을 고용, 하루 종일 리니지만 해 아데나를 얻은 후, 이를 게임 이용자들에게 현금을 받고 파는 곳이다.
현실과 게임의 혼돈 상태는 리니지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불리는 攻城戰(공성전)에서 극치를 이룬다. 공성전은 城을 지키고 있는 君主의 부대와 성을 빼앗으려는 군대와의 전투로, 이틀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열린다. 攻城戰에 투입되는 인원은 약 100여 명. 전투를 위한 장비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도 수백만원이 든다. 리니지 안의 집단 동호회인 「혈맹」 회원들은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만나 작전을 짜기도 한다.
성을 빼앗으면 군주는 돈을 벌고, 혈맹 회원들은 군주의 보호 아래 편안히 게임을 할 수 있다. 공성전이 이뤄지는 날이면 전국의 혈맹 회원들이 성 앞에 모이고, 군주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전투를 진행한다. 일부 게이머는 PC방에 모이기도 하고, 군주는 주요 게이머에게 휴대전화로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리니지 이용객 300만명 달해
도대체 리니지의 어떤 점이 게이머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리니지는 원래 만화가 申一淑(신일숙)씨의 同名 순정만화를 기초로 만들었다. 만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듀크 데필)의 죽음 이후 어머니(가드리아 공주)가 변절을 하면서 주인공 데포로쥬는 어린 나이에 왕권을 빼앗긴다. 가드리아와 결혼을 해 왕권을 차지한 켄 라우헬 기사는 그의 심복인 마녀 케레니스와 함께 데포로쥬의 후견인인 혈맹 5人을 차례로 제거한다. 유배길에 오른 뒤 「말하는 섬」에서 힘과 도덕을 얻은 데포로쥬는 다섯 수호기사와 약혼녀인 로엔그린과 힘을 합쳐 왕권 회복을 노린다.
『무엇보다 복잡한 인간사를 게임에 모두 녹였습니다. 단순히 괴물을 죽여 힘을 키운 뒤 왕이 되거나 성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 경제의 요소를 도입했죠. 괴물을 죽여 돈(아데나)을 벌고, 다시 무기나 도구를 사고 이를 이용해 원군을 확보한 뒤 힘을 합쳐 성을 정복해 가는 과정이 인간사와 너무 비슷합니다』
金澤辰(김택진) 사장은 리니지의 인기 비결을 「인간 세상의 축소」에서 찾고 있었다.
또 다른 인기 비결은 리니지의 게임 구조 자체가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게이머들이 싫증을 느낄 쯤이면 리니지에는 전혀 다른 배경에 다른 시나리오가 있는 게임 단계(에피소드)가 추가된다. 올 여름에는 12개의 에피소드를 끝내고, 새로운 게임 「리니지2」의 시범 서비스가 시작된다. 이 게임은 리니지의 150년 前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金澤辰 사장은 『리니지가 중세를 거쳐 고대, 신의 시대 등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매달 2만9700원을 내고 리니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300만명에 달한다. 대구광역시의 인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리니지의 세계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 프리챌 게임동호회 「인조이 더 게임」의 운영자 고훈(27)씨는 『리니지는 기계와 사람이 하는 게임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끼리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리니지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하나의 국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도시, 「리니지 왕국」을 만든 엔씨소프트는 어떤 회사일까? 엔씨소프트는 1997년 기업의 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SI(시스템 통합)업체로 출발했다. 이 회사를 세운 金澤辰 사장은 현대전자 연구원으로 근무할 당시, 국내 최초의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 「아미넷」(現 신비로)을 만든 인물. 엔씨소프트도 처음에는 SK텔레콤의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 「넷츠고」를 개발하는 일을 했다.
엔씨소프트가 게임회사로 변신한 것은 1998년 9월 「리니지」를 서비스하면서부터.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2000년 7월 코스닥에 등록하기 전까지 대우전자·금호그룹·KCC그룹 등에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평범한 벤처기업이었다. 엔씨소프트가 코스닥 시장에서 첫 거래를 시작하던 당시는 코스닥의 거품이 꺼지고, 주가가 폭락하던 시기.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당시로서는 꽤 높은 값인 주당 7만8400원(액면가 500원)에 코스닥에 입성했다. 이후 엔씨소프트는 투자자들 사이에 「황제주」로 불리며 상승 행진을 지속, 올 들어 株價(주가)가 20만원을 훌쩍 넘어 섰다.
金澤辰 사장 2697억원으로 국내 재산 순위 12위
엔씨소프트가 이처럼 주식시장에서 환영받는 것은 탄탄한 실적 덕분이다. 엔씨소프트는 2000년 매출 582억원에 순이익 232억원을 올린 데 이어, 작년에는 1247억원의 매출과 11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2000년에 비해 순이익이 떨어진 것은 작년 5월 세계 최고 게임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 군단을 영입하기 위해 470억원을 일시불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의 지분 31.61%를 갖고 있는 金澤辰 사장은 올해 서른다섯 살에 불과한 젊은이다. 하지만 그는 주식 보유액을 기준으로 2697억원의 재산을 가진 우리나라 열두 번째 부자다.
金사장은 서울大 전자공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컴퓨터공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서울大 컴퓨터연구회에서 활동하며, 1989년에는 이찬진 現 드림위즈 사장과 함께 「아래아 한글」을 개발했다. 한글 타자연습 소프트웨어 「한메타자교사」를 개발한 한메소프트도 그가 창업한 회사였다.
軍 복무를 대신해 그는 병역특례자로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1993년 한글과컴퓨터가 현대전자에 아래아한글 공동 개발을 제안하면서, 金사장은 개발팀장으로 한컴에 파견됐다. 바로 金사장이 「평생의 동지」 宋在京(송재경ㆍ34)씨를 만나게 된 시기였다.
『아마 1997년 12월이었습니다. 그때 송재경씨는 한컴에서 나와 허진호 박사가 운영하던 인터넷 업체 아이네트에서 게임 개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허 박사님은 IMF쇼크 때문에 게임 사업을 중단하기로 한 상태였죠. 허 사장님을 찾아가 송재경씨를 꼭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드렸습니다』
대만에서도 회원 137만명
宋씨는 이미 1994년 한컴을 나온 뒤 1995년 넥슨에서 국내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상태였다. 서울大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순정만화를 좋아해 만화가 김진씨의 「바람의 나라」, 신일숙씨의 「리니지」를 모두 게임으로 만들었다. 그는 현재 엔씨소프트의 미국 자회사인 엔씨인터랙티브 부사장을 맡고 있다.
송재경 부사장을 통해 人材의 중요성을 깨달은 金澤辰 사장은 지난해 세계 게임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스카우트전을 펼쳤다. 게임 「울티마」 시리즈를 개발한 미국의 천재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과 그의 동료들을 470억원(세금 포함)의 현금과 주식을 주며 엔씨소프트로 끌어온 것. 엔씨소프트의 해외 진출을 위해 도박을 건 셈이다.
국내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1990년대 국내 IT분야 최대 히트 상품으로 아래아한글과 리지니를 꼽는다. 1995년까지 맹위를 떨치던 아래아한글은 아직도 널리 이용되기는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에 비해 점유율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이에 반해 리니지는 처음부터 외국 대형 게임 업체들과 경쟁을 벌이면서 2000년대에도 여전히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독설로 유명한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도 『한국産 중에서 「리니지」만큼은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고 추켜세울 정도다.
리니지는 현재 대만·미국·일본·홍콩에 차례로 진출한 상태. 곧 중국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리니지는 대만에서 회원수가 137만명이고, 동시 접속자수가 13만명에 달할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金澤辰 사장은 『리니지가 피와 의리를 중시하는 화교의 정서에 어필하고 있다』면서 『결국 리니지가 글로벌 상품이 되느냐의 여부는 중국 시장에서 결정날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 건물 5층 金澤辰 사장의 사무실에는 「해외 여행용 가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가방에는 여권·정장·세면도구 같은 비상 출장용품이 담겨 있다. 한 달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는 그는 미국·일본·대만의 해외 사업장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공항으로 直行(직행)한다. 그는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리니지와 엔씨소프트밖에 없다』며 『지난해는 매출이 1000억원 넘었으니, 올해는 100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