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都 俊 鎬
명지大 북한학과 초빙교수
사진에 얽힌 애환
필자가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1960년대 말은 연탄가스 사고가 참 많았다. 지금은 천연가스가 연료의 大宗이지만 당시는 연탄이어서 신문에 연탄가스 사고 기사가 안 실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빈번했다. 이들 사건은 대개 단순사고였다. 그러나 연탄가스 사고가 발생하면 정말로 성가셨다. 당시의 「불문율」은 사건이 크든 작든 사망자의 사진을 무조건 구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연탄가스 사고 발생 지역은 주로 「산 ○○번지」로 불리는 산동네였다. 한 번지 내에 수백 가구가 살고 있어 이곳에서 죽은 사람의 사진을 구하는 것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물어물어 사고 난 집을 찾아간다고 해서 그 집에 사망자의 사진이 있다는 보장도 없다. 또 있다고 해도 쉽게 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면 단골로 하는 거짓말이 『신문에 사진이 나면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문에 난다고 해서 보상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당시는 사고에 대한 보상 체계도 제대로 안 되어 있던 시절인데도 대개 그런 거짓말에 잘 속아 넘어가 줬다.
사진 구하는 「秘法」의 최후 카드는 훔쳐 튀는 것이다. 불의의 사건이나 사고로 숨진 집에 가서 사진을 구하자면 쉽게 응하는 집이 거의 없다. 온 집안이 슬픔에 젖어 있는데 죽은 분의 사진을 달라는 것은 염치도 없고 경우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특히 한밤중에 사고가 나면 피해 당사자의 집을 찾기도 어렵지만 찾은 후에 사진을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때는 「보상 운운」도 효력이 없다. 그럴 때는 안방에 걸려 있는 액자 사진을 갖고 튀는 수밖에 없다. 사진을 훔쳐 달아날 때 전신을 엄습해 오는 허탈감과 자괴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인숙양 피살 사건은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사건 자체도 굉장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지만 개인적으로는 견습기자 「딱지」가 떨어지고 독립 야근을 하는 첫날 맞닥뜨린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일은 1970년 3월17일. 서쪽 야근 코스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총상을 입고 실려 온 정인숙양의 오빠 정종욱씨를 통해 대체적인 사건 내용을 취재해 회사에 첫 기사를 보내자 야간 데스크는 정양의 사진을 구하라고 지시했다. 한밤중에 합정동 정양 집에 가서 예의 수법을 동원해 책상 서랍 등을 뒤졌으나 바라던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찾아낸 것이라곤 정양이 대구 모여중 1학년 재학중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도저히 신문에 쓸 수 없는 사진이었다. 마지막으로 안방에서 정양의 어머니를 만나 사진이 있을 만한 곳을 알려달라며 설득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우리 애는 얌전해 사진을 찍은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30여 분의 실랑이를 벌이다 거기서는 사진을 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오는 순간 황당한 일을 당했다. 뒤늦게 도착한 상대지 기자가 『형, 사진 구했어요?』라고 물어 왔다. 대학은 물론 고향 후배인 그 기자는 『못 구했다』는 내 말을 믿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며 보여 달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중학 1년 때의 정양 사진을 보여 주자, 그는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타고 온 야근 차를 타고 달아나 버렸다.
화가 난 필자는 그의 차를 쫓으려 했으나 차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은 철늦은 눈이 온데다 정양의 집이 내리막 아래쪽에 위치해 필자가 타고 온 낡은 지프차가 그곳을 올라가다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겸연쩍은지 씩 웃곤 했다. 또 정양 어머니로부터 정양이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다 중퇴했다는 말만 믿고 이를 기사화했다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전태일 분신 사건
1971년 12월 대연각 화재 때다. 초동 진화가 겨우 끝나갈 즈음 시경 캡(Captain의 준말;기동팀장)이 야근을 하고 나온 필자에게 호텔 안으로 들어가 사망자의 사진을 구하라고 지시했다. 불길도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래도 외국인의 경우 여권사진이라도 있을 테니 빨리 들어가라는 독촉에 마지못해 들어가긴 했으나 캄캄하고 천장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호텔 방마다 찾아다니며 수백 명이나 되는 사망자의 사진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포기하고 나왔지만 이것은 사건기자들이 얼마나 사진에 대한 애착이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필자가 사건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정인숙양 사건 말고도 전태일군 분신자살 사건, 광주 난동 사건 등 무수한 사건 속에 살았다.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에서 일어난 전태일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평화시장 한가운데서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하는 그의 모습에서 받은 첫 느낌은 「인간이 저렇게 독할 수 있구나」라는 전율이었다. 중화상을 입고 명동 성모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고, 그 사건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충격을 주었지만 사건 자체는 너무 처참했다.
그 사건은 정부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며 투쟁적인 노동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의 열매는 그가 바라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따먹은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지금 느끼게 된다. 사건 후 대통령 부인이 현장을 찾는 등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평화시장 내 봉제공들의 근로 조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빠의 죽음에 자극받아 노동운동에 헌신했다가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교수가 된 전순옥씨가 얼마 전 朝鮮日報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그런 씁쓸함을 더해 주었다. 그녀는 『오빠가 진정으로 안타까워한 것은 정말 소외된 노동자』라면서 『(지금의 노동운동은)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며 깊은 회의를 나타냈다.
「잃어버린 유언」은 사건기자로서 흐뭇함을 맛본 경우다. 지금은 서울 시내 한복판이 되었지만 당시 필자가 출입하던 성동경찰서는 변두리로 기사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 매일 형사과를 열심히 체크했지만 걸리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형사과에 들렀더니 40代 중반 신사가 장물(도난 당한 물품)로 압수한 낡은 테이프 한 개를 들고 몹시 감격해 했다. 사연을 알아본즉 그 속에는 장인의 유언이 담겨 있었으며 이것을 찾기 위해 석 달 동안 헤맸다는 것이다.
이것을 취재해 사회면 「상자기사」로 썼으며 반응도 좋았다. 기사가 나간 후 우연히 시공관에서 연극을 한 편 보게 되었다. 지금은 그 연극의 제목을 잊어 버렸지만 주연 배우가 대사 중에 그 기사를 그대로 읽으면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몹시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 申 相 鉉
방송위원회 위원
휴지통으로 던져진 大특종
첫 출입처는 경찰서였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정문 앞에서 서성거리기를 10여 분. 총을 멘 보초가 무서워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했다. 소학교를 다닐 때 木浦 역전 파출소에 끌려가 얼굴이 비뚤어지도록 얻어맞은 기억이 살아났기 때문이다(자전거에 점등을 켜지 않았다고…).
하루는 서울 중부경찰서에 들어가려는데 보초가 가로막았다. 출입기자가 파출소에 인사하러 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가시지 않아 결국 가십난에 썼다.
석간이 배달되자마자 시경 산하에 수배령(?)이 내렸다며 경찰이 찾아왔다. 지프를 타고 끌려간 곳은 시경 지하실이 아니고 명동 술집이었다. 거기에는 거구인 시경 국장(최치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첫 마디에 깜짝 놀랐다.
『그 놈(경관)을 파면할까요? 아니면 제주로 유배를 보낼까요? 申기자가 결정하시오』
이 말에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판정패). 그날 편집국장의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첫 출발, 첫 기사부터 실패작이었던 것.
어느 새 경찰기자 사이에는 별명이 붙었다. 좋게 봐서 「황소」. 그러나 「곰」이 대표적이었다. 나는 실패기자, 「물매미」라고 불렀다.
권총강도 사건을 눈감아 주기로 하고, 얻은 정보가 「S여대 여교수의 억울함」이었다. 그 여교수가 전화를 걸어 자세한 자료를 줄 테니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다방에는 어여쁜 여교수 대신 경무대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입사동기(신우식)에게 함께 가자고 한 것은 더 큰 실수가 됐다. 아무 영문도 모르고 따라간 동기도 공갈미수(?) 혐의의 조사대상이 되었다. 지금껏 사과 한번 못한 것이 더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大특종이라는 허풍을 그대로 믿고 장장 20여 장이나 되는 기사를 써냈다. 그러나 데스크는 휴지통에 쑤셔 넣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이건 大특종이긴커녕 기사 미달이었다.
의주로 담배공장에서 매일 밤 담배를 빼냈다는 기사도 경무대 경찰이 나서서 뒷조사를 했다.
몇 년 동안 담 너머로 던져 처분했다는 조직적 범죄였는데 서대문경찰서는 웬일인지 수사를 하지 않았다.
때는 자유당 말기. 경무대 경찰서(서장 郭영주)면 산천초목도 떨던 무렵이다. 「혐의 없음」 결정은 석 달 뒤에야 나왔다.
『담배를 달라고 했다가(공갈) 안 주니까 기사를 썼다』
이런 모략이 먹혔음일까? 당시 비위 공무원들이 즐겨 쓰던 면피 수단인 것을….
무술 고단자에게 얻어맞기도
동료 기자 중에 「시네마스코프」라 불리는 특종기자가 있었다. 은행강도 등 특종을 빼내기도 했지만 기발한 머리를 굴려 혐의 내용을 부풀리기도 했다. 이를 흉내(?)냈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모 장로(고인)가 『발을 씻은 물을 마시면 만병이 통치된다』고 설교했다. 이 말에 「임질·매독까지도 낫는다」고 풀이했던 것. 무술 고단자인 경호원 네댓 명에게 둘러싸여 뭇매를 맞았다. 회사는 이들을 고발하지 않았다. D일보 같은 습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을까.
4·19 때에는 살기 어린 중학생의 돌멩이에 맞을 뻔했고, 이를 피해 시위대 속에 끼었다가 총에 맞을 뻔했다(청와대, 동대문경찰서 앞).
이 때 「한국의 잔다르크」를 취재하는 데에는 23일이나 걸렸고, 원고는 열 번이나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이 처참한 꼴이라니…. 비 내리는 밤거리를 세종로에서 걷기 시작했다. 호주머니에 든 사직서가 흠뻑 젖은 것을 안 것은 동대문경찰서에 이르러서였다(8월17일).
駐日특파원 시절에는 표류 소년 취재를 사흘씩이나 방해받았다. 공보공사의 짓인지, 아니면 합작일 가능성도 있다. 홋카이도까지 날아가서 사흘 만에 허락된 것은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고작이었다. 취재협조 명령을 거부한 J일보 특파원은 즉각 소환됐다. 나도 소환된다고 귀띔해 준 것은 서울에 다녀온 공보공사가 처음이다.
여자 테니스 선수단의 중국 비자가 거부됐을 때에는 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쌍권총의 사나이(당시 대한체육회장 朴종규)가 쏘아 죽이겠다고 찾아다니니 대사관 근처에도 나타나지 말라』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학교 선배인 영사인 것으로 느꼈다. 陸여사 서거의 화풀이로 나를 쏘려고 했을까?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만난 주요한 선생은 『왜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며 기자 지망을 만류했다. 홍종인 선생은 「언론자유」를 되풀이 강조했다.
K신문을 폐간한 자유당 정권은 4·19 혁명을 불렀다. D일보를 탄압하던 朴정권도 쓰러졌다. 全정권도 언론을 독살스레 말살했지만 무너지고 말았다. DJ 정권도 「朝中東」을 적으로 돌려 놓았다. 결론은 뻔했다.
♣ 元 容 ♥
자유기고가
마감 시간에 터진 살인사건
동아일보사 광고탄압에 이어 서울시내 일선 경찰서 기자실 폐쇄 등 朴正熙 유신정권이 언론계에 말기적 횡포를 일삼던 1970년대 중반.
필자는 동아일보사 사회부 소속 올챙이 기자로 서대문 경찰서를 출입했다.
삼복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76년 어느 여름날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해 마포 서부경찰서 등 서대문경찰서 취재라인을 체크했으나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는 상태였다.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라면 한 그릇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고 이틀에 한 번 나오는 회사 취재차를 타고 마포~연세大 코스로 향하는 동안 시경 캡(現 동아닷컴 사장)에게서 카폰으로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당시 국군 수도통합병원 부근 야산에서 열다섯 살 가량의 소녀와 네 살짜리 남자 어린이 피살 제보가 들어왔다는 것. 석간 시절 동아일보의 기사 마감시간은 오전 10시 반이니 취재와 송고를 마감 전에 마치려면 피를 말리는 촉박한 시간대다.
수도통합병원을 지나 산기슭을 예의 주시하며 가다 보니 네거리에 포장마차가 몇 개 있고 검은색 경찰지프가 한 대 서 있어 『바로 여기다』 싶어 뛰어내렸다.
마침 관할 경찰서 형사계 팀도 방금 전 도착해 취재와 수사가 동시에 시작됐다.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20代 후반의 부부는 이틀 전 시골서 상경한 소녀가 찾아와 『배가 고프고 갈 곳도 없다』며 훌쩍대 『우리 아들 돌봐 주며 집이나 보라』며 함께 지내기로 했다는 것.
이들 부부는 전날 오후 아들과 소녀가 포장마차에 다녀간 뒤 한밤중 집에 가보니 둘 다 없어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아침에서야 포장마차와 집 근처 야산을 뒤지다 끔찍한 현장을 발견, 신고했다는 설명.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 네댓 명이 숨져도 사회면 머릿기사가 되던 때라 이 사건도 현장 스케치가 중요했다.
숨진 아들의 얼굴 사진 한 장을 잽싸게 챙긴 뒤 피살 현장으로 달려갔다.
잡목 숲 야산 기슭에 하의가 벗겨진 채 목 졸려 숨진 소녀가 누워 있고 불과 10여m 거리에 피투성이 얼굴의 남자 어린이가 숨져 있다.
막 현장에 도착한 당시 치안본부 감식반 소속 의사는 침착하게 범인의 정액·음모, 피해자의 혈흔 등을 채취하면서 숨진 소녀의 치부를 면밀히 검사했다.
30代 후반의 잘생긴 현장감식 의사는 벌써 파리떼가 덤벼들고 악취마저 풍기는 소녀의 사체를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다룬다. 현장을 지켜보는 짧은 순간이지만 별 생각이 다 스쳐간다.
우리들 기자는 본래 선택한 직업이고 일정 기간만 사건 현장을 뛰면 되니까 처참한 현장들을 감내하지만 의사가 왜 이런 구지레한 일을 할까? 의사란 본래 아픈 사람 고쳐 주는 직업 아닌가?
이런 일이 끝난 뒤 불쾌감을 어떻게 달래지? 혹시 단숨에 소주 병나발? 아니지! 그런 것보다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여자가 여자로 보일까?
『수고하십니다. 아마 사모님이 상당한 미인이실 것 같은데 이런 일 하고 집에 가시면 사모님이 예쁜 여자로 보입니까?』
끝내 호기심을 자제하지 못하고 불쑥 고약한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듯 그는 대답 대신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띄운다. 야릇한 표정에 딱 집어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웃음이다.
범인은 포장마차 부근에서 일하던 20代 석공으로 다음날 검거됐다.
야릇한 재회
몇 개월 뒤 중부경찰서를 출입하는 선배가 지방출장을 떠나 지원근무를 하던 중 성동경찰서에 들렀다. 형사계에 들어서자 이런 곳에 올 것 같지 않은 미모의 30代 숙녀가 눈길을 끈다.
당시는 지역 간 소득격차가 매우 심해 방문객이나 피의자들의 외모나 화장품 냄새로도 소위 4대문 안의 중부경찰서와 문 밖의 성동경찰서, 변두리 동부경찰서가 구별될 때.
형사계 구석자리에 웬 신사가 외면하고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화곡동 현장에서 만난 그 의사가 아닌가! 참으로 야릇한 재회다.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사연인즉 그는 당시 경찰병원 소속으로 월급이 너무 적어 소위 「몰래바이트」로 부수입을 올리려고 동네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해 준 것이 말썽난 것이다.
피해자는 수술 후유증이 있다고 고발하였고, 의사는 절대 수술 잘못이 아니라는 해명으로 선뜻 판단하기 애매한 상태. 의사와 그의 30代 부인은 혹시 불리하게 보도될까 봐 크게 걱정하는 눈치다.
『어떻게 처리할까? 사건현장에서 만난 그 「미묘한 웃음」의 주인공을 이런 일로 다시 만날 줄이야!』
문득 『기자이기 전에 인간이 돼야 한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그냥 다음 경찰서로 가자. 부인이 오늘 밤에는 더욱 예쁜 여자로 보이게 해주자』
♣ 李 圭 錫
국정홍보처 차장
『한국産 호랑이가 나타났다』
誤報(오보)는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다.
1967년 11월1일부터 1997년 10월31일까지 꼭 30년 동안 東亞日報에서 기자,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예닐곱 번 특종상을 수상하고 윗사람들에게 칭찬도 많이 들었지만, 대표적인 기사를 꼽으라면 어쩔 수 없이 「誤報」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1월24일자 東亞日報 社會面은 「韓國産 호랑이가 나타났다」가 머릿기사였다. 남한에선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산 호랑이가 58년 만에 慶北 산 속에서 발견돼 등산객에게 사진까지 찍혔다는 내용이었다. 「半世紀 만의 珍客, 百獸의 王」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제목이 7단, 사진이 9단으로 사회면 절반을 차지한 파격적인 편집의 기사였다.
그러나 나의 희대의 특종은 단 하루 만에 오보로 끝났다. 다른 기자들에게 기사를 뺏길까 봐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나의 경솔함이 「동물원 호랑이」를 「야생의 호랑이」로 둔갑시킨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호랑이」 소리만 나와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날의 오보 사연은 이렇다.
문제의 호랑이 기사를 썼을 당시 나는 12년 간의 사건기자 생활에서 벗어나 보건사회부를 출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기자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야생 동·식물 등 자연·환경 분야가 내 담당이었다.
칙칙한 사건기사만 다루다 새·곤충·민물고기·꽃 등 말 그대로 「우아한 기사」를 생산하면서 한창 재미를 붙여 갔다. 특히 조류학자들을 따라 국제조류학회 등에 참석해 당시에는 한국인이 갈 수 없었던 소련, 중국 등을 다녀와 신문에 「기행문」을 연재하면서 그 분야에서는 「내가 한국 최고 기자」라고 우쭐대는 기분도 괜찮았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도 나의 출입부처와 상관 없이 그런 기사는 당연히 내가 맡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자칭 타칭 「동·식물 전문기자(?)」인 내게 산림청 임업시험장에서 야생동물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K씨에게서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누가 야생 호랑이 사진을 갖고 왔는데, 진짜인 것 같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전화기를 통해서도 취재원의 흥분된 표정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전화를 받고 내심 「호랑이가 아니라 살쾡이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임업시험장에 도착해 제보자를 만난 뒤부터 나도 판단력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K씨는 『한국에서 살아 있는 야생 호랑이가 사진에 찍힌 것은 기적』이라며 흥분된 나의 감정을 더욱 고취시켰다. 길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고급 카메라를 들고 있던 제보자도 『호랑이를 만나는 순간 아찔했으나,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이 떠올라 15m 높이의 바위 위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실감나게 말했다. 제보자는 『東亞日報에만 사진을 줄 테니 보도된 다음 적당히 보답해 달라』고 하지 않는가.
특종을 뺏길세라
그는 『8년 동안 육군장교로 軍 생활을 하며 야생동물 생태에 관심을 가졌으며 친지에게서 「慶北 慶山의 청석봉(해발 675m)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고 등산을 갔던 것인데 뜻밖의 개가를 올려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호랑이 사진을 찍게 된 경위를 메모하고 필름을 받은 뒤 『절대 다른 기자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제보자와 산림청 K씨에게 거듭 다짐하면서도 기사는 현장 확인 후에 쓸 생각이었다.
사회부 동료 기자에게 제보자 朴모씨(당시 33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취재케 하고 창경원으로 달려가 동물원 사육과장에게 「감정」토록 했다.
朴씨에 대한 취재에 나섰던 동료 기자는 『ROTC 출신으로 신촌 梨花女大 입구의 제법 큰 의상실 주인이며 주위에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해 왔다. 사육과장도 『틀림없는 韓國産 호랑이다. 사진의 무늬 등으로 미루어 10세 안팎으로 보이며 털의 색이 선명하고 날렵한 모습이어서 국내 동물원에 들어와 있는 벵골産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했다.
나의 흥분은 극에 달했고 머리엔 온통 「他社 기자들은 몰라야 할 텐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동물원 사육동물은 운동 부족으로 야생동물에 비해 엉덩이가 살이 찌게 마련인데 사진의 호랑이도 엉덩이가 통통하다. 만에 하나 동물원 호랑이 사진일지도 모른다』고 한 경희대 元柄旿 교수(조류학)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청석봉으로 가 호랑이 발자국과 사진을 찍었다는 장소만 확인되면 기사를 써야지」 하고 서두르기만 했다. 창경원 사육과장과 제보자 朴씨, 그리고 사진기자 등과 함께 밤중에 慶山으로 달려갔다.
그때만 해도 誤報를 피할 수 있었다.
확인이 안 되면 쓸 수 없는 기사였는데 혹시 他社 기자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다음날 아침 산림청 K씨에게 再다짐 전화를 한 게 화근이었다.
『산림청은 호랑이가 밀렵꾼에게 희생되지 않도록 慶北道에 특별대책을 세우도록 긴급지시하고 학계 전문가들로 현장조사반을 편성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전문가들에 의해 다른 기자에게 알려질 수 있고 慶北道를 출입하는 大邱 주재 기자들도 알게 될 텐데…」 하는 걱정이 밀려 왔다.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부장에게 『他社에 뺏길 수도 있으니 오늘 신문에 싣자』고 했고 전화로 기사를 불러 나의 대표적 기사인 호랑이 誤報가 1980년 1월24일자 東亞日報(당시 석간)에 게재됐다.
제보자 朴씨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 것은 오후 네다섯 시쯤 『산에서 호랑이의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육과장의 지시로 오전 11시 네 사람이 洋鐵(양철)로 급히 맞춘 외투 같은 것을 둘러쓰고 산을 오르기 시작해 다섯 시간 정도 헤맸으나, 朴씨가 사진을 찍었다는 현장을 찾지 못하고 호랑이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나의 경솔함에 대한 후회가 점점 커졌다.
朴씨가 나에게 「自白」한 것은 청석봉이 완전히 어둠에 잠긴 저녁 6시쯤이었다.
朴씨는 『나도 속은 것 같다』며 자백을 시작했다. 『사실은 호랑이 사진을 내가 찍은 것이 아니고 우리 의상실 여종업원 남편에게서 구입한 것』이라며 『여종업원 남편 崔씨가 청석봉에 올라가 조카의 사진을 찍고 있다가, 「호랑이다!」는 조카의 고함에 놀라 무턱대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허겁지겁 산에서 내려와 사진을 현상해 보니 호랑이가 담긴 두 장의 사진이 나왔다고 해 사정사정해서 구입했고 내가 찍은 것으로 거짓말하게 됐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朴씨의 자백을 듣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호랑이 같은 사회부장의 얼굴이 떠올라
사육과장과 사진기자가 『그럴 수 있느냐』며 朴씨의 멱살을 잡기도 했지만 나는 욕을 할, 움직일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일행을 먼저 내려보낸 뒤 혼자서 산기슭 풀밭에 드러누워 깜깜한 밤 하늘을 쳐다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은 호랑이 같은 사회부장이었다.
위험부담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쓴 기사를 100% 믿고 게재한 부장이 혹시 나의 誤報 때문에 회사에서 문책을 당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사회부 동료들을 어떻게 볼까」, 「他社 기자들이 얼마나 웃을까」 등의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이 청석땅에 호랑이가 있다는 기사는 완전한 誤報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시간 정도 망연자실 드러누워 있다가 산 밑에서 『李선배』라고 외쳐대는 사진기자의 고함에 산을 내려왔다. 뒷날 그 사진기자는 『그때 李선배가 자살이라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힘 없이 하산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신문사에 『내가 속았다』는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사회부 후배는 호랑이 기사가 誤報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부가 「초상집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조간신문에서 문제의 호랑이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사육 중인 것으로 확인, 보도했다는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부끄러움 때문에 신문사엔 못 가고 우선 사회부장 집으로 찾아가 『나의 경솔함 때문에 東亞日報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부장님에게까지 폐를 끼쳤다』며 사표를 냈다.
史上 最長의 정정기사
부장은 『흥분한 자네의 말을 듣고 따라 흥분한 내 책임이 더 크다』며 사표를 받지 않고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편집국장은 『기사에 대한 최종 책임은 편집국장에게 있다. 사표를 내야 한다면 나부터 내야 한다. 그렇지만 사표 제출보다 한국産 호랑이가 발견됐다고 기뻐했을 독자들에게 가짜임을 알리는 것이 더욱 급하다』면서 『오보 경위를 기사로 쓰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東亞日報는 1월26일자 사회면에 5단으로 長文의 정정기사를 보도했다. 史上 最長의 정정기사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정기사가 나간 날 편집국장은 사회부장과 나를 불러 『당신들을 문책한다면 나 또한 회사에 누를 끼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우리 세 사람의 공동책임으로 생각한다. 회사에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자』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세상에 호랑이 기사로 잠시나마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제공한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래서 신문사에선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계속 다니면서 퇴사할 때까지(간부가 된 뒤로도) 동·식물 관련기사를 썼다.
한동안 사회부 동료 기자나 他社 기자들 보기가 부끄러운 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호랑이 오보 기사」를 들먹이는 사람도 거의 없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호랑이」란 말만 들어도 그때가 생각난다. 아무래도 한평생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임에 틀림없다.
끝으로 특종에 눈이 멀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후배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상처를 감싸안아 준 당시 李相河 사회부장과 李雄熙 편집국장, 그리고 동료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李 相 鉉
자유기고가
빨치산 작전
『오줌 눴지? 똥도 눴지?』
나는 그날, 사회부 후배인 경찰출입 K기자에게 원색적으로 그의 대소변 여부부터 먼저 확인, 점검했다.
『그럼, 됐어. 빨리 들어가! 빨리빨리!』
다급히 재촉하며, 나는 K기자의 손에 빈 소주병 한 개를 쥐어 주었다.
은행강도 사건 수사본부 회의실.
30~40분 후면 그날의 사건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수사관들의 철통 같은 비밀 회의가 열린다.
서울 시내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수많은 베테랑 형사들이 사방팔방으로 온종일 범인 검거를 위해 뛰다가 조별로 1차 회의를 한 뒤, 오후 5시면 수사간부 30여 명이 수사본부 회의에 참석, 당일의 수사결과를 수사본부장에게 보고한다. 이어 가장 유력한 용의자들을 놓고 집중적인 토론과 수사 방향을 좁혀가는 자리다. 당시, 내가 취재팀장으로 투입된 朝鮮日報 사건 취재팀은 가장 신속하고 완벽한 수사상황 취재를 위해 수사관 회의 현장에 잠입해 盜聽(도청)할 만한 공간을 여러 가지로 물색하던 끝에,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포착했다. 수사본부 안에 있는 숙직실의 마룻장 밑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낮에는 수사본부 당직 경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회의실이 비어 있었고, 다른 신문·방송 취재기자들도 여기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 기회를 틈타, 우리는 극비작전 시나리오를 짜게 되었고, 바람잡이 역을 맡은 C기자가 『커피나 한잔 하자』며 당직 경찰을 꼬여 구내 매점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높이 40㎝ 정도의 숙직실 마루 밑 합판 문짝을 번개처럼 열고 보니 난데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쓰레기, 빗자루, 물걸레 등 몇 가지 잡다한 청소도구가 비좁은 공간에 가득 쌓여 있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그곳에 침투시킬 것인가? 문제의 잠입기자 조건은 비좁은 공간 때문에 체격이 가장 날씬한 K기자와 B기자가 즉석에서 지명되었다. 두 기자가 교대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빈 소주병은 장시간에 걸친 수사관 회의에 대비, 어둠 속 긴장감으로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소변용 특수장비였던 셈이다. 바람잡이 C기자를 따라간 당직 경찰이 돌아오기 전, 우리는 사방 주위를 경계하면서 K기자를 마룻장 밑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식은땀이 우리를 적셨다.
목표 지점을 향해 정확히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들어 가는 K기자의 표정은 청진동 골목, 해장국집 뚝배기 속의 우거지보다 더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K기자의 구두 뒤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마루 밑 문짝은 소리 없이 닫혔다. 그 모든 상황은 마치 우주선 발사 직전, 우주인의 탑승 절차를 연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1975년, 서울 제일은행 남대문지점에 3인조 권총강도가 침입해 거액을 강탈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큰 만큼, 관할 남대문 경찰서 5층에 즉시 수사본부가 설치됐다. 간부급 수사관 회의인데다 非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 마디로 기자들은 총력 취재를 해야 한다.
기자들도 제각기 수사관 이상으로 뛰어다니며 취재를 하고 있지만 100여 명의 유능한 형사들이 온종일 뛰어다닌 수사 결과를 요약 정리, 용의자를 걸러내는 이 수사관 회의는 빠뜨릴 수 없는 그날의 「수사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수사본부 회의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회의장 유리창 밑에 몰래 쪼그리고 앉거나 문 틈에 귀를 바짝 붙이고 회의가 끝날 때까지 숨어서 이들의 대화에 피를 말리는 것이다.
수사관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릴 때, 그것처럼 기자들을 애타게 하는 것도 없다. 또 수사관 회의가 너무 길어도 수상하고, 너무 빨리 끝나도 이상한 것이다. 수사관 회의를 엿듣는 동안 기자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몰래 법석을 피우기도 한다.
기자를 잠입시켜 놓고도 우리는 시치미를 뚝 떼고 다른 신문·방송 기자들과 함께 수사본부 회의장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그러나 귀에 어떤 소리도 제대로 들려오질 않았다.
수사상황을 독점 중계하다
한 마디로 「믿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면서도 잠시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혹시 마루 밑에서 기침을 하거나 하늘을 향해 누워서 소주병에 소변을 보다가 자칫 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우리의 작전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사관 회의가 끝나면,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일제히 우르르 회의장으로 몰려가 수사 회의 내용을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캐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보다는 마루 밑의 기자를 또 어떻게 극비리에 빠져나오게 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마루 밑 기자가 수사 회의록(?)을 모두 갖고 나올 때, 우리는 잠입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갖가지 방법으로 당직 경찰이 자리를 비우게 한 뒤 「탈출 상황」을 만들어 줘야 했던 것이다.
한번은 내가 K기자를 마루 밑에 몰래 집어넣고 막 허리춤을 펴는 순간, 수사본부 당직 경찰관 한 명이 불쑥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마루 밑에서도 나지막하게 목소리가 들려 왔다.
『李선배, 볼펜 좀 줘요』
그 순간 한 마디로 미칠 지경이었다. 당직 경찰과 함께 들어온 후배도 황당한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소리를 못들은 척하고 당직 경찰관에게, 『당직자가 어딜 갔다 오는 거야?』 하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경찰관이 들어와 있다는 신호였다.
그 순간 마루 밑도 조용해졌다. 후배들이 바람잡이를 하는 사이, 가까스로 틈을 봐 겨우 볼펜을 틈새로 넣어 줬다. 우리들의 잠입 작전은 무사히, 아슬아슬하게 성공을 거둬 나갔다.
수사관 회의가 끝나고 잠입 기자가 우리들의 「엄호」 속에 무사히 빠져나오면 새로운 수사 내용이 속속 입수된다.
날마다 우리 신문에는 용의자에 대한 새로운 뉴스가 펑펑 터져 나갔다. 그리고 악취가 나는 마루 밑에서 고생한 기자에게는 그날 밤, 소주잔이 가득가득 밀리고 넘쳤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수사상황과 너무 똑같은 내용을 연일 보도하자 수사관들은 회의 때마다 『내부에 프락치가 있는 게 아니냐?』, 『혹시 도청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서로 의심하면서 조선일보에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며칠 뒤, 우리 현장 취재팀이 밖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작전 개시를 위해 수사본부를 잠깐 들여다본 순간, 우리는 아연실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본부 간부 요원들이 『어디서 자꾸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서 당직 경찰에게 그 요인을 찾아내도록 특명을 내린 것이다. 서너 명의 경찰들이 수사본부 사무실 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사본부 안 마루 밑, 합판 조각 문을 열어제치는 순간, 경찰들은 기절초풍을 하고 말았다.
『도대체 이거 어느 ×× 짓이야?』
그들은 즉각 수사 솜씨를 발휘, 그 범행(?)이 곧 취재 기자의 소행임을 알아냈다.
결국, 「우리들의 빨치산 작전」은 은행강도 사건 며칠 만에 들통이 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강도 사건의 범인들은 80여일 만에 경기도 문산에서 다시 권총 강도를 모의하다가 일망타진됐다.
그때, 우리의 취재팀 중 마루 밑을 「전담 출입했던」 K기자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姜天錫(강천석) 이사대우 논설실장, B기자는 邊龍植(변용식) 現 편집국장, 그리고 바람잡이파였던 C기자는 현재 月刊朝鮮 趙南俊(조남준) 부국장과 李仲植(이중식) 소년조선일보 편집실장이었다.
♣ 李 雨 鳳
센텀시티(주) 상무이사
남자를 여자로 만든 사건
남자 토막 시체를 여자로 만들어 놨으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사회부장 앞에 다가서는 순간, 一喝(일갈)이 뒷전을 때렸다.
『장가까지 간 녀석이 남자와 여자를 구별 못 해?』
張모 사회부장의 계속된 호된 질책에 편집국 분위기도 압도된 듯 조용해졌다.
『저희 부부는 잠잘 때 불을 반드시 끄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쑥 이 말이 튀어 나왔다. 그 순간 편집국엔 「킥킥」대는 소리에 이어 拍掌大笑(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부장도 어이가 없다는 듯 그만 실소했다. 이 말 한 마디가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켜 더 이상의 문책은 없었다. 위기를 용케도 잘 벗어났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던 1980년 6월25일 오전 11시께.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을 끼고 흐르는 전포천에 토막 시체가 발견됐다는 회사로부터 온 독자 제보를 받고 현장으로 내달았다. 발견된 토막은 배꼽 바로 아래 부분서 허벅지 중간 부분까지였다. 성별 파악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남자요, 여자요?』 옆에 서 있던 형사 반장이 『여자』라고 대답하면서 장갑 낀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중요 부분에 밀어 넣자 쑥 들어갔다. 틀림없는 여자 토막 시체였다.
『지난해 두 건의 여인 토막 살인 사건에 이어 또 여인 토막이라니… 부산이 토막 시체 도시의 오명을 벗긴 글렀군』
이렇게 중얼거리며, 돌아가던 1판용 윤전기를 세우고 기사를 송고했다. 뒤늦게 도착한 상대 지방지 등 다른 기자들에게 「부산에서 또 여인 토막 시체가 발견됐다」는 리드로 시작되는 기사를 보여 준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 후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목 아래 부분서 양팔이 잘려 나간 몸통 부분이 발견됐지만 분명 남자의 가슴이었다. 「남자와 여자를 한꺼번에 잘랐나」, 「그렇지 않으면 이 여인의 발육 정도가 극히 부실해서인가」 시체 부검장을 향하는 차 안에서 온갖 추측과 함께 오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두 토막 시체 절단 부분에 붙어 있던 흙을 깨끗이 씻어내고 접합을 시도하자 꼭 들어 맞았다. 그렇다면 왜 중요 부분에 손가락이 거침없이 들어갔지? 그 대답은 부검이 끝나자마자 나왔다. 살해된 남자의 중요 부분을 예리한 흉기로 도려냈고 시체를 유기한 지 오래돼 상처가 난 이 부분의 부패 정도가 심했기 때문으로 결론났다.
이 전포천 남자 토막 살인 사건은 피살자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발견되는 등 여덟 토막을 찾아냈다. 그러나 지문을 짓이기는 등 범인의 지능적 범행으로 피살자의 신원도 밝혀내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 후 동료나 선배 기자들에게 『한 번씩은 불을 켜 놓고 자라』는 조크를 당하긴 했지만 예단을 쉽게 하지 않는 버릇은 바로 이때 체득한 교훈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토막내고…
20년 가까운 사회부 기자 경력에서 세 번의 오보 가운데 두 번이 토막 살인에 얽힌 것이라면 분명 징크스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전포천 토막 사건 발생보다 꼭 1년 앞선 1979년 6월24일. 부산 동래구 칠산동 한 초등학교 화장실에서 여인의 머리 부분이 발견됐다. 이 사건의 범인은 여인의 애인인 李모씨로 결국 경찰에 체포됐지만 수사과정에서 무고한 공중 목욕탕 보일러공이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해 범인으로 조작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 당시엔 살인 사건이 나면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사회부 사건 기자들이 모두 투입되는 게 상례였다. 칠산동 토막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사단은 살해된 양모 여인이 그의 친구와 둘이서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려서 일어났다. 피살자와 친구의 사진 설명을 바꿔 써서 게재한 것이다. 그날 저녁, 신문 보도대로라면 저승에 가 있을 그 여인이 오빠를 앞세우고 회사를 찾아왔다.
『멀쩡한 내 동생이 토막났다니 말이 되느냐? 책임져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달래고, 사정하고, 용서를 빌어 봤지만 막무가내였다. 내가 문제의 사진을 들고 회사로 와 설명을 달고 출고했으니 책임을 면할 길이 없었다. 처녀인데도 애인에게 살해당했고 그것도 토막까지 났다고 했으니 시집가긴 틀렸다면서 책임론을 들먹거렸다.
그들은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찾아와 윽박질렀다. 만약 장가를 가지 않았다면 결혼하자고 말할 것 같을 정도로 시달림을 당했다. 결국 그들의 집까지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가까스로 용서를 받았지만 그 때 그 며칠이 23년 간의 기자 생활 중 가장 당혹스럽고 고통스런 순간이었다.
♣ 李 元 洪
KBS 사우회 고문
혁명정부는 사회노동당이다
한국일보 사장 張基榮씨가 구속돼 지금의 애오개 근처에 있던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신문사는 벌집을 쑤신 듯 난장판이 되고 사방에서 몰려든 취재기자들로 신문제작마저 어렵게 됐다. 외인부대 같은 정치부는 편집국의 민심에서 떠났다. 별 수 없이 분위기 정비는 사회부 몫이 되어 버렸다. 부장 이하 거의 전원이 근 일주일을 가족과 집을 버렸다. 회사의 숙직실을 집으로 삼았다.
1962년 11월29일의 사건이다.
그 전날 11월28일자 1면 톱기사 「신당, 社會勞動黨(가칭)으로. 영국 노동당 것 대체로 본떠 정강정책 초안도 완료」가 허위기사였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부장이 된 것은 그 몇 달 전이다. 張基榮 사장은 신문의 귀재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자 신문을 지키기 위해 기사 심사부를 만들어 社內 사전검열 같은 제도를 만들었다. 덕분인지 칼날 위에서 춤을 추듯 行間의 꼼수로 부수도 늘리고 사장도 명성을 얻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편집국 혁신을 들고 나오면서 사장이 자신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하는 방을 붙였다. 그 다음날부터 국장석에 앉아 제작을 지휘했다. 중요기사는 모두 張基榮 편집국장의 판정을 받아야 했다.
5·16 군사혁명 이후 가장 먼저 물갈이한 곳이 정치부다. 나도 정치부에서 기사 심사부장을 거쳐 사회부장으로 밀려났다. 정치부는 거의 대부분 다른 신문사에 있던 기자들로 채워졌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얼마 전에 A신문사에서 옮겨온 韓모 기자다.
韓기자가 굉장한 특종이라고 金子煥 정치부장에게 내민 것이 바로 사회노동당 기사였다. 보고를 받은 張基榮 편집국장이 1면 톱이라고 지시했다. 試刷(시쇄)가 나오자 모두 놀랐다. 朴正熙 최고회의 의장의 이념 문제가 시끄러운 이때 그가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겠는가, 의심을 품은 것이 편집국의 대세였다. 신문은 그대로 나가버렸다.
발칵 뒤집힌 곳은 혁명 정부였다. 朴正熙 의장이 직접 한국일보 기사를 허위보도라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은 28일이나 29일 중 한국일보에 대해 행정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했다. 다급해진 張基榮씨는 기사전문을 취소한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 길로 張基榮 편집국장과 洪부국장, 金정치부장, 韓기자 등 네 명이 구속됐다.
신문사는 초상집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신문을 계속해서 만드는 일이었다. 종이도 하루살이, 자금도 하루살이, 張基榮 사장이 없으면 하루도 지탱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일보였다. 당장 광고가 끊어지고 자금이 어려워졌다. 문제는 편집국의 분위기였다. 결속과 투지로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래서 사회부장을 위시해서 사회부의 대부분이 며칠을 신문사에서 밤을 새웠다. 그 덕분에 사회부는 기사도 좋아졌다.
당사자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이 사건의 첫째 문제가 사장이 편집국장을 겸한 것이고, 둘째가 정치부를 외인부대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고, 셋째가 새로 들어온 기자를 과분하게 신뢰한 것이다. 사회부에서도 우수한 법조기자를 영입했지만 그가 한 달 만에 쓴 기사가 「헌병이 강도질」했다는 오보였다. 그 때문에 사회부장인 내가 필동으로 연행되어 며칠을 조사에 시달렸지만 기자를 밝힐 수 없어 고통을 겪었다.
사회부는 자칫하면 오보부가 된다. 대부분 현장 확인을 하기 어려운 간접취재다.
「비 오는 날 맨홀에 어린이가 빠져 죽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만 듣고 대문짝 만한 기사가 되어 버렸다. 알고 보니 엉터리였다. 잡혀간 기자를 간신히 빼냈다. 예비군 삭발문제가 났을 때 부대장의 담화기사로 항의가 들어왔다. 취재기자를 불러 물어보니 자기가 적당히 만든 기사라고 자백했다. 크고 작은 실수가 허다했다. 전등사로 소풍 간 행락객이 깡패 습격을 받았다는 기사도 조사를 해 보니 사진기자가 일부러 사진을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사회노동당 사건은 결과적으로 사회부 기자의 경각심과 애사심으로 작용했다.
구속된 張基榮 사장은 정부의 주장대로 한국일보를 3일 간 자진휴간하기로 결정했다. 하루는 밤중에 수사진의 감시를 받으며 사장실에 들어왔다. 자진휴간 社告를 쓰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장실로 불려갔다. 사장으로부터 다른 신문의 유사한 社告를 구해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밤중에 B신문사를 찾아갔다. 파자마를 입고 점잖게 주무시고 계시는 숙직자를 깨웠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Y社를 찾아갔다. 편집국이 훤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살펴보니 간부와 기자들이 밤을 새워 가며 화투를 치고 있었다. 겨우 참고 社告를 구해 돌아왔다.
張基榮 사장이 직접 작성한 社告가 12월1일자에 게재됐다. 12월2일부터 3일 간 자진휴간한다는 내용이었다. 張사장은 그 뒤 석방되었지만 韓기자와 관련자는 재판에 넘어갔다. 한국일보는 12월7일字로 극동해운 사장인 南宮鍊씨에게로 넘어갔다. 12월7일字 제호 밑의 발행인이 南宮鍊으로 인쇄됐다.
사건 관련자 모두가 사망했다. 입이 없어졌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나의 친구도 사망했다. 지금으로서는 진상을 알 길이 없다. 전적인 허위 기사였든지, 아니면 한번 검토하고 기각된 것을 오보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한국일보를 때려잡기 위해 꾸며낸 모략극에 이용된 것인지, 사회부장은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하루하루.
♣ 李 鍾 九
한나라당 李會昌 大選 경선 후보 공보특별 보좌역
초상집에서 당한 진퇴양난
1970년대는 시간으로 따져 얼마 멀지 않은 과거지만, 세태의 변화로 따지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처럼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때와 지금의 신문기자 양태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때는 신문 지면에서 사회부 의존도가 꽤 컸다. 그래서인지 정치부나 경제부 기자들에 비해 사회부 기자들이 꽤 으스댔다. 자칭 「신문기자의 꽃」이라고들 했다. 아마도 그런 사탕발림에 혹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사건현장을 누볐는지도 모른다.
나는 1973년 초 견습으로 경찰기자를 시작했다. 경찰기자 3진으로 출발했다. 서울 중부 라인의 말단 경찰서 동부를 맡았다. 동부경찰서의 취재영역은 성수동, 광장동 등 지금의 동부경찰서 관할은 물론이고, 한강을 건너 천호동, 마천동, 잠실과 송파까지 뻗쳐 있어 하루에도 한두 차례씩 강을 건너야 했다. 강동지역에서 한강을 건너는 다리는 왕복 2차선의 광진교 하나뿐이었다. 어떤 때는 버스 대신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는 것이 더 편리했다. 뚝섬은 당시 여름철 피서지로도 유명했다. 한강 백사장이 있는 뚝섬 유원지는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였다. 사건기자 초년병 시절 가장 애를 먹은 것이 바로 이 뚝섬에서 일어나는 나룻배 전복사고였다. 나룻배 전복사고는 대체로 희생자가 많았다. 여러 기자가 달라붙어 취재를 해야 하는데, 말진인 내가 할 일은 으레 희생자들의 사진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때는 신문들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사망자 사진을 싣는 것을 꽤 중요시했다.
한번은 나룻배 전복사고의 희생자 집에 갔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다. 텅 빈 집의 담을 넘어 들어가 앨범을 뒤지다가 유족들과 마주쳤던 것이다. 장롱 속에서 앨범을 겨우 찾아내는 순간 유족들의 손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가뜩이나 사람이 죽어 슬픈데 웬 놈이 집안을 뒤지다가 들켰으니, 순순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더구나 앨범을 확보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해야 하고, 진퇴양난의 순간이었다.
『어이, 김형사 여기 좀 말려줘!』
우선 큰 소리부터 쳤다. 『성동서에서 나온 사람인데…』 어쩌구 하면서 앨범 속 사진 중 어느 사진이 죽은 사람이냐고 확인부터 했다. 얼떨결에 유족들은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 재빨리 사진을 빼내고 나서 돌아서려는데 몇 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경찰 신분증을 보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이 탄로나면 죽을 판이다. 순간 밖을 향해 냅다 고함을 질렀다.
『어이, 김형사 여기 좀 말려줘!』
김형사가 밖에 있을 리 없지만, 포위망은 잠시 허술해졌다. 이 틈을 타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달아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성동서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했지 언제 경찰이라고 했느냐. 난 성동서에 출입하는 기자다』
사진에 얽힌 에피소드는 많다. 한번은 마포에서 고무신 공장 폭발사건이 터졌다. 인명피해가 컸다. 역시 신참인 내가 사진 구하는 데 앞장서야 했다. 어느 달동네를 겨우 찾아가 얼굴 사진이 들어 있는 주민등록증을 손에 넣는 순간, 간발의 차로 뒤늦게 도착한 다른 社 기자와 맞닥뜨렸다. 그것이 실수였다. 주민등록증을 잠시 보자는 말에 건네 주었다가 빼앗기고 만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손에 넣은 그 기자는 그대로 달아났다. 졸지에 닭 쫓던 개가 되고 말았다.
기자들 간의 사진 훔치기
이런 유의 편취사건은 사건기자들 사이에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 중 한 가지 사례. C일보의 한 기자가 어찌어찌해서 중요한 사진을 구했는데, 뒤늦게 달려간 H일보의 기자에게 잠시 보여 주었다가 날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C일보 기자는 H일보 편집국까지 따라가 사진을 달라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사진을 날치기 한 기자는 편집국 내 화장실에 꽁꽁 숨어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이름을 대면 다 알 만한 사람들이다.
초년병 시절 「문도석·이종대 사건」을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문도석·이종대는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전형적 갱이었다. 두 사람이 범상치 않은 갱임을 만천하에 알린 사건이 구로공단 카빈 강도사건이다. 공단 내 한 회사의 경리간부가 은행에서 돈을 갖고 나오는 것을 카빈 총으로 위협, 돈을 강탈한 사건이 구로공단 카빈 강도사건이다. 대낮 행인이 분주하게 왕래하는 대로에서 개머리판 없는 카빈총으로 위협, 돈을 강탈한 뒤 유유히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으니, 얼마나 대담무쌍한 범행인가. 당시 기자들은 이런 말을 했다.
『현장에 배경 음악이 깔렸다면 한 편의 갱 영화다』
그때 어느 방송기자의 현장보도가 지금도 생각난다. 생방송으로 현장을 연결하자, 그는 긴박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해 나갔다.
『돈을 강탈한 범인들은 개머리판 없는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개머리판 없는 승용차」라는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방송사나 듣는 청취자나 그 이상한 단어를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나중에서야 알고 배꼽을 잡았다. 우리는 그 기자를 그 뒤 「개머리판 없는 승용차」라고 별명을 붙였다. 지금 그는 지방 언론사의 대표다.
♣ 李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귀빈실로 안내된 쌀 중개인
한 신참기자가 기자의 업무를 「사람 장사를 하는 것」이라며 기자는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성공확률이 높다고 했다. 적어도 공항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싫든 좋든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나는 초년기자 시절인 1971년부터 金浦공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는 하루 평균 5~6편의 국제선 항공편과 국내선은 제주~부산 두 편씩을 운항하고 있었다.
지금의 공항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한가롭고 때로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또 당시에는 이수근 해외탈출 사건이 터졌던 직후라 공항의 모든 업무를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통제하며 강압적인 일들이 많았다.
취재 활동 역시 이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그래서 이때부터 기자 사이에는 金浦공항이 「취재 사각지대」라고 했다.
취재한 필름을 빼앗기거나 「취재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며 때로는 폭행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 공항출입 기자들은 각 매체별로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항을 오가는 사람」란을 갖고 있었다.
국제선 항공편이 도착하면 기자들은 승객들 사이를 뒤지고 다녔다. 하루 평균 10여 명의 승객을 골라내 출입국 사연들을 함께 기사화했다. 지금의 「인물동정」란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어쩌다가 재미있거나 이야깃거리가 많은 승객을 찾아내면 괜히 우쭐해지기도 한다. 金浦공항 통과 여객 중 中國인 여행객이 발견되면, 공산권 국가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다며 1면 톱을 장식할 때였으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여행자를 찾아다니다가 기자들이 단골로 가는 곳이 역시 공항 귀빈실. 귀빈실 이용 명단이 하루 전쯤 미리 나오기도 하지만 귀빈실로 오가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군사 정부 시절 미국 고위 정치인의 입국은 취재 대상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비행기가 도착했고 내외신 기자 수십 명이 귀빈실 내 회견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의전 요원의 안내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미국인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입국 목적이 무엇이냐』, 『작금의 한국 정치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등등.
기자들이 퍼붓는 질문에 어리둥절해 하던 미국인은 「한국에 쌀을 팔기 위해 이곳에 온 쌀 중개상」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의전요원이 사람이 바뀐 줄 모르고 잘못 안내한 것이다. 이 쌀 중개인은 곧바로 의전요원에 이끌려 일반인 여행자 입국수속을 밟아야 했다.
기자를 따돌려라
제5공화국 때 당시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형된 뒤 수감 중 서울대병원에 이송돼 있던 金大中씨의 돌연 출국 소식이 전해졌다.
이른 아침부터 수백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金씨의 출국 모습을 스케치하기 위해 金浦공항에 모여 들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미국行 KAL기 한 편만이 남아 있었다.
金씨의 출국을 총괄하고 있던 안기부 직원들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약삭빠른 기자 몇 명은 미국行 KAL기에 빈자리를 얻어 탑승 수속까지 마쳤다. 다른 기자들은 브리지를 대고 있는 항공기 주변을 에워싸듯 지키고 있었다.
항공기 이륙 10분쯤 전쯤 구급차 한 대가 안기부 직원용 승용차의 안내를 받으며 램프장 안에 들어섰다. 그러나 구급차는 KAL기를 지나쳐 램프장 한 구석에 있는 NWA기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기자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 NWA는 출발시각 한 시간이 지나서 일반 승객을 태운 채 金씨를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金씨의 KAL기 탑승수속은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연막작전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 NWA기에는 일본인 기자 몇 명이 탔다는 소식에 국내 기자들은 절로 한숨을 쉬었다.
1986년 9월14일 오후 3시께 국제선 건물 입구에서 강력한 폭발사고가 터졌다. 전송객 일가족 다섯 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시안게임을 일주일여쯤 앞둔 시점이라 국내외의 반응은 톱뉴스로 장식됐다.
사고발생 한 시간쯤 지나 당시 全斗煥 대통령이 경호원만을 대동하고 사고현장인 金浦공항에 나타났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목격한 全대통령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아시안게임·88올림픽을 앞두고 특히 공항보안에 신경쓰라고 지시한 것이 며칠 전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일요일이었지만 공항에 상주하는 각 기관장들이 불려 나왔고 대통령은 이들을 모두 공항청사 내 회의실로 모이도록 했다. 화가 난 대통령은 즉석에서 참석 상주 기관장을 모두 해임시키기나 좌천토록 했다.
그러나 당시 공항의 중요한 보안책임자였던 치안본부 외사과 金浦분실장인 李八浩(당시 경정·現 경찰청장) 실장은 상주기관장 중 유일하게 이 위기를 빠져나왔다.
이유인즉 李실장도 대통령이 부른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본부에서 상황보고 지시를 받느라 회의장에 2~3분쯤 늦게 도착했는데,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호원은 대통령 주재 회의 도중 신분 고하를 막론한 누구도 중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 그를 살린 것이다.
♣ 李 惠 馥
대한언론인회 명예회장
사제를 갈라놓은 6·25 남침
휴전회담 때(1951년 12월9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일이니 벌써 50여 년 전 옛 이야기가 된다.
그날 적측 천막 밖에서 서성대는 인민군 장교의 낯익은 얼굴에 나는 놀랐다.
인민군 장교 복장인데 계급장은 없고 왼쪽 가슴엔 헌집표지(공작원)를 단 그 사람이 옛 선배(중앙고)이자 스승(중앙고·보성전문 영문학과)인 金東錫(김동석:8·15 이후 문학가동맹 소속으로 문학가협회 金東里와 격렬한 문학논쟁을 폈음. 6·25 이후 서울시 黨 교육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가갔을 때 그는 뒷짐을 진 채로, 나는 외투 속에 손을 찌른 채 대화를 시작했으나 그 내용이 부드러울 순 없었다.
그 순간에도 전선 곳곳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실로 가슴 아픈 만남인 것이 옛 스승은 적측 통역으로, 나는 남측 신문(경향신문)의 종군기자라는 신분을 상호확인했을 뿐, 師弟之間(사제지간)의 옛 정은 되살아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방 남쪽 기자들의 얼굴을 찍는 북쪽 공작원(표면상 카메라맨)과 선전선동 일꾼으로 자기 편 감시역까지 담당한 북쪽 기자들에 둘러싸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본심을 내보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나는 金東錫을 남쪽으로 뚫린 신작로 쪽으로 유도해 걸어가면서 대화를 계속했다. 그때 비로소 金東錫은 李仁秀(이인수·영문학자·고려대) 교수 등의 안부도 물었다.
그러나 李교수는 9·28 수복 이후 利敵罪(인민군 선전비화 英譯, 포로심문 통역, UN군 투항권고 라디오 방송)로 피검, 1950년 11월7일 처형(당시 34세)되었다.
최근에 알려진 바로는 6·25 때(1950년 8월3일) 金東錫은 李仁秀 교수를 인민군 사령부에 인도, 협력하도록 천거한 바 있었기에 그의 생사여부가 궁금했을 것이다.
판문점에서의 어색한 師弟 간의 만남은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어 세로 컷 기사(12월12일, 13일자)로 두 번 경향신문에 나갔는데, 그때 제목이 「스승을 원쑤로」로 표현된 것이 나로서는 찜찜하였으나 당시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 그때 사진도 찍었으나 검열에 통과 안 돼 秘藏(비장)의 사진이 되어 버렸다.
그후 金東錫은 휴전조인 때까지 끝내 판문점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과연 남로당 숙청 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풀」 약속 깬 朴기자의 名文 단독 송고
특무대장 金昌龍(김창룡) 살해범 許泰榮(허태영·당시 36세) 대령과 그의 운전병 李由會(이유회·당시 28세) 일등 중사의 총살형이 집행된 것은 사건 발생 20개월24일 만인 1957년 9월24일 낮 11시. 大邱 서북쪽 칠곡 지천면 무등산 기슭, 집행현장에 입회한 기자는 朴聖煥(박성환·同和통신 편집부국장) 단 한 사람뿐이었다.
朴기자만 현장에 입회한 것은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대표, 현장취재가 끝나면 부근에 대기 중인 軍 출입 기자들에게 「풀」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
그러나 형집행이 끝나자 朴기자는 약속 장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지프차를 몰아 단독취재한 형집행 참관기를 동화통신 본사로 打電(타전)해 버렸다.
눈이 빠지게 「풀」 기사를 기다리던 다른 기자들은 각사 편집국장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다. 『동화통신은 생생한 기사를 보내왔는데 뭣하고 있느냐?』고 재촉했으나 속수무책. 울며 겨자 먹기로 각社는 동화통신을 전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朴기자의 완전특종이었다. 분통이 터진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朴기자를 제명처분, 종군기자로 이름 높았던 朴기자는 그날 이후 軍 출입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그날 朴기자의 기사는 독자가 형장을 지켜보는 듯 실감나는 名文(명문)이었다는 衆評(중평). 金특무대장 암살사건이 몰고 온 갖가지 「에피소드」 중 하나로 언론계의 화제로 남아 있다. 朴기자의 기사 「형장에서 본 許·李 두 사형수의 最後」를 간추려 보자.
〈허태영은 말쑥한 흰 바지 저고리에 고무신. (中略) 얼굴빛은 불그레 좋았으며 태도는 군사재판 때와 다름없이 태연해 보였다.
이유회는 하얀 베로 만든 위 내복에 흰 바지, 맨발에 고무신, 창백한 얼굴, 두 사형수는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집행 장소에서 10m 떨어진 곳에서 유언이 청취되었다. 유언이 끝난 것은 아침 9시50분.
이때 허태영은 「신문 기자가 여기까지 와서 마지막으로 보아 주니 고맙소, 많은 신세를 졌소」 (中略) 그는 이어 「마지막으로 할 말은 백만대군은 조국 통일건설을 위하여 일 잘하기를 부탁하오. 이 소식을 부디 전해 주오」… 이때 허태영의 치아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10시7분 전.
집행관 지시에 따라 3~4분 말을 옮기다가 멈춘 허태영은 이유회를 불렀다. 『유회야!』 이때 이유회는 허태영을 쳐다본다. 『유희야! 애국가를 부르자! 부르고 가자!』 이유회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형수는 우뚝 섰다. 『시작!』 허태영이 소리치자 소리 높이 애국가를 함께 불렀다. 1절이 끝났다. 노래 소리가 산울림으로 되돌아왔다.
(중략) 두 사형수는 말뚝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간격 5m 사이를 두고 세워진 사람 키보다 더 큰 말뚝 앞에 두 사람은 말뚝을 등지고 섰다. (중략) 가을 아침 햇볕은 현장에 포근히 내려 쪼이고 저절로 등에 땀이 스며드는 따뜻한 계곡이었다.
이어 『대한민국 만세!』 하는 소리가 계곡이 터져라고 세 번 울렸다. (중략) 이윽고 나지막한 집행관의 호령에 따라 일제히 「어깨 총!」, 찰나에 열 발의 총성이 「꽝」 하고 터졌다. (하략)〉
♣ 鄭 光 憲
前 조광출판인쇄 사장
4·19의 현장에서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기 전에 호랑이 담배 먹던 제1공화국 시절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을 간략하게 설명해야 독자들의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서울 시내에는 경찰서가 여덟 곳(종로, 중부, 동대문, 서대문, 용산, 마포, 성동, 성북이고, 영등포는 지국담당 별도)이고 대중 교통수단은 노면 전차뿐이었다. 노선은 현재 서울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의 코스였다.
택시란 1년에 한 번 정도, 지금 비행기 타기보다 어려웠고 시내에는 버스란 없었고 지방에 가는 시외버스가 있을 뿐이었다.
朝鮮日報엔 취재용 차량으로 미군용 지프차 한 대뿐이었다. 신문은 하루에 조간과 석간 두 번 발행했다.
1960년 4월18일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대가 안암동에서 서울 시내로 진출했다.
오후 7시경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하던 고려대생들이 귀교하기 시작했다.
경찰차가 선도하여 을지로로 행진했다. 돌연 을지로4가에서 청계천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청계천4가 천일백화점 못미처 골목길에서 수십 명의 괴한이 쇠파이프 쇠사슬을 휘두르며 데모대를 습격했다.
경찰 선도차와 데모대 중간에 위치했던 취재기자단은 다리 위에 쓰러지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넋을 잃고 겁에 질렸다. 나는 사진기자와 말을 맞췄다. 왼쪽 입정동 방면으로 탈출하자고.
한밤중에 번개처럼 플래시가 터졌다. 우리는 잽싸게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으나 내 옆에 있던 민국일보 郭모 기자는 쇠사슬에 머리를 얻어 맞았다. 붕대를 싸맨 郭기자에게는 미안했지만 鄭範泰 기자가 잡은 사건 현장은 한국판 퓰리처상 감. 4·19 조간에 특종 사진은 찬연히 빛났다.
학생들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朝鮮日報 조간의 사진은 생동감 넘치는 현장이었다. 광화문에는 아침부터 헤아릴 수 없이 학생들이 몰려왔다.
강물은 바닷물로 변했고 성난 파도는 광화문에서 노도와 같이 경무대로 밀어 닥쳤다. 인산인해는 무정부 상태로 만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을 빚었다. 취재불능 상태에 빠졌다.
신문사 사업부원들이 「마라톤 대회」 때 착용하던 신문사 완장을 차고 큰 장대에 대형 社旗를 달아 지프차 옆에 매달고 중앙청으로 달렸다. 한눈에 취재차량, 취재기자가 식별되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꽉 막혔던 길을 열어 주며 취재에 협조했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환대를 받았다. 기쁨은 순간일 뿐.
이날 밤 종로4가에서 경찰의 불심검문 도중 피격을 받아 申東澔, 鄭範泰 기자와 셋은 혼비백산했고 마침내 운전자 趙光集씨가 순직했다. 단 한 사람 4·19 의거시 언론계 희생자다.
아찔했던 「가짜 특종」 미수사건
山戰水戰 다 겪은 귀신잡는 수사계 베테랑 형사의 눈에는 젊은 기자의 거드름이 몹시도 사납게 반영됐으리라.
어느 날 아침 수사과 형사실에서 기웃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金모 주임 책상 위에 「수사보고서」가 한 장 있었다. 비중으로 봐서 3단짜리 기사는 충분했다. 몇천만원짜리 탈세사건. 나는 「웬 떡이냐?」 기쁨을 감추며 허겁지겁 취재에 정신이 없었다.
석간 마감 때 귀사하는데 남대문 市경찰국에서 같은 방향인 D지 李모 기자와 동행했다. 『뭐 있어?』 하기에 평소 친근하게 지내던 사이라 「탈세사건」을 풀 해 주었다. 편집국에 돌아와 목을 빼고 기다리던 데스크가 말했다.
『오늘 가물었는데 톱감으로 써』
나는 오랜만에 신나게 톱을 쓰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방금 헤어졌던 李기자였다.
『큰일 날 뻔했어. 탈세사건 가짜래, 鄭기자가 설치고 다니기에 골탕을 먹이려고 했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두개골을 맞은 것처럼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데스크는 성화같이 독촉을 했다. 나는 죄인처럼 「특종 미수」를 구차스럽게 변명했다.
나는 부르르 떨면서 입을 악물었다. 만약 기사화가 됐다면 무슨 망신이며 내 꼴은 어떻게 됐겠는가?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예상 밖에 일찍 찾아왔다. 경찰국장에게 무엇을 확인하려고 갔는데 능글맞고 뻔뻔스러운 金모 주임이 보고차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金경위는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제보가 있다』고 직속 상관에게 고했다. 얼마 후 金경위는 파출소 주임으로 좌천됐고 사과를 받은 후 나는 그의 명예 회복을 도왔다.●
명지大 북한학과 초빙교수
사진에 얽힌 애환
필자가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1960년대 말은 연탄가스 사고가 참 많았다. 지금은 천연가스가 연료의 大宗이지만 당시는 연탄이어서 신문에 연탄가스 사고 기사가 안 실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빈번했다. 이들 사건은 대개 단순사고였다. 그러나 연탄가스 사고가 발생하면 정말로 성가셨다. 당시의 「불문율」은 사건이 크든 작든 사망자의 사진을 무조건 구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연탄가스 사고 발생 지역은 주로 「산 ○○번지」로 불리는 산동네였다. 한 번지 내에 수백 가구가 살고 있어 이곳에서 죽은 사람의 사진을 구하는 것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물어물어 사고 난 집을 찾아간다고 해서 그 집에 사망자의 사진이 있다는 보장도 없다. 또 있다고 해도 쉽게 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면 단골로 하는 거짓말이 『신문에 사진이 나면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문에 난다고 해서 보상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당시는 사고에 대한 보상 체계도 제대로 안 되어 있던 시절인데도 대개 그런 거짓말에 잘 속아 넘어가 줬다.
사진 구하는 「秘法」의 최후 카드는 훔쳐 튀는 것이다. 불의의 사건이나 사고로 숨진 집에 가서 사진을 구하자면 쉽게 응하는 집이 거의 없다. 온 집안이 슬픔에 젖어 있는데 죽은 분의 사진을 달라는 것은 염치도 없고 경우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특히 한밤중에 사고가 나면 피해 당사자의 집을 찾기도 어렵지만 찾은 후에 사진을 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때는 「보상 운운」도 효력이 없다. 그럴 때는 안방에 걸려 있는 액자 사진을 갖고 튀는 수밖에 없다. 사진을 훔쳐 달아날 때 전신을 엄습해 오는 허탈감과 자괴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정인숙양 피살 사건은 필자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사건 자체도 굉장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지만 개인적으로는 견습기자 「딱지」가 떨어지고 독립 야근을 하는 첫날 맞닥뜨린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일은 1970년 3월17일. 서쪽 야근 코스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총상을 입고 실려 온 정인숙양의 오빠 정종욱씨를 통해 대체적인 사건 내용을 취재해 회사에 첫 기사를 보내자 야간 데스크는 정양의 사진을 구하라고 지시했다. 한밤중에 합정동 정양 집에 가서 예의 수법을 동원해 책상 서랍 등을 뒤졌으나 바라던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찾아낸 것이라곤 정양이 대구 모여중 1학년 재학중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도저히 신문에 쓸 수 없는 사진이었다. 마지막으로 안방에서 정양의 어머니를 만나 사진이 있을 만한 곳을 알려달라며 설득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우리 애는 얌전해 사진을 찍은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30여 분의 실랑이를 벌이다 거기서는 사진을 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오는 순간 황당한 일을 당했다. 뒤늦게 도착한 상대지 기자가 『형, 사진 구했어요?』라고 물어 왔다. 대학은 물론 고향 후배인 그 기자는 『못 구했다』는 내 말을 믿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며 보여 달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중학 1년 때의 정양 사진을 보여 주자, 그는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타고 온 야근 차를 타고 달아나 버렸다.
화가 난 필자는 그의 차를 쫓으려 했으나 차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은 철늦은 눈이 온데다 정양의 집이 내리막 아래쪽에 위치해 필자가 타고 온 낡은 지프차가 그곳을 올라가다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겸연쩍은지 씩 웃곤 했다. 또 정양 어머니로부터 정양이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다 중퇴했다는 말만 믿고 이를 기사화했다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전태일 분신 사건
1971년 12월 대연각 화재 때다. 초동 진화가 겨우 끝나갈 즈음 시경 캡(Captain의 준말;기동팀장)이 야근을 하고 나온 필자에게 호텔 안으로 들어가 사망자의 사진을 구하라고 지시했다. 불길도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래도 외국인의 경우 여권사진이라도 있을 테니 빨리 들어가라는 독촉에 마지못해 들어가긴 했으나 캄캄하고 천장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호텔 방마다 찾아다니며 수백 명이나 되는 사망자의 사진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포기하고 나왔지만 이것은 사건기자들이 얼마나 사진에 대한 애착이 강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필자가 사건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정인숙양 사건 말고도 전태일군 분신자살 사건, 광주 난동 사건 등 무수한 사건 속에 살았다.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에서 일어난 전태일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평화시장 한가운데서 근로기준법을 외치며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하는 그의 모습에서 받은 첫 느낌은 「인간이 저렇게 독할 수 있구나」라는 전율이었다. 중화상을 입고 명동 성모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이튿날 새벽에 숨을 거두었고, 그 사건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충격을 주었지만 사건 자체는 너무 처참했다.
그 사건은 정부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며 투쟁적인 노동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의 열매는 그가 바라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따먹은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지금 느끼게 된다. 사건 후 대통령 부인이 현장을 찾는 등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평화시장 내 봉제공들의 근로 조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빠의 죽음에 자극받아 노동운동에 헌신했다가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교수가 된 전순옥씨가 얼마 전 朝鮮日報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그런 씁쓸함을 더해 주었다. 그녀는 『오빠가 진정으로 안타까워한 것은 정말 소외된 노동자』라면서 『(지금의 노동운동은) 가진 자들이 더 갖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며 깊은 회의를 나타냈다.
「잃어버린 유언」은 사건기자로서 흐뭇함을 맛본 경우다. 지금은 서울 시내 한복판이 되었지만 당시 필자가 출입하던 성동경찰서는 변두리로 기사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 매일 형사과를 열심히 체크했지만 걸리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형사과에 들렀더니 40代 중반 신사가 장물(도난 당한 물품)로 압수한 낡은 테이프 한 개를 들고 몹시 감격해 했다. 사연을 알아본즉 그 속에는 장인의 유언이 담겨 있었으며 이것을 찾기 위해 석 달 동안 헤맸다는 것이다.
이것을 취재해 사회면 「상자기사」로 썼으며 반응도 좋았다. 기사가 나간 후 우연히 시공관에서 연극을 한 편 보게 되었다. 지금은 그 연극의 제목을 잊어 버렸지만 주연 배우가 대사 중에 그 기사를 그대로 읽으면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몹시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 申 相 鉉
방송위원회 위원
휴지통으로 던져진 大특종
첫 출입처는 경찰서였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정문 앞에서 서성거리기를 10여 분. 총을 멘 보초가 무서워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했다. 소학교를 다닐 때 木浦 역전 파출소에 끌려가 얼굴이 비뚤어지도록 얻어맞은 기억이 살아났기 때문이다(자전거에 점등을 켜지 않았다고…).
하루는 서울 중부경찰서에 들어가려는데 보초가 가로막았다. 출입기자가 파출소에 인사하러 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가시지 않아 결국 가십난에 썼다.
석간이 배달되자마자 시경 산하에 수배령(?)이 내렸다며 경찰이 찾아왔다. 지프를 타고 끌려간 곳은 시경 지하실이 아니고 명동 술집이었다. 거기에는 거구인 시경 국장(최치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첫 마디에 깜짝 놀랐다.
『그 놈(경관)을 파면할까요? 아니면 제주로 유배를 보낼까요? 申기자가 결정하시오』
이 말에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판정패). 그날 편집국장의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첫 출발, 첫 기사부터 실패작이었던 것.
어느 새 경찰기자 사이에는 별명이 붙었다. 좋게 봐서 「황소」. 그러나 「곰」이 대표적이었다. 나는 실패기자, 「물매미」라고 불렀다.
권총강도 사건을 눈감아 주기로 하고, 얻은 정보가 「S여대 여교수의 억울함」이었다. 그 여교수가 전화를 걸어 자세한 자료를 줄 테니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다방에는 어여쁜 여교수 대신 경무대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입사동기(신우식)에게 함께 가자고 한 것은 더 큰 실수가 됐다. 아무 영문도 모르고 따라간 동기도 공갈미수(?) 혐의의 조사대상이 되었다. 지금껏 사과 한번 못한 것이 더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大특종이라는 허풍을 그대로 믿고 장장 20여 장이나 되는 기사를 써냈다. 그러나 데스크는 휴지통에 쑤셔 넣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이건 大특종이긴커녕 기사 미달이었다.
의주로 담배공장에서 매일 밤 담배를 빼냈다는 기사도 경무대 경찰이 나서서 뒷조사를 했다.
몇 년 동안 담 너머로 던져 처분했다는 조직적 범죄였는데 서대문경찰서는 웬일인지 수사를 하지 않았다.
때는 자유당 말기. 경무대 경찰서(서장 郭영주)면 산천초목도 떨던 무렵이다. 「혐의 없음」 결정은 석 달 뒤에야 나왔다.
『담배를 달라고 했다가(공갈) 안 주니까 기사를 썼다』
이런 모략이 먹혔음일까? 당시 비위 공무원들이 즐겨 쓰던 면피 수단인 것을….
무술 고단자에게 얻어맞기도
동료 기자 중에 「시네마스코프」라 불리는 특종기자가 있었다. 은행강도 등 특종을 빼내기도 했지만 기발한 머리를 굴려 혐의 내용을 부풀리기도 했다. 이를 흉내(?)냈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모 장로(고인)가 『발을 씻은 물을 마시면 만병이 통치된다』고 설교했다. 이 말에 「임질·매독까지도 낫는다」고 풀이했던 것. 무술 고단자인 경호원 네댓 명에게 둘러싸여 뭇매를 맞았다. 회사는 이들을 고발하지 않았다. D일보 같은 습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을까.
4·19 때에는 살기 어린 중학생의 돌멩이에 맞을 뻔했고, 이를 피해 시위대 속에 끼었다가 총에 맞을 뻔했다(청와대, 동대문경찰서 앞).
이 때 「한국의 잔다르크」를 취재하는 데에는 23일이나 걸렸고, 원고는 열 번이나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이 처참한 꼴이라니…. 비 내리는 밤거리를 세종로에서 걷기 시작했다. 호주머니에 든 사직서가 흠뻑 젖은 것을 안 것은 동대문경찰서에 이르러서였다(8월17일).
駐日특파원 시절에는 표류 소년 취재를 사흘씩이나 방해받았다. 공보공사의 짓인지, 아니면 합작일 가능성도 있다. 홋카이도까지 날아가서 사흘 만에 허락된 것은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고작이었다. 취재협조 명령을 거부한 J일보 특파원은 즉각 소환됐다. 나도 소환된다고 귀띔해 준 것은 서울에 다녀온 공보공사가 처음이다.
여자 테니스 선수단의 중국 비자가 거부됐을 때에는 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쌍권총의 사나이(당시 대한체육회장 朴종규)가 쏘아 죽이겠다고 찾아다니니 대사관 근처에도 나타나지 말라』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학교 선배인 영사인 것으로 느꼈다. 陸여사 서거의 화풀이로 나를 쏘려고 했을까?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만난 주요한 선생은 『왜 고난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며 기자 지망을 만류했다. 홍종인 선생은 「언론자유」를 되풀이 강조했다.
K신문을 폐간한 자유당 정권은 4·19 혁명을 불렀다. D일보를 탄압하던 朴정권도 쓰러졌다. 全정권도 언론을 독살스레 말살했지만 무너지고 말았다. DJ 정권도 「朝中東」을 적으로 돌려 놓았다. 결론은 뻔했다.
♣ 元 容 ♥
자유기고가
마감 시간에 터진 살인사건
동아일보사 광고탄압에 이어 서울시내 일선 경찰서 기자실 폐쇄 등 朴正熙 유신정권이 언론계에 말기적 횡포를 일삼던 1970년대 중반.
필자는 동아일보사 사회부 소속 올챙이 기자로 서대문 경찰서를 출입했다.
삼복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76년 어느 여름날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해 마포 서부경찰서 등 서대문경찰서 취재라인을 체크했으나 별다른 뉴스거리가 없는 상태였다.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라면 한 그릇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고 이틀에 한 번 나오는 회사 취재차를 타고 마포~연세大 코스로 향하는 동안 시경 캡(現 동아닷컴 사장)에게서 카폰으로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당시 국군 수도통합병원 부근 야산에서 열다섯 살 가량의 소녀와 네 살짜리 남자 어린이 피살 제보가 들어왔다는 것. 석간 시절 동아일보의 기사 마감시간은 오전 10시 반이니 취재와 송고를 마감 전에 마치려면 피를 말리는 촉박한 시간대다.
수도통합병원을 지나 산기슭을 예의 주시하며 가다 보니 네거리에 포장마차가 몇 개 있고 검은색 경찰지프가 한 대 서 있어 『바로 여기다』 싶어 뛰어내렸다.
마침 관할 경찰서 형사계 팀도 방금 전 도착해 취재와 수사가 동시에 시작됐다.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20代 후반의 부부는 이틀 전 시골서 상경한 소녀가 찾아와 『배가 고프고 갈 곳도 없다』며 훌쩍대 『우리 아들 돌봐 주며 집이나 보라』며 함께 지내기로 했다는 것.
이들 부부는 전날 오후 아들과 소녀가 포장마차에 다녀간 뒤 한밤중 집에 가보니 둘 다 없어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아침에서야 포장마차와 집 근처 야산을 뒤지다 끔찍한 현장을 발견, 신고했다는 설명.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 네댓 명이 숨져도 사회면 머릿기사가 되던 때라 이 사건도 현장 스케치가 중요했다.
숨진 아들의 얼굴 사진 한 장을 잽싸게 챙긴 뒤 피살 현장으로 달려갔다.
잡목 숲 야산 기슭에 하의가 벗겨진 채 목 졸려 숨진 소녀가 누워 있고 불과 10여m 거리에 피투성이 얼굴의 남자 어린이가 숨져 있다.
막 현장에 도착한 당시 치안본부 감식반 소속 의사는 침착하게 범인의 정액·음모, 피해자의 혈흔 등을 채취하면서 숨진 소녀의 치부를 면밀히 검사했다.
30代 후반의 잘생긴 현장감식 의사는 벌써 파리떼가 덤벼들고 악취마저 풍기는 소녀의 사체를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다룬다. 현장을 지켜보는 짧은 순간이지만 별 생각이 다 스쳐간다.
우리들 기자는 본래 선택한 직업이고 일정 기간만 사건 현장을 뛰면 되니까 처참한 현장들을 감내하지만 의사가 왜 이런 구지레한 일을 할까? 의사란 본래 아픈 사람 고쳐 주는 직업 아닌가?
이런 일이 끝난 뒤 불쾌감을 어떻게 달래지? 혹시 단숨에 소주 병나발? 아니지! 그런 것보다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여자가 여자로 보일까?
『수고하십니다. 아마 사모님이 상당한 미인이실 것 같은데 이런 일 하고 집에 가시면 사모님이 예쁜 여자로 보입니까?』
끝내 호기심을 자제하지 못하고 불쑥 고약한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듯 그는 대답 대신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띄운다. 야릇한 표정에 딱 집어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웃음이다.
범인은 포장마차 부근에서 일하던 20代 석공으로 다음날 검거됐다.
야릇한 재회
몇 개월 뒤 중부경찰서를 출입하는 선배가 지방출장을 떠나 지원근무를 하던 중 성동경찰서에 들렀다. 형사계에 들어서자 이런 곳에 올 것 같지 않은 미모의 30代 숙녀가 눈길을 끈다.
당시는 지역 간 소득격차가 매우 심해 방문객이나 피의자들의 외모나 화장품 냄새로도 소위 4대문 안의 중부경찰서와 문 밖의 성동경찰서, 변두리 동부경찰서가 구별될 때.
형사계 구석자리에 웬 신사가 외면하고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화곡동 현장에서 만난 그 의사가 아닌가! 참으로 야릇한 재회다.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사연인즉 그는 당시 경찰병원 소속으로 월급이 너무 적어 소위 「몰래바이트」로 부수입을 올리려고 동네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해 준 것이 말썽난 것이다.
피해자는 수술 후유증이 있다고 고발하였고, 의사는 절대 수술 잘못이 아니라는 해명으로 선뜻 판단하기 애매한 상태. 의사와 그의 30代 부인은 혹시 불리하게 보도될까 봐 크게 걱정하는 눈치다.
『어떻게 처리할까? 사건현장에서 만난 그 「미묘한 웃음」의 주인공을 이런 일로 다시 만날 줄이야!』
문득 『기자이기 전에 인간이 돼야 한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그냥 다음 경찰서로 가자. 부인이 오늘 밤에는 더욱 예쁜 여자로 보이게 해주자』
♣ 李 圭 錫
국정홍보처 차장
『한국産 호랑이가 나타났다』
誤報(오보)는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다.
1967년 11월1일부터 1997년 10월31일까지 꼭 30년 동안 東亞日報에서 기자,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예닐곱 번 특종상을 수상하고 윗사람들에게 칭찬도 많이 들었지만, 대표적인 기사를 꼽으라면 어쩔 수 없이 「誤報」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1월24일자 東亞日報 社會面은 「韓國産 호랑이가 나타났다」가 머릿기사였다. 남한에선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산 호랑이가 58년 만에 慶北 산 속에서 발견돼 등산객에게 사진까지 찍혔다는 내용이었다. 「半世紀 만의 珍客, 百獸의 王」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제목이 7단, 사진이 9단으로 사회면 절반을 차지한 파격적인 편집의 기사였다.
그러나 나의 희대의 특종은 단 하루 만에 오보로 끝났다. 다른 기자들에게 기사를 뺏길까 봐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나의 경솔함이 「동물원 호랑이」를 「야생의 호랑이」로 둔갑시킨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호랑이」 소리만 나와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날의 오보 사연은 이렇다.
문제의 호랑이 기사를 썼을 당시 나는 12년 간의 사건기자 생활에서 벗어나 보건사회부를 출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기자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야생 동·식물 등 자연·환경 분야가 내 담당이었다.
칙칙한 사건기사만 다루다 새·곤충·민물고기·꽃 등 말 그대로 「우아한 기사」를 생산하면서 한창 재미를 붙여 갔다. 특히 조류학자들을 따라 국제조류학회 등에 참석해 당시에는 한국인이 갈 수 없었던 소련, 중국 등을 다녀와 신문에 「기행문」을 연재하면서 그 분야에서는 「내가 한국 최고 기자」라고 우쭐대는 기분도 괜찮았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도 나의 출입부처와 상관 없이 그런 기사는 당연히 내가 맡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자칭 타칭 「동·식물 전문기자(?)」인 내게 산림청 임업시험장에서 야생동물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K씨에게서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누가 야생 호랑이 사진을 갖고 왔는데, 진짜인 것 같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전화기를 통해서도 취재원의 흥분된 표정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전화를 받고 내심 「호랑이가 아니라 살쾡이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임업시험장에 도착해 제보자를 만난 뒤부터 나도 판단력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K씨는 『한국에서 살아 있는 야생 호랑이가 사진에 찍힌 것은 기적』이라며 흥분된 나의 감정을 더욱 고취시켰다. 길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고급 카메라를 들고 있던 제보자도 『호랑이를 만나는 순간 아찔했으나,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이 떠올라 15m 높이의 바위 위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실감나게 말했다. 제보자는 『東亞日報에만 사진을 줄 테니 보도된 다음 적당히 보답해 달라』고 하지 않는가.
특종을 뺏길세라
그는 『8년 동안 육군장교로 軍 생활을 하며 야생동물 생태에 관심을 가졌으며 친지에게서 「慶北 慶山의 청석봉(해발 675m)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고 등산을 갔던 것인데 뜻밖의 개가를 올려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호랑이 사진을 찍게 된 경위를 메모하고 필름을 받은 뒤 『절대 다른 기자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제보자와 산림청 K씨에게 거듭 다짐하면서도 기사는 현장 확인 후에 쓸 생각이었다.
사회부 동료 기자에게 제보자 朴모씨(당시 33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취재케 하고 창경원으로 달려가 동물원 사육과장에게 「감정」토록 했다.
朴씨에 대한 취재에 나섰던 동료 기자는 『ROTC 출신으로 신촌 梨花女大 입구의 제법 큰 의상실 주인이며 주위에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전해 왔다. 사육과장도 『틀림없는 韓國産 호랑이다. 사진의 무늬 등으로 미루어 10세 안팎으로 보이며 털의 색이 선명하고 날렵한 모습이어서 국내 동물원에 들어와 있는 벵골産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했다.
나의 흥분은 극에 달했고 머리엔 온통 「他社 기자들은 몰라야 할 텐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동물원 사육동물은 운동 부족으로 야생동물에 비해 엉덩이가 살이 찌게 마련인데 사진의 호랑이도 엉덩이가 통통하다. 만에 하나 동물원 호랑이 사진일지도 모른다』고 한 경희대 元柄旿 교수(조류학)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청석봉으로 가 호랑이 발자국과 사진을 찍었다는 장소만 확인되면 기사를 써야지」 하고 서두르기만 했다. 창경원 사육과장과 제보자 朴씨, 그리고 사진기자 등과 함께 밤중에 慶山으로 달려갔다.
그때만 해도 誤報를 피할 수 있었다.
확인이 안 되면 쓸 수 없는 기사였는데 혹시 他社 기자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다음날 아침 산림청 K씨에게 再다짐 전화를 한 게 화근이었다.
『산림청은 호랑이가 밀렵꾼에게 희생되지 않도록 慶北道에 특별대책을 세우도록 긴급지시하고 학계 전문가들로 현장조사반을 편성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전문가들에 의해 다른 기자에게 알려질 수 있고 慶北道를 출입하는 大邱 주재 기자들도 알게 될 텐데…」 하는 걱정이 밀려 왔다.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부장에게 『他社에 뺏길 수도 있으니 오늘 신문에 싣자』고 했고 전화로 기사를 불러 나의 대표적 기사인 호랑이 誤報가 1980년 1월24일자 東亞日報(당시 석간)에 게재됐다.
제보자 朴씨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 것은 오후 네다섯 시쯤 『산에서 호랑이의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육과장의 지시로 오전 11시 네 사람이 洋鐵(양철)로 급히 맞춘 외투 같은 것을 둘러쓰고 산을 오르기 시작해 다섯 시간 정도 헤맸으나, 朴씨가 사진을 찍었다는 현장을 찾지 못하고 호랑이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나의 경솔함에 대한 후회가 점점 커졌다.
朴씨가 나에게 「自白」한 것은 청석봉이 완전히 어둠에 잠긴 저녁 6시쯤이었다.
朴씨는 『나도 속은 것 같다』며 자백을 시작했다. 『사실은 호랑이 사진을 내가 찍은 것이 아니고 우리 의상실 여종업원 남편에게서 구입한 것』이라며 『여종업원 남편 崔씨가 청석봉에 올라가 조카의 사진을 찍고 있다가, 「호랑이다!」는 조카의 고함에 놀라 무턱대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허겁지겁 산에서 내려와 사진을 현상해 보니 호랑이가 담긴 두 장의 사진이 나왔다고 해 사정사정해서 구입했고 내가 찍은 것으로 거짓말하게 됐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朴씨의 자백을 듣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호랑이 같은 사회부장의 얼굴이 떠올라
사육과장과 사진기자가 『그럴 수 있느냐』며 朴씨의 멱살을 잡기도 했지만 나는 욕을 할, 움직일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일행을 먼저 내려보낸 뒤 혼자서 산기슭 풀밭에 드러누워 깜깜한 밤 하늘을 쳐다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은 호랑이 같은 사회부장이었다.
위험부담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쓴 기사를 100% 믿고 게재한 부장이 혹시 나의 誤報 때문에 회사에서 문책을 당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사회부 동료들을 어떻게 볼까」, 「他社 기자들이 얼마나 웃을까」 등의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 이 청석땅에 호랑이가 있다는 기사는 완전한 誤報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두 시간 정도 망연자실 드러누워 있다가 산 밑에서 『李선배』라고 외쳐대는 사진기자의 고함에 산을 내려왔다. 뒷날 그 사진기자는 『그때 李선배가 자살이라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힘 없이 하산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신문사에 『내가 속았다』는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사회부 후배는 호랑이 기사가 誤報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부가 「초상집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조간신문에서 문제의 호랑이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사육 중인 것으로 확인, 보도했다는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부끄러움 때문에 신문사엔 못 가고 우선 사회부장 집으로 찾아가 『나의 경솔함 때문에 東亞日報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부장님에게까지 폐를 끼쳤다』며 사표를 냈다.
史上 最長의 정정기사
부장은 『흥분한 자네의 말을 듣고 따라 흥분한 내 책임이 더 크다』며 사표를 받지 않고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편집국장은 『기사에 대한 최종 책임은 편집국장에게 있다. 사표를 내야 한다면 나부터 내야 한다. 그렇지만 사표 제출보다 한국産 호랑이가 발견됐다고 기뻐했을 독자들에게 가짜임을 알리는 것이 더욱 급하다』면서 『오보 경위를 기사로 쓰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東亞日報는 1월26일자 사회면에 5단으로 長文의 정정기사를 보도했다. 史上 最長의 정정기사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정기사가 나간 날 편집국장은 사회부장과 나를 불러 『당신들을 문책한다면 나 또한 회사에 누를 끼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우리 세 사람의 공동책임으로 생각한다. 회사에 진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자』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재미없는 세상에 호랑이 기사로 잠시나마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제공한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래서 신문사에선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계속 다니면서 퇴사할 때까지(간부가 된 뒤로도) 동·식물 관련기사를 썼다.
한동안 사회부 동료 기자나 他社 기자들 보기가 부끄러운 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호랑이 오보 기사」를 들먹이는 사람도 거의 없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호랑이」란 말만 들어도 그때가 생각난다. 아무래도 한평생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임에 틀림없다.
끝으로 특종에 눈이 멀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후배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상처를 감싸안아 준 당시 李相河 사회부장과 李雄熙 편집국장, 그리고 동료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李 相 鉉
자유기고가
빨치산 작전
『오줌 눴지? 똥도 눴지?』
나는 그날, 사회부 후배인 경찰출입 K기자에게 원색적으로 그의 대소변 여부부터 먼저 확인, 점검했다.
『그럼, 됐어. 빨리 들어가! 빨리빨리!』
다급히 재촉하며, 나는 K기자의 손에 빈 소주병 한 개를 쥐어 주었다.
은행강도 사건 수사본부 회의실.
30~40분 후면 그날의 사건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수사관들의 철통 같은 비밀 회의가 열린다.
서울 시내 각 경찰서에서 차출된 수많은 베테랑 형사들이 사방팔방으로 온종일 범인 검거를 위해 뛰다가 조별로 1차 회의를 한 뒤, 오후 5시면 수사간부 30여 명이 수사본부 회의에 참석, 당일의 수사결과를 수사본부장에게 보고한다. 이어 가장 유력한 용의자들을 놓고 집중적인 토론과 수사 방향을 좁혀가는 자리다. 당시, 내가 취재팀장으로 투입된 朝鮮日報 사건 취재팀은 가장 신속하고 완벽한 수사상황 취재를 위해 수사관 회의 현장에 잠입해 盜聽(도청)할 만한 공간을 여러 가지로 물색하던 끝에,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포착했다. 수사본부 안에 있는 숙직실의 마룻장 밑을 생각해 낸 것이다.
낮에는 수사본부 당직 경찰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회의실이 비어 있었고, 다른 신문·방송 취재기자들도 여기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 기회를 틈타, 우리는 극비작전 시나리오를 짜게 되었고, 바람잡이 역을 맡은 C기자가 『커피나 한잔 하자』며 당직 경찰을 꼬여 구내 매점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높이 40㎝ 정도의 숙직실 마루 밑 합판 문짝을 번개처럼 열고 보니 난데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쓰레기, 빗자루, 물걸레 등 몇 가지 잡다한 청소도구가 비좁은 공간에 가득 쌓여 있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그곳에 침투시킬 것인가? 문제의 잠입기자 조건은 비좁은 공간 때문에 체격이 가장 날씬한 K기자와 B기자가 즉석에서 지명되었다. 두 기자가 교대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빈 소주병은 장시간에 걸친 수사관 회의에 대비, 어둠 속 긴장감으로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소변용 특수장비였던 셈이다. 바람잡이 C기자를 따라간 당직 경찰이 돌아오기 전, 우리는 사방 주위를 경계하면서 K기자를 마룻장 밑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식은땀이 우리를 적셨다.
목표 지점을 향해 정확히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들어 가는 K기자의 표정은 청진동 골목, 해장국집 뚝배기 속의 우거지보다 더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K기자의 구두 뒤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마루 밑 문짝은 소리 없이 닫혔다. 그 모든 상황은 마치 우주선 발사 직전, 우주인의 탑승 절차를 연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1975년, 서울 제일은행 남대문지점에 3인조 권총강도가 침입해 거액을 강탈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큰 만큼, 관할 남대문 경찰서 5층에 즉시 수사본부가 설치됐다. 간부급 수사관 회의인데다 非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 마디로 기자들은 총력 취재를 해야 한다.
기자들도 제각기 수사관 이상으로 뛰어다니며 취재를 하고 있지만 100여 명의 유능한 형사들이 온종일 뛰어다닌 수사 결과를 요약 정리, 용의자를 걸러내는 이 수사관 회의는 빠뜨릴 수 없는 그날의 「수사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수사본부 회의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회의장 유리창 밑에 몰래 쪼그리고 앉거나 문 틈에 귀를 바짝 붙이고 회의가 끝날 때까지 숨어서 이들의 대화에 피를 말리는 것이다.
수사관들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릴 때, 그것처럼 기자들을 애타게 하는 것도 없다. 또 수사관 회의가 너무 길어도 수상하고, 너무 빨리 끝나도 이상한 것이다. 수사관 회의를 엿듣는 동안 기자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몰래 법석을 피우기도 한다.
기자를 잠입시켜 놓고도 우리는 시치미를 뚝 떼고 다른 신문·방송 기자들과 함께 수사본부 회의장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그러나 귀에 어떤 소리도 제대로 들려오질 않았다.
수사상황을 독점 중계하다
한 마디로 「믿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면서도 잠시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혹시 마루 밑에서 기침을 하거나 하늘을 향해 누워서 소주병에 소변을 보다가 자칫 이상한 소리라도 낸다면, 우리의 작전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사관 회의가 끝나면,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일제히 우르르 회의장으로 몰려가 수사 회의 내용을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캐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보다는 마루 밑의 기자를 또 어떻게 극비리에 빠져나오게 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마루 밑 기자가 수사 회의록(?)을 모두 갖고 나올 때, 우리는 잠입시킬 때와 마찬가지로 갖가지 방법으로 당직 경찰이 자리를 비우게 한 뒤 「탈출 상황」을 만들어 줘야 했던 것이다.
한번은 내가 K기자를 마루 밑에 몰래 집어넣고 막 허리춤을 펴는 순간, 수사본부 당직 경찰관 한 명이 불쑥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마루 밑에서도 나지막하게 목소리가 들려 왔다.
『李선배, 볼펜 좀 줘요』
그 순간 한 마디로 미칠 지경이었다. 당직 경찰과 함께 들어온 후배도 황당한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소리를 못들은 척하고 당직 경찰관에게, 『당직자가 어딜 갔다 오는 거야?』 하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경찰관이 들어와 있다는 신호였다.
그 순간 마루 밑도 조용해졌다. 후배들이 바람잡이를 하는 사이, 가까스로 틈을 봐 겨우 볼펜을 틈새로 넣어 줬다. 우리들의 잠입 작전은 무사히, 아슬아슬하게 성공을 거둬 나갔다.
수사관 회의가 끝나고 잠입 기자가 우리들의 「엄호」 속에 무사히 빠져나오면 새로운 수사 내용이 속속 입수된다.
날마다 우리 신문에는 용의자에 대한 새로운 뉴스가 펑펑 터져 나갔다. 그리고 악취가 나는 마루 밑에서 고생한 기자에게는 그날 밤, 소주잔이 가득가득 밀리고 넘쳤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수사상황과 너무 똑같은 내용을 연일 보도하자 수사관들은 회의 때마다 『내부에 프락치가 있는 게 아니냐?』, 『혹시 도청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서로 의심하면서 조선일보에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며칠 뒤, 우리 현장 취재팀이 밖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작전 개시를 위해 수사본부를 잠깐 들여다본 순간, 우리는 아연실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본부 간부 요원들이 『어디서 자꾸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서 당직 경찰에게 그 요인을 찾아내도록 특명을 내린 것이다. 서너 명의 경찰들이 수사본부 사무실 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사본부 안 마루 밑, 합판 조각 문을 열어제치는 순간, 경찰들은 기절초풍을 하고 말았다.
『도대체 이거 어느 ×× 짓이야?』
그들은 즉각 수사 솜씨를 발휘, 그 범행(?)이 곧 취재 기자의 소행임을 알아냈다.
결국, 「우리들의 빨치산 작전」은 은행강도 사건 며칠 만에 들통이 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강도 사건의 범인들은 80여일 만에 경기도 문산에서 다시 권총 강도를 모의하다가 일망타진됐다.
그때, 우리의 취재팀 중 마루 밑을 「전담 출입했던」 K기자는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姜天錫(강천석) 이사대우 논설실장, B기자는 邊龍植(변용식) 現 편집국장, 그리고 바람잡이파였던 C기자는 현재 月刊朝鮮 趙南俊(조남준) 부국장과 李仲植(이중식) 소년조선일보 편집실장이었다.
♣ 李 雨 鳳
센텀시티(주) 상무이사
남자를 여자로 만든 사건
남자 토막 시체를 여자로 만들어 놨으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사회부장 앞에 다가서는 순간, 一喝(일갈)이 뒷전을 때렸다.
『장가까지 간 녀석이 남자와 여자를 구별 못 해?』
張모 사회부장의 계속된 호된 질책에 편집국 분위기도 압도된 듯 조용해졌다.
『저희 부부는 잠잘 때 불을 반드시 끄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쑥 이 말이 튀어 나왔다. 그 순간 편집국엔 「킥킥」대는 소리에 이어 拍掌大笑(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부장도 어이가 없다는 듯 그만 실소했다. 이 말 한 마디가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켜 더 이상의 문책은 없었다. 위기를 용케도 잘 벗어났다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던 1980년 6월25일 오전 11시께.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을 끼고 흐르는 전포천에 토막 시체가 발견됐다는 회사로부터 온 독자 제보를 받고 현장으로 내달았다. 발견된 토막은 배꼽 바로 아래 부분서 허벅지 중간 부분까지였다. 성별 파악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남자요, 여자요?』 옆에 서 있던 형사 반장이 『여자』라고 대답하면서 장갑 낀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중요 부분에 밀어 넣자 쑥 들어갔다. 틀림없는 여자 토막 시체였다.
『지난해 두 건의 여인 토막 살인 사건에 이어 또 여인 토막이라니… 부산이 토막 시체 도시의 오명을 벗긴 글렀군』
이렇게 중얼거리며, 돌아가던 1판용 윤전기를 세우고 기사를 송고했다. 뒤늦게 도착한 상대 지방지 등 다른 기자들에게 「부산에서 또 여인 토막 시체가 발견됐다」는 리드로 시작되는 기사를 보여 준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 후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목 아래 부분서 양팔이 잘려 나간 몸통 부분이 발견됐지만 분명 남자의 가슴이었다. 「남자와 여자를 한꺼번에 잘랐나」, 「그렇지 않으면 이 여인의 발육 정도가 극히 부실해서인가」 시체 부검장을 향하는 차 안에서 온갖 추측과 함께 오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두 토막 시체 절단 부분에 붙어 있던 흙을 깨끗이 씻어내고 접합을 시도하자 꼭 들어 맞았다. 그렇다면 왜 중요 부분에 손가락이 거침없이 들어갔지? 그 대답은 부검이 끝나자마자 나왔다. 살해된 남자의 중요 부분을 예리한 흉기로 도려냈고 시체를 유기한 지 오래돼 상처가 난 이 부분의 부패 정도가 심했기 때문으로 결론났다.
이 전포천 남자 토막 살인 사건은 피살자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발견되는 등 여덟 토막을 찾아냈다. 그러나 지문을 짓이기는 등 범인의 지능적 범행으로 피살자의 신원도 밝혀내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 후 동료나 선배 기자들에게 『한 번씩은 불을 켜 놓고 자라』는 조크를 당하긴 했지만 예단을 쉽게 하지 않는 버릇은 바로 이때 체득한 교훈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토막내고…
20년 가까운 사회부 기자 경력에서 세 번의 오보 가운데 두 번이 토막 살인에 얽힌 것이라면 분명 징크스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전포천 토막 사건 발생보다 꼭 1년 앞선 1979년 6월24일. 부산 동래구 칠산동 한 초등학교 화장실에서 여인의 머리 부분이 발견됐다. 이 사건의 범인은 여인의 애인인 李모씨로 결국 경찰에 체포됐지만 수사과정에서 무고한 공중 목욕탕 보일러공이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해 범인으로 조작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 당시엔 살인 사건이 나면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사회부 사건 기자들이 모두 투입되는 게 상례였다. 칠산동 토막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사단은 살해된 양모 여인이 그의 친구와 둘이서 찍은 사진이 신문에 실려서 일어났다. 피살자와 친구의 사진 설명을 바꿔 써서 게재한 것이다. 그날 저녁, 신문 보도대로라면 저승에 가 있을 그 여인이 오빠를 앞세우고 회사를 찾아왔다.
『멀쩡한 내 동생이 토막났다니 말이 되느냐? 책임져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달래고, 사정하고, 용서를 빌어 봤지만 막무가내였다. 내가 문제의 사진을 들고 회사로 와 설명을 달고 출고했으니 책임을 면할 길이 없었다. 처녀인데도 애인에게 살해당했고 그것도 토막까지 났다고 했으니 시집가긴 틀렸다면서 책임론을 들먹거렸다.
그들은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찾아와 윽박질렀다. 만약 장가를 가지 않았다면 결혼하자고 말할 것 같을 정도로 시달림을 당했다. 결국 그들의 집까지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가까스로 용서를 받았지만 그 때 그 며칠이 23년 간의 기자 생활 중 가장 당혹스럽고 고통스런 순간이었다.
♣ 李 元 洪
KBS 사우회 고문
혁명정부는 사회노동당이다
한국일보 사장 張基榮씨가 구속돼 지금의 애오개 근처에 있던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신문사는 벌집을 쑤신 듯 난장판이 되고 사방에서 몰려든 취재기자들로 신문제작마저 어렵게 됐다. 외인부대 같은 정치부는 편집국의 민심에서 떠났다. 별 수 없이 분위기 정비는 사회부 몫이 되어 버렸다. 부장 이하 거의 전원이 근 일주일을 가족과 집을 버렸다. 회사의 숙직실을 집으로 삼았다.
1962년 11월29일의 사건이다.
그 전날 11월28일자 1면 톱기사 「신당, 社會勞動黨(가칭)으로. 영국 노동당 것 대체로 본떠 정강정책 초안도 완료」가 허위기사였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부장이 된 것은 그 몇 달 전이다. 張基榮 사장은 신문의 귀재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자 신문을 지키기 위해 기사 심사부를 만들어 社內 사전검열 같은 제도를 만들었다. 덕분인지 칼날 위에서 춤을 추듯 行間의 꼼수로 부수도 늘리고 사장도 명성을 얻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편집국 혁신을 들고 나오면서 사장이 자신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하는 방을 붙였다. 그 다음날부터 국장석에 앉아 제작을 지휘했다. 중요기사는 모두 張基榮 편집국장의 판정을 받아야 했다.
5·16 군사혁명 이후 가장 먼저 물갈이한 곳이 정치부다. 나도 정치부에서 기사 심사부장을 거쳐 사회부장으로 밀려났다. 정치부는 거의 대부분 다른 신문사에 있던 기자들로 채워졌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얼마 전에 A신문사에서 옮겨온 韓모 기자다.
韓기자가 굉장한 특종이라고 金子煥 정치부장에게 내민 것이 바로 사회노동당 기사였다. 보고를 받은 張基榮 편집국장이 1면 톱이라고 지시했다. 試刷(시쇄)가 나오자 모두 놀랐다. 朴正熙 최고회의 의장의 이념 문제가 시끄러운 이때 그가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겠는가, 의심을 품은 것이 편집국의 대세였다. 신문은 그대로 나가버렸다.
발칵 뒤집힌 곳은 혁명 정부였다. 朴正熙 의장이 직접 한국일보 기사를 허위보도라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은 28일이나 29일 중 한국일보에 대해 행정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했다. 다급해진 張基榮씨는 기사전문을 취소한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 길로 張基榮 편집국장과 洪부국장, 金정치부장, 韓기자 등 네 명이 구속됐다.
신문사는 초상집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신문을 계속해서 만드는 일이었다. 종이도 하루살이, 자금도 하루살이, 張基榮 사장이 없으면 하루도 지탱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일보였다. 당장 광고가 끊어지고 자금이 어려워졌다. 문제는 편집국의 분위기였다. 결속과 투지로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래서 사회부장을 위시해서 사회부의 대부분이 며칠을 신문사에서 밤을 새웠다. 그 덕분에 사회부는 기사도 좋아졌다.
당사자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이 사건의 첫째 문제가 사장이 편집국장을 겸한 것이고, 둘째가 정치부를 외인부대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고, 셋째가 새로 들어온 기자를 과분하게 신뢰한 것이다. 사회부에서도 우수한 법조기자를 영입했지만 그가 한 달 만에 쓴 기사가 「헌병이 강도질」했다는 오보였다. 그 때문에 사회부장인 내가 필동으로 연행되어 며칠을 조사에 시달렸지만 기자를 밝힐 수 없어 고통을 겪었다.
사회부는 자칫하면 오보부가 된다. 대부분 현장 확인을 하기 어려운 간접취재다.
「비 오는 날 맨홀에 어린이가 빠져 죽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만 듣고 대문짝 만한 기사가 되어 버렸다. 알고 보니 엉터리였다. 잡혀간 기자를 간신히 빼냈다. 예비군 삭발문제가 났을 때 부대장의 담화기사로 항의가 들어왔다. 취재기자를 불러 물어보니 자기가 적당히 만든 기사라고 자백했다. 크고 작은 실수가 허다했다. 전등사로 소풍 간 행락객이 깡패 습격을 받았다는 기사도 조사를 해 보니 사진기자가 일부러 사진을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사회노동당 사건은 결과적으로 사회부 기자의 경각심과 애사심으로 작용했다.
구속된 張基榮 사장은 정부의 주장대로 한국일보를 3일 간 자진휴간하기로 결정했다. 하루는 밤중에 수사진의 감시를 받으며 사장실에 들어왔다. 자진휴간 社告를 쓰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장실로 불려갔다. 사장으로부터 다른 신문의 유사한 社告를 구해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밤중에 B신문사를 찾아갔다. 파자마를 입고 점잖게 주무시고 계시는 숙직자를 깨웠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Y社를 찾아갔다. 편집국이 훤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살펴보니 간부와 기자들이 밤을 새워 가며 화투를 치고 있었다. 겨우 참고 社告를 구해 돌아왔다.
張基榮 사장이 직접 작성한 社告가 12월1일자에 게재됐다. 12월2일부터 3일 간 자진휴간한다는 내용이었다. 張사장은 그 뒤 석방되었지만 韓기자와 관련자는 재판에 넘어갔다. 한국일보는 12월7일字로 극동해운 사장인 南宮鍊씨에게로 넘어갔다. 12월7일字 제호 밑의 발행인이 南宮鍊으로 인쇄됐다.
사건 관련자 모두가 사망했다. 입이 없어졌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나의 친구도 사망했다. 지금으로서는 진상을 알 길이 없다. 전적인 허위 기사였든지, 아니면 한번 검토하고 기각된 것을 오보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한국일보를 때려잡기 위해 꾸며낸 모략극에 이용된 것인지, 사회부장은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하루하루.
♣ 李 鍾 九
한나라당 李會昌 大選 경선 후보 공보특별 보좌역
초상집에서 당한 진퇴양난
1970년대는 시간으로 따져 얼마 멀지 않은 과거지만, 세태의 변화로 따지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처럼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때와 지금의 신문기자 양태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때는 신문 지면에서 사회부 의존도가 꽤 컸다. 그래서인지 정치부나 경제부 기자들에 비해 사회부 기자들이 꽤 으스댔다. 자칭 「신문기자의 꽃」이라고들 했다. 아마도 그런 사탕발림에 혹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사건현장을 누볐는지도 모른다.
나는 1973년 초 견습으로 경찰기자를 시작했다. 경찰기자 3진으로 출발했다. 서울 중부 라인의 말단 경찰서 동부를 맡았다. 동부경찰서의 취재영역은 성수동, 광장동 등 지금의 동부경찰서 관할은 물론이고, 한강을 건너 천호동, 마천동, 잠실과 송파까지 뻗쳐 있어 하루에도 한두 차례씩 강을 건너야 했다. 강동지역에서 한강을 건너는 다리는 왕복 2차선의 광진교 하나뿐이었다. 어떤 때는 버스 대신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는 것이 더 편리했다. 뚝섬은 당시 여름철 피서지로도 유명했다. 한강 백사장이 있는 뚝섬 유원지는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였다. 사건기자 초년병 시절 가장 애를 먹은 것이 바로 이 뚝섬에서 일어나는 나룻배 전복사고였다. 나룻배 전복사고는 대체로 희생자가 많았다. 여러 기자가 달라붙어 취재를 해야 하는데, 말진인 내가 할 일은 으레 희생자들의 사진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때는 신문들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사망자 사진을 싣는 것을 꽤 중요시했다.
한번은 나룻배 전복사고의 희생자 집에 갔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다. 텅 빈 집의 담을 넘어 들어가 앨범을 뒤지다가 유족들과 마주쳤던 것이다. 장롱 속에서 앨범을 겨우 찾아내는 순간 유족들의 손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가뜩이나 사람이 죽어 슬픈데 웬 놈이 집안을 뒤지다가 들켰으니, 순순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더구나 앨범을 확보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해야 하고, 진퇴양난의 순간이었다.
『어이, 김형사 여기 좀 말려줘!』
우선 큰 소리부터 쳤다. 『성동서에서 나온 사람인데…』 어쩌구 하면서 앨범 속 사진 중 어느 사진이 죽은 사람이냐고 확인부터 했다. 얼떨결에 유족들은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 재빨리 사진을 빼내고 나서 돌아서려는데 몇 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경찰 신분증을 보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이 탄로나면 죽을 판이다. 순간 밖을 향해 냅다 고함을 질렀다.
『어이, 김형사 여기 좀 말려줘!』
김형사가 밖에 있을 리 없지만, 포위망은 잠시 허술해졌다. 이 틈을 타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달아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성동서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했지 언제 경찰이라고 했느냐. 난 성동서에 출입하는 기자다』
사진에 얽힌 에피소드는 많다. 한번은 마포에서 고무신 공장 폭발사건이 터졌다. 인명피해가 컸다. 역시 신참인 내가 사진 구하는 데 앞장서야 했다. 어느 달동네를 겨우 찾아가 얼굴 사진이 들어 있는 주민등록증을 손에 넣는 순간, 간발의 차로 뒤늦게 도착한 다른 社 기자와 맞닥뜨렸다. 그것이 실수였다. 주민등록증을 잠시 보자는 말에 건네 주었다가 빼앗기고 만 것이다. 주민등록증을 손에 넣은 그 기자는 그대로 달아났다. 졸지에 닭 쫓던 개가 되고 말았다.
기자들 간의 사진 훔치기
이런 유의 편취사건은 사건기자들 사이에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 중 한 가지 사례. C일보의 한 기자가 어찌어찌해서 중요한 사진을 구했는데, 뒤늦게 달려간 H일보의 기자에게 잠시 보여 주었다가 날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C일보 기자는 H일보 편집국까지 따라가 사진을 달라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사진을 날치기 한 기자는 편집국 내 화장실에 꽁꽁 숨어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 유명인사가 되어 있다. 이름을 대면 다 알 만한 사람들이다.
초년병 시절 「문도석·이종대 사건」을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문도석·이종대는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전형적 갱이었다. 두 사람이 범상치 않은 갱임을 만천하에 알린 사건이 구로공단 카빈 강도사건이다. 공단 내 한 회사의 경리간부가 은행에서 돈을 갖고 나오는 것을 카빈 총으로 위협, 돈을 강탈한 사건이 구로공단 카빈 강도사건이다. 대낮 행인이 분주하게 왕래하는 대로에서 개머리판 없는 카빈총으로 위협, 돈을 강탈한 뒤 유유히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으니, 얼마나 대담무쌍한 범행인가. 당시 기자들은 이런 말을 했다.
『현장에 배경 음악이 깔렸다면 한 편의 갱 영화다』
그때 어느 방송기자의 현장보도가 지금도 생각난다. 생방송으로 현장을 연결하자, 그는 긴박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해 나갔다.
『돈을 강탈한 범인들은 개머리판 없는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개머리판 없는 승용차」라는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방송사나 듣는 청취자나 그 이상한 단어를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나중에서야 알고 배꼽을 잡았다. 우리는 그 기자를 그 뒤 「개머리판 없는 승용차」라고 별명을 붙였다. 지금 그는 지방 언론사의 대표다.
♣ 李
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
귀빈실로 안내된 쌀 중개인
한 신참기자가 기자의 업무를 「사람 장사를 하는 것」이라며 기자는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성공확률이 높다고 했다. 적어도 공항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싫든 좋든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나는 초년기자 시절인 1971년부터 金浦공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는 하루 평균 5~6편의 국제선 항공편과 국내선은 제주~부산 두 편씩을 운항하고 있었다.
지금의 공항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한가롭고 때로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또 당시에는 이수근 해외탈출 사건이 터졌던 직후라 공항의 모든 업무를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통제하며 강압적인 일들이 많았다.
취재 활동 역시 이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그래서 이때부터 기자 사이에는 金浦공항이 「취재 사각지대」라고 했다.
취재한 필름을 빼앗기거나 「취재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며 때로는 폭행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 공항출입 기자들은 각 매체별로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항을 오가는 사람」란을 갖고 있었다.
국제선 항공편이 도착하면 기자들은 승객들 사이를 뒤지고 다녔다. 하루 평균 10여 명의 승객을 골라내 출입국 사연들을 함께 기사화했다. 지금의 「인물동정」란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어쩌다가 재미있거나 이야깃거리가 많은 승객을 찾아내면 괜히 우쭐해지기도 한다. 金浦공항 통과 여객 중 中國인 여행객이 발견되면, 공산권 국가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다며 1면 톱을 장식할 때였으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여행자를 찾아다니다가 기자들이 단골로 가는 곳이 역시 공항 귀빈실. 귀빈실 이용 명단이 하루 전쯤 미리 나오기도 하지만 귀빈실로 오가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군사 정부 시절 미국 고위 정치인의 입국은 취재 대상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비행기가 도착했고 내외신 기자 수십 명이 귀빈실 내 회견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의전 요원의 안내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미국인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입국 목적이 무엇이냐』, 『작금의 한국 정치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등등.
기자들이 퍼붓는 질문에 어리둥절해 하던 미국인은 「한국에 쌀을 팔기 위해 이곳에 온 쌀 중개상」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의전요원이 사람이 바뀐 줄 모르고 잘못 안내한 것이다. 이 쌀 중개인은 곧바로 의전요원에 이끌려 일반인 여행자 입국수속을 밟아야 했다.
기자를 따돌려라
제5공화국 때 당시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형된 뒤 수감 중 서울대병원에 이송돼 있던 金大中씨의 돌연 출국 소식이 전해졌다.
이른 아침부터 수백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金씨의 출국 모습을 스케치하기 위해 金浦공항에 모여 들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미국行 KAL기 한 편만이 남아 있었다.
金씨의 출국을 총괄하고 있던 안기부 직원들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약삭빠른 기자 몇 명은 미국行 KAL기에 빈자리를 얻어 탑승 수속까지 마쳤다. 다른 기자들은 브리지를 대고 있는 항공기 주변을 에워싸듯 지키고 있었다.
항공기 이륙 10분쯤 전쯤 구급차 한 대가 안기부 직원용 승용차의 안내를 받으며 램프장 안에 들어섰다. 그러나 구급차는 KAL기를 지나쳐 램프장 한 구석에 있는 NWA기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기자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 NWA는 출발시각 한 시간이 지나서 일반 승객을 태운 채 金씨를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金씨의 KAL기 탑승수속은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연막작전이었던 것이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 NWA기에는 일본인 기자 몇 명이 탔다는 소식에 국내 기자들은 절로 한숨을 쉬었다.
1986년 9월14일 오후 3시께 국제선 건물 입구에서 강력한 폭발사고가 터졌다. 전송객 일가족 다섯 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시안게임을 일주일여쯤 앞둔 시점이라 국내외의 반응은 톱뉴스로 장식됐다.
사고발생 한 시간쯤 지나 당시 全斗煥 대통령이 경호원만을 대동하고 사고현장인 金浦공항에 나타났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목격한 全대통령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아시안게임·88올림픽을 앞두고 특히 공항보안에 신경쓰라고 지시한 것이 며칠 전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일요일이었지만 공항에 상주하는 각 기관장들이 불려 나왔고 대통령은 이들을 모두 공항청사 내 회의실로 모이도록 했다. 화가 난 대통령은 즉석에서 참석 상주 기관장을 모두 해임시키기나 좌천토록 했다.
그러나 당시 공항의 중요한 보안책임자였던 치안본부 외사과 金浦분실장인 李八浩(당시 경정·現 경찰청장) 실장은 상주기관장 중 유일하게 이 위기를 빠져나왔다.
이유인즉 李실장도 대통령이 부른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본부에서 상황보고 지시를 받느라 회의장에 2~3분쯤 늦게 도착했는데,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호원은 대통령 주재 회의 도중 신분 고하를 막론한 누구도 중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 그를 살린 것이다.
♣ 李 惠 馥
대한언론인회 명예회장
사제를 갈라놓은 6·25 남침
휴전회담 때(1951년 12월9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일이니 벌써 50여 년 전 옛 이야기가 된다.
그날 적측 천막 밖에서 서성대는 인민군 장교의 낯익은 얼굴에 나는 놀랐다.
인민군 장교 복장인데 계급장은 없고 왼쪽 가슴엔 헌집표지(공작원)를 단 그 사람이 옛 선배(중앙고)이자 스승(중앙고·보성전문 영문학과)인 金東錫(김동석:8·15 이후 문학가동맹 소속으로 문학가협회 金東里와 격렬한 문학논쟁을 폈음. 6·25 이후 서울시 黨 교육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가갔을 때 그는 뒷짐을 진 채로, 나는 외투 속에 손을 찌른 채 대화를 시작했으나 그 내용이 부드러울 순 없었다.
그 순간에도 전선 곳곳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실로 가슴 아픈 만남인 것이 옛 스승은 적측 통역으로, 나는 남측 신문(경향신문)의 종군기자라는 신분을 상호확인했을 뿐, 師弟之間(사제지간)의 옛 정은 되살아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방 남쪽 기자들의 얼굴을 찍는 북쪽 공작원(표면상 카메라맨)과 선전선동 일꾼으로 자기 편 감시역까지 담당한 북쪽 기자들에 둘러싸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본심을 내보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나는 金東錫을 남쪽으로 뚫린 신작로 쪽으로 유도해 걸어가면서 대화를 계속했다. 그때 비로소 金東錫은 李仁秀(이인수·영문학자·고려대) 교수 등의 안부도 물었다.
그러나 李교수는 9·28 수복 이후 利敵罪(인민군 선전비화 英譯, 포로심문 통역, UN군 투항권고 라디오 방송)로 피검, 1950년 11월7일 처형(당시 34세)되었다.
최근에 알려진 바로는 6·25 때(1950년 8월3일) 金東錫은 李仁秀 교수를 인민군 사령부에 인도, 협력하도록 천거한 바 있었기에 그의 생사여부가 궁금했을 것이다.
판문점에서의 어색한 師弟 간의 만남은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어 세로 컷 기사(12월12일, 13일자)로 두 번 경향신문에 나갔는데, 그때 제목이 「스승을 원쑤로」로 표현된 것이 나로서는 찜찜하였으나 당시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 그때 사진도 찍었으나 검열에 통과 안 돼 秘藏(비장)의 사진이 되어 버렸다.
그후 金東錫은 휴전조인 때까지 끝내 판문점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과연 남로당 숙청 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풀」 약속 깬 朴기자의 名文 단독 송고
특무대장 金昌龍(김창룡) 살해범 許泰榮(허태영·당시 36세) 대령과 그의 운전병 李由會(이유회·당시 28세) 일등 중사의 총살형이 집행된 것은 사건 발생 20개월24일 만인 1957년 9월24일 낮 11시. 大邱 서북쪽 칠곡 지천면 무등산 기슭, 집행현장에 입회한 기자는 朴聖煥(박성환·同和통신 편집부국장) 단 한 사람뿐이었다.
朴기자만 현장에 입회한 것은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대표, 현장취재가 끝나면 부근에 대기 중인 軍 출입 기자들에게 「풀」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
그러나 형집행이 끝나자 朴기자는 약속 장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지프차를 몰아 단독취재한 형집행 참관기를 동화통신 본사로 打電(타전)해 버렸다.
눈이 빠지게 「풀」 기사를 기다리던 다른 기자들은 각사 편집국장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다. 『동화통신은 생생한 기사를 보내왔는데 뭣하고 있느냐?』고 재촉했으나 속수무책. 울며 겨자 먹기로 각社는 동화통신을 전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朴기자의 완전특종이었다. 분통이 터진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朴기자를 제명처분, 종군기자로 이름 높았던 朴기자는 그날 이후 軍 출입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그날 朴기자의 기사는 독자가 형장을 지켜보는 듯 실감나는 名文(명문)이었다는 衆評(중평). 金특무대장 암살사건이 몰고 온 갖가지 「에피소드」 중 하나로 언론계의 화제로 남아 있다. 朴기자의 기사 「형장에서 본 許·李 두 사형수의 最後」를 간추려 보자.
〈허태영은 말쑥한 흰 바지 저고리에 고무신. (中略) 얼굴빛은 불그레 좋았으며 태도는 군사재판 때와 다름없이 태연해 보였다.
이유회는 하얀 베로 만든 위 내복에 흰 바지, 맨발에 고무신, 창백한 얼굴, 두 사형수는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집행 장소에서 10m 떨어진 곳에서 유언이 청취되었다. 유언이 끝난 것은 아침 9시50분.
이때 허태영은 「신문 기자가 여기까지 와서 마지막으로 보아 주니 고맙소, 많은 신세를 졌소」 (中略) 그는 이어 「마지막으로 할 말은 백만대군은 조국 통일건설을 위하여 일 잘하기를 부탁하오. 이 소식을 부디 전해 주오」… 이때 허태영의 치아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10시7분 전.
집행관 지시에 따라 3~4분 말을 옮기다가 멈춘 허태영은 이유회를 불렀다. 『유회야!』 이때 이유회는 허태영을 쳐다본다. 『유희야! 애국가를 부르자! 부르고 가자!』 이유회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형수는 우뚝 섰다. 『시작!』 허태영이 소리치자 소리 높이 애국가를 함께 불렀다. 1절이 끝났다. 노래 소리가 산울림으로 되돌아왔다.
(중략) 두 사형수는 말뚝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간격 5m 사이를 두고 세워진 사람 키보다 더 큰 말뚝 앞에 두 사람은 말뚝을 등지고 섰다. (중략) 가을 아침 햇볕은 현장에 포근히 내려 쪼이고 저절로 등에 땀이 스며드는 따뜻한 계곡이었다.
이어 『대한민국 만세!』 하는 소리가 계곡이 터져라고 세 번 울렸다. (중략) 이윽고 나지막한 집행관의 호령에 따라 일제히 「어깨 총!」, 찰나에 열 발의 총성이 「꽝」 하고 터졌다. (하략)〉
♣ 鄭 光 憲
前 조광출판인쇄 사장
4·19의 현장에서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기 전에 호랑이 담배 먹던 제1공화국 시절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을 간략하게 설명해야 독자들의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서울 시내에는 경찰서가 여덟 곳(종로, 중부, 동대문, 서대문, 용산, 마포, 성동, 성북이고, 영등포는 지국담당 별도)이고 대중 교통수단은 노면 전차뿐이었다. 노선은 현재 서울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의 코스였다.
택시란 1년에 한 번 정도, 지금 비행기 타기보다 어려웠고 시내에는 버스란 없었고 지방에 가는 시외버스가 있을 뿐이었다.
朝鮮日報엔 취재용 차량으로 미군용 지프차 한 대뿐이었다. 신문은 하루에 조간과 석간 두 번 발행했다.
1960년 4월18일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대가 안암동에서 서울 시내로 진출했다.
오후 7시경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하던 고려대생들이 귀교하기 시작했다.
경찰차가 선도하여 을지로로 행진했다. 돌연 을지로4가에서 청계천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청계천4가 천일백화점 못미처 골목길에서 수십 명의 괴한이 쇠파이프 쇠사슬을 휘두르며 데모대를 습격했다.
경찰 선도차와 데모대 중간에 위치했던 취재기자단은 다리 위에 쓰러지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넋을 잃고 겁에 질렸다. 나는 사진기자와 말을 맞췄다. 왼쪽 입정동 방면으로 탈출하자고.
한밤중에 번개처럼 플래시가 터졌다. 우리는 잽싸게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으나 내 옆에 있던 민국일보 郭모 기자는 쇠사슬에 머리를 얻어 맞았다. 붕대를 싸맨 郭기자에게는 미안했지만 鄭範泰 기자가 잡은 사건 현장은 한국판 퓰리처상 감. 4·19 조간에 특종 사진은 찬연히 빛났다.
학생들이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朝鮮日報 조간의 사진은 생동감 넘치는 현장이었다. 광화문에는 아침부터 헤아릴 수 없이 학생들이 몰려왔다.
강물은 바닷물로 변했고 성난 파도는 광화문에서 노도와 같이 경무대로 밀어 닥쳤다. 인산인해는 무정부 상태로 만들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을 빚었다. 취재불능 상태에 빠졌다.
신문사 사업부원들이 「마라톤 대회」 때 착용하던 신문사 완장을 차고 큰 장대에 대형 社旗를 달아 지프차 옆에 매달고 중앙청으로 달렸다. 한눈에 취재차량, 취재기자가 식별되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꽉 막혔던 길을 열어 주며 취재에 협조했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환대를 받았다. 기쁨은 순간일 뿐.
이날 밤 종로4가에서 경찰의 불심검문 도중 피격을 받아 申東澔, 鄭範泰 기자와 셋은 혼비백산했고 마침내 운전자 趙光集씨가 순직했다. 단 한 사람 4·19 의거시 언론계 희생자다.
아찔했던 「가짜 특종」 미수사건
山戰水戰 다 겪은 귀신잡는 수사계 베테랑 형사의 눈에는 젊은 기자의 거드름이 몹시도 사납게 반영됐으리라.
어느 날 아침 수사과 형사실에서 기웃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金모 주임 책상 위에 「수사보고서」가 한 장 있었다. 비중으로 봐서 3단짜리 기사는 충분했다. 몇천만원짜리 탈세사건. 나는 「웬 떡이냐?」 기쁨을 감추며 허겁지겁 취재에 정신이 없었다.
석간 마감 때 귀사하는데 남대문 市경찰국에서 같은 방향인 D지 李모 기자와 동행했다. 『뭐 있어?』 하기에 평소 친근하게 지내던 사이라 「탈세사건」을 풀 해 주었다. 편집국에 돌아와 목을 빼고 기다리던 데스크가 말했다.
『오늘 가물었는데 톱감으로 써』
나는 오랜만에 신나게 톱을 쓰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방금 헤어졌던 李기자였다.
『큰일 날 뻔했어. 탈세사건 가짜래, 鄭기자가 설치고 다니기에 골탕을 먹이려고 했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두개골을 맞은 것처럼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데스크는 성화같이 독촉을 했다. 나는 죄인처럼 「특종 미수」를 구차스럽게 변명했다.
나는 부르르 떨면서 입을 악물었다. 만약 기사화가 됐다면 무슨 망신이며 내 꼴은 어떻게 됐겠는가?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예상 밖에 일찍 찾아왔다. 경찰국장에게 무엇을 확인하려고 갔는데 능글맞고 뻔뻔스러운 金모 주임이 보고차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金경위는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는 제보가 있다』고 직속 상관에게 고했다. 얼마 후 金경위는 파출소 주임으로 좌천됐고 사과를 받은 후 나는 그의 명예 회복을 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