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플러스의 人生
『아침에는 네 발로, 낮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존재가 뭔가?』
『人間이다』
「그리스 神話」에서 스핑크스와 오이디프스 간에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이 수수께끼 問答은 人口에 회자되는 얘기다. 이것은 인간의 成長과정을 初年-中年-末年 등 3개로 나눈 가장 초보적인 世代 구분법이다. 이 표현은 「어려서는 네 발로 기어다니고 한창 나이에는 두 발로 걸어다니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 단순한 의미만 갖는 게 아니다. 인간은 初年과 末年에는 뭔가 의지할 데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含蓄(함축)하고 있다.
文明의 발전으로 人間事가 복잡해지고 과학의 발전으로 생명이 연장되면서 인간의 世代 구분법은 더 세밀해졌다. 갖가지 방식이 있지만 요즘 世態(세태)를 그런대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1~24세를 「敎育期」, 25~49세를 「定着期」, 50~64세를 「50플러스期」, 65~79세를 「老年期」, 80세 이상을 「依存期(의존기)」로 보는 5구분 방식이다.
종전에 심리학, 가족학, 복지학 등의 학문에서 관심을 두었던 대상은 「敎育期」나 「老年 이후」의 세대였다. 이들이 상대적 弱者이고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였다. 최근에는 50~64세를 의미하는 「50플러스 세대」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세대가 인간의 생존 과정 중 「삶의 質」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쉰 살에서 예순 살 중반까지가 「인생의 頂點(정점)」이고, 이 때를 「어떤 式으로 살았느냐」가 「값진 人生」 또는 「허무한 人生」이었는지가 판가름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연령別 인구분포」를 보면 이같은 인식이 왜 나타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종전의 인구 분포는 아래쪽(젊은 층)이 넓고 위쪽(노인 층)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型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이아몬드型으로 구조가 정착하고 있다(도표 참조).
30代 男女 인구가 가장 많으면서 위-아래로 갈수록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소위 「베이비붐 世代」로 불리는 30代는 경제성장이 진행되면서 삶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부모들이 낳은 사람들이다. 이 형태의 인구분포는 앞으로 20년 후에는 그 당시의 50代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중심 世代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어떤 世代의 인구가 많다는 것은 정치나 사회적 발언권이 강해지고 사회의 主流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30, 40代에게 위협받는 50代
이것은 20년 후의 일이다. 현재의 50代는 이같은 主流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각광받는 존재도 아니다. 2001년 말 인구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50代(50~59세) 인구는 총 443만9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4767만6000여 명) 중 9.3%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30代(857만1000여 명)의 절반 수준이고 40代(732만여 명)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式의 연령분포는 현재 50代들의 운명을 豫告(예고)하는 바가 있다. 年富力强(연부역강)한 30, 40代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 立地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지난 4월8일자 조선일보 경제면에는 「한국 기업의 主力 임원진이 50代에서 40代로 대거 교체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40代가 임원진 중 67%를 차지하고 있고, SK그룹은 지난해 45%였던 40代 임원 비율이 올해는 57%로 역전, 50代가 열세로 몰렸다고 보도했다. 이외에도 한화, 코오롱 그룹 등 주요 재벌들도 40代 임원 비율을 빠른 템포로 늘리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要點이다.
보수적인 은행권도 40代 후반인 홍석주, 하영구씨가 각각 조흥은행과 한미은행의 行長으로 등장하면서 임원진도 40代로 대폭 물갈이를 하고 있음을 이 기사는 밝히고 있다. 단순히 40代의 임원 비율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核心 要職에도 40代가 전진배치돼 사실상 대그룹도 40代의 주도下에 놓이게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기업 경영 환경이 갈수록 급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화에 능동적이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40代가 급부상하는 것이다』
이 말을 50代의 처지로 말을 되바꾸면 『… 상대적으로 변화에 수동적이고 늦게 대처하기 때문에 50代는 급속히 退潮(퇴조)하는 것이다』가 된다. 이게 요즘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실의 一面이다.
은행권에선 요즘 58세로 돼 있는 停年(정년) 규정이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은행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51~53세(일부 국책은행은 조금 더 길다)가 退職의 시점으로 굳어져 버렸다. 이 나이에 도달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명예퇴직금이란 명목으로 몇 년치 연봉을 더 받고는 거의 무조건 퇴직해야 한다. 만일 안 나가려고 버티면 補職(보직)도 안 주고 자존심을 건드려 도저히 다니지 못하게 만든다.
가장 정년이 잘 지켜지며 「平生 직장」으로 알려진 敎職이나 공무원 사회에서도 수시로 「名退 바람」이 불어 50代 이후는 때만 되면 불안해진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停年이 보장된다는 교수 사회도 평가제로 인해 흔들리고 있고, 國營기업체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들어 직장에서 50代가 흔들리는 이유는 물론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구조조정 때문이다.
50代가 구조조정의 표적이 된 이유는 「高費用이면서 효용가치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2세, 여자 79세다. 만일 50代 초반에 직장에서 물러나면 아내의 生涯(생애)까지 포함해 20~30년 간 버틸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사회보장 제도도 생계를 유지할 만한 수준이 아니고 불안 요소도 다른 나라보다 크다. 그래서 우리의 50代는 오늘도 번민한다.
苦生은 많이, 果實은 작게 받은 世代
한국에서 50代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 점을 파악하기 위해선 현재 50代가 갖고 있는 우리 역사 흐름에서의 位相, 개인으로서의 位相, 同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간에서의 位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순전히 물리적 연령만을 고려할 때 50代는 50~59세로 1943~1952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연령보다는 40代 후반부터 60代 초반까지, 즉 1940년代 주변 시대의 인물들이 모두 50代의 포괄적 대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행동 양식이나 사고의 質이 비슷하고 지내온 시대적 상황도 엇비슷한 사람들이다. 이 기사에서도 포괄적인 개념으로 접근했다).
우리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이들은 어린 시절에 광복과 6·25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이다. 朴正熙 정권 시절인 1960~1970년代에는 직장이나 개인 사업을 통해 정신없이 뛰었고, 1980년代는 중견 간부, 1990년代에는 기업체의 임원이나 고위직으로 生의 頂點(정점)을 구가했을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고생을 많이 하며 성장했고, 開發年代에 첨병 역할을 하며 한국의 國富 축적에 가장 큰 공헌을 했지만 그 果實을 향유하며 末年을 여유 속에 보내려던 기대가 外換위기(IMF사태)로 一時에 사라졌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50代는 老年을 앞두고 각종 신체 기능이 하강하는 때이다. 가정에선 자식들이 교육을 대개 마치고 결혼을 했거나 준비하고 있을 시점이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봉양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즉 여러 면서 하강곡선을 그리면서도 인생에서의 부담이 상당히 몰려 있는 시기인 것이다.
國富 중 가장 큰 몫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본격적인 老人으로 대접받으며 年金을 받을 입장도 못 된다. 문화와 소비에서도 主體라기보다는 주변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性능력 저하의 여파
연세대 심리학과 黃相旻(황상민ㆍ43) 교수가 10代부터 50代까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연령 집단 속에 內在한 심리 유형과 분포」라는 보고서에는 우리 50代의 의식이 잘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한국의 50代는 「自我 상실적 현실형」이 57%를 차지해 正體性이 크게 흔들리는 세대로 평가됐다.
自我상실적 현실형의 특징에 대해 黃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심리 구조는 그 어느 곳(현실이나 사이버 공간)에서도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 아니라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한다. 철저하게 개인 중심적인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협력하며 일을 진행하는 것도 싫어한다. 반면 가족이나 조직을 위해 희생과 의무를 감내하는 것은 다소 수긍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대표할 만한 뚜렷한 가치체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외에도 한국의 50代 열 명 중 네 명(38%)꼴로는 「전통주의적 保守型」의 심리를 갖고 있다.
이런 심리 상태의 특징은 ▲家父長的 태도 ▲男兒 선호 ▲부르주아적 사고 ▲강한 사회의식 ▲수직·수평적 집합주의가 꼽히고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50代의 삶을 흔들어 놓는 것이 「직장에서의 위기」만 있는 게 아니다. 身體상의 문제가 본격화하는 것도, 가정에서의 위기가 심각해지는 것도 이때다.
이런 50代의 신체적 변화와 그것이 정신에 미치는 연관관계에 대해 정신과 의사인 金泳辰(김영진ㆍ49ㆍ대전 중앙신경정신과 의원) 박사에게 물어봤다.
―50代에 어떤 신체적 문제가 나타나는가.
『대개 40代 후반부터 體力 저하가 나타나다가 50代 초반에는 모두가 감지하게 된다. 각종 성인병도 多發한다. 특히 性的인 면에 문제가 생긴다. 관계의 기회도 적어지고 어쩌다 시도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性的 능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남자는 발기능력이 약화되고 실패율도 늘어나면 충격을 받는다. 아내 역시 폐경기를 거치면 快感(쾌감)을 잘 느끼지 못하니까 거부하거나 예전과 다른 반응을 보여 재미가 없어진다. 결국 서로간에 협조가 잘 안 되니 性的 기능은 더욱 감퇴한다.
이런 경우 남자는 「남자다움」의 상실로 인한 위축이 대단하다. 남자의 性행위는 일종의 공격행위로 征服慾(정복욕)이 작용하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역할에 의해 쾌감을 느낄 때 남자로서 자부심이 생긴다. 이게 신통치 않아지면 자기 역할에 대한 위축이 온다』
가정에서도 역시 위기가 온다. 남자들「生의 구조」의 中心은 직업(일)이고 가정은 그 다음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해 일반적이다. 生存을 위해선 일에 全力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한국처럼 노동윤리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에선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수십년 간을 바깥 세상에서 배회하며 가정일에는 無心하게 보냈던 家長들은 막상 직장을 잃고 생활의 主무대가 가정이 됐을 경우 살아가는 방식을 잘 모른다. 그러면서도 아내와 자식은 앞으로도 수십년 간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존재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위기를 맞고 있어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려 있을 때 아내와 자식의 視線(시선)이 별로 곱지 못한 것을 인식하고는 더 좌절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50代들이 그동안 일을 핑계로 가정을 등한히 했던 業報(업보)인 경우가 많다.
좋은 아버지 되는 법을 모른다
이같은 가정의 위기에 대해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韓慶惠(한경혜ㆍ女ㆍ48) 교수에게 들어봤다.
―50代의 가정을 위기라고 볼 수 있나.
『외국서도 남자는 직장에 매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대신 가족과의 유대는 상상 이상으로 弱化돼 있다. 가정의 구성원 간에는 父子-父女-母女-母子 등 다양한 관계가 있는데, 이 중 가장 上位를 점해야 할 夫婦관계가 가장 下位체계로 밀려 있다.
가정의 구조에서 엄마와 아이는 單一 체계이지만 아버지는 따로 놀다가 가끔 합류하는 異質的인 존재다. 이런 과정을 수십 년 거친 후 뒤늦게 가정에 편입하려고 하면 힘들어진다』
―모두가 이런 위기를 겪는가.
『思秋期(사추기ㆍ思春期에 빗대 중년층을 지칭한 표현)를 가장 심하게 겪는 사람은 직업 중심의 의식이 강하고 家父長的 사고가 강한 사람들이다. 직업이 더 이상 받쳐주지 못하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관계가 소원해지니 고통은 加重된다』
―50代의 나이에도 가정內의 관계 회복이 가능한가.
『쉽지는 않다. 우리의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잘 모른다. 여자는 출산과정을 통해 아이와 생물학적인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존재다. 여자는 멘스 등으로 항상 몸이 열려 있다. 그러나 남자는 분비물이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없는 닫힌 존재다. 이로 인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남자는 아이가 예뻐도 똥 싸고 게우는 것을 싫어한다. 아버지가 갓난애들과 스킨십을 해야 진정한 父情이 싹틀 수 있다
대화 스타일도 男女가 다르다. 엄마는 잔소리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식을 돌봐준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다 주긴 하지만 눈에 띄는 돌봐줌은 없고 가끔 등장해 訓育的인 소리나 하니까 아이들은 아버지가 편치 않다. 나이 먹어서 이런 관계를 복원하려면 힘들다. 직장에 다니면서 아직 큰소리 할 수 있을 때 시작하는 것이 직장에서 물러난 다음에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50代에 이르면 남성과 여성의 가정에서의 位相은 어떻게 달라지나.
『사람은 남자건 여자건 內面에 男性性과 女性性을 공유하고 있다. 여자의 女性性은 자식을 낳고 키울 때 극대화된다. 그러나 여성은 육아의 힘든 고비가 지나면 서서히 억눌러 왔던 男性性이 살아나고 나이가 들면 더 강해진다. 반면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女性性이 강해진다. 남자가 나이 먹어 직장을 그만둘 때면 여성은 男性 性이 가장 강화될 때이고 남성은 한참 주눅이 들 때다. 이럴 때 남자는 「마누라가 내가 직장 떨어지니까 氣가 더 세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현상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 공통의 현상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면 부부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캥거루族이 부담 加重시켜
요즘은 자식이 부모의 품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는 캥거루族이 늘어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
캥거루族의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에서 더 먼저 거론되어 왔다. 심지어 자식에게 독립심을 강요하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도 이 현상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발간된 미국 時事주간지 뉴스위크는 「2000년 인구조사 결과 25~34세 중 약 400만명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고, 대학생의 60%가 졸업 후에도 부모집에서 살 계획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들에겐 어덜털레선트(adultolescentㆍ成人청소년)이란 新造語도 붙어 있다. 독립된 成人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늦어져 결국 세상에 늦게 進入하면서도 退出은 빨라지는 현상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이처럼 成人청소년이나 캥가루族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韓慶惠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50代는 생활의 수준을 올려놓은 세대다. 그런데 그 果實은 자녀 세대가 가장 많이 따먹었다. 자녀가 독립하려고 생각하는 기준은 부모의 생활수준에 의해 결정난다. 우리 때는 김치냉장고 없이도 결혼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게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생활에 익숙한 생활수준이 보장되지 않으면 가정을 구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모의 소득수준보다 자식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學說도 있다』
이 상황에서 50代의 고민은 더 커진다. 자신과 아내의 미래 수십 년도 챙겨야 하는데, 자식 키우는 비용은 오히려 급속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이 취직해 제 밥벌이를 하고 결혼하는 데 까지를 책임의 최소 기준으로 삼고 있어 남은 재산을 까먹기 십상이다. 여기다 우리의 50代는 살아계신 老父母를 「나몰라라」할 세대도 아니다. 자신, 자식, 부모 등 세 군데에 지출이 몰리면서도 수입이 없어지는 시기가 바로 50代다.
『자신이 번 것은 자신이 다 써라』
資源(자원)이라는 것은 한정돼 있게 마련이다. 수십억원씩 蓄財(축재)한 사람이라면 모르되, 집 한 칸과 퇴직금이 가진 것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과 아내는 당연한 투자 대상이고, 선택 대상은 「자식이냐 부모냐」이다. 餘生(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에겐 투자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다. 때문에 부모에겐 당연히 투자해야 한다. 문제는 자식이다. 투자는 하되 어느 수준까지인지가 고민거리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식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사회의 건전화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黃相旻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자식과의 관계에서 아주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다. 자식들은 받을 것을 다 받지만 나중에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50代의 나이에는 자식 교육이 대부분 끝나지만 대신 자식의 결혼 등 목돈이 많이 드는 때다. 이런 때 절대로 무리한 겉치레를 해선 안 된다.
자식에게 유산을 남겨 주는 기존의 행태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식으로선 이런 부모의 태도가 상당히 섭섭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의 삶의 추세고 너희도 自立의 의지를 굳히라」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직장에서 退出됐을 때 모든 사람은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왜 밀려나야 하나」, 「내 능력이 결코 젊은 친구들보다 못하지 않는데」 등등 갖가지 想念 속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수없이 맞게 된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退出 이후 平常心을 되찾기까지는 대개 1~2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대개 「분노→체념(타협)→모색→냉소」라는 과정을 거친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退出 직후에는 분노 이외에 다른 감정이 나올 수 없다. 내 운명을 심판한 오너나 上司에 대해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들이 과연 나를 심판할 자격이 있나」, 「에이 개떡 같은 회사 망해 버려라」 등등 갖가지 증오심이 마음속에 요동친다.
몇 개월이 지나면 이런 감정은 아물기 시작한다. 「그래 내가 잘못했지」, 「회사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등등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수용하면서 애써 제3자에 대해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살아야 한다」는 命題(명제) 앞에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직장이나 삶의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단계에서 冷笑적인 자세로 변모한다. 새로운 직장도 구하기 어렵고 삶의 패턴을 바꾸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마음을 다져잡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해 보지만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재벌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하다가 2년전 퇴직한 A씨(57)는 『회사는 퇴직에 대비해 어떤 조치도 해 주지 않았고, 퇴직 후에도 「잘 지내느냐」는 안부전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런 회사에 30여 년 간 몸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소속감에서 나오는 後光효과가 크다
金泳辰 박사는 퇴직 이후의 喪失感(상실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의 自矜心(자긍심)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어느 직장이나 분야에 소속됨으로써 자연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後光효과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면 위상이 달라진다. 명함 내밀 일도 없고, 어디 갈 만한 마땅한 곳도 없고, 회사 앞 술집에서 외상술 먹을 입장도 안 되는 것을 느낄 때 불안감과 허전함이 엄습한다.
그러나 막상 뭔가를 상실할 때보다 상실을 앞둔 시점에 더 불안하다. 동료의 퇴출이나 죽음 같은 것을 예비연습으로 인식해 자신의 아픔으로 간주한다. 未久(미구)에 자신에게 벌어질 상황을 사전에 맛보려는 자세가 두드러진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퇴직 이후가 비교적 나은 편이다. 情이 많아 감싸줄 줄 알고 서로 잘 모이는 것이 서구사회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退出당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주변의 視線이 부담스럽고 괜히 자격지심이 드는 탓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재벌 계열회사 대표이사 출신인 B씨는 처음에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냐』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러나 일단 입이 열리자 그의 토로는 거침이 없었다. 그와의 一問一答이다.
명함을 내밀 수 없을 때의 당혹감
―退職당했을 때의 심정은.
『선배들이 「직장을 떠나면 아내 잃어버리는 것 다음으로 충격이 크다」고 얘기하는 것을 누차 들었다. 그러나 회사 재직時에는 그게 심각하게 와닿지 않았다.
아내에겐 퇴직하기 1년 전부터 암시를 미리 주었지만 막상 당하니까 엄청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나는 「가정을 선택하느냐 직업을 선택하느냐」라는 한계 속에서 살면서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한 직장밖에 몰랐기 때문에 외길을 가다가 떨어져 나가니까 곤충이 더듬이를 잃어버린 듯 완전히 방향감을 상실하는 것 같았다』
―직장을 그만둔 후 나타나는 문제가 뭔가.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주고받던 명함을 내밀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당혹스런 변화였다. 무심결에 포켓에서 명함을 찾다가 「아하, 내가 그만뒀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면 허무감이 엄습해 왔다.
퇴직하자마자 의료보험이나 年金을 위한 불입을 별도로 해야 하는 것이 우선 당혹스러웠다. 우리는 수십년 간 가장 많이 돈을 내왔는데, 단 몇 개월의 유예기간도 없었다. 가장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인데도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것에 놀랐다.
그나마 이전에는 이자소득으로 생활이 가능했는데 워낙 금리가 낮으니까 생활도 안 됐다』
―퇴직 후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리기 위해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사람들과 「만원회」라는 등산 모임을 만들었다. 서울 주변에는 좋은 산이 많다. 지하철 타고 국밥 먹으면 1만원으로 하루 山行이 해결된다. 동료들과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위안도 한다』
―매일 등산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사실 再就業(재취업)을 꾸준히 생각해 봤다. 그러나 새로운 오너와 인간관계를 다시 맺는 일이 너무 피곤하게 생각됐다. 대기업은 그나마도 체계가 잡혀 있지만 중소기업은 오너의 입김이 너무 세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 기능이 필요하다는 자세가 아니라 「그래 일거리 줄 게 와라」는 자세였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 집안이 유교의 내력이 있어 성균관에서 유학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의 재미에 빠지니 일단 생활에 활력이 돈다는 것이 느껴졌다』
―創業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
『예전부터 전해 오는 말에 「소년 登科(등과ㆍ과거에 급제하는 것)하지 말고 중년 喪妻(상처)하지 말고, 말년에 콰당(破産ㆍ파산)하지 말라」는 게 있다. 나이 들어 파산하면 再起가 불가능하고 비참한 末路(말로)를 보내게 된다. 심리적으로 이런 제한도 있고, 創業도 기술 등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 결코 쉽지 않다』
전문경영인은 파리 목숨
―직장인으로서 50代의 强弱点을 설명해 달라.
『물리적인 나이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 대체로 보면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세대의 기능이 많이 달라진다. 우리 직장 생활 초기는 경제성장이 막 시작하는 단계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 문제였지 파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은 국제화·개방화 등으로 변화의 폭이 너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 먹은 계층의 적응이 더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직장內에서 젊음의 패기와 연륜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 기준이 없어 연장자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 같다.
이보다는 재벌 2, 3세들이 상속이나 승계를 통해 회사를 장악하면서 나이 먹은 전문경영자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2, 3세 오너와 전문경영인 사이에 갈등이 있는가.
『우리나라에선 말이 전문경영인이지 그들은 내일을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임기는 전혀 의미가 없다. 그런 마당에 소신 있게 일하는 전문 경영인이 나올 수 없다. 사실 기업 내부를 잘 보면 무분별한 不實 투자, 非효율적인 운영, 기업활동과 관계없는 경비의 부담 등 오너에게 책임이 돌아갈 일이 많이 나타난다. 이런 것이 먼저 제거돼야 하는데 2, 3세 오너들이 無賃乘車(무임승차)해 경영권을 세습하고 「皇帝的 경영」을 하면서 전문경영인을 무시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동안 가정생활을 희생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월급쟁이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성취감을 위해 일하는 경우와 대우 때문에 일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나의 길은 前者에 가까웠다. 내가 취업하던 1960년대 말에는 취직할 데가 없었다. 먹고 산다는 것이 최고의 과제였기에 직장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현재의 한국이 이뤄진 것이다. 내가 직장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것도 이런 희생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시대상황과 개인의 의지가 모두 어울린 결과다. 물론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한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직장생활의 패턴이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나.
『전문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사이를 진행할 때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 사람이나 기업이나 가장 이기주의적으로 행동하고 拜金(배금)주의가 팽배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종교도 힘을 잃는 게 이 시점이라고 한다. 앞으로 수십년 간 우리 사회에선 50代가 힘을 못 쓸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때문에 30, 40代부터 「자신의 길」을 철저히 살피고 50代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50代의 힘의 결집이 필요하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현재의 50代는 國富 중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고 있는 계층이면서도 이 사회에서 가장 버림받은 계층이기도 하다. 나는 이 세대가 가진 몫 만큼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 동료들과 얘기해 보면 모두 찬동한다. 그러나 생각만 있지 힘의 결집도 힘들어 막상 행동화는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데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一助를 하고 싶다. 퇴직 세대에게 정책적 배려를 하게 하고 정보와 기회를 주도록 정치적 힘을 발휘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또 앞으로 사회 봉사에 더 많은 참여를 할 생각이다. 퇴직하면 무기력해진다. 움직이지 않거나 혼자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계속 무언가 하면서 움직일 계획이다』
퇴직한 50代는 무엇을 하며 직장 이후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다른 직장으로 옮겨간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만 대충 확인될 뿐이다. 요즘은 나이 먹은 사람을 쓸 회사도 없고 당사자들도 시원찮은 직장에 다닐 뜻이 별로 없다.
50代의 기능은 과연 쓸모 없는 수준인가. 사람마다 능력의 편차가 커 일률적으로 규정하긴 힘들다. 전반적인 수준을 놓고 평가하면 경쟁상대인 40代보다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때 고려하는 기준은 체력, 직업상의 전문성,기억력을 포함한 知的 능력, 일에 대한 熱情(열정) 등 여러 가지가 꼽힌다.
이런 다양한 기준 중 50代가 40代를 능가할 분야는 별로 없다.
그러나 50代에겐 年輪(연륜)이란 만만찮은 武器가 있다. 年輪은 인생을 오랜 기간 살아오면서 쌓아 온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신중성, 적응성, 융통성, 전체를 보는 통찰력, 위기관리 능력 등이 연륜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그러나 연륜의 효용 가치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젊은 세대와 나이 먹은 세대와의 기능 차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외국에선 많이 실시되고 있다. 예전에는 같은 시대를 사는 여러 세대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50代의 기능이 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조사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무래도 젊은층의 교육 수준이 나이 먹은 층보다 더 높아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한 사람의 삶을 縱斷(종단) 추적하는 방식을 적용해 기능의 高低를 평가하고 있다. 이 방식에선 20代부터 50代까지의 종합적인 기능이 엇비슷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의 조사에선 知能(지능)이 아닌 智慧(지혜)를 검사하는 것도 있는데, 이 분야에선 50代가 젊은 층보다 월등 우수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50代를 직장으로 수용하느냐 마느냐는 「사회의 흐름」과 「회사의 意志」이지 이들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전반적 흐름은 분명 50代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기업도 이를 적극 이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야심을 줄여라
현재 나타나는 「50代의 위기」는 「직장에서의 威脅(위협)」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個人的이라기보다는 構造的(구조적)인 면이 강하다. 新自由主義라는 세계경제의 흐름은 機能(기능)에 입각한 냉정한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예전에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高비용인 50代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그런 虛飾(허식)도 걷어치웠다. 우리 기업들은 한 수 더 떠 구조조정의 명목으로 「눈에 거슬리는 사람」까지 과감히 밀어내고 있다.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면 국가가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젊은 층의 失業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50代까지 신경 쓸 수 있느냐」며 「각자 알아서 處身하라」는 입장이다.
선진국은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선진국일수록 人的 정리가 빠르다. 그러나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그런 방식에 익숙하니까 절망하지도 않는다. 對備(대비)도 대부분 돼 있고 방어적 심리에 익숙하다. 주부들도 독립심이 강해 남편을 대신해 직장에 도전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對備도 없고 독립심도 없고, 사회가 여성을 필요로 하지 않고, 험한 일을 하는 것을 사회적 매장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자란 우리 주부는 결코 도전적 자세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우리 자녀도 이런 훈련이 잘 안 돼서 예전과 다름없이 용돈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미숙한 여성일수록 남자에게 다시 「일하라」고 등을 떠민다. 자존심 때문에 먼저 직장 일보다 못한 일을 하지 못하는데, 등까지 떠밀면 더 고민한다. 우리 50代 남성이 더 힘든 것은 이렇게 對備되지 않은 가족의 특성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먼저 직장보다 質이 떨어지는 직업을 갖게되는 것을 本人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두려워해 老後에 처신하기가 훨씬 힘들다.
그러면 50代는 이 위기를 어떤 식으로 돌파해 나가야 할까?
각계 전문가들은 다양한 표현으로 돌파방안을 제시한다.
그 進言은 『욕심을 버리되, 적극적으로 무언가 일을 계속 하라』는 것으로 要約된다.
金泳辰 박사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밝힌다.
『꿈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물론 쉰 살 넘어까지 살다 보면 대개 현실과 부딪치며 자연히 조정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좀더 적극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꿈은 어린 시절 간직했던 소박한 憧憬(동경)도 있고 野心(야심)이란 것도 있다. 野心은 인생의 動因(동인)이다. 그러나 50代 이후에는 소박한 동경의 비중을 늘이고 야심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 야심의 비중이 높으면 행복한 삶이 되긴 힘들다.
野心 속에는 快樂(쾌락)이 內在돼 있다. 돈이 가져다 주는 2차적 쾌락이 너무 많다. 그래서 野心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주변에선 「成功 神話」가 자주 들려온다. 50代에 사업에 뛰어들어 반도체장비 업체인 「미래산업」을 크게 일구고 최근에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정문술씨 같은 성공사례는 50代의 野心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성공사례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선 특이 케이스임을 상기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심리학 박사인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金挺運(김정운ㆍ40)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50代 이후에 사업을 해 성공했다거나 여든 살 노인이 마라톤 코스를 完走했다는 등의 성공 신화를 사회에서 홍보하는 것은 逆효과가 크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성공 신화를 이루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과 스트레스가 필요한데 과연 그게 餘生(여생)에서 바람직한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에는 청소년기만 「自我 정체성」을 찾는 시기로 여겼지만, 요즘은 50代 이후도 「제2의 自我 정체성」을 추구하는 때로 인식하고 있다. 이 시기에 정체성을 추구하는 데는 주변의 視線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그는 『그동안 50代가 포기했던 문화와 소비에서의 主權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각종 이벤트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청소년들이다. 그들이 구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쓰는 돈은 자신의 쓸 몫을 줄인 부모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젠 부모 세대들도 과감히 써야 한다. 그래야 문화와 소비의 공급자도 그들에게 배려를 하게 된다. 얼마 전 가수 楊姬銀(양희은)의 콘서트에 40, 50代 올드 팬들이 엄청 몰렸다고 하는데 그런 현상도 이런 흐름의 하나로 인식된다.
전문가들은 50代는 단순히 한 개인과 가정에 대한 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에도 따뜻한 눈길을 가져야 할 세대임을 강조한다. 그동안 직장에서 힘겹게 살아오면서 돌아보지 못했던 주변을 이제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寄附(기부)이건, 자원봉사이건 어떤 것이든 좋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韓慶惠 교수는 『우리 사회에선 자원봉사를 돈과 시간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배부른 행위로 인식하고 있으나, 선진국에서는 상류층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로서, 보통 사람들은 일상생활로 인식하고 보편화돼 있는 행위』라고 밝혔다.
연세대 심리학과 黃相旻 교수는 『나이가 들어도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고 다른 방면을 강조한다.
『요즘 외부 강연을 나가 보면 50, 60代층의 학구열이 대단한 것을 실감한다. 그들의 열기는 단순히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뭔가 허전했던 것을 채우려는 진정한 學習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뭔가 배우고 있으면 길이 보이고 生을 풍족하게 할 방향이 서게 된다』
金泳辰 박사도 50代의 공부에 동의한다.
『50代도 경험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익히고 배우면서 무장해야 한다. 50代가 되면 기억력이 현저히 약화돼 배우는 것도 쉽지 않다. 때문에 그 이전부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퇴직한 이후에도 종전에 자신이 익힌 영역에서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물론 돈을 적게 받아 생활수준을 종전과 같이 유지하긴 힘들겠지만 생산적 일에 몰입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젊은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인간적 희열은 만만치 않다』
연령의 의한 차별을 철폐하라
그동안 국내에선 50代 퇴직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60代 이후의 노인들에 대해서는 복지 차원에서 敬老堂(경로당)이 세워지고, 老人단체가 설립돼 나름대로의 국가적 배려가 있다. 그러나 얼마 전 50代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단체인 「한국은퇴자협회(☎02-6399-3000)」가 설립돼 새로운 분위기를 맞고 있다.
在美교포인 朱明龍(주명룡ㆍ57) 회장이 미국의 「은퇴자협회」를 본따 설립한 이 단체는 올해 초 만들어져 아직 활발한 활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은퇴자협회는 『장년층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은퇴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협회가 현재 벌이고 있는 사업은 웹사이트를 통한 각종 정보 제공, 잡지 발행, 할인권 발행 등인데, 앞으로 사업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朱明龍 회장은 이와 함께 50代의 생계를 위협하는 요소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환위기가 일어났을 때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상황이 호전된 마당에도 원상으로 복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 협회는 앞으로 각종 심포지엄을 통해 의견을 모으고 회원들과 힘을 합쳐 「연령에 의한 차별금지법」, 「연령에 의한 조기 퇴직 금지법」 등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의 50代가 겪고 있는 위기는 한 번 지나가면 끝나는 현상이 아니다. 현재의 40代, 30代가 세월이 흘러 50代에 진입하면 그들도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현상이다.
50代의 위기는 외환위기라는 近代史에서 보기 드문 격랑을 통해 다가왔다. 처음 겪어보는 현상인 만큼 과도기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50代는 매를 빨리 맞았다. 그러나 현재의 30, 40代는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설명했듯 그들은 우리 인구구조에서 가장 큰 규모를 보이는 세대다. 세대 간의 경쟁뿐 아니라 그들 간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거기다 앞으로 20년 간은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진행되는 시점으로 삶 자체가 험해질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이런 장래에 대한 전망 때문에 『현재의 50代가 그래도 행복한 경우이고 오히려 30, 40代가 더 불쌍하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고통당하는 당사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분명히 그렇다.
이 시점에서의 50代에 대한 메시지는 역시 현재의 30, 40代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50代가 됐을 때 2할의 성공그룹에 속할 것인가 아니면 8할의 탈락그룹에 속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해답의 열쇠는 분명히 있다.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獨步的(독보적)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아침에는 네 발로, 낮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존재가 뭔가?』
『人間이다』
「그리스 神話」에서 스핑크스와 오이디프스 간에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이 수수께끼 問答은 人口에 회자되는 얘기다. 이것은 인간의 成長과정을 初年-中年-末年 등 3개로 나눈 가장 초보적인 世代 구분법이다. 이 표현은 「어려서는 네 발로 기어다니고 한창 나이에는 두 발로 걸어다니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 단순한 의미만 갖는 게 아니다. 인간은 初年과 末年에는 뭔가 의지할 데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含蓄(함축)하고 있다.
文明의 발전으로 人間事가 복잡해지고 과학의 발전으로 생명이 연장되면서 인간의 世代 구분법은 더 세밀해졌다. 갖가지 방식이 있지만 요즘 世態(세태)를 그런대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1~24세를 「敎育期」, 25~49세를 「定着期」, 50~64세를 「50플러스期」, 65~79세를 「老年期」, 80세 이상을 「依存期(의존기)」로 보는 5구분 방식이다.
종전에 심리학, 가족학, 복지학 등의 학문에서 관심을 두었던 대상은 「敎育期」나 「老年 이후」의 세대였다. 이들이 상대적 弱者이고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였다. 최근에는 50~64세를 의미하는 「50플러스 세대」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세대가 인간의 생존 과정 중 「삶의 質」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쉰 살에서 예순 살 중반까지가 「인생의 頂點(정점)」이고, 이 때를 「어떤 式으로 살았느냐」가 「값진 人生」 또는 「허무한 人生」이었는지가 판가름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연령別 인구분포」를 보면 이같은 인식이 왜 나타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종전의 인구 분포는 아래쪽(젊은 층)이 넓고 위쪽(노인 층)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型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이아몬드型으로 구조가 정착하고 있다(도표 참조).
30代 男女 인구가 가장 많으면서 위-아래로 갈수록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소위 「베이비붐 世代」로 불리는 30代는 경제성장이 진행되면서 삶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부모들이 낳은 사람들이다. 이 형태의 인구분포는 앞으로 20년 후에는 그 당시의 50代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중심 世代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어떤 世代의 인구가 많다는 것은 정치나 사회적 발언권이 강해지고 사회의 主流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30, 40代에게 위협받는 50代
이것은 20년 후의 일이다. 현재의 50代는 이같은 主流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각광받는 존재도 아니다. 2001년 말 인구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50代(50~59세) 인구는 총 443만9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4767만6000여 명) 중 9.3%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30代(857만1000여 명)의 절반 수준이고 40代(732만여 명)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式의 연령분포는 현재 50代들의 운명을 豫告(예고)하는 바가 있다. 年富力强(연부역강)한 30, 40代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 立地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지난 4월8일자 조선일보 경제면에는 「한국 기업의 主力 임원진이 50代에서 40代로 대거 교체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40代가 임원진 중 67%를 차지하고 있고, SK그룹은 지난해 45%였던 40代 임원 비율이 올해는 57%로 역전, 50代가 열세로 몰렸다고 보도했다. 이외에도 한화, 코오롱 그룹 등 주요 재벌들도 40代 임원 비율을 빠른 템포로 늘리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要點이다.
보수적인 은행권도 40代 후반인 홍석주, 하영구씨가 각각 조흥은행과 한미은행의 行長으로 등장하면서 임원진도 40代로 대폭 물갈이를 하고 있음을 이 기사는 밝히고 있다. 단순히 40代의 임원 비율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核心 要職에도 40代가 전진배치돼 사실상 대그룹도 40代의 주도下에 놓이게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기업 경영 환경이 갈수록 급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화에 능동적이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40代가 급부상하는 것이다』
이 말을 50代의 처지로 말을 되바꾸면 『… 상대적으로 변화에 수동적이고 늦게 대처하기 때문에 50代는 급속히 退潮(퇴조)하는 것이다』가 된다. 이게 요즘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실의 一面이다.
은행권에선 요즘 58세로 돼 있는 停年(정년) 규정이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은행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51~53세(일부 국책은행은 조금 더 길다)가 退職의 시점으로 굳어져 버렸다. 이 나이에 도달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명예퇴직금이란 명목으로 몇 년치 연봉을 더 받고는 거의 무조건 퇴직해야 한다. 만일 안 나가려고 버티면 補職(보직)도 안 주고 자존심을 건드려 도저히 다니지 못하게 만든다.
가장 정년이 잘 지켜지며 「平生 직장」으로 알려진 敎職이나 공무원 사회에서도 수시로 「名退 바람」이 불어 50代 이후는 때만 되면 불안해진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停年이 보장된다는 교수 사회도 평가제로 인해 흔들리고 있고, 國營기업체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들어 직장에서 50代가 흔들리는 이유는 물론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구조조정 때문이다.
50代가 구조조정의 표적이 된 이유는 「高費用이면서 효용가치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2세, 여자 79세다. 만일 50代 초반에 직장에서 물러나면 아내의 生涯(생애)까지 포함해 20~30년 간 버틸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사회보장 제도도 생계를 유지할 만한 수준이 아니고 불안 요소도 다른 나라보다 크다. 그래서 우리의 50代는 오늘도 번민한다.
苦生은 많이, 果實은 작게 받은 世代
한국에서 50代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 점을 파악하기 위해선 현재 50代가 갖고 있는 우리 역사 흐름에서의 位相, 개인으로서의 位相, 同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 간에서의 位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순전히 물리적 연령만을 고려할 때 50代는 50~59세로 1943~1952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연령보다는 40代 후반부터 60代 초반까지, 즉 1940년代 주변 시대의 인물들이 모두 50代의 포괄적 대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행동 양식이나 사고의 質이 비슷하고 지내온 시대적 상황도 엇비슷한 사람들이다. 이 기사에서도 포괄적인 개념으로 접근했다).
우리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이들은 어린 시절에 광복과 6·25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이다. 朴正熙 정권 시절인 1960~1970년代에는 직장이나 개인 사업을 통해 정신없이 뛰었고, 1980년代는 중견 간부, 1990년代에는 기업체의 임원이나 고위직으로 生의 頂點(정점)을 구가했을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고생을 많이 하며 성장했고, 開發年代에 첨병 역할을 하며 한국의 國富 축적에 가장 큰 공헌을 했지만 그 果實을 향유하며 末年을 여유 속에 보내려던 기대가 外換위기(IMF사태)로 一時에 사라졌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50代는 老年을 앞두고 각종 신체 기능이 하강하는 때이다. 가정에선 자식들이 교육을 대개 마치고 결혼을 했거나 준비하고 있을 시점이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봉양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즉 여러 면서 하강곡선을 그리면서도 인생에서의 부담이 상당히 몰려 있는 시기인 것이다.
國富 중 가장 큰 몫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본격적인 老人으로 대접받으며 年金을 받을 입장도 못 된다. 문화와 소비에서도 主體라기보다는 주변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性능력 저하의 여파
연세대 심리학과 黃相旻(황상민ㆍ43) 교수가 10代부터 50代까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연령 집단 속에 內在한 심리 유형과 분포」라는 보고서에는 우리 50代의 의식이 잘 나타난다.
이 조사에서 한국의 50代는 「自我 상실적 현실형」이 57%를 차지해 正體性이 크게 흔들리는 세대로 평가됐다.
自我상실적 현실형의 특징에 대해 黃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심리 구조는 그 어느 곳(현실이나 사이버 공간)에서도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 아니라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한다. 철저하게 개인 중심적인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협력하며 일을 진행하는 것도 싫어한다. 반면 가족이나 조직을 위해 희생과 의무를 감내하는 것은 다소 수긍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대표할 만한 뚜렷한 가치체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외에도 한국의 50代 열 명 중 네 명(38%)꼴로는 「전통주의적 保守型」의 심리를 갖고 있다.
이런 심리 상태의 특징은 ▲家父長的 태도 ▲男兒 선호 ▲부르주아적 사고 ▲강한 사회의식 ▲수직·수평적 집합주의가 꼽히고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50代의 삶을 흔들어 놓는 것이 「직장에서의 위기」만 있는 게 아니다. 身體상의 문제가 본격화하는 것도, 가정에서의 위기가 심각해지는 것도 이때다.
이런 50代의 신체적 변화와 그것이 정신에 미치는 연관관계에 대해 정신과 의사인 金泳辰(김영진ㆍ49ㆍ대전 중앙신경정신과 의원) 박사에게 물어봤다.
―50代에 어떤 신체적 문제가 나타나는가.
『대개 40代 후반부터 體力 저하가 나타나다가 50代 초반에는 모두가 감지하게 된다. 각종 성인병도 多發한다. 특히 性的인 면에 문제가 생긴다. 관계의 기회도 적어지고 어쩌다 시도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性的 능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남자는 발기능력이 약화되고 실패율도 늘어나면 충격을 받는다. 아내 역시 폐경기를 거치면 快感(쾌감)을 잘 느끼지 못하니까 거부하거나 예전과 다른 반응을 보여 재미가 없어진다. 결국 서로간에 협조가 잘 안 되니 性的 기능은 더욱 감퇴한다.
이런 경우 남자는 「남자다움」의 상실로 인한 위축이 대단하다. 남자의 性행위는 일종의 공격행위로 征服慾(정복욕)이 작용하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자기의 역할에 의해 쾌감을 느낄 때 남자로서 자부심이 생긴다. 이게 신통치 않아지면 자기 역할에 대한 위축이 온다』
가정에서도 역시 위기가 온다. 남자들「生의 구조」의 中心은 직업(일)이고 가정은 그 다음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해 일반적이다. 生存을 위해선 일에 全力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한국처럼 노동윤리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에선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수십년 간을 바깥 세상에서 배회하며 가정일에는 無心하게 보냈던 家長들은 막상 직장을 잃고 생활의 主무대가 가정이 됐을 경우 살아가는 방식을 잘 모른다. 그러면서도 아내와 자식은 앞으로도 수십년 간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존재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위기를 맞고 있어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려 있을 때 아내와 자식의 視線(시선)이 별로 곱지 못한 것을 인식하고는 더 좌절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50代들이 그동안 일을 핑계로 가정을 등한히 했던 業報(업보)인 경우가 많다.
좋은 아버지 되는 법을 모른다
이같은 가정의 위기에 대해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韓慶惠(한경혜ㆍ女ㆍ48) 교수에게 들어봤다.
―50代의 가정을 위기라고 볼 수 있나.
『외국서도 남자는 직장에 매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대신 가족과의 유대는 상상 이상으로 弱化돼 있다. 가정의 구성원 간에는 父子-父女-母女-母子 등 다양한 관계가 있는데, 이 중 가장 上位를 점해야 할 夫婦관계가 가장 下位체계로 밀려 있다.
가정의 구조에서 엄마와 아이는 單一 체계이지만 아버지는 따로 놀다가 가끔 합류하는 異質的인 존재다. 이런 과정을 수십 년 거친 후 뒤늦게 가정에 편입하려고 하면 힘들어진다』
―모두가 이런 위기를 겪는가.
『思秋期(사추기ㆍ思春期에 빗대 중년층을 지칭한 표현)를 가장 심하게 겪는 사람은 직업 중심의 의식이 강하고 家父長的 사고가 강한 사람들이다. 직업이 더 이상 받쳐주지 못하고 아이들이 커 가면서 관계가 소원해지니 고통은 加重된다』
―50代의 나이에도 가정內의 관계 회복이 가능한가.
『쉽지는 않다. 우리의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잘 모른다. 여자는 출산과정을 통해 아이와 생물학적인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존재다. 여자는 멘스 등으로 항상 몸이 열려 있다. 그러나 남자는 분비물이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없는 닫힌 존재다. 이로 인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남자는 아이가 예뻐도 똥 싸고 게우는 것을 싫어한다. 아버지가 갓난애들과 스킨십을 해야 진정한 父情이 싹틀 수 있다
대화 스타일도 男女가 다르다. 엄마는 잔소리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식을 돌봐준다. 아버지는 돈을 벌어다 주긴 하지만 눈에 띄는 돌봐줌은 없고 가끔 등장해 訓育的인 소리나 하니까 아이들은 아버지가 편치 않다. 나이 먹어서 이런 관계를 복원하려면 힘들다. 직장에 다니면서 아직 큰소리 할 수 있을 때 시작하는 것이 직장에서 물러난 다음에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50代에 이르면 남성과 여성의 가정에서의 位相은 어떻게 달라지나.
『사람은 남자건 여자건 內面에 男性性과 女性性을 공유하고 있다. 여자의 女性性은 자식을 낳고 키울 때 극대화된다. 그러나 여성은 육아의 힘든 고비가 지나면 서서히 억눌러 왔던 男性性이 살아나고 나이가 들면 더 강해진다. 반면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女性性이 강해진다. 남자가 나이 먹어 직장을 그만둘 때면 여성은 男性 性이 가장 강화될 때이고 남성은 한참 주눅이 들 때다. 이럴 때 남자는 「마누라가 내가 직장 떨어지니까 氣가 더 세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현상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 공통의 현상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면 부부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캥거루族이 부담 加重시켜
요즘은 자식이 부모의 품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는 캥거루族이 늘어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
캥거루族의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에서 더 먼저 거론되어 왔다. 심지어 자식에게 독립심을 강요하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도 이 현상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발간된 미국 時事주간지 뉴스위크는 「2000년 인구조사 결과 25~34세 중 약 400만명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고, 대학생의 60%가 졸업 후에도 부모집에서 살 계획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들에겐 어덜털레선트(adultolescentㆍ成人청소년)이란 新造語도 붙어 있다. 독립된 成人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늦어져 결국 세상에 늦게 進入하면서도 退出은 빨라지는 현상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이처럼 成人청소년이나 캥가루族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韓慶惠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50代는 생활의 수준을 올려놓은 세대다. 그런데 그 果實은 자녀 세대가 가장 많이 따먹었다. 자녀가 독립하려고 생각하는 기준은 부모의 생활수준에 의해 결정난다. 우리 때는 김치냉장고 없이도 결혼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게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생활에 익숙한 생활수준이 보장되지 않으면 가정을 구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모의 소득수준보다 자식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學說도 있다』
이 상황에서 50代의 고민은 더 커진다. 자신과 아내의 미래 수십 년도 챙겨야 하는데, 자식 키우는 비용은 오히려 급속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이 취직해 제 밥벌이를 하고 결혼하는 데 까지를 책임의 최소 기준으로 삼고 있어 남은 재산을 까먹기 십상이다. 여기다 우리의 50代는 살아계신 老父母를 「나몰라라」할 세대도 아니다. 자신, 자식, 부모 등 세 군데에 지출이 몰리면서도 수입이 없어지는 시기가 바로 50代다.
『자신이 번 것은 자신이 다 써라』
資源(자원)이라는 것은 한정돼 있게 마련이다. 수십억원씩 蓄財(축재)한 사람이라면 모르되, 집 한 칸과 퇴직금이 가진 것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과 아내는 당연한 투자 대상이고, 선택 대상은 「자식이냐 부모냐」이다. 餘生(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에겐 투자비용이 얼마 들지 않는다. 때문에 부모에겐 당연히 투자해야 한다. 문제는 자식이다. 투자는 하되 어느 수준까지인지가 고민거리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식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사회의 건전화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黃相旻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자식과의 관계에서 아주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다. 자식들은 받을 것을 다 받지만 나중에 부모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50代의 나이에는 자식 교육이 대부분 끝나지만 대신 자식의 결혼 등 목돈이 많이 드는 때다. 이런 때 절대로 무리한 겉치레를 해선 안 된다.
자식에게 유산을 남겨 주는 기존의 행태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식으로선 이런 부모의 태도가 상당히 섭섭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의 삶의 추세고 너희도 自立의 의지를 굳히라」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직장에서 退出됐을 때 모든 사람은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왜 밀려나야 하나」, 「내 능력이 결코 젊은 친구들보다 못하지 않는데」 등등 갖가지 想念 속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수없이 맞게 된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退出 이후 平常心을 되찾기까지는 대개 1~2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대개 「분노→체념(타협)→모색→냉소」라는 과정을 거친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退出 직후에는 분노 이외에 다른 감정이 나올 수 없다. 내 운명을 심판한 오너나 上司에 대해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들이 과연 나를 심판할 자격이 있나」, 「에이 개떡 같은 회사 망해 버려라」 등등 갖가지 증오심이 마음속에 요동친다.
몇 개월이 지나면 이런 감정은 아물기 시작한다. 「그래 내가 잘못했지」, 「회사의 입장도 생각해 줘야지」 등등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수용하면서 애써 제3자에 대해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살아야 한다」는 命題(명제) 앞에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직장이나 삶의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단계에서 冷笑적인 자세로 변모한다. 새로운 직장도 구하기 어렵고 삶의 패턴을 바꾸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마음을 다져잡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해 보지만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재벌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하다가 2년전 퇴직한 A씨(57)는 『회사는 퇴직에 대비해 어떤 조치도 해 주지 않았고, 퇴직 후에도 「잘 지내느냐」는 안부전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런 회사에 30여 년 간 몸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소속감에서 나오는 後光효과가 크다
金泳辰 박사는 퇴직 이후의 喪失感(상실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의 自矜心(자긍심)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어느 직장이나 분야에 소속됨으로써 자연히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後光효과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면 위상이 달라진다. 명함 내밀 일도 없고, 어디 갈 만한 마땅한 곳도 없고, 회사 앞 술집에서 외상술 먹을 입장도 안 되는 것을 느낄 때 불안감과 허전함이 엄습한다.
그러나 막상 뭔가를 상실할 때보다 상실을 앞둔 시점에 더 불안하다. 동료의 퇴출이나 죽음 같은 것을 예비연습으로 인식해 자신의 아픔으로 간주한다. 未久(미구)에 자신에게 벌어질 상황을 사전에 맛보려는 자세가 두드러진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퇴직 이후가 비교적 나은 편이다. 情이 많아 감싸줄 줄 알고 서로 잘 모이는 것이 서구사회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退出당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주변의 視線이 부담스럽고 괜히 자격지심이 드는 탓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재벌 계열회사 대표이사 출신인 B씨는 처음에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냐』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다. 그러나 일단 입이 열리자 그의 토로는 거침이 없었다. 그와의 一問一答이다.
명함을 내밀 수 없을 때의 당혹감
―退職당했을 때의 심정은.
『선배들이 「직장을 떠나면 아내 잃어버리는 것 다음으로 충격이 크다」고 얘기하는 것을 누차 들었다. 그러나 회사 재직時에는 그게 심각하게 와닿지 않았다.
아내에겐 퇴직하기 1년 전부터 암시를 미리 주었지만 막상 당하니까 엄청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나는 「가정을 선택하느냐 직업을 선택하느냐」라는 한계 속에서 살면서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한 직장밖에 몰랐기 때문에 외길을 가다가 떨어져 나가니까 곤충이 더듬이를 잃어버린 듯 완전히 방향감을 상실하는 것 같았다』
―직장을 그만둔 후 나타나는 문제가 뭔가.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주고받던 명함을 내밀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당혹스런 변화였다. 무심결에 포켓에서 명함을 찾다가 「아하, 내가 그만뒀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면 허무감이 엄습해 왔다.
퇴직하자마자 의료보험이나 年金을 위한 불입을 별도로 해야 하는 것이 우선 당혹스러웠다. 우리는 수십년 간 가장 많이 돈을 내왔는데, 단 몇 개월의 유예기간도 없었다. 가장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인데도 아무런 혜택이 없다는 것에 놀랐다.
그나마 이전에는 이자소득으로 생활이 가능했는데 워낙 금리가 낮으니까 생활도 안 됐다』
―퇴직 후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리기 위해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했다.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사람들과 「만원회」라는 등산 모임을 만들었다. 서울 주변에는 좋은 산이 많다. 지하철 타고 국밥 먹으면 1만원으로 하루 山行이 해결된다. 동료들과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위안도 한다』
―매일 등산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사실 再就業(재취업)을 꾸준히 생각해 봤다. 그러나 새로운 오너와 인간관계를 다시 맺는 일이 너무 피곤하게 생각됐다. 대기업은 그나마도 체계가 잡혀 있지만 중소기업은 오너의 입김이 너무 세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 기능이 필요하다는 자세가 아니라 「그래 일거리 줄 게 와라」는 자세였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 집안이 유교의 내력이 있어 성균관에서 유학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의 재미에 빠지니 일단 생활에 활력이 돈다는 것이 느껴졌다』
―創業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
『예전부터 전해 오는 말에 「소년 登科(등과ㆍ과거에 급제하는 것)하지 말고 중년 喪妻(상처)하지 말고, 말년에 콰당(破産ㆍ파산)하지 말라」는 게 있다. 나이 들어 파산하면 再起가 불가능하고 비참한 末路(말로)를 보내게 된다. 심리적으로 이런 제한도 있고, 創業도 기술 등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 결코 쉽지 않다』
전문경영인은 파리 목숨
―직장인으로서 50代의 强弱点을 설명해 달라.
『물리적인 나이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 대체로 보면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세대의 기능이 많이 달라진다. 우리 직장 생활 초기는 경제성장이 막 시작하는 단계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 문제였지 파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은 국제화·개방화 등으로 변화의 폭이 너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 먹은 계층의 적응이 더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직장內에서 젊음의 패기와 연륜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 기준이 없어 연장자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 같다.
이보다는 재벌 2, 3세들이 상속이나 승계를 통해 회사를 장악하면서 나이 먹은 전문경영자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2, 3세 오너와 전문경영인 사이에 갈등이 있는가.
『우리나라에선 말이 전문경영인이지 그들은 내일을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임기는 전혀 의미가 없다. 그런 마당에 소신 있게 일하는 전문 경영인이 나올 수 없다. 사실 기업 내부를 잘 보면 무분별한 不實 투자, 非효율적인 운영, 기업활동과 관계없는 경비의 부담 등 오너에게 책임이 돌아갈 일이 많이 나타난다. 이런 것이 먼저 제거돼야 하는데 2, 3세 오너들이 無賃乘車(무임승차)해 경영권을 세습하고 「皇帝的 경영」을 하면서 전문경영인을 무시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동안 가정생활을 희생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월급쟁이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성취감을 위해 일하는 경우와 대우 때문에 일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나의 길은 前者에 가까웠다. 내가 취업하던 1960년대 말에는 취직할 데가 없었다. 먹고 산다는 것이 최고의 과제였기에 직장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현재의 한국이 이뤄진 것이다. 내가 직장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것도 이런 희생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시대상황과 개인의 의지가 모두 어울린 결과다. 물론 불가피성은 인정하지만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한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직장생활의 패턴이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나.
『전문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사이를 진행할 때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 사람이나 기업이나 가장 이기주의적으로 행동하고 拜金(배금)주의가 팽배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종교도 힘을 잃는 게 이 시점이라고 한다. 앞으로 수십년 간 우리 사회에선 50代가 힘을 못 쓸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때문에 30, 40代부터 「자신의 길」을 철저히 살피고 50代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50代의 힘의 결집이 필요하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현재의 50代는 國富 중 가장 많은 몫을 차지하고 있는 계층이면서도 이 사회에서 가장 버림받은 계층이기도 하다. 나는 이 세대가 가진 몫 만큼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 동료들과 얘기해 보면 모두 찬동한다. 그러나 생각만 있지 힘의 결집도 힘들어 막상 행동화는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데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一助를 하고 싶다. 퇴직 세대에게 정책적 배려를 하게 하고 정보와 기회를 주도록 정치적 힘을 발휘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또 앞으로 사회 봉사에 더 많은 참여를 할 생각이다. 퇴직하면 무기력해진다. 움직이지 않거나 혼자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계속 무언가 하면서 움직일 계획이다』
퇴직한 50代는 무엇을 하며 직장 이후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다른 직장으로 옮겨간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만 대충 확인될 뿐이다. 요즘은 나이 먹은 사람을 쓸 회사도 없고 당사자들도 시원찮은 직장에 다닐 뜻이 별로 없다.
50代의 기능은 과연 쓸모 없는 수준인가. 사람마다 능력의 편차가 커 일률적으로 규정하긴 힘들다. 전반적인 수준을 놓고 평가하면 경쟁상대인 40代보다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때 고려하는 기준은 체력, 직업상의 전문성,기억력을 포함한 知的 능력, 일에 대한 熱情(열정) 등 여러 가지가 꼽힌다.
이런 다양한 기준 중 50代가 40代를 능가할 분야는 별로 없다.
그러나 50代에겐 年輪(연륜)이란 만만찮은 武器가 있다. 年輪은 인생을 오랜 기간 살아오면서 쌓아 온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신중성, 적응성, 융통성, 전체를 보는 통찰력, 위기관리 능력 등이 연륜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그러나 연륜의 효용 가치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젊은 세대와 나이 먹은 세대와의 기능 차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외국에선 많이 실시되고 있다. 예전에는 같은 시대를 사는 여러 세대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50代의 기능이 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조사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무래도 젊은층의 교육 수준이 나이 먹은 층보다 더 높아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한 사람의 삶을 縱斷(종단) 추적하는 방식을 적용해 기능의 高低를 평가하고 있다. 이 방식에선 20代부터 50代까지의 종합적인 기능이 엇비슷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의 조사에선 知能(지능)이 아닌 智慧(지혜)를 검사하는 것도 있는데, 이 분야에선 50代가 젊은 층보다 월등 우수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50代를 직장으로 수용하느냐 마느냐는 「사회의 흐름」과 「회사의 意志」이지 이들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전반적 흐름은 분명 50代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고, 기업도 이를 적극 이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야심을 줄여라
현재 나타나는 「50代의 위기」는 「직장에서의 威脅(위협)」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個人的이라기보다는 構造的(구조적)인 면이 강하다. 新自由主義라는 세계경제의 흐름은 機能(기능)에 입각한 냉정한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예전에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高비용인 50代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그런 虛飾(허식)도 걷어치웠다. 우리 기업들은 한 수 더 떠 구조조정의 명목으로 「눈에 거슬리는 사람」까지 과감히 밀어내고 있다.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면 국가가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젊은 층의 失業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50代까지 신경 쓸 수 있느냐」며 「각자 알아서 處身하라」는 입장이다.
선진국은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선진국일수록 人的 정리가 빠르다. 그러나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그런 방식에 익숙하니까 절망하지도 않는다. 對備(대비)도 대부분 돼 있고 방어적 심리에 익숙하다. 주부들도 독립심이 강해 남편을 대신해 직장에 도전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對備도 없고 독립심도 없고, 사회가 여성을 필요로 하지 않고, 험한 일을 하는 것을 사회적 매장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자란 우리 주부는 결코 도전적 자세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우리 자녀도 이런 훈련이 잘 안 돼서 예전과 다름없이 용돈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미숙한 여성일수록 남자에게 다시 「일하라」고 등을 떠민다. 자존심 때문에 먼저 직장 일보다 못한 일을 하지 못하는데, 등까지 떠밀면 더 고민한다. 우리 50代 남성이 더 힘든 것은 이렇게 對備되지 않은 가족의 특성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먼저 직장보다 質이 떨어지는 직업을 갖게되는 것을 本人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두려워해 老後에 처신하기가 훨씬 힘들다.
그러면 50代는 이 위기를 어떤 식으로 돌파해 나가야 할까?
각계 전문가들은 다양한 표현으로 돌파방안을 제시한다.
그 進言은 『욕심을 버리되, 적극적으로 무언가 일을 계속 하라』는 것으로 要約된다.
金泳辰 박사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밝힌다.
『꿈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물론 쉰 살 넘어까지 살다 보면 대개 현실과 부딪치며 자연히 조정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좀더 적극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꿈은 어린 시절 간직했던 소박한 憧憬(동경)도 있고 野心(야심)이란 것도 있다. 野心은 인생의 動因(동인)이다. 그러나 50代 이후에는 소박한 동경의 비중을 늘이고 야심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 야심의 비중이 높으면 행복한 삶이 되긴 힘들다.
野心 속에는 快樂(쾌락)이 內在돼 있다. 돈이 가져다 주는 2차적 쾌락이 너무 많다. 그래서 野心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주변에선 「成功 神話」가 자주 들려온다. 50代에 사업에 뛰어들어 반도체장비 업체인 「미래산업」을 크게 일구고 최근에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정문술씨 같은 성공사례는 50代의 野心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성공사례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선 특이 케이스임을 상기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심리학 박사인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金挺運(김정운ㆍ40)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50代 이후에 사업을 해 성공했다거나 여든 살 노인이 마라톤 코스를 完走했다는 등의 성공 신화를 사회에서 홍보하는 것은 逆효과가 크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성공 신화를 이루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과 스트레스가 필요한데 과연 그게 餘生(여생)에서 바람직한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에는 청소년기만 「自我 정체성」을 찾는 시기로 여겼지만, 요즘은 50代 이후도 「제2의 自我 정체성」을 추구하는 때로 인식하고 있다. 이 시기에 정체성을 추구하는 데는 주변의 視線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그는 『그동안 50代가 포기했던 문화와 소비에서의 主權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각종 이벤트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청소년들이다. 그들이 구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쓰는 돈은 자신의 쓸 몫을 줄인 부모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젠 부모 세대들도 과감히 써야 한다. 그래야 문화와 소비의 공급자도 그들에게 배려를 하게 된다. 얼마 전 가수 楊姬銀(양희은)의 콘서트에 40, 50代 올드 팬들이 엄청 몰렸다고 하는데 그런 현상도 이런 흐름의 하나로 인식된다.
전문가들은 50代는 단순히 한 개인과 가정에 대한 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에도 따뜻한 눈길을 가져야 할 세대임을 강조한다. 그동안 직장에서 힘겹게 살아오면서 돌아보지 못했던 주변을 이제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寄附(기부)이건, 자원봉사이건 어떤 것이든 좋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韓慶惠 교수는 『우리 사회에선 자원봉사를 돈과 시간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배부른 행위로 인식하고 있으나, 선진국에서는 상류층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로서, 보통 사람들은 일상생활로 인식하고 보편화돼 있는 행위』라고 밝혔다.
연세대 심리학과 黃相旻 교수는 『나이가 들어도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고 다른 방면을 강조한다.
『요즘 외부 강연을 나가 보면 50, 60代층의 학구열이 대단한 것을 실감한다. 그들의 열기는 단순히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뭔가 허전했던 것을 채우려는 진정한 學習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뭔가 배우고 있으면 길이 보이고 生을 풍족하게 할 방향이 서게 된다』
金泳辰 박사도 50代의 공부에 동의한다.
『50代도 경험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익히고 배우면서 무장해야 한다. 50代가 되면 기억력이 현저히 약화돼 배우는 것도 쉽지 않다. 때문에 그 이전부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퇴직한 이후에도 종전에 자신이 익힌 영역에서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물론 돈을 적게 받아 생활수준을 종전과 같이 유지하긴 힘들겠지만 생산적 일에 몰입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젊은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인간적 희열은 만만치 않다』
연령의 의한 차별을 철폐하라
그동안 국내에선 50代 퇴직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60代 이후의 노인들에 대해서는 복지 차원에서 敬老堂(경로당)이 세워지고, 老人단체가 설립돼 나름대로의 국가적 배려가 있다. 그러나 얼마 전 50代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단체인 「한국은퇴자협회(☎02-6399-3000)」가 설립돼 새로운 분위기를 맞고 있다.
在美교포인 朱明龍(주명룡ㆍ57) 회장이 미국의 「은퇴자협회」를 본따 설립한 이 단체는 올해 초 만들어져 아직 활발한 활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은퇴자협회는 『장년층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은퇴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협회가 현재 벌이고 있는 사업은 웹사이트를 통한 각종 정보 제공, 잡지 발행, 할인권 발행 등인데, 앞으로 사업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朱明龍 회장은 이와 함께 50代의 생계를 위협하는 요소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환위기가 일어났을 때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상황이 호전된 마당에도 원상으로 복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 협회는 앞으로 각종 심포지엄을 통해 의견을 모으고 회원들과 힘을 합쳐 「연령에 의한 차별금지법」, 「연령에 의한 조기 퇴직 금지법」 등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의 50代가 겪고 있는 위기는 한 번 지나가면 끝나는 현상이 아니다. 현재의 40代, 30代가 세월이 흘러 50代에 진입하면 그들도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현상이다.
50代의 위기는 외환위기라는 近代史에서 보기 드문 격랑을 통해 다가왔다. 처음 겪어보는 현상인 만큼 과도기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50代는 매를 빨리 맞았다. 그러나 현재의 30, 40代는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설명했듯 그들은 우리 인구구조에서 가장 큰 규모를 보이는 세대다. 세대 간의 경쟁뿐 아니라 그들 간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거기다 앞으로 20년 간은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진행되는 시점으로 삶 자체가 험해질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이런 장래에 대한 전망 때문에 『현재의 50代가 그래도 행복한 경우이고 오히려 30, 40代가 더 불쌍하다』는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고통당하는 당사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분명히 그렇다.
이 시점에서의 50代에 대한 메시지는 역시 현재의 30, 40代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50代가 됐을 때 2할의 성공그룹에 속할 것인가 아니면 8할의 탈락그룹에 속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해답의 열쇠는 분명히 있다.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獨步的(독보적)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