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주둔군 부대와 국립박물관
독자들께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군부대 바로 옆에 위치한 박물관을 보셨는지…. 군사박물관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문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헬기가 툭하면 뜨고 내리고, 바로 뒤편으로는 주한미군 군부대가 자리잡은 그런 국립박물관을 본 적이 있는지 말이다. 건물은 언제 개관하는지도 확실히 모르고, 유물도 학예직(큐레이터)도 시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면 그런 박물관의 미래가 어떨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문화정책이나 문화행정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月刊朝鮮의 독자분들께 필자는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6가에 새로 짓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건설 현장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국립박물관 직원들과 문화관광부 관계자들조차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실토하는 용산 새 국립박물관 건립의 문제점은 과연 어디서 시작했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현재 상태부터 살펴보자.
용산 새 국립박물관은 1997년 10월31일 착공식을 가졌다. 당시 문화체육부(현 문화관광부)는 2002년 12월 건물공사 완료와, 2003년 12월 개관을 발표했다. 용산박물관 건축 공사장 안내판에는 건물 공사는 2002년 12월에, 개관은 2003년 12월에 하는 것으로 적혀 있다.
용산 새 국립박물관의 건축 공정률은 예정대로라면 최소 80%는 넘어야 한다. 3월 말 현재 건축 공정률은 42%에 불과하다. 전시설계 변경에 따른 문제로 공사가 한때 중단되는 등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탓이다. 건물 완공은 올해 말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개관은 언제가 될까?
용산 새 국립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 측은 『2005년 상반기쯤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도 확답이라고 볼 수가 없다. 정문이 들어설 자리에 美8군 용산 헬기장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불과 2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군 헬기장을 옮기지 않고는 공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없는데, 그 헬기장을 이전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탓이다.
주한미군 헬기장 어쩔 것인가
1993년 서울시 용산구 용산 가족공원 내에 국립박물관을 지으려고 했을 때 우리 정부는 「용산 미군기지가 철수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군기지의 이전은 불투명한 상태다. 미군 측이 용산 主기지(메인 포스트)와 남측기지(사우드 포스트)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려고 하거나, 미군과 군무원 등을 위한 아파트를 용산 기지 주변에 지으려고 하는 움직임은 용산 기지에서 미군이 당분간 철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물관 건축을 위해서 반드시 이전해야 할 미군 헬기장은 어찌됐든 용산 기지에서 가까운 곳에 계속 위치할 수 밖에 없다. 용산 기지에 있는 미군병원으로의 환자 수송이나 軍 작전을 위해서도 그렇다.
미군 측은 줄기차게 부대 內로 3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1만4000여 평의 토지를 요구해 왔다. 용산구청 지적과를 찾아가 그만한 땅이 있느냐고 묻자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지적도를 펼쳐 보이며 『어디에도 그런 땅은 없다』고 답했다.
필자는 1997년 1월, 당시 문화체육부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연간 업무 발표」를 했을 때 美8군 헬기장을 어디로 이전할 것인지 당시 김영수 장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박물관 정문이 들어설 헬기장을 어디로, 어떻게 이전할지 결정도 안 된 상태에서 착공식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게 질문의 요지였다. 金장관은 『외무부와 국방부 등과 협조하고 있으니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 해 10월31일 착공식을 강행했다.
그 후 5년이 지났다. 문화부 장관이 그간 여섯 차례 바뀌었고, 그 때마다 장관들은 『미군 헬기장 문제를 관계 부처와 협조해 잘 처리할 것』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헬기 소음과 진동으로 문화재 파괴 가능성
물론 代案이 제시되기는 했다. 중지도로도 알려진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이나 동작구의 노량진 수원지 제3정수장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노들섬은 한강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한강대교에 위치했다는 상징성 때문에 서울시가 강력히 반발했고, 동작구 노량진 수원지는 역시 동작구청과 미군 측의 반대로 유야무야됐다.
중요한 관건은 헬기장의 위치이다. 더 정확히는 용산 새 국립박물관과 헬기장이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이다. 박물관 정문 자리에 위치한 헬기장을 옮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헬기장을 옮겨 정문 공사는 할 수 있게 됐다고 치자. 그러나 옮긴 위치가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면 헬기의 소음과 진동은 박물관을 찾은 관객을 여전히 괴롭히게 될 것이다.
결국 용산 국립박물관 개관의 최대 암초는 정문이 들어설 자리에 위치한 미군 헬기장이다. 이것을 언제 옮길지 확정하지 않고는 박물관 개관 일정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용산 국립박물관 개관 일자가 언제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다른 요인으로는 유물 이전에 드는 시간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은 창덕궁에서 덕수궁으로, 그러다가 현재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자리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지금은 사라진 옛 중앙청 건물로 옮겼다. 그곳에서 현재의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했다. 60여 년 세월 동안 이토록 국립박물관을 많이 옮긴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만큼 박물관 직원들이 「유물 포장 및 이전」에 베테랑들이 많다는 점에서 안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유물 이전의 動線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창덕궁에서 덕수궁으로 옮겼던 것이나, 덕수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전했던 것, 그리고 옛 중앙청에서 경복궁 內 현재 위치로 옮기는 것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창덕궁→덕수궁, 덕수궁→경복궁으로의 이전에는 차량이 필요했겠지만, 당시는 차량 소통량도 그리 많지 않았고, 유물도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경복궁 내부에서 경복궁 내부의 다른 건물로 두 차례 이전할 때는 불과 수백m 움직이는 것이었다.
유물 이전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위치와 용산 새 국립박물관 위치는 직선 거리로도 상당히 떨어져 있고, 도심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량도 만만치 않다. 유물 이전시 차량 사고로 인한 유물의 파손이나 훼손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수는 13만여 점. 이 유물을 옮기는 것만도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는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1996년 중앙청에서 현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할 때는 두 건물 간 거리가 채 200m도 되지 않으며, 경복궁 지하에 위치한 수장고를 이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전시유물 5000여점 정도만 옮겼는데도 2개월 가까이 개관이 지연됐다. 새 건축물의 콘크리트벽에서 뿜어 나오는 「시멘트 毒」 등에도 대비해야 하는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박물관 개관은 항상 예정보다 늦다는 것이 정설이다.
용산 새 국립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은 『현재로서는 2005년 6월이면 개관될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이는 미군 헬기장 등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된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개관을 언제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박물관 관계자들의 말이다. 좁은 대로, 현재의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이 기능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용산 새 국립박물관이 개관 이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느냐이다.
동서 길이 404m, 남북 최대 폭 140m, 최고 높이 43m, 대지면적 9만3000여 평, 지하 1층, 지상 6층의 세계 6大 규모의 박물관은 세계 박물관 건축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초대형 규모의 단일 건물이다. 하지만 그 규모에 걸맞은 운영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용산 새 국립박물관은 「슈퍼 베이비」가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운영비의 문제. 현재 경복궁 중앙박물관을 포함한 전국 11개 국립박물관의 건물 운영 유지비는 60억여 원 정도인 데 비해 용산 새 박물관의 건물 운영 유지비는 1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박물관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전국 모든 국립박물관의 건물 운영 유지비보다 많은 액수가 필요하게 된 셈이다. 단일 건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을 지었으니 운영비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국립박물관 관계자조차 『예산 절감이 절대善인 것처럼 인식되는 마당에 중앙박물관 예산만 늘어나는 것을 예산 담당 기관에서조차 인정해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건물을 운영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예산 때문에 전시나 사회교육 등 박물관의 주요 기능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우려다.
예산 절감, 인력 부족
용산 새 국립박물관 전시실은 現 경복궁 중앙박물관보다 5.3배 늘어난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이만한 규모에 걸맞은 적정 학예직원은 최소한 200여 명 선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앙박물관 학예직원 수는 60여 명으로 필요 인원의 3분의 1에도 모자라는 수준이다. 그러나 용산 새 박물관이 개관했을 때 학예직원이 200여 명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박물관 관계자는 없다. 다른 부처는 공무원 수를 줄이느라 난리인데, 중앙박물관만 세 배 이상 인원이 늘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나마 중앙박물관 학예직원이 60여 명을 넘은 것은 최근에 20여 명 이상이 신규 학예사로 채용됐기 때문이다.
급작스레 늘어난 전시실을 운영하기 위해, 직원이 늘어난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박물관 관계자들이 아쉬움을 표한다. 전체 학예직원 60여 명 중 20여 명이 신규 직원이라면, 그 조직에서 노련미나 원숙미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갓 전입한 신참 이등병이 전체 인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군대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신규 직원수가 3분의 1이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학예직원을 앞으로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것이기 때문에, 2005년을 개관이라고 가정한다면 개관 당시 4년차 이하의 학예직원이 전체 학예직원의 절반을 훨씬 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정치논리에 희생된 문화
민족문화의 정수를 모으고 전시하는 용산 새 국립박물관이 문제 투성이가 돼 버린 이유는 문화를 정치적 논리로 마름질했기 때문이다.
용산 새 국립박물관은 철저히 정치적 논리에 의해 탄생됐다. 金泳三 정부는 집권 직후 민족정기를 세우고 경복궁을 복원하겠다며 옛 총독부 건물 철거를 결정했다. 옛 총독부 건물은 당시 중앙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다. 새 박물관을 지은 뒤 중앙박물관으로 쓰던 총독부 건물을 헐자는 게 의식 있는 문화인들의 바람이었지만, 金泳三 정부는 용산에 세계 박물관 건축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박물관을 짓겠다면서 당시 중앙박물관으로 쓰던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
문화 논리를 무시한 정치적 논리 때문에 탄생한 용산 새 국립박물관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태생적 한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리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능이 언제 정상화될지 현재로서는 추측하기 어렵다. 한 국립박물관 관계자는 말했다.
『향후 10년 동안 국립박물관은 전시와 연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1996년 현재의 국립박물관으로 임시 이전한 이후 우리들은 용산 국립박물관으로의 이전과 개관 작업에 다시금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물관 학예직인지, 유물 포장·이사 전문직인지 우리도 한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를 學藝職(학예직)이 아니라 雜藝職(잡예직)이라고 부르지요. 더욱 두려운 것은, 전시와 연구 기능에 충실하지 못한 선배들을 보고 자라날 신참 학예직원들이에요. 우리는 그렇다쳐도, 제대로 박물관 수업을 받지 못한 그들이 앞으로 박물관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참으로 걱정됩니다』●
독자들께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군부대 바로 옆에 위치한 박물관을 보셨는지…. 군사박물관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문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헬기가 툭하면 뜨고 내리고, 바로 뒤편으로는 주한미군 군부대가 자리잡은 그런 국립박물관을 본 적이 있는지 말이다. 건물은 언제 개관하는지도 확실히 모르고, 유물도 학예직(큐레이터)도 시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면 그런 박물관의 미래가 어떨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문화정책이나 문화행정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月刊朝鮮의 독자분들께 필자는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6가에 새로 짓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건설 현장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국립박물관 직원들과 문화관광부 관계자들조차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실토하는 용산 새 국립박물관 건립의 문제점은 과연 어디서 시작했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현재 상태부터 살펴보자.
용산 새 국립박물관은 1997년 10월31일 착공식을 가졌다. 당시 문화체육부(현 문화관광부)는 2002년 12월 건물공사 완료와, 2003년 12월 개관을 발표했다. 용산박물관 건축 공사장 안내판에는 건물 공사는 2002년 12월에, 개관은 2003년 12월에 하는 것으로 적혀 있다.
용산 새 국립박물관의 건축 공정률은 예정대로라면 최소 80%는 넘어야 한다. 3월 말 현재 건축 공정률은 42%에 불과하다. 전시설계 변경에 따른 문제로 공사가 한때 중단되는 등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탓이다. 건물 완공은 올해 말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개관은 언제가 될까?
용산 새 국립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 측은 『2005년 상반기쯤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도 확답이라고 볼 수가 없다. 정문이 들어설 자리에 美8군 용산 헬기장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불과 2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군 헬기장을 옮기지 않고는 공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없는데, 그 헬기장을 이전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탓이다.
주한미군 헬기장 어쩔 것인가
1993년 서울시 용산구 용산 가족공원 내에 국립박물관을 지으려고 했을 때 우리 정부는 「용산 미군기지가 철수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군기지의 이전은 불투명한 상태다. 미군 측이 용산 主기지(메인 포스트)와 남측기지(사우드 포스트)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려고 하거나, 미군과 군무원 등을 위한 아파트를 용산 기지 주변에 지으려고 하는 움직임은 용산 기지에서 미군이 당분간 철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물관 건축을 위해서 반드시 이전해야 할 미군 헬기장은 어찌됐든 용산 기지에서 가까운 곳에 계속 위치할 수 밖에 없다. 용산 기지에 있는 미군병원으로의 환자 수송이나 軍 작전을 위해서도 그렇다.
미군 측은 줄기차게 부대 內로 3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1만4000여 평의 토지를 요구해 왔다. 용산구청 지적과를 찾아가 그만한 땅이 있느냐고 묻자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지적도를 펼쳐 보이며 『어디에도 그런 땅은 없다』고 답했다.
필자는 1997년 1월, 당시 문화체육부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연간 업무 발표」를 했을 때 美8군 헬기장을 어디로 이전할 것인지 당시 김영수 장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박물관 정문이 들어설 헬기장을 어디로, 어떻게 이전할지 결정도 안 된 상태에서 착공식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게 질문의 요지였다. 金장관은 『외무부와 국방부 등과 협조하고 있으니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 해 10월31일 착공식을 강행했다.
그 후 5년이 지났다. 문화부 장관이 그간 여섯 차례 바뀌었고, 그 때마다 장관들은 『미군 헬기장 문제를 관계 부처와 협조해 잘 처리할 것』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헬기 소음과 진동으로 문화재 파괴 가능성
물론 代案이 제시되기는 했다. 중지도로도 알려진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이나 동작구의 노량진 수원지 제3정수장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노들섬은 한강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한강대교에 위치했다는 상징성 때문에 서울시가 강력히 반발했고, 동작구 노량진 수원지는 역시 동작구청과 미군 측의 반대로 유야무야됐다.
중요한 관건은 헬기장의 위치이다. 더 정확히는 용산 새 국립박물관과 헬기장이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이다. 박물관 정문 자리에 위치한 헬기장을 옮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헬기장을 옮겨 정문 공사는 할 수 있게 됐다고 치자. 그러나 옮긴 위치가 용산 국립박물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면 헬기의 소음과 진동은 박물관을 찾은 관객을 여전히 괴롭히게 될 것이다.
결국 용산 국립박물관 개관의 최대 암초는 정문이 들어설 자리에 위치한 미군 헬기장이다. 이것을 언제 옮길지 확정하지 않고는 박물관 개관 일정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용산 국립박물관 개관 일자가 언제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다른 요인으로는 유물 이전에 드는 시간을 들 수 있다. 지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은 창덕궁에서 덕수궁으로, 그러다가 현재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자리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지금은 사라진 옛 중앙청 건물로 옮겼다. 그곳에서 현재의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했다. 60여 년 세월 동안 이토록 국립박물관을 많이 옮긴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만큼 박물관 직원들이 「유물 포장 및 이전」에 베테랑들이 많다는 점에서 안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유물 이전의 動線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창덕궁에서 덕수궁으로 옮겼던 것이나, 덕수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전했던 것, 그리고 옛 중앙청에서 경복궁 內 현재 위치로 옮기는 것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창덕궁→덕수궁, 덕수궁→경복궁으로의 이전에는 차량이 필요했겠지만, 당시는 차량 소통량도 그리 많지 않았고, 유물도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경복궁 내부에서 경복궁 내부의 다른 건물로 두 차례 이전할 때는 불과 수백m 움직이는 것이었다.
유물 이전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위치와 용산 새 국립박물관 위치는 직선 거리로도 상당히 떨어져 있고, 도심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량도 만만치 않다. 유물 이전시 차량 사고로 인한 유물의 파손이나 훼손을 피하기 위해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수는 13만여 점. 이 유물을 옮기는 것만도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는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1996년 중앙청에서 현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할 때는 두 건물 간 거리가 채 200m도 되지 않으며, 경복궁 지하에 위치한 수장고를 이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전시유물 5000여점 정도만 옮겼는데도 2개월 가까이 개관이 지연됐다. 새 건축물의 콘크리트벽에서 뿜어 나오는 「시멘트 毒」 등에도 대비해야 하는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박물관 개관은 항상 예정보다 늦다는 것이 정설이다.
용산 새 국립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은 『현재로서는 2005년 6월이면 개관될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이는 미군 헬기장 등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된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개관을 언제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박물관 관계자들의 말이다. 좁은 대로, 현재의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이 기능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용산 새 국립박물관이 개관 이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느냐이다.
동서 길이 404m, 남북 최대 폭 140m, 최고 높이 43m, 대지면적 9만3000여 평, 지하 1층, 지상 6층의 세계 6大 규모의 박물관은 세계 박물관 건축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초대형 규모의 단일 건물이다. 하지만 그 규모에 걸맞은 운영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용산 새 국립박물관은 「슈퍼 베이비」가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운영비의 문제. 현재 경복궁 중앙박물관을 포함한 전국 11개 국립박물관의 건물 운영 유지비는 60억여 원 정도인 데 비해 용산 새 박물관의 건물 운영 유지비는 1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박물관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전국 모든 국립박물관의 건물 운영 유지비보다 많은 액수가 필요하게 된 셈이다. 단일 건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을 지었으니 운영비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국립박물관 관계자조차 『예산 절감이 절대善인 것처럼 인식되는 마당에 중앙박물관 예산만 늘어나는 것을 예산 담당 기관에서조차 인정해 주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건물을 운영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예산 때문에 전시나 사회교육 등 박물관의 주요 기능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관계자들의 우려다.
예산 절감, 인력 부족
용산 새 국립박물관 전시실은 現 경복궁 중앙박물관보다 5.3배 늘어난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이만한 규모에 걸맞은 적정 학예직원은 최소한 200여 명 선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앙박물관 학예직원 수는 60여 명으로 필요 인원의 3분의 1에도 모자라는 수준이다. 그러나 용산 새 박물관이 개관했을 때 학예직원이 200여 명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박물관 관계자는 없다. 다른 부처는 공무원 수를 줄이느라 난리인데, 중앙박물관만 세 배 이상 인원이 늘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나마 중앙박물관 학예직원이 60여 명을 넘은 것은 최근에 20여 명 이상이 신규 학예사로 채용됐기 때문이다.
급작스레 늘어난 전시실을 운영하기 위해, 직원이 늘어난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박물관 관계자들이 아쉬움을 표한다. 전체 학예직원 60여 명 중 20여 명이 신규 직원이라면, 그 조직에서 노련미나 원숙미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갓 전입한 신참 이등병이 전체 인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군대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신규 직원수가 3분의 1이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학예직원을 앞으로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것이기 때문에, 2005년을 개관이라고 가정한다면 개관 당시 4년차 이하의 학예직원이 전체 학예직원의 절반을 훨씬 넘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정치논리에 희생된 문화
민족문화의 정수를 모으고 전시하는 용산 새 국립박물관이 문제 투성이가 돼 버린 이유는 문화를 정치적 논리로 마름질했기 때문이다.
용산 새 국립박물관은 철저히 정치적 논리에 의해 탄생됐다. 金泳三 정부는 집권 직후 민족정기를 세우고 경복궁을 복원하겠다며 옛 총독부 건물 철거를 결정했다. 옛 총독부 건물은 당시 중앙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다. 새 박물관을 지은 뒤 중앙박물관으로 쓰던 총독부 건물을 헐자는 게 의식 있는 문화인들의 바람이었지만, 金泳三 정부는 용산에 세계 박물관 건축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박물관을 짓겠다면서 당시 중앙박물관으로 쓰던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했다.
문화 논리를 무시한 정치적 논리 때문에 탄생한 용산 새 국립박물관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태생적 한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리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능이 언제 정상화될지 현재로서는 추측하기 어렵다. 한 국립박물관 관계자는 말했다.
『향후 10년 동안 국립박물관은 전시와 연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1996년 현재의 국립박물관으로 임시 이전한 이후 우리들은 용산 국립박물관으로의 이전과 개관 작업에 다시금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물관 학예직인지, 유물 포장·이사 전문직인지 우리도 한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를 學藝職(학예직)이 아니라 雜藝職(잡예직)이라고 부르지요. 더욱 두려운 것은, 전시와 연구 기능에 충실하지 못한 선배들을 보고 자라날 신참 학예직원들이에요. 우리는 그렇다쳐도, 제대로 박물관 수업을 받지 못한 그들이 앞으로 박물관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참으로 걱정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