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연재

윤열수의 문화재 이야기 - 닭

‘빛의 전령사’ 金鷄

  • 글 :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  
⊙ 신라의 김알지 신화, 제주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
⊙ 닭의 볏은 벼슬, 울음(公鳴)은 ‘功名’과 통해서 부귀공명의 상징
⊙ 多産·邪 등 다양한 문화적 상징 담고 있어

尹烈秀
⊙ 65세. 원광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동국대 문학박사(미술사학).
⊙ 에밀레박물관 학예관, 삼성출판박물관·가천박물관 부관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민학회 회장 역임. 現 가회민화박물관장.
⊙ 저서 : 《민화의 즐거움》 《꿈꾸는 우리민화》 《민화이야기》 《한국 호랑이》 등.
벽사용 닭 부적,가회민화박물관.
길고 긴 어둠이 지나고 희미하게 동이 틀 무렵 온 세상에 새벽을 알려주는 닭 울음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닭’은 이런 특성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세상을 불러들이는 ‘빛의 전령’으로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존재, 주력(呪力)과 벽사적(的)인 힘을 지닌 신성조(神聖鳥)로 여겨져 왔다.
 
  ‘닭’은 조류(鳥類) 중 우리 민족이 가장 일찍부터 길러 온 가축의 하나로 삼국(三國)시대 이전부터 사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긴 세월을 우리 민족과 거의 함께 생활해 온 동물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닭만큼 친숙하고 가까운 동물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 문화 속에는 닭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와 풍속, 놀이와 신앙, 그리고 유물들이 풍부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음력 정월의 첫 ‘닭날(酉日)’에 부녀자들이 바느질과 같은 일을 하면 손이 닭의 발처럼 흉한 모양이 된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닭의 벽사적인 효험을 기려 근신하거나 모임을 가지지 않는 세시풍속도 있었다.
 
  놀이에도 닭과 관련된 것이 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라면 어렸을 적 즐겼던 놀이 가운데 일명 ‘깨금발싸움’이라고 하는 닭싸움 놀이를 쉽게 기억할 것이다.
 
  제례 풍속에서는 술잔에서 닭을 볼 수 있다. 국가 제사인 종묘(宗廟)제례에서 사용하였던 술잔 계이(鷄彛)는 닭의 형상이거나 잔에 닭 그림을 그려 넣어 선왕(先王)의 위엄과 신성함을 기려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한 발은 손으로 잡고 외발로 껑충껑충 뛰어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놀이인데 그 모습이 닭이 싸우는 형상과 같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의 하나인 혼례에서도 ‘닭’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청홍 보자기에 닭을 싸서 혼례의 예상(禮床)에 올려놓거나 동자(童子)에게 안고 있도록 했으며, 예식 후 폐백용으로도 사용하였다. 이것은 닭의 습성을 빌려 신혼부부의 행복한 앞날을 기원하던 풍습이다. 즉 알을 매일 낳는 닭은 다산(多産)을 상징하고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알은 날마다 새로운 삶, 즉 거듭나는 삶 혹은 부활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은 따사한 모성(母性)을 상징하고 한데 어울려 모이를 먹는 한가로운 모습은 가정의 평화를 연상케 한다. 나아가 암수 한 쌍의 닭은 부부의 도리를 일깨워 주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즉 수탉으로부터는 처자를 잘 보살피는 남편의 도리를, 알을 잘 낳고 새끼들을 잘 기르는 암탉으로부터는 자식을 많이 낳아 잘 기르는 아내의 도리를 일깨워 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닭은 때로는 보신용, 교훈의 매개물, 더 나아가 주술과 벽사의 상징물에 이르기까지 실로 폭넓고 다양한 의미로 우리 문화의 내용을 한층 풍부하게 채워 왔다.
 
 
  닭, 어둠을 몰아내고 雜鬼를 물리치다
 
  닭의 다양한 이미지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역시 ‘새벽을 알리는 전령(傳令)’으로서의 존재다. 닭이 울면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다가온다. 밤새 활개치던 온갖 잡귀들은 닭이 우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줄행랑을 놓기에 바쁘다. 그래서 닭의 울음소리는 잡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소리다. 이런 믿음 때문에 민속신앙에서 닭은 잡귀를 쫓고 밝은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상서롭고 신비로운 길조로 여겼다.
 
  닭은 주역(周易)의 팔괘 가운데 ‘손(巽)’괘에 해당하는데 이는 남동쪽에 속한다. 남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다. 어둠이 끝나고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방향을 관장하는 신비로운 동물이 바로 닭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닭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삼재도회(三災圖會)》의 <조수(鳥獸)>편을 보면, 닭에는 독계(獨鷄), 노계(魯鷄), 형계(荊鷄), 월계(越鷄) 등이 있다고 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우는 시각에 따라 일명계(一鳴鷄), 이명계(二鳴鷄), 삼명계(三鳴鷄) 등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했다. 각각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인시(寅時)에 우는 닭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을 함께 길러 좀 더 정확하게 시간을 확인했다고 한다.
 
  황계는 금계와 같은 맥락으로 ‘금계(金鷄)’ 또는 ‘금계(錦鷄)’라고도 한다. 모양은 작은 꿩을 닮았고 가슴의 깃털 색은 공작의 날개를 닮았다. 특히 수컷의 날개털은 현란하고 아름답다. 중국에서 닭은 ‘태양새’를 상징하였다.
 
 
  닭을 통해 본 儒敎的 가르침
 
  중국 노(魯)나라 애공(哀公) 때 전요(田饒)는 닭이 가진 ‘다섯 가지 덕(德)’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머리에 관을 쓴 것은 문(文)이요,
  발에 갈퀴를 가진 것은 무(武)요,
  적에 맞서서 감투하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보고 서로 부르는 것은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고 알리는 것은 신(信)이다.>
 
  이처럼 닭은 문(文)·무(武)·용(勇)·인(仁)·신(信)의 다섯 가지 덕을 지니고 있다 하여 고귀존영(高貴尊榮)의 상징으로도 애호되었다.
 
  또한 유교적 인간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오상(五常)을 닭이 지닌 덕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오상이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즉 사랑·정의·예절·지혜·믿음을 말한다. 서로 불러 먹이를 함께 취하는 인(仁),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 의(義), 머리 위에 항상 볏(관)을 달고 있어 예의가 바르므로 예(禮), 항상 주위를 경계하여 지켜 내니 지(智), 아침마다 어김없이 때를 알리니 신(信)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닭이 지닌 덕성이 유교의 핵심적인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여겨 조화로운 인간성을 형성하는 데 귀감으로 삼을 만한 대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닭은 생활 가까이에 있는 친근한 동물이지만 때로는 경외감으로 가득 찬 상상의 동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옛 문헌에 나오는 금계(金鷄)가 대표적이다. 금계는 이름 그대로 찬란한 황금빛이 나는 닭이다. 실존하지 않는 상상 속의 길조로 봉황·공작·오리 등이 지닌 길상적 의미를 두루 갖춘 신성한 새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김알지 탈해왕조>에는 김씨 왕족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기가 자못 장엄한 설화로 묘사되어 있다.
 
  “탈해왕 9년(서기65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니 금빛의 작은 궤가 나무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이 궤를 가져오게 해 열어 보니 용모가 뛰어난 사내아이가 들어있었다. …”
 
  신라 건국신화의 중요한 대목인 김알지 탄생설화에서 금빛 궤짝을 지키고 있는 흰 닭은 왕의 탄생과 관련된 신령스런 동물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설화의 내용에서 보듯 신라 자체가 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김알지가 탄생한 이 신성한 숲을 ‘계림(鷄林)’이라고 불렀는가 하면, 후에는 한때 계림을 나라 이름으로 삼기도 했다.
 
  신라 초기의 무덤인 천마총(天馬塚)에서 나온 단지 안에서 수십 개의 계란이 들어 있은 흔적이 발견되었고 또 다른 고분들에서는 제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닭의 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죽은 이가 내세에 사용할 부장(副葬) 식량이면서 알이 상징하는 부활과 환생의 종교적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사례들은 아주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닭을 대단한 주술적 위력을 지닌 신성한 동물로 여겼다는 증거이다.
 
 
  鷄龍山의 유래
 
십이지신상의 닭 그림.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닭은 또한 널리 알려진 ‘십이지신(十二支神)’의 하나로도 큰 역할을 했다. 십이지신은 시간과 방위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12마리의 동물신이다. 이중 닭은 방위로는 서쪽, 시간대는 오후 5~7시를 지킨다. 열두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날개가 달린 짐승으로 땅과 하늘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존재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닭은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매개체로도 여겨져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도 부여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덕왕릉, 헌강왕릉 등 신라 왕들의 능이나 불탑의 탑신 등에 새겨진 조각에서도 무기를 들고 의인화(擬人化)한 닭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전래의 지리사상인 풍수지리에서도 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만만치 않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와 함께 계룡시 남선면 일대에 이르렀을 때, 동행한 무학은 이곳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금계가 알을 품는 형국)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을 이룬 천하의 명산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여기서 명당을 이룬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합쳐 ‘계룡산’이란 지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닭은 명당의 형국을 이루는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영남 지방 최고의 길지로 여겨지는 봉화 닭실마을이 바로 대표적인 ‘금계포란형’의 명당이다. 그런가 하면 닭의 머리 모양을 한 닭 벼슬 형의 땅 역시 반드시 권력이나 관운(官運)이 따른다는 최고의 길지로 꼽힌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까지도 이런 명당을 찾아 헤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태초에 닭이 울다
 
손가락으로 그린 8폭 병풍 지두화조도 중 금계 부분.
  닭은 날개가 있지만 날아다니지 않고 지상에서 생활하며 어둠과 밝음의 경계인 새벽을 밝히는 존재이다. 따라서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태양의 새’를 상징한다. 천지개벽(天地開闢)을 다룬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왕 본풀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태초에 천지는 혼돈으로 있었다. 하늘과 땅이 금이 없어 서로 맞붙고, 암흑과 혼합으로 휩싸여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혼돈의 천지에 개벽의 기운이 감돌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경계가 생기게 된다. 또한 하늘에서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흑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수되어 음양상통이 되면서 만물이 형성된다. (중략) 이때 천황닭(天皇鷄)이 목을 들고, 지황닭(地皇鷄)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人皇鷄)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때 하늘의 옥황상제 천지왕이 해도 둘, 달도 둘을 내보내어 천지는 활짝 개벽이 되었다.>
 
  위의 글을 보면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세 마리의 닭이 신격화되어 태초의 개벽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빛을 불러오는 닭의 울음소리는 천지의 개벽을 알리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것은 곧 혼돈에서 조화로의 이행이라는 우주적 차원의 질서를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시켜 주는 존재
 
  닭은 또한 악귀(惡鬼)를 쫓아내는 영묘한 힘과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졌다. 장닭이 홰(喙)를 길게 세 번 치고 첫 닭이 울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나 인간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온갖 잡귀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새벽녘에 닭이 울어 여명이 시작되면 모든 고난 속의 잡것들은 사라져버리고 새로운 광명의 천지가 펼쳐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점에서 닭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 수 있는 예지력(豫知力)을 지녔다고도 생각했다.
 
  닭이 내는 소리는 어둠에서 새벽으로, 더 나아가 죽음에서 삶으로, 이별에서 만남으로의 전환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승과 저승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도 보았다. 죽은 이의 혼령을 위한 굿에서 닭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앞에 소개한 8폭의 대형 민화 병풍의 가장 중심에는 황금색의 닭 한 마리가 돋보이게 그려졌다. 하루 중 언제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화면 구성 내용을 잘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오묘하게 어두운 바탕색이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여명쯤의 시간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새벽녘 여명을 부르는 시각, 큼지막한 바위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황계를 중심에 두고 같은 색의 국화와 붉고 흰 국화들이 화려하게 묘사되어 통일감을 부여하였다. 왼쪽엔 붉은 단풍나무 가지가 전체 화면을 감싸듯이 자리 잡고 오른쪽엔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기러기들이 날아오는데, 왼편으로 붉게 물들어 오는 여명이 표현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황색은 오행 가운데 토(土)를 의미하여 우주의 중심에 해당하고, 오방색(五方色)의 중심으로 가장 고귀한 색으로 인식되었다. 이 그림은 늦가을 새벽 시간, 만물의 중앙에 앉은 황금색 장닭을 그린 것이다. 즉 천상의 문을 넘나드는 벽사의 상징인 상상 속의 누런 닭을 그린 ‘금계도’이다.
 
  민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닭은 현실의 재앙을 막고 소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길상·벽사의 염원을 비롯, 다양한 뜻을 상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닭이 한 마리만 등장하는 그림은 벽사를 목적으로 하는 그림으로 본다. 직접 종이나 비단에 그려 채색하거나 목판으로 찍어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벽사용 닭 그림은 전통적으로 호랑이 그림과 함께 정초에 벽사초복(招福)의 염원을 담아 대문이나 집 안에 붙였던 세화의 일종으로 직접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서 사용하였다. 수탉이 울면 동이 트고, 동이 트면 광명을 두려워하는 잡귀가 모두 도망친다는 믿음이 담긴 그림이다.
 
  수탉의 붉은 볏은 그 이름이나 생김새가 ‘벼슬’과 통하므로 벼슬을 얻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즉 닭의 볏은 입신출세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상징했기 때문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귀천(貴賤)을 막론하고 닭 그림을 가까운 곳에 붙였다.
 
  수탉이 한 마리만 목을 쳐들고 우는 모습이 등장하는 그림은 ‘공명도(功名圖)’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장닭이 크게 우는 그림을 뜻하는 ‘공계명(公鷄鳴)’을 줄인 ‘공명(公鳴)’이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친다’는 의미의 ‘공명(功名)’과 음이 같은 데서 유래했다. 그러니까 장닭이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크게 우는 그림은 입신과 출세를 기원한다는 뜻을 지닌 그림이었던 것이다.
 
 
  닭과 맨드라미
 
쌍 금계도. 맨드라미보다 더 큰 한 쌍의 금계가 희화적이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닭 그림 중에는 벼슬이 선명한 닭과 맨드라미를 함께 그린 그림도 있다. 이는 이른바 ‘관상가관(冠上加冠)’의 의미를 전달하는 그림이다. 닭의 볏(벼슬)은 앞이 낮고 뒤가 높아 관모(冠帽)와 같아 말 그대로 ‘벼슬’이라 하고, 맨드라미의 모양도 닭의 벼슬과 비슷해 같은 뜻으로 통한다. 맨드라미를 한자로 ‘계관화(鷄冠花)’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닭의 벼슬과 맨드라미의 벼슬을 한꺼번에 그렸으니 ‘관 위에 관을 더하는’, 즉 벼슬에 벼슬을 더하는 엄청난 출세를 기원하는 그림인 것이다. 당연히 이런 그림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의 방을 장식하는 그림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암탉은 매일 알을 낳으므로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조선 숙종대의 화가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는 어미닭과 함께 여러 마리의 병아리가 노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이는 오복의 하나인 자손 번창을 염원하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징(李澄, 1581~?)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금궤도(金櫃圖)>는 앞서 이야기 한 신라 왕족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묘사한 그림이다. 설화의 내용대로 황금빛 금궤 옆에서 울고 있는 흰 닭과 이에 놀라는 호공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
 
 
  “닭은 맹수를 쫓아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정초에 액(厄)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수호초복(守護招福)의 의도로 닭 그림을 대문이나 집 안에 붙였다. 이런 풍습은 여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식(松南雜識)》에는 “닭은 맹수를 쫓아낼 수 있고 여러 사악한 것들이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설날에 닭을 나무에 새기고 쇠를 부어 만들거나 창 위에 그려 넣는 것이 유풍이라고 적고 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초에 닭 또는 호랑이의 그림을 세화(歲畵)로 사용하여 잡귀를 쫓았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한 해의 복을 기원하거나 음력 정월 닭날(上酉日)에 즈음하여 닭 그림을 그려 문 위에 붙여 악귀를 막고자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또한 같은 책에는 “(설 전날) 귀신이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가 버리지만 닭이 울어 날이 밝으면 도망가 버린다”는 말도 나온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닭이 귀신을 물리치는 힘을 가졌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기록이다.
 
  이러한 믿음은 닭의 형상이나, 심지어 피 등을 부적으로 사용하는 풍습을 낳기도 했다. 가회민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부적 가운데도 닭 부적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는 목판으로 제작된 것도 있다. 이로 미루어 닭 부적을 다량으로 찍어 서민 가옥의 곳곳에 붙여 두고 벽사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닭의 피에 영묘함이 있다고 믿어 퇴귀법(退鬼法)의 하나로 퇴신부(退神符)의 신효함은 잘 알려져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생활 속에서 닭은 일상적으로 식용이면서도 길조(吉鳥)로서 광명, 벽사, 출세 등 다양한 문화 마인드를 담고 있다.⊙